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너무 이른 새벽에 깨서 인터넷서핑을 한다. 한두시간 깨어있다가 다시 잠들게 되어 잠의 질이 안좋다. 죽 잘 수 있으면 좋겠다. 아직까지 와이파이가 잘되지만 위로 올라가면 안되거나 과한 요금을 물릴 것 같다. 그러면 새벽에 깨서 할일도 없을 듯.
산소포화도가 90이다. 3천미터 넘는 곳에서 90대는 처음이다. 저지대부터 걸어서 그런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려는 산악인들이 지리부터 걸으며 고소적응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 듯. 아무튼 고소적응이 잘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7시에 아침을 달라고 해서 시간 맞춰 내려간다. 음식 준비를 하고 있다.
이 롯지 주인아줌마 요리솜씨가 괜찮다. 여기서 먹은 것들이 다른 데서의 음식보다 훨씬 낫다.
수염을 안깎으니 많이 자랐다. 내 수염은 멋지게 자라지 않고 듬성듬성 자라는 데다 이방 수염처럼 자라서 보기 좀 흉하다. 오랜만에 깎아보려니 물이 안나온다. 양치만 가진 물로 간단히 하고 면도는 다음에 해야겠다.
춥지만 얇게 입었다. 가면서 몸이 데워지니 그에 맞는 차림이다.
롯지 비용이 4700. 좀 많은 것 같아 확인해보니 맞다
다음에 올 거냐고 묻는다. 혼자면 불을 안피워 주는 것이 좀 불만이지만 괜찮은 편이라 내려올 때 들를까 생각하고 있다. 그러겠다니 언제 오냐고 묻는다.
물이 거의 떨어져 생수 한 통을 샀다. 150. 나중에 보니 남체에서 제작한 거다. 물을 정수해서 페트병에 넣으면 되고 운반료도 들지 않는데 150은 과하다. 물병 입구에 얼음이 얼어있는 걸 보니 확실히 영하다.
맵스미로 경로를 검색하니 쿰중을 거쳐가는 코스를 제시한다. 쿰중 가려면 고개를 넘어가야 하니 그러지 말고 캉주마로 평탄한 길로 가는 편이 좋다. 전에 항상 그렇게 갔었다.
맵스미는 나의 최애 여행앱이다. 부정확한 부분도 있지만 무료로 이 정도의 기능을 이용하는 것이 너무 고맙다. 가는 지역의 지도를 오프라인으로 다운받고 gps만으로 길찾기가 가능하다. 구글맵은 데이터가 필요하나 맵스미는 데이터 없이 gps만 있으면 된다. 네비 역할도 한다. 해외에서 차렌트하고 맵스미 네비로 돌아다닌다. 이쁜 한국말로 안내한다.
아주 전에는 길찾기 위해 지도를 사서 보며 갔다. 그러다 gps 장치를 사서 노트북에 연결하고 노트북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시거잭에서 나오는 직류를 노트북에 맞는 교류로 변환시키기 위해 인버터를 쓰기도 했다. 노트북을 옆에 두고 지도에 빨간점이 내위치여서 빨간 점이 움직이는 방향을 보고 길을 찾기도 했다. 그 정도만 해도 대단한 테크놀로지라고 생각했는데 그에 비하면 네비게이션은 과히 혁명이라고 봐도 좋다.
렌트카해서 맵스미로 네비 삼아 돌아다닐 때 발칸반도 알바니아 등 몇나라는 맵스미 지도가 너무 부실하여 중요한 길 몇개만 표시되었다. 지금은 아니겠지만.. 그러다보니 네비가 제대로 역할을 못해 지도에 내위치를 보고 예전 방식으로 길을 찾기도 했다.
남체를 나가기 위해 길을 가다 안내판이 나온다. 여러 이정표에 탕보체가 가장 아래에 보인다. 위에 것은 왼쪽 방향이고 아래 이정표는 오른쪽 방향으로 생각해서 오른쪽으로 간다. 가다보니 아닌 것 같다. 지도를 보니 다른 쪽으로 가고 있다. 중간에 밭이 있고 돌담으로 막혀있다. 가로 질러 갈까 했는데 담도 있고 저 편 길 쪽에 길과 땅의 높이차가 크고 철조망도 있어서 갈 수 없어 보인다. 되돌아가야겠다.
