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의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은 염혜선(왼쪽 아래) 등 드래프트 지명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념 촬영을 했다. [사진] 김동하
10월 20일 서울 리베라 호텔 3층 몽블랑홀에서 열린 2008 여자 프로배구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대어급 선수가 눈에 띄지 않았다.
한국배구연맹(KOVO)이 10월 17일 발표한 고교 졸업 예정 선수 명단에는 지난해 드래프트 때처럼 일찌감치 전체 1순위 후보로 꼽힌 배유나(19, 181cm, GS칼텍스)와 하준임(19, 189cm, 한국도로공사), 양효진(19, 190cm, 현대건설) 등 이름값이 있는 선수들이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국가대표팀에 뽑힌 경력이 있는 세터 염혜선(17,178cm,목포여상)과 청소년대표 출신 세터 시은미(18,177cm,중앙여고) 그리고 국내 최장신 센터 김지애(192cm,목포여상) 등은 1라운드에서 뽑힐 가능성이 높은 선수로 분류됐다.
세터 보강 성공한 현대건설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 준우승팀 흥국생명과 우승팀 GS칼텍스는 추첨 결과에 상관없이 각각 1라운드 4, 5순위 지명권을 가졌다.
지명권 추첨에 앞서 현대건설, 한국도로공사, KT&G 관계자들이 탁구공의 색깔을 골랐다. 현대건설이 노란색, 한국도로공사가 파란색, KT&G가 주황색이었다.
KOVO 이춘표 경기이사가 추첨기를 돌리자 노란색 탁구공이 먼저 나왔다. 이어 한국도로공사, KT&G 순으로 지명 순위가 결정됐다.
현대건설 홍성진(45) 감독은 지명 순서가 되자 망설이지 않고 염혜선의 이름을 불렀다.
염혜선은 지난해 11월 도쿄에서 열린 월드컵대회에 출전한 국가대표팀에 뽑힌 경력이 있다. 당시 수원 한일전산여고 3학년이던 배유나와 함께 고교생으로 태극 마크를 달았다.
당시 대표팀을 맡았던 이정철(48) 감독은 “김사니(28, 182cm, KT&G)와 이숙자(28, 175cm, GS 칼텍스)로 세터진을 꾸리는 게 정상이었지만 (이)숙자가 다치는 바람에 그 자리를 다른 선수로 메워야 했다”고 말했다.
대한배구협회 강화위원회는 제2의 세터로 염혜선을 추천했다. 이감독은 “(염)혜선이는 키가 큰 편은 아니지만 배구 센스가 무척 좋다. 손이 작은 게 단점이지만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풍부한 선수”라고 평가했다.
세터는 손이 클수록 유리하다. 토스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감독은 “유럽, 남미 선수들의 토스가 빠르게 올라가는 이유는 세터들의 손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대건설은 그동안 약점으로 꼽혔던 세터 보강에 성공했다, 현대건설은 2005년 은퇴한 강혜미(34)와 지난해 자유계약선수(FA)로 풀려 팀을 떠난 이숙자 이후 세터 영입이 우선 과제였다.
현대건설은 2007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일전산여고 졸업반인 세터 김재영(20, 178cm)을 1라운드 3순위로 지명했고 FA 보상 선수로 세터 한수지(19,182cm)를 GS 칼텍스에서 데려왔으나 강혜미, 이숙자의 빈자리를 메우기엔 조금 모자랐다.
염혜진, 황민경, 김은영, 김지애, 나현정(왼쪽부터) 등 1라운드 지명 선수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김동하
매트 대신 코트를 선택한 염혜선
염혜선은 드래프트가 끝난 뒤 “1순위 지명은 생각하지 못했다. 현대건설 유니폼을 입고 싶었는데 바람대로 이뤄졌다. 주전으로 뛰고 싶다”고 말했다.
염혜선은 부모의 권유로 어렸을 때 유도를 했다. 그러나 매트 위에 넘어지는 게 싫어 유도를 포기하고 목포 하당초등학교 4학년 때 배구공을 잡았다.
지난 3월 춘계남녀중고배구연맹전과 6월 제42회 대통령배전국남녀중고배구대회에서 목포여상을 우승으로 이끈 염혜선은 세터상(연맹전)과 최우수선수상(대통령배)을 받았다.
홍감독은 “(염)혜선이게 출전 기회가 많이 돌아갈 것이다.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염혜선은 자신의 본보기로 김사니를 꼽았다.
염혜선은 “지난해 대표팀에 뽑힌 뒤 한 달 동안 같이 연습을 했는데 그때 (김)사니 언니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언니의 장점을 본받겠다”고 말했다.
