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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방문단, 프랑스의 ‘빅토르 위고 문학기념관’에
폰시영 신임관장 환영
2024년 5월 8일
【비에브흐(Bièvres)】
프랑스를 방문 중인 하라다(原田) 회장, 나가이시(永石) 여성부장, 시미즈 SGI(창가학회 인터내셔널) 사무총국장 등이 6일 오후(현지시간),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선생님이 창립한 ‘빅토르 위고 문학기념관’(Maison Littéraire de Victor Hugo, 프랑스 비에브흐시)에. 신임관장 크리스틴 폰시영 씨 등의 환영을 받았다. 또한 회장 일행은 기념관을 방문한 비에브흐시(https://www.bievres.fr/)의 앤 펠레티어 르 바르비에(anne pelletier lebarbier) 시장(市長) 일행과 회견(會見). 문화와 예술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해양(海洋: 바다)보다 더 장대(壯大)한 광경(光景), 그것은 천공(天空: 하늘)이다. 천공보다도 장대한 광경, 그것은 실로 사람의 혼(魂)의 깊숙한 곳(內奧)이다.”〈도요시마 요시오(豊島与志雄) 번역〉이란, 프랑스가 낳은 문호(文豪)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1802~1885)의 명저(名著)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의 일절(一節)이다.
위고가 엮은 사람의 마음의 아름다움을 반영한 장소가 있다면 ‘빅토르 위고 문학기념관(https://www.maisonlitterairedevictorhugo.net/)’이야말로 그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녹색 잔디의 카펫. 마음을 촉촉하게 하는 새의 지저귐. 동화(童話)의 세계에 나올 것 같은 아름다운 양관(洋館: 양옥) - 한 폭의 명화(名畵)와 같은 정경(情景)은, 방문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겨 마지않는다.
이 기념관은 현재 프랑스SGI의 문화법인(文化法人)인 ACSF(L'association Culturelle Soka de France: 프랑스창가문화협회)가 소유하고 있으며 공익사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국내외에서 위고와 관련된 물건들을 수집해 『레 미제라블』 친필(親筆) 교정쇄(校正刷) 전 8권을 비롯해 프랑스 국보(國寶) 5점을 포함한 7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과거 이 기념관은 ‘로슈의 관(the manor house of the Château des Roches)’으로 불리며 문예(文藝) 옹호자(擁護者, 후원자)이자 유력지(Journal des Débats)를 발행하는 경영자이기도 했던 인물(Bertin l'Ainé, 1776~1841)이 소유하고 있었다. 지식인들이 예술과 문학을 이야기하는 살롱(Salon)이 되기도 해, 낭만파의 기수(旗手)였던 젊은 날의 위고도 찾아왔다고 한다.
세계에서 으뜸가는 대문호(大文豪) 위고. 그 인생은 ‘불요불굴(不撓不屈)’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격동(激動)의 19세기에 독재자(獨裁者)의 횡포(橫暴)에 항거(抗拒)해 19년에 걸친 망명생활(亡命生活)을 해야 했다. 그 속에서 펜의 투쟁을 계속해, 작품을 차례차례로 세상에 내보내고, 사람들의 마음을 고무(鼓舞)해 갔다.
이케다(池田) 선생님은 젊은 날부터 위고의 명저를 좌우서(座右書)로 삼아 왔다. 은사(恩師)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선생님의 훈도를 받은 ‘도다대학(戶田大學)’에서도 교재(敎材)가 되었다.
이케다(池田) 선생님은 항상 위고로부터 유래한 “파랑(波浪)은 장해(障害)를 만날 때마다 그 완고(頑固)함의 도(度)를 더한다.”는 말을 모토(motto, 좌우명)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피치 등에서도 종종 위고의 말을 소개해 왔다.
선생님은 1991년, 위고의 정신을 영원히 간직함과 동시에, 세계에 선양(宣揚)하기 위해서, 문호와 연고(緣故)의 땅인 비에브흐에 ‘빅토르 위고 문학기념관’을 창립. 올해 6월로 개관 33주년을 맞는다.
