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홍도는 고흥반도에서 거금도를 거쳐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섬이다
섬 안에 미술관이 있는 국내 유일의 섬이다.
섬 전체가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멋지다.
연홍이보다 더 예쁜 할머니를 만나서 그윽한 행복을 누렸다.
연홍도는 전라남도 고흥군 거금도 옆에 있는 조그마한 섬이다.
작지만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간직하고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섬의 모양은 부메랑 같기도 하고, 소의 등에 씌우는 멍에 같기도 하다.
북쪽에 있는 낮은 산은 뒷동산 수준이지만 포구를 포근하게 감싼 느낌이다.
거기에다 바로 앞에 있는금당도가 파도를 막아주고 있다.
신양선착장
벌교읍에서 아침 8시에 출발하여 약 1시간 만에 신양선착장에 닿았다.
이용자가 많지 않아 화장실이나 대합실 같은 편의시설 없이 정박시설만 있다.
연홍도는 500여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손에 잡힐듯이 보인다.
연홍호 시간표
배는 하루에 일곱 번 왕복 운항을 한다.
요금은 왕복 5천원씩 배 안에서 직접 받는다.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뱃삯 2천원, 시설관리유지비가 3천원이다.
섬섬옥수
겨우내 갇혀있던 '섬섬옥수'가 오랜만에 밖으로 나왔다.
올해 안에 나의 목표를 이루려면 부지런히 다녀야만 한다.
연홍도(連洪島)
신양선착장을 떠난 배는 약 3분 만에 연홍도에 도착했다.
섬의 선착장 확장 공사를 하느라고 매우 어수선하였다.
야산을 낀 경사가 완만한 구릉지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소라 부부
방파제 위에는 '소라 부부'라고 이름 붙여진 소라 조형물이 있다.
그 뒤로 한 무리의 아이들이 연홍선착장을 향해 달려오는 조형물이 보인다.
거대한 흰색 소라는 연홍도의 상징물로 자리잡았다.
작품에는 '연홍아 놀자'라는 제목이 붙었다.
마중나온 방울이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반갑게 달려오는 강아지가 있다.
마을 사람들이 '방울이'라고 부르는데 매우 귀엽다.
낯선 관광객들에게는 길을 안내하기도 한다.
골목 벽화
골목 입구 담벼락에는 박지성, 김일, 백종호와 노지심이 보인다.
세계적인 축구 선수 박지성은 고흥 출신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프로레슬러인 김일 선수도 고흥 출신이다.
이 섬 출신의 프로레슬러 백종호와 노지심도 고향을 든든히 지키고 있다.
마도(馬島)
담벼락에 힘차게 내달리는 말 그림이 있는 이유가 궁금하다.
원래는 섬이 말처럼 생겼다 해서 마도(馬島)로 불렸다.
189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고흥군 금산면에 편입되면서 연홍도라 개칭되었다.
마을사진관
마을 사람들의 옛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들이 타일 벽화로 꾸며져 있다.
할아버지 왈, "위원장이 사진을 내라고 하더니만 이렇게 해놓았다."
할아버지께서 자기 사진 서너장을 손으로 가리키며 자랑하고 계신다.
아르끝 숲길
첫번째 트레킹은 아르끝으로 향했다.
트레킹 코스는 아주 잘 만들고, 훌륭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길 옆에는 난대림이 우거져 있어서 기분이 상쾌하였다.
아르끝 숲길은 섬의 남쪽 끝을 돌아 마을 골목길과 만나게 된다
작은 섬
하나 있기에
파도는 흰 물결을 만들고
작은 꽃
하나 있기에
나비는 아픈 날개를 쉬고
네가
거기 있기에
나 오래오래 반짝이리..............................................전영관 <별이 나에게> 전문
아르끝에 도착하다
연홍도 사투리 '아르끝'은 '아래끝'이란 의미다.
숲길사이에 푸른 바다의 전경이 펼쳐지며 중간중간에 벤치가 있다.
경사가 완만하여 노약자나 어린이들도 쉽게 둘러볼 수 있다.
무서운 생명력
소나무를 칭칭 감고 올라가는 생명력이 놀랍다.
소나무야 죽건말건 아랑곳하지 않고 탐욕스럽게 감고 올라갔다.
섬 사람들도 이처럼 파도와 싸우며 생명을 이어왔으리라.
좀바끝이 보인다
아르끝을 벗어나서 좀바끝으로 향한다.
섬의 북쪽 끝으로 길게 뻗어나간 모양이다.
좀바끝은 북쪽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막아주는 역할도 해준다.
지붕 없는 미술관
연홍도는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는 별명을 얻았다.
담벼락에 낡은 문짝을 갖다 붙이고, 담쟁이가 내려오면 작품이 된다.
바닷가의 흔한 조개껍질과 조약돌, 고기잡이에 사용했던 폐품들로 만들었다.
연홍미술관(1)
폐교된 학교를 개조하여 미술관으로 꾸미고, 2006년 11월 개관하였다.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보면 학교터였음을 알 수 있다.
