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좌담회 / 탈시설화를 둘러싼 쟁점과 대안 | |||||||||||||
사진·정리 : 보이스 편집부 | |||||||||||||
사회 : 김효진(보이스 편집위원) 참석자 : 권유상(한국장애인부모회 사무처장) 이상호(사람사랑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이석구(한국DPI 사무처장) 임성만(장봉혜림원 원장) 조한진(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호선(보이스 편집국장) ![]() 최근 탈시설화에 이어 반시설화라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학계를 중심으로 논의되어온 탈시설화가 현실적 가능성 여부에 치우쳐 있었다는 비판 때문일 것이다. 이에 계간 보이스에서는 지난 2006년 1월 12일 '탈시설화를 둘러싼 쟁점과 대안'이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개최하였다. 장애인권리 관점에서의 시설의 의미, 탈시설화 혹은 반시설화를 모색하게 된 원인과 가치부터 짚어내고, 현재의 관련 쟁점과 향후 대안을 논의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려는 취지였다. 이 좌담회에는 탈시설화를 고민하고 있는 장애계, 학계, 시설 운영자, 발달장애인 부모 등 각계 참석자들을 모시고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았다. 이번 좌담회를 계기로 시설정책, 나아가 장애인정책의 변화를 위한 논의의 장을 이어가기로 하겠다. 시설의 개념부터 정리하자면 사회 : 우리에게 시설 문제는 늘 고민하게 되는 주제인데다 여러 차원의 문제가 얽혀 있어 합의가 쉽지 않을 텐데요. 오늘은 세 가지 정도로 범위를 좁혀서 논의를 할까 합니다. 첫 번째로 시설의 현황, 현재 어떤 시설의 문제점이 있기에 탈시설화 논의가 나오고 있는지에 대해서 논의했으면 하구요. 그런 측면에서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사항들에 대해 짚어 보고 난 뒤 마지막으로 우리가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에 대해 논의를 했으면 합니다. 먼저 왜 탈시설화가 거론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실마리를 풀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호선 : 이 좌담회를 기획한 사람으로서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몇 년 전부터 학계를 통해서 정상화 논리와 탈시설화 논의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논의가 되면 될수록 시설의 비리나 인권유린 문제로 인해 탈시설화가 거론되고 있으면서도 정작 시설의 문제가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정확히 정리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시설 자체가 어쨌든 지역사회와 분리되어 있으니 그 자체로 장애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 아닌가, 구체적으로 장애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자유권 자체를 구속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또 분리 문제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사회 : 원론적이고도 이념적인 차원에서 짚어보자는 취지인 거죠? 외국에서는 탈시설화 얘기가 나온 지 오래되었다고 들었는데요. 어떠세요? 조한진 : 탈시설화 얘기를 하기 전에 시설이 무엇인가 정의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시설의 유형을 일단 짚고 넘어가야 될 것 같아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시설에는 생활시설, 중간시설, 이용시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탈시설화는 흔히 생활시설을 두고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보통 뭉뚱그려서 얘기들 하는데. 오늘만큼은 좀 나눠서 논의했으면 좋겠습니다. 중간시설은 그만두고라도 생활시설과 이용시설은 적어도 구분해서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외국은 어떠냐고 물으셨는데 저는 미국에 대해서만 알 뿐입니다. 탈시설화가 한참 얘기가 됐었죠. 앞에서 인권, 이념적인 차원을 말씀하셨지만, 미국 같은 경우는 이념 때문에 탈시설화 된 것이 아니고, 비용 문제 때문입니다. 시설에서 흔히 클라이언트를 수용해서 생활을 하다 보니까 너무 돈이 많이 들더라는 거죠. 지역사회로 돌려보내면 돈이 훨씬 덜 드니까요. 사실은 이것이 주원인입니다. 그것을 이념적으로 뒷받침한 것뿐이지 별로 떳떳한 과정은 아니라고 봅니다. 사회 : 시설의 유형을 생활시설에 한정해서 논의하자는 제안에는 다들 동의하시나요? 모두 : 예. 권유상 : 이용시설은 논의 대상이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탈시설화 얘기가 나온 것은 몇 년 안됐습니다. 부모 입장에서 보면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되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시설에 입소를 원하는 장애인도 충분히 수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탈시설화를 부르짖고 있어요. 저희도 재작년에 정신지체, 발달장애인 시설을 하나 개원을 했습니다만, 비장애인들의 삶에 비유하면 형무소나 다름없더라고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자기들의 의사에 의해 바깥출입을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정신지체, 발달장애인은 또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지체장애인이나 뇌병변장애인들을 시설에 가둬놓는다는 것은 정말 어떤 문제를 떠나서라도 우리가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솔직히 우리 아이는 최소한 지역에 그룹홈이라도 하나 만들어서, 밖에 나오면 가게라도 있어 먹고 싶을 때 아이스크림이라도 언제든지 사먹을 수 있도록 살아가게 하고 싶은데, 그 정도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되고 있어요. 그룹홈을 한다 해도 부모가 주택을 구입해야 된다는 문제가 있고, 또 생활비도 부담해야 됩니다. 부모가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당장 그 시설의 유지에 문제가 생깁니다. 