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제주에서의 7일, 바보 빅터
빅터는 학교 건물을 올려다본 후 트럭에 올라탔다. 트럭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후진을 하다가 다시 방향을 틀어 천천히 앞으로 나갔다. 차창에 기댄 빅터의 눈앞에 스프링클러의 물방울들이 춤을 추며 따라왔다. 그 뒤로 날개를 펼친 청동 독수리상이 보였다. 한 번도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았던 탓에 빅터는 조각상 기둥에 글귀가 새겨져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짧은 한 문장이었다.
Be Yourself(너 자신이 되어라).
빅터는 무심한 표정으로 글귀를 바라보다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빅터는 그렇게 메를린 학교를 떠났다. 레이첼 선생은 트럭이 사라진 뒤에도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이번에 서현이가 제주까지 들고 온 ‘바보 빅터’라는 책의 53쪽에 실려 있는 글이다.
이번 우리 가족들 제주에서의 7일 여정에 서현이가 책 한 권을 들고 왔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빛깔 고운 바다가 있고, 넘실대는 파도가 있고, 섬 중앙에 우뚝한 해발 1,950m의 한라산이 있는 이국적 풍경의 제주에서 놀기도 바쁠 것인데, 그 바쁜 일정의 틈새에 읽을 것이라고 감히 책을 들고 왔다는 것이 그랬다.
내 사랑하는 손녀 서현이의 아름다운 성장을 태어나서 지금껏 13년째 쭉 지켜보고 있는 나로서는 크게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더 감동적인 것은 들고 온 책의 선택이었다.
‘바보 빅터’라는 제목만 보고는, 어린이 동화수준인가보다 하고 무심히 지나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내 시선에 잡혀든 그 책의 저자 이름을 보고는, 내 깜짝 놀라버리고 말았다.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내가 읽고, 당시 참여하고 있던 독서클럽 Book Tour‘ 모임에서 독후감 발표까지 했었던, 감동적인 자기계발서 ’마시멜로 이야기‘의 저자였기 때문이다.
그 이름, 곧 이랬다.
‘호아킴 데 포사다’(Joachim de Posada)
내 그래서 그가 레이먼드 조라는 또 다른 저자와 함께 쓴 그 책을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중에서 이제 곧 중학생이 될 서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 특별히 뽑아낸 대목이 바로 위의 글이다.
앞으로 크게 자기계발을 하게 될 서현이의 장한 모습이, 벌써부터 눈앞에 어른거리는구나.
다들, 우리 서현이 칭찬 좀 해주기 바란다.
2022년 8월 14일 일요일인 바로 오늘, 내 그렇게 우리 가족들이 온라인으로 함께 하는 카카오톡 단체방에 ‘바보 빅터’라는 책의 표지 사진 한 장을 첨부해서 그렇게 글 한 편을 게시했다.
특별히 우리 한국인들에 애정이 깊은 저자 ‘호아킴 데 포사다’가 한국의 독자들을 위하여 ‘여러분의 벗’이라고 스스로 호칭하면서, 책머리에서 이 책에 실린 내용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하고 있었다.
다음은 그 한 대목이다.
<바보 빅터>는 두 주인공 비터와 로라가 삶에서 잃어버린 ‘진실’을 되잧는 여정을 담은 책입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각각 교차로 전개되다가 후반부로 가면서 하나로 합쳐집니다. 이는 이들이 서로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함께 치유하고 극복해나가는 과정과 같습니다. 무엇 때문에 두 사람이 1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절망과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고, 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잃게 되었으며, 그것을 되찾았을 때 이들의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 책은 ‘사실’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마시멜로 이야기>가 스탠러드대에서 실시한 ‘마시멜로 실험’을 기반으로 풀어냈다면, <바보 빅터>는 훗날 국제 멘사협회 회장이 된 ‘빅터’라는 인물이 무려 17년 동안 ‘바보’로 살았던 실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펼칩니다. 또 다른 주인공 ‘로라’ 역시 ‘못난이’ 콤플렉스 때문에 힘겨운 삶을 살았던 사연을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 고백한 ‘트레이시’라는 여성의 이야기를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내 오늘 그렇게 우리 가족들에게 서현이 칭찬을 좀 해주라는 글을 쓰면서, 지난날 제주에서의 7일 여정을 돌이켜봤다.
바보 같은 내 모습이 곳곳에 있었다.
가족들에게 제주의 특별한 먹거리인 보말칼국수 맛을 보게 해주고픈 생각에, 땡볕의 한낮에 한림읍 항구 부근의 한림칼국수집을 찾아 그 집 바깥에서 30여분을 기다린 내 모습이 그랬고, 내 사랑하는 손녀 서현이에게 일품의 아이스크림 하나 사주고 싶어서 그 전에도 여러 번 들렀던 성이시돌 목장을 찾은 내 모습이 그랬고, 그 손녀 말 탈 때 그 둘레에서 지켜본 내 모습이 그랬고, 예약을 하기가 하늘의 별을 딸 정도로 어렵다는 제주 중문의 돈까스 전문집인 ‘연돈’을 따라 간 내 모습이 그랬고, 이제는 세상을 좀 더 지혜롭게 살아야 할 때가 됐다면서 싫다 싫다 하는 맏이와 맏며느리를 억지로 골프장으로 데리고 가서 적잖은 비용을 써가면서 골프를 치게 하는 내 모습이 그랬고, 굳이 그럴 생각이 없으면서도 서현이에게 도전적 기질을 함양시켜줄 생각에서 카누를 같이 타고 먼 바다로 나간 내 모습이 그랬다.
누가 뭐라고 하든 말든, 나는 스스로 그 바보 같은 모습이 좋았다.
그 모습으로 가족들이 기뻐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내 마음속으로 작정하고 작정했다.
늘 푸른 나무처럼, 앞으로도 내 그렇게 바보의 모습으로 가족들과 함께 할 것이라는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