아까 이정표에 도달해 보니 무의식적으로 아래 텡보체 이정표 화살표 방향을 착각했다.
길은 넓고 평탄하다. 누군가 이길을 하이웨이라 불렀다. 길은 높은 산에 막혀 그늘져 춥다.
멀리 포르체인지 포르체텡가인지 햇살이 비쳐 따뜻해보인다.
야크 떼가 옆길에서 내 앞으로 나온다. 먼지가 엄청 발생한다. 야크들을 앞지르기는 벅차고 뒤에서 떨어져 걷는다. 야크들이 체중이 많이 나가서 먼지가 심하게 난다
급한 내리막이 이어지고 물소리가 커지는 걸 보면 푼기텡가가 가까운 것 같다. 강옆에 있는 마을이고 여기서 출렁다리 건너 텡보체로 향한다.
체크포스트가 있다. 군복을 입은 사람이 인적사항 등을 적는다.
이제부터 급경사 오르막이다. 텡보체까지 2.5킬로 동안 600미터를 올려야 한다. 3000 대 고도이고 가파르니 비스따리 비스따리 세월아 네월아 천천히 올라야겠다.
가다가 샛길이 보여서 지름길인 것 같아 거기로 들어선다. 가다보니 익숙지 않은 길이다. 지도를 보니 두 길 중에 왼쪽 길이다. 왼쪽 길은 험한 것 같다. 예전에 오른쪽 길을 이용했는데 오른쪽 길은 규칙적으로 지그재그 오르막 길이었다.
예전에 이 길을 갈 때 크리스마스였던 것 같다. MBTI가 대문자 볼드체 E일 것같은 발랄한 서양인 아가씨가 빨간코에 뿔달린 루돌프모자를 쓰고 길가는 아이들에게 메리 크리스마스하며 선물을 주었다. 뜻밖의 횡재를 한 아이들의 이거 뭐지라는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크리스마스 연말연시 동안 가정을 팽겨치고 산에 간다고 마누라가 서운해했었다. 그렇지만 이후에는 항상 든든히 서포트해줘서 이렇게 맘놓고 산에 다닐 수 있다.
바람이 차서 손이 시렵다. 배낭에서 장갑을 찾아 낀다. 어제 양말을 빨아 햇볕에 말리려고 창밖에 두었는데 깜박 놓고 왔다. 양말이 모자라는데 어쩐다.
빨간 치마입은 여자가 등산로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가서 보니 남자다. 길 보수 작업을 하고있다.
맵스미에서는 되돌아가서 오른쪽 길로 가라고 안내한다. 혹시 내가 가는 길에 문제가 있나? 내가 가는 길에 발자국이 있는 것을 보면 이길도 사람다니는 정상길인데.. 지금까지 어두운 숲길이다가 밝아진다. 내려다보니 저 한참 아래 오른쪽 길이 보인다. 내가 왼쪽 길로 오른쪽보다 더 급한 경사길을 올라온 셈이다.
오른쪽 길과 거의 합류지점 직전까지 맵스미는 고집스럽게 계속 되돌아가라고 안내한다. 무슨 알고리즘을 쓰길래 이럴까? 드디어 두 길이 만난다.
텡보체에 12시 도착. 이 동네는 예전에 비해 그다지 변한 것이 없어보인다. 사원에서 승려들이 나오는데 크림슨색 치마를 입었다. 전통 복장인가보다. 아까 작업자와 같은 치마.
점심을 빵으로 먹고싶어서 베이커리가 써있는 곳으로 갔으나 문이 닫혀있다. 가면서 식사할 곳을 찾는데 문연 식당이 없다.
