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떠오르는 기억과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추억이 있습니다.
어떤 생각에 의해 모든 것이 재단되고 규정되는 의식적인 기억이 아니라
그 와중에서 판단될 수도, 의미화할수도 없는 아련한 추억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여행을 하며, 앞으로 만나게 될 풍경보다는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는 낯섬에 대한 기대보다는
이미 내가 예상하고 상상한,
노정 중에 느끼고 만나게 될 과거의 추억이 그리워 시작하게 되는 것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달리는 KTX 는 프랑스 테쩨베를 가져온거지요.
당시 독일의 ICE 와 경쟁했는데,
개인적으로는 프랑스 떼제베를 더 옳은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독일 이체에 는 일반 선로에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일단 속도가 100 키로 정도 더 느리거든요. 안락함은 비슷합니다.
한데,
그것때문에, 독일이 약속한 유학생 장학금이 날라가긴 했고,
당시 유학생 비자 검열 까다로워지고 자동차 운전면허 그냥 교환해 주다 안해주고, (물론 지금은 다시 그냥 교환해줍니다)
여튼
다소 고생한 점은 있습니다. 독일 사람들 뒷끝 장난아니죠 ㅋ
독일에서 가장 하위 등급인 RE, IRE, S 등급의 열차들의 모습니다.
독일은 버스노선이 한국처럼 발달해 있지 않은 대신에,
마치 전철처럼 여러 마을에 서는 기차역이 있습니다.
두칸부터 서너칸 까지 조그만 기차들이 지역내 조그만 마을들을 연결합니다.
근데 첫눈에 딱 봐도 왠지 ICE 보다 더 좋아보이는 큰 기차도 있습니다.
이층 기차인데 예쁘죠?
주말에 사람이 많을 꺼 같아 5유로 정도를 더주고 일등석을 탔는데, 좋네요. ㅎ
독일은 기차요금이 한국의 서너배나 될 정도로 무척 비싸지만,
각종 할인 요금이 있습니다.
이건 한국으로 치면 경상도 지역의 무궁화 호를 마음대로 하루동안 맘대로 탈 수 있는 기차표인데, 1등석이 3만원 정도 합니다.
독일에 오게 된 목적 중 하나가 친구 결혼식이 있어서,
그리고 제가 학-석사과정 까지를 마치고 가장 독일 생활을 오래 했던 도시인 튀빙엔에 가는 길입니다.
근데 결혼식은 튀빙엔에서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헤힝헨 이라는 다른 마을에서 열립니다.
튀빙엔에서 같이 공부할 때 알게 된 친구라,
튀빙엔 근교의 다른 마을에서 조그만 성을 빌려 결혼한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교통이 워낙 안 좋아 상상하기 힘든 일이긴 합니다만....
택시도 없구, 버스도 없는 험난한 길을 걸어서 갑니다. ;;
독일은 어딜가나 깔끔하게 정돈된 벽돌집이 관광객들을 반겨줍니다.
동화나라 같죠. 하지만, 웅장한 느낌은 없는것이 단점입니다.
아무리 조그만 마을이라도 정돈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도시의 상징이었던, 무슨 기사의 문인가 그렇습니다.
조그만 마을의 시청인데도 무척 예쁘죠?
항상 성당은 오랜 역사를 두고 건축되었기에 유럽 도시 어디에 가든 볼꺼리 입니다.
우리 한국은 옛날부터 각 지역별로 산성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었지만,
일제 시대 때, 골재로 다 허물어 버려 아쉽긴 하죠.
결혼식이 있는 성, 여기말로는 빌라 입니다.
한국 빌라랑은 좀 차이가 나죠? ㅋ
독일의 결혼식은 조금 관료적입니다.
공무원이 와서, 두 사람의 결혼식을 증명하는 서류를 만드는 의식입니다. -_-;
그래서 신랑, 신부 서명하고, 증인 서명하고, 그거 사진 찍고 그러는 거죠.
신부가 싸인 하는 중입니다. 정말 진지하고 엄숙(?) 한 의식이죠. ㅎ
이 친구를 통해서 독일 생활이 무척 풍부하게 되었습니다.
독일의 법대 생들은 법과는 관련없는 분야에서 실습 생활을 두번이상 하도록 의무화 되어 있습니다.
우연히 한국 춘천에서 장애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생각하게 되어
독일 튀빙엔 에서 걔는 저한테 한국말을, 저는 독일말을 배우는 식으로 언어교환을 하게 되었죠.
여기서 Tandem 이라 합니다.
얘 때문에 독일의 파티와
초대 파티 문화,
독일도 소개팅 개념이 있다!! 라는 걸 알게 되어 무척 독일의 문화를 깊이 알게 해 준 장본인입니다.
