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의 광란으로 오늘 하루는 완전 어긋나버렸다.
그러나 누굴 원망하랴. 말리카와 우리는 자타공인 충무로 맥주 삼인방이 아니었던가.
여행기간중 한번쯤은 예상했던 일.
다만 일요일에만 여는 사마르칸드 일요새벽시장을 다녀오지 못한 건 못내 아쉬울 것 같다.
운남의 따리에서 밤새 4차 5차 술마시고 새벽에 넘버4게스트하우스의 초인종을 눌렀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말리카와 우리 그렇게 삼인방이었지.
쓰린 속을 달랠 겨를도 없이 첫버스를 타고 리장으로 떠나는 일정을 잘 소화해 낼 수 있던 건 젊음때문이잖아.
이번엔 아무도 일어나지 못했다.
정오, 딜쇼다 주인아주머니가 하루 더 묵을거냐며 문을 두드릴 때까지 시체놀이를 하고 있었다.
"네~"오늘 하루 없는 셈치고 하루 푹 쉬고 싶기도 했지만 고생스럽더라도 부하라로 가서 쉬기로 하고 정신을 차렸다.
정신은 차렸으나 속은 못차리겠네. 웩웩
새로 온 손님들로 좁은 마당이 꽉 차 있다.
우리가 떠난다는 소리에 급 방긋해진 아주머니, 어젯밤 일을 맘에 두고 계신 건 아니시죠?
아쉬운 포옹을 뒤로하고 김선생님댁으로 향했다.
어젯밤 추태 아닌 광란의 몸짓을 기억하고 계시진 않으시죠 선생님?
우리보다 먼저 기억이 없으시다는 말만 믿고 또 신세집니다.
우리들 온다는 소리에 카레에 속풀이 된장국에 갖은 반찬까지..
저희는 더이상 받을 감동도 없다구요. 어제도 쏘시고 오늘은
밥상까지 차려주시니 이 은혜는 서울서 꼭 갚아드릴게요 엉엉.
부하라는 저녁에 출발하기로 하고 사마르칸드 유적지를 몇군데 더 가보기로 했다.
일요시장은 못갔지만 상설 바자르라도 가보자.
하늘의 구름이 범상치 않더니 한두방울 비가 내린다.
건조한 사막기후의 우즈벡에서 유일하게 빗방울을 볼 수 있는 사마르칸드.
우즈벡엔 비가 땅에 닿기도 전에 하늘에서 말라버리는 마른비가 온다는데 이곳에서 몇방울이라도 비를 만나다니,
유달리 푸른 도시인 이유가 날씨에 있는가 보다.
사마르칸드에 허락된 시간은 이제 겨우 몇시간.
뜨끈한 논이 나오는 빵공장도, 뽕나무를 이용해서 종이를 만드는 종이공방도,
포도가 유명한 이곳의 와인공장도 못가보고 떠날 시간이 아쉬워 시계만 보고 있다.
레기스탄 광장을 끼고 돌아가니 거대한 푸른 돔이 눈에 띈다.
가장 높은 귀부인이란 뜻의 비비하눔사원.
세상에서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사원을 만들고자 했던 티무르가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으로
건축과 문화예술에 유독 관심이 많았던 티무르는 원정을 나간 도시의 예술가, 건축가, 명공들을 잡아와
가장 아름다운 푸른 돔의 사원을 만들었으니 그게 바로 비비하눔이다.
비비하눔사원에 얽힌 전설이 있다. 티무르의 9명 아내중 가장 사랑했던 왕비가 비비하눔이다.
티무르가 원정 나가 있는 사이에 사원을 짓던 젊은 건축가가 왕비에게 반해 사랑을 고백하고,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왕비에게 자신을 받아줄 때까지 건축을 중단하겠다고 협박하였다.
단한번의 키스를 허락했던 왕비는 뺨에 붉은 반점을 남기고 이 사실을 알게 된 티무르는
건축가를 죽이고 왕비를 모스크의 첨탑에서 내던져 죽였다고 한다.
그리고 여자들의 얼굴에 검은 베일을 씌워 남자들을 유혹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에메랄드 빛 푸른 돔이 억울한 왕비이야기로 슬프게 보인다.
비비하눔사원의 마당에는 대형 대리석 설교대가 있다.
설교대밑을 세번 기어다니면 아기를 가질 수 있다는데 사람들이 돌길래 나도 돌았다. 기라는데 왜 도는건지...
비비하눔 사원
세계에서 가장 큰 코란 받침대라고 하는데...
코란 받침대 아래를 기어다녀야 아이를 갖는다는데... 왜 도니?
둥글지 않은 각이 진 미나렛이 독특한 비비하눔사원.
