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18년전 베트벳 싸이트에 올린 글이었으나 '사진' 과 글 등이 차츰 사라지며 더우기 "다움 블로그" 의 글조차 그곳 사정으로
(개정되어)차차 없어짐을 안타까이 여기던 차 (3,000 여편의 글중) 일부라도 남기고저 홍하사가 '폄'했으므로 오해없기 바랍니다.
"새마을 운동(봉사)이야기"
♧ No, 2827
♧ 이름: 홍진흠 (coala48@naver.com)
♧ 2005/12/29(목)
♧ 조회: 2291
"새마을 운동(봉사)" 이야기 얼마전 회장님께서 2005/10/28일은 꼭 휴가를 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연수원에 꼭 참석하라는 것이었다. 누구보다도 회사실정과 내사정을 잘 알고 계시는분이 그런 말씀을 하실땐 그만한 이유가 있을거라 생각으며---휴가를 상신해 보겠다고 했다. 연초에 행자부장관상을 탄 바 있는 장암동지 회장겸 의정부시 이사님이기도 한 우리 회장님은 정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이 시대의 봉사꾼이시다. 하늘이 그 공로를 정확히 입력해서 공평한 점수를 계산한다면 "국민훈장" 쯤은 수여해야만 마땅하다. 장거릴 타단체에서 갔다오시는 중에도 마을일이 걱정돼 연신 손전화가 울린다. 또한 얼마나 부지런 하신지? 거의 매일 새벽 4시에 기상해서 당신의 논과밭을 갈고 온갖 농사를 지으면서도 마을과 市에 봉사활동을 하는가 하면 洞노인회 총무일도 역임하시며 당신께선 허리수술로 성치않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사모님께서도 중환자이시며 잠시라도 뒷바라지에 신경쓰지않음 안될 실정임) 성격이 원만하시며 얼마나 철두철미 하신지 원칙을 고수하시며 좀처럼 빈틈이 없으시다.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이름만대면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알-분을 모신 그분은 어쩌다 우리가 비나 추적추적와서 막걸리 생각이라도 나서 십여분 일찍 순찰을 끝내자고 조르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매주 목요일(원래는 수요일이었다)은 밤 8시부터 10시까지 마을순찰, 청소년선도활동 등으로 봉사활동을 한다. 아침저녁으로 심심하면(?) 한번씩 소독기를 장치한 차량으로 (개인돈으로 트럭도 구입)온 마을을 휘이 연기를 품으신다. 회장님같은 경우는 거의 매일 봉사하신다. 솔직히 난 직장핑계로 소독도 가뭄에 콩나듯 드문 드문 참석하고 심지어 일년에 한두번씩 있는 연수교육도 단 한번도 참석치 못했다. 군에서도 춥고 배고픈게 교육이라고 누구나 빠지길 원하지만 난 그 힘들다는 유격훈련도 재미가 있었고 보내주질 않아서 가지못했고 회사내에서도 20년만에 처음 교육갔을때도 그렇게 좋고 신기하기만 했다. 증거(홍진흠이가 사는법). 소위 명색이 수석부회장이라면서 회원들에게도 미안하게 늘 생각했는데---회장님께선 내게 늘 노력하는 수고에 비해 아무런 보람도, 혜택도 못받게 된다며 안타깝게 여기던차 이번 기회에 당신의 끗발로(?) "중앙회장상" 을 상신했지만 내가 교육부재로 두번째상인 "경기도회장상"을 주게된 것이라고 오히려 미안해 하신다. 