(정안길 단편소설 : 원고76매)
끝에서
삼년이 지났다.
세 번째 아버지의 방안제사를 누나와 서울 사촌들과 함께 지냈으니,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는 꼭 세 해를 넘긴 것이다.
이튿날은 아침식사를 마치자, 서둘러 누나랑 그리고 아내와 외아들 지수를 차에 태우고 ‘영락(永樂)’을 찾아가 수많은 골호가 안치된 진열대 격납에서 아버지의 사진이 나붙은 투명 창에 누나가 안고 온 연분홍빛 꽃송이를 달아놓았다.
좁다란 통로에 작은 상을 펼친 뒤 하얀 종이를 정갈하게 깔아놓은 상위에 건포와 사과 배 같은 간략한 제물을 올리고, 잔에 술을 부어 재배한 뒤 음복도 하였다.
이제 아버지의 제사를 미치고 ‘영락(永樂)’의 골호를 둘러보았으니, 성묘(?)도 마친 셈이었다.
그러나 그는 헛헛하기만 하였다.
“넌, 그때 쓰러졌잖아?”
밖으로 나와 좀은 서늘하여진 공기가 볼을 스치자, 산뜻하고 생경한 공기가 코끝으로 쾌적하여 심호흡을 하는데, 누나가 또 새퉁맞은 소리를 꺼내는 것이다.
“...흥!”
그는 대꾸하지 않았으나 콧방귀를 뀌었다.
누나가 그 일을 가지고 상투어처럼 되씹는 까닭은 너무나 빤하였다.
삼년 전 순전히 타의로 화장장에 운구를 마친 아버지의 관은 이내 무자비하게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미끄러지더니만, 한 순간에 화구가 삼키어버리고 말았다.
순간 그는 아뜩한 현기증이 일어나 마치 눈앞에 연막탄이라도 터뜨린 듯 부연한 연무가 시계를 가로막자, 문뜩 머리통에서 팽 내두르는 어지러움이 일어나면서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풀썩 주저앉고 만 것이다.
누나는 그 일을 가지고, 아버지제삿날을 비롯해서 얼굴만 마주치었다면 오금을 박듯이 씹어대는 것이다.
장례식장에는 고향에서 떼를 지어 몰리어온 조문객들로 북적거리었다.
때가 때인 만큼 시골들녘이 한창 황금물결로 넘실거리던 이맘때이었으니까, 가을걷이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손을 미루어두고, 머나먼 고향에서 무리지어 찾아온 면면들은 큰터골 사람들과 친족들 그리고 그 지역에서 아버지와 교우를 맺고 살아가던 각계각층의 인사들과 친구 친지들이 너도나도 몰리어온 것이다.
“고인은 큰터골 선산에 모실거지?”
작은아버지랑 당숙어른들 그리고 큰터골 사람들이 한 입처럼 의문을 품고 흘리는 말들이었다.
그네들에게는 무엇보다도 고인의 장지가 큰 관심거리인 듯이 들리었다.
더욱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뜬 어머니의 무덤이 그곳에 있는지라, 그렇게 믿는 공론이 마땅하기도 하였다.
그러니, 상주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묵연히 듣고만 있던 조객들도 마땅히 그러리라고 믿었기에, 고향에서 사촌 육촌들이 덩달아 아버지의 장사준비를 하느라고 전화신호가 밤새껏 끊이지 않았으나, 그때마다 딱 부러진 결정적인 대화는 없었던 것이다.
그는 황망한 가운데 굳이 결정적인 말은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으나, 아버지의 시신은 고향으로 운구하여 조상님들이 묻히었을 뿐 아니라 어머니의 산소가 있는 데에로 모신다는 것이 다들 기정사실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를 비롯한 모두가 고인의 장지는 고향 큰터골 선산의 할아버지할머니의 산소아래 어머니의 산소 옆으로 모시려니 하였다. 게다가 누구인가 결정하였는지, 장례식장의 전용운구차량까지 맞추어놓았다는 말도 들리었다.
그런 사실을 어렴풋 알아차리고 믿었던 그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던 충격과 애상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치솟는 열기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로, 장례절차를 굳이 나서서 뚜렷이 종잡아주지는 못하더라도, 일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할 뿐이었다.
