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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양 스크랩 두목(杜牧) / 심경호 .중국 고전명시 감상 ③
심메마니 추천 0 조회 202 15.07.25 12:1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중국 고전명시 감상 ③ 두목(杜牧) / 심경호

 

서리 맞은 단풍의 찬란한 빛깔을 응시하는 애상의 시선

 

 

 

1.

 

《열녀춘향수절가》에 보면 이도령이 광한루로 놀러 가는 부분에 이런 구절이 있다.

 

잇? 사또(使道) 자졔(子弟) 이도령(李道令)이 연광(年光)은 이팔(二八)이요, 풍?(風采)는 두목지(杜牧之)라.

도량(度量)은 창?(滄海) 갓고 지혜(智慧) 활달(豁達)?고 문장(文章)은 이?(李白)이요, 필법(筆法)은 왕희지(王羲之)라.

일일(一日)은 방자(房子) 불너 말삼하되,

<이 골 경쳐(景處) 어??냐. 시흥 츈흥(詩興春興)도도(滔滔)하니 졀승경쳐(絶勝景處) 말하여라.>(춘향가 9)

 

이도령의 연광, 풍채, 도량, 지혜, 문장, 필법을 말한 부분인데, 풍채를 설명하면서 외모를 묘사하지 않고 “풍채는 두목지라”라고 했다. 한 인물의 여러 특성을 제시할 때 묘사보다는 과거 인물의 전형을 통해서 그 특성을 암시하는 것은 우리 고전문학의 한 특징이다. 아무래도 중국 고전 문학의 영향이 강한 한문학이 오랫동안 중핵을 이루어 온 탓에, 민중의 언어예술이라고 할 판소리계 소설에서도 묘사가 취약해진 듯하다.

물론, 상투적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그 인물을 요약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풍채는 두목지라”라고 한 그 두목지는 누구인가?

그는 당나라 말기의 시인 두목(杜牧, 803~852)으로, 자(字, 성인식을 치른 뒤의 이름)가 목지(牧之)이다.

호는 번천(樊川)으로, 《통전(通典)》의 저자인 두우(杜佑)의 손자이다.

만당(晩唐) 시기의 문단에서 이상은(李商隱)과 더불어 이두(李杜)로 불리었으며, 또 작풍이 두보(杜甫)와 비슷하여 소두(小杜)라고도 했다.

 

두목은 시인으로서보다는 풍류남아로서 더 이름이 났다. 그는 세사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았으며 탐미주의의 취향을 따랐다. 특히 그는 관옥(冠玉) 같은 용모에 당당한 풍채로 수많은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낙양의 자사로 재직할 당시에 술에 취해 마차를 타고 거리를 지날 때 기생들이 귤을 던져 마차를 가득 채웠다는 고사가 있을 정도이다. 그 고사를 ‘귤만거(橘滿車)’라고 한다.

 

김만중의 《구운몽》에도 “나이는 십육 세요, 회남 땅 사람이오. 그 풍채는 두목지요, 그 재주는 조자건(曹子健)이니……” 하는 부분이 있고, 서사무가인 《성조풀이》에도 “얼골은 관옥갓고, 풍채는 두목지라……” 하는 대목이 나올 정도로, 두목의 풍채는 우리 고전에 널리 언급되어 왔다.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談)》 〈문예(文藝)〉 편에 보면, 이후백(李後白, 1520~1578)이 남원 기생 말진(末眞)을 그리워하면서 지었다는 시가 한 수 전한다.

이후백은 호남의 어사(御使)가 되어 남원부에 가서 말진의 수청을 받았는데, 그를 석별하고 곡성(谷城)에 이르렀을 때 비 때문에 사흘을 체류하면서 그를 그리워하여 다음의 칠언율시를 지었다고 한다.

 

 

御使風流杜牧之 어사의 풍류는 두목지라

靑樓昨過帶方時 남원을 지날 때 청루에 들렀지.

春心至老消難盡 춘심은 나이 들어도 다하지 않아

翠袖侵晨淚欲滋 새벽녘까지 푸른 소매 눈물로 적셨네

江水無情移畵舫 강물은 무정하여 채색 배를 띄워

角聲如怨送征旗 뿔피리 소리 애처롭게 사신 깃발을 전송하더니

浴川三日留人雨 욕천(곡성)의 사흘 비가 사람을 머무르게 한다만

堪笑天公見事遲 뒤늦게 일 부리는 조화옹이 우습구나

 

 

이 시에 따르면, 이후백은 남원부에서 청루 곧 기생집에 들른 일이 있는데, 그 풍류는 두목과도 같았다고 했다. 기생과 하룻밤을 보내고서는 정이 깊어졌거늘 군왕의 명을 받아 지역을 시찰하는 사신으로서의 일정을 늦출 수가 없어 배를 띄워 떠나야 했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 채색한 화려한 배를 타고 가지만 그 배의 화려함이 오히려 마음속의 쓸쓸함을 증폭시킬 정도였다. 그런데 욕천 곧 곡성에 이르러 사흘이나 비가 내려 체류하게 되자, 조화옹이 어째서 남원에서 이런 비를 내려주지 않았는지 야속하기만 하다고 한 것이다.

 

실은 이 시는 과연 이후백이 지은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오히려 다른 작자가 이후백의 일을 조금 해학적으로 서술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시의 작자도 ‘어사’가 풍류남아임을 말하기 위해 “어사의 풍류는 두목지라”라고 했으니, 두목이 풍류남아의 대명사로 불린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저 명문 가정에서 태어난 여성 문인인 허난설헌(1563~1589)도 두목을 흠모했다는 누명을 입었다. 허난설헌은 이름이 초희(楚姬)이고 호가 난설헌(蘭雪軒)인데, 자(字)가 경번(景樊)이었다고 한다. 난설헌은 시대의 제약과 개인의 불행을 딛고 환상에 가까운 상상을 시로 표현하여 독특한 작품 세계를 이루었다.

난설헌이 죽은 다음 해에 동생 허균(許筠)이 누이의 흩어진 원고를 모아 시집을 엮어, 1606년에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에게 주어 그것이 중국에서 간행되었다. 1711년에는 일본의 분다이야 지로(文台屋次郞)가 그 시집을 출판했다.

 

난설헌의 부군은 안동 김씨 가문의 김성립이다. 김성립은 1589년 곧 조선 선조 22년에 생원의 자격으로 문과 시험에 응시해서 3등급으로 급제하는데, 난설헌은 그해에 스물일곱 나이로 요절했다. 남매를 낳았으나 모두 난설헌보다 먼저 세상을 떴다. 난설헌은 공부를 많이 한 여성이었기 때문에 시댁에서 배척을 당했던 듯하다.

허균은 “돌아가신 나의 누님은 어질고 문장이 있었으나 그 시어머니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또 두 아이를 잃었으므로 한을 품고 돌아가셨다. 언제나 누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 주체할 길이 없었다.”라거나 “오호라! 살아 있을 때에는 부부의 사이가 좋지 않더니 죽어서도 제사 받들 아들 하나도 없이 되었구나. 아름다운 구슬이 깨어졌으니 그 슬픔이 어찌 끝나리?” 하는 기록을 남겼다.

 

그런데 난설헌은 죽어서도 구설을 피하지 못했다.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난설헌의 자 ‘경번’의 ‘번(樊)’이 두목의 호 번천(樊川)에서 왔다고 보았다. 김성립의 얼굴이 못생겼으므로, 그 벗들이 그에게 아내 난설헌이 번천을 사모한다고 조롱했다는 전설이 있었다. 박지원은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여성이 시를 읊는다는 것은 본시 아름답지 못한 일이거늘, 더욱이 번천을 연모한다는 뜻의 경번이란 이름이 흘러 전하게 되었으니 어찌 원통하지 않은가?”라고 했다. 박지원은 진보적인 인물이었으나 여성들이 시를 읊는 것을 별로 아름답지 않다고 보았다. 난설헌이 살아 있을 당시에는 더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악시가들 가운데는 종래의 시구를 그대로 사용하는 예도 많다.

잡가 〈양산도(楊山道)〉도 그 한 예인데, 거기에 두목의 시구가 하나 들어 있다.

 

 

엘화 놓아라 못 놓겠구나

능지(陵遲)를 하여도 못 놓겠구나

에헤이에

차문주가하처재(借問酒家何處在)요

목동이 요지 살구나무촌이라

 

엘화 놓아라 못 놓겠구나

능지를 하여도 못 놓겠구나

창포 밭에 금잉어 논다

금실금실 생선국이로다

 

엘화 놓아라 못 놓겠구나

능지를 하여도 못 놓겠구나

당명황(唐明皇)의 양귀비(楊貴妃)라도

죽어지면 허사로구나

 

(이하 줄임)

 

 

〈양산도〉는 한시의 구절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청춘의 시절이 속히 지나감을 서글퍼하는 감정과 지금 이 시각을 즐기자는 정서를 드러내었다.

 

 

 

 

 

 

?明 / 杜牧

 

?明時節雨紛紛,

路上行人欲斷魂。

借問酒家何處有,

牧童遙指杏花村。

 

이 노래에 나오는 “차문주가하처재(借問酒家何處在)”는 두목(杜牧)의 〈청명(淸明)〉에 나오는 구이다. ‘술집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라는 뜻이다. 그 아래 “목동이 요지 살구나무촌이라”도 〈청명〉에 나오는 “목동요지행화촌(牧童遙指杏花村)”을 적절히 풀어 말한 것이다. ‘목동이 손을 들어 살구꽃 핀 마을을 가리키네’라는 뜻이다.

 

두목은 화려한 시어를 구사하고 순수한 미의 세계를 사랑했다. 이를테면 남조 제나라 때 전당(錢塘)의 명기였던 소소소(蘇小小)를 소재로 한 〈비오왕성(悲吳王城)〉에서 “오왕의 궁전에는 버들이 푸른빛을 머금었고 소소의 집에는 꽃이 한창 피었어라(吳王宮殿柳含翠, 蘇小宅房花正開)”라고 했다.

백거이(白居易)가 〈화춘심(和春深)〉에서, “전당의 소소소는, 사람들이 가장 교태롭다고 하네(錢塘蘇小小 人道最夭斜)”라 한 것을 잇고, 원나라 진기(陳基)가 〈화옥산운(和玉山韻)〉에서 “서자호 가 소소의 집, 금관성 안 설도의 집(西子湖邊蘇小宅, 錦官城裏薛濤家)”이라 한 시풍을 연 것이다.

* 杭州蘇小小,人道最夭斜。

 

2.

 

당나라 말기의 시는 국가정세(國情)의 쇠퇴를 반영하여 섬세하고 화려함을 추구한 경향이 있다. 이두(李杜)라고 하여 두목과 병칭되는 이상은의 시는 그 경향을 대표한다. 이상은이 칠언율시의 〈무제〉에서 가장 그 특색을 드러내었듯이, 두목도 어느 시기에는 수많은 염시(艶詩)를 지었던 듯하다. 그 점에서는 원화체(元和體)와도 연결된다.

 

 

 

 

서른세 살 때 지었다는 〈견회(遣懷)〉라는 시에서 두목은 이렇게 노래했다. 

 

落魄江南載酒行 강남에 낙탁하여 술을 싣고 돌아다니니

楚腰腸斷掌中輕 초궁 미녀처럼 손바닥에라도 오를 가는 허리 여인들이 애간장을 끊네

十年一覺揚州夢 십 년에 한 번 양주의 꿈을 깨고 보니

得靑樓薄倖名 청루 박행의 이름을 충분히 얻었구나 : ?

 

당나라 때는 ‘양일익이(揚一益二)’라는 속담이 있었다. 천하에서 번화한 도시로는 양주가 첫 번째, 그다음이 촉 땅의 익주라는 말이다. 청루는 기녀의 집을 말한다. 두목이 강남의 양주에서 방탕하게 환락을 즐기다가 문득 지난날을 돌아보니 남아 있는 것은 기루의 탕아라는 이름밖에 없었다고 했다. 청루를 드나들며 풍류를 즐기던 과거를 조금은 후회한 것일까.

 

우업(于?)이란 사람이 지은 〈양주몽기(揚州夢記)〉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두목이 우승유(牛僧孺)가 다스리는 양주의 막하에 서기로 있었을 때, 근무 시간 이외에는 술잔치에 달려가고는 했다. 양주에서는 매일 저녁 창루에 벽사등(碧紗燈)을 걸어 공중에 등화의 대열이 이루어지고는 하여, 9리 30보의 거리가 진주처럼 장식되어 선경을 이루었다. 두목은 매일 밤 기루를 돌아다녔는데, 우승유의 명으로 수졸 30여 명이 변장하여 그 뒤를 몰래 호위하였다.

 

몇 년 뒤 두목이 중앙으로 불려 올라가 시어사(侍御史)가 되었을 때, 우승유는 송별의 잔치를 열어 “시어사는 기개가 활달하여 어느 곳에 가더라도 평탄한 길을 걷는 듯이 성공할 것이다.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풍류에 탐닉하여 절도를 잃어 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하는 점이오.”라고 했다.

두목은 우승유가 자신의 그간 행적을 모르는 줄 알고, “저는 늘 자신을 검속하여 조심했기 때문에 심려를 끼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우승유는 웃으면서 비서에게 문서 상자를 가져오게 했는데, 그 속에는 그간 수졸들이 올린 밀서 수천 장이 들어 있어, 아무 날 저녁에 두 서기가 아무 집에 있었는데 무사했다든가 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두목은 한편 부끄러워하고 한편 고마워했다고 한다. 그리고 우승유가 죽은 뒤 묘지명을 작성하면서 우승유의 선행을 극도로 칭송해서 그 은혜에 보답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소설풍이어서 사실이 아니겠지만, 두목의 풍류를 반영한 면에서 어느 정도 사실성을 지니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두목은 우승유에게 좌단(左袒)한 까닭에 일생 반대파의 반감을 사서 관직 생활이 평탄하지 않았다.

 

 

阿房宮

 

杜牧:《阿房宮賦》

 

 

두목은 반드시 유미주의에 경도된 것은 아니다. 그는 당나라 앞 시기의 전통을 이어, 내용에 중점을 두고 함축성이 풍부한 서정시를 많이 남겼다. 또한 스물세 살 무렵에는 〈아방궁부(阿房宮賦)〉를 지어, 진시황제의 고사에 가탁하여 경종 황제가 화려한 궁전을 짓고 수많은 미녀를 후궁에 두었던 일을 풍자했다. 그리고 고문을 잘 지었고, 병법서인 《손자(孫子)》 13편의 주석을 하기도 했다.

 

두목은 죽기 전해에 원고의 대부분을 스스로 태워 없앴으나, 그의 죽음 뒤에 《번천문집(樊川文集)》 20권이 편찬되었다. 별도로 풍집오(馮集梧)란 사람이 시집 《번천시집(樊川詩集)》을 엮었다. 시는 대략 528수가 남아 있다.

 

《번천문집》에는 그의 문학이론이 잘 드러나 있는데, 그는 문장이란 ‘의(意)’를 위주로 삼아야 한다고 보았다. 사상과 내용이 절대적 지위를 갖는다고 강조하면서, 형식이란 내용의 지휘와 구속을 받는 것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것은 고문 운동의 중심이 된 한유와 유종원의 ‘문이재도(文以載道)’라든가‘문이명도(文以明道)’의 관점과 일치된다. 두목은 형식주의 시풍에 반대하여 문사(文辭)의 미와 내용을 동시에 중시한 것이다. 그렇지만 창작 과정에서 당시의 유미주의 시풍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고, 개인의 불행에서 비롯된 애상적 정조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두목은 율시와 절구에 뛰어났다. 두목의 절구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은 〈강남춘(江南春)〉이다.

시집에는 〈강남춘절구(江南春絶句)〉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이 시는 커다란 공간, 장대한 거리감을 함축하여, 망막(茫漠)한 천지의 적요감(寂寥感)을 환기시키고 있다.

 

 

 

 

江南春

 

千里鶯啼綠映紅 천 리에 꾀꼬리 울고 홍록이 어우러질 때

水村山郭酒旗風 강마을 산마을 술집 깃발 펄렁이네

南朝四百八十寺 남조의 사백팔십 절

多少樓臺烟雨中 여러 누대들이 안개비 속에 아련하다

 

 

양쯔강(楊子江) 연안은 연월풍류(烟月風流)라고 하여 절경으로 유명하다. 또 남북조 시대 때 남조의 화려한 문물들이 남아 있기도 하다. 두목은 양쯔강의 강마을에 지나간 남조 시대의 흔적인 사찰의 누대들이 안개비 속에 아련한 모습을 묘사했다. 남조의 옛 절이 과연 480여 개였는지에 대해서는 이설이 많다. 하지만 이 숫자는 지난날의 영화를 회상하는 의미이지, 구체적인 숫자로서의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리라.

 

또한 이 시에 대해서는 단순히 봄날의 절경을 그림과 같이 묘사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천 리라는 커다란 공간을 설정하고 아득한 역사의 시간을 불러와, 인간 개인의 모습을 그것과 대비시켰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안개비 속에 서 있는 사찰의 화려하고 장대한 누대들은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애수를 자아내는 것이다.

 

선주(宣州)라는 곳에서 지은 다음 시는 두목의 칠언율시 가운데 최고작으로 꼽힌다.

제목은 〈선주 개원사의 수각(물가 누각)에 쓰다. 수각 아래 완계에 시내를 끼고 고인들이 살고 있다(題宣州開元寺水閣, 閣下宛溪夾溪人)〉이다.