결국 본의아니게 賞을 받기위해 어렵게 휴가를내고 연수원을 12년만에 처음 참석케 되었다. "학교주변 유해광고물 정비" 사례발표 이상봉님(의정부2동협의회장)에 이어 한국사회교육개발원 원장이시며 평생교육원교수이신 당일의 강사이신 조 육현님의 "성공하는 지도자상의 리더쉽" 이란 제목으로 초청강연도 받고 박 지성이나 조 용필이가그렇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 즐거운 마음으로 훌륭히 임무를 수행할수 있다는 것이다. 축사에 나선 김 문원 시장님의 "봉사하는 여러분 모두가 미남,미녀로 훤칠해 보이는것은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모습이 얼굴에 그대로 표현됐기 때문" 이라는 공감대와 부상으로 줄수있는 시계도 선거법으로 수고하시는 지도자에게 못주는 안타까움을 불평하며 악법도 법인만치 지켜야함을 역설했다. 점심식사인 2부를거쳐 장기자랑인 3부에선 소위 의정부 유지들은 총 망라된듯 사방에서 인사차 들른다. 특히 인상에 남는것은 김 해경 새마을 의정부지회 사무국장님의 "사랑은 아무나 하나"(봉사는 아무나 하나!) -로 가사를 바꿔서 부른 노래가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는 사실은 노래를 잘 불렀다기보다는 누구라도 지극한 정성과 헌신 그리고 신념이 없었다면 "새마을봉사" 를 하지못한다는 공통의 긍지를 갖고 있다는 자부심이었을게다. 우리중엔 자신이 큰 환자이면서도 남을 돕겠다는 일념으로(일주일에 세번씩 투석하는 환자)도있고 이미 고인이 된(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안타까운 사람도 있다. 언젠가 보훈병원의 최경례 여사님의 호스피스 봉사얘기를 읽고 참으로 숭고하심을 느낀적이있었다. 그런곳에서 "봉사활동"은 정말 보통사람으로썬 감히 엄두도 못낼 일일것이다. 자기 가족은 물론,친척도 아니고 심지어 생전 말한마디 나누지않은 낯선사람을 지극히 모신다는건 거의가 신앙심이 없는사람으로선 견뎌 내기 힘든것이다. 얼마전 소록도의 두 외국인 수녀분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천사가 아닌가! 돌이켜보면 나역시 게으르고 귀찮아서 엉뚱한 핑겔되면서 (시간과 능력이 없다며 모자와 완장, 깃발 그리고 팻말등을 송두리째 떼어 동사무소엘 갖다준적이 있었다. 물론 되돌아왔고 처음 나를 추천한 당시의 통우회장(통장모임의 회장)이었던 우리통장(당시 7통-박 병찬씨)를 원망하기도 했다. 처음 장곡동(12년전 장암동과 신곡동 전신인)에서 장암동으로 분동될시 그 분은 엘리베이터에서 몇번 유심히 보드니 어느날 갑자기 내가 적임자라면서 감투를 씌웠다. 나이답잖게 민첩한 그분은 아니나다를까 태권도장을 운영하시는 사범이셨다. 실은 일찌기 그보다 앞선 중학시절에 이미 나는 "쟝 앙리듀냥" 이 창시한 "청소년적십자"(JRC=Junior Red Cross)부장을 맡아 봉사한 일이 있었다. 우리 장암동엔 삽십여개의 통이 있지만 지도자로 선임된 통은 겨우 열 네곳이지만(몇년동안 공석인 자리가 많다 서로가 하지않을려니) 그나마 모두가 하루벌어 하루먹는 사람들이 많아(노가다 일등 잡역)순찰돌땐 차떼고 포떼고 너댓명 정도밖에 나오질 않는다. 소위 감툴쓴 임원진만이 겨우 나온다. 봉사를 하면서 느낀점이 있다면 대체적으로 좀은 못살고 장애인거주지인 1단지 쪽엔 서로 하려고한다. 아마 이것도 감투라고 서로들 하려고 하는모양인데 반해 내가 사는 우성아파튼 6개棟이 있지만 남자로썬 유일하게 나혼자이다. 서로 안하려고 하니 오랜기간 공석으로 남겨져 있다한다. 