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플하우스 : 24시 미국 기사식당이 ‘국민 팬덤’을 만든 전략
롱블랙 | K 2023.03.07
롱블랙 프렌즈 K
술 마신 다음 날, 미국인은 어디로 해장하러 갈까요. 1위가 타코벨, 2위가 맥도날드, 3위가 ‘와플하우스Waffle House’ 래요. 처음 들어봤다고요?
미국에서 와플하우스는 ‘서민 밥집’ 혹은 ‘기사식당’으로 통해요. 가격대는 3달러부터 10달러대. 오믈렛부터 팬케이크, 해쉬브라운을 팔죠. 한국으로 따지면 김밥천국 정도? 365일 24시간 영업하기 때문에, 장거리를 달리는 트럭 운전기사들이 자주 찾아요.
덕분에 미국 26개주, 2700여개 지점에서 활발히 영업중이에요. 연 매출 추정치는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 2022년 미국 브랜드 선호도 조사에서 치폴레, 인앤아웃에 이어 F&B 분야 10위에 랭크됐죠.
누런 천장등, 새빨간 인조가죽 의자, 투박한 원목 테이블이 놓인 ‘미국 서민 밥집’은 어떻게 국민 브랜드로 자리매김했을까요.
Chapter 1.
트럭 운전기사의 쉼터로 출발하다
‘누구나 저렴한 가격에 식사할 권리가 있다.’ 와플하우스가 67년 간 바꾸지 않은 사명이에요. 2017년 나란히 세상을 떠난 창업자 조 로저스Joe Rogers, 톰 포크너Tom Forkner의 소신이었죠.
조는 1919년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1929년 대공황 이후, 아버지는 일자리를 잃었어요. 가족은 배고픔에 허덕였죠. 조는 음식 걱정이 싫었어요. 세계대전에서 돌아온 뒤, 1947년 코네티컷Connecticut의 패스트푸드 식당에 요리사로 취업했죠.
조와 톰이 만난 건 1955년입니다. 조가 내놓은 주택을 톰이 사들인 게 계기였어요. 사업을 준비하던 조, “돈 없는 노동자를 배불리 먹일 24시간 레스토랑을 만들겠다”며 꿈을 털어놨어요. 톰은 “멋진 아이디어”라며 호응했죠.
둘은 애틀랜타Atlanta 외곽에 레스토랑을 세웁니다. 조가 주방을, 톰이 경영을 맡았어요. 메뉴는 와플, 햄버거, 팬케이크 같은 5~10달러짜리 음식으로 채웠습니다. 와플이 특히 잘 팔려서 상호를 ‘와플하우스’로 지었죠. 우수수 떨어지는 빵가루 때문에, 자동차나 집보단 식당에서 먹기 편했거든요.
와플하우스의 두 공동창업자, 톰 포크너(왼쪽)와 조 로저스(오른쪽). 둘은 미국에 돈없는 노동자를 365일 배불리 먹일 식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와플하우스
졸리고 배고픈 타이밍을 찾아라
조와 톰은 매장을 찾는 ‘화물 운전기사’에 주목했어요. 긴 시간 운전하다 지친 기사들은 소파에 앉아 허겁지겁 팬케이크를 먹고 떠났거든요. 아침엔 새벽 운전을 마친 기사들이, 저녁엔 야간 운전을 떠나는 기사들이 들렀죠.
이들을 사로잡기로 한 조와 톰, 고속도로변에 2호점을 엽니다. 도로에 10미터 길이의 광고판을 세우고, 선명한 노란색 간판을 달았죠. 운전기사의 눈에 잘 띄게 하려고요.
매장 위치에도 기준이 있었어요. 운전기사들이 가장 배고플 만한 구간을 분석했죠. 톰은 직접 차를 몰고 동부 테네시Tennessee와 서부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를 오갔어요. 어디쯤에서 화장실이 급해지는지, 언제 졸음이 밀려오는지 체크했죠.
“트럭이 자주 다니는 도로 근처에, 화장실이 딸린 간이 휴게소를 세웠어요. 간단한 오믈렛이나 해쉬브라운을 팔고, 무료로 화장실을 내어주며 동향을 파악했죠. 비바람이 쏟아지는 날은 ‘찬스’예요. 휴게소를 급히 찾는 트럭이 줄지어 서 있으면, 곧바로 부지를 사들였죠.”