폐허가 된 그 모습에서 역사를 느낀다.
비비하눔의 거대한 푸른 돔, 이곳에 얽힌 전설을 들어서인지 아름답지만 슬퍼보인다.
거대한 사원이 만들어주는 그림자는 여행자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휴식처가 된다.
아틀라스를 입은 비비하눔과 판초를 입은 아미르티무르(장사꾼 왈~로미오와 줄리엣이요~)
낡은 코란 팔아요~
사원에서 나와 시압 바자르로 간다.
과일, 견과류, 향료, 곡물, 고려인 반찬등을 팔고 있는 여느 시장과 다름없는 활기찬 곳이다.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람에 시장안쪽으로 밀려들어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한가득 논을 쌓아놓고 팔던 아낙네에겐 속수무책이다.
하지만 잠시 순간의 폭풍(?)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진다. 겨우 1,2분 동안 일어난 난장.
예쁘장한 쌀파는 청년과 눈이 마주친다. 우리를 보더니 주섬 주섬 꺼내 보여주는 노트.
깨알같은 가나다라가 빼곡하다. 두달후면 한국에 간다고 틈틈히 한국어 공부중이란다.
우릴 반가와 하는 청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비자는 나왔니?" "아뇨 신청했어요"
"행운을 빌어요" 말리카는 쓸쓸한 표정을 짓는다.
한국 비자를 신청한 사람은 무수히 많지만 대부분 거절당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비자를 신청해놓고 한국간다고 자랑했지만 나와봐야 안다고 한다.
그 청년 역시 두달후에도 쌀을 팔고 있을 확률이 더 높을거라고.
그리고 한국 가서 돈많이 벌어 오고 싶은 청년의 미래에 한국이 희망을 줄 수 있을지 그것 또한 의심스럽다.
한국에 오더라도 상처받지 말고 한국에 대한 좋은 기억으로 청년의 희망적인 삶이 살아지길 바란다.
시장은 사람들의 삶을 보듬어 볼 수 있어서 참 좋다.
시압 바자르 앞에 길게 늘어선 논을 파는 사람들... "사마르칸드 논 사세요"
우리나라 타래과같은 우즈벡의 꽈서 만든 전통 과자
사과 맛이 끝내줘요~
각종 향료도 팔구요
고려인 반찬도 팝니다.
저 두달후면 한국가요~
잘썼죠?
논을 만드는 빵공장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공장에서 갓 나온 따끈한 논을 하나 샀다.
논은 식은 대로도 맛이 있지만 따끈한 논은 짭짤하고 쫄깃쫄깃 구수한 맛이 자꾸 손이 가게 한다.
길거리에 뜯어 먹고 다니면 사람들이 참 신기한 듯 쳐다본다.
길에서는 안먹는 음식인가? 아니면 예의? 말리카가 그런 소리는 없었는데....
어젯밤에 김선생님댁에서 축낸 와인을 메꿔드리느라 와인숍에서 두병을 샀다.
한병은 말리카집에서 분위기 잡을 때 쓸것이다.
토카이 와인 가격이 1800숨(원화로 1500원정도)이다.
사마르칸드의 유명한 와인치고도 참 착한 가격이다.
달콤한 포도향이 가볍게 마시기에 딱인 와인이다.
논 하나 사고
청포도도 삽니다
토카이 와인과 논, 청포도는 부하라로 가는 길동무
가는길에 배곯지 말라고 또 한상 차려주시는 김선생님. 이 은혜 꼭 서울에서 갚겠습니다.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부하라로 출발한다.
부하라행 택시들이 모여있는 '파바로'. 3명이 택시하나를 대절하면 4명분의 돈을 내야한다.
아니면 한사람을 태울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하는 장거리 택시.
10만숨에 4인분을 내고 협상했지만 중간에 사람을 합승하는 바람에 7만5천숨에 부하라까지 내달렸다.
우즈벡의 기사님 아니랄까봐 역시나 밟으신다. 130~140킬러가 평균속도인 모양이다.
모든 일엔 참 여유로운 사람들인데 어찌하여 운전엔 왜그리 과속으로 조급하신건지...
기사님! 안전운전 부탁드려요~
3시간 30분 걸려 부하라 말리카 집에 도착했다.
아니~ 여긴 오성급호텔. 녀석 이렇게 잘 살고 있었던거야?
아직 우즈벡 여정이 많이 남아있는데 집에 온듯 긴장이 풀어진다.
사마르칸드의 대중교통 마르슈트카. 사마르칸드는 다마스가 접수했다.
앉아있는 아미르 티무르 동상
부하라로 가는 길... 실크로드 길을 따라 서쪽으로 서쪽으로 향하고 있다.
글쓴이:라온과 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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