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문 (金仁問)
생몰년 : 629~694
열전 : 자 인수(仁壽). 태종무열왕의 둘째 아들. 문무왕의 아우. 651년(진덕여왕 5)에 왕명으로
당(唐)나라에 가서 숙위(宿衛)하여 좌령군위장군(左領軍衛將軍)이 되고 653년에 귀국하여
압독주총관(押督州摠管)이 되어 장산성(獐山城)을 쌓고, 국방을 튼튼히 하였다. 뒤에 당나라에
파견되어,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의 조직에 성공했고, 660년(태종무열왕 7)
신구도행군부대총관(神丘道行軍副大摠管)으로 소정방(蘇定方)과 연합하여 백제(百濟)를
멸망시켰고, 파진찬(波珍)·각간(角干)으로 승진되어 당나라에 머물렀다.
665년(문무왕 5년) 숙위하던 김문왕(金文王)이 죽자, 제5차로 당나라에 가서 숙위하였고,
666년에 당나라 고종(高宗)으로부터 우효위대장군(右驍衛大將軍)에 임명되고,
668년(문무왕 8)에 귀국하여 20만 군사를 동원, 당군(唐軍)과 연합하여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679년(문무왕 19)에는 당경(唐京)에 머물면서,
진군대장군행우무위위대장군(鎭軍大將軍行右武威衛大將軍)이 되었다. 690년(신문왕 10)
보국대장군상주국임해군개국공좌우림군장군(輔國大將軍上柱國臨海郡開國公左羽林軍將軍)이
되고, 694년(효소왕 3) 당경(唐京)에서 병사(病死)하였다. 영구는 신라에 호송되고
효소왕으로부터 태대각간(太大角干)이 추증(追贈)되었다. 유학의 대가로도 이름을 떨쳤고,
사어(射御) ·향악(鄕樂) ·예서(隸書)에도 능하였다.
첫댓글 황산벌에 나오던 통역 맡으신 사람이군요.....
아...황산벌에 통역하던 아저씨..꽤 싸가지가 없던 아저씨 인걸로 기억 나는데;;; 소정방이 김유신장군한테 올해 몇살 되냐고 물어보니까, 김인문 아저씨의 짤막한 통역 '몇살 묵었노?" 황산벌을 광적으로 봤던 사람의 얘깁니다;;;
김춘추대왕 즉위 이후 당나라와 신라 간의 유대관계 외교에 큰 공헌을 한 인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인물을 영화라는 허구에 빚대어 논하지 맙시다.
김인문이.. 꾀 좋은 인물이죠 당에 가 있어서 그렇지. 김유신이 외삼촌인데 그렇게 막 대할수 있나요..
신라인물정말많군요
백제멸말후 당나라의 야욕을 미리 신라조정에 알으켜 사전에 예방하는 역할과 신라사정을 당나라에 최고의 외교술로 무마시킨 공로와 인문을 왕으로 삼아 문무왕을 축출하기 위한 당나라 계략을 따르지 않는 참으로 형제간 우애와 신라를 끝까지 지킨 훌륭한 인물입니다, 외교력은 거의 만점 수준이죠!
김인문은 신라 29대 태왕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둘째 아들이자 신라 30대 태왕 문무왕 김법민의 아우이다. 그는 653년 중국 당나라로 들어가 나당 연합군을 결성하고,660년 중국 당나라 대총관 소정방과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키고,668년에는 강대국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이후 계속 중국 당나라에서 머물려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