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드라망이 57차에 걸친 긴 사찰순례를 이어오는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순례지를 꼽으라면 단연 봉정암이 될 겁니다.
그만큼 가기도 힘들고, 한 번 다녀오면 잊을 수 없는 곳이 설악산 봉정암이지요.
그 곳을 내리 3년 삼 세번을 다녀온 인드라망, 다시 되짚어 봐도 대단한 우리들입니다.
오늘 출석부는 2010년 6월, 첫번째 봉정암 순례기 중 1편입니다.
그날의 여정을 차례대로 그려놓은 글과 사진입니다.
출발에서부터 봉정암 도착까지의 기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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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암은 가보셨나요? /인드라망 제20차 사찰순례기 ①
"봉정암은 가보셨나요?"
불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흔히 듣게 되는 이야기이다.
불자들에게 있어 봉정암은 어떤 의미일까?
불자라면 누구든 그곳을 가고싶어 한다.
불심이 그토록 봉정암을 향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녀 온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대답은 한결같다.
"가 보면 알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봉정암을 간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뇌사리를 봉안했다는 그 곳,
짧게는 몇 년 전부터, 길게는 십수 년 전부터 참배의 원을 세웠던 그곳을 향해 인드라망 순례단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제20차 사찰순례 길에 오르게 된다.
불기 2554년 6월 12일 토요일, 음력으로는 오월 초하루이다.
이 날의 원만한 순례를 위해 인드라망에서는 지난 한 달 동안 합동기도를 올렸다.
수행일기란에는 연일 몇 편씩의 수행일기가 올라와 진작부터 봉정암 순례를 위한 정성을 모아왔었다.
-설악산 봉정암 불뇌사리보탑
강원도 인제군 내설악의 기암절벽 아래 자리한 봉정암은 해발 1244미터의 높은 곳이다.
가고 싶어도 쉬이 갈 수가 없다.
무슨 일이든 인연이 닿아야 가능하겠지만 봉정암은 그야말로 인연 있는 사람 만이 참배할 수 있다.
봉정암은 백담사의 부속 암자로 신라 선덕여왕 13년(644)에 자장율사가 중국 당나라 청량산에서 삼칠일(21일)기도를 하고 문수보살로부터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받아 귀국한 후, 이곳에 봉안하고 암자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절을 세울 길지를 찾던 중, 봉황이 나타나자, 이를 상서로이 여긴 자장율사께서는 며칠을 봉황을 따라 다니는데
높은 산봉우리를 선회하던 봉황이 갑자기 바위앞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고 한다.
자세히 살펴보니 바위가 부처님을 꼭 닮아 있었고 봉황이 사라진 곳은 바로 부처님의 이마 정수리 부분이라, 자장율사는 그 바위에 부처님 뇌사리를 봉안한 뒤 탑을 세웠으니 지금의 불뇌사리보탑이다.
鳳頂庵의 사명은 바로 봉황이 부처님 이마로 사라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봉정암은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의 한 곳 이기도 하다.
집을 나서며 하늘을 보니 우리의 순례길을 축복하듯 상서로운 무지개가 걸려 있다.
5시 10분, 막 떠오르는 아침 첫 태양빛이 만든 무지개이다.
한 쪽 뿌리가 무학산에 걸려있는듯 가까이 보인다. 카메라에 온전히 담겨지지가 않을만치 무지개는 크고 영롱하다.
그렇잖아도 설레는 마음이 무지개를 보자 더욱 고무된다.
너무 흥분했던 탓인지 고속도로에서 길을 잘못 내려 다음 인터체인지에서 되돌아오느라 13분이나 지각을 했다.
행여 사고라도 났을까하여 애간장을 태우고 있던 우리 님들을 만나 대구를 출발한 시각이 아침 6시 20분,
그후로는 모든 일정이 참으로 순조로웠다.
-용대리에서 백담사행 셔틀 버스를 기다리며
원주휴게소에서 인천에서 온 인라인님과 한나님을 만나 함께 설악산 용대리에 도착한 시각이 10시 반,
아침을 버스 속에서 김밥 한 줄로 떼운터라 이 곳에서 이른 점심공양을 하고 백담사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사람이 어찌나 많던지, 연방 드나드는 셔틀버스이지만 탈 수 있기까지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백담사 입구
역시 설악이다.
겨우 기슭일 뿐인데도 백담사로 가는 길은 경치가 빼어나다.
바위와 돌이 유난히도 많은 계곡을 따라 올라가며 연이은 봉우리들이 시원시원하다.
셔틀버스로 십여분을 달리자 백담사 앞이다.
백담사는 내려 올 때 참배하기로 하고 바로 봉정암을 향해 출발했다. 12시 20분 경이다.
지금부터 장장 11km의 산길을 걸어야 한다.
-백담사 계곡
크고 작은 돌탑들이 백담사 앞 계곡에 즐비하다.
탑탑안행이라더니 기러기떼 만큼이나 많다.
토요일이라 참배객들도 꽤나 많다.
순례팀장님의 제안에 따라 여기서부터 영시암까지는 순례단 모두 묵언을 하며 걷기로 했다.