예수님 말씀에 "왼손이 하는일을 바른손도 몰라야한다" 는 말때문은 아니라 아랫윗집 사람도 난 모르게 봉살한다. 또한 여느 통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해도 임명되지 못한 통도 수두룩하다. 왜냐하면 자격심사를 거쳐야만 되기때문이기도 하다. 작년 중국에 "새마을 해외연수" 갔을때---(왼쪽부터) 장암동협의회 총무:박 상배님 회장:최 종대님 부회장: 홍 진흠 왼쪽부터 순서대로 부녀회부회장:장 순자님 부녀회장:문 금옥님 총무:한 규순님 그리고 오른쪽 푸른쟈켓의 새마을운동 의정부지회장겸 시의원이신 박 형국님입니다. 좌우간 난 고구마를 심을때도, 고추딸때도, 재생비누 만드는 작업할때도, 김장배추 심는다던가 김장할때도, 힘 닿는데 까진 참석하려 하지만 늘 회원님들 신셀진다. 새마을 자체에서 논밭을 빌려 경작하고 수확하고 판매하고 그 이익금으로 불우이웃을 도와주는등무진장으로 할일이 많다. 장암동에 7대째 살고 계신다는 우리회장님은 유지이기도 해 언제나 불우이웃 돕기를 할때면 주위의 이웃분들의 도움으로 쌀을 수십포씩 걷어오시곤 타 統에다가 공평히 분밸한다. 어떤이는 자기통에 더 많이 할당해주고자 언성을 높이고 우린 가끔 자기주머닐 털어 봉사도 하지만 욕을먹기가 한두번이 아니다. 이전엔 그래도 한달에 한번정돈 市에서 단체로 어느 한동네에 집중적으로 청소하면 나도 참석할 기회가 있었지만 요즘엔 공무원들이 토요일날 쉬며 금요일에 실행하니 그나마 직장때문에 통히 기회가 없다. 어쨋거나 난 지금도 남을 위해서 일하고저 하는맘에는 변함이 없고 심심찮게 어찌하면 남에게 도움을 줄까고 고심하기도 한다. 누가 말했던가? "한번 새마을 지도자면 영원한 지도다" 라고--- |
이상수: 새벽종이 울렸네~~~새마을을 가꾸세. 그때 가 좋았었습니다. -[12/29-16:03]-
최 성영: 암튼 우리 홍 진흠 전우님 직장생활의 바쁘신중에도 봉사할동까지 열성적이니 그렇치 못한 이사람은 존경할수밖에 없습니다. 언젠가 부산에서 서울까지 열차타고 오면서 들려준 살아온얘기 되새겨 봅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봉사사업도 열정적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12/29-21:35]-
홍 진흠: 지금 막 금년의 마지막 순찰을 돌고 들어오는길 입니다. 오늘 참석자는 저포함 6명이었는데---"불법광고물탈착" 으로 생긴 이십만원으로 연탄 1000장을 사서 불우이웃에게 100장, 혹은 150장씩 7가구에 나눠줬다는 회장님의 말씀이 계셨습니다. 그 무거운 천장을 트럭에 싣고 독거노인들에게, 소년소녀 가장들의 집까지 날라주신 우리장암동 지도자님들께 감사함을 표하고 싶습니다. 격려를 주신 이 상수전우님과 최 성영선배님께 꾸~뻑 인사 드립니다. -[12/29-23:13]-
홍 진흠: 그리고 윗글중 네번째줄 "장암동지 회장겸" 은 "장암동 지회장겸" 으로 , JRC="청소년 적자"-"청소년 적십자" 로 바로 잡습니다. 이 상수님! 우리가 오늘날 이렇게 잘 살게된게 바로 "새마을운동" 등으로 이뤄낸 결과가 아닐까요? 요즘도 동남아, 남미,아프리카등 세계 곳곳에서 우리나라 새마을운동의 모범사례를 배우러오곤 한답니다. 또한 최 성영선배님! 오늘 사실은 휴가였거던요. 그런데도 바쁜일이 좀 있어 출근해 볼일보다 문득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답니다. "이 종미" 여사의 이름을---작년 "오륙도" 가는 배안에서 만난 그 여사 말입니다. 미2사단/의정부/동두천/평택 지역의 "연말정산담당자" 이셨습니다. 연말정산방법도 궁금했지만 반가움에 다이알을 돌렸더니 금방 알아보시드라구요. 오 동희 전우님이나 장 영호전우님! 이글을 보신다면 전화통화 가능합니다. 전화주심 번호 알려드릴것입니다. -[12/29-23:39]-