한데, 이 친구의 친구도 그 좁은 튀빙엔 바닥에서 파티 때 본 애들이라,
절반이상은 낯이 익습니다.
연주하러 오신 여자분은 친했던 형님의 부인 동생이었는데, 성당행사에서 여러번 뵈었는데, 결국 독일에 정착하셨더군요.
음악하는 사람들은 음을 들을 때 보통 사람과는 달리 음을 훨씬 더 세부적으로 쪼갭니다.
즉 같은 '도'음이라고 하더라도,
보통사람은 그게 '도' 라고 하는 음정을 찾기도 힘든데,
그 '도' 음을 많게는 다섯개까지 쪼개어 듣습니다.
이게 높은 '도' 인지 낮은 '도' 인지를 언니분과 열심히 연주 연습할 때 얘기하는 걸 훔쳐 들은 기억이 나는 군요.
철학의 현상학에서 말하는
하나의 사물을 대하더라도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알 수 있어 학생들한테 자주 설명하는 예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독일의 여가 생활은 수다 문화입니다.
각자의 취향이 각각 달라, 같이 동참할 우리나라 처럼 고스톱이나 향락의 문화도 적습니다.
그러니 밤 새도록 얘기하는 거죠. 솔직히 지켜워 죽는 줄 알았다는...;;;;
결혼식 축하로 각자 집에서 만들어 온 빵 갖다 놓구, 간식 먹구, 술먹구, 저녁 먹구 걍 수다 떠는 겁니다.
간식 맛있어 보이죠? 근데 정말 달아요.
같이 온 한국분은 조금 먹다 포기하고,
전 꿋꿋하게 한접시 다 먹다가 몇시간 정도 속 쓰리고 머리 아파서 멘붕 왔습니다. ;;;
한국에서 처럼, 어린 시절을 같이 보며 얘기하는 장면입니다.
나중에 꼭 한번 해보고 싶은 것 중에
축하로 비둘기를 날려두는 것이 있던데 이건 좀 새로웠습니다.
시골이라 기차가 일찍 끊어져,
유학생 시절 상상도 못한 호텔에서 한번 묵어보네요.
호텔이라 하기 뭐한
조그만 시골의 가장 등급 낮은 여관 정도 등급 입니다. 숙박료는 6만원 정도 인데 샤워실이 있고,
아침을 줍니다.
빵하고 치즈, 햄, 계란 쥬스를 주는 전형적인 아침식사인데요.
사람들이 제일 인상적으로 생각하는 건 저기 계란을 세워두는 그릇을 젤 신기하게 생각합니다.
맨위의 모서리만 까서 파먹는 거죠. ㅎ
제가 독일에서 가장 오래 생활한 튀빙엔으로 잠시 구경을 갑니다.
역에서 내려서 부터 눈물이 가슴에서 나올려고 하더군요.
독일에서 처음 도착한 도시는 북부의 뮌스터입니다. 어학을 마치고, 입학을 받아줄 여러 대학을 찾다.
튀빙엔에서 처음 떨어진 새벽길,
그후 기숙사 생활과 학창생활, 사람들과의 만남,
얼마나 여기서 많은 일들이 있었는지, 역에서 내려 지하도를 걸어가면서도
누구랑 함께 이 길을 걸었는지,
문을 나서며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하나하나 기억이 납니다.
허름해 보이는 튀빙엔 역도 그대로이지만, 너무나 따스하게 추억이 밀려옵니다.
꿀벌 처럼, 빨강과 노랑이 들어간 버스도 여전합니다.
저 버스를 타고 기숙사로 살았던 학생마을로 타고 갈수 있는데..참 정겹습니다.
바뀐 것은 버거킹이 새로 오픈 했다는 것.
독일 여행을 하며,
결국 이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
하나의 풍경을 바라보며,
이렇게 기억과 추억으로 인해
가슴이 저려오는 아픔을 느낀 적은 없습니다.
학위와 사람관계를 위해 그렇게 노력했던 기억들 속에,
그저 그렇게 앞으로 나아 갔다고 생각했건만,
저는 그렇게 다시 돌아와 있습니다.
튀빙엔에서 가장 맛있는 고기를 살수 있는 정육점입니다.
한인 학생회 행사나, 기타 파티 할때 삼겹살을 살 때는 여기서 주문해서 대패 삼겹살을 만들어 달라고 해서 먹은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맛있는 삼겹살은 지금까지도 먹어본적이 없습니다.
여담이지만,
아주 오래전에
이 정육점 주인 동생이 불치병에 걸려 독일의학으로도 치료를 포기하고 있었는데,
통일교 교주인 문* 께서 기도로 낫게 해주었다고 합니다.
