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우린 악연이 아닌
좋은 인연이었겠지.
네 나이 28세
2021년 9월 추석이었지
혀에 무언가 돋아서
음식을 씹기가 힘들다고...
병원 가기 싫었을 텐데,
가까운 약국에서 약 한 알 사 먹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들은 스스로 가까운 동네 이비인후과에 갔었지
한 달여 처방해 준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어 조직검사를 했었지
당시엔 별일 없겠지 했는데
검사결과는 설암이라고 통보를 받았었지
많이 놀랐을 텐데
아빠에게 덤덤하게 말하는 너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차라리 일찍 발견되어 괜찮을 거라고
도리어 아빠를 위로했으니...
급하게 큰 병원으로 가서 다시 조직검사하고
조기 발견해서 수술하면 괜찮을 거라는 의사 선생님말에 따라
수술일정 잡고
1.2시간이면 된다던 수술이...
대기실에 있던 보호자를 부를 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단다.
그래도
조금 늦게 회복실을 나왔지만
진심으로 하늘에 감사했단다. 살아 있다는 것에...
혀를 부분절제하는 수술이라
회복실을 나와
일반병실로 돌아와서도 3.4일은 아무것도 먹지를 못했었지
그러다 나온
미음을 보고 넌 너무나도 반가워했었지
퇴원하기 하루 전..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는 아들을 데리고 병원 지하에 있는 아이스크림 전문점에 들러
제일 작은 것 하나를 앞에 두고 환히 웃으며 맛나게 먹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구나.
퇴원하고 맞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은
아빠에게 있어서
또 다른 희망의 새로움이었단다.
혹시라도 있을
전이의 가능성 때문에 방사선 치료를 예약하고 치료받으면서
평상시와 다름없이 생활하는 아들을 보면서
마음의 조바심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지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했었지
어느 토요일 오후
식사 후
갑자기 화장실로 가서는 피를 토하는 널 차에 태워서 응급실로 달려가기도 했었지
여름에 접어들던 5.6월이 지나면서
밥을 삼키기 힘들어하는 넌
죽과 미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지.
요양병원에라도 입원하여 관리를 받자고 했더니
넌 죽어라고 싫어했었지
그러던 어느 날
아들 입에서 먼저
요양병원에 입원 좀 시켜달라고 했었지
얼마나 힘들었으면..
부랴부랴 다니던 병원 옆 요양병원에 입원시키고
나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랐단다.
병원에서 하지 않는 자연치료를 겸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에..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구나
방사선 치료가 끝난 지 3개월쯤 외래진료를 다니며 추적 관찰을 하는데
CT검사에 작은 혹이 보인다고 조직검사를 했었지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도 상태가 좋지 않아 늦은 시간 응급실에 싣려 갔을 때에는..
아빠가 잠에 취해서
아들의 연락도 받지 못하고
새벽에 눈을 떠서야
그 사실을 알았을 땐
나 자신이 얼마나 미웠던지..
아들의 얼굴을 마주하기가 너무나 미안했었단다.
22년 8월
외래 진료가 있어 병원에 가니
조직검사 결과는 염증이라고..
하지만,
의사 선생님의 경험으로는 염증이 아니라 재발한 것 같다고
응급으로 입원하라고...
급하게 요양병원 퇴원신청하고
다니던 병원에 입원 수속을 했었지
코로나 상황이라
검사하고 결과가 늦게나와
한참 늦은 시간에
둘이서 입원실로 향할 수 있었었지.
아들은 너무 힘들어하는데
코로나 검사결과는 빨리 나오지 않고..
내 어깨에 기대어 축 늘어진 아들의 모습을 볼 때에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단다.
항암을 해도
신약을 써봐도
면역치료를 해봐도
전혀 효과가 없다는 의료진의 말에도
내가 옆에서 돌봐줄 처지가 되지 못해 (외벌이라 생업을 놓을 수도 없는 상황)
간병인을 구해 맡겨놓은지 2개월쯤 지났을 무렵
혀는 자꾸만 부풀어 올라 입안을 가득 채우고
물도 그 어떤 음식도
아무것도 먹지 못하기에
콧줄을 연결해 놓았는데(경관식이를 위해)
아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뽑았었지.
