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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통해 기록하고 있는 여행기를 공유합니다. 5불당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약간이나마 보템이 되었으면 합니다..
삿포로돔 직관기_0612 철영이가 삿포로에 온다고 했다. 일정을 보니 우리와 겹쳤다. 삿포로돔도 가고 싶다고 하더니 예매 총대를 멨다. 야구 매니아인 철영이는 앞자리를 선택했고, 우리는 그냥 뒷쪽에서 보기로 했다. 정신없는 오전을 보내고 부랴부랴 삿포로 돔으로 향했다. 이날은 일본의 신성, 오오타니 쇼헤이가 선발 등판하는 날이다. 이미 5월 전부터 일요일마다 선발등판하고 있어서 쉽사리 예측이 가능했다. 일본은 6선발이 흔하다고 하고, 관중이 많이 몰리는 날 일요일에 에이스를 고정 출격시키는 것 같다. 돔구장이라 취소될 일도 없고 투타를 겸업하는 오오타니를 향한 구단의 배려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경기장으로 지하철을 타고 가니 잠실 야구장을 가는 것처럼 열차 안에 야구장 가는 사람들이 그득했다. 다들 먹을 것을 싸들고, 유니폼을 챙겨 입은 사람도 많았다. 삿포로 돔은 야구장과 축구장 공용이고, 니혼햄 파이터즈와 홋카이도의 프로축구 팀이 홈 구장으로 쓰고 있다. 역에 내리니 두 팀의 로고가 가득하다. 출구를 지나 야구장으로 가는 길엔 니혼햄 파이터즈 팬샵도 있고, 먹거리를 살 수 있는 대형마트와 편의점이 있다. 줄이 길어 일본 사람들은 미리 사오는 경우도 많았다. 대망의 접선 장소에서 철영이를 만났다. 대행 업체에서 보여준 영수증과 여권을 보여주니 티켓이 나왔다. 티켓당 대행 수수료가 1000엔 정도 붙은 것 같다. 우리 자리는 두 당 3000엔짜리 자린데 일본 물가를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가격이다. 4만 관중이 운집한 터라 먼저 자리를 확인하러 갔다. 뒷쪽이긴 했지만 내야 안쪽이라 경기를 보거나 구장 전체를 관망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경기 시작 삼십분 전부터 연예인 시구 등 식전행사가 많았다. 숨돌리고 간식을 사러 갔다. 역시나 구장 안에도 여러 종류의 먹거리를 팔았다. 가장 무난해 보이는 모스버거에 가서 햄버거 세트와 생맥주를 하나씩 주문했다. 편안한 관람을 위해 햄버거 두 개와 감자튀김 두 개, 거기다 맥주 두 잔을 놓을 수 있는 일회용 쟁반에 담아 준다. 역시 야구 선진국이다. 맥주 맛은 상상을 초월한다. 야구장에서 파는 맥주가 이렇게 맛있다니! 평소 야구장을 가면 500ml 캔 맥주 하나를 2~3이닝이면 해치우는데 맛을 음미하며 한 모금씩 마시니6이닝이 걸렸다. 여편님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홀짝이셨다. 경기장 내에 맥주돌이&순이들이 부어주는 것도 먹고 싶었지만 경비 절약을 위해 꾹 참았다.주로 장년층인 우리나라와 달리 젊은이들이 맥주돌이&순이로 일한다. 물론 메고 있는 통도 이쁘다. 이날은 걸스데이 이벤트 데이여서 여성 입장객에겐 구단 선수 스티커도 주고, 전광판에 뻑하면 분홍색이 떠올랐다. 시구자가 여성이었던 것도 그런 연유로 보인다. 며칠 전 언론을 통해 오오타니가 163km를 던졌고, 이날 경기에서 기념책자를 나눠준다고 했다. 