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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이씨부산화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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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선조님 이야기 8세: 휘 종선 양경공 배위 정경부인 안동권씨 -- 사육신 백옥헌공의 조모되시는 분
주원(周遠) 추천 0 조회 214 13.04.29 10:05 댓글 1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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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3.04.29 10:06

    첫댓글 양경공 배위에 관련된 얘기는 방대하여서 1, 2편으로 나눠서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 13.04.29 11:14

    누구도 쉽게 접할 수 없는 작업을 하시는 주원님께 거듭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 작성자 13.04.29 11:48

    감사합니다 행님~ 재밌게 읽어주시는것 같아 힘이납니다요~~ ^^ 좀전에 저희 누나 한명이 저보고 너 이 목은집은 어데서 났고 지금 뭐하는 짓이니, 그래서 사는데 도움이되니, 이러데유. ㅎㅎ 여자들은 시집가면 다 저런가요? 언제는 한산이씨네가 제일 좋은줄 알고 있었는데 말입니다..ㅎㅎ 음..역설적으론 이래서 출가외인되어 한산이가네 시집오신 우리 할머니들이 더욱 소중한가 봅니다; 우리편됬으니까유, 맞죠? ㅎㅎ

  • 13.04.29 18:51

    잘읽었습니다,,,역사의현장을 눈앞에서보는듯합니다,,,,이개 선조님의 처형이 마음이아픕니다,,,

  • 작성자 13.04.29 20:48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셨을까 매번 사육신에 관한 얘기를 접할때마다 의문이 드네요. 절의를 지킨다는것이 생각하는것보다 쉽지가 않았던것 같네요.

  • 작성자 13.04.30 09:32

    정경부인의 생몰년이 미상인데 제가 다른자료와 혼돈을 빚었습니다. 편집되었습니다. 사과드립니다.

  • 13.05.03 23:42

    몇번 읽어 봐야 줄거리를 파아 하겠습니다 읽고 또 일고 하옵니다

  • 작성자 13.05.04 00:44

    자료롤 연결-정리하면서 사돈의 8촌까지도 따지는것 같이 보이긴 하지만요. ^^ 친가쪽 배경으로만은 이해할수없는 적잖은 외가쪽의 영향이 확실히 존재하는 연유이니 넓게 양지해 주세요~~ 목은선조 아래 몇세대는 외가쪽으로도 복잡 (?)하게 아니 가깝게 얽혀져 있네요. 그러면서 저도 어느땐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수긍을 합니다. ^^

  • 13.05.05 23:27

    혹, 자료의 출처를 알 수 있을가요?

  • 작성자 13.05.06 06:26

    참, 이 올린 글의 출처도 여러군데서 찾았습니다. 우선 족보를 참조했고요, 그 다음에 사육신에 관계된 내용의 글들을 인터넷에서 찾아 점검하고 정리하여 올렸습니다...

  • 작성자 13.05.06 07:17

    사육신에 관한 기록은 아시겠지만 세종-세조 실록등의 인물전에 실려있고요..정랑공에 대한 것은 제가 나름대로 추측을 한 것입니다. 정랑공에 대한 기록이 나중에 누락된듯 보이고 한 까닭에 처형당하지 않으셨을까 하고 말입니다. 휘 유기 도총진무공의 아드님 휘 은산 선조는 혹 어느 사이트들에선 처형당했다고 했으나 살아나신게 확실합니다. 가끔가다 인터넷 사이트들에 자료가 오류로 실린것을 발견하기는 합니다만요...

  • 작성자 13.05.06 06:57

    세조가 죽을때쯤에 임해서 사육신화때 연루되어 노비로 가있던 대신들의 가족들중 일부 수백명을 풀어준일이 있는데 아마 이때 백옥헌공의 가족들과 도총진무공등의 가족들이 풀려나지 않았을까 합니다...

  • 작성자 13.05.06 07:18

    참고: 백옥헌공 아드님 휘 공회에겐 아들이 없었습니다; 제가 다른 자료와 혼돈하여 잘못된 정보를 올렸네요. 편집되었습니다.

  • 작성자 13.05.06 07:46

    휘 계주 정랑공께선 사육신사건이 나기 훨씬 전에 돌아가신걸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죄솧합니다. 예전에는 알고 있었으나 세월이 오래지나 잊어버리고 글쓸때 확인을 제대로 안했군요. 안유재님의 출처에 관한 질문덕분에 잘못된 것이 두개나 편집되어 고쳐졌습니다. ^^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신경쓰도록 하겠습니다. ^^

  • 13.06.28 12:39

    안녕하세요 저는 백옥헌 할아버지의 봉사손 종석입니다 글을 쓰시느라고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부탁말씀 올리겠습니다
    (1)대종회에서 발행한 "사육신 이개선생 유고집" 내용되로 통일을 했으면 합니다
    (2)시문 세번째줄 "明發不寢出門去"인데 "明發未寢出門去"로 쓰셨습니다
    (3)詩 제목은 臨命作<見 秋江記事> 죽으러 갈 때 읊은 詩 입니다
    (4)대부 께서 쓰신데로 일치되나 사육신 선생들중 한산 이문에 백옥헌 선생만 사당이 없는것이 매우 안탑깝습니다 대종회에서 사당을 짖기로 하였으나 진행이 않되고 있습니다 많은 협조 부탁드림니다
    (5) 사육신 이개선생 유고집은 대종회에서 발행하여 무료로 각지파에 발송했습니다

  • 작성자 14.01.14 01:07

    종석님께서 지적하여 올려주신 내용대로 정정하였습니다. 본인의 자료가 미미한 탓에 처음 작업할때 대종회의 내용과 일치하지 못한 내용을 올린 점 양해구합니다.
    사육신공의 사당이 없다는 것은 본인도 유감스런 일이군요. 봉사손으로 결국엔 대를 이었다하나 절손되어 수백년되어 내려왔던 탓에 아무래도 관심있는 후손들이 적겠고 그런 연유에 기인하지 않나 하는군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니 포기하지 않고 시일을 좀 더 두고 계속 프로젝트를 추진하면 결국엔 꼭 좋은 결과가 생기리라 생각되어 집니다. 정말 노고가 많으십니다~~

  • 13.07.06 19:39

    (6)세종 26년 갑자(1444)에 군수 인천(仁川) 이달(李達) 이 단양에 부임하여와서 쓰러져 가던 누각을 헐어버리고 새로 누각을 짖고 백옥헌 할아버지께 사찰을 보내어 "이르기을 누각이 완성되었으니 그대는 어찌 나를 위하여 누각의 이름을 짖고 기문을 써주어 오래 전하도록 하여 주지 않겠는가"하였다
    내가 생각컨데 이 고을은 나의 외조모(外祖母)의 고향이니 고려조의 충신 우탁(禹倬)이 그 선조이다 그래서 사양할수 없어 이요(二樂)라 명명하고 안평대군에게 앙청하여 이요루(二樂樓)라는 세 글자를 쓴 현판을 걸게 되었다(二樂樓期<見 丹陽誌)
    結論 "祖母가 아니고 外祖母 입니다 사육신 이개선생 유고집에 二樂樓 記文에 수록되 있음

  • 작성자 14.01.09 23:24

    안녕하세요 노고가 많으십니다~~
    검토후에 요청하신데로 정정을 하여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수개월간 개인적인 사정으로 카페를 잠시 떠나 있어서 업데이트가 못된 점 양해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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