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한자실력이 올 가을철 기업 입사시험 당락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되고 있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의 경우 신입사원 공채 때 한국어문회에서 실시하는 한자등급시험에서 1급을 얻은 응시자는 500점 만점인 삼성 직무적성검사(SSAT)에서 20점, 2급은 15점, 3급Ⅰ은 10점을 각각 가산해 준다.
삼성은 글로벌 일류기업이 되려면 사원들이 영어뿐 아니라 한자도 익혀야 한다는 판단아래 사원들에게 필수한자를 모은 책 '비즈니스 한자'도 나눠주고 있다.
SK는 신입사원 모집 때 실시하는 종합적성검사에 한문실력을 묻는 질문을 20문항 포함시키고 있다. 종합적성검사는 모두 400문항으로 구성돼 있다.
금호아시아나는 신입사원 공채때 서류전형 합격자들에게 인적성검사와 함께 한문시험을 따로 실시한다.
금호아시아나측은 "업무에 필수적인 한자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한문시험을 따로 실시하고 있다"면서 "3급정도의 한문실력을 지닌 사람이면 무난히 합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LG그룹은 따로 한자시험을 치르지 않고 있으나 일선 사업부서에서 사원을 뽑을 때 부서의 성격에 따라 한자실력을 감안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그룹 관계자는 전했다.
대한상의와 전경련 등 경제단체들이 사원채용 때 한자실력을 반영할 것을 회원사들에게 권하고 있는데다 실질적으로 중국, 대만, 홍콩, 일본 등 한자문화권에 대한 수출 및 투자가 갈수록 늘고 있어 입사때 한자실력을 평가하는 기업이 앞으로 계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연하
올해 삼성 이건희(李健熙) 회장의 신년사는 한자(漢字)가 30%를 차지했다. 이 회장은 매년 신년사의 기본 틀을 자신이 직접 짠다. 특히 핵심 어휘는 반드시 한자 표기를 고집한다. 기업구조조정본부 기획·홍보팀은 전체 문맥과 적절한 한자 구성비율 등을 검토 한 후 이 회장의 재가를 받아 팸플릿이나 사내 인터넷으로 신년사를 내보낸다.
올해 신년사처럼 보통 신년사의 30%는 한자로 이뤄진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안홍진 상무는 “신년사는 한해 목표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 한자 강조의 메시지를 함께 전달한다”고 말했다. 신년사만이 아니다. 삼성전자·카드·생명 등 그룹 전 계열사에서 작성하는 보고서 역시 상당 부분이 한자로 채워지고 있다. LG·SK 등 다른 대기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다.
최근 삼성카드 임원에게 올라간 신용사회 캠페인 관련 3쪽 분량의 보고서는 마치 중국이나 일본 보고서를 방불케 할 정도로 한자 천지다. ‘大學生(대학생) 信用敎育(신용교육) 展開(전개)’, ‘靑少年(청소년) 金融敎育(금융교육) 協議會(협의회) 支援(지원)….’ 보고서에 쓰인 1049개 글자 가운데 359자만이 한글과 영자였을 정도다.
이달 초 삼성전자 부사장에게 올라간 거래위험 예방 관련 보고서도 40%가 한자였다. 삼성전자의 한 직원은 “보고서의 示顯(시현)·推移(추이) 등 단어들이 처음에 쉽게 와닿지 않아 당황했다”며 “예전엔 한글 프로그램에서 한자 변환을 기계적으로 했지만 요즘엔 자신 없는 한자는 꼭 써본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최우량 기업이자 대학생들이 취직하고 싶은 1위 기업인 삼성의 문서에 한자가 늘고 있다.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중국 등 한자문화권을 이해하고, 현지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선 한자 숙달이 필수”라는 지론을 이건희 회장 스스로 실천하고 임직원들이 이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이종진 부장은 “작년 8월부터 한자 사용을 그룹 차원에서 적극 장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월엔 사원 및 대리급 직원 7만여명이 삼성이 자체 제작한 421페이지 분량의 ‘비즈니스 한자’ 책자를 한 권씩 받았다. 經濟指標(경제지표), 機關投資(기관투자) 등 경제 용어 4000여개가 자세히 설명돼 있어 주로 보고서 작성 때 ‘한자 바이블’로 이용되고 있다.
한자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인센티브도 주고 있다. 삼성은 올 하반기 그룹 공채를 실시하면서 한자능력 3급이상 자격증을 갖고 있는 지원자에게 가산점 10~20점을 주기로 했다. 한자 자격증 유무가 당락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신입·경력사원 교육에 2시간 동안의 한자 강의도 작년 11월부터 추가했다.
삼성물산 이상현 대리는 “보고서를 접하면서 다양한 한자를 익히다 보니 직원들이 중국·일본어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바깥에선 ‘미래 기업 삼성에 웬 한자냐’고 묻지만 한자를 쓰면 쓸수록 시야가 더 넓어진다는 것이 ‘삼성맨’들의 생각이다.
서울대 언어학과 김주원 교수는 “한자에 숙달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당연히 한자문화권의 언어 및 문화 이해 속도가 훨씬 빠르다”며 “기업들이 영어뿐만 아니라 한자를 함께 권장하면 직원들의 국제화 능력이 더욱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