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암 유희춘은 누구인가?
유희춘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자는 인중(仁中), 호는 미암(眉巖)이다. 유희춘은 중종 8년(1513) 해남현에서 아버지 유계린(柳桂隣, 1478~1528)과 어머니 나주 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유희춘은 아버지와 외조부 최부(崔溥, 1454~1504)에게 가학(家學)으로 학문을 전수받고, 최산두(崔山斗, 1483~1536)·김안국(金安國, 1478~1543) 등을 스승으로 섬기면서 학문을 갈고닦았다. 그는 중종 16년(1537)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다음해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 을사사화 때 파직당하고 양재역(良才驛) 벽서 사건에 연루되어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얼마 후 제주도가 유희춘의 고향 해남과 가깝다는 이유로 유배지가 함경도 종성(鍾城)으로 옮겨졌다. 그는 유배를 당하는 곤경에 처한 상황에서도 뜻을 지켜 유배지에서 교육과 저술 활동에 힘썼다.
유배에서 풀려나 서울로 올라간 유희춘은 경연 자리에서 임금에게 유학(儒學)을 강의하고 1571년 전라감사에 제수되었다가 그해 10월 대사헌에 임명된 뒤로 대사성, 대사간,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그 후 유희춘은 사화로 희생된 사람들의 신원을 회복시키는 일에 참여하였으며, 선조의 명을 받아 『국조유선록(國朝儒先錄)』을 편찬하였다. 그의 저술로 『역대요록』, 『속몽구』가 전해진다.
실록 참고자료가 된 폭넓고 자세한 기록
『미암일기』는 유희춘이 55세가 되던 명종 22년(1567) 10월 1일부터 세상을 떠나기 보름 전까지 약 10년에 걸쳐 쓴 일기로 11책이 전해지고 있다. 일기에 모든 일자가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된 것은 아니고 간략하게 기록하거나 기록하지 않은 일자도 있다. 모든 일자가 기록되었다면 조선시대 한 선비의 생활상을 더욱 자세하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전해지는 11책 가운데 1책은 미암 유희춘과 그의 부인 홍주 송씨 송덕봉(宋德峯)의 시문(詩文)을 모아서 필사한 책이다.
두 사람의 작품을 모아 책으로 엮을 만큼 부인 송덕봉도 여류 문인으로서 뛰어난 문장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일기에 기록되지 못한 일자를 채워 주는 자료가 있으니 바로 유희춘의 문집인 『미암집(眉巖集)』이다. 『미암집』 권5~14는 ‘일기’라는 제목으로 『미암일기』의 전반적인 내용을 편집하여 수록하였고, 권15~18은 ‘경연일기(經筵日記)’라는 제목으로 유희춘이 조정에 나아가 주로 경연활동을 한 내용을 편집하여 수록하였다. 『미암일기』와 『미암집』에 수록된 내용을 비교해 보면, 1574년부터 1577년 까지 모든 일자가 기록된 것은 아니지만 일기에 빠진 날을 문집에서는 확인할 수 있어 유희춘의 삶을 더욱 자세히 알 수 있다.
『미암일기』와 『미암집』에는 유희춘의 개인 일상뿐만 아니라 집안의 대소사, 가계의 수입과 지출, 천문과 날씨 등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몇 가지 기록을 살펴보자.
- 19년간의 유배에서 풀려났지만 고향에 들르지 못하고 상경했다.
- 장기(將棋)에 팔려서 글 읽기를 게을리했다.
- 노비들이 광흥창에 나라에서 주는 녹봉 쌀 8섬, 콩 7섬, 명주 2필 , 삼베 3필을 받아 왔다. 중국에서 사신이 온다고 쌀 1섬을 감했다.
- 녹봉은 먹고살기에 부족하다.
- 허준을 위해 이조판서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의원으로 천거해 준 것이다.
- 기근이 들어 많은 백성이 굶어 죽었다.
- 나는 냉수로 목욕을 했다. 재계를 하기 위해서이다.
- 경연장에서 임금이 내린 술을 마시고 선비들이 술에 취해 비틀댔다.
그 외에도 부인 송덕봉이 유배된 유희춘을 조곤조곤 타이르는 시, 부부의 건강을 염려하여 질병의 증상이 보일 때마다 증세를 일일이 기록한 내용, 가족이 꾼 꿈을 매번 기록하고 길몽인지 흉몽인지 점친 내용, 첩(妾)이 낳은 딸들을 좋은 데 혼인시키려고 애쓴 내용 등 아내 송덕봉과 자식들과 관련한 내용뿐만 아니라, 주변인물과 주고받은 생선, 젓갈 등 물품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16세기 한 선비의 생애를 낱낱이 살펴볼 수 있다.
『미암일기』는 국정부터 개인의 세세한 사실까지 기록되었기 때문에 임진왜란으로 불타 버린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등의 자료를 대신하여 율곡 이이의 『경연일기(經筵日記)』와 함께 『선조실록(宣祖實錄)』 첫 10년을 집필하는 데 참고 자료로 활용되었다. 또한 16세기 조선시대 선비의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각 관서의 기능과 관리의 내면, 사회, 경제, 문화, 풍속 등을 자세하게 보여주므로 『미암일기』는 역사학, 문학, 의학, 서지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주제의 연구 대상으로 활용되는 귀중한 자료이다. 『미암일기』처럼 지금 쓰는 나의 일기가 먼 훗날 중요한 역사자료로 활용될 수 있으니 2023년 새해를 맞이하여 일기 쓰기로 나의 일상을 기록으로 남겨보는 것은 어떨까.
글, 사진. 신관호(국립문화재연구원 미술문화재연구실 연구원)
[문화재청, 문화재사랑. 2023-02월 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