선주의 관청 동쪽에 동계가 있어, 그것을 완계라고도 했다. 그 시내의 곁에 사찰의 누각이 있었고, 그 아래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듯하다.

* : 居

 

 

六朝文物草連空 육조의 문물은 하늘까지 이어진 초원으로 변하고

雲閑今古同 하늘 담담하고 구름 한가함은 옛날 그대로이네  : 淡

鳥去鳥來山色裏 새는 가고 새는 오누나 푸른 산 빛 속에

人歌人哭水聲中 사람은 울고 사람은 흐느끼누나 물소리 속에

深秋簾幕千家雨 깊은 가을 발을 내린 집들에는 빗발이 빗기고

落日樓臺一笛風 낙조 아래 누대에선 피리 소리가 바람 따라 날아온다

??無因見? 위대한 범여의 자취는 슬프게도 만날 길 없고 : 範

參差煙樹五湖東 안개 속 나무들이 오호 동쪽에 늘어선 모습을 바라볼 뿐

 

 

육조의 화려하던 문물은 풀덤불로 바뀌고 하늘은 이전처럼 담담하다. 그 속에서 새는 산의 푸른 빛을 띠고 무심하게 오가고, 시냇가에 사는 사람은 물소리에 맞춰 애상의 노래를 부른다. 가을이 깊어지고 물가 집들은 비를 막으려고 발을 내린 채인데, 누대에서는 저물녘에 피리 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온다. 춘추시대 월나라 영웅 범여는 오나라를 정복하는 공을 세운 후 오호에 떠서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고 하니, 이제 그 영웅을 만날 길도 없고, 그저 오호 동쪽에 안개 낀 나무들이 늘어서 있는 것을 바라볼 뿐이다.

 

범여는 오나라 멸망 뒤에 대장군에 봉해졌지만 “구천(句踐)의 사람됨이 환난은 같이할 수 있어도 평화스러운 시기를 같이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고, 배를 타고 동정호(洞庭湖) 혹은 오호로 사라졌다.

범여는 월나라를 떠나면서 대부 문종(文種)에게 서신을 보내어 “날 새가 다하면 좋은 활은 갈무리되고, 잽싼 토끼들이 죽으면 사냥개는 삶아진다”고 하고, 월왕 구천은 목이 길고 새부리 같은 형모라서 환난을 같이할 위인이 못 된다고 하였다.

 

두목은 공성신퇴(功成身退)의 위인을 닮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처지를 서글퍼한 것이다. 이 시에서 다음 구절은 너무도 절묘하다.

 

鳥去鳥來山色裏 새는 가고 새는 오누나 푸른 산 빛 속에

人歌人哭水聲中 사람은 울고 사람은 흐느끼누나 물소리 속에

 

여기의 새를 신선의 사자인 파랑새, 물가에서 우는 사람을 《습유기》라는 옛 책에 나오는 음천(淫泉)의 사람이라고 해설할 필요는 없다. 인간의 역사에 아무 느낌을 갖지 않고 자연과 어우러져 사는 새와, 역사와 삶의 변화에 민감하여 애상에 젖는 인간을 대비시킨 것으로 보면 좋을 듯하다.

 

 

 

 

한편 오언율시 〈조행(早行)〉은 길 떠나는 이의 고독과 애수의 심경을 절묘하게 그려 보였다.

 

垂鞭信馬行 채찍 드리우고 말 가는 대로 내맡겨

數里未鷄鳴 서너 리를 가도록 닭 울음이 없구나

林下帶殘夢 숲 아래서 남은 꿈을 띠고 졸다가

葉飛時忽驚 잎이 날아올라 홀연 놀라라

霜凝孤鶴? 서리 엉긴 때 외론 학은 멀리 날아가고

月曉遠山橫 달 지는 새벽에 먼 산이 옆으로 비껴 있다

?僕休辭險 아이야 길 험하다고 말하지 말거라

時平路複平 시절 태평하고 길도 평탄하지 않느냐

 

길 가는 이는 애써 시절이 태평하고 길도 평탄하다고 위로하지만, 여정은 고달프고 외롭기 짝이 없다. 누가 여행을 소요(逍遙)라고 말하랴. 수심 가득한 창자를 묻을 곳이 없어 떠도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시의 전반부는 일본의 바쇼(芭蕉)가 자신의 하이쿠(俳句)에 응용하기도 했다.

 

두목의 칠언절구 〈제안의 안성루에 적다(題齊安城樓)〉도 길 가는 이의 고독감을 절묘하게 드러냈다.

제안(齊安)은 지금의 후베이(湖北) 성 황강현(黃岡縣)인 황주(黃州)를 말한다. 두목은 842년부터 삼 년간 황주의 자사였다. 41세 전후의 작품이라고 한다.

 

鳴軋江樓角一聲 흐느끼는 듯한 강 다락의 뿔피리 소리

微陽??落寒汀 희미한 태양은 여울 비춰 찬 모래톱에 지고

不用憑苦回首 난간에 기대어 고개를 돌릴 것도 없어라 : ?

故鄕七十五長亭 고향까지는 일흔다섯의 역참

*鳴軋 : 嗚咽 .

 

명알(鳴軋)은 ‘오열(嗚咽)’로 되어 있는 텍스트도 있다. 흐느끼는 듯한 소리를 형용한 쌍성의 복합어이다.

각(角)은 군대에서 사용하는 뿔피리이다. 염렴( ??)은 물이 흔들려 움직이는 모습을 형용한다. 정(汀)은 물가의 평지나 강 가운데의 사주(沙洲)를 가리킨다. 칠십오장정(七十五長亭)에서 ‘정(亭)’은 길의 숙박소마다 있는 휴게소로, 30리(1리는 대략 0.5km)마다 하나씩 있었다. 황주에서 장안까지는 225리였다고 하므로, 실제로 75역이 있었을 것이다. 이 시에서의 고향은 장안을 가리킨다.

*명알(鳴軋) : 嗚軋(오알) 뿔피리소리를 형용한것.(形容吹角聲)

 

강기슭의 누대 위에서 흐느끼는 듯 뿔피리 소리가 울려 날 때, 겨울의 희미한 태양은 여울이 이는 강가 모래밭에 아래로 뉘엿뉘엿 져 간다. 누대 난간에 기대어 그 광경을 바라보는 것은 바라보는 것은 무료한 일이리라. 고향 장안은 여기서부터 역참을 75개나 거쳐야 하는 저쪽이 아닌가.

 

두목은 반드시 유미주의로만 나아간 것이 아니다. 씩씩한 기상과 우국적인 주제도 간과할 수가 없다. 하지만 역사를 회상하는 그의 마음은 우수로 가득하다. 적벽대전을 소재로 지은 시 〈적벽(赤壁)〉에도 역사를 조감하는 드넓은 시야를 느낄 수 있다.

 

 

 

 

 

折戟沈沙鐵未銷 모래에 묻힌 부러진 창, 쇠끝이 삭지도 않았구나

自將磨洗認前朝 나는 진흙을 씻고 갈아 앞 시대의 것임을 확인한다.

東風不與周郎便 동풍이 주랑을 편들지 않았더라면

銅雀春深銷二喬 봄 깊은 동작대에 두 교씨를 가두었으리라.

 

적벽은 후베이 성 가어현(嘉魚縣) 동북 양쯔강에 임한 산 이름이다. 후한 말 208년에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이 조조의 대군을 분쇄한 적벽대전이 벌어진 곳이라고 한다. 모래 속에 묻혀 있는 창 조각. 그 쇳조각은 아직 다 녹슬지 않았다. 시인은 진흙이나 작은 녹을 씻어 없애고 확실히 옛 시대의 물건이라고 확인했다. 이 창이 적벽 싸움의 유물이라고 생각한 시인은 감개에 젖지 않을 수 없었다.

 

적벽대전 때 손권의 사령관이었던 주랑 즉 주유(周瑜)는 양쯔강 서쪽 조조의 선단을 화공(火攻)으로 섬멸했다. 조조는 후난(湖南) 성 임장현(臨?縣)에 해당하는 업(?)이란 곳에 동작대를 쌓고 많은 궁녀와 기녀를 모아두지 않았던가. 만일 적벽대전 때 동풍이 불지 않아 조조가 패하지 않았다면 조조는 손권의 형 손책(孫策)에게 시집간 대교와 주유의 아내인 소교를 모두 동작대로 끌고 갈 수 있었을지 모른다.

 

두목은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하되,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던 사건을, 만일 그런 일이 있었더라면 하고 상상해서 지었다. 역사를 곧바로 서술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굴곡이 있는 사색의 결과를 시로 표현한 것이다.

 

‘권토중래(捲土重來)’라는 성어의 출전이 된 〈오강정에 쓰다(題烏江亭)〉라는 칠언절구도 바로 두목의 명작이다. 오강(烏江)은 해하(垓下)에서 패하여 도망하던 항우가 결국 자결한 곳이다.

 

 

 

 

勝敗兵家不可期 승패는 병가(兵家)도 기약할 수 없는 법

包羞忍恥是男兒 수치 견디고 치욕 참는 것이 진정한 남아.

江東子弟俊才多 강동의 자제에게는 준재가 많아

捲土重來未可知 권토중래했다면 결과를 알 수 없었거늘.

 

항우는 해하에서 ‘사면초가’를 당하자 오강으로 도망갔다. 그때 그곳 정장(亭長)으로부터 ‘강동으로 돌아가 재기하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8년 전 강동의 8천 자제와 함께 떠난 내가 무슨 면목으로 지금 혼자 강을 건너 돌아가 부형을 대할 것인가!”라고 대답했다. 결국 그는 파란만장한 31년의 생애를 그곳에서 마쳤다. 항우가 죽은 지 1천 년, 시인 두목은 오강의 객사(客舍)에서 이 시를 지은 것이다.

 

항우는 양쯔강을 건너서 동쪽의 강남 지방으로 멀리 달아나 재기를 도모하라고 권유를 받았으나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만일 그가 그 권유를 받아들였더라면 천하의 형세는 어떻게 되었을까. 두목은 공상의 날개를 펼쳐 보았다. 현실 세계에 권태를 느끼고 역사를 되돌릴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진 그는, 일종의 반발로서 공상의 날개를 펼쳐 본 것이리라.

 

〈양주의 한작 판관에게 부치다(寄揚州韓綽判官)〉라는 칠언절구에는 태평세월이 곧 지나갈 것을 슬퍼하는 기분이 담겨 있다. 양주(揚州)는 지금의 장쑤(江蘇) 성 강도현(江都縣)으로, 당나라 때에는 번화한 도시였다.

두목은 서른한 살 때 이곳의 서기관으로 있었다. 단, 이 시는 양주를 떠난 뒤에 지은 것인 듯하다. 한작은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판관이라는 직함을 띠었던 것으로 보아 절도사의 휘하에 속한 관리였던 듯하다.

 

 

 

 

 

靑山隱隱水?? 청산은 은은하고 물은 아득하다

秋盡江南草木凋 가을 다한 강남에 초목이 이울었고

二十四橋明月夜 이십사교에 달 밝은 밤

玉人何處敎吹簫 옥인은 어디서 젓대 부는 걸 가르치나

 

초목조(草木凋)는 이 강남에서조차 초목이 이울어 쓸쓸하다는 뜻이다. 단, 어떤 텍스트에는 ‘초미조(草未凋)’로 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강남은 따뜻하므로 늦가을에도 풀이 이울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이십사교(二十四橋)는 수향인 양주에 놓여 있던 스물네 개의 다리를 말한다. 현재는 다리 하나에 이십사교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고 한다. 마지막의 “옥인은 어디서 젓대 부는 걸 가르치나”라는 말은 의문이나 상상의 언어이다.

푸른 산이 희미하고 강물은 아득한 광경. 가을도 끝판이 되어 강남에는 풀과 나무도 시들었다. 이십사교를 달빛이 또렷이 비추는 밤, 아름다운 여인은 어디서 퉁소 부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화려함의 끝에 모든 것이 시들고 말리라는 것을 시인은 감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무한한 슬픔이 배어 나온다.

 

칠언절구 〈진회에 묵으면서(泊秦淮)〉도 그러한 슬픔을 담았다. 장쑤 성 율수현(水縣) 동북쪽에 있는 진회라는 강에 노닐면서, 기녀가 〈옥수후정화〉 곡을 노래하는 것을 듣고 느낌이 있어 지은 것이다. 〈옥수후정화〉는 남조 진(陳)나라 후주(後主)가 지은 것으로, 망국의 노래로 알려져 있다. 두목은 연화의 계절에 진회에 노닐면서 인류 역사의 흥망성쇠에 무한한 애수를 토로했다.

 

 

 

 

煙籠寒水月籠沙 안개는 찬 물결에 끼고 달빛은 모래를 덮었는데

夜泊秦淮近酒家 오늘밤 진회에 배를 대니 술집이 가깝구나

商女不知亡國恨 기녀들은 망국의 비애를 알지 못하고

隔江猶唱後庭花 강 건너에서 오히려 후정화를 부르네

 

옛날부터 두목의 절구 가운데 최고 걸작으로 꼽혔다. 《심청전》의 〈수궁가〉와 《흥보가》의 〈제비노정기〉에도 언급되어 있다. 또 시조 〈연롱한수 월농사하니〉는 초장 중장에서 두목의 〈진회에 묵으면서〉를 그대로 옮겨쓰고 토만 달았다.

 

3.

 

두목은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고 스스로 묘지명을 적었다. 이런 양식의 글을 ‘자찬묘지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묘지명은 자신을 가리키면서 ‘목(牧)’ ‘모(某)’ ‘여(予)’의 세 가지 호칭을 각각 구별해서 사용하여, 그것이 내용과도 대응하고 있다. 가와이 고조 씨가 분석한 내용을 이하에 소개하면 이러하다.

 

처음 부분은 묘지명의 일반적인 체제를 따라서 이름·자·부조(父祖)를 기록하고 나서, 관력을 서술했다. 여기까지는 ‘목(牧)’이라는 이름을 칭호로 사용하여, 묘지명에서 요구되는 기본적인 사항만 기록했다. 다음 단락에서는 자칭을 ‘모(某)’로 바꾸어 독서와 저술에 대해 기록했다. 그런데 두목은 이 부문에서 “남들보다 뛰어난 문장은 짓지 못했다”고 스스로 비하하고, 병법서인 《손자》의 주석만은 자부할 수 있다고 거론했다.

 

 

"목(牧)의 자는 목지(牧之)이다. 증조부는 아무개[杜希望, 존속의 이름은 기록하지 않는 법이다]로, 하서 농서절도사였다. 조부 아무개[杜佑]는 사도·평장사·기국공(岐國公)에 올랐고, 태사(太師)를 추증받았다. 부 아무개[杜從郁]는 가부원외랑·예부상서 등의 직을 추증받았다.

 

목(牧)은 진사에 급제하고, 제필(制筆: 制策)에 합격하여, 홍문관 교서랑이 되었고, 시좌무위병조참군(試左武衛兵曹參軍), 강서단련순관(江西團練巡官)이 되었으며, 감찰어사리행(監察御使裏行)의 직함으로 회남절도장서기(淮南節度掌書記)로 전임했다. 그 뒤 진감찰(眞監察: 감찰어사)을 제수받아, 동도분사(東都分司)가 되었으나, 아우가 병들었으므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전중시어사내공봉의 직함으로 선주(宣州) 단련판관을 제수받았고, 좌보궐·사관수찬으로 옮겼으며, 선부(膳部)와 비부(比部)의 원외랑으로 전임했는데, 어느 경우나 사관의 직은 겸임한 채였다. 지방으로 나가서, 황(黃)·지(池)·목(睦) 세 주의 자사가 되었고, 사훈원외랑으로 옮겨 사관수찬을 겸했으며, 이부원외랑으로 전임했다.

 

그런데 아우의 병 때문에 호주(湖州)자사를 원하여 나갔다. 다시 조정에 들어와 고공낭중에 제수되고, 지제고가 되었으며, 1년 있다가 중서사인에 제수되었다.

 

모(某)는 평소부터 서적을 읽는 것을 좋아했지만, 남들보다 뛰어난 문장을 짓지는 못했다. 조공[조조(曹操)]은 “나는 병서·전략서를 많이 읽었지만, 손무(《손자》)의 내용이 가장 심오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 책 13편에 주석을 달았다. 즉, 위로는 하늘의 운행을 탐구하고 아래로는 인간 세상의 일을 궁구하여, 이것에 덧붙일 것은 없으리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언젠가 틀림없이 그것을 이해해 줄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다음 단락에서는 인칭을 ‘여(予)’로 바꾸고, 잇달아 일어난 죽음의 전조(前兆)들 네 가지를 기록했다. 그리고 점성술에 의한 해석을 상세하게 적었다.

 

지난해 7월 10일, 오흥에서 꿈을 꾸었는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 “너는 틀림없이 소행랑(小行郞)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그다음은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말하길 “예부고공이 소행랑이지!”라고 했다. 나의 마지막 직위를 말한 것이다.

 

금년 9월 19일, 집으로 돌아와 밤에 피곤하여 해(亥)시 초(10시경)에 취침했는데, 자리에 들자마자 그대로 잠들어 숙면해서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 큰 소리로 “너는 이름을 필(畢)로 바꾸어라!”라고 말했다.

 

10월 2일, 노복 순(順)이 와서 말했다. “밥을 지어 다 익으려고 하는 참에 시루가 깨어져 버렸습니다.” 내가 말했다. “모두 상서롭지 못한 일뿐이로군!”