정재성: 홍전우님 인생을 정말 맛있게 사시는군요. 이는 보통의 열정이 아닙니다. 이거야말로 아무나 넘 볼수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이번에 수상하신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12/29-23:42]-
황진순: 좌우간에 우리 홍전우님 인생을 즐겁게,보람되게 ,건전하게 사시는것같아 부럽기도 합니다..남에게 베풀고 남을도우면 자신이 행복하다는것을..아뭍은 건강하시어 좋은일 많이 하시길..잘 보았습니다..세헤에도 건강 하시고 가정엔 행복을 빕니다... -[12/30-06:54]-
최덕종: 홍 전우님 장하십니다. 말로는 봉사 애국 하지만 몸소 실천 한다는 것 어렵습니다. 그리고 수상하신것 축하 드립니다. -[12/30-10:21]-
장영호: 직장생활 바쁘신대 언재 새마을 지도자까지? 아무튼 장하십니다. 홍전우님!! -[12/30-18:43]-
홍 진흠: 격려와 칭찬을 해 주신 정 재성님, 황 진순님, 최 덕종님, 장 영호님에게 감사드리고 사실 이 모든걸 밝히지 않으려고도 했습니다. 어찌보면 제자랑만 하는것 같거던요. 그러나 그렇게 생각는 사람들이야 말로 나무를 보고 숲을보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확신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남에게 베풀수록 다른방법으로 내게 되돌아온다는걸 알려주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조금아까 작은넘이 인터넷으로 성적표를 보여주드군요. "All A" 였습니다. A 가 2개였고 나머진 모두 A+ 였으며 1학기에 이어 장학금을 또 타게된것인데(저는 군에 갔다오고 그 공백기간과 합치면 거의 3년을 쉬었음으로 타학생(특히 여학생)들과 겨루면 힘들거라 생각도 했음)---사람 마음은 간사한것-조금도 기쁘질 않다는거지요. -[01/03-23:19]-
홍 진흠: 왜냐하면 어차피 회사에서 학비보조금 전액이 나오기 때문이지요. 때문에 "새마을지도자" 로 장학금 탈 기회가 여러번 있었으나 언제나 양보하고( 어차피 보조금 나오므로 차라리 다른이에게 주라고 양보함) 봉사한 12년동안 한번도 혜택을 못받았기 때문에 윗글에서 말씀드린 (수고에 비해 아무런 보람과 혜택을 못받는다고 안타까워하신) 뜻이지요. 그러나---노력해서 얻은 성취감(?)같은 무언간 줄수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아마 모르긴해도 하느님께선 다른방법으로 제게 복을주시지 않을까 여깁니다. -[01/03-23:43]-