그후로 한국사람이 가도
보통은 고기를 잘 안 썰어주는데,
이 정육점 만은 정말 신선한 고기를 가늘게 정성스레 썰어주어
그렇게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 통일교에 대한 편견이 없이 사실 감사하고 있답니다. ㅋ
튀빙엔은 하이텔베르크, 뮌헨, 뮌스터 등과 함께 독일에서도 손꼽히는 예쁜 도시입니다.
뗏목을 타며 넥카 강을 유람할 수 있는 모습.
나중에 꼭 저거 연인이라 같이 해보리라 했는데, 결국 못해봤네요. 털썩~ ㅜㅠ
독일 철학의 가장 정점을 찍은 시기인
횔덜린, 헤겔과 셸링은 서로 친구였고, 이 대학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중에서 횔덜린이 가장 천재였다고 합니다.
이미 10대 후반에 지금 독일관념론의 원형을 완성하고 친구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하니깐요.
하지만 정작 본인은 20대 초반에 귀족의 가정교사로 들어가 만난 여자와의 사랑으로
그 사랑을 완성하지 못해 남은 50세로 죽기 까지 남은 30 여년의 여생을
횔덜린 탑이라고 부르는 이 노란 건물에 갖혀 미쳐서, 지냅니다.
가장 높은 정신적 상승을 이룬 인물이
감정의 격랑을 이기지 못해 평생을 괴로할 정도로
우리의 만남은 소중합니다.
튀빙엔 철학과 정문 문이 두개 있는 이유는
근대의 유명한 철학 논쟁인 정신이 먼저냐 물질이 먼저냐 를 두고 교수들이 싸워
문을 저렇게 두군데로 만들어 파를 갈랐다고 전해집니다.
지나고 보면, 무척이나 덧없는 일인데,
왜 그리 당시에는 미워했는지, 저의 생활을 반성합니다.
석사 지도 교수님이 자전거를 세워두던 곳도 그대로 입니다.
그분과의 관계가 다시 떠올라
그분에게 크게 빚지고 있음에 그저 죄송한 맘에 다시 슬퍼집니다.
훌쩍이며 길을 걷습니다.
실제 헤겔과 셸링 케플러 와 같은 유명한 튀빙엔 출신 학자들이 살았던 기독교 기숙사입니다.
지금도 기독교에서 특별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 만이 이곳에서 생활할 수 있습니다.
유학 시절 여기서 우연히 신청하게 된 강좌에서
한국에서도 유명한 독일의 세계적 기독교 신학의 석학 융겔 교수님을 뵙게 됩니다.
세미나를 자기 집에서 열며, 보트카와 치즈, 와인을 대접하며,
같이 책을 읽어나간 기억은 무척이나 소중합니다.
그때 기숙사 관장님을 겸하시고 계셨는데, 저기 서있는 벤츠 자동차가 그때 본 교수님차와 색깔과 차종이 같습니다.
안에 계실지... 하지만 문은 잠겨져 있습니다.
계속 길을 걷습니다.
시청 앞 광장에 왔습니다.
지금은 영국에서 의사를 하고 있는 같은 기숙사 친구가 저기서 결혼한 추억이 떠오릅니다.
시청 2층의 조금 튀어난 발코니에서 이렇게 광장을 내려다 보며 손을 흔드는 것이 큰 낭만이지요.
수없이 이거리를 걸었지만, 변한 것은 저의 마음이었나요.
예전에 제가 공부했던 곳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인줄 진심으로 몰랐군요.
성에서 내려다 본 도시 풍경입니다.
헤세가 서점으로 일한 곳은 지금도 관광명소입니다.
도시를 둘러 보다,
예전에 제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생각한 아이스크림점에 들어 다시 그 맛을 느껴 봅니다.
다시 음미해보니, 설탕이 좀 많이 들어갔군요. 그 때보다는 못합니다.
프라이부르크 의 아이스크림 가게 보다 어디가 맛있느니 하며 친구랑 싸운 기억도 납니다.
제가 잘못했네요. 설탕이 좀 더 들어가 강렬하게 느껴졌을 뿐인데..
튀빙엔에서 젤 맛있다고 하는 가정에서 직접 만드는 맥주집에 들러 옛날 그 맥주를 주문합니다.
건물하나 변하지 않고, 메뉴도 그대로 입니다.
하지만 맥주 맛이 변해 있습니다.
다시 슬퍼집니다.
공부를 하다 가끔 들른 이 술집은 그렇게 깊은 맛에 위로를 주었건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런지 몰라도 맥주를 충분히 양조하지 않은 물맛이 납니다.
이렇게 변한 것이 저의 입맛인지, 아니면 이 술집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과 밤에 앉아 이 맥주로 얼마나 큰 힘을 얻었는데...
다시 언제 올지 모르지만,
그때 좋은 추억이 들겠지요.
훨씬 더 편안한 안식을 위하여 .
