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 라하♪
* 이메일 : <choi_hanee@hanmail.net>
* 출처 : 인터넷소설닷컴 (http://cafe.daum.net/youllsosul)
순식간에 밀려오는 예레미야와 관련된 질문에 호수아는 머리가 아파왔다. 이래서는 운동을 가지도, 숙소로 들어가지도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신을 좋아해주는 팬들이 고맙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좀 불편했다.
호수아가 팬들과 상대해주는 덕분에 숙소 앞이 금방 조용해질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팬들이 숙소 앞에서 떠나기는커녕 호수아가
애를 먹고 있는 상황에 미카엘과 히브리는 심각한 고민을 해야만 했다. 지금 나가서 호수아를 도와주느냐, 아니면 여기서 호수아가
팬들을 떠나보내기를 기다리느냐, 그것이 문제였다.
한참을 고민하던 미카엘과 히브리는 둘 중 어느 것에도 확실히 해당되지 않는 애매모호한 결정을 내렸다. ‘하나, 둘 셋!’하는 신호와
함께 문을 연 미카엘과 히브리는 팬들을 향해 외쳤다.
“여러분, 사랑해요!”
그리고 팬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그 순간 호수아에게 ‘튀어!’라고 외치고 자신들은 엘리베이터 안으로 쏙 들어가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주차장으로 내려가 비상구로 나온 미카엘과 히브리는 자신들이 도와준 덕분에 팬들로부터 자유의 몸이 된 호수아를 만날 수 있었다.
“땡큐.”
“그럼 우리 오늘 6시까지만 놀고 오면 안 돼?”
미카엘과 히브리의 말에 호수아는 살짝 미간을 좁혔다. 이래서 자신을 도와줬나, 하는 생각에 한숨부터 나왔다. 여기서 된다고
대답을 하면 미카엘과 히브리는 어디 가서 사고 치다가 매니저 형한테 붙잡혀 올 것이고, 안 된다고 대답하면 앞으로 한 동안 오늘 일을
시도 때도 없이 꺼낼 것이 분명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미카엘과 히브리를 보고 결국 호수아는 6시가 되기 전에 꼭 오라고 말했다. 그에 세상을
가진 듯 기뻐하던 둘은 어깨동무를 하고 학교를 향해 뛰어갔다. 그런 둘의 뒷모습을 한 동안 지켜보던 호수아는 걸음을 옮겼다.
데뷔 이전부터 쭉 다니던 헬스클럽에 온 호수아는 입구에 몰려있는 사람들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연예인들이 많이 다니기로
유명한 탓에 한 명이라도 보고자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자주 인산인해를 이루고는 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뭔가 풀리지 않는 듯
찝찝한 기분을 느끼며 호수아는 뒷문으로 들어갔다.
“여호수아!”
“안녕하세요, 형.”
“오랜만이다, 짜식.”
“잘 지내셨죠?”
“나야 뭐, 늘 그렇지.”
“오늘은 평소보다 사람이 많네요, 밖에도 많더니.”
“아, 엊그제 데뷔한 신인이 와서 그런가봐. 앞으로 여기 다닌다고 등록했는데 어우, 장난 아니더라.”
“왜요?”
“벌써 톱스타라도 된 듯이 고개 빳빳이 들고 다니던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하는 트레이너를 보며 호수아는 CCC를 떠올렸으나 금세 머릿속에서 지웠다.
직접 만나보지도 않고 판단하는 것은 좋지않은 버릇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호수아는 스트레칭을 하고 가볍게 좀 뛸까 하여 러닝머신 위로 올랐다. 천천히 걷다가 점점 속도를
높여 뛰기 시작하는 호수아를 가만히 지켜보던 트레이너는 안정적인 호흡을 유지하는 호수아를 보고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웬만한
트레이너만큼 바른 운동 자세는 그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보여주었다.
흐르는 땀으로 샤워를 했다고 믿을 정도가 되었을 쯤 누군가 호수아에게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이곳에서 자신에게 말을 걸 만큼
친한 사람은 트레이너 밖에 없었기에 자신에게 말을 거는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 호수아가 대답이 없자 얼굴을 찌푸리며 호수아의
러닝머신을 정지시켰다. 천천히 느려지다가 이내 멈추어 버리자 호수아는 고개를 돌렸다.
미간을 좁힌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CCC의 리더 이완연이었다. 나이로는 자신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는 탓인지
당당함이 넘치는 모습에 호수아는 어처구니가 없었고 트레이너가 말했던 신인이 누군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원래 사람 말을 잘 무시하나 봐요?”
생글생글 웃으며 호수아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질문을 내뱉는 완연은 호수아가 선배라는 것보다, 호수아의 나이가 자신보다
어리다는 것이 더 중요한 모양이었다. 기계에 걸어두었던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무슨 일이냐고 물은 호수아는 되도록 마주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빨리 자리를 피하고 싶은 호수아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피식하고 웃은 완연은 오른손을 내밀며 호수아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에
호수아는 수건에 손을 닦고 완연의 손을 맞잡았다.
“앞으로 자주 뵐 것 같은데, 반가워요. 이완연이에요.”
“여호수아입니다.”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끼리 만나면 인사도 하고, 그래요.”
말투나 행동 모두 자신이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듯 행동하는 완연의 모습에 호수아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심각했다.
그냥 건방진 정도가 아니었다. 완연은 사회생활을 하는 법을 아예 모르고 있었다.
미성년자 딱지를 떼고 나서 사회에 나오면 나이보다는 사회적 지위로 위아래가 결정되는 법인데 아직도 어린애처럼 나이로 위아래를
결정하는 완연을 보고 호수아는 연예계 생활을 꽤 힘들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운동 하는데 방해해서 미안해요, 다음에 또 봬요.”
“아, 다음에 봬요.”
여유롭게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완연을 보고 호수아에게 다가온 트레이너가 장난 아니지 않느냐며 말을 걸어왔다. 트레이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건으로 땀을 닦던 호수아는 맥이 끊겨버림에 한숨을 내쉬었다. 한창 좋은 페이스였는데 방해를 받아 어쩐지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
“저렇게 건방져도 또 좋아해주는 애들은 꽤 있는 것 같던데. 저렇게 행동해도 되려나?”
“글쎄요. 형, 저 오늘은 그만 가볼게요.”
“벌써?”
“맥이 끊겨서요. 다음에 올게요.”
“아아, 그래.”
샤워를 하고 헬스클럽을 빠져나온 호수아는 연습실로 향했다. 노래연습도 하고 안무연습도 할 겸 들어선 연습실은 연습생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일찍이 학교를 조퇴하고 왔거나, 아예 가지 않은 연습생들은 호수아를 보고 예를 갖춰 인사를 했다. 다른 멤버들
보다 자주 연습실을 찾는 호수아를 보고 역시 리더는 남다르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자신들의 앨범에 수록된 곡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불러보고 싶었던 곡을 열창하는 호수아를 훔쳐보는 연습생들의 입에선 연신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가끔 보는 호수아의 모습이지만 언제 봐도 감탄을 자아내었다.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열창하던 호수아는 물을 마시고 곧바로 안무연습에 들어갔다. 평소 부족하던 부분을 자신의 마음에
들 때까지 연습하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매니저는 호수아에게 할 말이 있어 연습실을 찾아왔다. 수업이 없는 날인데다가 스케줄도
없으니 연습실에 있을 거라고 판단한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언제나 현재의 모습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모습을 추구하는 호수아를 전속 댄서들이나 소속사 식구들은 ‘선한 독종’이라 칭하기도 했다.
“언제 왔어?”
“꽤 됐어.”
“오늘은 스케줄도 없는데 쉬지, 웬일이야?”
물을 마시며 묻는 호수아를 향하던 시선을 시계로 돌린 매니저는 점심을 먹으러 가자는 제안을 했고, 호수아는 흔쾌히 응했다.
식당에 도착해 음식을 주문한 뒤 매니저는 조심스럽게 예레미야의 이야기를 꺼내었다. 소속사 측에서 잘 대처한 덕분에 기자들을
다 떨어뜨릴 수 있었으나 둘을 떼어놓아야 한다는 게 내심 마음에 걸렸다. 예레미야가 누구보다 의지하는 게 호수아였기에 더 그랬다.
사무엘이 알아서 예레미야를 잘 챙겨줄 거라는 호수아의 말에도 매니저는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 호수아와 예레미야가
가깝게 지내는 것은 팬들이 그토록 열망하는 ‘아야 커플’의 탄생 가능성을 높일 수 있고, 대시해오는 연예인들과의 스캔들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좋지 못한 것도 있었다. 숙소 생활을 하는 둘이 너무 가깝게 지내면 대중들로 하여금 좋지 못한 시선을 받을 수도 있었고,
팀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다. 가까이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정이 가게 되어있고 그렇게 되면 결국 연인사이로 발전할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소속사에서 계속 둘에게 거리를 주어야 한다는 얘기가 오간지 오래였다.
둘이 연인사이로 지내는 것에 대해 소속사 식구들이나 매니저나, 멤버들 전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행여 둘이
헤어지기라도 하는 날엔 팀 분위기를 흐릴 수 있기에 소속사에서는 거리를 두라는 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좋게 헤어진다면
잠깐 어색한 것으로 그치겠지만 나쁘게 헤어지기라도 하는 날엔 팀워크가 깨지고 분위기가 흔들리면서 결국 긴 공백기를 거치게 될
것이 분명했다. 더 나쁘게 된다면 해체까지 할 수도 있었고.
솔직히 너무 앞서가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으나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고, 또 그런 만큼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많았기에 결국 둘에게 거리를 두라는 명이 내려졌다. 하지만 둘을 떼어놓는다고 해서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24시간 지켜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쉽게 가시지 않는 미안함에 호수아에게 이것저것 챙겨주는 매니저는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그런 매니저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쉰 호수아는 벨소리를 울리며 액정에 예레미야의 이름을 띄우는 핸드폰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
“밥 먹었어어?”
[지금 먹고 있어, 넌 먹었어?]
“이제 막 먹으려고 식당에 가고 있어!”
[맛있게 먹어]
“응응, 이따가 데리러 올 거야?”
[사무엘이 데리러 갈 거야]
“칫, 알았어어.”
풀이 죽은 목소리로 전화를 끊은 예레미야는 다정한 호수아가 아닌 무심한 사무엘이 데리러 온다는 사실에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식당으로 향하는 내내 투덜투덜 거리던 예레미야는 급식을 받고 자리에 앉았다. 소란스러운 식당 분위기에 미간을 좁힌 예레미야는
두 손을 모아 짧게 기도를 하고 수저를 들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학교에 나오더니 식당에까지 등장한 예레미야 때문에 식당 안은 무척이나 시끌벅적했다. 소란스러움의 중심에
자신이 있는 줄도 모르고 예레미야는 밥을 먹는 데에 열중해 있었다.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어두운 그림자에 젓가락질을 멈춘 예레미야는 고개를 들어 그림자의 원인을 찾았다. 식판을 든 채 고개를
숙여 깍듯이 인사를 하는 인물은 CCC의 막내 유아이었다.
“안녕하세요.”
예레미야는 고개를 끄덕하고 다시 밥 먹기에 열중했다. 자신을 무시하는 듯 무심한 태도에 당황한 아이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그 자리에 어정쩡하게 서 있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밥을 먹던 예레미야는 곧 후식으로 나온 초코우유를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 밖으로 나갔다. 명백히 무시당한 아이는 예레미야가 사라진 곳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운동장 한 쪽에 있는 전통을 자랑하는 나무 그늘 아래에 앉은 예레미야는 자신에게 깍듯이 인사를 한 아이의 행동에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고, 초코우유에 빨대를 꽂으며 호수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1분 1초라도 빨리 호수아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여보세요]
“밥 다 먹었어?”
[어, 너는?]
“먹었어, 있지. 나 CCC 막내 봤어!”
[같은 학교 다녀?]
“그런가 봐, 근데 막 나한테 인사했어!”
[그래?]