_톰 포크너 와플하우스 공동창립자, 2011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와플하우스는 미국 남부의 도로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긴 시간을 운전하는 화물트럭 운전기사들이 자주 찾았고, 두 창업자는 광고판을 높이 세워, 기사들이 한눈에 매장 위치를 알아보도록 했다. ⓒ와플하우스
Chapter 2.
음식은 유료, 환대는 ‘무료’
와플하우스는 유독 ‘단골 고객’이 많아요. ‘와플하우스에 가면 학교 동창부터 직장 동료, 사촌 동생까지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죠. 지역 주민들이 모여드는 거예요.
‘메뉴 커스터마이징menu customizing’이 단골을 모으는 핵심 전략이에요. 와플하우스는 고객 입맛에 맞춰 메뉴를 바꿔주거든요. 자체 조사 결과, 1955년부터 2021년까지 약 150만 가지의 메뉴 개조가 있었대요.
직원이 단번에 알아듣는 ‘주문 전용 문장’도 있죠. 어떤 고객은 해쉬브라운을 주문할 때 “덮어달라Covered”고 말해요. 그러면 직원이 슬라이스 치즈를 얹어주죠. “싹 다All the way”라고 말하면, 양파 볶음부터 훈제 햄, 할라피뇨 등 웬만한 토핑은 다 뿌려줘요.
직원이 고객의 입맛을 기억했다가, 알아서 만들기도 해요. 직원이 “햄버거에 피클 빼죠Burger without pickles, ya?”라고 말하면, 고객이 “당연하죠Hell yeah”라고 대답하는 식이에요. 오래 알고 지낸 친구 같죠.
이런 전략은 두 가지 효과를 가져왔어요. 메뉴의 단조로움을 피할 수 있고, 고객이 편하게 찾아오는 식당으로 자리매김했죠. 말하지 않아도 나를 알아주는, 친구 같은 직원들이 기다리는 거예요.
와플하우스의 메뉴판. 간단한 오믈렛, 팬케이크, 와플, 해쉬브라운을 먹을 수 있다. 고객이 각종 토핑이나 소스를 입맛대로 배합한 ‘시크릿 메뉴’도 인기다. ⓒ와플하우스
‘기념일 행사 대행’ 자처하는 이유
와플하우스의 또다른 비즈니스 모델은 ‘기념 행사’예요. 밸런타인 데이 프러포즈부터 결혼식, 로컬 아티스트의 공연을 위해 매장을 통째 빌려주죠. ‘케이터링 서비스’도 제공해요. 와플하우스 푸드 트럭이 결혼식이나 생일 파티, 학교 체육대회 현장에 출동하죠.
매장 임대료는 기본 90달러(11만6700원). 시간 당 50달러(6만4900원)를 내면 와플부터 오믈렛, 샌드위치 등 55가지 메뉴를 음식 당 평균 5달러에 대접하죠. 보통의 케이터링 서비스가 인당 70~80달러나 드는 것에 비해, 훨씬 저렴해요. 이렇게 저렴한 대관과 케이터링, 남는 게 있을까요?
“비즈니스적으로 손해 보는 구조지만, 홍보 효과가 탁월해요. 결혼식을 보러 매장을 찾은 이웃 주민들, 밥 먹으러 왔다가 얼떨결에 결혼식에 참석한 손님들이 바글바글하니까요. 와플하우스와 ‘좋은 기억’을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_톰 포크너 와플하우스 공동창립자, 2011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크리스마스엔 직원들이 산타로 분장하기도 해요. 이웃집에 찾아가, 교회와 학교에서 수거한 어린이 장난감을 선물하죠. 땔감이 없는 저소득층 가정엔, 일 년 동안 ‘통나무 은행’을 통해 기부 받은 나무를 베풀기도 하고요.
왜 이렇게까지 할까요? 조와 톰은 말해요. “어떤 식으로든 와플하우스와 연결된 고객은, 매장을 찾아올 것”이라고.
