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 지금은 취미로 남아있지않지만, 잊지않고, 지금도 행해오지만, 수집종목만 다른 그 취미생활 바로, "모으기" 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수집" 이다.
생각해보면, 돈을 모으는 취미를 가졌더라면, 아마도 재정의 자유를 맘껏 누리고 있을지도 모를 그 취미로 행했던, "수집" "모으기" 이다.
내 도장에 널려있는 고물딱지들은 바로 그 취미의 잔영들이 남아서 숨쉬고있다는 증거물인셈이다.
지난날, 중학시절이었다.
축현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열등한편인 나는 인천남중을 갔다.
당시는 인천제고, 상인천고, 그담이 동인천고, 그리고 다음 네번째가 인천남고, 동산고등 이런정도의 순서로 그 학교 공부잘하는 등위를 메게고 있었던터다.
그러나, 그 순서는 확실히 세월이 흐르면서 뒤집어질수 있슴을 사회는 반증해줄것으로 믿어본다.
왜냐면, 우린 아직 꿈을 접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순한 주관적인 꿈을 접고안접고에서가 아니라~ 다 돌아다녀본것은 아니라도 우리 산행하는 친구들의 체력과 정신력이 다른학교출신 친구들보다 월등하단것을 확인할수있었던바에 근거한다. 당연히 강건한 신체에서 왕성한 정신력이 뿜어져나올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때문이다.
나이들면, 점점 하고싶어도 하지못했던 배움의 욕구가 생겨난다고 누가 말했던가 ?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의욕을 불살라본다.
중학교1학년시절부터, 동인천 인현동집에서, 걸어서 도원동 지금의 도원역바로 못미쳐, 길가서 사과궤짝 두개를 포개서 놓고, 그 위에다가 조그만 유리찬장같은것을 놓고, 옛날돈장사를 하던 아져씨가 있었다.
그 분은 지금도 그 부근에서 금창상회란 열기구 가게를 하고 있다.
그분이 훗날 사과궤짝위에서 엣날돈 장사를 시작했다가 부근에 세를 내어 간판을 걸었을때, 이름이 "금화상회" 였다.
입지전이란게 별건가 ?
두 부부가 서서 장사를 하던 그때를 나는 기억한다.
"상평통보" "당백전" 에이브래험 링컨이 그려진 one CENT 짜리를 기억하는가 ? 그걸 2,000 개쯤 가지고 있었다.
5쎈트짜리 백통전과 은화 ONE DIME 그리고, 제퍼슨쎈트 25쎈트 쿼터달러다 다음은 1달러짜리 은화를 가지고 있었고, 우리 대조선개국 501년~505년까지 구한국시대의 동전과 은화가 있었으나, 금화를 갖지 못했다.
지폐들과 수많은 동전들~~
"강문봉" 선생께서, 외국에 다니러가셨다가 돌아오는길에 남은 동전이라면서 주신적도 있었다.
50 년전 이야기다..
동전에서 자기로 넘어가려다가 그 수집활동에 제동이 걸렸다.
왜냐면, 더이상 고물들을 수집하여 끌어모을 재정조달에 한계가 닥쳤다.
지금은,
그 전과가 남아서인지,,
오디오제품도 고장난것을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는게 열개는 족히 되리라, 또 이는 부피들이 커서 집에는 들여놓을 꿈을 꾸지 못한다. 그나마 내 가족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도장에다가 쌓아놓았다.
"마란츠" 와 스피커 JBL 정도는 있는것 같다.
이쪽에 좀더 "소양을 키워볼까 " ? 생각해본다.
그리고, 중국무술에서 사용하는 전통 병장기이다. 헌데 이또한 끌어모으는데는 자금이 필요한거다.
뭘 하는데, 돈없이 할수있는것은 아무것도 없다.
변을 보는것조차도 돈없이는 안된다. 얻는것부터 버리는데까지 재정은 필요하다.
오늘도,
연안부두서 수입김치와 국내김치~ 를 실었다. 10 kG 기준으로 중국산이 9,300원 국산이 19,000원이다. 이를 50박스와 10박스
다진마늘 이 kG당 1,500원 300개와 1,000개다 1,000개면, 무게가 1 Ton이된다. 다진생강은 5,400원이다.
총 약 2톤정도에 가격은 330만원어치를 싣고, 충남아산마트와 하남시엘 다녀왔다.
내가 직접물건을 사서 사고자하는 사람들에게 이문을 남기고 파는 주인행세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 운송비로 15만원만 받고 배달해주는 역할이다. 이것저것빼고나면, 9~10 만원정도가 남는다. 5~6만원은 경비로 써야한다.
그러면서, 자작 주인이 되기위한 요령을 터득하고있다고 자위해본다.
