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코스트의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방에 들어와 휴식을 취하는 중이다. 오늘은 10시부터 일정이 시작된다. 아침 일찍 골프를 치러 간 사람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호텔을 떠났다. 어제저녁 시드니에서 비행기를 타고 브리즈번 공항에 내려 버스로 골드코스트까지 오는데 1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골드코스트 시내의 예약된 호텔에는 거의 자정 무렵에 도착했다.
호주 대륙의 동해안 중간쯤에 위치한 골드코스트. 이곳도 시드니처럼 차량의 소음이 끊이지를 않는다. 호텔의 창가에 기대어 시내를 바라보며 이리저리 눈을 돌려가며 구경하는 중이다. 이곳도 다른 도시와 다를 바가 없다. 나는 낯선 도시를 바라보면 노래하고 싶은 이야기나 전설이 별로 없다. 내가 성장한 무대가 농촌이라서 그런지 서정성도 정감도 도시적 냄새가 짙게 배어 있는 곳에서 시내를 바라보면 시가지에서 전해져 오는 전설이나 느낌이 일지를 않는다.
이곳은 휴양지답게 호텔이 강가에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람을 싣고 떠나는 배와 강가를 따라 우뚝 솟은 호텔의 모습이 풍경처럼 다가온다. 남녘의 상징인 야자수 나무가 호텔 주변을 배회하며 낯선 이방인을 반겨주는 이국의 아침이다. 내일은 이곳을 떠나 다시 원래의 터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느덧 열흘이란 덧없는 시간도 마감할 때가 되어간다.
이번 여행은 외국에 버스를 타기 위해 온 것인지 비행기를 타러 온 것인지 목적이 뚜렷하지 않을 정도다. 여행은 견문을 넓혀준다는데 오히려 견문이 좁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몸에 피로만 누적시킨 채 버스와 일행을 쫓아다니기 바쁜 시간이었다. 호주가 계절상 여름으로 접어든다는데 습한 기온과 작열하는 태양도 없는 우리나라 가을 날씨 같다.
오랜만의 휴식이 마음의 여유로 이어져 이국적인 감정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민다. 호주의 첫 관문인 시드니 공항에서 마주한 거부감이 강하게 머릿속에 박혔던 것 같다. 넓은 들판과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와도 좀처럼 마음의 문이 열리지를 않았다. 지금 머무르는 호텔은 시드니에서 머문 호텔만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먹을거리도 시드니보다 풍성하지 않고 호텔 방의 구조나 침대의 배치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하늘에는 구름이 겹겹이 쌓여가고 호텔 앞과 옆을 가로지르는 도로에서 차들의 소음과 간간이 오토바이가 액셀러레이터를 끌어당기며 내는 굵은 바리톤이 요란하게 들여온다. 호텔 앞 다리에는 이곳 사람들이 끊임없이 걸어오고 걸어가는 모습과 강가를 따라 늘어선 주택의 정갈한 모습이 시야로 들어온다.
이번 여행의 목적이 해외 건축문화를 체험하는 것이지만 오히려 눈으로 심미안을 즐긴 여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창문 밖으로 멀리 보이는 산자락을 향해 시선을 옮기자 마음에 여유가 생겨나고, 자연과 건물이 조화를 이룬 시가지의 마천루와 건물에 흐르는 선과 각의 건축미가 돋보이는 아침이다. 도시를 둘러싼 산들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높지 않은 산과 유장한 들녘이 오고 가는 사람을 맞이한다.
넓은 벌판으로 달려가는 미풍의 바람도, 얼굴을 부딪치며 달려드는 맞바람도, 오늘은 모두가 허허로운 벌판을 떠도는 존재의 바람으로 나를 몰아간다. 허허벌판에 덩그렇게 선 외로운 산과 건물이 오히려 낯설게만 다가오는 아침이다.
내가 이곳에 와서 찾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나는 지금 어디서 와서 무엇을 찾아가는 방랑자일까. 호텔 옆 아담한 수영장의 파란 물결은 하늘의 쪽빛을 담아 짙푸르기만 하고, 호텔 담장에 심은 야자수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허수아비처럼 고독하게 바라보인다. 내가 기대하고 고대했던 것들이 사라진 지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화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가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말했듯이 해외여행도 희망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희망이 아닌 무심하게 보낸 날들이 더 많았다. 무언가를 찾아보려고 했던 초심의 마음이 초원의 벌판으로 날아가 버린 지금. 내가 이곳에서 마지막까지 무엇을 찾아야 할까. 일행과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방에 들어와 베란다에 기대어 창밖을 하염없이 내다보는 중이다.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과 지나가는 바람을 맞으며 마치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먼 곳을 응시하는 중이다.
해외여행이 낯선 것을 익숙하게 해준다는 말은 거짓말인 것 같다. 여행은 낯선 것을 더 낯설게만 할 뿐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낯선 것은 오히려 나를 더 낯선 것으로 치부해버릴 뿐 어떠한 것도 익숙하게 다가오거나 친숙하게 맞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나란 존재가 이곳에서 더욱 낯설게만 느껴질 뿐이다.
첫댓글 어떤 목적으로 가게 되면 주변 풍경이 오히려 낯설기도 한데
이는 어떤 목적이라는 게 마음의 여유를 빼앗아 가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