기념 책자는 그냥 팜플렛 한장이었다. 기록 갱신을 노리고 있는지 1회부터 오오타니는 160km를 넘는 직구를 몇 라례나 뿌려댔다. 아쉽게도 164km가 찍히지는 않았다. 전광판에서는 160km가 넘을 때마다 화려한 화면을 내보내줬다. 작년 WBC때 오오타니의 존재를 알게되신 여편님은 여행 중 가장 진지한 표정으로 오오타니의 모습 하나하나를 응시했다. 이날도 조류 관찰용 쌍안경은 제 몫을 톡톡히 했다. 오오타니는 5번타로 출전한 타석에서는 2타수 무안타 1사구로 부진했으나 투구는 무난하게 7이닝 무실점을 하고 내려갔다. 전체 경기 내용도 홈런 몇 방으로 니혼햄이 쉽게 경기를 풀어갔다. 7대 0으로 가볍게 종료. 경기 중간중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키스타임, 스시만들기 흉내 등의 경품 이벤트도 있었고, 전광판에서 박수 타이밍을 알려주면서 박자를 맞춘다던가 다 같이 풍선을 날리는 등의 단체 응원 퍼포먼스도 꾸준히 이어졌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열광적인 분위기는 아니지만 깨알같은 소소한 재미와 쾌적함을 유지하면서 볼 수 있었다. 경기가 끝나고 나서는 당연한 경기 MVP 오오타니의 인터뷰와 팬들과의 인사 세레모니가 이어졌고, 웅장한 스타워즈 음악이 깔렸다. 돔답게 우주적 감성을 자주 자극했다. 콘서트가 자주 있는 돔이라 그런지 음향도 짱짱했다. 오오타니는 말은 별로 안했지만 목소리도 진중하고 남자가 봐도 깔 구석이 없는 선수다. 경기 후 철영이와 약속 장소에서 만났다. 이 아이는 우리와 달리 경기 중 관람 장소를 옮겨가며 봤단다. 그럴거면 왜 비싼 자리를 샀는지는 의문이다. 중간에 경기장 밖에 나가서 야외 화면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볼 수도 있단다. 삿포로 돔 뒤에는 공원이 있고, 야구장 바로 옆에 큰 구멍으로 축구장이 나와있다. 축구장과 야구장을 교체하는데 하룬가 이틀이 소요된다고 한다. 이왕 큰 예산을 들여 짓는 돔구장의 활용도를 최대한 늘리는 좋은 일이다. 여러모로 애물단지가 취급을 받는 고척돔이 일본의 돔 문화를 깊이 있게 참고하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 고척돔 경기도 본적이 있는 철영이의 말로는 두 구장의 수준은 비교할 거리가 안된다고 한다. 돔 구장을 배경으로 갖가지 기념 사진을 찍고 야구장 내 기념품 점을 구경하고 돌아왔다. 소란축제_0608_0812 우리가 잠시 삿포로를 떠났다가 돌아온다고 하니 숙소 주인 할베는 축제 기간이니 예약을 서두르라고 했다. 댄스 페스티벌이라고해서 힙합이나 비보이 등을 연상했다. 알고보니 전통의상 등을 입고 다양한 춤을 선보이는 축제였다. 시내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의 춤판이 벌어졌다고 한다. 우리가 본 건 하루 정도 시내를 지나면서 였다. 스스키노 거리 주변을 지나다보니 도로를 막아 놓고 길거리에서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전문팀에서부터 구청 문화센터에서 연습했을 것 같은 팀까지 다양한 팀들이 공연을 펼쳤다. 의상도 전통의상, 나루토 동호회 같은 의상 등 다양했다. 좀 어설픈 팀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참가자와 관람객의 차이가 커 보이지 않아 좋았다. 