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하나 *
액자에 넣기까지 한걸 보니 가족 사진인가베? 카메라도 있고 가족 행사도 하는 걸 보니 그럭저럭 밥은 묵고 사는가베? 뒷 배경이 트여있는 걸 보니 어디 높은 곳인가베? 사람들이 대부분 반팔 옷을 입었으니 여름 어름인가베?
인물평을 해보까?(좌에서 우로)
청바지와 붉은 상의, 파마머리를 한 아가씨. 한창때네. 그때 그 청춘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줄 알았스까? 사람들 중에 제일 바깥에 자리한 걸 보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회집단 안에서 중심자리를 양보하고 희생하는 마음이 배어 있는 듯. 기타를 왼손으로 잡고 있으니 책임감도 강한 처자인 듯.
왼쪽에서 두 번째, 불쑥 솟은 여자. 아무도 안 쓴 가리방까지 쓴걸 보면 꽤나 태양빛을 의식하고 뽄을 지기는 듯. 인물도(전체 몸매는 가려져 알 수 없으나) 세상 여자 열 명 줄 세우면 두세 번 째 들 듯.
검은 상의의 앞쪽 어린 아가씨. 인물이 가히 서양 영화 아역 배우 급! 눈빛도 포즈도 한 나라를 좌지우지할 듯.
네 번째 여자. 이 여자도 인물이 상당해. 이 집안 출신 배우나 모델이 없다면 섭섭할 거 가태. 다른 특징은 모르겠고 카메라 셔트가 터지는 순간을 의식한 자못 어색한 미소를 보면, 이 여인은 사회성이 강하여 자신보다는 주위의 사람, 상황에 순응하려 하므로 얼마간 자신의 희생도 마다하지 않을 듯.
앞자리 흰 모자를 쓴 남자. 사진 중앙에 위치한 걸로 보아 이 가족, 이 모임의 중심인 듯. 표정은 청정무구하나 현실 감각이 부족하여 아내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 고생을 많이 시킬 사주. 말년운은 괜찮을 듯.
그 뒤편 아이를 안은 연장자. 가족의 최고령 호주이면서 사진 촬영 순간도 손주를 안고 있으니 책임감이 강하다 해야 하나, 젊은 것들 방기를 나무라야 하나.
앞줄 흰 모자, 무늬 놓인 상의 아가씨. 와우! 이분의 인물도 비까번쩍! 동양형 미인. ‘헤어질 결심’의 탕웨이 미모는 저리 가라네. 단지 자기 모습이 뒤편의 연장자를 일부 가린 걸 보면, 한 세대가 물러가고 새 세대가 등장한다는 천리의 우연한 상징인 듯. (물론 이 아가씨도 어느 날엔가는 뒷줄에 서게 될 것)
다음, 푸른 임산부 옷을 입은 여인. 표정이 또랑또랑하고 영민하여 장차 여성가족부 장관 자리 하나쯤은 꿰어 찰 듯. 다만 남자운은.....
젤 오른쪽 여인. 연배로 보아 가족의 어머니인 듯. 이 분의 인물이 자녀들에게 내림이 된 듯. 온화한 미소, 가장자리 위치, 양산을 쥔 손 등등 (페미니스트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현모양처의 전형.
우연히 방문한 어느 가정의 벽에서 본 이 사진 액자에 대한 소감. (내가 종종 하는 얘기지만) 부모가 물려줄 유산이 없는 집안이기에 진정으로 화기애애한 가족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보기 드문 진경(眞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