그런데 문뜩 누나가 그의 앞에 나타나서는 딴죽을 치는 말투로 화장장에 예약을 해놓았다면서 숫제 으르렁거리고 덤비었다. 누나는 마치 그가 아버지의 시신을 고향으로 모시겠다고 고집을 피워서 그렇게 돌아가는 줄로 알아차리고, 사뭇 반박하는 투이었다.
그는 누나의 말투에서 덩둘할 수밖에 없었고, 그녀를 바라보던 그는 아버지의 장례절차가 크게 어그러지고 있다는 선입감마저 들어 혼선을 빚는다는 사실만을 확인하였을 뿐이었다.
누나가 사전에 이렇다 저렇다는 한마디 말도 없이 덜컥 예약을 하였다는데, 이제껏 들리는 소리와는 딴판인지라, 상주는 그녀의 말이 달갑지 않을뿐더러, 아버지의 시신을 화장한다는 데에는 공포감마저 느끼어지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비통한 나머지 황망하여 장례절차를 따지고들 마음의 여유를 찾지 못하였다. 같은 아버지의 아들딸로서 누나이기는 하나 아무리 화장장으로 꼬드긴다하더라도, 결코 그녀의 말을 따를 사람은 없으리라고 믿은 것이다.
아버지는 예전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농사짓기에 빠진 뒤에는 곁눈질 한번 하지 않고, 흙과 더불어 살아온 독실한 농가의 가장이었다. 그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아버지는 동내이장도 맡아보았다. 청년시절부터 동네일이라면, 좋은 일 궂은일 가리지 않고, 팔을 걷고 앞장섰으니, 사십이 채 되지 않은 삼십대에 동네일을 맡아 바쁘게 뛰던 아버지에게는 동네를 위하여 헌신할 걸맞은 직책이기도 하였다.
그런 아버지는 아마도 지금 그의 나이 적일 것이다.
그가 대학교기숙사에 있을 때에 아버지는 학교 근방에 아파트 한 채를 샀다면서 기숙사생활을 정리하고, 아버지어머니와 함께 훈훈하게 살면서 학교를 다니라고 일렀다.
워낙 외아들 외딸 남매를 달랑 키운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살아가고픈 마음이 엿물처럼 끌리었을 것이다.
그도 어머니가 지어주는 따뜻한 밥을 먹고, 아버지의 그늘에서 공부한다는 게 뛸 듯이 좋았지만, 한편 황당하여 아버지가 복권이라도 당첨되었으리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 초중고를 끼고 대학교와 관청들이 가까운 근린지역이라 딴 데보다 집값이 월등히 높은 아파트이었기에,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야 아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보다는 잔뼈가 굵은 농사꾼 아버지가 나이가 들어 도시에서 적이 할 일도 없을 터인데, 이농하여 오직 자식들을 가르치겠다는 일념으로 이주까지 하면서 열정을 쏟았다는 점이었다.
“넌, 촌놈이야!”
밖으로 나와 모두 차에 올라 출발하려고 운전대를 잡았는데, 뒷좌석에서 지수와 나란히 탄 누나의 제2탄이 귀청을 자극하는 것이다.
“왜요? 누나!”
그는 시동을 걸어놓으면서 다잡아묻고 있었다.
아버지의 관이 롤러스케이트에 실리어 화구가 삼켜버릴 적에 심한 충격을 받아서 그 자리에 주저앉은 것이 화장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라는 누나의 질타일게 틀림이 없었다.
그건 지금도 유효하기에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세 해를 보낸 이 마당에서 누나는 오금 박기를 마다지 않았던 것이다.
“요즘 사람들 화장장에서 쓰러질 사람이 어딨어?”
그녀의 말인즉슨 납골당을 찾을 적마다 그가 침울한 표정을 짓는 눈치를 예리하게 꿰뚫어보고서 마치 담금질이라도 하려는 의도가 분명하였으나, 그녀가 왜 사람의 주검을 꼭 화장해야한다고 주장하는지도 알 수 없지만, 그야말로 되바라진 탓이라고, 그는 속으로 못마땅하게 여길 수밖에는 없었다.
“허! 누난, 예전 누나가 아니야! 안 그래요?”
그는 백미러로 그녀의 표정을 훑으면서 쏘아붙이는 것이다.
“그때 아빨 고향에 모셨어봐라? ...고향도 예전 아버지 계실 때 고향이야. 이젠 고향도 다 끝이야! 알간?”