 

11월 10일, 꿈을 꾸었는데, 한 조각 종이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희디흰 망아지가 저 빈 골짝에 있도다(皎皎白駒, 在彼空谷)”(《시경》 소아 〈백구〉의 구절). 곁에 있던 사람이 말했다.

“빈 골짜기라고 하는 것은 좋지 않다. 벽 틈을 지나쳐 버리는 것이다”(《장자》 〈지북유〉 편에 “사람이 천지간에 살아가는 것은 흰 망아지가 틈을 지나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홀홀할 따름이다”라고 하여 인간의 수명을 비유했다.).

 

나는 스물여덟 수(宿) 가운데 각성(角星)의 때에 태어났는데, 앙(昻)과 필(畢)은 각(角) 별자리의 제8궁(宮)으로, 병액웅(病厄宮)이라고도 하고 팔살궁(八殺宮)이라고 한다. 거기에는 토성(土星)도 있고, 화성(火星)이 목성(木星)에 이어진다. 점성술사 양희(楊晞)가 말했다.

“목성은 장성(張星) 부근에 있어, 각(角)에서부터 세어서 열한 번째 복덕궁(福德宮)에 해당합니다. 목성은 복덕대군자(福德大君子)여서, 곁에서 구해주므로, 걱정할 게 없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호주(湖州)의 태수가 되어 한 해도 되지 않는 사이에 중서사인으로 옮겼다. 목성은 벌써 충분히 각성에게 복을 가져왔다. 그러니 토성과 화성이 각성에게 죽음을 가져온다고 하여도 어쩔 수가 없다.”

다시 자신의 모습을 보매, 눈의 광채가 지나치게 반짝여서 안정감이 없으며, 코는 눈썹 밑에 주름이 있다. 지금 나이 오십, 이것이 내 정해진 수명일 것이다.

 

마지막 부분은 또 ‘모(某)’로 돌아가, 자신의 죽음과 처자에 대하여 기록했다. 보통의 묘지명처럼 첨가해 둔 것이다. 그리고 명(銘)에는 ‘여(予)’를 사용하여, 운문으로 끝을 맺었다.

 

아무 달 아무 날, 안인리에서 몰(歿)했다. 아내는 하동 배씨, 낭주자사 언(偃)의 딸이다. 모(某)보다 약간 앞서서 졸(卒)했다. 장남은 조사(曹師)라고 하는데, 16세이다. 차남은 축니(祝?)라고 하며, 12세이다. 별도로 두 사내아이를 두어, 난(蘭)이라 하고 흥(興)이라 한다. 외동딸은 진(眞)이라 한다. 모두 아직 어리다. 아무 달 아무 날에 소릉 사마촌의 선산에 묻혔다.

 

명을 적어 말한다.

 

후위의 태위 두옹(杜?)은 평안공에 봉해져서 나(予)에 이르기까지 9세로, 모두 소릉에 매장되었다. 아아, 그대도 또한 마지막을 온전히 하여, 네 궁실에서 편안히 잠들거라. "

 

自撰墓誌銘 / 作者:杜牧

牧字牧之。曾祖某,河西?右節度使;祖某,司徒、平章事、岐國公,贈太師;考某,駕部員外,累贈禮部?書。

牧進士及第,制策登科,弘文館校書?,試左武衛兵曹參軍、江西團練巡官,轉監察御史裏行、御史淮南節度掌書記,拜?監察,分司東都。以弟病去官,授宣州團練判官、殿中侍御史、內供奉,遷左補闕、史館修撰,轉膳部、比部員外?,皆兼史職。出守黃、池、睦三州,遷司勳員外?、史館修撰,轉吏部員外。以弟病,乞守湖州,入拜考功?中、知制誥。周歲,拜中書舍人。

牧平生好讀書,?文亦不由人。曹公曰:「吾讀兵書戰策多矣,孫武深矣。」因注其書十三篇,乃曰:「上窮天時,下極人事,無以加也,後當有知之者。」

去歲七月十日,在吳興,夢人告曰:「爾當作小行?。」復問其次,曰:「禮部考功,?小行矣。」言其終典耳。今歲九月十九日歸,夜困,亥初就枕寢,得被勢久,?而不夢,有人朗告曰:「爾改名畢。」十月二日,奴順來言「炊將熟甑裂。」予曰:「皆不祥也。」十一月十日,夢書片紙「皎皎白駒,在彼空谷」,傍有人曰:「空谷,非也,過隙也。」予生於角,星昴畢於角?第八宮,曰病厄宮,亦曰八殺宮,土星在焉,火星繼木。星工楊晞曰:「木在張於角?第十一福德宮,木?福德大君子,救於其旁,無虞也。」予曰:「自湖守不周歲,遷舍人,木還福於角足矣,土火還死於角,宜哉!」復自視其形,視流而疾,鼻折山根,年五十,斯壽矣。某月某日,終於安仁里。

妻河東裴氏,朗州刺史偃之女,先某若干時卒。長男曰曹師,年十六;次曰祝?,年十二。別生二男,曰蘭、曰興,一女曰?,皆幼。以某月日,葬於少陵司馬村先塋。銘曰:

後魏太尉?,封平安公,及予九世,皆葬少陵。嗟爾小子,亦克厥終,安於爾宮。

 

 

보통의 묘지명이라면 그 인물을 방불할 만큼 부각시킬 수 있는 생애의 주요 사건이나 일화, 혹은 그 인물을 특징짓는 태도나 사고를 기록하겠지만, 이 묘지명은 불가사의한 전조만 열거했으며, 더욱이 그 전조는 모두 본인의 죽음에 관련된 것들뿐이다. 죽음의 전조를 기록한 단락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가 스며 나온다.

 

두목의 묘지명은 특이하게도 죽음의 전조를 느껴 두려워 떠는 인간의 태도와 심정을 기술했다. 그 내용은 ‘지괴(志怪: 불가사의한 일에 대한 흥미를 중심에 두는 단편)’에 가깝다.

 

두목은 결코 미신에 젖었던 사람은 아니다. 이를테면 〈논상(論相)〉이라는 논문에서는 인상(人相)으로 사람의 장래를 예견하는 것이 몽매함을 비판했다. 그런데 본래 사서(史書)의 전기(傳記)와 연결되는 합리적 기록물이라고 할 묘지명에서 그는 지괴(志怪)의 내용을 담았다. 불길한 전조 때문에 두려워 떠는 영혼을 솔직하게 기록한 것이다.

 

두목의 자찬묘지명에는 마음 밑바닥에 드리워 있는 죽음의 공포가 드러나 있다. 중국의 자찬묘지명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낸 것은 도연명과 두목 두 사람뿐이라고 한다.

자찬의 묘지명은 대개 죽음의 달관을 말하여 정형화(定型化)하고 만다. 하지만 도연명과 두목은 유형을 버렸다. 자신의 죽음을 진정으로 응시한 것이다.

 

4.

 

楓林停車 안중식

 

 

 

 

 

 

두목은 화려한 슬픔을 노래한 시인이다. 그의 시 〈산행(山行)〉을 보라. 중고등학교 한문 교과서에 실려 왔던 칠언절구이다.

 

遠上寒山石徑斜 멀리 추운 산에 오르니 돌길이 비스듬한데

白雲生處有人家 흰 구름 피어오르는 곳에 인가가 드문드문

停車坐愛楓林晩 수레 멈춰선 것은 늦가을 단풍 숲이 보기 좋아서이니

霜葉紅於二月花 서리 맞은 단풍이 봄꽃보다 붉구나

 

한산(寒山)은 늦가을의 싸늘한 산을 말한다. ‘좌(坐)’는 ‘~하기 때문’의 뜻이다.

‘만(晩)’은 저녁의 시간을 나타내기보다는 시기상 늦은 때를 가리키는 듯하다. ‘상엽(霜葉)’은 서리 맞은 잎, ‘이월화(二月花)’는 음력 2월 봄의 꽃을 가리킨다.

 

이 시는 경치의 묘사가 뛰어나다. 가을 산의 모습을 멀리서 조망한 뒤 산 위를 오르며 돌길이 울퉁불퉁 비스듬하게 나 있는 모습을 그려 보였다. 멀리 인가가 드문드문 보이는 광경에 눈을 주다가, 산길에 늘어선 서리 맞은 단풍 잎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백운(白雲)’과 ‘상엽(霜葉)’이 색채상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상엽’이라는 시어는 시인의 심경을 응축해 담고 있다. 두목은 석양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단풍 잎을 바라보면서 인생의 황혼이 청춘보다 더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을 법하다. 젊은 날의 무수한 역경을 겪은 뒤 이제는 담담한 마음을 갖게 된 자신의 처지를 투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담담함은 언제까지고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그 뒤에는 쓸쓸함이 배어 있다.

 

두목은 어려서부터 삼조(三朝)에 걸쳐 재상을 지낸 조부 두우(杜佑)의 영향을 받아 무언가 장대한 일을 하겠다는 포부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어지러웠으며, 그가 장대한 포부를 실천할 장은 열려 있지 않았다. 포부를 실현하려는 의지는 마흔 살 전후에 지방의 낮은 관직을 전전하면서 수그러들었다. 마흔 살에 황주(黃州)에서 지은 시 〈고을 관아에서 홀로 술을 마시며(郡齋獨酌)〉에서는 이렇게 노래했다.

 

腥?一掃灑 비린내를 한바탕 씻어내어

凶?皆披攘 흉포한 무리를 모두 쫓아내리라

生人但眠食 백성들 오직 편히 자고 먹게 하고

壽域富農桑 영원한 나라에서 농사짓고 누에치기 넉넉게 하리라

 

하지만 점차 그는 애상의 정조를 시에 담았다. 경물을 묘사하는 때에도 그러했다.

〈산행〉은 두목이 지주(池州)의 자사(刺史)로 있던 42세 이후에 지은 것이라고 한다. 형상이 선명하고, 색채가 풍부하며, 정경이 서로 융합되었으며, 음절이 드높다. 과연 두목으로 하여금 ‘사경(寫景)의 고수(高手)’라 불리게 할 만하다. 그렇지만 현실에의 의지는 상실한 뒤이다. 그 애상의 시선이 독자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두목의 시 〈견흥(遣興)〉을 보자.

 

浮生長勿勿(부생장물물) 덧없는 인생은 늘 바쁘기만 하고

兒小且嗚嗚(아소차오오) 어린 아이는 보채어 울어댄다

 

삶의 덧없음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한다. 장대한 이념을 담은 높은 음조가 아니라 애조를 띤 단조의 노래로만 풀어낼 수 있는 삶. 삶이란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닐까.

 

 

/ 심경호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한문학과 교수. 1955년 충북 음성 출생.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일본 교토(京都)대학에서 《조선시대 한문학과 시경론》으로 문학박사 학위 취득. 저서로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 《한문산문의 미학》 《한국한시의 이해》 《김시습평전》 《간찰, 선비의 마음을 읽다》 《책, 그 무시무시한 주술》 등과 역서로 《주역철학사》 《불교와 유교》 《중국자전문학》 《일본서기의 비밀》 등이 있음. 성산학술상과 일본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 선생 기념 제1회 동양문자문화상 수상. 한국학술진흥재단 선정 제1회 인문사회과학 분야 우수학자.

 

 

 

/ 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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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춘향수절가

 

 

이때는 어느 때뇨. 놀기 좋은 삼춘이라. 호연 비조 뭇 새들은 농초화답 짝을 지어 쌍거쌍래(雙去雙來) 날아들어 온갖 춘정 다투는데 남산화발북산홍과 천사만사수양지에(서) 황금조는 벗 부른다. 나무나무 성림하고 두견 접동 다 지나니 일년지가절이라.

이때 사또 자제 이도령이 연광은 이팔이요 풍채는 두목지라. 도량은 창해같고 지혜 활달하고 문장은 이백이요 필법은 왕희지라. 일일은 방자 불러 말씀하되

“이 골 경처 어디매냐. 시흥춘흥(詩興春興) 도도하니 절승경처 말하여라.”

방자놈 여쭈오되

“글공부 하시는 도련님이 경처 찾아 부질없소.”

이도령 이르는 말이

“너 무식한 말이로다. 자고로 문장재사(文章才士)도 절승강산 구경하기는 풍월작문 근본이라. 신선도 두루 놀아 박람(博覽)하니 어이하여 부당하랴. 사마장경이 남으로 강호에 떠있다 대강(大江)을 거스를 제 광랑성파에 음풍이 노호하여 예로부터 가르치니 천지간 만물지변(萬物之變)이 놀랍고 즐겁고도 고운 것이 글 아닌 게 없느니라. 시중천자 이태백은 채석강에(서) 놀았었고 적벽강 추야월(秋夜月)에 소동파 놀았었고 심양강 명월에 백낙천 놀았었고 보은 속리 문장대에(서) 세조대왕(世祖大王) 놀으셨으니 아니 놀든 못하리라.”

 

 

만정제 춘향가

. 잇? 사또 자졔 이도령이 연광은 이팔이요, 풍?는 두목지라.(춘향가8)

. 도량은 창? 갓고 지혜 활달?고 문장은 이?이요, 필법은 왕희지라.(춘향가8)

. 일일은 방자 불너 말삼하되,<이 골 경쳐 어??냐.(춘향가9) 시흥 츈흥도도하니 졀승경쳐 말하여라.>(춘향가9)

. 방자놈 엿자오되 글 공부 하시난 도령임이 경쳐 차져 부질업소.(춘향가9)

 

 

춘향가 중 광한루로 구경을 나가는데 대목 2

 

<효> 방자 분부듣고 나귀안장을 짓는다 홍영자(紅纓紫)공 산호편(珊瑚鞭) 옥안금천(玉鞍錦薦) 황금륵(黃金勒) 청홍사(靑紅絲) 고운굴레 상모(象毛)물려 덤벅달아 앞뒤걸쳐 질끈매 층층다래 은엽등자(銀葉子) 호피(虎皮)도듬이 좋다

 

도련님 호사헐제 옥골선풍(玉骨仙風) 고운얼굴 분세수(粉洗手) 정히허고 긴머리 곱게 따아 갑사(甲紗)댕기 듸렸네 선천동우주(宣川東羽綢) 겹저고리 당모수 상침바지 외씨같은 고운발 극장세목(極上細木)에 보선지어 남 수갑사(繡甲紗)로 대님매 진안(鎭安)모수 통행전(通行廛) 쌍문초(雙紋) 겹동옷 청중치막(靑中赤莫)에 도복바처 당(唐) 분합(分合)띠매고 갑사복건(甲紗輻巾) 만석당혜(唐鞋) 나귀등에 선듯올라 뒤를싸고 앉은후 채금당선(彩錦唐扇) 좌르르펼처 일광(日光)을 가리우니 할 일없는 선동이라

 

관도성남(官道城南) 너른길 기봉하(寄峯下)에 나는티끌 광풍좇아 펄펄 도화점점 붉은꽃 보보향풍(步步香風)뚝떡어져 쌍옥계변(雙玉溪邊)에 네발굽 걸음걸음이 생향(生香)이라 일담선풍(日淡仙風) 도화색(桃花色) 위절도(魏節度) 적토마(赤兎馬)가 이걸음을 당헐소냐 만성견자(滿城見者) 수불애(誰不愛)랴

취과양주(醉過楊州) 귤만거(橘滿車)의 두목지(杜牧之) 풍채(風采)로구나 호호거리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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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 / 杜牧

 

?明時節雨紛紛,

路上行人欲斷魂。

借問酒家何處有,

牧童遙指杏花村。

 

作品注釋

 

①?明――我國傳統的掃墓節日,在陽曆四月五日前後。

欲斷魂――形容愁苦極深,好像神魂要與身體分開一樣。

③借部――請問

 

作品譯文

 

?明節的時候,詩人不能?回家掃墓,?孤零零一個人在異?路上奔波,心里已經不是滋味;況且,天也不作美,陰?着?,將牛毛細雨紛紛灑落下來,眼前迷蒙蒙的,春衫濕??的。詩人?,簡直要斷魂了!?個灑店避避雨,暖暖身,消消心頭的愁苦?,可酒店在?兒??   

  詩人想着,便向路旁的牧童打聽。騎在牛背上的小牧童用手向遠處一指――?,在那天滿杏花的村莊,一面酒店的幌子高高挑起,正在招攬行人?! 