“지난 수십 년 동안, 남부 교외 지역에 타지마할처럼 생긴 호화 식당을 본 적이 있나요? 필요하지 않으니 짓지도 않은 거예요. 지역민에게 필요한 건 ‘이웃 노릇’을 하는 식당 입니다. 먹을 만한 음식과, 따뜻한 정을 챙겨줄 곳이요. 비즈니스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_톰 포크너 와플하우스 공동창립자, 2011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와플하우스는 지역 주민의 결혼식장으로 변하거나, 푸드 트럭을 이용해 케이터링 서비스를 지원하기도 한다. 사진은 와플하우스에서 인연을 맺은 부부의 결혼식 사진. ⓒ와플하우스
Chapter 3.
허리케인이 오면 와플하우스에 가라
와플하우스만의 원칙이 또 있어요. ‘어떤 상황에도 문을 쉽게 닫지 말라’는 거예요.
이 원칙은 자연재해가 일어날 때 빛을 발해요. 와플하우스가 밀집한 동남부 지역은 허리케인이 자주 발생해요. 6월부터 11월을 ‘허리케인 시즌Hurricane Season’이라 부를 정도죠. 이 시기에 가게들은 영업을 자제하고, 건물 유지 보수에 집중해요.
와플하우스는 달라요. 허리케인 시즌마다 매장을 ‘폭풍 감시센터’로 바꾸죠. 허리케인의 경로와 피해 규모를 분 단위로 파악한 뒤, 주변 지역민에게 알리는 거예요.
허리케인이 지나가는 길에 위치한 매장엔, 본사에서 ‘점프 팀jump team’을 파견해요. ‘긴급 운영 체제’를 선언하고, 영업에 차질이 없도록 돕죠. 창문과 문을 단단히 보수하고, 팬케이크나 햄버거처럼 전기가 나가도 조리할 수 있는 메뉴를 팔면서요.
덕분에 허리케인이 올 때마다, 와플하우스의 대처가 언론에 보도되곤 해요. 2016년 초강력 허리케인 매슈Matthew*가 상륙했을 때도, 모든 직원이 매장에 출근했죠. 평소보다 70% 저렴한 가격에 음식을 팔았어요. 매장 일부를 피난민의 쉼터로 만들고, 마을에 물과 생필품을 나눠주기도 했어요.
*2016년 9월~10월 사이 대서양에서 활동한 초강력 허리케인. 아이티, 미국 등지에서 9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다.
2011년 미 연방재난관리청FEMA은 아예 ‘와플하우스 지표Waffle House Index’를 만들기도 했어요. 와플하우스의 영업 여부에 따라 허리케인의 위험성을 판단하는 거예요. 와플하우스가 정상 영업 중일 땐 초록 불을, 일부 메뉴가 제한되면 노란불을, 문을 닫으면 빨간불을 밝히죠.
덕분에 와플하우스는 ‘지역민을 돕는 식당’으로 소비자에게 인식될 수 있었어요. 허리케인 시즌 와플하우스의 매출은 평소보다 3배나 뛰죠. 지역민을 돕고 싶어 ‘일부러’ 찾는 소비자들도 많아요.
“고객들 곁에서 끝까지 함께하는 레스토랑임을 각인하고 싶었습니다. 왜냐고요? 50년 전 이 사업을 시작했을 땐 음식이 중요했습니다. 이젠 식품보다 ‘서비스 수준’에 더 신경 씁니다. 조금만 차 타고 가면 훌륭한 레스토랑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오는 이유를 알았거든요. '지속적인 친절함을 선물 받는' 고객은 결코 잃을 수 없다는 걸요.”
_조 로저스 와플하우스 창업자, 2015년 애틀랜타 매거진 인터뷰에서
와플하우스는 허리케인 시즌에 분주해진다. 와플하우스 본사의 임직원들이 허리케인의 동향을 살피며, 재난이 예상되는 지역에 지원팀 파견을 논의하고 있다. ⓒ와플하우스 공식 페이스북
Chapter 4.
와플하우스 챌린지 : 두터운 신뢰로 만든 ‘의리 소비’
지난 3년은 외식업계의 ‘보릿고개 생존기’였죠. 팬데믹과 식량 파동이 겹쳐 식자재 가격이 크게 올랐고, 식당은 줄폐업을 막지 못했으니까요.
와플하우스도 타격이 컸습니다. 2020~2021년 두 해 사이 700개 지점이 문 닫았고, 직원 2만8000명이 해고됐죠. 판매량도 최대 70%나 줄 정도였어요. 그런데 와플하우스는 가격을 동결했어요. 매년 3억 개를 소비하는 계란 가격이 140%나 올랐는데도요.