“응! 막 깍듯이 인사하는데 깜짝 놀랐어어.”
어리광 섞인 목소리로 호수아에게 바로 보고를 하던 예레미야는 자신을 향해 쭈뼛쭈뼛 다가오는 남자들을 보고 얼른 전화를
끊었다. 새침한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호수아에게 보낼 문자를 작성하고 있는 예레미야에게 흰 종이 여러 장을 내민 남자들은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며 예레미야에게 사인을 부탁했다.
사인을 해주는 것을 굉장히 귀찮아하는 예레미야로서는 해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그럴 수 없기에 그들이 내미는
종이와 펜을 받아 들었다.
“이름이 뭐예요?”
호수아와 통화할 때의 그 어리광 넘치는 목소리는 어디로 갔는지, 예레미야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주위에 있는 남자들의
마음을 뒤흔들 만큼 분위기 있고 매혹적이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예레미야의 머리카락은 남자들로 하여금 넋을 놓게 만들었다.
사인을 해주고 난 뒤에 자리를 털고 일어난 예레미야는 호수아에게서 온 문자에 답장을 하며 교실로 올라갔다.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는 바람에 조금도 마음을 놓을 수 없던 예레미야는 도도함을 유지하느라 애를 먹어야만 했다.
교실에 도착해 자리에 앉자마자 예레미야는 엠피를 꺼내어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이번 앨범에 수록된 호수아의 솔로 곡을 들으며
호수아에게 사인을 해준 이야기를 적어 문자를 전송했다. 전송을 완료하기 무섭게 도착한 호수아의 답장에 예레미야는 환하게 웃었다.
[예쁘다]
고작 세 글자였지만, 예레미야에게 있어선 30글자 보다 더 크게 와 닿는 문자였다. 입가에 미소를 걸친 채 메시지를 저장한 예레미야는
빨리 학교를 끝마치고 호수아에게 달려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오후 수업 내내 호수아가 챙겨준 쿠키를 몰래 먹으며 문자를 보내던 예레미야는 하교를 알리는 종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방을
챙겨들고 운동장으로 뛰쳐나갔다. 교문 앞에는 호수아의 차가 세워져 있었다.
전속력으로 달려 차 앞에 도착한 예레미야는 운전석에 앉아 있는 사람이 호수아가 아닌 사무엘이라는 것에 실망했으나 뒷좌석에
앉아있는 호수아를 보고 너무 기쁜 나머지 소리를 질러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게 만들었다.
“쉿, 몰래 나온 거야.”
“보고 싶었어어!”
열었던 조수석 문을 닫고 뒷좌석에 올라탄 예레미야는 호수아에게 안겨왔고 그에 사무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렇게
다정한 모습을 보면 누구나 연인사이라고 오해하지 않을까 싶었다.
교문에서 멀어지는 차 안에서 예레미야는 CCC의 막내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느라 쉬지 않고 입술을 움직였다. 당황해서
급히 나오느라 제대로 보진 못했으나 잘 생기긴 잘 생겼다고 중얼거렸다.
“사진으로 본 것보다 잘 생겼어!”
“그래?”
“응! 쑤아 보다는 아니지만!”
정색을 해가며 호수아보다 잘 생기진 않았다고 말하는 예레미야를 보며 사무엘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귀지도 않으면서 저런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건 예레미야 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보다 두 살 많은 호수아를 ‘오빠’라고 부르기 보다는 ‘쑤아’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를 좋아하는 예레미야는 미카엘은 ‘미카’,
히브리는 ‘리’, 사무엘은 ‘싸무’라고 부르고는 했다. 한동안 오빠라고 부르라며 예레미야를 귀찮게 굴던 미카엘은 뜻을 굽히지 않는
예레미야에게 항복을 선언하고 어떻게 부르든 ‘야’, ‘너’만 아니면 된다며 자기 합리화를 한지 오래였다.
호수아는 예레미야가 ‘쑤아’라고 불러주는 것을 기분 좋게 여겼다. 친근감도 느껴지고 또 그렇게 부를 때 예레미야의 표정이
굉장히 귀여운 탓도 있었다.
“야, 근데 니들 같이 있는 거. 형이 보면 뭐라고 할 텐데.”
숙소에 가까워질 때쯤 사무엘이 매니저를 떠올리며 둘에게 한 마디 했다. 안 그래도 아까 점심을 먹다가 예레미야의 전화를
받은 것 때문에 한 소리 들은 호수아는 중간에 연습실에서 내릴 생각이었다. 매니저 앞에서는 철저히 예레미야와 단절된 듯 무심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연습실에 왜? 뭐 두고 왔어?”
“아니, 이제 슬슬 시상식 준비 해야지.”
“에? 벌써?”
“벌써라니, 한 달밖에 안 남았어. 다음 주부터는 꼼짝없이 연습해야 해. 알지?”
“싫은데에.”
“싫어도 어쩔 수 없어.”
한 달 후에 있을 연말 시상식 준비라는 말에 예레미야는 입술을 삐쭉이 내밀었다. 연습으로 바빠진다는 것은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희소식이기도 했으나, 쉴 틈 없이 몸을 혹사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벌써부터 연습에 대한 압박감에 괴로워하는 새에 도착한 연습실에서 호수아가 내리자 예레미야는 따라 내리겠다고, 연습하기
위해서 온 거라고 하면 되지 않느냐고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안 되는 거 알잖아. 숙소에서 보자.”
“씨잉!”
투덜거리는 예레미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사무엘에게 부탁한다는 말을 한 호수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연습실로 올라갔다.
그런 호수아를 보며 잔뜩 골이 난 표정을 짓는 예레미야를 보던 사무엘이 엑셀을 밟으며 물었다.
“사람 앞에 두고 그렇게 편애해도 되냐?”
“싸무는 너무 무심하단 말이야! 지금도 봐봐, 공기 완전 차가워!”
“야야, 너무한다. 너. 호수아가 그렇게 좋냐?”
“입 아프게 물어보지 마!”
“왜 성질이야, 그러면 그런 거지.”
까칠한 예레미야의 말에 기가 눌린 사무엘은 그 뒤로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예레미야는 호수아에게
일찍 들어오라는 문자를 보내고 숙소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혼자 차에서 쏙 내려 숙소로 올라가 버렸다.
편애도 이런 편애가 없을 거라고 중얼거리며 주차를 마친 사무엘은 차키를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오늘은 예레미야를 건드려서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하고 숙소 문을 열자마자 방으로 들어간 사무엘은 호수아가 빨리 오기를 기다리며
피곤함을 달랬다. 앞으로 한동안 예레미야를 챙길 생각에 두통이 생기는 것만 같았다.
솔직히 말해 예레미야는 다소 어려움이 느껴지는 멤버였다. 여자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어리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었다. 어린데다가
여자이니만큼 이것저것 챙겨줘야 하는 것도 많고 남보다 어리광이 많아 상대하기 버거운 면도 있었기에 되도록 마찰을 피하는 편이었는데
호수아와의 스캔들로 어쩔 수 없이 챙겨야 하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침대에 누워 노트북을 켠 사무엘은 오랜만에 팬카페에 들어갔다. 게시판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구경을 하던 사무엘은 사진게시판에
들어갔다. 자신들도 모르는 새에 찍힌 사진들이 굉장히 많았다. 특히 오늘 올라온 사진은 아침에 운동을 나가려던 호수아의 모습이
아주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사진 밑에 글쓴이가 남긴 글로 미루어 보아 사무엘은 사생팬이 찍은 것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오늘 아침에 봤다며
느낌표를 잔뜩 붙인 글은 얼마나 흥분된 상태에서 썼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만들었다.
[오늘 호수아 오빠 봤어요!!!!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건 처음이었는데 진심 조각이 걸어 다니는 줄 알았음! 솔직히 사인해주는 거
기대도 안했는데 너무 친절하게 이름 물어보면서 사인도 다 해주고 진짜 완전 천사 웃음 지으면서 이제 학교 가라고 말씀하시는데
저 진짜 쓰러지는 줄 알았어요!! 그리고 막 예레미야 언니랑 사귀고 있는 거 맞는 거냐고 물어보고 대답 기다리고 있는데 미카엘
오빠랑 히브리 오빠가 갑자기 숙소 문 열고 ‘여러분, 사랑해요!’를 외치셨음! 거기에 정신 팔려 있는 사이에 미카엘 오빠가 호수아
오빠한테 ‘튀어!’ 라고 했는데 호수아 오빠 붙잡으려고 고개를 돌렸더니 이미 없었어요. 진짜 호수아 오빠 빠르신 것 같아요! 아니,
그것보다 오늘 봐서 진짜 기분 짱이었어요!! 학교 가면서 엉엉 울었다니까요! 진짜 새벽부터 나와서 기다린 보람이 있는 것 같아요!]
아침에 호수아가 얼마나 고생했을지 눈에 훤히 보이는 것 같아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사무엘은 그 외에 오늘 자신이 예레미야를
학교에 데려다 준 사진과 미카엘과 히브리가 학교에서 찍힌 사진 등 꽤 많은 사진에 새삼 팬들의 대단함을 느꼈다.
“싸무!”
“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예레미야의 부름에 사무엘은 잔뜩 긴장한 채 대답했고, 그에 예레미야는 볼에 바람을 가득 넣어 부풀리다가
이내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미안해!”
“뭐가?”
“괜히 성질내서 미안해에. 우리 짜파게티 끓여 먹자! 응?”
“짜파게티는 일요일에만 먹는 건데.”
중얼거리듯 말하며 못 이기는 척 일어나 주방으로 나온 사무엘은 물을 올리며 피식하고 웃었다. 호수아가 왜 그렇게 예레미야를
챙기는지 알 것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
“가자, 가자아. 응?”
“아, 글쎄. 귀찮다니까.”
“씨, 쑤아한테 늦게 왔다고 이를 거야!”
“야! 치사하게!”
매니저의 손에 귀를 잡힌 미카엘과 히브리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연습실에 가자고 조르던 예레미야는 아스팔트 위의 껌 딱지처럼
바닥에 붙어 떨어질 생각을 안 하는 미카엘과 히브리를 협박하기에까지 이르렀다. 그런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사무엘은 방으로
들어가 연습실에 갈 준비를 하는데, 결국 미카엘과 히브리가 예레미야를 이기지 못할 거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예레미야의 강한 집념에 두 손을 든 미카엘과 히브리는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연습실에 도착했다. 그들이 도착하자마자 몰려드는
연습생들에게 안부를 물어가며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복도 끝에 있는 문을 열자 강하고 빠른 비트에 몸을 맡긴 호수아가 보였다.
멤버들이 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열중해 있던 호수아는 한참만에야 움직임을 멈추고 멤버들에게 아는 체를 했다. 우르르 연습실에
온 멤버들의 중심에 예레미야가 있는 것을 보고 알만 하다는 듯 웃은 호수아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물을 마셨다.
“방금 그 춤 시상식 때 출 거냐?”
“아니, 이건 연말 특집 프로그램에서.”
“그런 것도 나가?”
“아아, 나만.”
호수아의 말에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린 사무엘은 연습실 문을 잠그고 문과 창문 등 연습실 내부가 보이는 모든 곳에 신문지를
붙여 볼 수 없게 만드는 예레미야를 향해 박수갈채를 보내었는데, 행여 소속사 관계자들이 호수아와 붙어있는 것을 보고 꾸중을
할까 염려해 예방 차원에서 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기왕 이렇게 모인 거 시상식 준비하자.”
“뭐? 벌써? 말도 안 돼!”
“안 돼, 안 돼! 우린 단지 예레미야한테 끌려 온 거란 말이야!”
강한 반대를 하며 소리치는 미카엘과 히브리를 향해 매서운 눈빛을 보낸 예레미야는 대찬성이라며 호수아의 주위를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호수아와 있으면 그저 즐거운 예레미야를 보며 사무엘은 역시 호수아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지금 당장부터 시상식 준비에 돌입하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의견이라고 해봐야 예레미야의 강압에 못 이겨 찬성한 것이었지만.
