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를 순례한 때는 봄꽃이 도량 곳곳을 장엄하던 2010년 4월이었습니다.
사진 속 부석사가 유난히 아름다워 보입니다.
참 열심히 사진 찍고, 알뜰히 정리했구나 싶은 긴~~순례기입니다.
큰 도량답게 볼거리도 많았지요.
오늘도 이야기 보따리 풀어놓습니다.
===========================================================
구품연화대 높은 곳에 무량수전이,부석사/ 인드라망 19차 사찰순례기①
카페 인드라망의 19차 사찰순례지는 영주 부석사와 봉화 축서사이다.
그 중 부석사는 이름만 들어도 "아, 무량수전이 유명한 곳.." 이라는 말과 함께
"나도 배흘림 기둥에 기대보고 싶다."는 말이 자연스레 따라나올만치 유명한 곳이다.
미리 가 본 사람이든, 아직 가 보지 못한 사람이든 부석사라는 말을 들으면 첫 반응은 그렇게 비슷하다.
그만큼 유명한 사찰이라는 이야기다.
지금은 안동 봉정사의 극락전이 몇 년 앞선다고 밝혀져 있지만,
예전에는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교과서에 등재되었던 무량수전이 있고,
불자라면 한 두번은 들어 봤을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전설로 남아 있는 곳이다.
그리고 유홍준씨의 답사기, 최순우씨의 답사기를 통해 더욱 유명해진 부석사이고, 무량수전이고, 배흘림기둥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못 가본 이들조차 다녀온듯한 느낌을 가지기도 한다.
오늘은 이미 가본 사람은 다시 가고 싶었던 원을 이루는 날이고,
못 가 본 사람들은 드디어 그 유명한 부석사 무량수전을 보게 되는 날이다.
아침 7시 10분 쯤에 대구를 출발한 순례단은 부석사에서 아침예불에 동참하기로 했다.
부석사는 워낙 이른 시각(아침 9시 정각)에 사시예불을 올리는 도량이라 시작 시간에 맞추어 가진 못했지만
그 유서 깊은 무량수전에서 아침 예불을 올린 감동은 두고 두고 잊혀지지 않을 듯 싶다.
오늘 일정도 시간이 여유롭게 잡혀있다.
부석사의 아침예불에 동참한 후 문화해설사로부터 도량 안내를 받은 뒤, 오후에는 축서사를 참배하기로 되어 있다.
지금부터는 순례단의 동선을 그대로 옮겨 보기로 한다.
차에서 내린 순례단은 넓은 주차장을 지나 부석사 가는 곧은 길로 접어 들었다.
이곳은 봄이 조금 늦나 보다.
대구에서는 벌써 지고 없는 목련과 벚꽃이 지금 한창 피어 있다.
맑은 날씨에다 수목이 내뿜는 시원한 공기 속에는 뒤늦은 매화향이 섞여 흐른다.
봄 풍경에 한눈을 팔기도 하련만 예불이 시작될 시간이라 부지런히들 걷는다.
저만치 우뚝 선 일주문, 태백산 부석사라 써져 있다.
태백산 소백산 봉황산, 부석사 앞에는 이렇게 여러 산 이름이 붙는다.
봉황산이 태백준령과 소백산의 한 부분이겠거니, 그렇게 짐작을 해 본다.
▲ 부석사 일주문
일주문을 지나자 아주 꽃동산이다.
목련, 매화, 벚꽃, 산수유, 발 아래는 민들레, 꽃다지, 제비꽃...
길 가에는 제법 우람한 은행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노랗게 물들 가을이면 또 어떨지 상상해 보는 즐거움은 덤이다.
▲ 당간지주
부지런히 가다 보니 천왕문 못 미처에 당간지주 (보물 제255호)가 우뚝 서 있다.
부석사 창건 당시에 세워졌다니 1300년이 된 석조문화재이다.
그 옛날에는 이 곳이 사찰임을 알리는 깃발[幢]이 힘차게 펄럭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드디어 천왕문이다.