현재의 제도상 이런저런 것을 감안한다면 결국은 시설에 보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와요. 그렇지만 시설로는 보내고 싶지 않은 것이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모든 시설을 반대할 것인가 사회 : 현재 시설도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탈시설화가 얘기됐다고 문제는 지적해주셨는데요. 시설이 충분해질 때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권처장님께서 오늘 논의의 핵심이 될 내용들을 짚어 주신 것 같습니다. 하나는 시설에 수용됐을 경우의 인권침해 문제이고, 또 하나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내용 중에서 정신지체나 최중증장애인은 탈시설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가 하는 쟁점입니다. 그룹홈 형태로 가는 것이 시설문제를 보완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주제로 이어질 것도 같은데, 쟁점에 대해 다룰 때 좀 더 얘기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먼저 자립생활운동을 하시는 이소장님께서 시설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나 비판적인 입장이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요. 이상호 : 장애인복지법을 보니 ‘생활시설’에 재활자립이란 단어가 있고, 마지막에는 사회복귀를 목적으로 한다고 쓰여 있더군요. 그렇지만 저는 ‘인가인가 미인가인가, 인권이 잘 되고 있나 못 되고 있나’ 이런 문제를 다 떠나서 생활시설은 절대로 사회복귀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고 봅니다. 그런 프로그램이 전혀 없으니까요. 그리고 지적장애 그룹의 요구에 의해서 시설이 선택되고 있다고 하는 얘기도 실제로 그런가 하면 아닌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나온 열린우리당 인권위원회의 시설문제 공청회 자료집을 보았더니 90% 이상이 자신의 욕구에 의해 시설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생활시설이라는 말에 반대합니다. 어디까지나 수용시설일 뿐이지요. 정확히 말하면 감옥인데, 다만 이것이 전체 전달체계에 같이 포함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용시설에도 또한 ‘분리와 배제’라는 코드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반시설의 입장에 가깝습니다. 곧 반시설과 탈시설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겠지만 저는 반시설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요. 비장애인에게 형벌을 줄 때 분리를 시키잖아요. 사회로부터 일정 정도 분리시키는 것을 감옥이라고 하는 건데. 그런 기제하에서는 생활시설에서 인권이 지켜지고 있든 아니든 간에 그 구조 자체가 인권에 반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힘의 문제 조한진 : 자립생활운동을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이소장님이 하고 계신 게 반시설화운동이 맞습니다. 반시설화라는 것이 오래된 개념이 아니고 얼마 전 나온 개념이거든요. 탈시설화는 시설을 벗어나서 지역사회로 돌아간다는 의미인데, 반시설화는(counter-institutiona), 즉 단순히 시설을 반대한다는 의미를 떠나서 탈 전문가적인 것이고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자립생활운동이 얘기하는 것과 똑같죠. 발달로 본다면 대개 처음에 시설에서 생활했었죠. 그 다음에 대두되는 게 탈시설과 같이 얘기되기도 하지만 지역사회보호, 그 다음에 가장 나중에 나오는 얘기가 자립생활 혹은 반시설화죠. 탈시설화 이후에 지역에서 장애인이라든지 소외된 사람들이 어떻게 권리를 주장하며 살고 사회생활하는가 하는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많은 모색이 있게 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알코올중독자가 있다고 한다면 흔히 알콜중독센터에 가서 치료받는 것을 생각하잖아요. 반시설화 입장은 단주모임 AA그룹을 결성하는 거죠. 전문가는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임성만 : 시설을 21년 했는데요. 저는 아직 시설이라는 걸 모르겠어요. 뭐가 시설이냐? 개념정리가 굉장히 어려워요. 포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거죠. 생활시설로 한정하자고 하셨는데, 그러면 장애인이 그 안에서 생활만 하면 무조건 다 생활시설인가? 이것도 어려운 정의입니다. 예를 들어 장애인이 혼자 살아도 시설인가? 국가가 만약에 집을 줬다면 장애인이 다섯 명이 살아도 시설인가? 문제는 탈시설이든, 반시설이든 간에 시설의 개념정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조교수님은 정의를 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하셨는데 그만큼 정의하기가 어렵다는 뜻일 겁니다.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법상 장애인생활시설에 엄청난 사회적 기능을 요구하고 있어요. 대상을 장애인으로 하고, 그 안에서 생활을 할 수 있고, 그 안에서 재활적 조치를 하도록 되어있고, 궁극적인 것은 사회복귀, 사회통합을 지원하는 것이 시설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입니까? 저는 20년 동안 해왔어도 전문적인 조치를 할 수 있는 재정을 받아본 적도 없고, 사회복귀를 조장하는 사회적 장치가 만들어진 것도 본 적이 없어요. 그 법에 나와 있는 시설의 정의 자체가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시설에서 생활을 하면서 그 안에서 재활적 조치까지 하라고 하는 것은 환자로 취급하는 것이에요. 그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주거지라면, 재활적 조치는 어디서 해야겠습니까? 당연히 지역에 있는 병원에 가든, 놀이터를 가든, 직장을 다니든 해야 하는 거죠. 그 시설 안에서 상호 작용할 수 있는 것을 제한시켜놓고서 사람들에게 변화하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죠. 이렇게 시설의 정의 자체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저로서는 전체적인, 역사적인 시설의 문제에 대해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선 사이즈, 대규모였다는 것인데, 그것은 보편적이지 않은 집이죠. 그 다음에 재활적 조치라는 것이 그 속에서 이뤄진다는 것은 전문가주의, 공급자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입니다.