아무튼 시상식 준비에 돌입하겠다는 말에 미카엘과 히브리는 순간 10년은 폭삭 늙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밤샘이 확정된 것
같다는 말을 중얼거리며 다들 호수아의 주위로 둥글게 모여 앉았다.
“이번 시상식 때 우리 무대는 8분이야.”
“8분? 두 곡은 해야겠네.”
“예레미야는 따로 또 무대 있는 거 알지?”
“응? 무슨? 처음 듣는 얘긴데?”
“매니저 형이 얘기 안 해줬어?”
“응응.”
작게 한숨을 내쉰 호수아는 매니저를 대신하여 서지유와 함께 듀엣을 불러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서지유라는 이름 세 글자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얼굴을 찌푸린 것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은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지난 번 라디오에서 호수아에게 들이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예레미야는 같이 무대에서 호흡을 맞추어야 한다는
사실에 칭얼대 보지만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 어떻게 손을 쓸 도리가 없었다.
“우린 개인 무대 없는 거지?”
“아니, 미카엘하고 히브리는 뉴클리어랑 합동무대 있어.”
“뭐어?!”
예레미야가 이미 개인 무대를 맡았기에 자신들은 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미카엘과 히브리의 얼굴이 호수아의 한 마디에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뉴클리어와 함께하는 무대라니 미카엘로서는 도무지 할 기분이 나질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왜!”
“뉴클리어 네가 그렇게 못마땅해 할 만큼 파렴치한 애들 아니야.”
“걔네는 음악적인 감각이 부족해!”
“그럼 선배인 네가 가르쳐 주면 되겠네.”
딱 잘라서 말하는 호수아를 보고 미카엘은 뒷목을 붙잡고 쓰러지는 시늉을 하고, 그런 미카엘을 옆에서 히브리가 받쳐주었다.
사무엘은 이번 시상식 땐 얌전히 앉아 구경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개인 무대가 없는 만큼 시상식까지
여유를 부릴 틈도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사무엘을 향해 부러움이 가득 담긴 시선을 보내던 미카엘과 히브리는 곧이어 들려오는 호수아의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이번 시상식은 다른 때보다 바쁠 거야.”
“아, 진짜 싫은데.”
“싫어도 어쩔 수 없어.”
투덜대는 것을 잠시 접어두고 8분 동안 어떤 무대를 보여줄 것인지에 토론하기 시작했다. 일단 곡은 타이틀곡과 후속곡으로
결정 되었는데 문제는 퍼포먼스였다. 시상식이니만큼 퍼포먼스가 필요했다. 그냥 밋밋하게 노래만 부르자고 시상식을 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한참의 상의 끝에 발라드인 후속곡을 리믹스 하여 댄스곡으로 바꾸고, 타이틀곡이 시작되기 전 잠깐의 틈에 호수아와 사무엘의
댄스 배틀을 짧게 넣고 타이틀곡으로 마무리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매니저를 찾기 위해 호수아가 연습실 밖으로 나가고 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한숨부터 내뱉었다. 예레미야는 예레미야대로,
미카엘은 미카엘대로, 히브리는 히브리대로 앞이 막막했다. 사무엘은 그들의 걱정이 어떻든 자신은 자유로운 몸이라는 사실에
예레미야가 쓰고 남은 신문지로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여유롭고 또 즐거워 보이는 모습에 예레미야와 미카엘, 히브리는 잔뜩 약이 오른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지만, 시상식의 부담이
그리 많지 않은 탓인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사무엘의 등에 기대고 앉아 서지유에 대한 소문들을 머릿속에서 정리하던 예레미야는 문득 음악방송 녹화를 하러 갔다가 보았던
서지유의 모습을 떠올렸다. 무대를 마치고 대기실로 향하는 길에 서지유에게 귀가 붙들려 화장실로 끌려 들어가는 코디를 본 일이
있었다. 그 때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그냥 지나쳤는데 나중에 그 코디가 일을 관두었다는 얘기와 원인이 서지유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들려오는 소문들도 썩 좋지 않은 탓에 서지유에 대한 생각은 점점 나빠지고만
있었다.
이런저런 소문을 달고 사는 서지유와 함께 시상식 무대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예레미야는 짜증이 났다. 전에 라디오에서
호수아에게 들이댄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혹여 연습하는 도중에 친해져 호수아의 연락처라도 물어오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되었다. 그런 상황이 오면 어떻게 대처할까 하는 부분에 대한 걱정이 아닌, 자신도 모르게 툭 튀어나올 행동들에 대한 걱정이었지만.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은 미카엘과 히브리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들은 진심으로 뉴클리어의 음악적 감각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무대를 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 싶었다.
별의 별 생각을 다 하고 있을 때, 호수아가 연습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와 녹음실로 올라가자고 말하며 주위에 몰려있는 연습생들을
흩어지게 만들었다.
“녹음하러 가는 거야, 지금?”
“어.”
“타이밍 한 번 기가 막히네.”
입술을 삐죽이며 빈정거리는 듯 건들건들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미카엘의 말에 사무엘이 피식하고 웃었다. 분명 오늘 아침부터
나와 연습을 하는 호수아를 보고 매니저가 소속사 식구들에게 찔렀을 게 뻔히 보였다. 슬슬 시상식 준비를 할 것 같다는 말을 찔렀다면
분명 당장에라도 그들이 연습을 할 수 있게 모든 준비를 마쳐 놓을 것이 분명했다. 소속사가 잘 되고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그들의
공인만큼 더 그랬다.
언제라도 준비할 수 있게 모든 스텝들이 자신의 위치에 있을 것이 분명했다. 혹여 있지 않더라도 매니저의 전화 한 통이라면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되는 것이 이 소속사에서 그들의 위치를 정확히 보여주었다.
이런 기막힌 타이밍은 하루 이틀이 아닌지라 미카엘은 오랫동안 투덜거리고 있을 수 없었다. 녹음실에 도착하자마자 들려오는
신나는 비트에 고개를 끄덕이며 박자를 맞추던 호수아가 후속곡 가사를 흥얼거리기 시작했고, 곧 녹음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녹음이 끝났다. 익숙한 멜로디인 데다가 이골이 날 만큼 연습하고 또 연습했던 곡인만큼 녹음하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벌써 1시야아.”
녹음을 마치고 연습실에서 문득 시계를 본 예레미야가 투정 섞인 목소리로 말꼬리를 길게 늘이면 안무가의 도움을 받아 짠 안무를
몸에 익숙하게 하기 위해 사무엘과 함께 박자에 맞추어 움직이던 것을 멈추고 시계를 본 호수아가 예레미야의 옆에 앉아 다정히
물어왔다.
“졸려?”
“응응. 완전.”
“내일 학교도 가야 되니까, 먼저 들어가.”
“쑤아는?”
“나는 좀 더 하다가.”
“혼자 가는 건 싫은데에.”
옷깃을 잡아당기며 졸음이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예레미야에게 두었던 시선을 연습실 구석에서 모바일 게임을 하는
미카엘과 히브리에게로 옮긴 호수아는 미카엘과 히브리에게 예레미야와 함께 숙소로 가라는 말을 건넸고, 그에 둘은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르고 휘파람을 불며 반겼다.
미카엘, 히브리와 함께 가는 게 썩 내키지 않는 듯 입술을 쭉 내민 예레미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등을 두어 번 토닥여준
호수아는 다정한 목소리로 일찍 들어갈 테니 먼저 자고 있으라며 미카엘과 히브리에게 예레미야를 부탁했다.
“진짜 대단하다. 대단해.”
“누가 봐도 저건 커플이야! 커플 타도! 타도!”
“씨이, 봐봐! 안 갈래!”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미카엘과 시위를 하는 마냥 주먹으로 하늘을 찌르며 외치는 히브리를 보고 싫다고 호수아의
팔을 꼭 붙잡은 예레미야는 숙소로 가는 내내, 숙소에 도착해서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미카엘과 히브리에게 소외되고 또 시달릴
생각에 싫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 그럴 테니까 가자!”
“싫어!”
“야, 진짜 안 그럴게. 응?”
“싫어어!”
예레미야 덕분에 일찍 숙소에 가나 싶어 기뻐했는데 한 순간의 실수로 무산이 되어버린 현실에 예레미야를 달래 보지만, 예레미야의
고집은 한 번 세워지면 꺾일 줄을 몰랐기에 미카엘과 히브리는 울상이 되어버렸다.
피곤해도 그냥 있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쉰 호수아가 소파를 가리키자 예레미야는 쪼르르
달려가 소파 위에 몸을 누이고 미카엘을 향해 혀를 날름거려 약을 올리기 시작하고 그에 발끈하는 미카엘을 말리는 히브리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사무엘은 ‘또 시작이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잠깐 마실 거라도 사오겠다며 나갔던 안무가가 연습실에 들어와 흥분한 미카엘을 진정시키고 음료수를 돌렸다. 몇 시에 갈 거냐고
묻는 안무가에게 호수아는 모르겠다는 의미로 어깨를 으쓱하고 음료수를 단숨에 들이켰다.
“난 곧 가봐야 될 것 같은데.”
“들어가세요. 안무는 다 짰으니까. 나중에 한 번 봐주세요.”
“고마워. 연습 열심히들 해!”
별 감흥 없이 툭툭 내뱉는 사무엘의 말에 환하게 웃으며 옷가지를 챙겨 행여 누가 잡을 새라 연습실 밖으로 허둥지둥 뛰쳐나가는
안무가의 모습이 웃겨 사무엘은 키득키득 웃었다.
숙소에 갈 수 있다는 행복함에 하늘 높이 올랐던 기분이 지옥 끝으로 추락해 버리는 바람에 의욕을 잃은 미카엘과 히브리는 연습
안 할 거냐고 묻는 호수아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에 호수아는 둘을 숙소로 보내버렸다. 있어봤자 연습을 할 것 같지도 않고
외려 방해만 될 것이 분명해 내린 결정이었다.
깊은 한숨을 내쉬고 사무엘과 안무를 맞추어 보던 호수아는 예레미야에게도 가르쳐줄 생각으로 소파 쪽으로 몸을 돌렸으나
소란스러움 속에서 잘도 깊은 잠에 빠져든 예레미야를 보고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학교에서 꽤나 피곤했을 거라는 사무엘의 말에
호수아는 스캔들을 떠올렸다. 분명 죽자고 덤벼들었을 거라는 생각에 미간이 좁혀지다가도 금세 점심시간에 사인을 해주었다는
문자를 보낸 예레미야를 떠올리고 미소를 지었다.
호수아의 표정변화를 지켜보던 사무엘은 어깨를 으쓱하며 스피커 볼륨을 줄였다. 예레미야의 자세를 편하게 고쳐주고 연습실을
나간 호수아는 사무실에서 쿠션과 담요를 가지고 들어왔다. 쿠션을 베어주고 담요를 덮어준 호수아는 뻐근한 목을 좌우로 꺾고
발목과 손목을 돌리며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괜찮을까?”
“뭐가?”
“예레미야 서지유랑 같이 무대 서는 거.”
뜬금없는 사무엘의 말에 호수아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솔직히 걱정됐다. 항상 멤버들 곁에만 있다가 혼자 다른 사람과 무대에
선다는 것이 예레미야에게는 낯선 일이었으니까.
말이 없는 호수아를 힐끔 본 사무엘은 피식하고 웃으며 솔직히 말해 미카엘과 히브리가 더 걱정된다는 말과 함께 음료수를 건네었고,
음료수를 받아든 호수아는 뉴클리어와 함께 호흡을 맞출 미카엘과 히브리의 모습이 상상되었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무대 안 한다고 때려치울지도 모르지.”
“주먹이나 오가지 않으면 다행이고.”
“걱정이다. 걱정이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뒤섞인 말을 주고받으며 실없는 웃음을 내뱉은 사무엘과 호수아는 예레미야가 깰까 싶어 볼륨을 작게
낮추고 지금까지 연습한 안무를 맞추어 보았다. 이건 아니다 싶은 부분은 과감히 수정하고, 삭제하는 등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8분 동안 무대를 장식할 안무가 탄탄하게 짜여졌다.