문화·예술을 둘러싸고,
현지 비에브흐시의 시장과 이야기를 나누다
폰시영 관장(館長) 등의 환영을 받은 하라다 회장은 내방한 현지 비에브흐시의 앤 펠레티어 르 바르비에 시장, 브누아 베르치에 부시장, 소피 뒤부아 시의원, 아르노 데부아 시의원과 회견했다.
석상, 위고의 정신을 지키는 문화유산 보호 등을 테마로.
시장은 위고의 유산 중 많은 것이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의 중요한 문화적 재산(財産)이라고 강조했다. 그것을 가장 좋은 형태로 소개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이 기념관은 인간주의(人間主義)의 정신이 필요한 현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존재라고 말했다.
또 이 기념관은 시(市)의 자랑이자 정원(庭園)을 정비(整備)하고 활용(活用)함으로써 그 가치를 높이고 있다며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회장은, 시장의 후정(厚情, 후의)에 사의(謝意)를 표하고,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가고 싶다고 강조. 문화유산의 보호를 위해 노력하는 학회(學會)의 사업을 소개하고, 금후, 더욱 그 활동을 추진해 사회에 공헌(貢獻)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 후, 전시품을 감상(鑑賞: 예술 작품을 이해하여 즐기고 평가함). 위고의 친필 초고 등을 앞에 두고 환담(歡談)의 꽃이 피었다.
로망(浪漫)과 동경(憧憬)의 천지(天地)에서의 대화는 함께 문화공헌(文化貢獻)의 미래를 지향(指向)하는 맹세의 장(場)이 되었다.
1991년 6월 21일, 이 기념관의 개관식 때, 이케다 선생님은 말했다.
“시대는 더욱더 위고의 인간주의(人間主義)의 불꽃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기념관이 ‘자유’와 ‘평등’과 ‘우애’의 고귀한 프랑스의 혼을 세계로, 미래로 보내가는 ‘에스프리(esprit: 정신)의 등대(燈臺)’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시간을 초월한 ‘문호(文豪)와의 대화(對話)’로 ‘자유’ ‘평등’ ‘우애’의 정신을 전하는 문학기념관.
지금까지 전 유엔 사무총장 등 각계의 저명인을 비롯해 약 28만 명이 내관했다.
또, 소장품(所藏品)을 대여(貸與)하는 등, 국내외 미술관이나 박물관, 도서관에서의 위고 관련 전시(展示) 개최(開催)에도 협력. 학생의 수업의 일환(一環)으로서 단체방문도 호평(好評)이다. 역사적인 건축물로 미디어에도 자주 소개되고 있다.
프랑스문화성 문화재보호국의 드니 라발 명예총감사관은 이 기념관을 프랑스 땅에 창립함으로써 선생님은 양국 우호(友好)의 가교(架橋)가 됐다고 평가한다.
“이케다 박사와 위고는 많은 공통된 철학(哲學)을 갖고 있습니다. 특필(特筆)할만한 것은 양자(兩者)가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박사는 인간혁명(人間革命)의 사상을 강조하며 개인의 정신(精神)의 개혁(改革)이 사회(社會)의 변혁(變革)을 가져온다고 주장했습니다. 위고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서민이 가진 힘을 발휘하기 위해 붓을 들어 민중(民衆)을 고무(鼓舞)시켰습니다. 두 사람의 문호(文豪)에 공통된 인간에 대한 애정, 부정의(不正義)와 싸우는 정열(情熱)은 앞으로의 세계를 밝히는(비추는) ‘희망(希望)의 빛(光)’이 될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나 국제정세의 변화에 의해 분단이 진행되는 현대에 있어서, 평화와 문화에 공헌하는 문학기념관의 사명은 더욱 빛나고 있다.
첫댓글 '사랑하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다'
지극히 맞는 말입니다.
특히 가족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나타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매일매일 의노고에 진심으로 깊이 깊이 감사드립니다 항상 노고많으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