사실 정신지체인을 시설에 배치시키는 사람은 부모거든요. 그러면 부모들이 왜 데리고 왔을까요? 다른 조건들이, 메뉴들이 없어서입니다. 저는 주거지원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역사회 시스템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발달장애인이나 정신지체 장애인이 타인에 의해서 지역생활을 하는 것도 적극적인 의미에서 자립이라고 봅니다. 타인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보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까지를 시설이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죠. 이상호 : 그래서 소규모 시설이나 지적장애인 수용시설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임성만 : 장애인 한두 명이 살고 지역사회 시스템이 그 사람을 원조하는 것도 시설이라고 정의한다면, 그것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대규모가 문제입니다. 주거환경이 보편적이지 않다고 하는 거죠. 두 번째가 힘의 원리에요. 누구의 의지대로 사느냐? 내 의지대로 사느냐? 타인의 의지대로 사느냐? 그게 아까 말한 개입의 문제들인데, 지금까지 시설의 문제점이 나온 것은 자기의지로 살지 못하고 공급하는 사람들 혹은 시설장이라는 사람 내지는 직원이라는 사람, 서비스 공급자들이 행하는 폭력 같은 힘 때문이었습니다. 타인 지향적이었다는 것이 문제였죠. 사이즈는 줄일 수 있어요. 결국 힘의 문제에요. 그룹홈을 시설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운영하는 사람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장애인 중심적이면서 자기는 뒤에서 그림자처럼 지원해주는 조력인이 있는가 하면, 지나친 사랑이 넘쳐서 모든 것을 다 끌고 가는 사람도 있어요. 바로 이러한 힘이, 그것조차 타인 지향적이라고 한다면 이것도 결국은 시설이라는 거죠. 이 문제까지를 다 포함해 시설을 전부 없애야 한다고 한다면, 실제로 정신지체나 발달장애인에게 지금 아무 메뉴도 없는 상황에서 이것까지도 탈시설 반시설하면 이 사람들에게 이익을 보장해주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시설의 문제가 무엇인지에 접근해 들어가야 합니다. 조한진 : 우리나라도 그렇고 미국도 대개 둘로 나누는 것 같아요. 대규모 시설은 널싱홈(Nursing Home)이라고 부르는 것 같고, 주거시설로써 잠만 자는 형태(RCF: Residential Care Facilities)가 있어요. 우리나라는 점점 대규모 널싱홈 쪽으로 닮아가려는 모습이 있어요. 시설을 정의할 때 사이즈도 중요하지만, 잠만 자는 곳도 시설이냐고 할 때 RCF도 저는 시설이라고 봅니다. 그러면 그룹홈도 시설이냐? 시설이죠. 아무리 사이즈가 작고 지역으로 돌아갔다고 하더라도 파워를 누가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사이즈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힘의 논리에서 아무리 전문가는 한 명만 같이 살더라도 시설일 수가 있고 아무리 열 명이 살더라도 시설이 아닐 수가 있어요. 사이즈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파워를 누가 갖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좋은 지원체계는 있어야 이상호 : 당사자주의를 주장한지 불과 한 5년 됐나요? 5년 동안 얘기를 하니까. 권력관계의 중심에 섰던 전문가나 학자분들이 (저는 그렇게 판단하는데) 보완용으로 내놓는 게 소비자주권주의거든요. 주권주의라고도 하지 않아요. 소비자 보호라고 하지. 그런데 소비자주권주의라고 하는 것에도 결국 권력관계의 향방이 중요한데, 권력이 소비자에게 있지 않거든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공급자가 하고, 거기에다 소비자 보호의 개념을 조금 집어넣겠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장애인복지라는 게 시장논리로 굴러가지 않으니까 퍼펙트하게 선택할 프로그램도 없다는 거예요. 한정된 프로그램 가지고 그것을 선택하고 소비자주권주의를 조금 옹호해주겠다, 이 정도 차원으로 비켜나가려고 하는 것 같아요. 소규모라고 하는 것도 시설로 규정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당사자중심의 권력이냐, 아니면 소비자주권주의를 옹호하고 있느냐, 아니면 공급자와 공급받는 자가 아주 기계적인 형태로 존재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시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그냥 교사의 지시에 의해 프로그램대로 완전하지도 않은 것 구매하는 척하면서 소비자주권주의다, 그래서 시설을 벗어나지 않았느냐고 얘기한다면 곤란하다는 거죠. 임성만 : 문제는 발달장애인과 정신지체장애인인데, 이들에게는 좋은 지원체계가 필요합니다. 사회적 장치가 필요해요. 좋은 지원체계가 긍정적으로, 선순환체계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뭐는 나쁘다 뭐는 좋다’가 아니라는 개념이 아니라 ‘좋은 지원이 어떻게 생겨야 하느냐’ 이 문제가 핵심이라고 봅니다. 우리 사회가 부모를 대신할 만큼 안전한 망이 없어요. 우리가 고민할 것은 그것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경제적인 보장체계라든지 주거라든지 주거 속에서 스스로가 지적능력이 제한성이 있기 때문에, 지원의 강도야 다르겠지만 누가 그것을 들여다봐주고, 그 사람을 대신해서 좀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느냐 하는 겁니다. 이런 지원이 결국 힘이잖아요. 그것을 시설로 정의한다면 선순환적으로 발전적인 시설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러나 시설의 문제는 냉정하게 점검을 해서 개선하는 방식을 찾아야 하고, 지원이라는 것이 결과적으로 힘을 의미한다고 하면 시설이라는 것을 벗어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런 기능을 가지고 있는 어떤 조직 내지 기관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면 시설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지원의 구조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이냐는 우리가 앞으로 고민해나가야 할 과제인 것입니다. 이상호 : 한국사회가 이미 탈시설화에 대해서 모두 동의하고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과연 시설원장들이 그것에 동의하고 있나요? 