황민경(178cm, 세화여고)은 전체 2순위로 한국도로공사의 지명을 받았다. 황민경은 “솔직히 1라운드 지명은 기대하지 않았다. 2라운드 후반 정도에 뽑힐 줄 알았는데 조금 놀랐다”고 2순위 지명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황민경은 5월에 열린 2008 한국중고배구연맹회장기대회에서 소속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최우수선수로 뽑혀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3순위 지명권을 가진 KT&G는 예상과 다른 선택을 했다. 박삼용(40) 감독은 센터 김지애를 뽑을 것으로 보였으나 김은영(18, 180cm, 대구여고)을 지명했다.
KT&G가 뜻밖의 지명을 하는 바람에 흥국생명 황현주(42) 감독은 고민에 빠졌다. 흥국생명은 KT&G가 김지애를 지명할 것으로 보고 세터 시은미(18,177cm,중앙여고)를 1라운드 지명 선수로 점찍어 놓고 있었다.
흥국생명은 이효희(28, 173cm)의 뒤를 받칠 세터가 필요했지만 192cm의 센터가 더 끌렸다. 김지애의 합류로 전민정(23, 180cm), 태솔(22, 180cm), 김혜진(19, 180cm)으로 구성된 기존 센터진의 높이가 보강됐다.
김지애는 배구선수로 뛴 지 4년이 안 된다. 높이뛰기 선수였던 김지애는 평택 오혜중학교 3학년 때 배구를 시작했다. 구력은 다른 선수들보다 짧지만 뛰어난 신체 조건이 장점이다.
김지애는 “운동을 열심히 해 정대영(27,183cm,GS 칼텍스) 선배 같은 뛰어난 센터가 되는 목표”라고 말했다.
중앙여고 ‘듀오’, 프로까지 동행GS칼텍스는 남지연(25, 170cm)과 최유리(23, 173cm)가 번갈아 뛰고 있는 리베로 자리를 강화하기로 하고 나현정(18,165cm,중앙여고)을 1라운드 5순위로 뽑았다.
염혜선과 함께 고교 코트에서 최고 세터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시은미(18, 177cm, 중앙여고)는 2라운드 1순위로 GS칼텍스 유니폼을 입었다.
시은미는 “(나)현정이와 같은 팀에 뽑혀 정말 기쁘다. 프로에서도 같은 팀에서 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소감을 밝혔다. 시은미와 나현정은 서울 추계초등학교 - 중앙여중 - 중앙여고를 거치면서 계속 손발을 맞췄다.
추계초등학교 때부터 단 한번의 포지션 변경 없이 리베로로 뛴 나현정은 “리시브 연습을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희비 교차한 드래프트
이번 드래프트는 2009년 2월 고교 졸업 예정 선수 34명이 대상자였다. 이들 가운데 드래프트 전날까지 21명의 참가가 확정됐다.
유희나(18, 174cm, 한일전산여고)는 드래프트 당일 KOVO 사무국에 불참을 통보했다. 유희나는 프로팀 대신 홍익대 진학을 선택했다.
드래프트 행사장에 나온 20명의 선수 가운데 수련선수까지 합쳐 13명이 프로 유니폼을 입게 됐다.
프로행이 결정된 선수들은 구단 모자를 쓰고 꽃다발을 안고 기쁜 표정을 지었지만 대기석에 앉아 있던 나머지 선수들의 얼굴빛은 어두웠다.
1라운드 지명이 끝날 때까지만 해도 선수들은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2라운드 5순위 지명권을 가진 현대건설이 지명권을 포기하자 선수들은 마른 침을 삼켰다.
그때까지 떨어져 앉아있던 선수들은 자리를 옮겨 함께 앉았다. 서로 손을 맞잡고 자신과 동료들의 이름이 불리길 고대했다.
그러나 3라운드 들어 각 팀의 지명권 포기가 이어지자 선수들은 눈을 감거나 고개를 숙였다. 흥국생명이 4라운드에서 유일하게 김미연(17,175cm)을 지명하자 박수가 나왔다. 그러나 이어진 수련선수 지명에서 한 명만 뽑혔고 드래프트는 끝났다.
대기석에 남아 있던 한 선수는 “아쉽지만 대학 진학을 알아 봐야겠다”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지명된 선수들이 한 자리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는 장면을 바라보는 그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또 다른 선수는 끝까지 울음을 참았지만 드래프트 결과가 궁금한 부모의 전화를 받은 뒤 고개를 숙이고 흐느꼈다.
그 선수는 “집에 돌아가 진로 문제를 잘 생각해 봐야겠다. 10년 동안 해 온 배구를 그만둬야 한다니”라며 한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수련선수로 입단할 길은 아직 열려 있다. 그러나 최근 경제사정이 좋지 못해 각 팀은 선수단 운영비를 줄이고 있다. 미지명 선수들이 선수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몇 안 되는 실업팀에 입단하거나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
류한준 기자 [SPORTS2.0 제 127호(발행일 10월 27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