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수필론
수필과 미학
배 화 열
문학을 창작하거나 감상하는 사람은 미학도이다. 자신이 그것을 느끼든 느끼지 않든 미학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문학이란 예술의 일종으로서 미의식이 없이는 창작도 감상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미학이란 말을 들으면 갑자기 얼어붙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미학은 철학과에서 학습하는 철학의 일종으로 생각하고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어서이다.
다시 말하면 어차피 문학 창작에 뜻을 두고 있는 작가 혹은 작가 지망생이라도 미학과는 함께 생활하고 있다. 미학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반대하더라도 그것은 미학을 몰라서 그런 대답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문학도들은 어차피 미학에 살고 미학에 죽는 것이다. 그만큼 미학은 우리와 가까이하고 생활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른 체하고 눈감고 살아온 때문이다. 즉 누군가가 작가를 보고 미학도라고 하면 깜짝 놀라면서 아니라고 손을 저을 것이다. 그만큼 미학이란 학문이 우리를 속여 왔다고도 볼 수가 있다.
가톨릭 교사들의 모임이 있었을 때 옆자리에 앉은 미술교사에게 미학에 대해서 물었다. 그분의 대답이 미학은 철학이므로 어렵다고 말하였다. 왜 미술교사에게 물었는가 하면, 일반적으로 미학이라고 하면 미술과와 관련된 학문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술과에서 미학을 강의한다. 필자는 문학도이다. 따라서 미학을 독학으로 학습하였기에 체계적인 미학의 전개가 다소 어렵다. 그러나 문학도로서 수필을 쓴다는 자체가 미학도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미학을 멀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바로 미학 덕분에 수필이 창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장르의 문학도들도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미학을 체계적으로 학습한 것은 대학에서 후배들이 ‘미학사’(by 비어질리)를 배우고 있다고 해서였다. 그 이전에 미학에 대하여는 철학도들이 배웠던 하르트만의 『미학』을 빌려다가 읽어 두었다. 그러나 미학의 방대한 체계에 대하여 조금의 맛만 보았을 따름이다. 다만 미학이라면 대학 강단에서 강의한 평론 시간에 약간 들은 것뿐이었다. 이제 돌아보니 그 당시 미학들의 내용은 오늘날 타타르키부츠의 『미학사』에 나타난 일부를 소개한 정도로 미미한 내용이었다고 생각된다.
한두 권의 미학 책을 사 둔 것이 이제 제법 책꽂이에서 두 칸을 차지하고 있다. 아울러 철학서도 항상 함께 학습하기 위해서 정리해 두고 있다. 이제는 미학 이전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그만큼 미학에 대한 집념이 있기 때문이다. 수필창작은 미의식을 가지고 써 온 것이다. 다만 미의식에서 조금 더 보탠다면 미학의 어원과 미적 개념 간의 개념상의 연결을 알아 두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미학은 깊이 있게 연구하려면 철학과 연결하여야 한다. 그러나 문학도로서 알아야 할 미학은 몇 가지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필자도 미학의 미적 개념은 이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을 뿐임을 밝혀 둔다.
미학을 학습하려고 하면 철학 이외에도 인류학과 심리학을 어느 정도 상식으로 알아 두면 편리하다. 그리고 미술과 음악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의 상식은 갖추어야 쉽게 미학을 이해할 수가 있다. 예를 들면 진중권의 『미학 오딧세이』에서도 미술 분야의 에셔(뫼비우스의 띠)와 함께 미철학자들을 해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미술과 음악에 대하여는 문외한이다. 그러나 철학 사상이나 인류학과 프로이드 심리학은 여러 권을 섭렵하였으나 조금은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예를 들면 철학에는 플라톤의 『대화록』과 『공화국』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과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시학』을 읽어 두면 좋겠다. 중세의 아퀴나스와 근세의 데카르트나 베이컨의 철학도 중요하다. 그리고 칸트의 삼 비판서도 읽을 수 있으면 읽어 두면 편리하다. 현대의 철학자들에 대하여도 한길사의 책들이 철학으로 인도한다. 인류학은 『황금의 가지』를 비롯한 현대의 많은 인류학자들의 책을 학습할 필요가 있다. 심리학은 프로이드의 전집 20권이 마치 소설과 같이 재미있다. 마치 파브르 『곤충기』는 과학책이라기보다는 소설이었듯이.
미학이라면 실제로 칸트 이후가 중요하다. 그의 『판단력 비판』은 다른 비판서와 함께 삼 비판서로서의 인식론적인 역할이 더 중요하다. 즉 철학 속의 미학이지, 미학만 따로 언급한 내용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필자는 미학이 칸트보다는 헤겔 이후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칸트 이전에 나타난 사상가들도 칸트처럼 미학을 철학 속에서 언급하였다. 칸트나 헤겔의 입장은 관조 미의식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미학에서 중요한 저서이다. 창작 미의식을 일깨워 준 책이다.
미학에 대한 사상가 중에서 헤겔은 『미학』에서 5가지 미학의 대상을 이야기하였다. 즉 미술과 음악과 건축과 조각과 문학의 5가지이다. 헤겔은 이 5가지 중에서 문학을 가장 중요한 미적 대상으로 보았다. 문학 중에서 극시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삼았다. 그 당시만 해도 소설은 천한 문학으로 보았던 시대에 살았기 때문이다. 마치 한글을 언문이라 하고 멸시하던 때가 있었듯이.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대상이 소설이다. 요사이는 영화예술이 나타나서 다른 예술보다 중요한 장르로 보고 있지만, 여전히 소설문학의 위치가 덜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다. 소설은 사실주의(realism)와 관련된다. 문예사조에서 보면 고전주의 낭만주의 자연주의 사실주의 그리고 인상주의나 초현실주의로 발전하고 있다.