홈페이지를 통해 참가자를 단기간에 모집하기도 하는 것 같았다.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다보니 이들은 공연이 끝나고 관광객을 겸하는 것 같았다. 공급자와 수요자가 분리된 우리나라의 많은 축제들과는 다른 인상을 주었다. 홋카이도 도립미술관_0607 한동안 박물관, 미술관 등과는 동떨어진 생활을 하다가 도시에 오래 있으니 미술관을 찾게 되었다. 시내에 위치한 도립미술관에서는 일반 전시와 기획 전시를 동시에 하고 있었다. 일반 전시만 관람했는데 여편님은 키슬링의 그림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난 그림보다는 일본 도자기와 유리 공예품들이 인상적이었다. 다양한 색감을 다루는 재능은 타고난 민족인 것 같다. 미술관 내 커피숍에서 마신 커피와 아이스크림 모두 만족스러웠다. 삿포로의 밥상들 일본의 먹거리야 워낙 유명하지만 경비 절약과 그간 여행에서 바깥밥에 워낙 물린 탓에 부지런히 만들어 먹었다. 아침은 주로 차나 커피에 식빵을 구워먹거나 전날 먹던 밥과 반찬이 있으면 볶아 버리는 식으로 해결했다. 점심은 나가서 먹고 저녁은 장을 봐서 상을 차리고 적합한 맥주나 와인을 겻들여 먹는 일상이었다. 시장이나 생협을 이용해봤으면 좋았겠지만 근처에서 볼 수가 없었다. 주로 숙소 앞 마트나 조금 떨어진 RALSE, EOM 같은 대형 마트를 이용했다. 대형 마트에 가면 고기도 신선해보이고 맥주나 와인의 종류도 풍성했다. 무엇보다 발그스름한 연어와 참치 등이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우리가 먹은 싼 가격의 연어들은 대부분 수입산이었다. 그래도 수십년 수산업에 종사한 아빠의 말을 들어보면, 양질의 수산물 대부분이 일본에 먼저 들어간다고 한다. 수입산이라도 부지런히 먹은 건 잘한 일 같다. 겸사 겸사 방사능의 위험에서도 한발 더 벗어날 수 있었을 거다. 아주 염가에 파는 연어꼬리 조차도 한국에서 먹는 어지간한 생선보다 맛있었다. 하루한상 마지막 편에서 다뤘던 돼지고기 스키야키부터 연어와 참치회, 연어회, 연어꼬리 구이, 닭볶음, 명란젓을 겻들인 정식, 삿케와 오뎅탕, 가벼운 파스타 등을 부지런히 만들어 먹었다. 워낙 유제품의 질이 좋아서 단순한 포장의 북해도 치즈나 요거트도 풍미가 있었다. 몇 번 남의 된장을 빌어먹다가 미소 된장 한 통을 사서 된장국도 꾸준히 함께 했다. 덴뿌라로 기름진 속을 잘 달래주었다. 돼지고기도 중부의 평원이 좋아서인지 후라이팬에 구워도 기름이 많이 나오지 않았다. 일본식 와규살을 먹어보고 싶었지만 소고기는 가격이 좀 부담스러웠다. 특히 마지막 밤의 연어는 술보다 먼저 취하게 할 정도로 맛이 있었다. 자잔거 구입과 처분 1) 자전거 구입기 쓰려고 보면 또 가슴이 아파온다. 토롱라는 넘는 것 보다도 힘겨웠던 자전거 구입과 처분과 관련된 내용이다. 사전 조사를 통해 시내에서 자전거를 살 수 있는 곳을 알아봤다. 첫날 숙소에 가기에 앞서 비쿠카메라를 가보니 자전거 매장이 있었다. 쓸만한 로드 바이크 가격이 3만~5만엔으로 만만치가 않았다.다음날 숙소 바로 옆과 스스키노 거리에 있는 자전거 매장을 가보니 여긴 아예 고급 자전거 위주라 10만엔이 기본이었다.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야도바시 카메라 온라인 샵에는 저렴한 제품들이 있어 기대를 했다. 