대형시설 운영하는 시설원장이 동의하고 있나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임성만 : 동의하고 동의 안 하고의 여지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시설은 개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시설에 있었던 사람이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그곳을 갔겠습니까? 우리는 시설의 문제를 다른 부분에서도 지적해야 하지만, 그 시설을 대체할 수 있는 사회적 기능을 만들어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또 한번 질책을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상호 : 저는 생각이 다른데요. 한국사회에서 국민의식을 조사하면 모두 장애인에 대해 차별하지 말자는 데 동그라미 칠거에요. 그런데 현실에서는 차별행위를 합니다. 저는 수용시설 원장들도 그렇다고 봐요. 탈시설화에 대해서 공식석상에서 이해하고 동의하냐고 물으면 다 동의한다고 하겠지요. 그러나 대규모일수록 과연 기득권과 권력을 내놓을 수가 있겠냐는 거예요. 자기 권력과 이해관계가 얼만데 그걸 놓겠냐는 겁니다.
시설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 이런 개념보다는 결국 그 아이들이 지체장애인들처럼 스스로 자립생활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생활교사가 투입되지 않으면 밥도 못해먹고 청소도 못합니다. 사회 : 동의하는데요. 정신지체장애인 전체가 시설을 필요로 한다고 판단하는 건 좀 위험하지 않을까요? 임성만 : 다 그렇게 보는 건 아니에요. 힘든 사람도 있고요. 저희 기관에서도 그룹홈에 있다가 자립생활을 하고 있다가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아 키우는 정신지체인들도 있어요. 사회 : 논의가 자연스럽게 쟁점 쪽으로 넘어갔다고 생각되는데요. ‘파워를 누가 갖고 있는가가 관건’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공통된 의견이신 것 같거든요. 자녀의 미래를 생각했을 때 소규모 그룹단위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도 하셨고요. 그룹홈 형태에서 사회복지사나 생활교사가 지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보나요? 권유상 : 부모들은 현재 복지제도 하에서 최선의 방법이 그룹홈이라고 봅니다. 인권보장도 받을 수 있고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기 때문에 현 제도 안에서는 그룹홈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사회 : 그런데 파워를 생활교사가 갖고 있어도 괜찮다고 보십니까? 권유상 : 생활교사가 파워를 가지고 있어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지요. 사회 : 그래도 해결방법은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권유상 : 부모들은,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현재로는 그룹홈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강연하면서 우리 부모들이 만 개만 만들어 놓자, 그러면 우리 후배들은 4만 명이 혜택을 볼 수 있으니 운동을 전개하자고 얘기합니다. 국가나 지자체가 안 해주니까 어쩔 수 없이 우리 몫일 수밖에 없으니까, 우리 아이는 그룹홈을 만들어서 살게 할 계획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살아있을 때 신뢰할 수 있는 법인에 기부하자는 거죠. 그러면 부모가 죽고 나서도 운영주체가 확실하게 되니까 말입니다. 가치지향을 명확히 하자 이석구 : 저는 반시설이냐 탈시설이냐의 문제의 핵심은 시설에 대해서 사회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대한 것에서 장애인들의 감수성으로 볼 때 저항의식이 있지 않나 이런 느낌이 많이 듭니다. 예를 들어 장애인들은 장애인으로 등급이 매겨지면 어려서부터 분리된 시설에서 분리된 환경에서 계속 자랍니다. 그래서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도 분리된 환경에서 자라죠. 인권이란, 생존하는 것, 그냥 숨쉬고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동년배와 같은 문화적인 것을 공유하고 어울려 살고 자기의 생각들과 하고 싶은 일들을 구현하는 그런 것이 인권의 최소선의 기준 아닙니까. 그런 점에서 시설을 볼 때 누가 삶을 컨트롤하고 결정하고 삶의 방식들을 결정하느냐 이런 문제가 있을 것 같은데요. 또 하나 물리적으로 시설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어떻게 정의내리고 있는가에 대해 좀 더 고민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시설 문제와 연동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장애인관련 정책들이 점처럼 되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봅니다. 분산되어 있는 거죠. 선이 되어야 하는데 점이 되어 있는 거예요. 시설과 사회복귀를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지역사회에 나오면 나와서 살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연속선상에 없어요. 예를 들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감옥에 갔다 나오면 거기서 직업도 가르치고 자격증도 따지만 나오면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지지하는 게 안 되니까 다시 감옥에 들어가는 것처럼. 우리 장애인들도 예를 들면 노동현장에서도 그렇잖아요. 직업훈련 1년, 2년 받거든요. 나오면 취업이 잘 안 돼요. 그러면 다시 또 직업훈련소로 가거든요.