각종 주사줄도...(수액. 항생제. 진통제. 영양제등..)
얼마나 힘들고 아프고 고통스러웠으면...
암덩어리가 커지면서 호흡을 막을 수도 있다고 기관절개술도 하고(호흡을 위해서)
수액을 꽂을 혈관에 빈자리가 없어 혈관시술까지도 했었지만
넌 그마저도 뽑아 버렸지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병원에서 전화가 왔었단다.
통제가 되지 않아 보호자가 있어야 되겠다고..
더 이상 이것저것 생각은 무의미했었단다.
가게에는 휴업 푯말을 걸어놓고
간병을 위한 간단한 준비물을 챙겨 병원으로 들어갔었지
간병을 하는 3개월 동안
아들과 난 많이도 부딪혔지.
3.4번의 응급 상황도 있었지만
우리는 잘 될 거라는 희망을 가슴에 품고 견디고 있었지
조금이나마 아들의 아픔과 고통을 덜어 준다고 하는 나의 행동들이
아들에게는 더 힘들게 했던 모양이지만..
먹지도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는 아들옆에서
한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었던 아빠는
음식냄새를 풍기면서 배를 채우고 있었으니
아들은 날 얼마나 원망했을까.
그래도 떠나보내기 한 달 전까지는
현실과 섬망 속에서도
문자로서
조금씩의 대화는 가능했었는데,
휴대폰을 들고 있는 것조차 힘들어했으니...
아들은
나만 보면 집에 가자고 했었지
다 나았다고
혼자서 다 잘할 수 있다고
집에 가고 싶다고
그런 아들을 볼 때에는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게 미쳐버릴 것만 같았단다.
입안을 가득 채운 부풀 대로 부푼 혀와
터질듯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얼굴
살은 빠져 앙상한 뼈밖에 없는 팔다리를 보면서도
아들을 포기할 수가 없었단다.
결국에는 혀도, 얼굴도
괴사 하기 시작하면서
차마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렀어도...
의사진은 생존 확률 0%라는데
그래도
아빠는 1%의 희망이라도 기대했건만
부질없는 아빠의 욕심으로 널 힘들게만 했었구나.
1%의 희망을 기대하며 연명포기신청서에 서명을 하지 않았건만
더 이상 시시때때로 피를 쏟는 널 보면서
내 욕심으로 아들을 더욱더 힘들게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연명포기신청서에 서명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단다.
절대 아들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맹세했건만.
아들도
알았던 모양인지
당일을 넘기지 못하고
가장 춥던 1월에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나고 말았구나
사랑한다고
사랑했다고
잊지 않겠다고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했는데...
따스한 피가 식지도 않았는데
영안실로 가야 했으니
살려달라고
금방이라도 아빠하고 손을 내밀 것만 같은데
아들을 그렇게 떠나보내고 말았구나
미안해 진짜 미안해
너와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잊지 않을게 아들♡♡♡
착하디 착한 사랑스러운 아들♡♡♡
다시 태어난다면 이런 악연으로는 만나지 말자.
사랑해 아들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많이 많이 사랑해
(49재를 지내고...)
ps: 병원까지 오셔서 재능기부해 주신 블랑헤어 미용실( 대구 매천동 소재) 원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꾸뻑
(입원해 있는 동안 외출이 허락되지 않아 머리카락을 자를 수 없었던 저희의 사정을 아시고는
영업을 마치고 늦은 시간에 병원까지 오셔서 터벅 머리 아들의 머리카락을 단정하고 예쁘게 잘라주셨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한 분 한 분께 따로 인사 드리지 못해서 진심으로 송구합니다.
많이 격려해 주시고 함께 슬픔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뻑
착하디 착한 아드님..
이제 천국에서 평안할거에요.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아버님도 부디 맘 잘 추스르시길 바랍니다.
삼가 귀한 아드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