하지만 야도바시 카메라 삿포로 점에는 자전거 매장이 없었다. 결국 우리의 종착지는 비쿠 카메라였다. 말레이시아 막판에 감기가 걸린 여편님도 컨디션이 매우 좋지 않았다. 중간에 좀 쉰다며 떨어져있다가 실종될 뻔한 위기도 있었다. 몸을 추스려 비쿠카메라 자전거 매장으로 갔다. 매장에 가보니 전날보다 자전거가 더 줄어 있었다. 그 새 괜찮은 물건들이 빠져나간 모양이다. 그나마 3만~4만엔 대에 쓸만한 로드바이크와 산악자전거가 있었다. 우린 산악자전거를 타야하는지 로드바이크를 타야하는지도 정확히 모르는 수준이었다. 어쨌든 대략 백만원에 가까운 돈이 소요될 것 같았다.장기로 자전거로 빌리는 건 가격도 만만치 않은 터라 이미 제외된 옵션이었다. 여편님은 굳이 무리해서 자전거 여행을 하진 말자고 했다. 난 이왕 온김에 자전거라도 타고 돌아야지 그냥 기차 타고 돌아봤자 도심에만 있어야 하고, 별 재미가 없을 거라며 고집을 피웠다. 음료를 한숨 들이키고 백만원을 쓰기로 했다. 내려가보니 그새 또 싼 로드바이크 하나가 사라졌다. 매장 직원에게 산악자전거를 가리키니 우리에 대한 소개를 하게됐다. 다행히 영어가 되는 사람이라 한국인이고 홋카이도를 돌거라고 했다. 한숨을 쉬며 로드바이크나 여행용 자전거를 사야한다고 조언해주었다. 여행용 자전거는 5만엔이 넘어서 엄두가 안났다. 그는 우리의 수준을 간파했는지 설명해주면서도 연신 한숨과 좌절 제스쳐를 연발했다. 고민과 질문 끝에 3만엔 2천엔짜리 하나와 4만5천엔짜리를 하나씩 샀다. 헬멧과 펑크 수리킷, 핸드폰 거치대, 짐거치대 등을 사니 10만엔이 나왔다. 이런 저런 협상 끝에 면세 혜택은 받을 수 있었다. 시내와 공원에서 시험 주행을 하며 비싸고 빠른 건 여편님이 타게됐고, 싸고 튼실한 건 짐받이를 장착해 내가 타기로 했다. 구입까지는 힘들었지만 시내를 돌아다니다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2) 자전거 공수기 자전거 여행 후 삿포로로 돌아온 뒤에도 자전거는 유용했다. 이게 아니었으면 지하철 요금도 많이 나왔을 거고, 시내 구석구석을 활보하진 못했을 거다.철영이에게도 빌려줄 수 있었다. 잘 쓰긴 했지만 백만엔이나 들인 자전거를 고스란히 버려두고 갈 수는 없었다. 우리가 타게 될 저가항공은 자전거 배송시 가로세로높이 합 203cm이하를 요구했다. 삿포로돔 직관이 있는 일요일 자전거 분해와 박싱 작업에 착수했다. 박스는 스스키노에 있는 자전거 방에서 구했고, 분해에 필요한 공구와 테이프 등은 시내의 다이소에서 구입했다. 다이소는 다 100엔이라 큰 부담은 없었다. 일요일 아침을 여유롭게 먹고 페달을 분해하려고 소형 육각렌치로 별 난리를 다 해봤자 꿈쩍도 안했다. 삼십분을 낑낑 거리다 숙소 옆의 자전거 매장으로 갔다. 쿨하게 한 대에 500엔씩 받고 페달을 분리해 주었다. 탁월한 공대 감각을 선보인 여편님이 앞바퀴를 짜잔 분해했다. 받아온 박스를 규격에 맞게 잘라서 다시 붙였다. 밖에서 작업하려니 박스가 휘청 우리도 휘청거렸다. 문제는 앞바퀴와 핸들을 분해해도 박스 규격에 한참 모자란다는 것이었다. 뒷바퀴까지 떼네면 박스 길이가 딱 맞을 것 같았다. 뒷바퀴 떼는 건 이해가 안갔지만 일반 브레이크 레버를 풀었다. 체인에 걸린걸 어버버하다보니 분리가 됐다. 한대는 포기하기로 하고 비싼 것만 들고가기로 했다. 비싼 것부터 분해를 시도한 건 매우 잘한 일이다. 어느새 삿포로돔에 갈 시간이 다 되어 작업은 다음날로 미루기로 했다. 