데보체는 텡보체에서 내리막으로 100미터를 내려간다. 여기도 크게 변화 없다. 그런데 여기도 문연 식당이 없다. 당번으로 돌아가며 열면 안되나? 비수기라 식당이 문을 닫아 쫄쫄 굶겠다. 결국 팡보체 도착까지 점심을 먹지 못했다.
아마다블람이 계속 보인다. 세계 3대 미봉 중 하나다. 헬기가 떠다닌다. 위급환자가 생겼나?
산양이 보인다. 가까이 가니 7마리가 있다. 야생이다.
높은 지대라 오르막에서 숨이 쉬 가빠진다.
팡보체 2시 도착. 14킬로이고 6시간반 걸렸다. 현재고도 3950. 팡보체는 사람들이 생활하는 가장 높은 마을이다. 이보다 높은 곳은 트레커들을 위한 롯지만 있다.
큰 마을이라 롯지들이 많아 보인다. 햇살 잘 드는 따뜻한 롯지에 묵어야겠다. 그런데 대부분 문이 닫혀있다. 비수기라 아예 장사를 접는 게 낫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문연 롯지가 있기라도 하면 황송해야 하나. 걸어가면서 혹시 연곳이 있나 살펴본다. 하나가 열린 듯하다. 더 가보고 없으면 돌아와야지. 마을이 끝나간다. 한 집이 자물쇠가 안채워져 있다. 열었나? 주인인 듯한 아줌마가 들어간다. 따라들어가 오픈했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룸을 달라니 방은 안된단다. 식사만 가능한가보다. 어이구. 문연 곳을 물어보니 더 윗쪽 롯지를 가리킨다. 팡보체에서 마지막 집이라 몰랐다면 열었을거라고 기대하며 찾아가지 않겠으나 여기 주민이 열려있다니 맞겠지. 오르막을 좀 올라 도착. 다행이 열려있다. 윈드호스 롯지.
주인아줌마는 전화 중이다. 룸을 물으니 전화하면서 손으로 가리키며 다 비었으니 아무 방이나 선택하란다. 몸을 누일 데가 있으니 다행이다. 값을 물어보려는데 전화를 계속한다. 메뉴를 보니 차종류가 200이나 250이다. 핫망고를 손가락으로 주문했다. 예전에 즐겨 마셨던 차인데 그 동안 메뉴에 없었다.
핫망고를 가져다 주면서 전화는 계속한다. 차를 다 마셨는데 아직도 전화통화.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하자고 할 듯.
아줌마가 따로 차를 준다. 와이파이를 물어보니 카드를 사야한단다. 24시간에 800이란다. 유심사면서 28일 20기가가 700이었는데 너무 차이가 심하다. 24시간이래도 내일 아침 일찍 떠날테니 저녁이나 새벽에만 좀 쓸텐데 800이 너무 비싸서 오늘은 건너뛰어야겠다. 디지털 노예인 내가 오늘은 무척이나 심심하겠네.
휴대폰 충전료가 350이라는데 비싸다고 하니 그렇지 않다고 이유를 설명한다. 보조배터리로 몇번 충전할 수 있으니 그렇게해야겠다. 그러다 나중에 주인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공짜로 해준단다.
아 춥다. 발도 시렵다. 추우면 세상에 의지할 데가 없는 느낌이 든다. 손님 없다고 불 안피우는 건 아니겠지. 비수기는 이런 점이 안좋다. 사람있는 곳을 찾아가자.
오늘부터 날진물통에 뜨거운 물을 받아 침낭에 넣고 자야겠다.
5시에 저녁 주문을 받는다. 셰르파 스튜, 찐감자, 핫레몬을 시켰더니 5시반 쯤에 가져다준다. 뜨거운 음식이 들어가니 좀 낫다. 6시20분에 더 필요한 거 있냐고 묻는다. 추워서 들어가 잔단다. 뜨거운 물을 날진에 받았다.
손님 1명이라 결국 난로를 피우지 않았다. 뭐 남는 거 있다고 난로까지 불피워줄까 이해는 가지만 너무 춥다. 이 혹독한 추위에 그리고 위에는 더 추워질텐데 잘 견딜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