그녀도 괜스레 열기가 치받는지, 낯빛이 볼그대대하게 상기된 채로 고향도 무엇도 아버지 살아계실 때이지, 다 끝이라고 지껄여대는 것이다.
“듣기 싫어! 누나. 인생사에 끝이 어디 있어? 끝은 바로 시작이란 말도 못 들었어? 누나는.”
그는 누나의 고착된 편견에서 나오는 말이 듣기가 싫기도 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차서 노년기에 들면, 어느 시점에서인가는 세상을 뜨게 마련이었다. 그건 누나의 말마따나 끝은 아닐 거만 같았다. 꼭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에만 고향이고, 아버지가 세상을 뜨면 고향도 끝이라는 말은 어디까지 누나의 편벽된 관점에서 보아지는 자가당착의 오류일 것이었다.
큰터골 선산에 아버지를 모셨더라면, 지금쯤 작은아버지 사촌 육촌 그리고 마을사람들, 또 어쩌다가 부딪치는 아버지의 친구라면서 그네 스스로가 일러주고, 알아차리는 정겨운 얼굴들을 맞이할 것이다.
그렇다고, 큰터골은 아버지의 고향만은 아니었다. 누나도 그도 큰터골에서 태어나 자라난 태생적인 고향이기도 하였다.
아울러 그는 누나가 결혼하면서 마음이 변하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나는 얼마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닮아서 시집가면, 현모양처가 되리라고 그는 굳게 믿었었다. 그러나 결혼하고 임신하였다는 말만 들었을 뿐, 그 후 아이도 보이지 않았을 뿐더러 엄벙덤벙 어울려 여행이나 다니고, 어영부영 세월만 보내다가 요즘은 그나마 남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고, 홀로 나는 새가 되어 숫제 날라리가 되었을 뿐이었다.
아버지의 첫제사 때에는 시골 작은아버지도 사촌들 차를 타고 형님의 제상에 술 한 잔을 부어 올리겠다면서 노구를 이끌고 오셨다. 그 이듬해 두 번째 제사 때에는 시골에 사는 사촌들과 서울에 사는 사촌들이 다 와서 참례하였다. 그리고 이번 세 번째 제사 때에 서울의 사촌들만 참례하였지만, 그건 그때그때 그네들 사정에 따라서 다를 터이지만, 아버지의 제삿날을 기억하는 그네가 다음 제사에는 누가 참례할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끝이 시작이라니? 야, 끝은 끝 아니야!”
누나는 끝은 끝이라며, 그가 끝은 바로 시작이라는 말에 반박하면서 영악하고 끈덕지게 붙당기었다.
“누나는 남의 집으로 시집을 갔으니, 어머니아버지 다 돌아가시면 끝일지 모르지만 난, 아버지의 아들이고, 할아버지 종손이니까, 돌아가신 아버지를 이어가는 귀한 몸이야. 아버지의 모든 권속이 내게는 다 얼씬 하잖아요? 내가 있는 한 아버지는 끝나지 않은 거라오!”
그는 누나가 앞장서 아버지의 시신을 화장하였다고, 끝이라는 거냐고 다잡아몰아세우고 싶었지만, 딸과 아들의 다른 점을 말하였다.
그는 그가 봉건주의에 찌든 말이 아니라고, 스스로 자인하면서 하는 말이기도 하였다. 누나는 그 시대가 꽤나 원시시대로 생각하는지 무감각하지만, 그게 되레 모순덩이라고 믿어지는 것이다.
“야, 딸은 자식이 아니고, 아버질 못 이어가니?”
그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듯이 반격하였다.
그러나 그는 할 말을 다하였다는 듯이 기어를 넣고, 차를 뒤로 뺀 뒤는 영락을 훨씬 벗어나 차도를 달리었다.
시골 기스락배미 논다랑이를 지어서 아들딸 가르치느라 등골을 빼면서 누나는 고교를 졸업하였으나 진학을 포기하고 연애에 빠지더니만, 이내 결혼하였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시름은 한결 가벼워지었을지언정, 딸에 대한 아버지의 여망을 저버린 거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서울에서 손꼽히는 호화웨딩홀에서 그럴듯하게 여위사리 시켰으니, 아버지는 딸에게도 할 일은 다 한 셈이었다.