일주문과의 사이가 이렇게 긴 사찰도 아마 드물지 싶다.
▲ 천왕문 지나서
천왕문을 지나서도 몇 개의 단을 더 올라야 하나보다.
도량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진입로가 아름다워 종일을 걸어도 좋겠지만 우리는 지금 마음이 조금 급하다.
얼른 법당 부처님부터 뵈어야 할텐데...
▲ 절마당에 들어서면 마주치는 두 기의 3층석탑, 동탑과 서탑으로 불린다.
▲ 부석사 범종루
보인다!
종루 너머, 안양루 너머, 무량수전이 보인다!!
산지가람 답게 한 눈에 들어오는 전각들이다.
우선은 조밀하지 않아 시원스럽다.
축대 위에 당당히 자리잡은 모습들이 참으로 멋있다.
아름다운 절로 소문난 부석사의 명성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부석사를 두고 가장 뛰어난 전통 건축물이라고 하더니 과연 그렇다.
이 좋은 도량을 세우고 그 긴 세월동안 지켜낸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절로 난다.
그 모든 것이 거룩하신 부처님의 위신력이겠거니 여겨지자 연이어 찬탄이 나온다.
그러니까 부석사는 보기만 해도 불심이 견고해지는 위의까지 갖추었다.
▲ 부석사 안양루와 무량수전
안양문을 지나자 무량수전이다. 우리가 가야할 곳이다.
목탁소리와 함께 정근 소리가 들린다.
모두 옆문을 통해 법당으로 들었다. 이른 시각의 법당은 조용했다.
인드라망 순례단은 소리없이 좌복을 펴고 스님의 집전에 따라 예불을 올렸다.
긴 정근시간과 축원시간 동안 절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넉넉해 더욱 좋았다.
▶ 소조아미타여래좌상 (국보 제45호)
신라 문무왕 16년(676) 의상 대사가 창건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화엄종 수사찰인 부석사에는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들이 전하고 있어 부석사의 유구한 역사를 증명해 준다.
현존하는 유물을 시대별로 살펴보면 신라시대의 것으로는 절 입구에 세워진 당간지주, 무량수전
동쪽의 석탑을 비롯한 3층석탑 3기, 석등 2기,
그리고 자인당에 봉안된 3구의 석불좌상이 있으며
고려시대의 유물로는 무량수전의 주존으로 봉안된 소조아미타여래좌상, 조사당에 그렸던 벽화 6점,
원융국사비, 그리고 화엄경 목판 등을 들수 있다.
조선시대의 유물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현재 괘불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승당지로 추정되는 곳으로 큰 석조와 맷돌이 남아있어 부석사의 사격(寺格)을 전하고 있다. 또한 경내에는 괘불대, 석등의 화사석, 불상광배편, 배례석, 장대석 등 석물의 부재들이 산재해 있다.
-사진 자료: 부석사 홈페이지-
▲ 부석사 무량수전에 [인드라망]이름으로 올린 연등 꼬리표.
마침 초파일을 한달여 앞둔 봉축기간이라 회원님들의 마음을 담아 무량수전 부처님께 일년등 공양을 올렸다.
지난 해에도 구인사와 고운사, 여수의 흥국사, 대구 삼덕동 관음사 등 여러 법당에 카페 [인드라망]에서는 등 공양을 올렸었다.
예불을 마친 순례단은 예정대로 사찰안내를 받기 위해 다시 내려와 탑 마당에 모였다.
오늘 부석사 안내를 맡아 주실 분은 [영주시 문화관광해설사] 박윤희님이다.
곱게 한복을 차려 입은 모습으로 나와 주었다.
동탑 서탑이 서 있는 마당에서 절 유래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해, 부석사 가람의 배치와 그 의미,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사랑 이야기 등을 자세히 설명해 주며 덧붙인 유머 한 마디,
'우리 나라에세 옷을 제일 잘 입으신 스님이 의상대사'라고...^^*
사찰 문화재나 용어에 대해서는 이동 중에 차례대로 설명을 해 주었다.