 

 

作品賞析

 

詩的首句“?明時節雨紛紛 ”,點明詩人所置身的時間、氣象等自然條件。?明節爲唐代的大節日之一 ,這一天 ,或合家團聚,或上墳掃墓,或郊游踏?,活動多樣。但是杜牧在池州所過的?明節?不見陽光,隻是“天街小雨潤如?”,細雨紛紛。

 

     第二句 “路上行人欲斷魂 ”,由寫客觀轉入狀摹主觀,着重寫詩人的感情世界。他看見路上行人弔念逝去親人,傷心欲?,悲思愁?。“借問酒家何處有”一句 。詩人融景傷懷至極,而又要冒雨?路,雨濕衣衫、春寒料?。詩人希冀借酒消愁。於是,他便向人問路了。   

 

  結句“牧童遙指杏花村 ”,點明了上句詩人問路的對象 ,“牧童遙指”把讀者帶入了一個與前面哀愁悲慘?異的煥然一新的境界,小牧童熱心?潤的聲音,遠處杏花似錦,春意鬧枝,村頭酒旗飄飄,?有“柳暗花明又一村”的韻致詩的前兩句創造了一幅?迷感傷的藝術?面,後兩句則創造了一幅鮮明生動的?面,前抑後?,對比交錯,相映成趣。與詩人的感情脈搏一致。

 

  這首詩描寫?明時節的天氣特征,抒發了孤身行路之人的情?和希望。

 

     ?明時節,天氣多變,有時春光明媚,花紅柳綠,有時?細雨紛紛,綿綿不?。首句“?明時節雨紛紛”寫出了“潑火雨”的特征(?明前兩天是寒日節,舊俗要禁火三天,這時候下雨稱爲“潑火雨”)。

次句“路上行人欲斷魂 ”寫行路人的心境。“斷魂”,指?心十分?迷哀傷而?不外露的感情

這位行人爲何“欲斷魂”??因爲?明在我國古代是個大節日,照例該家人團聚,一起上墳祭掃,或踏?游春。現在這位行人孤身一人,在陌生的地方?路,心里的滋味已不好受,偏偏又淋了雨,衣衫全被打濕,心境就更加?迷紛亂了。

 

     這首小詩,一個難字也沒有,一個典故也不用,整篇是十分通俗的語言,寫得自如之極,毫無經營造作之痕。音節十分和諧圓滿,景象非常?新、生動,而又境界優美、興味隱躍。詩由篇法講也?自然,是?序的寫法。第一句交代情景、環境、氣?,是“起”;

第二句是 “承”,寫出了人物,顯示了人物的?迷紛亂的心境;

第三句是一“轉”,然而也就提出了如何擺?這種心境的辦法;

而這就直接逼出了第四句,成爲整篇的精彩所在?“合”。

在藝術上,這是由低而高、逐步上升、高潮頂點放在最後的手法。所謂高潮頂點,?又不是一覽無餘,索然興盡,而是餘韻邈然,耐人尋味。

 

 

http://www.zwbk.org/MyLemmaShow.aspx?zh=zh-tw&lid=98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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悲吳王城(杜牧 唐詩)

 

二月春風江上來,水精波動碎樓台。

吳王宮殿柳含翠,蘇小宅房花正開。

解舞細腰何處往?,能歌?女逐誰回?。

千秋萬古無消息,國作荒原人作灰。

 

【注?】

①?王城:春秋?王??使伍子?所筑??城,地在今?州。

②水精(晶):比??澈的江水。?台:??台倒影。

③?小:?南朝?塘名妓。

④?女:美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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和春深二十首(白居易 唐詩)15

 

何處春深好,春深妓女家。
眉欺楊柳葉,裙?石榴花。
蘭麝熏行被,金銅釘坐車。
杭州蘇小小,人道最夭斜。

 

蘇小小是什?意思

 

1. 南朝 齊 時 錢塘 名妓。

▶ 《樂府詩集?雜歌謠辭三?<蘇小小歌>序》: “《樂府廣題》曰: ‘ 蘇小小 , 錢塘 名倡也。 蓋 南齊 時人。 ’” 唐 白居易 《和春深》之二十: “ 錢塘 蘇小小 , 人道最夭斜。”

▶ 唐 羅隱 《江南行》: “ 西陵 路邊月??, 油壁輕車 蘇小小 。”

2. 南宋 錢塘 名妓。 容色俊麗, 頗工詩詞。

▶ ? 趙翼 《??叢考?兩蘇小小》: “ 南齊 有 錢塘 妓 蘇小小 , 見 郭茂? 《樂府》解題。

▶ 南宋 有 蘇小小 , 亦 錢塘 人。 其??太學生 趙不敏 所眷, 不敏 命其弟娶其妹名 小小 者。 見《武林舊事》。”參閱 明 ?瑛 《七修類稿?辯證九?蘇小小考》。

 

 

 

蘇小小

 

蘇小小

 

史中沒有記載的?樓才女蘇小小,傳說中的名妓,曾經是男人心中的一個夢。傳說?愛過一個叫阮鬱的豪門公子,愛也是愛得轟轟烈烈,可是在阮鬱被父親招回,不准再與蘇小小來往後,蘇小小也僅難過那?一些時候,?放下了,照舊與?看得上的文人雅士來往,周?在男人的世界里。

 

人物生平 / 錢塘名妓 

 

 蘇小小其生平詳細無所考,年十九?血而死,終葬於西?之塢,但也有人認爲蘇小小根本就是後世文人雅客杜撰而出的人物,現實中?不存在。在所有歷史記載中?沒有蘇小小其人。

最初蘇小小的出名是因爲?多文人墨客的詩詞歌詠,例如李賀的《蘇小小》。至於油壁車的故事,也隻是後人的演繹罷了,隻是爲了讓故事更加曲摺動人。至於那一首所謂蘇小小所作的詞的最初來曆是某位詩人夜宿西湖,夢見一位女子自稱蘇小小?吟了前半首詞。該詩人醒來有所感,將前半首錄下來,?自己續上了後半首描寫夢中的蘇小小,題於西湖湖畔。該詞的上下兩段其實?不一致。前半首是第一人稱,後半首則明顯是他人眼中的客觀描寫了:妾本錢塘江上住,花落花開,不管流年度。燕於銜將春色去,紗?幾陣?梅雨。 斜?玉梳雲半吐,檀板輕敲,唱徹《?金縷》。夢斷彩雲無覓處,夜?明月生南浦。

 

 這一點,?和貂蟬有共通性。?歷史上?無其人,是通過文學作品流芳後世的。

 

 傳說蘇小小死後葬於西?橋畔,前有石碑,題曰:錢塘蘇小小之墓。

蘇小小墓在杭州的知名度可謂家?戶曉,據傳說蘇小小死後,芳魂不散,常常出沒於花叢林間.據史書記載,宋朝有個叫司馬?的書生,在洛下夢一美人??而歌,問其名,曰:西陵蘇小小也。問歌何曲?曰:《?金縷》。

後五年,才仲以東坡薦擧,爲秦少章幕下官,因道其事。 少章異之,曰:“蘇小之墓,今在西?,何不?酒弔之。”才仲往尋其墓拜之。是 夜,夢與同寢,曰:妾願酬矣。自是幽昏三載,才仲亦卒於杭,葬小小墓側。

 

此傳說雖然有些恐怖,但多少表達了人們對蘇小小的懷戀與同情。

關於蘇小小的生平有兩種傳說,一說是南齊時人,一說是宋朝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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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蘇小小本生於伎家,父不知何人,因長得玲瓏嬌小,就喚作小小。及母死,門戶?落,風月中之滋味,已不識?何如。?喜得家住於西?橋畔,日受西湖山水之滋味,早生得性慧心靈,姿容如?,遠望如曉風楊柳,近對如初日芙蓉。到了十二三歲上,發漸漸齊,而烏雲半挽,眉目如?,而翠黛雙分,人見了,不覺驚驚喜喜,以?從來所未有。到了十四五歲時,不獨色貌?倫,更有一種妙處:又不曾從師受學,誰知天性聰明,信口吐辭,皆成佳句。」

 

幾乎?難作歷史考證,因?關於蘇小小的記載多是文人的傳奇筆記,只能做輔助參考之用,?正有史可供考證的實在是少之又少。

 

這一日,蘇小小懷?著少女心事出遊。?當時的心情,似乎可以體會,幾許羞?,幾許期待,甚至還有幾許迫不及待。?盈盈地走過小橋,走過流水,走過人家半掩的朱門,偶爾有柳絮?飛的時候撞上面孔,又伶?地折回去,粉牆上斑斑點點的?苔痕跡,?石板路面恰到好處的光滑夾雜著粗?,縱情於山水之間的小小就這樣幽幽地走過這個季節,這個季節的這個下午對小小轉瞬?逝的年華而言,是注定不同尋常的。艾略特說,這個季節?殘酷。小小遇到與?生命密切有染的第一個男子??阮郁,時間就此凝結停滯靜止,似乎似乎,永遠定格在相遇的?那。

 

這個翩翩公子,就是當朝相公阮道之子,阮郁。阮公子因奉父命,到杭州處理公事,聽說西湖山水秀美,因此乘馬前來賞玩。正在如癡如醉地賞玩煙柳?橋,醉聽蕭鼓的阮公子,突然就被洶湧的人潮和迎面?來的這輛裝飾華貴?麗的油壁車所吸引。這架油壁車「氈?綠雲四壁,?垂白月當門,雕蘭鑿桂以?輪」,美輪美奐。他不經意地望過去,突然就被震驚了:車中這個秋水盈盈,春山娟娟的女子,?裡是人間凡人,分明是雲中君,花中神。在水波??,山色空?,搖?春如線的西子湖畔,邂逅這樣的美人,阮?一時心醉神馳,懷疑自己是否進入了瑤池仙宮。那一日,西?一帶的??松杉,明媚山水,只作了???年華的陪?和點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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遣懷

 

落魄江南載酒行,楚腰腸斷掌中輕。

十年一覺揚州夢,占得?樓薄幸名。

 

【唐】杜牧

 

落魄江湖載酒行,楚腰纖細掌中輕。

十年一覺揚州夢,?得?樓薄幸名。

 

【注釋】: ?樓:華麗的樓宇,常被指爲妓女的居處。

 

【簡析】:

這首詩追悔了常去妓館、空度年華的生活,對後人具有?誨作用。

 

【注解】:

1、落魄:漂泊

2、楚腰:楚靈王好細腰的典故。這裏均指揚州妓女

3、?樓:指妓女居處。

  落魄:一作落拓。江南:一作江湖。

  腸斷:一作纖細。占得:一作?得

 

【韻譯】:

  飄泊江湖生活?倒,常常載酒而行。

  放浪形骸沈溺美色,欣賞細腰輕盈

  十年揚州不堪回首,竟是一場春夢

  留連?樓,只落得個薄情?的聲名

 

  【評析】:這是作者回憶昔日的放蕩生涯,悔恨沈淪的詩。首句追?揚州生活:寄人籬下。

二句寫放浪形骸,沈?于酒色。以“楚王好細腰”和“趙飛燕體輕能爲掌上舞”,兩個典故,形容揚州妓女之多之美和作者沈淪之深。三句寫留連美色太久,十年冶遊,于今方才省悟。四句寫覺醒後的感傷,一生聲名喪失殆盡,僅存?樓薄幸之名。自嘲自責,抑郁?諧

 

 《全唐詩話》說,吳武陵看了杜牧這首詩,?以他的《阿房宮賦》向崔?推薦,杜牧于是登第。

參考資料:中華詩詞

 

 

唐杜牧《遣懷》

 

  落魄江湖載酒行,

  楚腰纖細掌中輕。

  十年一覺揚州夢,

  ?得?樓薄幸名。

 

 

杜牧??《遣懷》

  落魄江湖載酒行,

  楚腰纖細掌中輕。

  十年一覺揚州夢,

  ?得?樓薄倖名。

 

注釋:

遣懷:抒發感觸甚深的情懷。

落魄:漂泊,作遊樂解。

楚腰:《漢書?馬廖傳》:“吳王好劍客,百姓多瘡瘢;楚王好細腰,宮中多餓人。” 後稱細腰女子爲腰

掌中輕:《飛燕外傳》:“趙飛燕體輕,能爲掌上舞。” 此處均指苗條輕盈的揚州歌女

一二句意謂:遊樂江湖,?酒來往;苗條歌女,淺斟低唱。

一覺:一旦醒悟。

揚州夢:《杜牧別傳》載:“牧在揚州,每夕爲狹斜遊,所至成歡,無不會意,如是者數年。”?得:落得

?樓:豪華精美的樓房。此處指妓院。

薄倖:《辭海》注:“猶言薄倖情,負心。”

 

三四句意謂:揚州多年醉生夢死的生活,如今已經覺醒;盡管落得一負心?之名。也任憑歌女去埋怨我的薄情。  賞析:

也許 “才子多風流” 這句話頗有來曆,杜牧也曾不拘細行、放浪不?、風流一時。

本詩表現了詩人對任職揚州時 縱情酒色的生活的追悔之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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于?

 

李杜風流事:杜牧曾看上十歲小姑娘

 

李杜文章千古傳,

風流?代笑?山。

多情自古?無岸,

留取詩心系小船!

 

在唐代,要出名,“武作俠客,文作?客” 才能風流百代,?然前提是武者武功卓?,文者文華蓋世。

前者如尉遲敬德,勇冠三軍,“馬上三奪?”;后者如杜牧,“十年一覺揚州夢,?得?樓薄幸名”。

 

  這開放的做派要從李世民算起,唐太宗李世民的母親竇氏是鮮卑族人。老?李淵生于??,自稱祖居??,是西?王李皓的后代。胡人風俗?亂,亂倫“?灰”,算不得稀奇。所以武則天可以在太宗死后成?兒子高宗的皇后;楊貴妃則上了公公唐玄宗的床。皇上都帶頭風流,平民更該自由。

 

王小波在《唐人故事》里說,?時的長安城里的成年男子,都被姑娘們親熱地稱?“舅舅”,且不論是否杜撰,多少有些映射些現實,可見?時的確開放。

 

  且看看唐人如何風流,武的從略,單說文客。領軍四人,大小李杜。

 

  先說小杜。杜牧26歲就中了進士,可升官不快,30出頭了,還只在淮南節度使牛僧孺(就是后來被?進“牛李?爭”的牛政客)的幕府?個小官,上班地點在揚州。?時有“一揚二益”的說法,這“揚”指的就是揚州,除了首都長安,揚州就是全國最繁華的都市。

 

  那時揚州是著名的紅燈區。一到?上,全域的歌樓夜總會有上万燈籠打出來,“九里三十步,街中珠翠?咽,邈如仙境”(于?《揚州夢記》)。

杜牧是單身漢,每天下班后就愛往其里鑽,如魚得水,夜生活?得?富多彩。等到杜牧任滿離開揚州的時候,牛僧孺提醒了一句:?還是應該注意點身體?。杜牧馬上抵賴說 “某幸常自檢守,不至貽尊憂耳” ??自己還是?注意?官形象的。

牛僧孺笑笑,讓人拿來一大堆暗訪記錄,杜牧一看,都是牛總派?差夜里??記錄的報告,上書“某年某月某?,宿某家,平安無事”等等。杜牧大窘,羞得連忙?頭。

多年后老領導牛僧孺離世,杜牧親自捉刀墓志銘,比給自己的墓志銘寫得還好,以表知遇之恩。

 

  后來杜牧回憶在揚州有?差護航?妓院的日子,寫下了著名的“十年一覺揚州夢”。雖然他在揚州過得腎虧?軟,但寫出了不少?于揚州的經典詩篇,以至于后人一提起小杜,就想起揚州。

 

  離開揚州后,杜牧貪色的毛病沒改。一次,李司徒宴請官員,因?杜牧身?監察御史(相?于現在的紀檢組長),李司徒?被雙規沒敢請他。李司徒的家妓號稱第一,杜牧?想去做個評委,就主動托人?李司徒打招?,要求赴宴。李司徒沒辦法,只好請他來。杜牧在家已經喝得?似??股,到了李司徒家,直著眼琢磨李的?多美女。又喝了一陣后,杜牧借著酒勁問:聽說有個叫紫云的,在?里?李司徒指給他看,杜牧?眼掃描了半天,說:果?名不虛傳,應該送給我。?人皆笑,他?皮厚?沒事。

 

  ?然情聖小杜也偶有失手的時候。一次他到湖州散心,湖州刺史順便拍馬,把附近的歌妓舞姬都召來讓他做專業鑒定。杜牧嫌不過?,提出在湖邊辦一次大型“50進20”的選秀活動,這樣他就可以挑一挑全城的美女。刺史?兄弟,?的照辦。但是杜牧眼睛太毒,看了一整天,競選不出個“最上鏡小姐”。

 

http://entertainments.dwnews.com/big5/news/2011-08-29/5806345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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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房宮賦

 

 《阿房宮賦》是我國唐代著名文學家、詩人杜牧的代表作之一。

 

  《阿房宮賦》被選入《古文觀止》卷七,編選者評論說:

 

“前幅極寫阿房之?麗,不是羨慕其奢華,正以見驕?斂怨之至,而民不堪命也,便伏有不愛六國之人意在。所以一炬之後回視向來?麗,亦複何有!以下因盡情痛悼之,爲隋廣、叔寶等人炯戒,尤有關治體。不若《上林賦》《子虛賦》,徒逢君之過也。”指出這篇作品“爲隋廣(隋煬帝)、叔寶(陳後主)等人炯戒,尤有關治體”,?有見地;但由於對杜牧的社會環境和政治態度缺乏了解,還未能准確地揭示作者的創作意圖和這篇作品的思想意義。   

 

  這篇賦充分體現了唐代文賦的特點,?描寫和議論緊密結合。前面極力鋪?渲染宮殿歌舞之盛,宮女珍寶之多,人民痛苦之深,?誇張,又富於想象,且比?奇巧新穎。後面發議論,回環往複,層層推進,見解精?,發人深省。語言上?散兼行,錯落有致,詞采?麗,聲調和諧,一掃漢賦那種平板單調的弊病,成爲我國古代賦體中不可多得的佳作。  

 

 

【原文】

 

六王畢(完了),四海一;蜀山兀(山高而頂平之謂),阿房出(出現)。覆壓三百餘里,隔離天日。驪山北構而西折,直走咸陽。二川溶溶(水波廣大的樣子),流入宮牆。五步一樓,十步一閣;廊腰(廊的轉折處)?(繒帛)回,?牙(?際翹出像“牙”叫“?牙”)高啄(鳥吃東西叫“啄”);各抱地勢,?心?角。盤盤(形容曲折的樣子)焉,??(簇簇)焉,蜂房水渦,矗(高聳)不知其幾千萬落(居處叫落)。長橋?波,未云何龍?復道行空,不霽(雨後)何虹?高低冥迷(深邃幽遠,使人迷惑),不知西東。歌台暖響,春光融融(和樂);舞殿冷袖,風雨凄凄(寒?)。一日之內,一宮之間,而氣候不齊。

 

妃嬪?(從嫁之人謂?)?,王子皇孫,辭樓下殿,輦(用人力挽行的車)來於秦;朝歌夜弦,?秦宮人。明星熒熒(光閃動貌),開?鏡也;綠雲擾擾(紛亂貌),梳曉?(早晨梳頭)也;渭流漲?,棄脂水也;煙斜霧橫,焚椒(香木)蘭也;雷霆乍驚,宮車過也;??(車行聲)遠聽,杳不知其所之也。一肌一容,盡態極?;?立(慢慢等待)遠視,而望幸焉,──有不得見者,三十六年!