미학이란 용어의 시작은 18세기 독일의 바움가르텐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당시에 칸트는 미학을 취미라고 하였다. 미학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미 예술 미적이란 말 중에서 미적이란 말이 가장 광범위한 개념이다. 얼른 생각하면 예술이라고 하기 쉽다. 미적이란 말에서 우리는 미적 대상, 미적 유형, 미적 태도, 미적 경험 등 많은 미적 개념을 만나게 된다.
미학을 일으킨 고대 미학자들이 많다. 그들의 저서도 너무나 많다. 따라서 미학을 학습하기 위해서는 미학자들의 고견을 잘 청취하여야 한다. 특히 플라톤은 미에 대한 개념을 선미라고 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선미란 아름다운 것이 선한 것이라고 하여 선과 미를 한 묶음으로 본 것이다. 플라톤이 미에 관해서 말할 때, 여러 권의 저서에서 말하였지만, 특히 『공화국』에서 시인 추방론이 나오고부터 문학을 공격한 사람으로 삼고 있다.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보듯이 문학 옹호론을 펴고 있다. 특히 카타르시스의 개념은 오늘날까지 중요한 문학의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나타나게 한 문학이 서사시이다. 호머의 「일리어드」와 「오딧세이」 그리고 그 후의 3대 비극시인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가 있다. 그리고 아리스토파네스를 비롯한 희극시인들의 역할은 근대의 셰익스피어를 탄생하게 한 원동력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에 플로티노스라는 중요한 철학자가 나타난다. 그는 플라톤의 두 세계인 이데아와 감각의 세계를 하나의 세계인 빛의 유출로 통합한다. 이는 중세예술의 미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의 교부철학에서도 중요한 개념을 제공하였다. 즉 신의 개념을 플로티노스의 개념으로 끌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많은 철학자의 미학사상은 오늘날의 미학을 살찌게 하였으나, 구체적인 미학 연구에는 많은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미적 개념도 오늘날 너무 많이 나타나고 있으나, 필자처럼 미적 개념이라고 하나로 통합하지를 못하고 있으며, 게다가 미적 체계에 들어가면 미적 체계란 말조차 없다. 따라서 필자의 『독서미학』은 미를 추출하는 미적 장치로서 중요한 미적 체계인데도 아직 널리 알려지고 있지 않다. 즉 미적 개념에는 미적 대상(자연미 인체미 예술미)과 미적 태도와 미적 경험과 미적 유형과 미적 판단 등이 있다.
미적 개념 중에서 미적 판단에도 미적 범주(혹은 미적 유형)가 있다. M. 데스와르는 원으로 6가지 미적 유형을 나타내었다. 미와 우미와 희극성과 추와 비극성과 숭고미이다. 이 중에서 롱기누스가 제시한 숭고미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숭고미는 예술보다 자연에서 더 잘 알아볼 수가 있다. 미국의 그랜드 캐년과 남아공화국의 빅토리아 폭포 등 세계 8대 관광지는 바로 숭고미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숭고미가 문학에서 나타날 때는 이순신의 <한산섬 달 밝은 밤에>처럼 애국심을 자아내는 주제나 어머니의 숭고한 모성애를 나타낼 때 쓰이며, 주로 지극한 효성과 관련된 주제는 숭고미를 나타내며, 다른 미적 유형들은 숭고미에서 태어난 새끼 미적 유형들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더 많은 미적 유형이 발견되리라 전망된다.
미학은 어원을 잘 알고 미적 개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시작하면 미학의 입문은 끝난 셈이다. 그 정도로 미학은 단순하다. 그렇다면 미학의 어원은 무엇인가. 어원을 알아보기 전에 미학의 의미를 먼저 알아보자. 미학이란 아름다울 미에 학문의 학을 합쳐서 아름다움에 관한 학문(science of beauty)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학(aesthetics)은 그 어원을 보면 느낌(feeling)과 관련이 있다. 즉 느낌(aesthet-, feeling)에 관한 학문(-ics, science)이다. 따라서 미학은 아름다움을 느끼는 학문이다. 그러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만으로 미학이라 할 수가 없다. 미학은 미적 개념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미학은 두 가지를 연구한다. 미적 개념과 미적 체계이다. 미적 개념이란 범위가 대단히 넓다. 그러나 실제로 쓰이는 미적 개념은 그리 많지 않다. 다만 미적 개념끼리의 상관관계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미적 체계는 필자의 졸저 『독서미학』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미를 추출하는 장치를 준비하는 연구이다. 미적 체계가 있으면 예술(문학 포함)에서 미를 추출할 내용과 방법이 있는 것이다.
필자는 문학창작을 하는 작가로서 미학도이다. 두 권의 수필집을 창작하였다. 다만 그 내용이 중수필일 따름이다. 한편 미적 개념에 대한 이해가 불분명하고, 미적 체계를 가지고 미를 도출하는 장치를 만들어 놓았으나 활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므로 『독서미학』에서 보듯이 문학작품에 나타난 미의 미적 유형을 분석하여 정리한 것은 현재로서는 별소용이 없이 되어 버렸다. 또한 카타르시스와 희생양을 문학의 플롯에서 추출하여 문학미학으로 삼은 것도 일단 물 속에 잠겨 버릴 위험에 처해 있다. 따라서 앞으로 미적 개념과 미적 체계를 가진 미학에 대한 더욱 많은 관심이 요구되는 시점에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