여편님은 박스 형성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나의 엉성함을 탓했다. 그러더니 이날 결국 인터넷 쇼핑몰을 다니면서 급작스런 박스 작업에 투입된 경험을 실토했다. 안심하고 더 보조적인 역할에 집중했다. 박스 길이를 마저 맞추고 자전거 본체와 앞바퀴를 하나에 넣었다. 남은 뒷바퀴와 짐 스탠드 등을 다른 박스에 넣었다. 저가 항공의 박스 규격에 자전거 한 대가 들어가지 않아 한 대를 포기하고 한 대를 두 개의 박스에 나누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애석하게도 자전거 박스 큰 것의 규격은 204cm이었다. 박스를 누르고 테이프를 조여서 줄인 게 그정도였다. 어느 블로그 후기에서 인천에서 출발할 땐 그냥 실어줬는데 일본 귀국편 카운터에선 바로 줄자를 꺼냈다는 얘기를 봤다. 이미 포장을 염두해두고 페달도 분리하고 바람도 뺀 자전거를 끌고 중고매장으로 향했다. 우동을 먹으러 가다 발견한 중고품 매장이다. 그간 정이 들어서인지 눈물, 빗물 범벅으로 매장까지 끌고갔다. 얍실한 검둥이 처럼 생긴 일제 자전거다. 중고품 매장에선 처음엔 면허증을 요구했다가 여권만으로도 판매가 된다며 9000엔을 책정해주었다. 만엔 정도면 잘 판거라고 생각핬기에 만족하며 나왔다. 고스란히 우리의 우동값과 저녁 연어 값으로 사라졌다. 자전거 한 대를 한국으로 들고 오는 것만도 험난했다. 출발 당일 비가 오락가락 하는 상황에서 서둘러 숙소를 나섰다. 한 두방을 떨어지는 비를 뚫고 전력을 다해 지하철 역으로 달려갔다. 나는 본체가 든 박스를, 여편님은 바퀴가 든 박스를 들었다. 박스가 그리 무겁진 않았으나 큰 배낭을 짊어지고 한 손으로 큰 박스를 드는 게 쉽지는 않았다. 삿포로 역에서 기차 폴랫폼까지 넘어가는 길이 최대 난코스였다. 기차에 싣고 나니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치토세 공항 역에서 내리자마자 카트를 조우할 수 있었다. 카트에 박스와 배낭을 올리니 천하무적이된 기분이었다. 서두른 덕에 비행기 출발 시간보다 6시간 앞서 도착했다. 카트를 끌고 공항 쇼핑몰을 신나게 돌아다녔다. 항공사 카운터는 정확히 출발 2시간 전에야 오픈했다. 줄을 서고 있으니 철영이네도 만날 수 있었다. 항공사 정규 직원이 아니라 여러 항공사의 업무를 다 보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관련 규정을 잘 모르고 있었다. 한 명 뿐인 항공사 직원을 불러서야 대형 수화물 처리가 진행됐다. 분명 홈페이지에는 자전거 한 대당 천엔이라고만 나와있었다. 정작 실제 규정은 기본 천엔이 붙고, 전체 수화물 허용 한도인 1인당 15kg가 초과되면 또 초과요금이 붙는 다는 것이었다. 우리 배낭과 합산하니 초과 요금이 만엔이 나왔다. 다급하게 뒤에 있던 철영이네에게 부탁해 수화물을 분리했다. 무사히 한국에 싣고 와서 집까지 꾸역꾸역 들고 갔다. 다음날 오후 자주 가던 자전거 수리점에 가서 조립을 의뢰하니 2만원이었다. 박스 포장부터 배송,조립까지 대략 5만원이 넘게 들었다. 덕분에 난 집에서 타던 것 보다 더 좋은 걸 타게 되었고, 내가 타던 자전거는 장인 어른의 생일 선물이 되었다. 그 사이 한국의 자전거 붐은 학생부터 장년층까지 확대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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