계곡물이 아무리 푸르게 유혹해도,
숲이 시원한 향기를 내뿜어도 오감을 열어 느끼되 감탄사는 속으로 삼켜야 했다.
그 마음은 그저 "관세음보살" 염불 속에 실어야 했다.
이 아름다운 경치 앞에서 묵언이라니, 이런 고행도 없다.
설레는 감동을 옆의 법우와 나누고 싶어 가슴이 간질거려 환장하겠더라는 이야기는 내려 오는 길에 우스개 삼아 했지만 모두들 묵언구간이 좋았다고 한다.
백담사를 지나 숲길로 접어들자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배낭 속에 챙겼던 우의를 꺼내입고 관세음을 염하며 묵묵히 산길을 걸었다.
비는 종일 오락가락 했지만 해가 난 것보다 걷기에 훨씬 좋았다.
미역이며 참기름, 통깨, 오이 등 공양물을 챙겨 넣은 배낭이 죄다 볼록하다.
-에메랄드 빛깔의 계곡물
영시암에서부터는 선두와 중간과 후미로 조가 자연스레 나뉘어졌다.
선두조는 대원님이 리드를 하고, 중간조는 순례팀장님이, 내가 속한 후미조는 금강지님이 맡아 수고를 해 주었다.
대원님이 무전기 세 대를 준비해 온 덕분에 서로 원활히 교신을 했고, 서로의 동정을 자세히 알다보니 안심도 되고 힘도 많이 덜 수가 있었다.
-계곡물에서 잠시 휴식 중인 중간조와 후미조
조금 가다 보니 선두조와는 거리가 생겼다.
휴식 장소에서 중간조는 더러 마주쳤지만 선두조는 봉정암에 도착한 한참 뒤에야 만날 수가 있었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 얼마나 절경인지 후미조이지만 해 지기 전에는 닿을것 같아 여유롭게 구경을 했다.
비가 오는 날씨라 운무가 끼어 더욱 장관이다.
나 때문에 덩달아 늦어지는 팀원들께는 죄송했지만 사진을 찍는 동안 휴식을 취하기를 수십번도 더 했다.
체력이 달려 빨리 걷지를 못하니 쉬엄쉬엄 올라갔다.
봉정암 가는 길의 계곡물은 산색이 녹아내린 곱디고운 초록의 에메랄드빛이다.
발을 담궈보니 서늘함이 가슴을 거쳐 머리 끝까지 올라간다.
금방이라도 어느 한 구석이 터질것처럼 후끈대던 몸의 열기가 순식간에 가라앉고 시원해진다.
-중간조와 후미조가 만나 휴식을 취하고..
다시 등산화 끈을 졸라매고 산길을 오른다.
흙길과 바윗길, 나무 계단과 고무계단, 철계단이 번갈아 나타나고,
계곡 이쪽과 저쪽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너기를 몇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숨이 턱에 닿기를 수십번도 더 했는데,
그런데도 깔딱고개는 여지껏 나타나질 않는다.
숨이 깔딱거릴만치 힘들다는 깔딱고개를 또 이렇게 기다리게 될 줄은 몰랐다.
그 고개를 넘어야만 봉정암이 있다니,
끝을 보려면 얼른 깔딱고개를 만나는 길 밖엔 다른 길이 없다.
올라갈수록 힘이야 들거나 말거나 시선이 닿는 곳마다 탄성이 나온다.
저 신묘하고 웅장한 기운들을 다 모은 설악의 정상, 그 자리에 봉정암 불뇌사리보탑이 서 있다니
얼마나 장엄스러울지 작게나마 짐작이 간다.
이 깊은 계곡과 높은 준령들이 우러르는 그곳이 바로 불뇌사리보탑이다.
후미조가 2/3 지점도 못갔을 때쯤 무전기를 통해 선두조에서 알리는 낭랑한 낭보,
봉정암에 벌써 도착했단다.
중간조에서는 "축하합니다~"하는 소리가 들렸고,
후미조에서는 "아이고~"하는 탄식이 터졌다.
백담사를 출발한지 3시간 30분만이다.
종무소에 들러 우리가 예약한 방사를 지정받았다며 호실을 알려왔고
오후 시간이 넉넉해 그동안 선두조에서는 대청봉을 다녀오겠다고 한다.
선두조에 속한 분들의 명단을 알려 주고는 덧붙인 대원님의 한 마디가 또 괜찮다.
"깔딱고개 하나도 힘 안 듭니다."
한창 힘들게 올라가며 들었던 소리라 반신반의이다.
그렇지만 믿고 싶다. 힘 하나도 안 드는 깔딱고개 일거라고...^^*
아, 부러워라. 선두조~
이때부터는 고갯길이 조금만 가팔라도 깔딱고개인 줄 알았다.
"여기가 깔딱고개라예?" 라는 질문을 서너 번은 한 것 같다.
계곡물 소리가 끊어져야 깔딱고개가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던 게 그제야 생각난다.
아직도 들린다, 계곡물 소리가...
아, 저곳이다!
눈을 들어 위를 본 순간 저절로 알게 되는 깔딱고개인데 그렇게 궁금해 했으니...