연안부두엔, 냉동창고만 해도 여러군데가 된다, 희창 CNF 대한통운을 비롯해서, 대단위 냉동창고가 수십개는 될것같다. 모두가 보세창고로 지정되어있다. 대부분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오는 해산물과 청과가 대부분인데, 바나나나 체리등은 필리핀과 미국도 있다.
한낮은 제법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으나, 이런것조차도 이젠 며칠안가서 그리워질판이다.
하지만, 뜨거울땐 은근히 ,, 도로가 달아올라 차량 타이어라도 짓물러 터지기나 하면, 어쩔까 ? 걱정이 들긴한다.
5~6시간 게속 운전을 해 댈때면, 속으론 걱정하는 마음을 떨굴순 없다.
다만, 초장에만 그렇고, 인천서 서해안 고속도로로 방향을 틀때 즈음이면,. 1톤트럭에 2톤가량의 물량을 실었다곤 하나, 이미 숙달이 된터다.
뜨거운 도로를 달리면서, 아주 재미난 생각을 많이 한다. 하지만, 이내 북에 있는 지네 애비를 잘만난 그실 북조선의 김정은이 생각도 해보게된다.
가당치 않은 상상이지만, 이녀석을 혼내주는 그런 상상인데, "원수"(元帥)로 칭호하는 군대 장성이란 사람들이 들으면, 대경실색할일이지만, 하는 행위나 인민들은 헐벗고 굶주리는데, 외국제 명품들을 수만달러 내지는 수십만씩이나 쓰고 돌아다니는 행태를 보면, 이 녀석을 수십번은 패대기 쳤을거다. 모르는 친구들에게 설명할 기회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태극권(Taijiquan: 太極拳)에 攬札衣란 초식동작이 있는데, 그 수법을 활용하면,, 보기좋게 머리부터 땅바닥에 쳐 박히게끔 해줄수가 있고,,,,, 형의권(形意拳 Hsing i quan)의 붕권을 적용하면, 배를 움켜쥐며, 앞으로 고개를 떨구어 인사하는 모양새를 취하게 해줄수가 있지,,, 팔괘장(八卦掌baguazang)의 수법을 적용하면, 인후부나 안면에 경련을 일으키게끔 해줄수가 있는데, 라면서,,,그러면서 나는 달린다..... 어느때는 달려나가는게 엄청 좋을때가 있다. 단순히 일하고 힘들다는 생각만을 하면, 못할이이다.
하지만, 아산서 하남으로 방향전환하고, 하남시 교산동에서 일을 마치고, 동인천으로 돌아온나는 그 취미활동을 재개하려는 행보로 동인천 뒤 오디오가게를 찾았다.
도장에 있는 오디오를 잘 청소하고, 수리해서 셋팅을 해보고자 공간을 더듬어본다.
취미와, 교학의 여건을 확보하기위해 또 다른 구상도 떠올려본다.
이는 무엇인가 ? 중국무술과 관련이 깊은 항목은 한자(漢字)와 이를 필묵으로 써내는 서예(書藝)가 있다.
한문선생을 겸하여 서에가로서의 길도 아울러 가련다.
거성친구의 부친 우광(愚光)선생님을 떠올려본다. 생전에 덕수궁인가 행랑에서 ~ 일만점(一萬點)전을 여신적을 기억하고, 동인천역사안에, 한 면을 가릴만한 크기로 "용"자를 쓰셔서 전시한적도 있는 대단한 대가(大家)였슴을 잊지않는다.
그때, 우광선생님과 친구 박거성의 지도로 ~ "무도인지단 하고 무설기지장 하라"(無道人之短, 無說己之長)하라란 글을 쓴적이 있다.
이를 친구들께 퀴즈로 내본다. 무슨뜻일까 ?
바로 제2의 인생을 꿍꾸는 시대라서 그 시간을 염두에 둔 소치적 행동이긴하다. 언제 금년초처럼 아프다간 갑자기 갈수도 있지만, 몸에 약간의 탄력이 붙은 뒤론 삶에대한 의욕을 부채질 해보는것이다.
첫댓글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보니 고마우이 친구에게 화이팅을 보내네^^
아이구 ,,, "윤효의 쉐프님""" 용기를 다 주시구 감사합니다. 더욱 열심히 분발하겠습니다.~
지난, 우리 친구들이 광명산을 갔었던 그날,, 태안둘레길을 걸으면서, 친구들을 생각했고, 친구들이 걷는만큼은 걷겠다고 생각했지,,, 앞서지는 못하더라도 뒤쳐지지는 않겠다고 자신에게 말했지, 그건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방법중 하나라고 생각했기에 지키려고 애쓰는 것이고 힘든과정을 지내서야만이 또한 마음이 놓이고등,, 학생같은 생각을 하고있는듯 하네,, 한마듸로 좋은거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