 

燕趙之攻藏,魏韓之經營,齊楚之精英,幾世幾年,剽掠(劫奪)於人,倚疊(堆積)如山;一旦不能有,輸來其間。鼎?(鍋)玉石,金塊珠礫;棄擲??(旁行連延),秦人視之,亦不甚惜。

 

嗟乎!一人之心,千萬人之心也。秦愛紛奢(奢華),人亦念其家;奈何取之盡?銖(指極細小的東西),用之如泥沙!使負棟之柱,多於南畝之農夫;架梁之椽,多於機上之工女,釘頭??(水中見石的樣子),多於在庾(穀倉)之粟粒;瓦縫參差,多於周身之帛縷;直欄橫檻,多於九土(九州)之城郭;管弦嘔啞(樂聲),多於市人之言語。使天下之人,不敢言而敢怒;獨夫(指無道之君)之心,日益驕固。戍卒(守邊的兵卒)叫,函谷?(被攻陷),楚人一炬(火把),可憐焦土!

 

嗚呼!滅六國者,六國也,非秦也;族(殺滅全族)秦者,秦也,非天下也。嗟夫!使六國各愛其人,則足以拒秦;秦復愛六國之人,則遞(傳)三世可至萬世而?君,誰得而族滅也?秦人不暇自哀,而後人哀之;後人哀之,而不鑒之,亦使後人而復哀後人也!

 

 

 

【白話試譯】

 

六國全完了,四海統一了,蜀山頂上平了,阿房宮出現了。這宮?地三百餘里,覆蓋面積寬廣而高聳,連天日都被?隔離。北邊從驪山開始建築起,曲曲折折的向西彎,一直修到咸陽城。樊、渭二川的水,波浪溶溶的流進了宮牆裡。五步一座樓,十步一個閣;廊腰像繒帛一樣輾轉?環,?牙像飛鳥似的伸嘴高張;依着地勢的高低起伏,建構出樓閣重疊、屋角交錯、相互穿?、互相連接的態勢。彎彎曲曲的,密密層層的,像蜂房,像水渦,巍峨矗立着,不知道有幾千萬所。水上長橋橫?的樣子,令人驚奇:沒有雲霧陪伴,??會有龍出現?凌空曲廊的色澤?紛,使人讚歎:?非雨後,??會有彩虹高掛?高低幽深、曲折迷離,令人東西莫辨。歌台上,暖洋洋的曲調,像融融的春光那樣?貼人心;舞殿里,?下了的???的舞袖,掛在風雨凄凄的角落。就在同一天里,同一宮殿中,天候、氣??是大不相同。

 

六國國君的宮眷和他們的王子、皇孫,被迫辭別了自己的重樓玉殿,以車子運送到秦國;日夜的操弄樂器、習歌練唱,成了秦國的歌舞宮人。明星的光芒閃耀──不,那是宮女們?開了?鏡?;綠色的雲?紛呈──不,那是宮女們晨起齊梳頭?;渭川的柔波里,飽含了香?味兒,那是宮裡傾倒的脂粉水?;迷?的煙霧團,橫斜升騰往上竄,那是宮裡焚燒的椒蘭香?;雷霆般巨響?然令人吃驚,那是宮裡的車馬行過?;雖然那??遠去的車行聲依然能聽聞,可?是這般的依稀渺茫,不知??往何處去?。那些宮女們的肌膚容貌,極盡?媚明麗;?們在慢慢的等待着、遠遠的觀看着,希冀着皇上,有朝一日的臨幸,──可是有?多人,在皇上在位的三十六年中,一次也沒見過他的面?。

 

那些燕、趙兩國所收藏的,魏國、韓國所經營的,以及齊、楚二都的精華,這些都是經過幾世幾年,從人民手裡劫奪過來,據?皇室所有,因此一向都堆積得像山一般高;一旦戰敗不能保有了,全部運回其間而歸秦國擁有。這類東西一多,就不再珍貴了,拿着寶鼎當鐵鍋、美玉當石頭、黃金當土塊、珠鑽當瓦礫;一路隨便?棄、沿途故意?擲,秦國上下看着,也不覺得可惜。

 

?!一個人的心,和千萬個人的心本沒有甚?不同的!秦朝流風喜愛奢華,可一般老百姓也都珍惜顧念自己的家園?;?甚?在?取時,?銖必較、絲毫不留,而動用時,?像泥沙一樣毫不顧惜?!?何使那建構棟樑的柱子,多過田地里的農夫;??上樑架牆的椽子,多過紡織機上的女工;那突出的釘頭數目,多過穀倉里的粟粒;那參差的瓦縫間隙,超過身上穿的棉帛絲縷;直欄橫檻,多過天下的郡縣城郭;管弦樂聲,超越市集的?雜人語。使那普天下的人民,都敢怒而不敢言;獨夫之心,一天比一天益發驕橫起來。等到戍卒一高呼,函谷關一陷落,楚國人來放一把火,可憐一切就化?焦土了!

 

?!滅六國的就是六國自己,不是秦國?;滅秦國的就是秦國自己,不是天下的人民?。可嘆?!假使六國都能各自愛護他們的臣民,那?,抵抗秦國是綽綽有餘的;?若秦國能再愛護、珍視這六國的子民,那?,可能這皇位就由二世傳到三世,甚至直到萬世,誰能殲滅他??秦人是來不及?自己悲哀了,?讓後人去替他們悲哀;後人雖然替他們悲哀,自己?不能以之?戒,如此,只好又使後世的人,再來?後人悲哀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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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春 / 唐 杜牧

 

千里?啼1?映?,

水村山郭2酒旗3?。

南朝4四百八十寺5,

多少?台6烟雨7中。

 

字?注?

?啼:??啼燕?。

郭:外城。此?指城?。

酒旗:一??在?前以作?酒店??的小旗

南朝:指先后?北朝?峙的宋、?、梁、?政?。

四百八十寺:南朝皇帝和大官僚好佛,在京城(今南京市)大建佛寺。据《南史·循吏·郭祖深?》?:“都下佛寺五百余所”。?里?四百八十寺,是??

?台:??亭台。此?指寺院建筑

烟雨:?雨蒙蒙,如烟如?。[2]

 

 

杜牧〈江南春?句〉:

「千里鶯啼綠映紅,水村山郭酒旗風。南朝四百八十寺,多少樓臺煙雨中?」

 

這首詩寫江南春景之盛,藉以反?南朝鼎盛終成歷史,歷史興衰如此,可以使奔競之人稍歇矣

千里江南紅花綠葉,顯得如此生意?然,耳畔盡是鶯啼,何等悅耳!

放眼望去,水村邊、山郭間,無處不是?著酒旗,一片繁華景象。想當初南朝梁武帝時,在建康?今南京?興建寺廟,達五百多座,

然如今全在煙雨之中,顯得是如此蕭條。歲月更迭,人事興衰,人若推究事理,?可以處炎?之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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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宣州開元寺水閣閣下宛溪夾溪居人(杜牧 唐詩)

 

六朝文物草連空,天淡雲閑今古同。

鳥去鳥來山色里,人歌人哭水聲中。

深秋簾幕千家雨,落日樓台一笛風。

??無因見範?,參差煙樹五湖東。

 

六朝文物草連空,天澹雲閑今古同。

鳥去鳥來山色裏,人歌人哭水聲中。

深秋簾幕千家雨,落日樓臺一笛風。

??無因見範?,參差煙雨五湖東。

 

 

 

題宣州開元寺水閣閣下宛溪夾溪居人

 

【題宣州開元寺水閣閣下宛溪夾溪居人】

是唐代詩人杜牧創作的一首七言律詩。

此詩前六句以六朝文物消失和天光水色依舊對比,表達一種人事無常而自然永恒的感慨。

後兩句忽然又聯想到範?,感慨『蕭條異代不同時』,自己與他無緣相見,隻能懷著仰慕的心情憑吊他的遺?。

 

 

題宣州開元寺水閣閣下宛溪夾溪居人⑴

六朝文物草連空⑵,

天淡雲閑今古同⑶。

鳥去鳥來山色裏,人歌人哭水聲中⑷。

深秋簾幕千家雨,落日樓台一笛風⑸。

??無日見範?⑹,

參差煙樹五湖東⑺。

 

注釋譯文

 

⑴宣州:唐代州名,在今安傲省宣城縣一帶。

:建於東晉,初名永安寺,唐開元二十六年(738)改名開元寺。

水閣:開元寺中臨宛溪而建的樓閣。

宛溪:又叫東溪,在宣州城東

夾溪居人:夾宛溪兩岸居住著許多人家

⑵六朝:指吳、東晉、宋、齊、梁、陳六個朝代。文物:指禮樂典章。

⑶淡:恬靜。閑:悠閑。

人歌人哭:語出【禮記,檀弓下】:『歌於斯,哭於斯,聚國族於斯,』意思是祭祀時可以在室內奏樂,居喪時可以在這裏痛哭,也可以在這裏宴聚國賓及會聚宗族。詩中借指宛溪兩岸的人世世代代居住在這裏。

⑸笛風:笛聲隨風飄動。

⑹範?:春秋末政治家,字少伯,楚國宛(今河南省南陽縣)人,越國大夫,輔佐越王勾踐滅吳,事成後遊於齊國,改名?夷皮子。到陶(今山東定陶西北),又改名陶朱公,以經商致富。【吳越春秋】中說他『乃乘扁舟,出三江,入五湖,人莫知其所適。』

⑺參差:高低不齊的樣子。

五湖:指太湖及其相屬的?湖?湖、射湖、貴湖等四個小湖的合稱,因而?可以用作太湖的別稱。其他在宣州城之東,屬江蘇省。這裏指太湖

 

六朝的丈物荒皮雜草叢生

天高雲淡千般景物古今同。

蒼山?柏間百鳥飛來飛去,

世世代代生活水?山寨中。

簾幕外千家承受連綿秋丙,

日落西山傳來悠揚的笛聲。

內心裏??無緣見到範?,

隻好掠過樹木凝望太湖東。

 

創作背景

這首詩當寫於開成三年(838),當時杜牧任宣州團練判官。這首詩是他遊開元寺,登水閣時的所見所聞及觸景所發而作的。

 

作品鑒賞

詩一開始寫登臨覽景,勾起古今聯想,造成一種籠?全篇的氣?:

六朝的繁華已成陳跡,放眼望去,隻見草色連空,那天淡雲閑的景象,倒是自古至今,未發生什?變化

這種感慨固然由登臨引起,但聯係詩人的經曆看,還有更深刻的內在因素。詩人此次來宣州已經是第二回了。

八年前,沈傳師任宣?觀察使(治宣州)的時候,他曾在沈的幕下供職。

這兩次的變化,如他自己所說:『我初到此未三十,頭腦?利筋骨輕。』『重遊?白事皆改,唯見東流春水平。』(【自宣州赴官入京路逢裴坦判官歸宣州因題贈】)

這自然要加深他那種人世變易之感。這種心情?透在三、四兩句的景色描寫中:敬亭山象一麵巨大的翠色?風,展開在宣城的近旁,飛鳥來去出沒都在山色的掩映之中。宛溪兩岸,百姓臨河夾居,人歌人哭,?合著水聲,隨著歲月一起流逝。這兩句似乎是寫眼前景象,寫『今』,但同時又和『古』相溝通。

飛鳥在山色裏出沒,固然是向來如此,而人歌人哭,也?非某一片刻的景象。

『歌哭』言喜慶喪吊,代表了人由生到死的過程。

『人歌人哭水聲中』,宛溪兩岸的人們就是這樣世世代代聚居在水邊。這些都不是詩人一時所見,而是平時積下的印象,在登覽時被觸發了。

 

接下去兩句,展現了時間上?不連續?又每每使人難忘的景象:一是深秋時節的密雨,像給上千戶人家掛上了層層的雨簾;一是落日時分,夕陽掩映著的樓台,在?風中送出悠揚的笛聲。兩種景象:一陰一晴;一朦朧,一明麗。在現實中是難以同時出現的。但當詩人麵對著開元寺水閣下這片天地時,這種雖非同時,然而?是屬於同一地方獲得的印象,彙集複合起來了,從而融合成一個對宣城、對宛溪的綜合而長久性的印象。這片天地,在時間的長河裏,就是長期保持著這副麵貌?。

這樣,與『六朝文物草連空』相映照,那種文物不見、風景依舊的感慨,自然就愈來愈?烈了。

客觀世界是持久的,歌哭相迭的一代代人生?是有限的。這使詩人?吟和低回不已,於是,詩人的心頭浮動著對範?的懷念,無由相會,隻見五湖方向,一片參差煙樹而已

五湖指太湖及與其相屬的四個小湖,因而也可視作太湖的別名。從方位上看,?們是在宣城之東。春秋時範?曾輔助越王勾踐打敗吳王夫差,功成之後,?了避免越王的猜忌,乘扁舟歸隱於五湖。他??在大自然的山水中,?後人所?羨。詩中把宣城風物,描繪得?美,??得流連,而又慨歎六朝文物已成過眼雲煙,大有無法讓人生永駐的感慨。這樣,遊於五湖享受著山水風物之美的範?,自然就成了詩人懷戀的對象了。

 

詩人的情??不高,但把客觀風物寫得?美,?在其中織入『鳥去鳥來山色裏』、『落日樓台一笛風』這樣一些明麗的景象,詩的節奏和語調輕快流走,給人爽利的感覺。明朗、健爽的因素與低回??交互作用,在這首詩裏體現出了杜牧詩歌的所謂拗?的特色。

 

 

【四溟詩話】:此上三句落?字,皆自?其聲,韻短調促,而無抑揚之妙。

【唐音戊簽】:【冷齋夜話】雲:看似秀整,熟視無神氣(『深?簾幕』一聯下)。

【貫華堂選批唐才子詩】:『去』、『來』、『歌』、『哭』字,是再寫一;『山色』、『水聲』字,是再寫二。妙在鳥、人平?,夫天澹雲閑之中,?乃何人何鳥(『鳥去鳥來』二句下)。』

金雍補注:『簾幕』五字是?『深秋』,『樓台』五字是?『落日』,切不得謂是寫『雨』寫『笛』。唐人法如此。

【?砂唐詩】:敏曰:每於此等句法,最愛其全無?字,而其中自具神通(『深秋簾幕』二句下)。

【初白庵詩評】:第二聯不獨寫眼前景,含蓄無窮。

【唐三體詩評】:寄托高遠,不是逐句寫景,若?題所漫,便無味矣。『今古』二字,已暗透後半消息,五、六正?結句蓄勢也。

【唐詩快】:奇語?刻(『人歌人哭』句下)。可想可?(『深秋簾幕』句下)。

【唐詩繹】:此詩言人事有變易,而?景則古今不變易。『今古同』三字,詩旨點眼,全身提筆。

【唐詩成法】:一、二從宣州今古慨歎而起,有飛動之勢。閑適題詩,?吊古。胸中眼中,別有緣故。氣甚豪放,?唐不易得也。

【一瓢詩話】:杜牧之?唐翹楚,名作頗多,而恃才縱筆處亦不少。如【題宣州開元寺水閣】直造老杜門牆,豈特人稱小杜已哉!

