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항34회 동기 친구들에게
1977년도 2월에 동항국민학교를 정확하게 졸업한 김태화입니다. 증명할 졸업장과 특히 같이 졸업한 친구들 사진도 다량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어서, 증거로 제출하라고 하면 하겠습니다.
늘 평소에 대한민국 사립학교의 명문 서울 ‘리라’국민학교를 졸업했다고 입버릇처럼 주장했는데, 결코 거짓이고, 아님을 이 자리를 빌려서 분명히 밝힙니다. 그 동안 다소 나의 차별된 시각에서 동항국민학교 34회 친구들을 비하하는 언사는 물론이고, 어깨에 힘주고 껄떡거린 점들이 너무나 많았으나, 여러분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를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학력위조가 얼마나 이 사회에서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키는 지는 현재의 사태를 볼 때, 그 정도를 가늠합니다. 저 또한 그러한 부류의 한 사람으로서 사회의 혼란을 조장하는데 일조를 했다니, 이루 말할 수 없는 통한의 눈물이 흘러 내립니다.
결코 나의 좁은 생각이었습니다. 깊이 반성에 참회를 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34회 동기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를 드립니다.
앞으로는 어느, 어떤 자리를 막론하고,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감만동 모래구찌 길목의 동항국민하교를 나왔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밝힐 것을 이 자리를 통해서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친구들 다들 잘 지내고 있으리라 짐작되는데.
국내는 때 아닌, 삼복 더위를 겪는다는 데, 나로서는 이제야 조금 마음이 풀리네. 늘 내 혼자만이 덥고, 국내는 계절에 따라 산해진미를 즐기고, 특히 소주는 언제든지 마실 수 있어서 배가 많이 아팠는데.. 조금은 보상 받는 기분이 든다. 하~하. 그래도 입추를 넘겼으니 머지않아 곧 선선해 지리라.
현재 내가 있는 곳은 국적은 말레이시아인데, 본토가 아닌 보르네오 섬, 적도 조금 위의, 시부(sibu)라 하는 도시 아닌 도시인데, 인구 10만 정도 내외이고, 하는 일은 국내로 수입되는 목재 중, 원목이 아닌 1차 가공된 제재목을 주문대로 생산되는지 관리해 주는 일입니다. 물론 혼자이고, 늘 한국의 삼겹살과 소주가 그리운 곳으로 1989년 처음 방문한 이래로, 2004년 가을부터는 계속 이곳에 머물고 있다.
그 동안, 이곳의 인터넷 사정이 국내와는 달리, 접속하기가 상당히 힘들었는데, 다행히 신청 3개월 만에 겨우 설치 완료되었는데 날씨에 따라 끊어졌다가 붙었다 하는 현상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다. 국내와 비교하면 환경이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지만, 특히 여기는 작은 도시인지라 더욱 그러하고. 대도시는 양호한 편인데, 그래도 감사한 일이고. 그나마 이 정도만 하더라도 어렵지는 않아서, 이제는 자주 얼굴을 내밀어 보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자주 등교하겠지만 혹시라도 참고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삶이 무료하다든지 아니면 자기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체험을 원하는 친구들은 항공료만 부담해서 이곳으로 들어 오면 기꺼이 내가 받아줄 수 있다. 숙식은 내가 먹는 밥에 숟가락 하나 더 올리면 되고, 잠자리도 여유분 침대가 있다.
단, 가정 불화로 인한 도피처로 이곳을 택한 것은 곤란하고, 차라리 확실하게 갈라선 다음에 일단 연락을 주면 내가 고려해 보겠다.
오늘은 오랜만에 첫 등교인지라 이렇게나마 긴 시간의 공백을 채우고, 앞으로는 자주 등교하도록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