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세상 동화 나라로] 신호등의 일기 | |||
나는 동네 어귀에 서있는 신호등입니다. 하루 종일 서서 사람 구경, 차 구경을 하지요.
‘으이구, 오늘도 철수는 지각이네.’
‘안녕하세요? 어딜 그렇게 바삐 가세요?’
늘 보는 사람들인데도 만날 때마다 반갑습니다. 특히 석이와 용이를 만날 때면 손이라도 흔들고 싶어집니다.
석이와 용이는 개구쟁이들입니다. 신호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을 참지 못해 나를 발로 툭툭 차기도 하고, 형제끼리 간지럼을 태우며 장난을 치지요. 때로는 소리를 질러 다른 사람을 놀라게 할 때도 있지만 나는 석이와 용이를 좋아합니다.
아침마다 두 아이는 엄마 손을 잡고 내 앞에 선답니다. 석이는 초등학교에, 용이는 유치원에 그리고 엄마는 두부공장에 가는 길이지요. 오늘 따라 석이엄마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입니다. 철렁, 내 가슴이 내려앉습니다. 지난 겨울에 있었던 일이 생각나기 때문이지요. 바로 석이아빠 이야기입니다.
석이아빠는 부지런한데다가 아이들에게도 참 상냥한 분이었습니다. 석이네 가족이 산책이라도 나오는 날에는, 아이들은 좋아 콩콩 뛰기도 하고, 재잘대며 아빠 볼에 뽀뽀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천둥 같은 사고소리와 함께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퇴근길에 초록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석이아빠 차를, 배추를 가득 실은 트럭이 들이받은 것이지요.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그 때 내 다리는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곧 병원차가 와서 다친 석이아빠를 싣고 갔습니다. 나는 석이아빠 소식이 궁금했지만 아무 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 아주 여러 날이 지나서야 석이와 용이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뛰다시피 걸어오는 두 아이의 얼굴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뒤에는 민수, 민철이 쌍둥이 형제가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우린 집에 갈 거야. 저리 가!”
화난 석이 목소리였습니다. 용이도 형의 손을 잡은 채 씨근덕거리며 걸어왔습니다. 그 때 내가 얼른 초록불을 켜자 두 아이는 길을 건넜습니다. 그걸 본 민수와 민철이도 허둥지둥 건너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서둘러 빨간 불을 켰습니다. 길은 건너지 못한 아이들은 내게 발길질을 했습니다. 석이와 용이가 조금씩 멀어져 가자 혀를 낼름거리며 소리쳤습니다.
“약 오르지롱, 메롱 메롱….”
갈수록 놀림소리는 더 커졌습니다. 석이는 더 이상 참지 못 하고 소리쳤습니다.
“너희들, 울 아빠한테 다 이를 거야.”
“이를 테면 일러 봐. 누가 겁낼 줄 알고?”
이기죽거리는 민수의 말에 민철이가 한 마디 더 보탰습니다.
“야, 너희 아빠 죽었잖아!”
그 말에 석이는 앙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용이 울음소리도 더 커졌습니다.
그리고는 남은 한 송이를 들여다 보더니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꽃잎을 뜯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빨간 꽃잎이 떨어졌습니다. 그리고는 철사만 남은 꽃대를 쓰레기통에 내던져버렸습니다.
나는 차라리 눈을 질끈 감고 싶었습니다. 길을 건널 때 촐랑댄다고 혼나던 석이, 엄마 아빠한테 떼를 잘 쓰던 용이, 넉넉하게 웃으시던 석이엄마, 그리고 돌아가신 석이아빠. 석이네 식구가 손을 잡고 다니던 모습이 하늘만큼 땅만큼 그리웠습니다.
석이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칠 때였습니다. 길 모퉁이에서 후다닥 아이들이 튀어나왔습니다. 민수와 민철입니다. 석이에게 다가오면서 잠깐 머리를 긁적이긴 했지만 씩씩한 걸음입니다.
“석이야, 지난 번엔 미안했어.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잘못한 거 같아.”
“그래, 우리 엄마한테 얼마나 혼났….”
민수가 민철이의 옆구리를 쿡 찌릅니다. 석이는 할 말을 찾지 못해 괜히 책가방만 추켜올렸습니다.
“유치원 끝날 때 됐다. 우리 용이 데리고 와서 함께 놀자.”
민수의 말에 석이는 더듬거렸습니다.
“으응. 그으래!”
세 아이는 유치원을 향했습니다. 조금씩 웃음이 번져가는 석이 얼굴을 보며 나는 초록불을 켰습니다. 석이는 아이들과 함께 길을 건너고는 버릇처럼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나는 손을 흔드는 마음으로 파란불을 오랫동안 끔벅였습니다.
엉덩이를 씰룩이며 가는 세 아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눈을 떼지 못 했습니다.* ▶ 보낼 곳 :
▶ 지난주 우수 독후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