내리는 비로 인해 모자를 눌러쓰고 앞만 보며 가다 쉬다를 하다보니
어느 순간 깔딱 고개 앞에 내가 서 있다.
앞서 가는 분들이 아닌게 아니라 손과 다리를 이용해 기다시피 한다.
비가 다시 쏟아지고 있던 때라 바윗길은 더욱 미끄러웠다.
깔딱고개를 오르는 동안도 몇 번을 쉬었다.
심장은 쿵쾅대고 무릎은 잘 꺾어지지가 않는다.
헉헉대며 올라가다가도 쉬는 동안 뒤돌아보면 저런 풍경이 있다.
안전한 곳에 기대어 깊은 심호흡을 하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든다.
자장율사께서는 왜 하필이면 이 높은 곳에다 불뇌사리를 모셨을까.
아마도 존귀한 분을 향한 상향심을 다져주기 위함일까 싶기도 하고,
한 번 다녀가면 신심이 더욱 견고해 질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가행정진을 독려한 장치인가 싶기도 하다.
저 높은 위로 올라가되 몸을 낮추고 머리를 숙이지 않으면 한 발짝도 더는 나아갈 수 없는 길이 깔딱고개이고 봉정암 가는 길이다.
끝없는 낮춤 만이 내 안의 그 분을 만나는 길이 된다.
하늘이 훤하게 보이는 저기 깔딱고개를 다 올랐나 했더니 모퉁이를 돌자 다시 오르막이다.
실망할 필요는 없다.
보이진 않지만 저 숲 어딘 가에 봉정암이 있을거란 느낌이 온다.
역시 그랬다.
봉정암이다.
절벽 아래에 봉정암이 있다.
초록 숲에 둘러 쌓인 채 비에 젖고 있는 봉정암은 멀리서 보기엔 조용해 보인다.
-봉정암
입구로 들어서자 앞선 팀들이 마중을 나와 있다. 백담사에서부터 무려 5시간이 지난 뒤였다.
선두조와는 1시간 반이나 차이가 났다.
미리 배정받은 방사에 배낭을 내려놓고 비에 젖은 옷을 새옷으로 갈아 입은 뒤, 공양물을 챙겨 들고 큰법당으로 갔다.
우선은 삼배로 인사만 드리고 물러났다.
그리고 평등심 회장님과 함께 종무소에 들러 인드라망 이름으로 일년 등 공양을 올렸다.
방으로 돌아와 배낭 정리를 하고 있자니 어느새 저녁 공양시간이다.
-다음 카페 인드라망 회원 일동, 일 년 동안 봉정암 법당을 밝힐 인드라망 등공양
-인드라망 거사님 방사, 사진촬영: 심해님, 숫자 써진 한 칸에 한 사람씩 누워서 자게 된다.
봉정암 방사의 칸 수는 도합 960개, 이날은 예약이 벌써 마감되어 자리가 없는 분이 많았다. 천 명이 넘는 불자들이 함께 했다.
순례 공지글을 올리면서 순례팀장님이 공양물로 쌀과 오이와 미역, 소금, 참기름, 통깨를 가져오라 했는데 그 답이 저기 한 그릇에 다 들어있다.
봉정암의 밥은 참 특이했다. 미역국에다 밥을 말아 그 위에 오이무침 몇 조각을 얹어 준다.
국밥이 참 뜨거웠다. 뜨거운 걸 유난히도 못 먹는 사람이지만 맛있게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는 설거지까지 마치고 방사로 돌아왔다.
세면장에 가 보니 물이 안 나온다.
식수를 한 병 담아가서 양치질만 겨우 마쳤다.
-봉정암 종무소 뜰에서 올려다 본 불뇌사리탑, 산등성 나무와 나란히 서 있다. 풍경이 보인다.
-봉정암 순례기 ①편-
@가을소나타 힘들때는 밥맛이 없읍니다
사랑은 관심 입니다
일본친구들 우리집 1박할때
맛보이겟다고 남겨둔 감홍사과라면 몰라도 ㅎ
수향님 드시고싶은거 드시면
그것이 보약이니
사 달라하시고
얼릉 회복 되시길 바랍니다
울집 오식이님은 요즘 회식도 뜸해요. ㅎㅎ
밥 차릴래, 계추 가면 데릴러 올래? 하면 저는 데릴러 간다 쪽입니다. ^^
출석글 보고
종일 일이 잘 풀림
인드라망 그늘입니다
얼마전
용대리 백담사
주차장 입구
4기 선고받은 동기생 컨디션 좋을때 동행하여 펜션 일박하고
신흥사 .케이블카
바람쐬어줄때
봉정암 생각 나든데
오늘 출섴부 1을보고
서울 업자.
서울 쟁이카톡에
강원지역 As 연락주마
반값에 도와주겟읍니다
올려읍니다
잘 되야 될텐데
도랑치고 가제잡구로
내일 한파가 제일로 세답니다
단도리 잘 하입시다
좋은일 있으셨다니 같이 기분좋습니다.
뭐든 뜻하시는 대로 술술 잘 풀리길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