▲ 영주시 문화관광해설사 박윤희님
▲ 열심히 듣고 있는 인드라망 사찰순례단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신 부석사는 창건 당시부터 국가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의상대사께서 해동화엄제일로 불리시는 만큼 이 곳 역시 해동 화엄종의 최고사찰로 불려진다.
지금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본사인 고운사의 말사로 되어 있지만 삼국사기에 창건주와 그 연대가 정확히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사찰 중의 하나이다.
전국의 사찰을 순례하다보면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셨다는 사찰도 많고 의상대사의 지팡이라는 나무도 많지만,
대사께서는 이곳 부석사를 창건 하신 이후 열반하실 때까지 이 곳에 계셨다고 한다.
설화나 전설만이 아니라 이 곳에서는 대사의 흔적을 직접 볼 수 있는 유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 부석사 안양문(안양루)
문화재 해설사님의 설명도 그랬지만 부석사 홈페이지에서도 부석사의 가람배치에 대해 특별한 설명을 해 두고 있다.
이 곳은 정토신앙(淨土信仰)에 의거해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삼고, 삼배구품(三輩九品)의 교리에 따라 전체 영역을 108개의 계단과 아홉개의 단으로 구성했다는 설명이다.
삼배구품은 잘 아시다시피 극락의 단계를 상.중.하로 나누고 한 단계마다 다시 셋으로 세분해 모두 아홉단계를 두는 것을 말한다. 물론 아미타경에 의거한 분류이다.
올라오면서부터 이 곳은 유독 계단이 많다 싶더니 그런 연유가 있었다.
저 아래 일주문에부터 무량수전까지를 아홉 단으로 나누어 놓고 구품 중 맨 윗단계인 상품상생은 바로 무량수전 내부가 된다는 설명이다.
안양국은 아미타여래께서 계시는 극락세계이다.
저 문만 지나면 무량수전, 상품상생의 극락이다.
단을 만들자니 당연히 축대를 쌓을 수밖에 없다.
쌓은지 1300년이나 됐다는 이 축대에 대한 설명이 또한 아름답다.
크고 작고, 둥글고 네모나고 뾰족한 제각각의 돌들을 있는 모양 그대로 쌓았다는 것이다.
크다고 더 중요하고 작다고 못난 것이 아닌, 자연스런 모습 그대로가 모여 하나의 훌륭한 석축이 된 모습에서 화엄세계의 일면을 또한 엿볼 수 있다고 한다.
이렇듯 석축 하나에도 불교적인 의미를 듬뿍 담은 부석사가 좋다!
▲ 부석사 현판 아래, 공포불(拱包佛)이 나투셨다.
이곳은 부석사 사명이 붙은 안양문(안양루)이다.
아래는 문의 역할을 강조해 안양문이라는 이름이 달려 있고,
무량수전 쪽에서 보면 누각을 뜻하는 안양루라는 이름이 달려 있다.
지금 설명하고자 하는 건 누각이 아니라, 공포불(拱包佛)이시다.
목조건축물에서 앞으로 내민 처마를 받치며 그 무게를 기둥과 벽으로 전달시켜주는 부분을 공포라고 하는데
안양루의 공포 부분을 적당한 거리에서 보면 저렇게 부처님 형상이 나타난다.
붉은 가사를 수하신 다섯분의 부처님 모습을 뵐 수가 있다.
▲ 안양루 공포불(拱包佛)
이곳은 종루이다.
건축물이 길이 가는 방향으로 옆으로 길게 세워져 있다.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부석사가 전반적으로 소백산을 향하여 날아갈듯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가로로 종루가 놓여지면 답답해 보이기 때문에 이렇게 지었다는 설명이다.
정면에서 봤을 때는 팔작지붕인데 반대편에서 보면 맞배지붕인 특이한 건축물이다.