그는 대학을 나오자 유수기업체에 입사하였는데 그때까지도, 아버지가 무슨 돈으로 그를 대학까지 졸업시키고, 뒷감당을 해왔는지는 속속들이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열정적인 도움은 금전적인 것만으로 끝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서울에 와서도 단 한 시간 무료하게 집에 머물러있지 아니하였다. 서울에는 더 많은 시골의 유년친구들이 살았기에 찾아다니면서 사이를 좁히는가하더니, 역시나 얼마 안 가서는 어엿한 일자리를 잡아든 것이었다.
수더분한 성품에다 성실하고 근면 검소하였던 아버지는 그가 보더라도, 무슨 일이든 맡겨주기만 하면, 해낼 수 있는 건실한 체질적인 능력이 인정될 정도이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가정적으로 충실하여 생활비를 정하여진 날짜에 꼬박꼬박 어머니에게 건네었고, 그 액수가 넉넉하지는 않더라도, 어머니는 거기에서 또 절약하여 알게 모르게 저축하는 습관이 판에 박히듯 하였다. 그러니, 아버지의 의도를 잘 따르는 어머니와 힘을 합하여 여유가 생기면, 그의 학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였으니, 그는 대학에서 학업에 경제적인 궁색을 느끼어본 적이 없었다.
“못 이어가지. 누가 뭐래도 딸은 출가외인이라오!”
그는 가통을 이어가는 거는 어디까지 남자라고 주장하였다. 할아버지의 큰아들인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그자신이 할아버지의 종손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딸은 결혼하면 자식을 낳아 시집의 가통을 이어가고, 아들은 마땅히 아버지를 이어가는 것이니, 할아버지의 묘소 앞에 아버지를 모셨어야하는데, 뜻밖에도 황망한 상주 앞에 누나가 나타나 억지를 써서 화장장으로 직행하였으니, 선산 할아버지 묘소아래에서 아버지의 분묘를 찾을 길이 없다는 허망감이 늘 상념처럼 솟는 것이다.
그는 일이 아주 잘못되었다는 거를 화장이 끝난 뒤 정신을 가다듬으면서 비로소 일깨게 되었다.
딸은 출가하면 시집의 가문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시집가서 가통을 이어갈 자식을 낳고 키워서 가르쳐야하는데, 그렇지 않고서는 시집의 혈통은 누가 이어간단 말인가.
그는 잘못된 일을 굳이 발설하지는 아니하였다. 그런데 장본인인 누나가 자꾸 그 일을 끌어내려는 건 그의 속을 빤히 들여다보고서 생각을 바꾸라는 책망조로 걸어오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이 바뀌기는커녕 갈수록 낭패감만 드는 것이다.
천오백도 이상 고열에 태워서 재가 되어버린 아버지의 백골은 복구가 불능이라는 건 불문가지이었다.
그는 아버지를 그리는 추모의 정보다도, 그 불에 타서 복구가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주검에 대한 망실을 서러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차피 그렇게 된 바에는 한탄만 한다고 되살릴 수 있는 게 아닌지라, 속으로 삭이고 있는데, 누나는 불씨를 자꾸 당기는 것이다.
다만 그때 아버지의 운명을 서러워하면서 몸부림치듯 상황판단을 제대로 못하였다는 자책만 들 뿐이었다.
“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구나! 그러기 답답한 소리만 자꾸 하는 것 아냐?”
“누나, 그만 좀 해둬요. 이제 삼년이 지나, 나는 늦게나마 골호라도, 할아버지 산소아래 어머니 묘소 옆에 모실 겁니다!”
“뭐야? 골호를?”
그녀는 눈을 부릅뜨더니만,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책문하고 있었으나, 여자가 시집을 갔으면 시집 일이나 보살필 일이었다.
그는 더는 대꾸하지 않았다.
한겨울이 지나 설날차례를 지낸 뒤 누나가 말하였다.
“야, 오후에는 ‘영락(永樂)’에 다녀오자!”
“나, 오후 일정 있어요.”
“아버지 뵈러 가는데, 무슨 일정....?”
“....!”
그는 누나의 말을 뒤로하고, 나 홀로 차를 몰아 고향으로 달리어가서 작은아버지를 뵙고 세배를 드린 뒤는 권속들과 함께 선산에 가서 두루 성묘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리고 작은아버지와 마주앉았다.
“작은아버지, 아버지를 할아버지 산소 아래에 모셔야겠습니다.”