【山滿樓箋注唐詩七言律】:七、八用感慨作結,生必有死,盛必有衰,此自然之理。

【曆代詩法】:藻思蘊蓄已久,偶與境會,不禁觸?而來。

【唐詩箋注】:此傷唐末之亂,因念六朝,曰『今古同』。

【網師園唐詩箋】:三四無窮寄慨,五六寫景處,可以步武?蓮。

【唐賢小三昧集續集】:高調秀韻,兩擅其勝(『深秋簾幕』聯下)。【西圃詩說】:唐人句如『一千裏色中秋月,十萬軍聲半夜潮』、『胡蝶夢中家萬裏,杜鵑枝上月三更』、『深秋簾幕千家雨,落日樓台一笛風』,人爭傳之。然一覽便盡,初看整秀,熟視無神氣,以其字露也。

【瀛奎律髓彙評】:何義門:六朝不過瞬息,人生那可不乘壯盛立不朽之功!然而此懷誰可與語?『風』『雨』二句,思同心而莫之致也。我思古人之功成身退如範子者,雖?執鞭,所欣慕焉。五六正?結句。紀?:趙飴山極賞此詩,然亦隻風調可觀耳,推之未免太過。無名氏(甲):此詩妙在出新,?不沾?玄暉、太白剩語。許印芳:此詩全在景中寫情,極灑脫,極含蓄,讀之再三,神味益出,與空講風調者不同。學者須從運實於虛處求之,乃能句中藏句,筆外有筆。若徒?摩風調,流弊不可勝言矣。趙熙:風調好。

【唐宋詩?要】:吳北江曰:起四句極奇,小杜最喜琢製奇語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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垂鞭信馬行,數里未?鳴。

林下帶殘夢,葉飛時忽驚。

霜凝孤鶴?,月曉遠山?。

?僕休辭險,時平路複平。

 

 

早行

 

垂鞭信?行,?里未??。

林下???,???忽?。

霜凝孤??,月??山?。

??休??,?平路?平。

 

作品?析

 

前四句?早行所感。起早?路,?人?有明?早到什??候,他只?自己上??程以后,无力地垂着?鞭,而??自己自由地前?;走?了?里,在???的??里,?未????。

“林下???”使人意?到?人是由??中被?起?上路的。以致出?以后,依然?思??,睡意??,足?其?路之早。“???忽?”,

是?上一句?的承接和申述,?一步强?出“早行”?。“林下”和“??”互文,只有在林下路?,才?被落?所?醒。?就把行旅者早行?的情景,十分?切地描摹了出?。

 

第五、六句是?人通?自己身?的?境??早行。

“霜凝孤??,月??山?” 正反映出?唐?期??的社???中,?人早行?的心理??。此刻天??早,天宇大地???于一片迷蒙的夜色之中。??情景,?于一?野旅行役者??,是??生一?孤?寂寞之感的。前路漫漫,思???,各?各?的操心也就油然而生。

“孤?”?其?是??之景,?不如?是作者的自?。?人的心?不?、心神不定,不言而?。因此,??句?明?地表?出?人早行?的那?特有的悲?、孤度寂莫的心理感受。至此,早行?的凄???、早行者的孤苦情?,情景交融地表?了出?。

 

后?句?作者和??的交流和行?。“??休??”,???抱怨路途??,漫漫无?的?候,作者回答?“?平路?平”,?然,此“平”非彼“平”,作者?尾用?????之?近乎玩笑般的??作?,也正反映出了自己?于?局的??和??。作??唐的一位?人,杜牧?于?唐的?局有着??深切的了解和?切,他的?多?歌反映了?方面的?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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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齊安城樓(杜牧 唐詩)

 

 

嗚咽江樓角一聲,微陽??落寒汀。

不用憑?苦回首,故?七十五長亭。

 

嗚軋江樓角一聲,微陽??落寒汀。

不用憑欄苦回首,故?七十五長亭。

:嗚軋w? y?:吹角聲。

 

嗚咽江樓角一聲,微陽??落寒汀。不用憑?苦回首,故?七十五長亭。/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嗚軋】形容吹角聲。唐˙杜牧˙題齊安城樓詩

 

 

作品鑒賞

 

唐時每州都有一個郡名(因公元618年唐高祖改隋郡?州,公元742年唐玄宗又改州?郡,唐肅宗時複改?州,所以有這種情況),『齊安』則是黃州的郡名。詩當作於武宗會昌(841-846)初作者出守黃州期間。

 

這首宦遊思?之作,讚許者幾乎異口同聲地稱引其末句。明人楊?說:『大抵牧之詩,好用數目?積,如「南朝四百八十寺」、「二十四橋明月夜」、「故?七十五長亭」是也。』(【升菴詩話】)?王漁洋更說:『唐詩如「故?七十五長亭」、「紅?四百九十橋」,皆妙,雖「算博士」何妨!……高手驅使自不覺也。』(【帶經堂詩話】)說?數字運用頗妙,確不乏見地;?再予伸論如下。

 

此詩首句『嗚軋(一作嗚咽)江樓角一聲』,『一聲』兩字?可玩味。本是暮角聲聲,斷而複連,隻寫『一聲』也就是第一聲,是?調?對詩中人影響甚著。他一直高踞城樓,俯臨大江,憑欄回首,遠眺通向?關之路。正出神之際,忽然一聲角鳴,使他不由驀然驚醒,這才發現天色已?,夕陽已?沒水天之際。這就寫出一種『苦回首』的情態。象聲詞『嗚軋』,用在句首,正造成似晴空一聲雷的感覺。

 

由於寫『一聲』就?生一個特殊的情節,與『吹角當城片月孤』一類寫景抒情詩句同中有異。嗚咽的角聲又造成一種??氣?,那『??』的江水,?淡無光的夕陽,水中的汀洲,也都帶有幾分寒意。『微』、『寒』等字均著感情色彩,寫出了望?人的主觀感受。

 

暮色蒼茫,最易牽惹?思離情。詩人的故家在長安杜陵,長安在黃州西北。『回首夕陽紅盡處,應是長安。』(宋張舜民【賣花聲】)『微陽??落寒汀』,正是西望景色。而三句?作轉語說:『不用憑欄苦回首』,似是自我勸解,因?『故?七十五長亭』,?使回首也不能望盡這?遞關山。這是否定的語勢,實際上形成唱歎,起著?化詩情的作用。

 

按唐時計量,黃州距長安二千二百五十五裏(【通典】卷一八三),驛站恰合『七十五』之數(古時三十裏一驛,每驛有亭)。但這裏的數字?積還別有妙處,?以較大數目寫出『何處是歸程,長亭更短亭』的家山遙遠的情景,修辭別致;而隻見歸程,不見歸人,意味深長。從音節(頓)方麵看,由於運用數字,使末句形成『二三二』的特殊節奏(通常應?『二二三』),聲音的拗折傳達出憑欄者情?的不平靜,又是一層妙用。

 

唐代有的詩人也喜堆?數字,如駱賓王,?不免被譏?『算博士』。考其原因,乃因其數字的運用多是?了屬對方便,過露痕跡,用得又太多太濫,也就容易惹人生厭。而此詩數字之設,則出於表達情感的需要,是藝術上的別出心裁,所以驅使而令人不覺,?可誇口『雖「算博士」何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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赤壁 杜牧

 

折戟沈沙鐵未銷,自將磨洗認前朝。

東風不與周?便,銅雀春深鎖二喬。

 

譯文:

折斷的?戟沈沒在泥沙中?未銷融,拾起磨洗一番,仍可隱約看見歷史的刀光劍影。

?若東風不來,周瑜??能借東風火燒曹操八十萬水軍而大獲全勝??

三國大局不定,想必曹操兩年後在?都(今河北臨?縣)建造銅雀臺廣羅天下名姬的時候,東吳美人大喬(孫策夫人)和小喬(周瑜夫人)可能就深鎖銅雀,春恨無限了。

 

註釋:

1.此詩又見李商隱集。赤壁:今湖北浦圻縣西北赤壁山,在長江南岸,?三國時赤壁大戰之地。

2.不與:若不與。

3.銅雀:建安十五年(210)曹操於?城(今河北臨?縣西)建造銅雀臺,因樓頂鑄有大銅雀而得名。《水經註·濁濟水篇》:"?西三臺,中曰銅雀臺,高十丈,有層百一間。"二喬:《三國誌·吳書·周瑜傳》:"喬公兩女,皆國色也。策自納大喬,瑜納小喬。裴註引《江表傳》曰:"策從容?瑜曰:'喬公二女,雖流離,得吾二人作?,亦足?歡。'"

 

 

赤壁① 杜牧

折戟②?沙?未?③,自?磨洗?前朝④。

??⑤不?周?⑥便,?雀⑦春深?二?⑧。

 

【注?】:

①此?又?李商?集。赤壁:今湖北浦圻?西北赤壁山,在?江南岸,?三??赤壁大?之地。

②折戟?沙:折?的戟?入沙中;戟:一?武器。  

③?:??。     

④?前朝:?出戟是??破曹?的?物   

⑤ ??:??以火攻攻打西面的曹?要借助??。  

⑥周?:指周瑜,字公瑾,年???有才名,人?周?。后任??大都督。   

⑦ ?雀:??雀台,建安十五年(210)曹操于?城(今河北???西)建造?雀台,因???有大?雀而得名。台上住姬妾歌妓,是曹操暮年行??。

⑧二?:???公的??女?,一嫁前?主?策(??兄),?大?,一嫁?事??周瑜,?小?,合?“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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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烏江亭

《題烏江亭》 ??杜牧

 

勝敗兵家事不期,

包羞忍恥是男兒。

江東子弟多才俊,

卷土重來未可知。

 

 

作品注釋

 

1.烏江亭:在今安徽和縣東北的烏江浦。《史記·項羽本紀》載:項羽兵敗,烏江亭長備好船勸他渡江回江東再圖發展,他覺得無?見江東父老,乃自刎於江邊。

2.不期:難以預料。

3.包羞忍恥:意謂大丈夫能屈能伸,應有忍受屈恥的胸襟氣度。

4.江東:指江南蘇州一代。

 

作品賞析

 

此詩與前選《赤壁》詩一樣,議論戰爭成敗之理,提出自己對歷史上已有結局的戰爭的假設性推想。首句言勝敗乃兵家常事。次句批評項羽胸襟不?寬廣,缺乏大將氣度。三四句設想項羽假如回江東重整旗鼓,說不定就可以卷土重來。這句有對項羽負氣自刎的?惜,但主要的意思?是批評他不善於把握機遇,不善於聽取?人的建議,不善於得人、用人。司馬遷曾以史家眼光批評項羽"天亡我,非戰之罪"的執迷不悟。杜牧則以兵家的眼光論成敗由人之理。二人都注重人事,但司馬遷是總結已然之?訓,?調其必敗之原因;杜牧則是假想未然之機會,?調兵家須有遠見卓識和不屈不撓的意志。

 

首句直截了當地指出勝敗乃兵家之常這一普通常識,?暗示關鍵在於如何對待的問題,爲以下作好鋪?。“事不期”,是說勝敗的事,不能預料。    

  次句?調指出隻有“包羞忍恥”,才是“男兒”。項羽遭到挫摺便灰心喪氣,含羞自刎,??算得上?下的“男兒”??“男兒”二字,令人聯想到自?爲力超過山河,氣可蓋世的西楚?王,直到臨死,還未?到自己失敗的原因,隻是歸咎於“時不利”而羞憤自殺,有愧於他的“英雄”稱號。 

 

第三句“江東子弟多才俊”,是對亭長建議“江東雖小,地方千里,?數十萬人,亦足王也”的藝術?括。人們曆來欣賞項羽“無面見江東父兄”一語,認爲表現了他的氣節。其實這恰好反映了他的剛愎自用,聽不進亭長忠言。他錯過了韓信,氣死了範增,確是愚蠢得可笑。然而在這最後關頭,如果他能面對現實,“包羞忍恥”,采納忠言,重返江東,再整旗鼓,則勝負之數,或未易量。這就又落?到了末句。

 

 “卷土重來未可知”,是全詩最得力的句子,其意蓋謂如能做到這樣,還是大有可爲的;可惜的是項羽?不肯放下架子而自刎了。這樣就爲上面一、二兩句提供了有力的依據,而這樣急轉直下,一氣呵成,令人想見“江東子弟”“卷土重來”的情狀,是頗有氣勢的。同時,在?惜、批判、諷刺之餘,又表明了“敗不?”的道理,也是頗有積極意義的。 

 

議論不落傳統說法的?臼,是杜牧詠史詩的特色。諸如“東風不與周?便,銅雀春深鎖二喬”(《赤壁》),“南軍不袒左邊袖,四老安劉是滅劉”(《題商山四皓廟》),都是反說其事,筆調都與這首類似。宋人胡仔在《苕溪漁隱叢話》中謂這首詩“好異而畔於理……項氏以八千人渡江,敗亡之餘,無一還者,其失人心爲甚,誰肯複附之?其不能卷土重來,決矣。”?人吳景旭在《曆代詩話》中則反駁胡仔,說杜牧正是“用?案法,跌入一層,正意益醒”。其實從歷史觀點來看,胡氏的指責不爲無由。吳景旭爲杜牧辯護,主要因這首詩借題發揮,宣?百摺不撓的精神,是可取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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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揚州韓綽判官

 

【寄揚州韓綽判官】是唐代詩人杜牧離開揚州以後懷念昔日同僚韓綽判官而作。此詩著意刻?深秋的揚州依然綠水?山、草木蔥?,二十四橋月夜仍然樂聲悠揚,調侃友人生活的閑逸,表達了作者對過往揚州生活的深情懷念。全詩意境優美,?麗俊爽,情趣?然。

 

寄揚州韓綽判官⑴【唐】杜牧

 

?山隱隱水??⑵,

秋盡江南草未凋⑶。

二十四橋明月夜⑷,

玉人何處?吹簫⑸。

 

注釋譯文

 

韓綽:事不詳,杜牧?有【哭韓綽】詩。判官:觀察使、節度使的屬官。時韓綽似任淮南節度使判官。公元833年(唐文宗大和七年)至835年(大和九年),杜牧曾任淮南節度使掌書記,與韓綽是同僚。

⑵??:指江水悠長遙遠。一作『遙遙』。

⑶草未凋(di?o):一作『草木凋』。凋:凋謝

⑷二十四橋:一說?二十四座橋。北宋沈括【夢溪筆談·補筆談】卷三中對每座橋的方位和名稱一一做了記載。

一說有一座橋名叫二十四橋,?李?【揚州?舫錄】卷十五:『?四橋?吳家?橋,一名紅藥橋,在熙春台後,揚州鼓吹詞序雲,是橋因古二十四美人吹簫於此,故名。』

⑸玉人:貌美之人。這裏指韓綽。一說指揚州歌妓。?:使,令。

 

?山隱約綠水悠悠長流,江南深秋草木還未凋零。

明亮月光映照二十四橋,?是否還在聽美人吹簫?

 

創作背景

 

這首詩是杜牧被任?監察禦史,由淮南節度使幕府回長安供職後所作,具體寫作時間約在公元835年(唐文宗大和九年)秋或836年(開成元年)秋。唐代的揚州,是長江中下遊繁榮的都會,店肆林立,商賈如雲,酒樓舞?,比比皆是,『每重城向夕,倡樓之上,常有絳紗燈數萬,輝羅耀列空中,九裏三十步街中,珠翠?咽,邈若仙境』(【太平廣記】卷273引【唐闕文】)。『性疏野放蕩』的杜牧,在這樣的環境中,常出沒於?樓倡家,有不少風流韻事,韓綽在這方麵是他同道,所以回到長安後寫詩寄贈。

 

作品鑒賞

 

這首詩詩人寫得極其雅致,優雅中見意境。這是一首抒寫友情的詩篇,表現手法委婉多致,可謂曲盡其妙。詩的前兩句寫景。首句先以山之隱忽難見?容和水之?遞遠去,以遠處的?麵暗寫友人不在身邊,故對他思念之意生出。

 

二句以『江南草木凋』反?地處江北的揚州的豪華熱鬧,是由人及景的抒情手法。在事實上江南若『草木凋』,江北就更應零落不堪。作者想象揚州就將是?一番大好景象了。這叫情至深時連天時氣候都可?之改變。謝枋得認?這句寫『厭江南之寂寞,思揚州之歡娛,情雖切而辭不露』,是?有見地的。

 

三四句以想象之辭寫揚州名勝之美景,表達了詩人欲與友人再次共遊的渴盼。『玉人?吹簫』中的『?吹簫』隻是虛言,實處在『玉人』兩字,?是友人韓綽。此句一用以點題,二用來想象他的遊?,從而表明作者對他現狀的關心,同時也就表示了對他的遙念。其間抒情之跡線不可不審視?楚。『二十四橋明月夜,玉人何處?吹簫』,作者雖重在抒情,但在後世讀者的心目中,其中對揚州勝景的讚美成分已大大超過前者,成?描寫古都揚州的不朽名句之一。

 

有杜牧的【贈別二首】其一的『春風十裏揚州路,卷上珠簾總不如』,張祜的『十裏長街市井連,月明橋上看神仙』,王建的『夜市千燈照碧雲,高樓紅袖客紛紛』,徐凝的『天下三分明月夜,二分無賴(可愛之意)是揚州』等。本詩中的二十四橋,在宋代依然是文人墨客的描寫熱點,薑夔的【揚州慢】詞中有『二十四橋仍在,波心蕩,冷月無聲』,寫的雖是舊時勝地,表達的?是傷亂憂世的悲情,打上了深深的時代烙印。王士禎以後?此橋寫詩讚美的有7000餘人,編成300多卷的詩集一部,一時蔚?壯觀,成?文學史上的美談。最後兩句在?風明月之夜,心想友人是否和女子倚簫歌舞。此詩之美,在於景致優美,意境深遠。

 

名家點評

 

劉建勳:這是一首調笑詩。詩的首聯是寫江南秋景,說明遠在繁華之?還懷念著故人的背景,末聯是借揚州二十四橋的典故,與友人韓綽調侃。意思是說?處在東南形勝的揚州,當此深秋之際,在何處?玉人吹簫取樂??意境優美,?麗俊爽,情趣?然,千百年來,傳誦不衰。

 

 

?山隱隱水??,秋盡江南草木凋。

二十四橋明月夜,玉人何處?吹簫。

 

韓綽:生平不詳。

判官:唐時節度使、觀察使的屬官。

隱隱:隱隱約約,時隱時現的樣子。

??:遙遠。草木凋:一作“草未凋”。

 

二十四橋:揚州名勝。又名紅藥橋,古有二十四美人吹簫於此,故名。

本詩?用此傳說。玉人:美人。

 

[賞析]

這是一首懷人之作。第一句寫景,給人以悠遠的感覺。第二句寫深秋的江南草木凋零,?下面的?嘆作鋪?,把江南秋色的特點描繪了出來。第三、四句?寫出月夜的幽靜,又有聲有色地用二十四橋美人吹簫的典故,探問友人近況,表現了他們之間的深厚友誼。

 

【??解?】

二十四?:?州名?二十四。

1.??:事不?,杜牧?有《哭??》?。判官:?察使、?度使的僚?。???似任淮南?度使判官。文宗大和七至九年(833-835),杜牧曾任淮南?度使掌??,???是同僚。