조한진 : 지적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지적능력의 한계가 있는 사람들이 왜 자립생활하기 힘든가, 왜 힘들다고 생각하는가 하는 문제는 이석구 처장님이 말씀하신 관점하고도 관련이 있거든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봐요 한 가지 이유는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지적인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자기 판단이 없다고 보는 것, 극히 의료적인 얘기입니다. 또 반대로 왜 어렵냐? 그것보다는 지적장애인과 발달장애인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지지하고 원조해 주는 시스템이 훨씬 더 적기 때문에 어렵다고 보는 건 사회적인 거죠.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인정을 합니다. 하지만 지적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의 지적인 능력에만 포커스를 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니고 특별한 장애인을 둘러싼 사회 환경이 더 어렵기 때문에 그 환경을 개선시키는 데 초점을 둬야 합니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지적장애인 중에서 아이큐로 나누는 것도 맘에 안 들지만 경도, 중증, 최중증 세 개로 나누는데. 경증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말씀하셨지요? 사실은 최중증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자립생활 훈련을 통해서 자기의 기본적인 것을 처리하지 못할 최중증, 아이큐가 낮은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거예요. 현실적으로 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아까 사회적인 지원이라고 얘기했을 때 그런 부분을 도와줘야죠. 하다못해 가계부도 못 쓴다고 하셨지만, 그러면 그걸 도와주면 됩니다. 경제권을 박탈하지 말고 옆에서 도와줘야 합니다. 그것이 안 된 게 문제인 것이지 지적인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지적장애인 문제의 중요한 포커스 중 또 하나는, 그룹홈을 만 개를 만들겠다고 하셨는데, 오죽하면 그런 생각을 하셨을까 참 안타까운데요. 그걸 들으면서 화가 나는 것이 그렇게 까지 할 동안 국가는 도대체 뭐 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바라는 것은 발달장애나 지적장애가 있는 자녀를 가진 부모님들이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에 대해서 ‘왜 이걸 우리가 하게 하느냐? 국가가 해야 되지 않냐’고 주장하는 데 반쯤은 나서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임성만 : 정신지체장애인이나 중증장애인이라고 해서 성장발달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성장발달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당연합니다. 오랫동안 같이 지내면서 경험적으로 보아도 상당한 발전을 해요. 그런데 문제는 성장과 발달은 혼자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굉장히 다양한 지원이 필요해요. 주거환경도 중요하고 상호작용하고 있는 또래집단도 중요하고 발달기에 맞춰서 경험해야 할 것이 많이 있어야 성장발달이 되는 거죠. 조한진 : 탈시설화와 반시설화를 얘기할 때 지적장애, 발달장애 빼면 얘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경증은 흔히 직업재활을 통해서 재활이 되거든요. 그것이 안 되는 ‘최중증 혹은 지적장애인, 발달장애인은 어떻게 될 것이냐? 그럼 다 시설로 보내야 할 것이냐?’라고 할 때 아니라는 거죠. 심한 장애라 하더라도 자립생활훈련 하니까 되더라, 시설로 다 안보내도 되더라 하면서 나온 것이 지적장애 또는 최중증장애인의 탈시설화고 자립생활이거든요. 이 두 종류를 빼고 나서는 탈시설화 얘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립생활 얘기할 필요 없고. 알맹이가 빠진 거죠. 임성만 : 그런데 좋은 지원이 필요하다는 거죠. 논의의 핵심은 시설의 개념을 말할 때 지원까지를 힘이라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좋은 지원이라는 것은 셈을 못하면 셈을 해주는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이런 도움조차 스스로 통제권을 잃었다고 보면 안 되는 거죠.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자립을 위해서는 좋은 지원의 방식들이 많이 개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시설의 사이즈를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해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휴먼서비스, 좋은 지원을 위해서 사람이 잘 양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함부로 양성해서 막 내놓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도움이냐에 따라서 그 장애인들의 기능성뿐 아니라 삶의 경험들이 너무나 확정되거든요. 양질의 직원들, 전문가들 혹은 사회복지사들이 어떤 영역이든 간에 좋은 인력들이 지원을 하는 실천의 장에 많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취약성의 원리라고 저급한 곳에 저급한 사람들이 들어올 수밖에 없는 거예요. 문제가 양산되고 자꾸 커지죠. 사이즈가 작아지면 힘의 원리가 작동될 것도 별로 없어요. 해보면 실제로 그래요 사이즈가 두 명, 세 명 그러면요. 이호선: 대규모시설에서도 인권유린이 일어나면 처벌을 못하는데, 탈시설화되면 소규모 시설이 오히려 많아지지 않을까, 오히려 관리감독을 못해서 더 인권유린이 일어나지 않겠냐는 문제제기가 있던데요. 그래서 법인 하나가 관리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임성만 : 소규모시설에는 그것을 지원하는 또 하나의 기구들이 있어요. 그냥 두세 명씩 살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일본 같은 경우 백업기관을 항상 두도록 되어 있어요. 직접 가봐요. 가서 교육도 하고, 점검도 하고, 장치를 만들고 해요. 장치가 없으면 시설이나 마찬가지가 돼버려요. 이석구 : 장애인권리조약을 만들기 위해 참여하면서 고민에 빠져 있는데요. 장애인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인정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인권이라고 하는 것은 최대한도를 정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보편적인 가치기준에서 최소선, 이 정도는 보장이 되어야 인권이 그 사람의 존엄성이나 권리를 보장한다는, 존엄성의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이상하게 장애인권리조약만큼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장애인의 인권과 존엄성의 보장에 관한 권리조약이 아니라 장애인의 인권과 존엄성을 제한하기 위한 조약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예를 들어 개인의 자유와 안전에 관한 조항에서 ‘장애를 근거로 격리수용하지 말아야 된다’는 제안이 있는데, 이에 대해 반대를 많이 하는 거예요. 