그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녀? 시신얼 화장혀서나 납골당이 모셨넌디... 또?”
작은아버지는 마땅히 그렇게 해야 도리라고 말할 줄 알았으나, 한번 화장해서 납골당에 골호로 모시고서, 이제 와서 다시 묘를 짓겠다는 게 가당한 일인지 의문을 사고 있었다.
“작은아버지, 저는 솔직히 그때 경황중이라 자포자기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해를 거듭할수록 아버지의 유체를 아주 잘못 모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가 뉘우치는 말을 쏟아내는 것이다.
“나도 그때 네 입장을 잘 안다. 네가 경황중인데, 일보넌 사람들이 잘못헌거여. 내 말언, 일단 화장헌 골분얼 다시금 땅이다 모셔갖고, 성분(成墳)얼 헐 수가 있는지 모르겄다넌 말이다.”
작은아버지의 말에 그는 그제야 골분을 골호에 담아 일단 납골당에 모신 것을 다시 땅에 모시어 묘를 지을 수 있겠느냐가 의문임을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그걸 누구한테 물어봐야죠?”
“가만있거.”
그가 묻자 작은아버지는 가만있으라면서 속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더니만,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것이다.
“아, 지사어른요? 지가요, 한 가지 궁금헌기 있어서나 전화헌거유. 예, 화장해서 납골당이 모신 골분얼 땅이다가 모셔갖고, 성분헐란디유? 옛? 버리든지? 옛? 물이다 띄우든지, 옛?...”
그는 작은아버지의 통화만 듣더라도, 심장에서 고동소리가 쿵쾅거리면서 가슴이 조여드는 것이다.
작은아버지는 길게 통화하더니, 힘없이 휴대폰을 닫고는 방금 통화한 내용을 털어놓는 것이다.
사람의 백골은 한번 불에 타서 재가 되면, 그 속에 깃들인 혼도 넋도 불에 타서 없어진다. 그것이 바로 끝이라는 것인데, 굳이 돈 들여가며, 다시금 묘를 만들 까닭이 있겠는가. 골분을 납골에 안치하는 일도 허무하고 괴이쩍은 일인데, 사람이 아무리 극한에 처하더라도, 부모님의 뼈만은 온전히 보존해야 도리인 걸 짐승만도 못한 인면수심들이... 기왕지사 불에 태워 재가 되었으면,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물에 띄우든지... 버리든지....
작은아버지는 지사가 한 말을 그대로 옮기고 있었다.
“그 분이 어디 사시죠?”
그는 방금 작은아버지와 통화한 지사라는 분이 어디에 사느냐고 묻는 것이다.
“읍내 사넌디, 찾아가 만날라고? 만나봤자, 무신 뾰족한 소리넌 안 나올 것같은디?”
“작은아버지, 제 차에 타세요!”
그는 서둘러 작은아버지를 차에 태우고, 읍내의 지사 분이 사는 집을 찾아간 것이다.
그 분의 집은 번드르르한 주택가의 한 구석진 데에 낡고 비좁은 고가에서 살고 있었다.
고서들이 어지럽게 쌓여있는 좁다란 방안에서 머리털이 희끗희끗한 반백의 산수(傘壽) 이쪽저쪽으로 보이는 지사와 마주하자, 그는 이내 큰절을 올리고 입을 여는 것이다.
“삼년 전 제 부친께서 돌아가셨는데, 저는 슬픔에 잠겨 정황을 확실히 모르고, 고향 선산의 어머니 묘 옆으로 모시는 걸로 알았으나, 화장은 순전히 타의로 이뤄진 일입니다만, 늦게나마 잘못을 깨닫고, 이제라도 선산에 모시고자 찾아뵙게 되었으니, 제가 선친께 저지른 잘못을 만분지일이라도 되돌릴 수 있는 길을 부디 가르쳐주십시오!”
그는 간곡히 빌면서 잘못을 되돌릴 수 있는 길을 가르쳐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러자 지사라는 분이 고개를 연신 끄덕이면서 입을 여는 것이다.
“듣자하니, 그럴 법도 하군!”