그 후에 잠시 하이델베르크에도 들러 도시를 둘러 봅니다.
친구랑 같이 왔을 때,
설레임을 가지고 어느 예쁜 여학생과 데이트 할 때
그 여학생이 상세히 안내해주던 모습이
기억나네요.
비스마르크 광장에서 대학으로 걸어가는 가장 유명한 쇼핑거리 입니다.
하이델베르크는 프랑크푸르트에서 한시간 정도면 올수 있어 관광지로 유명합니다.
여기서 어학하면, 시험에 합격 못해 그냥 돌아간 학생들이 그리도 많다고 합니다. ㅎㅎ
대한항공 스튜어디스 들이 여기까진 놀러 온다고 해서, 여러 전설(?) 들이 있지요. ㅎㅎ
성은 이제 저녁이라 문을 닫아 올라가지 못합니다.
다리 위에서 튀빙엔서 여기까지 흘러온 넥카 강물을 바라보며 회상에 접어 듭니다.
이 도시에 같이 온 사람들과의 추억들.
설레임, 미움, 사랑, 정, 아쉬움 등등이 겹쳐 이리 저리 복잡해집니다.
하지만 저렇게 어둠이 온다는 것,
이렇게 많은 사물들이 내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지만, 어두워져 다시 내 마음 속으로 침잠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길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일러줍니다.
이 도시를 지나며,
젊은 시절을 견디게 했던 폴 발레리의 시가 항상 머리속에 울립니다.
- 젊은 파르크 -
거기서 누가 우는냐
아니라, 그냥 바람소리냐
눈부신 금강석으로 비치는 외로운 이때를
거기서 누가 우느냐
내가 울려는 이때를
바로 거기서 누가 우느냐
나는 신속한 고통이 아주 필요하다:
짤막히 잘 끝난 아픔은
잠자는 형벌보다 훨씬 낫다!
그러니 나의 감각이 이 미소한 황금빛
인고에 의해 끼어나기를
이것 없다면 「사랑」은 죽었거나 잠든거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무한의 대기가 내 책장을 펼쳤다 덮는다.
파도의 포말이 용감하게 바위에서 솟구치도다!
날아라, 온통 눈부신 책장이여!
파도여, 부숴라! 기뻐하는 물로 부숴라,
삼각 돛이 모이를 쪼았던 이 평온한 지붕을!
여행을 갔다와서 탱고 수업에서 잠시 만난 애가
예전에 잠시 배웠던 웨스트코스트 스윙 선생을 한다길레 놀라 가봅니다.
하지만 춤을 춰보니, 예전 같지 않게 정말 파트너한테 송구할 정도로 못추겠습니다.
음악을 타는 거나, 보는 시각은 그대로인데..
이래서 춤을 추다 한번 그만두었다 다시 시작하면, 좌절감이 더 커진다고 하는 거군요.
탱고를 언제까지 이렇게 열심히 계속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탱고를 시작할 때, 이렇게 좌절감과 실망감이 들수도
아니면 옛날 기억으로 인해 반가움이 생길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내가 생각하고 소망한 것은
언제인가 다시 커다란 원이 되어 나한테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에
그 만남을 위해 앞으로 나가가야 하는 여정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언제나 열정을 잃지 않고,
아름다움은 새로움에서도 가능하지만,
내 마음의 숨겨진 원형과 근원을 깨달을 때도 가능합니다.
그런 감정의 일몰을 다시 그려봅니다.
오늘의 맥주 추천은...
하이델베르크 맥주입니다.
다리 밑에 보면, 기네스북에도 오른 33도 짜리 독한 맥주가 있습니다.
튀빙엔의 맥주에서 크게 슬퍼한 저를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은
감정의 격랑을 말해주는 깊이 있는 맥주입니다.
33도 맥주 베터 ! Vetter
첫댓글 아톰님의 글은 항상 다음이 더 기대됩니다. 독일은 이탈리아랑은 확실히 틀리네요. 로마시대에 세워진 도시가 기원임에도 불구하구요. 아톰님 얼굴을 알고싶네요.담글 기대합니다.
철학 역사 문화 많은 부분 독일 정서도 알 수 있고 좋네요. 매번 올라오는 글 기대됩니다^^
오호 이번엔 튀빙엔으로 하이델베르크로 독일여행 얘기에 엣 공부하던 시절 얘기로 매조지하시나 했더니, 웨코 스윙 얘기도 잠시 들려주시는 센수ㅎㅎㅎ 하지만 독일의 속살 많이 볼 수 있게 해준 얘기도 참 좋았어요. 늘 신기하게 보게 됩니다.
33도 베터 맥주는 한 잔 마시면 졸도할 듯ㅋㅋㅋ 하니만 꼭 맛보고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