정신질환, 정신지체인을 많이 염두에 둬서 말을 하더군요. 우리가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하고 어떤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해서 권리조약내에서 만큼은 확인하고 싶었는데 확인이 안 되더군요. 정신지체장애인의 법적권한을 인정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등 굉장히 현실적인 문제의 얘기들을 한다는 거예요. 장애인 문제를 어떤 관점을 가지고 바라보고 지향해야 할 것인가 확고하게 정리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임원장님께서 현재 시설의 기능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프로그램의 문제를 많이 얘기해주셔서 저도 그 부분에 공감 가는 부분도 있지만, 기준을 정하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자립생활에는 활동보조인이 있거든요. 정신지체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활동보조해주는, 말 그대로 그림자처럼. 정신지체장애인뿐 아니라 지체장애인에게도 그 부분이 걸리더라는 겁니다. 어디까지 보조로 볼 것이고 요양으로 볼 것인지, 기준을 획일적으로 정하기가 어려워요. 정신지체장애인 영역으로 가면 더 애매하고 불확실하겠지요. 앞으로 시설이 기능, 프로그램 중심으로 바뀐다고 하더라도 이런 점들이 숙제로 남을 것입니다. 임성만 : 시설의 기능, 역할이 불분명해요. 지원의 내용에 따라서 주거의 형태들이 달라질 수가 있거든요. 일본 같은 경우도 ‘복지홈’이라는 것은 주택만 지원해 주는 것이고, ‘그룹홈’은 주택하고 장애인들이 공동으로 산다는 것이고, 서비스를 지원한다는 것입니다. 소규모시설 같은 경우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어요. 메뉴가 다양할 수 있고, 그 사람이 올바른 지역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기술도 있을 수 있다는 거죠. 저는 그것까지는 부정하지 말자는 거예요. 단, 대규모 수용시설로 존재하고 있는 것은 잘못됐다고 보고, 이를 없앨 수 있는 방법도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대안으로는 예산지원방식을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에 대해 건의를 많이 했어요. 머리 숫자로 예산을 지원하는 방식은 규모의 경제라는 것이 적용될 수밖에 없어요. 클수록 불리하게 바꿔야 합니다. 그리고 과감하게 자산대체하자는 것입니다. 시설하는 사람들도 부정적인 이미지에 둘러싸여 하고 싶지 않아 한다구요. 이것을 긍정적인 차원의 지원 서비스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정책적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봐요. 기본적으로 사이즈가 작아져야 하고 집만 주는 방식, 렌트해 주는 방식, 서비스를 지원하는 방식, 순회방식 등의 메뉴들이 개발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시설 생활자의 권익옹호와 시설의 사회화 필요 조한진: 분리에 대해 얘기할 때 우선 옛날에는 장애인을 비장애인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시설에 수용을 했었죠. 그런데 지금은 장애인으로부터 비장애인을 보호하기 위해서 시설에 수용하는 것 아닙니까. 단적인 예로 지적장애인이 시설에서 탈출하면 난리나지 않습니까? 거의 교도소에서 탈출한 수준 아닙니까? 자유권도 마찬가지고 인권도 마찬가지고, 예를 들어 공동체라는 말 참 좋은데 공동체라는 것은 공동체라 불리는 곳이 너무 좋아가지고 비장애인도 ‘아, 나도 거기 가서 살고 싶다’ 이런 마음이 들 때 공동체지, 비장애인인 생활교사 혹은 사회복지사가 있고 장애인이 대다수인 그것이 무슨 공동체입니까? 공동체 아닙니다. 파워의 불균형인 상태는 공동체 아닌 것입니다. 문제가 뭐냐를 떠나서 비장애인에게 가서 당장 ‘살래?’ 하면 거기서 살 사람 아무도 없거든요. 그것만 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반시설화 쪽입니다. 탈시설화한다 한들 지역사회로 간다 한들 파워를 가지지 못하면 그건 아무 소용이 없거든요. 그러면 사이즈만 줄이면 되느냐? 저는 사이즈 갖고 안 된다고 봅니다. 그룹홈도 시설이기 때문에. 그룹홈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탈시설화, 더 나아가 반시설화가 이상이고 목표입니다. 그렇다면 탈시설화 하기 위해서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 지금 다 내쫓으라는 얘기냐, 그러면 좋겠죠. 그렇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 아닙니까? 미국 같은 경우는 예산 문제랑 맞물려 탈시설화가 너무 급격히 진행되다 보니까 사실은 무책임했고, 장애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돌아다녀 지역사회 주민들이 겁을 내기도 했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탈시설화와 관련지어서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자립생활이거든요. 우리나라가 알다시피 예산지원할 때 시설 쪽은 팍팍 밀어주고, 자립생활 쪽은 쥐꼬리만큼 주고 하는 걸로 봐서는 요원합니다. 벌써 지금 당장 시설에 있는 장애인을 거리를 내몰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런 걸 앞당기려는 정부의 목표를 세워야 할 것 같은데, 예산 지원하는걸 봐서는 도대체 목표가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5개년 계획, 10개년 계획 좋아하니 그런 목표를 세우고 밀고 나가라는 겁니다. 목표를 세워서 짧은 기간 안에 하자는 것이지요. 우리나라 상황에서 어떻게 발전을 해야 할지를 볼 때, 일단은 현 체제의 시설을 이대로 놔둘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있는 시설에 대해서는 권리의 문제, 시설생활자의 권리의 문제가 증진이 되어야겠고, 두 번째는 시설이 개방을 해서 시설의 사회화가 이뤄져야 합니다. 중증장애인이고 지적장애인이고 간에 재가보호로 생각해서는 안 되고, 지원해서 지역사회에서 해야 하고, 그것을 지역복지라고 하거든요. 더 이상 지적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을 부모에게 책임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얘기되는 것이 탈시설화와 지역사회 보호입니다. 현 시설을 인정하면서 보완하는 것들이 시설 생활자의 권익문제고, 담을 허무는 문제가 시설의 사회화의 문제인데, 그러면 자동적으로 탈시설화 되어서 시설에 있는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겠죠. 