▲ 부석사 범종루, 사진: 디카동우회 지도선생님(뜬구름님) 제공
▲ 부석사 범종루
불교사물 중 법고와 목어, 운판이 걸려 있다.
범종은 따로 종각에 놓여져 있는데 그 이유가 또 있다.
일제 시대에 무기를 만들기 위해 집집마다 숟가락까지 공출해야 했던 시절, 이 곳 부석사의 종도 떼 갔다고 한다.
후에 다시 종을 만들어 종루에 두려고 했지만 그땐 이미 무게 균형이 맞지를 않아 따로 종각에 두게 되었다고 한다.
▲ 부석사 범종각
▲ 응향각, 지금은 요사채로 쓰인다.
▲ 국보 제18호인 무량수전 앞에서, 옆은 국보제17호인 부석사 석등, 사진: 디카동우회 지도선생님(뜬구름님) 제공
너무나 잘 알려져 있어 따로 설명이 필요치 않은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이 과연 멋있다.
▲ 안양루와 석등
▲ 부석사 석등
▲ 부석사 석등, 사진: 디카동우회 지도선생님(뜬구름님) 제공
부석사 안양루와 석등이다.
국보 제17호인 석등은 원형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는 아름다운 석조물이다.
하대석에는 복련이, 상대석에는 앙련이 선명했고, 불을 밝히는 부분에는 사대보살상이 섬세하고도 고운 모습으로 새겨져 있다.
안양루에서 보는 경관이 또한 장관이다.
많이 올라왔다는 느낌이 없었는데 무량수전 마당은 꽤나 높은가 보다.
멀리 소백산 연봉이 외호하듯 둘러져 있다.
짙고 옅은 능선들이 몇 겹을 이루며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이 곳에 서니, 그렇게 서고 싶었던 자리에 지금 우리가 함께 있구나, 그 느낌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부석사의 아름다움은 단지 건축물 때문 만은 아닌가 보다.
능선, 하늘, 나무, 공기까지 부석사의 아름다움에 단단히 한 몫씩 거들고 있다.
우리 만이 아니다.
봄볕을 따라 온 상춘객인지, 불연을 좇아 온 불자들인지,
조용하던 무량수전 앞마당은 어느새 사람꽃이 곱다.
불세계를 찬탄하고 꾸미는 가장 훌륭한 장엄은, 볼살들이 꽃피우는 보살행이라고 했던가.
저렇게 마당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훌륭한 장엄을 이루니 그들, 이미 화엄세계의 보살들이다.
무량수전 뒷편으로 작은 전각이 하나 보인다.
저렇게 작고 예쁘다니, 선묘각이 분명하다.
당당하고 남성적인 무량수전 뒤로 화사하게 단청된 선묘각이 얌전스레 자리하고 있다.
전하는 사적에 의하면 의상대사는 당나라에 유학을 가는 길에 중국 산동반도의 어느 신도 댁에 머물렀는데 그 댁에는 선묘라는 아름다운 처녀가 있어, 의상스님에게 반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 댁을 떠나 의상스님은 지엄화상께 화엄학을 배운 뒤 신라로 돌아오기 위해 돌아오는 길에 다시 그 댁에 들러 하룻밤을 쉬었다가,
새벽 일찍 떠나게 되었는데, 밤새 스님의 옷을 마무리하다 새벽녘에 살풋 잠이 든 선묘가 깨어났을 때는 스님은 이미 떠난 뒤였다.
뒤늦게 바닷가로 달려온 선묘가 정성껏 지은 스님의 의복이 담긴 보따리를 저 멀리 떠나가고 있는 배를 향해 힘껏 던지자
때마침 불어온 회오리 바람이 옷 보따리를 배로 날려보냈다고 한다.
선묘 자신은 용이 되어 배가 무사히 신라땅에 도착하도록 지키리라 하고 바다에 뛰어 들어 스님의 무사항해를 도왔다고 한다.