2.??:一作??,指江水悠???。

3.草未凋(diao):一作草木凋(diao)?。

4.二十四?:一??二十四座?。北宋沈括《?溪??·???》卷三中?每座?的方位和名?一一做了??。一?有一座?名叫二十四?,?李斗《?州?舫?》卷十五:“?四???家??,一名???,在熙春台后,……?州鼓吹?序云,是?因古二十四美人吹?于此,故名。”

5.玉人:美人。一解指?州的歌女;一解?杜牧?????玉人。

 

 

【譯文】

  ?山隱隱起伏,江流千里??。時今已過深秋,江南草木?未凋謝。揚州的二十四橋,在月色中顯得格外的妖?。老朋友?在何處,聽取美人****。

  【鑒賞】

  詩的頭兩句寫景。第一句攝取的是遠鏡頭,揚州一帶遠處?翠的山巒,隱隱約約,給人以迷離恍惚之感;江水東流悠長遙遠,給人以流動輕快的感受。第二句是想像江南雖在秋天,但草木?未完全凋零枯黃,表現優美的江南風光。這兩句是從山川物候來寫揚州,?後兩句詢問韓綽別後的情況作??。最後兩句的重點在於探問韓綽在?風明月之夜,是不是和歌伎們倚簫而唱,歌舞通宵。

  這是一首調笑詩。詩的首聯是寫江南秋景,說明懷念故人的背景,末聯是借揚州 二十四橋的典故,與友人韓綽調侃。意思是說?處在東南形勝的揚州,當此深秋之際,在何處?玉人****取樂??意境優美,?麗俊爽,情趣?然,千百年來,傳誦不衰。

 

 

?于“未”和“木”

 

秋?江南草未凋

 

?一句??有??版本,?一?是“秋?江南草木凋”,“未”作“木”字。我??向????,原因有三,一是上一句有“?山??”之?,?若凋?,便不是?山了;二是??字的可能性??,?未作木的可能更大一些,因“草木”是常?,“草未”是非常?,反???稍稍奇怪;三是眼前?景,小杜所?的?州和南京?候相差原本不大,??也正是秋?冬?,而?外草木固??如昨,?但不凋,???也甚少?。有此三?,宜其未凋。

 

??摘自 江湖歌者-博客大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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泊秦淮 唐?杜牧

 

煙籠寒水月籠沙,夜泊秦淮近酒家。

商女不知亡國恨,隔江猶唱後庭花。

 

注釋:

1、秦淮:河名,源出江蘇省?水縣,貫穿南京市。

2、商女:賣唱的歌女。

3、後庭花:歌曲名,南朝後主所作《玉樹後庭花》,後人亡國之音。

 

?譯:

煙霧彌漫秋水,月光籠?著白沙;

小船夜泊秦淮,?近岸邊的酒家。

歌女?人作樂,?們??知道亡國之恨??

所以?們在岸那邊,還唱著後庭花。

 

賞析:

這首詩是?景感懷的,金陵曾是六朝都城,繁華一時。目睹如今的唐朝國勢日衰,當權者昏庸荒淫,不免要重蹈六朝覆轍,無限感傷。

首句寫景,先竭力渲染水邊夜色的?淡素雅;

二句?事,點明夜泊地點;

三、四句感懷,由“近酒家”引出商女之歌,酒家多有歌妓,自然?脫;

由歌曲之靡靡,牽出“不知亡國恨”,?擊豪紳權貴?溺於聲色,含蓄深?;由“亡國恨”推出“後庭花”的曲調,借陳後主之例,鞭笞權貴的荒淫,深刻犀利。

 

 

 

 

玉樹後庭花

 

麗宇芳林對高閣,新?艶質本傾城。

映?凝嬌乍不進,出?含笑復相迎。

妖姬?似花含露,玉樹流光照後庭。

 

1.樂府 吳 聲歌曲名。

南朝 陳後主 作。

《陳書?皇后傳?後主張貴妃》: “ 後主 每引賓客對 貴妃 等遊宴, 則使諸貴人及女學士與狎客共賦新詩, 互相贈答。 採其尤?麗者以?曲詞, 被以新聲……其曲有《玉樹後庭花》、《臨春樂》等, 大指所歸, 皆美 張貴妃 、 孔貴嬪 之容色也。”

唐 李白 《金陵歌送別范宣》詩: “天子龍? 景陽井 , 誰歌《玉樹後庭花》?”

2.指矮?冠花。

宋 楊萬里 《宿化斜橋見?冠花》詩: “ 陳倉 金碧夜雙斜, 一隻今棲 紀消 家。 別有飛來矮人國, 化成玉樹後庭花。”

 

 

陳後主所著宮體詩

玉樹後庭花》?宮體詩,作者南朝陳後主陳叔寶,是南朝亡國的最後一個昏庸皇帝。傳說陳滅亡的時候,陳後主正在宮中與愛姬張麗華玩樂。王朝滅亡的過程也正是此詩在宮中盛行的過程。

 

原詩玉樹後庭花

陳叔寶

麗宇芳林對高閣,新裝?質本傾城。

映戶凝嬌乍不進,出?含態笑相迎。

妖姬?似花含露,玉樹流光照後庭。

花開花落不長久,落紅滿地歸寂中。

 

註:花開花落不長久,落紅滿地歸寂中。兩句在郭茂?《樂府詩集》等著作中未有記錄。疑?後人臆加詩歌背景

 

「後庭花」本是一種花的名,這種花生長在江南,因多是在庭院中栽培,故稱「後庭花」。後庭花花?有紅白兩色,其中開白花的,盛開之時使樹冠如玉一樣美麗,故又有「玉樹後庭花」之稱。

 

 

陳後主迷戀的張麗華

 

《後庭花》又叫《玉樹後庭花》,以花?曲名,本來是樂府民歌中一種情歌的曲子。南北朝陳朝最後那個皇帝陳後主陳叔寶?上了新詞,詞?麗宇芳林對高閣,新??質本傾城。映戶凝嬌乍不進,出?含態笑相迎。妖姬?似花含露,玉樹流光照後庭。

 

陳叔寶窮奢極欲,??聲色,是一個典型的昏君。當時,北方?大的隋時時準備渡長江南下,陳這個江南小王朝已經面臨著滅頂之災,可是這個陳後主,?整天與寵妾張貴妃、孔貴人?酒嬉?,作詩唱和。

陳後主不是一個稱職的皇帝,但是他在辭賦上確實有?高的造詣,創作出了?多辭情?茂的好作品。從《玉樹後庭花》這首詩就可以看得出來。

 

南朝陳後主生活奢侈,不問政事,且喜愛?詞。每日只在宮中與嬪妃近臣游宴,其有一妃子,名張麗華,髮長七尺,其光可鑒,深受後主喜愛。

 

他在後庭擺宴時,必喚上一些舞文弄墨的近臣,與張貴妃及宮女調情。然後讓文臣作詞,選其中特別?麗的句子配曲,一組組分配給宮女,一輪輪地演唱。其中有「壁月夜夜滿,瓊樹朝朝新。」更有一首《玉樹後庭花》歌詞中云:「玉樹後庭花,花開不復久。」

 

陳後主的好日子就象這玉樹後庭花一樣短暫,前後不足七年(公元582年至589)589年,隋兵進入建康(今南京),陳後主被?,后病死於洛陽。 《玉樹後庭花》遂被稱?「亡國之音」。後來就有了杜牧的《泊秦淮》:煙籠寒水月籠沙,夜泊秦淮近酒家。商女不知亡國恨,隔江猶唱《後庭花》。

 

 

詩句鑒賞

 

「麗宇芳林對高閣,新??質本傾城。」

詩的開頭?括了宮中環境,?化用漢朝李延年的「一顧傾人城,再顧傾人國」詩句,來映?美人美麗。

華麗的殿宇,花木繁盛的花園,沒人居住的高閣就在這殿宇的對面,在花叢的環繞之中。美人生就的美麗,在經刻意?點,姿色更加?麗無比。

 

「映戶凝嬌乍不進,出?含態笑相應。」

寫美人們應召見駕時的情態。儀態萬千,風情萬種。無論是應召時的「乍不進」,還是接駕時的「笑相迎」,都討得後主的無比歡欣。

 

「妖姬?似花含露,玉樹流光照後庭。」

詩的結尾處與開頭相呼應,重點描繪了宮中美人的「傾國傾城之貌」,也成了陳後主留戀後宮,貪戀美人的最好註?。評價及史料記載

 

「世言陳後主輕薄最甚者,莫如黃?留、玉樹後庭花、金釵兩?垂等曲,今曲不盡傳,惟見玉樹一篇寥落寡致,不堪男女唱和,?歌之亦未極哀也。」??《漢魏六朝百三家集·卷一百二》

 

「陳後主於?樂中造黃驪留及玉樹後庭花、金釵兩?垂等曲,與幸臣等制其歌詞,綺?相?,極於輕?,男女唱和其音甚哀。」??《隋書樂志》

 

「後主每引賓客對貴妃等游宴,則使諸貴人及女學士與狎客共賦新詩,互相贈答。采其尤?麗者以?曲詞,被以新聲。選宮女有容色者以千百數,令習而歌之,分部迭進持以相樂。其曲有玉樹後庭花臨春樂等。」??《陳書·卷七》「陳之將亡,作《玉樹後庭花》。」??《資治通鑒》

 

「太宗曰:不然,夫音聲感人自然之道也,故歡者聞之則悅,憂者?之則悲。悅之情在於人心,非由樂也。將亡之政其民必苦,然苦心所感,故聞而悲耳,豈樂聲哀怨能使悅者悲乎?今玉樹後庭花、伴侶之曲其聲俱存,朕當?公奏之,知公必不悲矣。」??《唐會要·卷三十二》

 

 

http://www.twwiki.com/wiki/%E3%80%8A%E7%8E%89%E6%A8%B9%E5%BE%8C%E5%BA%AD%E8%8A%B1%E3%80%8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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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 行 [唐]杜牧

 

遠上寒山石徑斜,

白雲生處有人家。

停車坐愛楓林?,

霜葉紅於二月花。

 

 

【注釋】

1、山行:在山中行走。

2、寒山:深秋季節的山。

3、石徑:石子的小路。

4、斜:此字讀xi? ,爲傾斜的意思。

5、深:?有版本作 “生”。(“深”可理解爲在雲霧?繞的的深處; “生”可理解爲在形成白雲的地方)

6、坐:因爲。

7、霜葉:楓樹的葉子經深秋寒霜之後變成了紅色。

9、楓葉

8、遠上:登上遠處的。

9、山:高山。

10、車:轎子。

 

【譯文】

 

深秋時節,我沿山上??的山路而行.雲霧?繞的地方隱隱約約可以看見幾戶人家。我不由自主地停車?邊,是因爲這傍?楓林的美景着實吸引了我,那被霜打過的楓葉比二月的花兒還要紅。

 

【作品賞析】

 

杜牧

 

這是一首描寫和讚美深秋山林景色的七言?句。

詩歌通過詩人的感情傾向,以楓林爲主景,繪出了一幅色彩熱烈、?麗的山林秋色圖。遠上秋山的石頭小路,首先給讀者一個遠視。山路的頂端是白雲?繞的地方。路是人走出來的,因此白雲?繞而不虛無飄?,寒山蘊含着生氣,“白雲生處有人家”一句就自然成章。然而這隻是在爲後兩句蓄勢,接下來詩人明確地告訴讀者,那??了,我還在山前停車,隻是因爲眼前這滿山如火如?,勝於春花的楓葉。與遠處的白雲和?不一定看得見的人家相比,楓林更充滿了生命的純美和活力。

 

第一句:“遠上寒山石徑斜”,由下而上,寫一條石頭小路??曲摺地伸向充滿秋意的山巒。“寒”字點明深深秋時節;“遠” 字寫出山路的綿長;“斜” 字照應句首的“遠”字,寫出了高而緩的山勢。由於坡度不大,故可乘車游山。

 

第二句:“白雲深處有人家”,描寫詩人山行時所看到的遠處風光。“有人家” 三字會使人聯想到炊煙??,?鳴犬吠,從而感到深山充滿生氣,沒有一點兒死寂的恐怖。“有人家”三字還照應了上句中的“石徑”,因爲這“石徑”便是山里居民的通道。

 

第三句:“停車坐愛楓林?”的 “坐” 字解釋爲 “因爲”。因爲夕照楓林的?景實在太迷人了,所以詩人特地停車觀賞。這句中的 “?” 字用得無比精妙,?蘊含多層意思:

(1)點明前兩句是白天所見,後兩句則是傍?之景。

(2)因爲傍?才有夕照,絢麗的?霞和紅?的楓葉互相輝映,楓林才格外美麗。

(3)詩人流連忘返,到了傍?,還舍不得登車離去,足見他對紅葉喜愛之極。

(4)因爲停車甚久,觀察入微,才能悟出 。

 

第四句:“霜葉紅於二月花”是全詩的中心句。前三句的描寫都是在爲這句鋪?和烘托。詩人爲什?用“紅於”而不用“紅如”?  因爲 “紅如” 不過和春花一樣,無非是裝點自然美景而已;而 “紅於” 則是春花所不能比擬的,不僅僅是色彩更鮮?,而且更能耐寒,經得起風霜考驗。

 

這首小詩不隻是?興詠景,而且進而詠物言志,是詩人?在精神世界的表露,志趣的寄托,因而能給讀者?迪和鼓舞。這首詩描繪的是秋之色,展現出一幅動人的山林秋色圖。詩里寫了山路、人家、白雲、紅葉,構成一幅和諧統一的?面。這些景物不是?列的處於同等地位,而是有機地聯繫在一起,有主有從,有的處於?面的中心,有的則處於陪?地位。簡單來說,前三句是賓,第四句是主,前三句是爲第四句描繪背景、創造氣?,起鋪?和烘托作用的。“遠上寒山石徑斜”,寫山,寫山路。一條彎彎曲曲的小路??伸向山頭。“遠”字寫出了山路的綿長,“斜”字與“上”字呼應,寫出了高而緩的山勢。

 

 

“白雲深處有人家”,

寫雲,寫人家。詩人的目光?着這條山路一直向上望去,在白雲飄浮的地方,有幾處山石?成的石屋石牆。這里的 “人家” 照應了上句的 “石徑”,?這一條山間小路,就是那幾戶人家上上下下的通道??

這就把兩種景物有機地聯繫在一起了。有白雲?繞,說明山?高。詩人用?雲斷嶺的手法,讓這片片白雲遮住讀者的視線,?給人留下了想象的餘地:在那白雲之上,雲外有山,定會有?一種景色??

 

對這些景物,詩人隻是在作客觀的描述。雖然用了一個“寒”字,也隻是爲了逗出下文的“?”字和“霜”字,?不表現詩人的感情傾向。?畢竟還隻是在爲後面的描寫蓄勢?勾勒楓林所在的環境。

 

“停車坐愛楓林?”

便不同了,傾向性已經?鮮明,??烈了。那山路、白雲、人家都沒有使詩人動心,這楓林?景?使得他驚喜之情難以抑制。爲了要停下來領略這山林風光,竟然顧不得驅車?路。前兩句所寫的景物已經?美,但詩人愛的?是楓林。通過前後映?,已經爲描寫楓林鋪平?穩,蓄勢已足,於是水到渠成,引出了第四句,點明喜愛楓林的原因。

 

“霜葉紅於二月花”,

把第三句補足,一片深秋楓林美景具體展現在我們面前了。詩人驚喜地發現在夕暉?照下,楓葉流丹,層林如染,?是滿山雲錦,如?彩霞,?比江南二月的春花還要火紅,還要?麗?!難能可貴的是,詩人通過這一片紅色,看到了秋天像春天一樣的生命力使秋天的山林呈現一種熱烈的、生機勃勃的景象。

 

詩人沒有象一般封建文人那樣,在秋季到來的時候,哀傷歎息,他歌頌的是大自然的秋色美,體現出了豪爽向上的精神,有一種英爽俊拔之氣拂拂筆端,表現了詩人的才氣,也表現了詩人的見地。這是一首秋色的讚歌。

 

第四句是全詩的中心,是詩人濃墨重彩、凝聚筆力寫出來的。不僅前兩句疏淡的景致成了這?麗秋色的?托,?使“停車坐愛楓林?”一句,看似抒情?事,實際上也起着寫景?托的作用:那停車而望、陶然而醉的詩人,也成了景色的一部分,有了這種景象,才更顯出秋色的迷人。而一筆重寫之後,?然便止,又顯得情韻悠?,餘味無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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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詞【郡齋獨酌】編輯

 

郡齋獨酌
杜牧


前年?生雪,今年須帶霜。
時節序麟次,古今同雁行。
甘英窮西海,四萬到洛陽。
東南我所見,北可計幽荒。
中?一萬國,角角棋布方。
地頑壓不穴,天?老不?。
屈指百萬世,過如霹靂忙。
人生落其內,何者?彭??
促束自係縛,儒衣寬且長。
旗亭雪中過,敢問當?娘。
我愛李侍中,??七尺?。
白羽八?弓,?壓綠檀槍。
風前略橫陣,紫?分兩旁。
淮西萬虎士,怒目不敢當。
功成賜宴麟德殿,猿超?掠廣球場。
三千宮女側頭看,相排踏碎雙明?。
旌竿??旗*謔謔,意氣橫鞭歸故?。
我愛朱處士,三吳當中央。
罷亞百頃稻,西風吹半黃。
?可活?裏,豈唯滿?倉?
後嶺翠撲撲,前溪碧??。
霧曉起鳧雁,日?下牛羊。
叔舅欲?我,社甕爾來?。
伯?子欲歸,彼亦有壺漿。
西阡下柳塢,東陌繞荷塘。
姻親骨肉舍,煙火遙相望。
太守政如水,長官貪似狼。
征輸一雲畢,任爾自存亡。
我昔造其室,羽儀鸞鶴翔。
交橫碧流上,竹映琴書床。
出語無近俗,堯舜禹武湯。
問今天子少,誰人?棟梁?
我曰天子聖,晉公提紀綱。
聯兵數十萬,附海正誅滄。
謂言大義小不義,取易卷席如探囊。
犀甲吳兵?弓駑,蛇矛燕戟馳鋒芒。
豈知三載幾百戰,鉤車不得望其牆。
答雲此山外,有事同胡羌。
誰將國伐叛?話與釣魚?。
溪南重回首,一徑出修篁。
爾來十三歲,斯人未曾忘。
往往自撫己,淚下神蒼茫。
禦史詔分洛,?趾何猖狂。
闕下諫官業,拜疏無文章。
尋僧解憂夢,乞酒緩愁腸。
豈?妻子計,未去山林藏。
平生五色線,願補舜衣裳。
弦歌?燕趙,蘭芷浴河湟。


腥?一掃灑,凶?皆披攘。
生人但眠食,壽域富農桑。


孤吟誌在此,自亦笑荒唐。
江郡雨初霽,刀好截秋光。
池邊成獨酌,擁鼻菊枝香。
??更唱太平曲,仁聖天子壽無疆。

 

 

前年?生雪,今年須帶霜。時節序麟次,古今同雁行2。甘英窮西海,四萬到洛陽3。

東南我所見,北可計幽荒4。中?一萬國,角角棋布方5。地頑壓不穴,天?老不?6。

屈指百萬世,過如霹靂忙。人生落其內,何者?彭??促束自係縛,儒衣寬且長7。

旗亭雪中過,敢問當?娘8。

我愛李侍中,??七尺?9。白羽八?弓,?壓綠檀槍。風前略橫陣,紫?分兩旁。

淮西萬虎士10,怒目不敢當。功成賜宴麟德殿,猿超?掠廣球場11。

三千宮女側頭看,相排踏碎雙明?12。旌竿??旗*謔謔(火?)13,意氣橫鞭歸故?。

我愛朱處士,三吳當中央14。罷亞百頃稻,西風吹半黃。?可活?裏,豈唯滿?倉⒂?