오디오기기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져있던 수건으로 피부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거친 숨을 고르던 호수아와 사무엘은
순식간에 밀려오는 피곤함에 바닥에 드러누웠다.
“나이는 못 속이겠다.”
“이제 겨우 스물이 무슨 나이타령이야.”
“내가 연습생 땐 미친놈처럼 뛰어다녔었는데.”
“그건 그래.”
“근데 너도 만만치 않았어.”
우스갯소리를 하며 실없이 웃던 사무엘과 호수아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시에 ‘여기서 자고 갈까’라고 중얼거렸고, 눈이 마주친
둘은 기분 좋게 웃었다. 숙소까지 갈 마음도 안 생기고, 예레미야가 잠들기도 했고 여러 가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정말 자고 갈 생각인지 눈을 감아버리는 사무엘을 보고 일어난 호수아가 손을 내밀며 숙소로 가자고 말하면, 사무엘이 실눈을
뜨고 ‘진짜 여기서 자버리자’라고 진지하게 말해오는 것이 많이 피곤한 모양인지 목소리에도 힘이 없었다.
“날이 추워서 감기 걸려.”
“사무실 가서 잘까.”
“무안해지려고 한다.”
사무엘을 향해 뻗은 손을 흔들며 말하는 호수아의 얼굴엔 장난기가 가득했다. 손을 맞잡으면 일으켜주다가 손을 확 놓는 장난이라도
칠 것 같은 얼굴에 사무엘은 혼자 바닥을 짚고 일어나며 ‘대신 예레미야는 네가 책임져. 형님은 피곤해서 못 한다’라고 말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하고 웃은 호수아는 빈 음료수 캔과 페트병을 치우고 바닥을 대걸레로 스윽 닦으며 깔끔하고 확실하게
뒷정리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신데렐라가 따로 없다고 실없는 소리를 하던 사무엘은 등을 내미는 호수아가 예레미야를 업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를 세워두었던 곳에 선 사무엘은 깊고 우울한 한숨을 내뱉었다. 있어야 할 호수아의 차가 보이지 않았다.
구시렁구시렁. 일찍 들어가는 주제에 차까지 끌고 가버린 미카엘과 히브리는 세상에 둘도 없는 이기주의자라며 주차장을 빠져나온
사무엘은 예레미야를 업은 채 묵묵히 숙소까지 향하는 길을 밟는 호수아를 힐끗 보고 진짜 성인군자가 따로 없다고, 성인등록이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를 하며 피곤함을 달래려 애썼다.
“오늘은 수업도 없으니까 늘어지게 잠이나 자야겠다.”
“그래, 밀린 잠 좀 보충해라.”
“너도 운동이다, 뭐다 몸 혹사시키지 말고 잠도 좀 오래 자고 그래.”
“시상식까진 어림도 없다.”
“넌 너무 성실해서 탈이야, 임마.”
팔꿈치로 툭 치며 장난스럽게 말하는 사무엘의 목소리에는 따스한 걱정이 담겨 있었다. 남들보다 적게 자고, 남들보다 많이
움직이는 호수아가 앓아눕는 날엔 숙소가 어떻게 돌아가게 될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만큼 호수아는 멤버들에게 필요이상의
존재인 탓도 있고, 또 최근 너무 바쁘게만 사는 것 같아 건강상 문제는 없을까 염려도 되고. 호수아를 보면 걱정이 앞섰다. 리더랍시고
너무 많은 것을 지고 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 겨울에 감기도 잘 안 걸리는 녀석이라 그래도 한 시름 놓긴 놓는다만, 원래 안 아프던 애들이 한 번 아프면 금방이라도 죽을 듯이
아픈 법이기에 염려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잠든 예레미야를 업고 숙소까지 가는 길은 호수아를 생각보다 힘들게 만들었다.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썩 가깝지 않은 거리를
잠든 사람을 업고 걸어간다는 것은 그 누구라도 힘들 터였다. 한 번씩 걸음을 멈추어 숨을 고르는 호수아를 보고 사무엘도 걸음을
멈추었다.
“내가 업을게.”
“됐어, 피곤하잖아.” “넌 안 피곤하냐, 고집 부리지 말고 내놔. 내가 업을게.”
“됐다니까.”
“너 지금 언행불일치인 거 알지?”
말은 됐다고 하면서 이미 몸은 예레미야를 넘기고 있는 호수아를 보고 사무엘은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제 아무리 여호수아라도
힘들 땐 힘든 법. 예레미야를 업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던 사무엘은 한 걸음 뒤쳐져 걸어오는 호수아를 불렀다.
“야.”
“어, 왜?”
“얘 살 좀 찐 것 같지 않냐?”
“그래? 모르겠던데.”
“살 좀 찐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무거…… 악!”
예레미야가 살이 좀 찐 것 같다고 구시렁구시렁 거리며 무겁다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꽥 소리를 지른 사무엘은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예레미야의 손에 머리카락이 잔뜩 잡힌 채였다. 여자에게 그런 말은 실례라고 꾸중을 한 예레미야는 내려 달라며 신경질을
냈다.
예레미야를 내던지다 시피 바닥에 내려놓고 머리를 움켜잡은 사무엘은 머리카락이 한 움큼 빠져나간 것처럼 허한 기분을 느끼며
예레미야를 찌릿 노려보았다. 자는 척 한 거냐고 묻는 사무엘을 향해 콧방귀를 뀌어준 예레미야는 호수아의 뒤로 쏙 숨어버렸다.
“야, 너 설마 처음부터 깨어있었던 건 아니겠지?”
“알 게 뭐야, 그런 거!”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은 채 새침한 표정의 예레미야를 내려다보던 사무엘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는 애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앞서 걸어갔다. 그런 사무엘의 뒤통수에 혀를 날름거린 예레미야는 호수아의 팔을 잡아끌어 사무엘의 뒤를
따랐다.
사실 예레미야는 연습실에서 나오면서부터 깨어 있었다. 허나 호수아에게 업혀있는 기분이 너무 좋아 조금만 있다가 깨어난 척
해야겠다 싶은 생각에 버티고 버텼는데 사무엘에게로 옮겨지면서 신경을 자극하는 말을 듣는 바람에 본능에 충실한 두 손이 일을
저질러버리고 말았다. 안 그래도 최근 볼이 통통하니 살이 살짝 올라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입술을 삐죽이며 호수아의 눈치를 보던 예레미야는 호수아의 팔에 매달리며 애교 가득한 목소리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고,
그에 호수아는 괜찮다는 듯 예레미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쑤아는 너무 착해에.”
호수아의 팔을 꼭 잡은 채 숙소로 향하는 예레미야는 호수아의 배려와 이해심에 새삼 또 반해서인지 발걸음이 가벼웠다.
♪
호수아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아침부터 야단법석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밥을 먹으면서 옷을 입고, 양치질을 하면서 가방을
챙기고, 신발을 신으면서 머리를 빗는 등 정신없이 학교에 갈 준비를 하던 미카엘과 히브리는 어제 밤늦도록 게임을 한 덕분에
얼굴에 피곤이 가득했다.
사무엘이 곤히 자고 있는 관계로 매니저를 부른 호수아는 예레미야를 챙겨 매니저와 함께 학교로 보내고, 미카엘과 히브리가
아무런 제재 없이 학교에 갈 수 있도록 숙소 앞에 있는 팬들을 유인했다.
한 바탕 팬들에게 시달리고 겨우겨우 숙소로 돌아온 호수아는 피곤함에 뻑뻑한 눈을 수차례 감았다 뜨며 부쩍 추워진 날씨에
옷을 따뜻하게 챙겨 입고 숙소를 나섰다. 볼에 맞닿는 차가운 바람에 예레미야에게 카디건이라도 하나 더 겹쳐 입게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을 하던 호수아는 걸음을 재촉했다.
“어? 여호수아!”
“안녕하세요.”
“안 그래도 부르려고 했는데, 잘 됐다.”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마주친 실장의 손에 이끌려 사무실에 들어온 호수아는 따뜻한 홍차를 마시며 오랜만에 들어오는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변한 게 없다는 생각을 하며 실장이 얘기하길 기다렸다.
한참 분주히 움직이던 실장이 호수아의 앞에 앉으며 한숨을 내쉬고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다름이 아니라, 시상식 때문에 불렀어.”
“뭐 변동된 사항이라도 있어요?”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예레미야가 좀 걱정돼서 말이야.”
“괜찮을 거예요, 예레미야라면.”
“사실 개인무대는 네가 하기를 바랐는데, 서지유 쪽에서 너랑 하고 싶다고 너무 노골적으로 나오더라고. 그래서 붙여놓으면 좀
위험하다 싶어서 예레미야를 넣었는데. 괜찮을지 모르겠다.”
호수아를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인 서지유와 스캔들이 날 것을 우려하여 예레미야에게 개인무대를 주긴 주었는데 워낙 호수아에게
의지하는 예레미야인지라 소속사 식구들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예레미야라면 괜찮을 거라고 미카엘과 히브리가 더 걱정이라는 호수아의 말에 실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매니저에게 대충
이야기를 들어 미카엘과 히브리가 뉴클리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호수아가 걱정할 정도라니 생각보다
심각한 것 같다고 판단했다.
멤버들 중 스케줄이 제일 많은 호수아를 혹사시킬 수 없어 둘을 합동무대 명단에 넣긴 했는데 실장은 내심 불안했다. 아무리 경력이
많아도 같이 무대에 서는 사람들과 호흡이 맞지 않으면 좋은 무대가 나오지 않으니까.
“뉴클리어, 괜찮은 애들이니까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거예요.”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아 그리고 이번 주 스케줄 확인해봐.”
“네.”
할 얘기를 마친 실장은 호수아에게 나가보라며 손짓을 해보였고, 그에 호수아는 고개를 숙여 깍듯이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당장 오늘부터 스케줄이 있어 호수아는 미간을 좁혔다. 저녁에 예레미야는 서지유를 만나고, 미카엘과 히브리는 뉴클리어를
만나야 했다. 한숨을 내쉰 호수아는 빈 연습실을 찾아 들어갔다. 연말 특집 프로그램 준비도 해야 하고, 시상식 무대 준비도 해야
하는지라 점심을 먹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연습에 매달렸다.
그 어떤 연예인이든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한 가장 멋지고 예쁜 모습을 보여주기를 소망하고 그를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기 마련이듯 호수아도 그랬다. 기왕에 보여줄 거 제대로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어이, 리더!”
“…….”
“여호수아!”
“아, 언제 왔냐?”
“한참 됐거든?”
입술을 삐죽이며 소파에 앉은 미카엘과 히브리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연습실에 온 탓에 심기가 불편했다. 그 놈의 시상식만 아니었어도
놀고 있었을 거라고 중얼거린 미카엘에게 호수아는 바뀐 스케줄을 일러주었다.
“오늘 저녁에 뉴클리어 만나.”
“뭐? 왜?”
“신인이어서 되도록 빨리 하는 게 좋다고 이번 주부터 시작하래.”
“아, 싫은데!”
“오늘은 그냥 만나기만하고, 연습은 내일부터야.”
싫다고 몸을 배배 꼬아 보아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미카엘과 히브리는 더 답답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욕이 안 생긴다고 투덜대는 미카엘과 히브리를 토닥여준 호수아는 둘에게 안무를 하나하나 가르쳐주었다. 합동무대는 합동무대고,
자신들의 무대는 자신들의 무대였으니까.
♪
“괜찮겠어?”
“응! 당연하지! 난 예레미야니까!”
“진짜 괜찮은 거지?”
“그렇다니까아.”
서지유를 만나러 가기 위해 외출 준비를 하는 예레미야의 뒤에서 연신 괜찮겠느냐고 묻는 호수아는 내심 걱정이 됐다. 물론,
예레미야가 서지유를 만나러 가는 데에 매니저가 따라가기는 하지만 이렇게 멤버들과 떨어져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예레미야에게
있어 데뷔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까.