미식 축구 팬, ‘기부 챌린지’에 동참하다
와플하우스의 가격 정책에 ‘미식 축구 팬’이 호응했어요. 2021년 6월, 자체적으로 ‘와플 하우스 챌린지’를 만들었죠. 규칙은 간단해요. 판타지 풋볼 경기*에서 진 팬이, 집 근처 와플하우스에서 24시간 동안 와플을 ‘최대한 많이’ 먹는 거예요.
*미식 축구 팬들이 즐기는 예측 게임. 플레이어가 임의로 선수단을 만든 뒤, 해당 선수들이 현실 세계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일 때 포인트를 수집한다.
팬들은 진짜로 약속을 지켰어요. 트위터, 인스타그램, 틱톡에 매시간마다 와플 먹는 사진을 올렸죠. 질릴 때마다 토핑과 소스를 바꿔가면서요. 사 먹은 와플 개수만큼, 어린이 식량기금 재단에 기부하는 게 챌린지의 ‘진짜 목적’이었죠. 챌린지 참여자가 낸 와플값을, 와플하우스가 재단에 대신 전달했어요.
“와플을 열 개나 먹은 뒤 다짐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당분간 와플은 쳐다도 안 보겠지만, 와플하우스는 여전히 ‘사회에 건강한 영향을 주는 식당’으로 기억될 겁니다.”
_에나벨 쉔 스튜던트 라이프 편집인, 2022년 와플하우스 챌린지 후기에서
지역 언론은 ‘와플하우스가 문화의 아이콘Cultural icon이 되었다’고 보도했어요. 지역 주민과의 끊임없는 상호 작용 덕분에, 와플하우스가 ‘미국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고 덧붙였죠.
“사람들은 와플하우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음식 맛 대신 ‘매장에서의 추억’을 떠올립니다. 이웃과의 수다, 종업원과의 유대감, 서비스로 나온 다이어트 콜라 같은 것들이죠. 사람 간의 상호작용은 와플하우스를 ‘강렬한 기억’으로 자리하게 만듭니다. 그것이 우리의 핵심 경쟁력이에요.”
_팻 워너 와플하우스 대외 홍보 담당이사, 2020년 컬처트립 인터뷰에서
2021년부터 2022년 사이 미국 전역에서 유행한 와플하우스 챌린지. 판타지 풋볼 리그에서 진 축구팬들이 와플하우스에서 24시간 동안 와플 먹은 후기를 SNS에 올렸다. ⓒLee Sanderlin 트위터
Chapter 5.
누군가에겐 ‘안 가고 싶은’ 식당
와플하우스가 모두에게 환영받는 건 아니에요. 밤낮으로 열려있다 보니, 각종 폭행 사건의 중심지가 되기도 해요. 2011년엔 지역 갱단이 주차장에서 난투극을 벌였고, 2020년엔 유명 래퍼가 술에 취해 유리창을 부쉈죠.
때문에 ‘이상한 방식’으로 입소문을 타기도 해요. 2022년엔 ‘와플 하우스 소동Waffle House Brawl’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유행했어요. 칼을 꺼내든 거구의 남성을 단순에 제압하고, 취객이 던진 의자를 한 손으로 낚아채 내팽개치는 직원의 모습이 유튜브와 틱톡을 통해 퍼져나갔죠.
사람들은 ‘웃긴 영상’ 정도로 소비했지만, 직원들의 반발은 심했어요. 야간 근무자가 안전을 보장 받으려면, 무술이라도 배워야 하냐는 거예요. “위험한 직장에선 일하고 싶지 않다”며 처우를 개선해달라는 목소리가 커졌죠. 심지어 화제의 영상에 찍힌 직원은 와플하우스의 ‘채용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어요. ‘적절하지 않은 대처였다’는 거예요.
인종차별부터 노동법 위반, 성 착취도 와플하우스의 ‘단골 사건’이에요. 종업원이 흑인과 아시아계 고객을 비하해 고소를 당하기도, 전 CEO*가 직원을 성 착취했다는 정황이 보고되기도 했죠.