평소에 부모님이 돌아가실 것을 예측하거나, 사후에 어떻게 모시겠다고 작정하거나, 상상하는 건 자식의 도리가 아니다. 그런 것은 부모님이 종명한 뒤에야 생각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일을 당한 자식이 갑자기 경황중인데, 정황이 없어서 의도대로 못하여 비통한 속에서 장사가 낭패로 돌아갈 수가 있다. 어렴풋 선산으로 모시려니 믿었으나, 일보는 사람들이 잘못하여 북망산을 가든지, 화장터로 가든지 마지막 가시는 길을 상주가 대어들어 막을 순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리하여 부친의 장사를 그르치었으니, 그런 일은 효심이 지극한 집안에서 더러 있는 일이니, 무도한 세상이다. 그러나 너무 상심할 것이 없다. 잘못된 일은 처음 생각한대로 지성을 다하여 고치면 되는 것.
지사는 그의 의중을 얼른 알아차리고 말하더니만, 그의 효심에 탄복한 고로 선산에 묘를 지으려는 결연한 말을 들리어주는 것이다.
“내가 숙부와 상의해서 선산을 둘러본 뒤 춘삼월에 날을 잡아 선산에 선친을 모시도록 하겠소!”
“고맙습니다! 아버지의 골분이나마 선산에 모실 수 있게 도와주시기를 신신당부를 드립니다.”
그는 지사의 말에 고개를 조아리면서 부탁하고, 작별인사를 올린 다음 나온 것이다.
춘삼월 따뜻한 봄날이다.
이른 아침 그는 누나에게 전화 한 통화를 해준 뒤 아내와 지수를 차에 태우고, 미리 수속을 마친 ‘영락(永樂)’에 가서 아버지의 골호를 찾아 차에 모시고, 고향 길을 향하여 달리었다.
차창으로 따사로운 봄볕이 내리쬐는데, 양지쪽으로 파릇파릇 풀싹들이 돋아나고, 산과 들녘에 연분홍빛 봄꽃들이 만개하였다.
그는 불에 타버린 씨앗을 상상하고 있었다.
씨앗은 어둡고 조용한 데에 두었다가 화창한 봄날 촉촉한 땅에 뿌리어야 새싹이 튼다는 어릴 적 어른들 말이 귓속에서 맴돌았다.
그런 말들이 나이 들어 퇴직한 뒤에야, 되살아나는 것은 나이만 서부렁섭적 먹었을 뿐, 이제껏 자연의 이치를 까맣게 잊고 부끄럽게 살아왔다는 지난일이 뉘우쳐지는 것이다.
땅속에는 아무것도 없는 듯이 보이지만, 봄볕을 받아서 지열이 오르면서 파란 풀싹들이 돋아나는 풍성함을 보면, 아버지의 골분도 촉촉한 땅에 모시면 저렇듯 파란 싹들이 트리라는 생각이었다. 땅속은 역시나 어둡고 조용한 데이므로, 싱그러운 초록빛 생명체가 돋아날 거라고 믿어지는 것이다.
지사라는 분이 행여나 도술을 부리어서 고열에 타서 재가 된 아버지의 골분에 생기를 불어넣어서 새 생명이 돋아나게 하리라고 믿어지기도 하였다.
그가 큰터골 동네주차장에 아내와 지수를 내리어주고, 선산기슭으로 다시 차를 몰아가자 굴삭기가 선산 잔디밭 어머니 산소 옆에서 묘대를 만드는 게 보이었다.
그는 종이상자에 넣어온 아버지의 골호를 안고, 한창 작업 중인 장지에 오르자, 지사가 알아서 임시로 안치할 데를 정하여주는 데에로 모시어두었다.
그리고 장방형 직사각형으로 파낸 광내를 들이어다보니, 오색이 영롱하고, 지층의 무늬가 공작의 날개처럼 울긋불긋한 아래로 단단한 생기의 지반이 받히었으니, 문외한인 그가 보더라도 상서롭게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깔끔한 바닥이 아늑하기만 한데, 역시나 촉촉한 생기가 감돌고 있었다.
산역일꾼 몇 사람이 삽과 괭이를 들고 광으로 들어서더니, 조금씩 돋고 혀를 내민 데를 괭이로 쪼고 매끈하게 다듬어서 삽질로 부스러기 흙을 떠내자, 마무리작업은 말끔히 끝났는데, 광내에서 후끈 달아오르는 지열이 일어나 옅은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었다.
“요런 땅이넌 고목낭구(고목나무)를 꽂어도 싹이 트겄다야.”