後嶺翠撲撲,前溪碧??。霧曉起鳧雁,日?下牛羊16。叔舅欲?我,社甕爾來?。

伯?子欲歸,彼亦有壺漿。西阡下柳塢,東陌繞荷塘。姻親骨肉舍,煙火遙相望17。

太守政如水18,長官貪似狼。征輸一雲畢,任爾自存亡19。我昔造其室,羽儀鸞鶴翔。

交橫碧流上,竹映琴書床20。出語無近俗,堯舜禹武湯。問今天子少,誰人?棟梁?

我曰天子聖,晉公提紀綱。聯兵數十萬,附海正誅滄21。

謂言大義小不義,取易卷席如探囊22。犀甲吳兵?弓駑,蛇矛燕戟馳鋒芒。

豈知三載幾百戰,鉤車不得望其牆23。

答雲此山外,有事同胡羌。誰將國伐叛?話與釣魚?24。溪南重回首,一徑出修篁。

爾來十三歲,斯人未曾忘。往往自撫己,淚下神蒼茫25。禦史詔分洛,?趾何猖狂26。

闕下諫官業,拜疏無文章37。尋僧解憂夢,乞酒緩愁腸。豈?妻子計,未去山林藏28。

平生五色線,願補舜衣裳29。弦歌?燕趙,蘭芷浴河湟。腥?一掃灑,凶?皆披攘。

生人但眠食,壽域富農桑30。孤吟誌在此,自亦笑荒唐。江郡雨初霽,刀好截秋光。

池邊成獨酌,擁鼻菊枝香。??更唱太平曲,仁聖天子壽無疆31。

 

 

全部注釋

 

1.原注:黃州作。黃州:杜牧於唐武宗會昌二年(842),出?黃州刺史,時年四十。因有感於自己大半生仕宦飄泊,功業無成而作此詩,抒發自己的理想和抱負。

2.一至四句言年齡漸老,歲月如流。

3.五至二十句中國地域廣大,曆史悠久,個人在其中顯得短暫而且微不足道。甘英句:【後漢書·西域傳】:"永元六年,班超擊破焉耆,於是條支、安息諸國,至於海濱,四萬裏外,皆重譯貢獻。九年,班超遣?(副官)甘英窮臨西海而還。"這兩句說漢朝疆域西至海濱,距京城洛陽四萬裏。海:或指伊塞克湖或巴爾喀什湖。

4.東南兩句說:東南地區我到過,北邊大約更遙遠。

5.中?句:【漢書·地理誌】?quot;黃帝方製萬裏,?野分州,得百裏之國萬區。"這兩說中國劃分成許多地區,就像一個巨大的棋盤。

6.地頑四句:中國地久天長,百萬世曆史猶如??雷電一閃而過。

7.人生六句:言個人在這漫長而又勿促的曆史中,爭短爭長有什?意義??彭:相傳彭祖長壽,活到八百多歲。?:夭折的幼兒。【莊子·齊物論】:"莫壽於?子,而彭祖?夭。"彭祖事又見【神仙傳】、【列仙傳】、【楚辭·天問】。自係縛:比?追逐名利。

8.敢問:不敢問,?敢問。當?娘:【晉書·阮籍傳】:"?家少婦有美色,當?沽酒。籍?詣?,醉便臥其側。"

9.以下二十一至三十四句,寫對李侍中武功的敬慕。李侍中:李光?。【舊唐書·李光?傳】?quot;遷忠武軍節度使。會朝廷討吳元濟,詔光?以本軍獨當一麵。賊?壓光?之壘而陣。光?乃自?其柵之左右,出騎以突之。光?將數騎冒堅而衝之,出入者數四,賊乃大潰。光?敗元濟之?。賊平,命中官宴光?於居地,又禦麟德殿召對,賜金帶錦彩,已而進階開府儀同三司,仍於正衙受冊司徒兼侍中。"此指憲宗元和十年至十二年(815--817)平定淮西吳元濟叛亂之事。??:高大。

10.淮西萬虎士:指吳元濟叛軍。

11.廣球場:【長安誌】:"西內有求場亭子。"

12.雙明?:宮女佩飾之物。

13.旌竿??旗*謔謔(火?):旌旗飄揚之狀。

14.以下三十五至八十句,寫對朱處士德才識見的敬慕。朱處士事不詳,當是吳地隱逸之士。三吳:【水經注】以吳郡、吳興、會稽?三吳。

15.罷亞:一種稻名。以下四句稱頌朱處士樂善好施,救民濟困的美德。

16.後嶺四句:寫朱處士居住之地環境?幽。

17.叔舅以下八句:寫朱處士家族和睦,熱情好客。社甕:甕中的社酒。

18.太守:此自謂。【舊唐書·百官誌】:"武德元年,改太守曰刺史。天寶元年,改刺史曰太守。政如水:?政?廉。

19長官三句:斥貪官?吏如狼似虎,隻管收稅,不管人民死活。

20.我昔八句:寫朱處士高雅有學問,關心國事,有治國安民的雄才大略。造其室:拜訪朱處士的居處。

21.我曰以下十句是作者回答朱處士的話。晉公:【舊唐書·敬宗紀】:"寶曆二年二月,以山南西道節度使晉國公裴度守司空,同平章事,複知政事。"【舊唐書·裴度傳】:"滄、景節度使李全略死,其子同捷竊弄兵柄,以求繼襲。度請行誅伐,逾年而同捷誅。"大義小不義:裴度行大義,叛者不義。小:此謂?視。

22.取易句:言裴度治理天下?有能力。

23.犀甲四句:言裴度戰功赫赫,平叛安邦。三載凡百戰:敬宗寶曆二年四月李同捷反,文宗大和三年四月李同捷降,曆四年而整三載。鉤車:【詩皇矣傳】:鉤,鉤梯也,所以鉤引上城者。不得望其牆:不能攻破?(叛軍據守之城)的城牆。

24.答雲四句:應是朱處士的話,大意是主張文治?化,不讚成隻?武力治國。【春秋繁露】:"魯君問於柳下惠曰:我欲攻齊,如何?柳舊惠對曰:不可!退而有憂色曰:吾聞之也,謀伐國者,不問仁人,此何?至於我?"

25.溪南以下六句:寫告別朱處士已經十三年了,不能忘懷。反思自己的經曆,有許多感傷。

26.詔分洛:指自己大和九年(835)?監察禦史,分司東都洛陽。猖狂:大約是說當時自己年輕好宴?遊玩,不拘小節。

27.闕下諫官業:指開成二年(837)在朝廷任左補闕等職。拜疏無文章:?沒有疏奏文章,意謂沒什?建樹。

28.尋僧四句:言身?閑官無施展才能的機會,且說明自己不辭官歸隱?不是?了養活家人,而是有更遠大的理想。

29.平生句以下,坦言心誌。願補舜衣裳:?杜甫所謂致君堯舜之意。

30.弦歌六句:言推行文治?化,安邊化民。『燕趙"指安史亂後抗拒不朝的河北藩?,河湟指被吐蕃奴?主?占的黃河上遊及湟水流域地區

31.江郡:指黃州。刀好截秋光:意謂?高秋時光賞菊?酒,不必憂國憂民。此無奈之語。

 

評析

 

杜牧不僅長於七?,他的五言古體也作得?好。這首詩抒情言誌,才情橫溢。詩中陳述了自己素仰文才武略之士,深懷報國安民之心,但?未遇上李光?、裴度那樣的機遇,隻好寄情詩酒,自我解嘲。這首詩作於不惑之年,是對自己大半生經曆的總結,其中感慨深?,然而?以明快曠達之語出之,頗見其俊爽本色。

 

相關

 

【韻語陽秋】雲:"非心地明了,貫穿道釋者,不能道也。及觀其自撰墓誌,又忍死作別裴相之章,則知

【獨酌】之詠,豈空言哉!"

【石園詩話】:"史稱杜牧之自負才略,喜論兵事,擬致位公輔,以時無右援者,怏怏不平而終。?人疏雋不拘細行。其詩情致豪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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遣興(杜牧 唐詩)

 

鏡弄白?須,如何作老夫。

浮生長勿勿,兒小且嗚嗚。

忍過事堪喜,泰來憂勝無。

治平心徑熟,不遣有窮途。

 

典故弄白鬚 

同源典故?白 ?霜須 ?鬚 ??

相關人物左思 齊高帝

 

【注?】

①勿勿:忽促。

②泰:?利、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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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提示:如果?想??《遣?》相??句的上一句或者下一句是什?,可以在?面右上角的“???索”中?入?要??的?句,回??可?到??句的上句或下句。注意上半句和下半句?入?不要留有空格和?点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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磨鏡與對食

現代人稱同性戀?“同志”、“?璃” 或 “拉拉”,在中國古代,同性戀也有許多稱謂,比如男同性戀叫 “分桃”、

“斷袖”、“龍陽”等,有關男同性戀的事跡記載也較多,如在周朝的民間歌?中就有不少讚美男子,歌?男風的詞句

 

?代的程廷祚認?《鄭風·子衿》一章描述的就是兩個男子相互愛戀的詩:

 

??子衿,悠悠我心。

縱我不往,子寧不嗣音?

??子佩,悠悠我思。

縱我不往,子寧不來?

挑兮達兮,在城闕兮。

一日不見,如三月兮!

 

一日不見,如隔三月,雖不及三秋,但其相悅的程度也是相當的熱烈的了。

《山有扶蘇》、《狡童》、《?裳》、《揚之水》等章,亦有“狡童”、“狂且”、“狂童”、“恣行”、“維予二人”之類的詞句,都是與男風有關聯的。世界只有男人和女人兩種人,有男同性戀,勢必也有著女同性戀,在中國古代,女同性戀??稱呼??

 

在中國古代,女同性戀多稱? “磨鏡”,雙方相互以?磨或撫摩對方身體得到一定的性滿足,由於雙方有同樣的身體結構,似乎在中間放置了一面鏡子而在?磨,故稱“磨鏡。”

 

古代男性同性戀行?,史不?書,但記錄女同性戀的?比較少。

 

《漢書·外戚傳下·孝成趙皇后》:“官婢曹曉、道房、張棄,故趙昭儀禦者于客子、王偏、臧兼等,皆曰宮(曹宮)?曉子女,前屬中宮,?學事史,通《詩》,授皇后。房與宮對食。”?師古注引應?曰:“宮人自相與?夫婦名對食,甚相?忌也。” 由此可知“對食”?宮中女子之間的同性戀活動。如曹宮和道房這樣能指出名姓的女同性戀者,在中國歷史上不多見。

 

中華民族可說是內斂的民族,但對於男同性戀,中國人外表保守內裡?非常開放。中國史上有不少男同性戀的記載,不少朝代的男風更可謂盛極一時。就像上圖表現出古人?使在庭院公開「野戰」也毫不介意,可見男風之盛。(由於?中人物實在太熱情,故此加上馬賽克。)雖然如此,歷來?出現了不少隱晦的專有名詞形容同性戀,一方面是含蓄的表現,?一方面是對同性戀有著或褒或貶的含意。中國古代男同性戀的代名詞有?多,本文?大家介紹一些比較常見和有代表性的代名詞。

 

龍陽之癖:記得之前介紹過龍陽君??龍陽君是戰國時代魏王的男寵,魏王非常寵愛他,更下令天下臣民不許獻上美人獨愛龍陽君一人。由於龍陽君的事蹟太經典、太傳奇,故此後世都以「龍陽之癖」形容男同性戀

 

斷袖分桃(又名斷袖餘桃):這分別是兩個典故,?常被放在一起,作?男同性戀的代名詞。「斷袖」可說是史上最著名的男風典故之一,漢哀帝對男寵董賢百般憐愛,?了不打擾佳人的美夢,哀帝把被董賢壓著的袖子一刀割斷,以免起床時會?醒董賢,可見哀帝對董賢關懷備至,非常恩愛!(記得筆者第一次聽這段史事的時候只有十三歲,但是那一刻的感動到今天還是無法忘懷!)至於「分桃」(又名「餘桃」)也是?經典。話說有一天衛靈公的男寵彌子瑕吃桃,覺得非常美味,把吃餘的一半桃送給衛靈公,分甘同味,間接接吻,充分表現出男同性戀的恩愛行?。

 

後庭之癖:後庭其實是指後宮,也有一說是源自南朝陳後主所寫的《玉樹後庭花》,但該詞賦?不是描寫男同性戀的,因此筆者認?「後庭之癖」大多源自皇帝的「男寵後宮」。在現代,「後庭」已經有?一層意思,用現代人的眼光或許會覺得這個名詞?直接!(笑)

 

男色:據說「男色」是最早用作形容男同性戀的專有名詞。《漢書??幸傳》記載:「柔曼之傾意,非獨女德,蓋亦有男色焉。」簡單一句表現出古代男寵的嬌柔美態。

 

勇巴:這個名詞出自《磯園稗史》卷之二:「京師士大夫一時好談男色,諱之曰勇巴。」其實「勇巴」?是「男色」,把「男色」的「色」字頭上那把刀放在「男」字上,就變成「勇巴」,是一個相當含蓄的說法。

 

南風:?是男風,指男同性戀。「南」?「男」同音,以同音字表現,更帶一?隱晦的味道。

 

?子:這是一個比較通俗的說法,帶有貶義。相傳?子是由明月的精氣所積成的,是一種陰性的動物,被用作形容陰柔的男性,後來演變成男同性戀的代名詞,尤指?童、男妓。順帶一提,著名小說《紅樓夢》也有用「?子」形容男同性戀,而袁枚的《子不語》更描述了保佑同性戀的「?兒神」,可見?子這小動物?同性戀有著密不可分的關連!

 

象姑:?是有「象」的姑娘,特指男妓。男妓院又稱「象姑館」。

 

香火兄弟:原指結拜兄弟,語出《?坊記》:「坊中諸人,以氣類相似,約?香火兄弟。每多至十四五人,少不下八九輩。有兒??之者,輒被以婦人稱呼,?所?者兄,見呼?『新婦』;弟,見呼?『嫂』也。……兒??嫂一女,其香火兄弟多相愛,云學突厥法。又云,我兄弟相憐愛,欲得嘗其婦也。」雖說是結拜兄弟,但關係親密得異常,(比親兄弟還要親密!)因此也會被用作代表男同性戀。

 

契兄、契弟:「契」的文化源自福建,同性戀關係要得到社會承認,就要進行「契」的儀式,男性之間結?契父、契兒、契兄、契弟,自此成?一家人。《??齋余談》有記載:「?人酷重男色,無論貴賤,各以其類相結,長者?『契兄』,少者?『契弟』。 其兄入弟家,弟之父母撫愛如?,弟日後生計及娶妻諸費,俱取辦于『契兄』,其相愛者,年過而立者,?寢處如伉儷。」由此可見,契兄弟十分恩愛?蜜,而且大放閃光彈!(笑)順帶一提,據說「契」在福建指男性之間的性關係。

 

看到這兒,不知大家對這些代名詞有甚?看法??筆者覺得,不論是含蓄還是直接,是典雅還是通俗,都非常有意思,每個名詞背後總有一段典故,有些頗有玩味,有些令人萌得心花??開!

 

 

"?袖分桃" ?袖:指西?的?哀帝?董?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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