스님께서 부석사 터에 절을 창건하려 할 때 기존의 무리들이 따르지 않고 반항하자, 선묘가 커다란 바위로 변해 가람의 공중을 덮은 채 떨어질 것처럼 떠 있으니, 모든 이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갔다고 한다.
그 전설에서 유래한 이름이 浮石寺,
이처럼 선묘낭자는 스님의 불법홍포를 크게 도왔다.
무량수전 뒷편에는 아직도 그 부석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선묘낭자가 용의 형상[석룡]으로 땅 속에 묻혀 있다고 전해진다.
몇 해 전 땅 속을 촬영해 보니 허리가 끊긴 용의 모습을 한 돌이 묻혀 있는 것이 실제로 선명히 촬영되었다고 한다.
▲ 선묘각 속의 선묘낭자 영정, 옷 상자를 소중히 받들고 있다.
-부석 이란 글이 새겨져 있는 큰 바위
▲ 부석사 3층석탑
석등 설명을 끝으로 문화 해설사와는 작별을 하고 이후는 자유로이 남은 전각을 참배하기로 했다.
아래에도 삼층 석탑이 있었지만 무량수전 옆에도 탑이 있다.
탑은 대개 전각의 앞 마당에 서 있는데 이곳은 멀찍이 떨어진 옆에 서 있다.
무량수전 안의 부처님께서는, 법당 문을 열면 정면이 아니라 서쪽에서 동쪽을 보고 앉아 계신다.
몇 가지 설이 있지만 이곳 역시 호국사찰이라 일본 쪽을 살피고 계시다는 설명을 들었는데,
이곳 탑쪽에서 보면 부처님과 마주보게 된다.
역시 탑은 부처님 앞에 서 있는 모습이 된다. 전각 마당은 아닐지라도...
▲ 부석사 3층석탑, 무량수전 부처님과 마주보며 서 있다.
▲ 조사당(국보 제19호), 의상대사상이 모셔져있다.
▲ 조사당 내에 모셔진 의상대사상
이 곳은 의상대사가 모셔진 조사당이다.
삼층 석탑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숲길을 조금 걸은 뒤에야 만날 수 있다.
부석사에는 국보만도 다섯점이 있는데 무량수전과 조사당은 고려시대 목조건물로 둘 다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물론 보수를 했겠지만 고려시대의 건축물을 이렇게 볼 수 있다는 것만도 큰 행운이 아닐까 싶다.
조사당 벽면은 무량수전과 같은 하늘색 톤의 단청이 은은히 남아 있다.
그동안 다녀온 천년고찰 중에는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셨다는 절이 참 많았었지만,
이 곳 만큼은 설명이 따로 필요없을만치 성보마다 대사의 흔적이 배어 있었다.
조사당 처마 속 뜰에는 '선비화'라는 나무가 한 그루 자라고 있다.
대사께서 짚던 지팡이를 꽂아 둔 것이 아직도 살아 있다고 전해진다.
비도 이슬도 차단된 처마 아래에 자리한 나무이지만 봄이 되면 싹이 돋고 꽃을 피운다고 하니
화엄사상을 꽃피운 의상스님의 원력이 수천년을 이어오나 싶어 예사로이 보이지를 않는다.
수종은 골담초.
▲ 조사당 앞에서
▲ 자인당 가는 길
조사당을 나와 조붓한 오솔길을 따라 걷자 자인당과 응진전이 나타난다.
자인당은 석조비로자나불 두 분과 중앙에는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다.
옆의 응진전은 나한을 모신 전각.
부석사는 큰 사찰답게 크고 작은 전각이 참 많다.
취현암, 자인당, 응진전, 삼성각, 응향각, 단하각, 선열당....
여러 이름의 전각들이 展으로 선원으로 요사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 자인당에 모셔진 석가모니불과 비로자나불
▲ 자인당과 응진전, 뜰 앞에 매화 한 그루, 곱다.