작은아버지가 한마디를 흘리는데, 그때 자기 차를 몰아서 뒤따라 달리어온 누나가 상큼상큼 올라와서는 다가서는 것이다.
그런데 옆에서 일하던 산역일꾼 하나가 누나에게 소리치는 것이다.
“야, 혜련아! 너, 이혼했담서?”
누나가 그에게 시선을 보내더니, 반가운 낯빛으로 되받고 있었다.
“야, 반갑다! 벙(봉)구야. 넌, 홀아비냐?”
“그랴! 이히히.”
“그럼, 잘 됐다! 이따 만내자. 오호호.”
따사로운 햇볕이 듬성듬성 서있는 나뭇가지를 뚫고 내려와서는 그네에게 어릿거리고 있었다.
그때 지사가 다가와서 광 속을 요리조리 살피어보더니, 백골을 모셔오라고 그에게 이르는 것이다.
“하관시간이 되었군! 상주는 백골을 모셔오!”
그는 대뜸 골호가 든 종이상자를 두 손으로 받들어다가 광 앞에 세우고 종이상자를 벗기더니 골호를 꺼내어놓았다.
“백지!”
지사가 외치자, 방금 누나와 말을 주고받던 봉구가 여러 장의 백지가 둘둘 말린 종이마리를 갖다놓는 것이다.
“세 겹장만 펴놓고, 그 위에 골호를 세워놓오!”
지사가 또 이르자, 그는 골호를 펴놓은 백지위에 세워놓았다. 원형의 고동색 사기단지에는 둥글 나부죽한 뚜껑이 덮이어있었다.
“상주는 뾰족한 괭잇날로 골호를 내리찍으오!”
지사의 말에 또 봉구가 재빨리 그의 손에 자루가 긴 괭이를 쥐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머뭇거리고 있었다.
차마 골호를 괭이로 내리찍기가 꺼림하였던 것이다.
“야, 안 돼!”
누나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귀청을 울리면서 그에게로 달리어들더니, 쥐고 있는 괭이를 빼앗으려고 실랑이를 벌이었다.
그러나 그때 봉구가 달려들어 냉큼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어가던 순간 그는 괭이자루를 높이 들어 올리더니만, 골호를 향하여 괭잇날을 내리찍는 것이다.
‘쨍그렁!’
골호의 사기 질이 단번에 박살이 나면서 하얀 골분이 백지위에 쏟아지는 것이다.
누나는 봉구의 손에 이끌리어가다가 골호가 깨어지는 소리에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눈물을 짜내기는 하였으나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는 입을 굳게 다문 채로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 이제 깨진 사기조각은 골라내다버리고, 골분을 흩어지지 않게 백지에 잘 아물려 싸서 광에 모시도록 하오!”
지사의 말에 사촌 육촌들이 달리어들어 백지를 덧대어 싸고 또 싼 골분을 광내에 모시었다. 그리고 그가 먼저 흙을 몇 삽 넣은 뒤에는 사촌 육촌들이 흙을 삽으로 퍼붓고 덮은 뒤에는 굴삭기가 달리어들어 흙을 채우는 것이다.
그는 잠시 혼미하였으나 정신이 들면서 알을 깨고 삐악삐악 소리를 내면서 세상 밖으로 나오는 한 쌍의 병아리를 연상하고 있었다.
봉분이 일어서고 잔디가 입히어지자, 파릇파릇 어엿한 묘봉이 보름달처럼 솟아오른 둥근 모습을 흐뭇한 표정을 지으면서 바라보는 것이다.
할아버지께서 내리어다보는 아래에 어머니의 묘와 더불어 나란히 아버지의 무덤이 지어지자, 마냥 훈훈하고 따뜻하게만 보이었다.
이제는 명절 때마다 아버지의 묘소를 비롯하여 조상님들 산소를 두루두루 성묘할 수도 있고, 작은아버지를 뵙고 사촌 육촌들과 손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는 자부심이 들자, 마음이 한결 뿌듯하여오는 것이다.
몇 발아래 기슬가지 평지에 새하얀 차일이 여럿 펼쳐진 데로 마을사람들이 바글거리는데, 먼빛으로나마 얼핏 눈에 띤 누나와 봉구는 누가 보든지 부부처럼 마주서 싱글벙글 방싯방싯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제야 그는 누나와 봉구가 중학교 동창생임을 되살리었고, 예전 한때는 서로 연애한다는 소문도 퍼지었으니, 따뜻한 봄 아버지를 선산에 모시던 날 잘도 만났다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암튼 그는 아버지의 묘봉이 일어나 일이 끝나자, 성분제를 모시고 술잔을 올린 뒤에는 지사어르신과 작은아버지를 모시고, 차일 밑으로 가서 마주 앉았다.