*공동창업자 조 로저스의 아들인 조 로저스 주니어Joe Rogers Jr.가 CEO로 일하던 2012년 고소당했다.
마치며 : ‘모두를 위한 식당’이 될 수 있을까
톰과 조는 수십 년간 “와플하우스는 식품 사업이 아닌 사람 사업”이라고 강조했어요. 그만큼 사람을 소중히 대하라는 뜻이었죠. 와플하우스는 두 창업자의 정신을 잊은 걸까요?
“고용주와 종업원에게 늘 강조합니다. 소득 격차에 따라, 인종에 따라, 나이에 따라, 행색에 따라, 성향에 따라 차별하지 말 것. 매장을 찾은 사람, 일하는 사람에게 활기찬 목소리로 ‘안녕하세요!Hello!’하고 인사할 것을요. 이런 일관된 태도가 ‘일하고 싶고, 가고 싶은 레스토랑’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_조 로저스 와플하우스 창업자, 2015년 애틀랜타 매거진 인터뷰에서
와플하우스도 이런 문제를 알고 있어요. 월터 에머Walter Ehmer CEO는 2020년 직원 교육을 개정하며 ‘고질적인 문제’를 언급했죠. 고객을 차별하는 행위, 고객이나 직장 동료의 성희롱, 식품위생법 위반은 엄중한 대가를 치를 거라고요. 본사 핫라인을 만들어, 직원이 언제든지 신고하도록 했죠.
명과 암이 공존하는 와플하우스, 과연 ‘모두를 위한 식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요? 와플하우스를 ‘보기 드문 소통 창구’라 평가한 GQ 에디터의 말을 인용하며, 노트를 마칠게요.
“와플하우스에서, 서로 다른 피부와 인종, 국적을 가진 이들은 ‘평범한 사람들’로 하나 됩니다. SNS에서 서로를 차별하고 미워하던 사람들도, 와플하우스에서 직접 얼굴을 마주 보며 ‘건강한 대화’를 경험하죠.
미국의 근본이 어땠나요?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서,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대화’를 통해 이견을 좁혀나갔습니다. 디지털로 인해 개인의 성향이 고립되는 상황 속에서, 와플하우스는 식당을 넘어 ‘소통 창구’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와플하우스는 ‘사람다운 삶’을 실현하는 공간입니다.”
_랭 휘태커 GQ 에디터, 2017년 기사에서
와플하우스는 국민적 팬덤을 가진 동네 식당이지만, ‘미국 사회문제의 축소판’이란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인종 차별, 총기 난사, 부당한 노동자 처우 등 다양한 문제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범죄의 온상이 아닌, ‘지역 주민의 커뮤니티’로 거듭나려면 많은 보완이 필요해보인다. ⓒ와플하우스
롱블랙 프렌즈 K
우리가 동네 밥집에 기대하는 건, 어쩌면 ‘정서적 안정’이 아닐까요? 익숙한 음식을 대접하면서, 편히 들를 곳이 돼주잖아요. 와플하우스가 재난을 돕고, 기념일을 축하한 것처럼요. 다만 조금 더 안전한 곳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노트를 요약해볼까요?
1. 와플하우스는 트럭 운전기사의 쉼터로 출발했어요. 도로변에 매장을 세우고, 와플이나 팬케이크처럼 간단히 먹을 음식을 팔았죠.
2. 직원들은 고객의 입맛과 취향을 기억해요. 원하는 재료나 소스를 더해 ‘시크릿 레시피’를 제공하기도 하죠. 지역 주민의 기념일을 축하하기도 해요.
3. 허리케인이 들이닥치면, 와플하우스는 폭풍 감시센터가 됩니다. 매장 일부를 피난민 쉼터로 만들고, 평소보다 70% 저렴한 가격에 음식을 팔죠.
4. 문제도 많아요. 도시 외곽에 24시간 운영하다보니, 각종 범죄의 온상이 되기도 하죠. 종업원의 고객 차별로 인한 소송도 일어나요.
5. 앞으로 와플하우스가 시끄럽기만 한 밥집이 될지, 지역 주민을 위하는 커뮤니티가 될지 지켜봐야겠어요.
롱블랙 피플이 소개하고 싶은, 나만의 동네 밥집이 있나요? 슬랙 커뮤니티에서 슬쩍 소개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