예레미야가 괜찮지 않다고 해도 호수아가 따라가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정말 괜찮았다. 호수아와 함께 가서 서지유가 호수아에게 눈독을 들이느니 혼자 가는 게 백 배, 아니 천 배는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멤버들과 떨어져 혼자 누군가를 만나는 게 데뷔 이후 처음이니 만큼 떨려서 말을 못할지언정 호수아는 절대 데려가지 않으리라
마음먹은 예레미야는 넘치는 자신감을 보였는데, 호수아는 그런 예레미야의 태도 때문에 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진짜 괜찮아!”
“후, 알았어. 조심해서 다녀와.”
“응응.”
“형한테 투정부리지 말고.”
“응응!”
찬바람이 쌩쌩 분다며 옷깃을 여며주는 내내 엄마 같은 잔소리를 늘어놓던 호수아는 허리를 숙여 다녀오겠다고 씩씩하게 인사를
하는 예레미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숙소 문을 열어주었다.
미카엘과 히브리, 사무엘에게도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탄 예레미야는 지하 1층을 누르고는 호수아를 향해 손을 흔들어보였다.
인사를 도대체 몇 번이나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리던 사무엘은 정말 지독히도 챙긴다는 생각을 했다.
예레미야를 보내고 숙소로 들어온 호수아도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미카엘과 히브리가 뉴클리어를 만나는 데에 따라갈 생각이었다.
매니저가 예레미야를 따라가는 바람에 미카엘과 히브리 단 둘이서 뉴클리어를 만나야 하는데 행여 다투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서
연습을 다 제쳐두고 따라나서기로 했다.
“진짜 우리끼리 가도 괜찮다니까.”
“안 돼.”
“진짜야, 그리고 너 연습해야지.”
“잔말 말고 준비해, 늦었어.”
“에이씨! 몰라, 맘대로 해! 따라 오든지 말든지!”
호수아를 안 데리고 가려고 온갖 말을 늘어놓던 미카엘은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될 대로 되라’라는 식의 발언을 했다. 그에 호수아는
피식하고 웃으며 모자를 쓰고 차키를 챙겼다.
미카엘과 히브리는 뉴클리어와의 합동 무대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그들을 리드하여 자신들의 색깔이 묻어나는 무대를 만들려고
했었다. 그러니 지금 숙소를 나서는 호수아의 뒷모습이 미워 보일 수밖에.
호수아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미카엘과 히브리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괜히 말 한 번 잘못 꺼내면 호수아에게 된통 혼이 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도 했고, 지금 기분에선 투정을 부리는 것 외에는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요한 분위기로 도착한 뉴클리어의 숙소 앞에서 미카엘은 입술을 삐죽였다. 기껏 모인다는 장소가 그들의 숙소인 것이 못마땅했다.
하늘같은 선배를 오라 가라 한다고 투덜투덜 대며 계단을 올라가다가 스텝이 꼬여 굴러 떨어질 뻔해 미카엘과 히브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 둘을 보고 호수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못된 생각하니까 그러지. 그만 투덜대고 얼른 와.”
호수아에게 한 소리를 듣고 도착한 뉴클리어의 숙소는 꽤나 깔끔했다. 초인종을 누르자마자 달려 나와 문을 연 뉴클리어는 호수아가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상체를 숙여 깍듯이 인사를 했다.
깔끔하게 정돈된 숙소 안에 들어서자마자 거실로 안내한 뉴클리어의 리더 남세민은 따뜻한 차를 타왔다. 새하얀 종이 여러 장과
펜을 들고 나온 김윤성과 신제현은 어딘지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미카엘과 히브리의 눈치를 살피느라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선배님들과 함께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응응, 그래 영광이겠지.”
“네?”
“미카엘, 너 계속 그래라.”
“아, 알았어. 안 하면 되잖아, 안 하면!”
어금니를 악 문채 이 사이로 말하는 호수아에게 두 손을 들어 보이며 안 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하는 미카엘을 보고 뉴클리어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미카엘의 이런 모습은 맹세코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자신에게 모인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테이블 위에 놓인 하얀 종이를 보고 뭐냐고 물은 미카엘은 기왕 이렇게 된 거 빨리 하고
가서 쉬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히브리도 마찬가지였는지, 금세 테이블에 바짝 붙어 앉아 뉴클리어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그런 그들에게서 살짝 떨어져 상황을 지켜보던 호수아는 예레미야에게 문자를 해볼까, 말까 망설였다. 잘 하고 있을까 걱정은
되는데 매니저와 함께 있는지라 문자를 보내는 것이 망설여졌다.
♪
“곡은 이거로 하죠, 괜찮죠?”
“저는 괜찮은데, 괜찮으시겠어요?”
예레미야와 서지유가 1시간 가까이 상의한 끝에 결정한 곡은 댄스곡이었다. 발라드가수인 서지유가 소화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예레미야야 원래 발라드와 댄스를 넘나들었으니 별 무리가 없을 테지만.
걱정스럽게 묻는 예레미야가 얄밉게 느껴졌는지 서지유는 ‘예레미야씨도 하는데 저라고 못할 건 없죠’라고 비꼬았다. 비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예레미야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이미 자신이 서지유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연습은 매일 10시에 해요. 라디오 끝나고 하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아서요.”
“그렇게 해요, 그럼. 이제 가 봐도 되죠?”
“바빠요? 바쁜 거 아니면 얘기 좀 하고 가요. 앞으로 많이 볼 텐데 친해지면 좋잖아요.”
“뭐, 딱히 바쁘진 않아요.”
“둘이서만 얘기하고 싶으니까 나가서 기다려.”
바쁘지 않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매니저에게 사납게 쏘아붙이는 서지유를 보고 예레미야는 소문이 근거 없이 떠돌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싶었다.
서지유의 매니저가 나가고 난 뒤 예레미야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망설였다. 매니저를 내보내야 할까, 내보내도 괜찮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는데 서지유가 별다른 눈치를 주지 않아서 그냥 곁에 두었다.
호수아에게서 절대 예레미야를 혼자 두지 말라는 얘기를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들은 탓에 예레미야가 나가라고 했어도 매니저는
나가지 않았을 거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있지만 예레미야가 바짝 긴장한 상태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요즘 무대 잘 보고 있어요. 얼마 전에 호수아씨랑 같이 라디오 했는데 많이 아쉬웠어요. 예레미야씨도 같이 했으면 좋았을 텐데.”
“불러주시지 그러셨어요, 그 시간에 딱히 스케줄도 없었는데.”
“제가 섭외하나요, 뭐. 그건 그렇고 호수아씨가 예레미야씨를 되게 챙기더라구요. 멤버들 중 가장 친하죠?”
“저희 멤버들은 두루두루 친해요.”
두 여자의 불꽃 튀는 신경전에 매니저는 식은땀이 났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어떻게 신경을 건드리는 말만 내뱉는지, 이 둘이
정말 듀엣 무대를 성공리에 끝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주거니 받거니 끝도 없이 이어진 공방전은 매니저가 호수아의 전화를 받으면서 막을 내릴 수 있었다. 시상식 연습을 위해 얘기가
다 끝났으면 연습실로 오라는 말에 예레미야는 조금은 얄미워 보일 법한 미소를 지으며 서지유에게 인사를 하고 차에 올라탔다.
피곤해 보이는 예레미야를 보고 묵묵히 운전을 하던 매니저가 신호에 걸려 멈추어 서자 서지유와 잘 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다.
그에 예레미야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반반? 잘 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아닌 것도 같아.”
“그래, 음. 그건 그렇고 둘이 무슨 대화를 그렇게 살벌하게 해. 식은땀이 다 나더라.”
“남자는 모르는 그런 게 있어어.”
아리송한 대답을 하고 핸드폰 슬라이드를 열었다, 닫았다 하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던 예레미야는 연습실 앞에서 차가 멈춰
서자마자 스프링처럼 튕겨 나와 호수아가 있을 연습실로 질주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매니저는 알 수 없다는 듯 의문점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호수아의 행방을 찾고 또 찾은 예레미야는 호수아의 모자가 언뜻 보이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달려가 호수아에게 매달렸다.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무게에 휘청하던 호수아는 예레미야인 것을 확인하고 미소를 지으며 잘 다녀왔냐고 다정히 물었다.
“응, 잘 다녀왔어!”
“그래, 다행이네. 곡은 정했어?”
“응응, 나는 발라드도 괜찮다고 했는데 굳이 댄스곡 하고 싶대서 그렇게 하기로 했어! 근데 좀 난이도가 있을 것 같아서 걱정이야.”
“연습은 언제 하기로 했어?”
“매일 10시!”
“그렇게 늦게?”
결코 이른 시간은 아니기에 호수아는 걱정이 가득 담긴 표정을 내비췄다. 그 시간에 연습을 시작하면 새벽 늦게야 숙소에 들어올
텐데 예레미야가 잘 버틸 수 있을지, 숙소엔 잘 들어올 수 있을지. 걱정해야할 부분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런 호수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레미야는 미카엘과 히브리에게 뉴클리어의 숙소는 어땠냐며 꼬치꼬치 캐묻고 있었다.
오늘 만나본 뉴클리어는 생각 외로 미카엘, 히브리와 맞는 구석이 많았고 그래서 별 다른 의견 충돌 없이 합동 무대에 대한 계획이
순탄히 진행되었다. 사람은 만나봐야 안다는 말이 뭔지 깨달은 둘은 더 이상 뉴클리어의 음악적인 감각이 이러네, 저러네 하는 말은
하지 않게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 뉴클리어에 대해 예레미야에게 친절히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제 각기 하고 싶은 일을 하느라 흩어져있던 멤버들을 불러 모은 호수아는 2주 안에 모든 안무를 완벽하게 익히자는 말과 함께
연습 시작을 알렸다.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면서부터 순식간에 바뀐 분위기엔 그 어떠한 장난기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저
진지함 그 자체였다.
“아니, 아니. 이 부분은 이렇게. 하나 둘 셋 넷.”
“이렇게?”
“팔을 좀 더 뒤로 빼서 하나 둘 셋 넷. 오케이.”
예레미야는 호수아의 지도에 따라, 미카엘과 히브리는 사무엘의 지도에 따라 한 동작, 한 동작 차차 익혀갔다. 평소에 보이던
장난기가 전혀 없는 얼굴은 그들이 얼마나 집중해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한 숨 돌리고 다시 하자는 호수아의 말에 다들 연습실 바닥으로 드러누웠다. 예레미야는 누워서 숨을 고르는 호수아의 배에
머리를 대고 누웠는데, 음료수를 사왔다며 매니저가 불쑥 들이닥치기 무섭게 호수아에게서 잽싸게 떨어져 사무엘의 팔을 베고
누웠다. 어찌나 빠르게 움직이던지 보는 사람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진짜 대박도 저런 대박이 없을 거야, 가만 보면 쟤도 호수아 만큼 무섭다니까.”
“누가 아니래? 으, 나 소름 돋았어.”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받던 미카엘과 히브리는 키득키득 웃으며 매니저가 던지는 음료수를 받았다. 시상식까지
방송 스케줄은 없을 거라고 말하는 매니저를 빤히 쳐다보는 예레미야는 언제쯤 매니저가 연습실에서 나갈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
“응? 아무것도 아니야. 오빠는 안 바빠?”
“바쁘기라도 원하는 말투다?”
“아니,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궁금해서!”
“아닌 것 같은데, 흠.”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그럼 됐고. 호수아, 잠깐 나와 봐.”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던 매니저가 호수아와 함께 연습실을 나가자 예레미야는 한숨을 내쉬고 미카엘과 히브리를 찌릿 노려봐
주었다. 만날 둘이 편먹고 놀리기 바쁘다고 투덜대며 음료수를 마신 예레미야는 매니저가 호수아를 또 혼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걱정이 되었다.
“아까 예레미야가 서지유랑 만났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라.”
“왜? 싸워, 둘이?”
“그런 건 아닌데. 묘한 신경전이랄까, 둘이 웃으면서 말을 주고받긴 하는데 살벌한 분위기더라고.”