“지사님, 오늘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그는 지사어른께 술을 따라 올리고, 작은아버지께도 술을 권하였다.
“사람 살아가는 풍습은 골골이 나라마다 다르지만, 어디든 전래되는 미풍양속을 어기면 세상이 어지러워진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들은 우리네 전래전통을 지키려고 힘쓰거든.”
“....!”
그는 지사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화장이란 사고무친한 비구니가 구도하다가 구로승으로 세상을 뜨면 다비로 진신 사리를 부도에 봉안하지만, 후손이 대를 잇는 우리네 속인들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일인지라 삼가고, 시신을 생기가 좋은 땅에 모시어 씨족들이 위안을 받고 숭모하고자 함이오!”
그는 그의 말이 천만 지당한 말씀이라고 믿고 있었다.
방금 누나만 하더라도, 아버지를 모시는 날 선산에 와서야 처녀적의 순진한 낯빛으로 방싯방싯 웃음 짓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 그 웃는 낯이야 아직도 누나의 꽃다운 시절 순박하던 아름다움을 사그리 상실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그런데 작은 집에서 이틀 밤을 묵는 동안 누나는 보이지 않았는데, 삼우제날 봉구와 함께 나타나서 아침을 먹더니만, 아버지 산소에까지 정답게 손을 잡고 동행하는 것이다.
“야, 나, 시집갔다! 너, 앞으로 봉구보고 매형이라 해! 오호호.”
그녀는 작은아버지랑 사촌 육촌들이 다 듣는 데에서 떠들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삼우제를 마치고 점심은 가다가 때우기로 하고 출발하는데, 봉구가 누나의 차에 타는 것이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아내와 지수를 태우고 출발하는데, 누나의 차가 따라오는 거였다.
‘야, 넌, 그때 쓰러졌잖아?’
그 지겨운 화장장의 충격적인 상투어가 이제는 들리지 않을 것도 같다는 희열이 화창한 봄날과 같이 마음조차 홀가분하여지는 것이다.
휴게소에 차를 세웠을 때는 오후 두 시가 지나있었다.
그가 차를 세우고 나와 서자, 누나와 봉구가 벌써 휴게소식당 앞에 나란히 서서 그를 향하여 손을 까불고 있었다.
그는 아내와 지수를 데리고 그리로 향하였다.
“난, 큰터골 가서 봉구랑 살기로 했다!”
누나가 돈가스 고깃점을 호크로 찍어 입으로 가져가면서 불쑥 꺼낸 말이었다.
“....!”
그는 이제 누나가 나이도 차고, 옛 애인을 만나 여생이나마 행복하게 잘 살아가리라는 생각도 들었으나, 그녀의 지난날들을 되살리어보면, 아직도 허울을 날리는 허풍소리만 같이 들리는 것이다.
“이번 올라가 누나의 집 세주고, 살림살이 꾸려갖고 큰터골로 들어가려고 가는 거여!”
봉구도 누나와 한 입 같이 말하였다.
“....!”
그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러나 골분이나마 아버지의 유체를 고향 땅에 모시었다는 희열이 그네에게도 행복한 삶이 기다리고 있으리라고 믿어지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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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성명: 정안길(鄭安吉) 아호: 정산(正山)
*주소: (33168)충남 부여군 부여읍 사비로 19번길 14(동남리24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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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경력-
(등단)
*1963년 월간 소설문예 단편소설 「피」 초천.
*1991년 월간 문예사조 단편소설 「몽유도」 신인문학상 수상
(수상)
*1997년 제16회 일붕문학상 대상(소설부문) 수상
*1998년 제6회 허균문학상(소설부문) 수상
*1998년 제1회 매월당문학상(소설부문) 수상
(대표저서)
*1994년 소설집 『무지개 영혼』 발간.
*1997년 장편소설 『백마강』 발간
*2014년 소설집 『안개꽃지다』 발간
*2017년 장편소설 『因緣(인연)』 제1권 『세상문』 발간
(정안길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