서양화가 신호남 관장과 부인 장경심 부부가 주인장이다.
정식 명칭은 ‘섬in섬 연홍미술관’이다.
큰섬(거금도)에 딸린 작은섬(연홍도)의 미술관이라는 뜻이다.
연홍미술관(2)
미술관 입구는 두 명의 사나이가 지키고 있다.
모자 쓴 핸섬한 남자는 아무래도 미술관장을 닮은 것 같다.
기타 치며 노래하는 사나이의 폭발적인 음성이 들리는듯 하다.
연홍이를 만나다.
미술관 앞에 수줍은 미소를 보내고 있는 '연홍이'가 있다.
관광객들은 연홍이의 미소에 이끌려 인증샷을 찍는 곳이다.
미술관 뒤편에는 몽돌이 펼쳐지는 해변과 갯벌이 있다.
연홍미술관(3)
전시실에서는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회화 작품 150여 점이 교체·전시된다.
작은 운동장이었을 미술관 정원에는 철제조각품들이 배치돼 조각공원이 됐다.
큰 건물이 두 채이고 그 뒤로 부속건물이 몇 채 딸려 있다.
후박나무숲
연홍미술관을 나와서 좀바끝으로 향했다.
미술관에서 출발해 해변길을 거쳐 좀바끝으로 가는 코스는 약 940m·
울창하게 우거진 후박나무 숲에서 향기로운 바람이 불어왔다.
해모가지해변
정자쉼터를 지나면 해모가지 해변이 나온다.
해가 목에 걸려 있다는 의미를 담아 '해모가지' 해변으로 이름 지었다.
석양이 그만큼 아름다운 곳인데 석양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좀바끝
'좀바'는 생김새가 무섭게 생긴 생선인 쏨뱅이의 연홍도 사투리다.
연홍도 인근에서 쏨뱅이가 많이 잡혀 좀바끝둘레길, 좀바끝 등 지명이 많다.
요새가 바로 쏨뱅이 철인데 맛볼 수가 없어 안타깝다.
동백의 숲까지 나는 간다
저 붉은 것
피를 토하며 매달리는 간절한 고통 같은 것
어떤 격렬한 열망이 이 겨울 꽃을 피우게 하는지
내 욕망의 그늘에도 동백이 숨어 피고 지고 있겠지................................박남준 <동백> 부분
미역국밥을 먹다
연홍도에는 마땅히 밥을 사먹을 곳이 없다.
그래서 뜨거운 물만 부으면 먹을 수 있는 미역국밥을 사왔다.
정자쉼터에서 미역국밥을 먹고 커피 한 잔을 마시니 만사 오케이다.
고깔제비꽃
정자쉼터 옆에 고깔제비꽃이 한 무더기 피어있다.
잎이 활짝 피기 전의 모습이 고깔 같아서 고깔제비꽃이다.
연홍도에 들어와서 처음 만난 보라색 꽃이 사순시기임을 일깨워준다.
큰모래밭
정자쉼터에서 숲길을 건너가면 큰모래밭이 나온다.
이곳에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금당도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오래 전부터 금당도에 들어가려고 계획은 세웠는데...솔직히 너무 멀다.
은빛 물고기
미술관 앞의 바다에 '은빛물고기'란 조형물이 있다.
조형물은 밀물 때는 반 정도만 모습을 드러내다가 썰물이 되면 온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상어 떼에게 살점을 다 뜯긴 비참한 물고기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청새치라 표현한다.
당산나무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300년 된 팽나무가 덩그렇게 서 있다.
마을을 수호하듯이 언덕 위에서 마을을 지켜보고 있다.
수백 년을 버텨온 팽나무는 연홍도의 역사를 지켜온 산 증인이다.
그러나 이제 수명이 다한듯...썪어서 문드러지고 있었다.
마을 주소 표지판
마을의 대문 잎에 붙어있는 주소 표지판이 멋지다.
연홍도 모양을 형상화한 디자인과 글씨가 연홍도스럽다.
표지판을 보고 있는데 할아버지께서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셨다.
연홍이보다 예쁜 할머니
할머니께서 수돗가에서 보말을 씻고 계셨다.
연홍이보다 예쁜 할머니께서 손수 커피를 타주신다.
섬에 들어와서 이렇게 따뜻한 호의를 받아본 것은 첨이다.
돌미역 선물을 받다
할머니께서는 그냥 보내기 미안하시다며 돌미역을 싸주신다.
어쩌면 도시에 있는 아들이나 딸을 주시려고 따온지도 모른다.
우리는 드릴 게 없어서 빵 한개를 내밀었는데...가슴이 뜨거워진다.
연홍도여, 안녕!
연홍도에서 4시간가량 머물다가 떠나왔다.
다시 오고 싶은 예쁘고, 따뜻하며 정겨운 섬이다.
연홍도에서 오후 2시 30분에 출항하는 배에 올랐다.
승객은 우리 포함해서 세 명뿐이었다.
신양선착장에서 전주까지 승용차로 약 3시간을 달려갔다.
다음에는 어느 섬을 트레킹할지 꿈꾸는 시간이 행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