“이상하네, 예레미야가 그럴 애가 아닌데.”
“그러니까, 나도 보고 깜짝 놀랐어. 기죽어서 말 한 번 못 붙일 줄 알았는데. 아무튼 둘이서만 자주 만나는 건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근데 그걸 왜 나한테 말해, 예레미야랑 붙어 있지 말라며. 그리고 실장님이 스캔들 날지도 모른다고 일부러 나 빼준 거라던데.”
가시가 돋은 호수아의 말에 매니저는 움찔했다. 가끔 호수아는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마음에 담아두었던 일에 대해 거침없는
말을 내뱉어 당황스럽게 만들고는 했다. 예레미야와 거리를 두라고 한 것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나, 호수아가 이 정도로 마음에
담아두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니, 나는 네가 리더고 애들도 네 말은 잘 들으니까 잘 말해서 예레미야 연습할 때 같이 따라가라고 했으면 해서.”
“미카엘하고 히브리는 안 되는 거 알잖아.”
“그럼 사무엘한테라도 잘 말해줘.”
“안 그래도 사무엘 요즘 예레미야 챙겨주느라 피곤해 하는데, 연습까지 따라가라고?”
“그럼 어떻게 해, 당장 예레미야가 걱정인데.”
“형이 따라가, 그러면.”
“어?”
“형이 따라가라고. 어차피 우리 스케줄도 없잖아. 형이 예레미야 따라가면 되겠네.”
웬만해선 앙칼진 서지유와 마주치고 싶지 않은 매니저의 마음도 모르고 호수아는 정곡을 콕콕 찌르는 말을 던졌다. 호수아의
말에 반박할 거리가 없던 매니저는 땅이 꺼질 듯 깊은 한숨을 내쉬며 예레미야를 따라가겠다고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짧지만 썩 유쾌하지 않은 대화를 끝내고 매니저는 사무실로 올라가고 호수아는 연습실 안으로 들어왔다. 사무엘에게 기대고
앉아 골똘히 생각하는 예레미야에게 뭔가 말하려던 호수아는 한숨을 내쉬고 바닥에 늘러 붙어 있는 미카엘과 히브리를 일으켰다.
“10분만 더 쉬자아아아.”
“오래 쉬면 늘어져서 안 돼. 얼른 일어나.”
“아, 진짜 딱 10분만!”
“안 돼.”
“아씨, 진짜 완전 빡세!”
“뉴클리어랑 연습도 해야 할 텐데, 빨리 끝내면 끝낼수록 좋지 않겠어?”
언제나처럼 바른 말만 골라하는 호수아에게 뭐라 반박할 수 없어 자리를 털고 일어난 미카엘과 히브리는 기합을 넣고 연습을
하자고 외쳤다. 그런 둘을 빤히 보던 예레미야도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연습할 준비는 안하고 호수아에게 걸어와 매니저와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고 물었다.
새카만 눈동자에 자신을 담아내는 예레미야를 내려다보던 호수아는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별거 아니라는 듯 웃으며 예레미야를 중앙에 데려다 놓았다.
“딱 한 시간만 더 하고 가자.”
호수아의 말에 표정이 밝아진 미카엘과 히브리는 지금 당장 무대 위에 올라가도 괜찮다는 듯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제
막 안무가 몸에 배기 시작한 예레미야도 다른 멤버들에게 뒤지지 않게끔 노력했다.
틈이 날 때마다 서로 맞춰 보았던 사무엘과 호수아의 배틀에 미카엘과 히브리, 예레미야는 피곤함도 싹 잊을 정도로 신이 났다.
관객이 된 것처럼 호응도 보내주는 등 열정적인 환호를 보내던 셋은 타이틀곡의 시작이 다가올 때쯤 본래의 위치로 돌아갔다.
반복에 반복을 거듭했다. 정말 지겹도록 반복한 끝에 무대에 서도 괜찮겠다 싶을 정도가 되었고, 그에 만족하지 않고 더 완벽함을
추구하는 호수아 때문에 멤버들은 적어도 하루에 한 시간은 모여서 연습을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연습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피곤함을 억누르며 정리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연습실에서 나온 호수아는 숙소를 향해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멤버들의
틈으로 끼어들었다. 피곤함에 절어 있는 멤버들의 어깨를 토닥여준 호수아는 편의점을 보자마자 안으로 쏙 들어가서 쿠키와 포도주스
6병을 사왔다.
“마셔, 마시고 가서 푹 자.”
“이열~ 역시 리더.”
“이럴 때만 리더지?”
“어떻게 알았어, 족집겐데?”
장난스런 미카엘의 말에 피식하고 웃은 호수아는 예레미야에겐 쿠키를 건네었다. 지금은 별로 먹고 싶지 않다는 예레미야의
말에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학교에 가서 먹으라던 호수아는 미카엘과 히브리의 원성을 받아야만 했다. 그런 광경을 보며 사무엘은
하루 이틀이냐는 듯 별 관심 없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다들 거실로 뻗어버렸다. 미카엘과 히브리는 더 이상 걸을 힘도 없다며 거실로 들어
가기도 전에 신발장 앞에 드러누웠다. 고요한 숙소 안에 숨소리만이 맴돌았다.
“다들 들어가서 자.”
“움직일 수가 없어어.”
“자자, 일어나.”
자리를 털고 일어나 끝까지 리더의 책임을 다하려는 호수아는 시체마냥 축 늘어져있는 미카엘과 히브리의 방을 열고 둘을 질질
끌어다가 안으로 집어넣었다. 문지방에 찍혀 아프다고 징징대는 둘에게 베개와 이불도 던져주고 잘 자라는 인사와 함께 문을 닫은
호수아는 근처에 누워있던 사무엘의 팔을 잡아 당겨 일으켰다.
하루쯤 거실에서 자면 뭐가 덧나느냐고 답지 않은 투정을 부리는 사무엘의 등을 토닥여 방으로 들여보낸 호수아는 그에게도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방문을 닫아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레미야를 방으로 들여보내려던 호수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손에 포도주스와 쿠키를 꼭 쥔 채 쌔근쌔근 잠든 예레미야는 어린아이 같았다. 빤히 내려다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손에 쥐어져
있던 쿠키와 포도주스를 예레미야의 가방에 넣고 방문을 열어놓은 채 거실로 나온 호수아는 예레미야를 번쩍 안아 방 안에 있는
침대로 옮겨다 놓았다. 베개도 잘 베어주고, 이불도 잘 덮어준 뒤 방문을 닫고 나온 호수아는 그 제서야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리더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는 생각을 하며 욕실로 들어간 호수아는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난 뒤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예레미야를 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깊은 듯, 옅은 잠을 잤다.
♪
호수아가 깨워주지 않는 바람에 지각을 할 위기에 놓인 예레미야는 사무엘의 도움을 받아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면할 수 있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지 소란스럽게 왔다갔다 거리며 떠드는 데도 일어나지 못하던 호수아가 걱정이 되어 학교에 오지 않으려 했으나
사무엘의 등살에 떠밀려 등교를 한 예레미야는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아침부터 사진을 찍고, 사인을 요구하는 아이들을 상대하느라 지친 예레미야는 호수아에게 일어나면 전화하라는 문자를 보내고
교무실을 찾았다. 오전 수업만 받고 조퇴를 할 생각이었는데, 교무실에서 유아이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전처럼 상체를 숙여 깍듯이 인사를 하는 아이에게 예레미야 역시 상체를 숙여 깍듯이 인사를 했다. 거리감을 두기 위해 한
행동이었는데 전처럼 무시하지 않아준 것에 초점을 맞춘 아이는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예레미야에게 말을 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눈치 채고 담임선생님을 찾아 휙 사라진 예레미야 덕분에 말을 걸진 못했지만 나름대로 만족해하고 있었다.
“선생님.”
“어어, 예레미야. 무슨 일이니?”
“저 연습 때문에 오전 수업밖에 못 할 것 같아서요.”
“음, 그래. 연습 때문이라니까 어쩔 수 없지.”
흔쾌히 조퇴를 허락해준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교무실을 나온 예레미야는 자신의 뒤를 졸졸 쫓아오는 아이의 기척에 미간을
좁혔는데 아무리 잘 생겼어도, 예의가 바르더라도 다른 멤버들이 없는 곳에서 같은 연예인을 만난다는 것은 예레미야에게 있어
그리 좋은 일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예레미야의 속을 알 리가 없는 아이가 예레미야를 불러 시상식 준비를 하고 있는 거냐고, 듀엣 한다던데 기대하고 있다는 둥
앞으로 많은 것을 가르쳐줬으면 좋겠다며 예레미야를 ‘선배님’이라고 불렀다. 자신이 잘못 들은 걸까 싶어 걸음을 멈춰선 예레미야의
귀에 들려온 소리는 분명 ‘선배님’이었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예레미야를 보고 생긋 웃은 아이는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에 아쉬운 표정으로 후를
기약했다.
“다음에 봬요, 선배님.”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같이 고개를 숙인 예레미야는 핸드폰을 꺼내어 호수아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아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자는 걸까 싶어 사무엘에게 물어보려다가 사무엘도 오늘은 학교에 간다는 것을 깨닫고 풀이 죽은 표정으로 핸드폰을 주머니
속에 넣었다.
이 섞는다고 엄마에게 좋아하는 사탕을 빼앗긴 어린아이마냥 울상을 지은 채 교실로 돌아온 예레미야는 빨리 점심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계속 연락이 안 되는 호수아에게 달려가고 싶은 마음에 수업 시간 내내 창밖을 내다보던 예레미야는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기 무섭게 가방을 들고 학교를 뛰쳐나왔다.
오전 수업만 하겠다는 말을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기에 사무엘도, 매니저도 예레미야를 데리러 오지 않았다. 교문에 다다른
뒤에서야 깨달은 예레미야가 매니저에게 전화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택시를 타고 가기로 마음먹은 그 순간 뒤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배님! 연습실 가세요?”
“아, 숙소에 가요.”
“아아, 매니저는요?”
아이의 물음에 예레미야가 어깨를 으쓱했다. 머리를 긁적이며 잠깐 생각에 잠기던 아이는 예레미야에게 괜찮다면 숙소까지 같이
타고 가겠느냐고 물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한 예레미야가 빤히 쳐다보자 아이는 손가락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세워져
있는 차를 가리켰다.
“그냥 택시타고 가면 되요.”
“같이 가요, 그렇게 멀지도 않은데. 형들도 괜찮다고 할 거예요.”
생글생글 웃으면서 자꾸 권하는데 거절하기도 뭐해 예레미야는 결국 CCC의 차에 합승했다. 예레미야랑 같이 타게 되었다는
아이의 말에 처음엔 좀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던 멤버들은 예레미야가 인사를 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이쪽은 우리 리더, 완연이 형이에요.”
“반가워요, 이완연이에요.”
“예레미야에요.”
“처음 뵙는 거죠, 화면으로 볼 때보다 훨씬 예쁘시네요.”
“고마워요.”
훈훈한 분위기에서 이어지는 대화에 예레미야는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생각보다 건방진 것 같지도 않고, 외려 자신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왜 데뷔 날 찾아오지 않았느냐고 물으려다가 관둔 예레미야는 다른 멤버를
소개하는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여기는 리다형이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호리다에요.”
“예레미야에요. 이름이 멋지네요.”
“아, 감사합니다.”
인사를 나누고 난 뒤에 시상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려는데 예레미야의 핸드폰이 벨소리를 냈다. 액정에 뜬 호수아의 이름에
예레미야는 CCC에게 양해를 구하고 밝은 표정으로 급히 통화버튼을 눌렀다.
“일어났어?”
[응, 방금. 학교는 잘 갔어?]
“응, 어디 아픈 거야? 아침에도 못 일어나구.”
[그냥 좀 피곤했나봐. 학교야? 아닌 것 같은데]
“지금 숙소에 가고 있어.”
[옆에 형 있으면 바꿔줘]
“나 지금 혼자 가고 있어.”