홍 진흠: 그레서 전 이 다음 은퇴하면 무엇으로 사회에 봉사할까고 고심한 끝에 불우한 이웃들에게 무료로 음악을 들려주는것 밖에 없다고 여겼습니다. 제가 가진것이라곤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다행히 저는 다른이들 보담 조금 더 많은 "레파토리" 와 1,2,3절 가사를 기억할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자타가 공인함)-또한 노랠 안부르면 스트레스가 쌓이는 체질임-(트롯트 가수 김 지애씨가 말했던가요? 가족이함께 생활하는 미국을 팽개치고 노래가 좋아,노랠 부르고싶어 홀로 남아있다고)---저희동네엔 "엔돌핀 사우나" 가 있는데 그곳서(핀란드 찜질방) 항시 제가 도맡아놓고 노랠불렀답니다. 그런데 요즘엔 시설이 바뀌어 노랠부를 형편이 못되니 청소하는 젊은아낙이 "요샌 노랠 못불러 어떻해요?" 합니다. -[01/04-00:14]-
홍 진흠: 한 십오여년전에 "낙원상가" 를 들렀습니다. 기타나 아코디언 혹은 전자올갠을 좀 전문적으로 만져보고저 말입니다. 또한 "연주회회장" 님도 만나보았습니다. 훗날을 도모했지만 아직 꿈은 남아 있습니다. 지난 8/19(금) "새마을지도자" 회장단에서 문화탐방지-강원도가평 까치유원지로 Bus 두대로 간 그 당시에도 제가불쑥 마이클 잡은것도 이미 아실분은 아셨을겁니다. -[01/04-00:34]-
홍 진흠: 문풍지님의 첫째따님 여읠때는(#2405-우리가족 이야기 '04/06/08 )기회가 그지없이 좋았드랬습니다. 전라도 순천까지 관광버스내에서 줄곧 사횔보며 노랠부를수 있었으니까요. 간혹 장거리 여행에서 잠좀 자자고 싫어하는사람도 있기도 하고 좋아하지않는 사람때문에 눈치도 보이지만 그날은 예외이니 물고기가 물을만난 호기분이었다고나 할까요? 더우기 반주없이 즉석으로 부르는덴 움직이는 노래방 홍하사가 더욱빛을 발휘하잖습니까!--- 그렇다는 얘깁니다. 별 시시콜콜한 얘길 다 썼습니다. 그레서 "살아가는 이야기" 가 아닙니까? 또한 봉사야그가 아닌지요? -[01/04-01:00]-
한규순: 사진보니옛생각도나고 또가고싶고..그립당 -[06/17-16:39]-
홍 진흠: 부녀회 한규순 총무님!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의정부 시청앞에서 열린 단오절 행사에 많은 수고가 있었음을 최 종대 이사님을 대신해 제가 감사와 격려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네뛰기,씨름, 줄다리기등 해마다 갖는 행사지만 우리지도자들은 별로 눈에뜨이질 않았으나 부녀회에선 많은 활동으로 모범적이셨습니다. 그 많은분들의 점심식사와 음료수, 커피, 디저트 등등--다양한 메뉴로 타동네분들까지 초청하여 일사분란하게 대접하신 이십여명의 장암동새마을부녀회원님들의 수고와 헌신은 길이길이 잊혀지질 않을것입니다. 저는 바쁘다는 핑계로 끝까지 함께하지 못하고 겨우 동네노인 몇분을 제차로 모셔드리고 짐운반을 좀 도왔음에 만족해야만 했습니다. 저는사실 두차례나 주차비를 물었지만 무료주차권을 달라고할만한 자격이 없기에 그냥내고 말았습니다만---문금옥 부녀회장님, 장순자 부회장님을 위시하여 모든 새마을 부녀회원님들에게도 대신인사 드려주시길 부탁드리며 편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06/18-03:33]-
오래전 "새마을연수" 가며 홍하사가 부른 조용필의 '허공' 입니다. 갈 수록 아름다운 금수강산의 낙엽을 감상하시며 화이팅!
첫댓글 중국사진(끝)의 좌측두분(박상배, 최종대님)이 장암동회장직을 교대로 수십년을 하고있지요.
왜냐하면 3년을(한번은 연임가능)하고 번갈아 맡는셈입니다. 홍하사 무조건 회장직 시키면 안한다고
하므로~ 말입니다.그대신 일은 회장맡은 이상으로 한다믄서 말이지요. 허지만 실제 일도 못 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