그리고 이미 시설에 살고 있지 않는 사람의 경우 다시 시설을 지어 가지고 그곳에 들어가게 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를 놓고 볼 때 대안으로 내놓을 수 있는 게 자립생활이죠. 메뉴론과 관련지어서, 그렇다면 시설도 메뉴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아무리 탈시설화, 반시설화 얘기한다고 해도 장애인들 중에 “나 시설 좋아” 하는 사람 분명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장애인들이 선택한다고 할 때 “왜 그걸 선택하냐”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도 자기결정권입니다. 그렇다면 시설이 없어질 순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전달시스템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지금은 시설 생활자가 있으면, 돈도 시설장에게 가고 기초생활수급자라 해도 통장도 시설장이 가지고 있는데 그렇게 하지 말자는 것이죠. 바우처도 있고, 시설 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원하면 시설에 있는 서비스를 사게 하고, 생활시설이든 이용시설이든 서비스를 사게 하고, 아니면 자립생활센터에서도 사게 하자는 것입니다. 바우처 형태로 줄 것이냐 현금 형태로 줄 것인가는 생각해볼 문제지만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면 우리가 이상을 추구하면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권유상 : 개인적으로 과연 탈시설화만이 능사냐 하는 부분은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근본적으로 국가의 정책제도에 예산지원이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탈시설화고 뭐고 어떤 방법도 당사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고 봅니다. 일본처럼 90만원 정도의 연금만 나온다면 자립생활을 하든 어디든 자기가 선택을 해서 갈 수가 있는데, 핵심은 정부가 정책이나 제도를 개혁해서 장애인, 특히 중증장애인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정책이나 제도가 되지 않으면 어떤 방법이든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회: 예산이 늘어나야 하는 것에는 누구나 공감할 텐데요. 예산이 저절로 늘어나지는 않겠지요. 전달체계 문제 하고 예산을 늘리는 문제는 또 다른 얘긴 것 같습니다만... 전달체계가 달라져야 한다 이상호 : 반시설을 아무리 얘기를 해도, 미국 같은 경우 전이형 탈시설화,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탈시설화의 중간단계는 필요하다는 생각이 기본적으로는 듭니다. 다만 탈시설화를 얘기할 데 늘 걸고넘어지는 게 지적장애인이에요. 그런데 도대체 안 되는 사람들이 몇 퍼센트냐는 거죠. 지적장애인 다 안 되냐? 구체적으로 몇 %냐 설정하고, 그 몇 %에 대한 집중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노력하지 않고 그것 때문에 시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입니다. 시설연합회의 경우는 자정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봐요. 시설마다 인권위원회를 두든 인권상담실을 두든 자정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하고, 반성도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규모시설에서 가령 탈시설화에 대한 이해와 동의를 하더라도, 현실적으로는 이해와 동의에 머무를 것이냐 아니면 동일선상에서 요구집단이 되겠느냐에 따라서 동지도 될 것이고 공격의 대상도 될 것이라고 봅니다. ‘3천원의 신화’라고들 아시죠? 작년부턴가 재작년부턴가 애들을 굶겨서 되겠느냐 우리가, 결식아동 돕기 붐이 일어나서 3천 원씩 지급을 했어요. 그런데 실상 애들은 600원짜리 밥을 먹고 있어요. 전달체계에서 2,400원이 빠져버린 거예요. 메이저 시설 몇 개를 조사해보니까 76만 1,000원이에요. 시설에 들어가는 예산에 대해 N분의 1로 쪼개면, 퍼펙트는 아니더라도 일정 정도만 업그레이드 시켜주면 자립생활 가능하거든요. 불가능하다고 하는 몇 퍼센트를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시설에 줄 76만 1,000원을 장애인에게 직접 주자는 거죠. 그룹홈도 필요없어요. 예를 들어 함께하는 가게 종류의 지역시민운동을 열어서, 5천원인데 쿠폰 들고 오면 3천원에 주도록 하는 거예요. 지역사회운동하고 탈시설화하고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3천원의 신화’, 정말 극복해야 하는 과제라고 봐요. 탈시설화 주장하면, 파이를 늘리자면서 그룹홈 늘려야 한다고 하고, 시설예산 늘려야 한다는 식으로 가지 말고, 이 부분에 대해서 정확하게 짚어야 한다고 봐요. 저는 탈시설화의 문제에 있어서 자립생활 영역하고, 공급자 중심의 전달체계라고 하는 부분, 결국 권력의 문제가 되겠죠, 이 두 가지를 짚지 않는 이상 탈시설화의 정확한 모델링은 힘들다고 봅니다. 임성만 : 국회에서 정책 토론할 때도 얘기 많이 했어요. 시설에 비용이 많이 들어가요. 예를 들어 1인당 보호수가가, 시설보호의 예산이 천만 원이 넘어섰어요. 연간 운영비하고 관리운영비하고, 인건비, 생계비 다 합쳐서 원생의 수로 나누면 연간 천 만원 가까이 됐단 말이에요. 그 돈을 만약에 장애인의 원가정에 지원하거나 당사자에게 지원하면 시설에 있겠어요? 그런데 시설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거예요. 탈시설, 반시설, 다 찬성해요. 그 사람들에게 줬다고 해서 옳으냐 하면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정신지체나 따로 얘기 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사실이기 때문에 그래요. 노령장애인 숫자가 굉장히 늘어나고 있어요. 노령장애인들이 지역 속에서 재미있게 안전하고 의료적인 서비스가 이루어지려면 쉽지 않아요. 원가정에 백만 원씩 준다고 했을 때 과연 그 원가정에서 이뤄질 수만 있다면 저는 동의해요. 그러나 실질적으로 냉정히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어요. 노령화되는 문제라든지, 어떤 방식으로 지원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필요는 있다고 봐요. 그러나 지원방식의 개발을 냉철하게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국가의 재정이 지원된다고 하면 그 서비스가 필요한지 안 필요한지를 점검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해요. 