[뭐? 사무엘도 없어? 택시 탔어, 너?]
걱정스러우면서도 격양된 호수아의 목소리에 예레미야는 미소를 지었다. 이토록 자신을 걱정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굉장히
기쁜 일이었으므로. 순간, CCC가 옆에 있다는 것을 까먹고 호수아에게 어리광을 부릴 뻔해 스스로 당황한 예레미야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최대한 차분하고 얌전하면서 도도하게 보일 수 있는 목소리를 냈다. 이건 예레미야의 방송용 목소리였다.
“내가 전에 말했잖아, CCC의 유아이씨랑 같은 학교라구. 지금 같이 있는데 숙소까지 데려다 준다고 하셔서.”
[숙소 앞에서 기다릴게]
“추운데 안 그래도 돼.”
[이따 봐]
호수아는 뭔가에 굉장히 화난 듯 전화를 끊어버렸고, 예레미야는 끊긴 전화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숙소에 도착해
호수아를 만나면 제일 먼저 왜 그렇게 전화를 끊어버렸느냐고 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예레미야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누구와의 통화인지 궁금한 듯 자신에게 집중된 CCC의 시선에 당황스러워진 예레미야는 창밖으로 시선을 두었다. 호수아와의
통화 이후로 대화가 뚝 끊겨버려서 어색함이 감도는 차 안의 분위기가 예레미야에게 있어선 불편했고, 그래서 숙소 앞에 차가 멈춰
서자마자 도망치듯 내렸다.
숙소 앞에서 팬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호수아는 차에서 내리는 예레미야를 보자마자 성큼성큼 다가섰고, 갑작스런 호수아의 등장에
차 안에 있던 리다와 아이는 잔뜩 긴장을 했다. 이미 안면이 있는 완연은 ‘또 보네요’라고 넉살좋게 인사를 건네었고, 호수아는 고개를
숙여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예레미야 데려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 거 아니에요. 좀 돌아서 가는 것뿐이니까.”
가시 돋은 완연의 말에 당황한 리다와 아이가 왜 그러냐는 듯 완연에게 눈치를 주지만 완연은 말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런 완연을 익히 알고 있는 호수아는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상대가 도발한다고 해서 그 도발에 넘어가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일찍 깨달은 탓이었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다음에 또 봐요.”
“감사했습니다.”
깍듯이 인사를 한 호수아는 CCC의 차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을 대할 때와 호수아를 대할 때가 확연히
다른 완연의 모습에 예레미야는 어안이 벙벙했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았다.
멍하게 서있는 예레미야의 팔을 끌어 팬들을 헤치고 숙소로 올라간 호수아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평소 같았으면 조금만
비켜 달라고 웃으며 팬들에게 양해를 구했을 호수아가 지금은 그냥 말도 없이 팬들 사이를 뚫고 지나갈 정도였으니, 호수아의
표정이 밝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찬물을 벌컥벌컥 마신 호수아는 카디건 끝자락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어정쩡하게 거실에 서있는 예레미야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오랜 침묵 끝에 호수아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예레미야를 불렀고, 그런 호수아의 목소리에 예레미야가 움찔했다. 평소처럼
다정함이 넘치는 목소리가 아닌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호수아가 라디오를 하거나 인터뷰를 할 때, 혹은 화가 났을 때나
들을 수 있던 목소리였다.
“내가 무슨 말 하려고 하는지 모르지?”
정말 모른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예레미야를 보고 한숨을 내쉰 호수아는 겁도 없이 낯선 남자들로 가득 찬, 차를 타고 온
예레미야의 그 조심성 없는 행동에 대해 어떻게 꾸짖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한참의 고민 끝에 예레미야와 마주보고 앉은 호수아는 방에서 가지고 나온 스크랩한 신문이 들어있는 파일을 펼쳤다. 시간이
날 때마다 신문기사 스크랩을 하는 호수아가 갑자기 자신의 스크랩 파일을 펼친 이유를 알 수 없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빤히 바라보는
예레미야에게 호수아는 읽으라는 듯 눈짓을 해보였다.
“음, 이게 뭔데에.”
“읽어봐.”
호수아가 예레미야에게 준 파일 안에 든 신문기사는 납치로부터 시작한 범죄에 관련된 모든 기사가 들어 있었다.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가면서 호수아가 자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깨달은 예레미야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예레미야를 관찰하던 호수아는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고 애써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이제 알겠어?”
“으응.”
“조심해야겠다는 생각 들지?”
“응응.”
“다음부턴 그러지 말자.”
우는 아이를 달래듯 그렇게 토닥토닥 조심스럽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꾸짖고 깨달음을 주는 호수아를 예레미야는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래?’하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도 호수아는 절대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그게 예레미야에게 관련된 일이든, 미카엘에게
관련된 일이든, 히브리에게 관련된 일이든, 사무엘에게 관련된 일이든 간에 말이다.
이번 일도 예레미야와 CCC 전부 공인이고 그 어떠한 행동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치이기에 신문기사 속의 일이 일어날 리는
없었지만, 사람 일이라는 것이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법이고, 늘 자기 자신이 조심하며 살아야 하기에 호수아는 이번 일을
짚고 넘어간 것이었다.
“여자는 자기가 알아서 처신을 잘 해야 해. 알지?”
“응응, 앞으로 조심할게! 근데 있지.”
“응, 얘기해봐.”
“어디 아픈 거 아니지?”
걱정이 가득 담긴 예레미야의 물음에 호수아는 괜찮다는 듯 웃어보였다. 그저 피곤했을 뿐이라니 다행이라며 한숨을 내쉰 예레미야는
연습하러 가기 싫다며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안무는 어떻게 하기로 했어?”
“안무가한테 부탁해놓는댔어. 어렵진 않겠지?”
“어려워도 잘 할 거야.”
“응응, 나 열심히 해서 꼭! 멋진 무대 만들 거야.”
“기대할게.”
비장한 표정으로 각오를 다짐하는 예레미야에게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주려던 호수아는 갑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예레미야의 뒷모습에 당황했다. 하지만, 당황하기 무섭게 예레미야가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뭘 바리바리 싸들고 숙소에 들어선 매니저는 사무엘로부터 호수아의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은 것 같다는 문자를 받았고, 확인 차
숙소에 들른 것이었다. 매니저가 오는 건 귀신 같이 알아서 대처하는 예레미야가 새삼 놀랍고 신기해 호수아는 웃음을 흘렸다.
“몸은 괜찮냐? 몸살이야?”
“아니야, 그냥 좀 피곤해서 잔 것뿐이야.”
“그럼 다행인데, 알아서 몸 잘 챙겨.”
“알겠어.”
“미카엘하고 히브리는?”
“몰라, 그러고 보니 오늘 한 번도 못 봤네.”
호수아의 대답에 매니저는 불안하다며 핸드폰을 꺼내어 확인에 들어갔다. 신호가 간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받지 않는 것이
수상하다고 중얼거린 매니저는 혹시 또 둘이 어디로 샌 건 아닐까 싶어 눈앞이 깜깜해졌다.
왔다갔다 미카엘과 히브리에게 연신 전화를 거는 매니저를 보던 호수아는 문자 알림음을 울리는 핸드폰을 찾아 방으로 들어갔다.
발신자는 예레미야였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문자를 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으나, 매니저가 와있기에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지금 호수아와 예레미야는 절대적으로 냉전 중인 모습을 보여야 했으니까.
[오빠 때문에 맘대로 같이 있지도 못하고 속상해!]
진심으로 속상해하고 있는 예레미야의 마음이 느껴져 호수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스캔들이 나기 전처럼 마음껏 붙어있으면
호수아도, 예레미야도 편하련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전처럼 돌아가고 싶어도 매니저가 버티고 있는 한 불가능한
일이었다. 스캔들이 터지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또 모를까.
시간이 흐르고 나면 전처럼 붙어 다닐 수 있게 될 거라고 답장을 보낸 호수아는 연습실에 가야지, 가야지. 생각하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왜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호수아는 매니저의 부름에 거실로 나왔다. 매니저는 미카엘과 히브리가 뉴클리어와 시상식
무대에 대해 이것저것 상의할 게 있어 일찍이 그들의 숙소에 있다며 예레미야를 데리러 갔다 올 테니 피곤하면 오늘은 그냥 쉬라고
말해왔다.
“예레미야 아까 왔어.”
“뭐? 어디 있어?”
“방에 있을 걸.”
“아, 근데 왜…… 아, 아니다.”
왜 집에 없는 것처럼 방에 틀어박혀 있느냐고 물으려던 매니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예레미야의 방문을 두드렸다. 거리를
두라고 한 것은 자신이었기에 더 이상 이러니저러니 예레미야에 대해 묻는 게 뭐하게 되어버렸다. 어제 연습실에서처럼 호수아에게
가시 돋은 말을 듣고 싶지도 않았고.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대꾸가 없어 들어간다는 말과 함께 문을 연 매니저는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예레미야를 볼 수 있었다. 예레미야는 전에 녹음해 두었던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귓가에 울려 퍼지는 호수아의 미성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큰 소리로 몇 번을 부른 뒤에야 매니저에게 시선을 준 예레미야는 이어폰을 빼며 무슨 일이냔 듯 궁금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매니저가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스케줄을 얘기했다.
“내일은 서지유가 하루 종일 스케줄이 있다고 오늘 하루 종일 연습이야.”
“하루 종일? 지금부터?”
“3시까지 가기로 되어있으니까 부지런히 준비해.”
“싫은데에.”
말꼬리를 길게 늘이며 이불 속으로 몸을 집어넣는 예레미야는 심통이 났다. 모든 것을 서지유의 기준대로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곡도 고르고, 연습 시간도 정했으면서 스케줄까지 서지유가 좌우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예레미야가 투정을 부릴 때 즈음,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에는 호수아의 타이름이 나와야 하는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자
매니저는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봤고, 보이지 않는 호수아의 모습에 땀을 삐질 흘렸다.
“오늘 스케줄 있어서 못 간다고 뻥 쳐주면 안 돼?”
“3시까지 간다고 벌써 말해뒀어.”
“일부러 쉬려고 조퇴하고 온 거란 말이야.”
버려진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말하는 예레미야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는 매니저는 진심으로 호수아를 필요로 하고 있었으나,
호수아는 방에서 잔잔한 클래식을 틀어놓고 침대 위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며칠간 무리를 했으니 오늘은 얌전히 쉬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판단 하에 취하기로 한 휴식이었다.
호수아를 애타게 찾아보아도 클래식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아 매니저는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예레미야를
어떻게 달래서 데리고 나가야 할지에 대해 고뇌해야만 했다.
30분이 넘어 1시간에 가깝도록 사정을 해대는 매니저가 더 이상 귀찮게 구는 것이 싫어 어기적거리며 침대 위에서 내려온 예레미야는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있는데 정전이 됐을 때처럼 표정이 좋지 못했다.
외출 준비를 마치자마자 호수아에게 다녀오겠다는 인사도 없이 옷에 달린 모자를 쓰며 문을 열고 나가는 예레미야를 보며 매니저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둘에게 ‘거리’라는 것이 생긴 것 같아 안심이 되면서도 이건 좀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어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서지유의 개인 연습실에 도착할 때까지 말없이 창밖에 펼쳐진 풍경을 보던 예레미야는 내려야 함에도 내리지 않고 멍하니 창밖을
보고만 있었다. 그런 예레미야의 태도에서 정말 연습이 하기 싫다는 것을 느낀 매니저는 미안했다.
“안 내려?”
매니저의 물음에 시계를 본 예레미야는 힘없는 모습으로 차에서 내렸다. 어디 아픈 건 아닐까 싶어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 매니저에게
괜찮다는 듯 손을 두어 번 흔든 예레미야는 서지유가 기다리고 있을 연습실을 찾아 들어갔다.
연습실 문을 열자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꼰 채 짜증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서지유가 보였다. 예레미야는 예의를
갖춰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에 서지유는 감정을 억누르는 듯 높낮이가 불안정한 목소리로 예레미야에게 말했다.