▲ 자인당 다녀오는 길
▲ 부석사 지장전
▲ 지장전 마당에서 내려다 본 풍경, 동탑 서탑이 있는 하단
▲ 멀리 안양루와 무량수전이 보인다. 어느 방향에서 봐도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가람.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통건축물이란 명성을 듣고 오지 않았다고 해도 그 느낌은 같을 수밖에 없는 가람이다.
어느 쪽을 바라봐도 완벽한 풍경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법향 그득한 화엄만다라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화엄세계와 극락세계를 누가 힘들여 따로 분별할까.
오늘 와 보니 그곳이 그곳이다.
▲ 문화재를 열심히 담고 있는 터사랑님
▲ 지현향님과 마법사님
▲ 지장전 앞 뜰, 꽃다지와 제비꽃
▲ 부석사 동탑과 서탑
꽃구경까지 다 마치고 내려오니 다시 탑이 있는 그 마당이다.
동탑 서탑이라고 했다.
여기 서서 보니 서탑도 동탑이 된다.
이 자리에 탑을 하나 더 세우면 서탑은 중앙탑이 되겠네? ^^*
부질없는 이름 타령은 그만하고 이제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기분 같아서는 오늘 맡은 법향만으로도 배부를 것 같은데 사실은 배가 고파오기 시작한다.
순례단이 보이질 않아 시계를 보니 약속했던 공양시간이 코앞이다.
단골 지각생이 되기 전에 저 꽃나무가 흔들리도록 달려봐야겠다.
그 옛날, 선묘낭자 바닷가로 달려가던 그 속도로...^^*
@가을소나타 맛있겠네요
가지런한 모습이 소나타님 성격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맛있게 드시고 간강하세요.
@秀香(수향) 소나타는. 선머슴ㅡㅡ
@거울빈 들이데고찍어서ㅡㅡㅋ
@거울빈 칭찬엔. 고래도. 춤춘다지요
@演菩提(연보리) 연보리님ㅡㅡ
고맙습니다
농담이라도 듣기는 좋구먼요ㅡㅡ
목련꽃 피는 봄날에 부석사를 데려다 주시는군요
마법사님 지현향님 사진이
소풍 나온 아이들 같습니다^^
집안 정리 좀 하고
오후엔 맘 내서 모처럼 도서관 갔더니 찾는 책이 없어
산책하고 돌아오니 하루가 다 갔네요
편한 밤 되시고 또 뵙겠습니다.
천상. 여자. 여자하십니다
잠시도쉬지않으시고
집안정리까지하셨다니ㅡㅡ
먼지한톨. 없을것같은. 예감ㅡㅡ
빗나가지않을ㅡㅡ
점곡을. 찌르셨지요ㅡㅡㅎ
@가을소나타 ㅎㅎㅎ
게으름의 끝판왕인데 ..
드러누워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秀香(수향) 에이~~~
거짓뿌렁도. 자꾸하면
느는겨ㅡㅡ
정리정돈 퀸일걸요. 수향님. ^^
도서관에서 멀어진 지가 저는 7, 8년은 된듯해요.
이제 읽는 즐거움은 제 것이 아니랍니다.
수향님도 편안한 밤 되세요~~
저는 오늘 시청 산하 공무원(전.현직) 테니스 연말 결산(A.B.C 조별)대회(참석인원:50명) C조에서 우승하여 부상으로 10kg햇쌀을 받았답니다. 컨디션은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을 가리는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우리 태극전사들이 기적을 이루어 16강의 대열에 편성하게 되었는데, 그 여운으로 3시간여 자고서 일찍 테니스장으로 가서 카메라 셋팅하고, 사진촬영으로 별로 몸을 풀지 못한 상태에서 게임을 하니 급피곤이 몰려 힘들었지만 그래도 즐겁게 운동을 했답니다. 집에 돌아와 의자에 앉으니 꾸벅꾸벅 졸았네요. 일단 사진편집하고 동우회 카페 올려주어야 하기에 작업을 들어갑니다.
와우~ 조 우승 축하드립니다. 묘덕님~~^^*
어머~~~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