점검되어야 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받고 있는지 확인되어야 하고 사후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거죠. 지금은 시설과 개인 간의 상황으로 들어가는 거 아니에요? 미인가시설은 더욱더 그렇고. 그렇게 후진적인, 기준도 없고 지향하는 것도 뚜렷치 않은 그런 방식에 대해 전면적인 손을 봐야 한다는 것은 찬성합니다. 이석구 : 장애인이라는 집단을 문제의 집단으로 본다는 거죠.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요.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적은 비용으로. 그런 차원에서 시설의 문제는 사회가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어떻게 규정하는가를 전환해야 하는 측면에서 같이 고민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시설 하나를 없애고 프로그램으로 전환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 문제를 어떤 방향으로 풀어나가고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각각의 교육, 노동, 지역사회, 복지관, 자립생활센터가 어떤 역할을 함으로써 어떤 결과물을 도출해낼 것인가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이 없는 것이 제일 큰 문제인데, 그려나가는 과정에서 시설이라는 것이 가장 핵심에 놓여 있어요.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똑같이 사례가 권리조약에서도 나왔었어요. 엔지오들이 ‘선택의 환상에 빠지지 말라’고 주장했어요. 조한진 교수님도 말씀하셨지만 비장애인들이 누가 그곳을 선택하겠어요? 좋은 것을 선택하잖아요. 그런데 장애인들은 두 가지 놓고 선택할 때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선택할 수 있다는 좋은 의미의 단어가 갖고 있는 뉘앙스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 이상호 소장님은 전달체계 얘기를 주로 하셨는데, 장애인당사자나 가족에게 직접 지원되면 상당부분 해결된다고 보십니까? 이상호 : 수용시설부터 지역사회 재활시설까지 전달체계 전체의 문제라는 거예요. 공급자의 파이가 너무 크다는 겁니다. 탈시설화의 방편으로 그런 제도들을 선택할 수 있다는 거예요. 섬세하게 활동보조인제도, 연금, 이런 식으로 될 것 같지가 않다는 거예요. 자립생활을 우리나라에서 토착화하려면, 지역사회에 나와야 하잖아요. 활동보조인 서비스제도가 완벽하게 정비되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그러면 전이시킬 것이냐의 문제가 있습니다. 시설의 예산을 쪼개서 엔 분의 1로 주자는 거예요. 현물지급 방식으로. 그것을 가지고 활동보조인을 구매하든, 연금으로 쓰든 자기가 알아서 하면 된다는 거죠. 이석구 : 그 돈을 가지고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나 시스템이 있나요? 이상호 : 장애인당사자가 구매력이 생기면 서비스는 구축될 수밖에 없지 않나요? 조한진 : 바로 그거죠. 선택을 하려는데 선택할 거리가 없지 않느냐? 자장면만 있는데서 어떻게 짬뽕 달라고 하냐? 그렇게 따지자면 시설을 많이 만들어야 되요. 한 선택의 옵션이라고 한다면 권한이 바우처가 됐든 현물이 됐든 장애인에게 주어지면, 그것을 가지고 먹고 살려는 사람이 있으면, 자동적으로 시설의 질이 개선될 수가 있어요. 시장논리지요. 인권이 탄압되는데 누가 돈 주고 가려고 하겠습니까. 질 나쁜데 누가 가려고 하겠어요. 거꾸로 생각하면 시설이 양적인 부분도 따라오고, 질적인 부분도 따라올 수 있다는 거죠. 보건복지부는 시설을 중요시하는 관점이 꽉 잡고 있어요. 협상의 전략으로 봤을 때 ‘탈시설화하면 얼어 죽고 하기 때문에 좀 그렇겠죠?’ 이런 식으로 나가서는 안 돼요. 협상할 때는 ‘시설은 없애버려야 한다’고 나가야 절충점이 있는 것이죠.
이상호 : 저는 지적장애인 영역 빼고 시설은 축소되고 있으며, 지적장애 외의 다른 장애유형도 시설 인권의 문제는 줄어들고 있다는 판단과는 좀 다르거든요. 지적장애인 아니어도 메이저 시설이 있어요. 운영되고 있고 온갖 엄한 짓 다 하고 있어요. 에바다만 봐도 그렇잖아요. 청각장애인이 지적장애인인가요? 아직도 주몽재활원 있고 삼육재활원 있어요. 메이저는 아직 잘 굴러가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자정능력이 안 된다면 밖에서 자극을 줘야 한다고 봐요. 임원장님 말씀대로 새로운 시도들은 있어야 하는데요. 정부의 정책적 의지가 획기적으로 전환이 되어야 가능하잖아요. 그것을 누가 할 거냐는 게 문제죠. 국가정책이 획기적으로 바꿔야 할 텐데 푸쉬가 있어야 하니까 ‘너네 싸워라’라고 하면 안되거든요. 아무 노력도 안하고 권력의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 결론적으로는 공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봐요. 연합을 해야죠. 해당 조직의 특수성이 있기에 한계가 있다고 하면 객관적 판단에 따라 서로의 합의에 기초해서 역할을 나눌 수는 있겠죠. 그런데 ‘그냥 동의하니까 너희는 가서 싸워’ 이런 식은 아니라는 거죠. 여기서 나온 얘기 다 좋은데 결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사회 : 정리를 해야 하는 결론 단계에서 오히려 더 풍부한 얘기가 나왔네요. 오늘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일단 ‘시설이 우리의 선택지가 아니다, 장애인에게 권한을 부여해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진짜 선택이다’라고 하는 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합의가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거기에 전제조건으로 장애인을 바라보는 관점, 가치가 달라져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구요. 탈시설, 반시설로 가기 위한 다양한 방식 등에서는 약간의 의견 차이가 있었는데요. 시설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기본적으로 싸워야 한다는 전제하에서 힘을 합쳐야 하는데, 하루아침에 힘이 합쳐지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을 확인해나가고 합의점을 모아가는 과정에서 진짜 힘이 합쳐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좌담회가 의미 있는 자리가 되었을 거라고 보고요. 참석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면서 좌담회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