“한 시간이나 늦었네요? 시간 통보를 잘못 했나.”
“몸이 안 좋아서 쉬고 있었거든요, 너무 갑작스럽게 일방적으로 통보된 연습이라 좀 늦었어요.”
“전화라도 한 통 주지 그랬어요. 그럼 이렇게 시간낭비 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양해도 없이 일방적으로 연습시간을 바꾸셨으니 피차일반 아닌가요?”
발톱을 드러내고 덤비는데도 한 마디 지지 않고 같이 으르렁대는 예레미야를 보며 서지유는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일찍이 데뷔한 만큼 강인한 아이라는 게 느껴졌고, 앞으로 행동을 조심할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서지유와 예레미야의 대화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던 매니저들은 안무가가 들어서자 적어도 둘이 으르렁대면서 공방전을 펼칠 일은
없다고 생각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런 매니저들의 생각은 빗나갔다.
“이 부분은 이런 식으로 바꾸는 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요?”
“아, 원래는 그런 식이었는데 아무래도 지유가 이런 춤에 취약해서 쉽게 바꾸다 보니까 이렇게 됐어요.”
“아아, 이것저것 생각할 게 많으셨겠네요.”
“뭐, 그렇죠.”
“이래서 발라드로 하고 싶었는데.”
안무가와 대화를 나누다 서지유를 힐끔 본 예레미야는 속으로 ‘예쓰!’를 외치고 있었다. 제대로 열 받은 듯 씩씩대는 모습이 예레미야를
즐겁게 만들었다.
언젠가 미카엘과 히브리가 예레미야를 앞에 앉혀놓고 가르쳐준 적이 있었다. 연예인을 만나면서 상대방이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눈치일 때, 나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고 싶어 할 때는 외려 먼저 기선제압을 해야 한다고 했다. 상대방이 비아냥대면,
나도 비아냥대면 되는 거고. 상대방이 무시하면, 나도 무시하면 되는 거라고 가르쳤다. 거울처럼 상대방이 하는 대로 돌려주되,
세게 나가 기선제압을 해야 한다면서 주의하라고 일러준 사항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욕은 욕으로 돌려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상대방이 욕을 하면서 나올 땐 같이 욕을 하지 말고 마치 욕을 해주길 기다렸다는 듯, 욕이 너무 반갑고 고맙다는 듯 웃으면서
살짝 고개를 끄덕이라고 그러면 상대방은 정말 미칠 거라고 말했다. 그 땐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너무도 이해가 잘 됐다.
“재수 없어.”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것을 들은 예레미야는 눈이 마주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 서지유를 향해 생긋 웃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여줬다. 그에 서지유는 정말 분하다는 듯 주먹을 꽉 쥐었다.
안무가에게 안무를 하나씩 배우면서도 서지유의 행동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주시한 탓에 예레미야는 쉽게 피로가 쌓였다. 10분
주어진 쉬는 시간에 축 늘어진 예레미야에게 물을 건네며 매니저는 걱정스런 표정을 쉽게 지우지 못했다. 숙소에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힘없는 모습의 예레미야가 혹 아프면서도 숨기는 것은 아닐까 불안했다.
“너 진짜 괜찮은 거지? 아픈 데 없는 거지?”
“없어, 그냥 좀 피곤해서 그런 거라니까.”
“호수아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어휴.”
매니저의 입에서 호수아의 이름이 나오자 예레미야는 미간을 좁혔다. 그런 예레미야의 반응에 매니저의 머릿속에 불현듯 예레미야와
호수아가 단순한 ‘거리’를 넘어선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거리를 두려던 부작용으로 둘이 아예 돌아섰다던가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호수아와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으려던 매니저는 가까이 다가온 서지유의 기운에 저도 모르게 뒤로 한 발 물러났다. 지친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선 서지유를 올려다 본 예레미야는 얼굴이 붉게 상기된 서지유의 말에 눈을 깜빡였다.
“아깐 욱해서 좀 심하게 말했어요. 미안해요.”
재수 없다고 말한 것 때문인 것 같았다. 예레미야는 사람이 살다보면 실수를 할 수도 있는 거고, 그게 바로 인간다움 아니겠냐며
제법 어른스러운 소리를 했다.
자신보다 어린 예레미야에게 그런 말을 듣는다는 것은 굉장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으나 지금은 한 걸음 물러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했기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를 악 문 채로 억지웃음을 지은 서지유는 잠깐 바람을 좀 쐬고 오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예레미야, 너 왜 그러냐.”
“응? 뭐가?”
“왜 서지유랑 그렇게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난 사람처럼 그래.”
“이거 미카랑 리가 가르쳐 준 거야.”
예레미야의 말에 매니저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들이 가르쳐줬다면 굳이 자세한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상식까지 무난하게 별 탈 없이 연습을 하고 무대에 올랐으면 하여 매니저는 마음이 무거웠다.
바람을 쐬러 나갔던 서지유가 들어오고 나서 연습을 재개하려던 안무가는 저녁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서지유에게 저녁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그냥 시켜 먹자는 말을 내뱉은 자신의 매니저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본 서지유는 어디 나가서 먹자고
말했다.
예레미야에게 같이 가자고 하려던 서지유의 말을 막은 것은 사무엘의 이름을 띄우며 벨소리를 울린 예레미야의 핸드폰이었다.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은 예레미야는 적절한 타이밍에 전화를 해준 사무엘이 무척이나 고마웠다.
[연습 중이냐?]
“응, 지금은 쉬고 있어.”
[밥은?]
“아직 안 먹었어.”
[지금 호수아랑 불고기 먹으러 갈 건데 갈래?]
“응, 지금 갈게. 숙소로 가면 돼?”
[식당에서 만나자. 형한테 말하면 알 거야]
전화를 끊은 예레미야는 매니저에게 사무엘과 같이 밥을 먹기로 했다고 말하고는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예레미야가 매니저에게
하는 말을 들은 서지유는 저녁을 같이 먹으러 가자고 하려던 것을 관두었다.
“10시쯤 오면 되는 거죠? 서지유씨 8시부터 라디오니까.”
“네, 뭐.”
“그럼 그 때 다시 올게요. 저녁 맛있게 드세요.”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고 연습실을 나가는 예레미야를 보고 서지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예레미야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들이
얄밉게 느껴졌다.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에 올라탄 예레미야는 불고기를 먹으러 가기로 했는데 식당으로 오라고 했다고, 말하면 알 거라고 그랬다며
사무엘의 말을 전했다. 식당으로 향하며 매니저는 연신 예레미야를 살폈다.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가로수, 사람, 건물, 차를 보며 빨리 식당에 도착하길 고대하던 예레미야는 차가 식당 앞에 멈추어
서자마자 무작정 내려 식당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에 한숨을 내쉬며 급히 문을 잠그고 따라 들어간 매니저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사무엘과 호수아를 볼 수 있었다.
사무엘하고만 먹는 줄 알았더니 호수아도 있어 의아한 표정을 짓던 매니저는 앉으라는 사무엘의 말에 예레미야 옆에 앉았다.
미리 주문해 두었다며 컵에 물을 따르는 사무엘을 보고 예레미야가 물었다.
“오늘 연습했어?”
“아니, 아직. 밥 먹고 미카엘이랑 히브리 오면 하러 가려고.”
“나 10시까지 다시 가봐야 되는데에.”
“왜?”
“서지유씨가 내일 하루 종일 스케줄 있다고 오늘 연습해.”
“아아, 그래? 그럼 길어봐야 한 시간 반 정도 연습할 수 있겠네.”
“응, 대신 내일 많이 할게!”
“그래, 그럼.”
호수아와 해야 할 대화를 사무엘과 하고 있어 매니저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분명 거리를 두라고 한 것은 자신이었음에도 막상
둘 사이에 거리가 생기니 기분이 여간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꼭 젓가락을 한 짝만 사용하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복잡 미묘한 기분 속에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시상식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가 오가는 가운데 저녁식사가 시작되었다. 아까부터
줄곧 말없이 밥을 먹는 데에 집중하는 호수아를 힐끗 보고 사무엘과 떠드는 예레미야를 힐끗 본 매니저는 이 상황이 미치도록
어색하게 느껴졌다.
본래 이렇게 같이 밥을 먹을 때, 호수아가 예레미야에게 이것저것 챙겨주는 것이 진리인데 자기 밥 먹기에 바쁘니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가게?”
“어, 먹고 미카엘이랑 히브리 챙겨서 연습실로 와.”
“알았어.”
밥을 다 먹고 먼저 일어나는 호수아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예레미야를 발견한 매니저는 흠칫했다. 늘 그랬듯이 다정한, 애정이
담긴 눈빛이 아닌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사나운 눈빛이었다.
사무엘에게든 누구에게는 호수아와 예레미야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한 매니저는 심기가
불편한 듯 보이는 예레미야의 눈치를 보느라 밥을 입으로 먹는 건지, 코로 먹는 건지 판단할 수 없었다.
“형, 미카엘이 데리러 와달라는데.”
“어? 어, 알겠어.”
“예레미야랑 먼저 연습실 가 있을게.”
“그래, 이따 보자.”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끝낸 뒤에 미카엘과 통화를 한 사무엘이 매니저를 그들에게로 보내고, 예레미야와 택시를 탔다. 식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연습실에 도착하자마자 예레미야는 밝은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물을 마시고 있는 호수아의 다리 위에 앉았다.
뛰어와 앉는 예레미야의 돌발행동에 잠시 미간을 좁히던 호수아는 예레미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서지유와의 연습은 잘 하고
왔느냐고 물었다. 호수아의 물음에 예레미야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안무 엄청 쉬워! 오늘 안에 다 외울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나 쉬워?”
“응응, 그래도 걱정이야. 나는 괜찮은데 서지유씨는 아무래도 발라드 가수니까!”
호수아의 다리에 앉아 쫑알쫑알 이야기를 하는 예레미야를 보고 사무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힘없이
늘어져있던 그 예레미야가 맞는지 의심이 되기도 하고 일부러 미카엘과 히브리에게 매니저를 보낸 게 잘 한 건지, 아니면 못 한 건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저렇게 붙어 있는 게 저들답긴 한데, 어째 오래 보고 싶진 않은 것이 둘이 너무 다정해서 그런가 보다고 생각했다.
“으아, 죽겠다. 우리 연습 내일하면 안 되냐?”
“맞아, 맞아. 우리 여태까지 풀타임 연습하다 왔단 말이야.”
연습실에 들어서자마자 엄살을 피우는 미카엘과 히브리를 빤히 보던 호수아는 언제나 그렇듯 ‘연습생 시절을 생각해’라고 바른
말을 했다. 하여간 바른 말만 골라 한다고 투덜투덜 불만을 늘어놓던 미카엘과 히브리는 어느새 호수아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자신들의
옆에 서있는 예레미야를 보고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매니저가 들어오기 무섭게 호수아에게서 떨어진 예레미야는 힘들어 죽겠다는 듯 지친 모습을 내비췄다. 예레미야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은 호수아와 사무엘 단 둘이었기에 미카엘과 히브리, 매니저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니들 싸웠냐? 적응 안 되게 왜 이래.”
“그러니까, 둘이 딱 붙어 있어야 정상인데.”
미카엘과 히브리의 말에 예레미야는 아예 호수아에게 등을 보였고, 호수아는 둘이 뭐라고 떠들든 관심 없다는 듯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반나절이 넘도록 푹 쉰 덕에 컨디션이 좋아진 호수아는 연말 특집 프로그램에서 선보일 것까지 연습하고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호수아와 예레미야 사이에 맴도는 냉랭함에 의아해하던 미카엘과 히브리는 축 처지는 기분을 애써 끌어올리며 반주에 맞추어
연습을 시작했다. 소파에 앉아 연습하는 것을 지켜보던 매니저는 나날이 늘어가는 실력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나 둘, 아니지. 동작을 좀 더 크게 해봐.”
“이렇게?”
“아니, 아니. 이렇게.”
“씨이, 그러니까 어떻게! 제대로 가르쳐주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