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20:14-30
찬송가 410장 ‘내 맘에 한 노래 있어’
이스라엘 분열왕국시대 남 유다 4대 왕 여호사밧이 통치할 때, 하나님의 영이 한 사람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때는 여호사밧이 개혁을 단행한 이후 어느 날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실 때는 남 유다에 국가적 위기가 있었습니다. 모압과 암몬과 마온 사람들이 연합하여 남 유다를 치려고 했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국가적 위기에 두려움을 느꼈지만, 그 두려움에 함몰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혼자 기도한 것이 아니라 백성에게 금식을 공포하며 함께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한 사람에게 임하시므로 그 사람을 통해 기도 응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왕도 선지자도 아닌 레위 사람이었습니다. 왜 많은 사람 중 이 사람이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경륜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한계를 지녔습니다. 에베소서에서 증거하듯이 우리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택함을 받은 것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처럼 위기에 처한 남 유다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는 오묘할 따름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호사밧과 남 유다 백성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 응답의 내용, 그 응답이 이루어지는 과정, 그리고 남유다 왕국에 임한 태평과 평강을 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야하시엘에게 임하셨으니, 야하시엘이 이르되(14-17)
14 여호와의 영이 회중 가운데에서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셨으니 그는 아삽 자손 맛다냐의 현손이요 여이엘의 증손이요 브나야의 손자요 스가랴의 아들이더라
여호와의 영은 성령님을 가리킵니다. 성령님이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는 제사장 가문이 아닌 아삽의 후손이었습니다. 아삽은 성전에서 노래하는 직무를 맡은 사람이었으므로 그의 후손 야하시엘 역시 찬송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성전에서 찬송하는 사람에게 성령님이 임하신 것은 찬송의 중요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앞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찬송이 있으리라는 복선이기도 합니다.
15 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야하시엘을 통해 위로의 말씀을 주십니다. 모압 연합군이 쳐들어왔지만, 전쟁은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알려주십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상 모든 전쟁이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전쟁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전쟁의 승패를 주관하심은 지극히 당연한 말씀이지만, 여기서 전쟁이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 전쟁에서 싸우실 것이고 승리를 보장해 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승리를 주실지를 알려주십니다.
16 내일 너희는 그들에게로 내려가라 그들이 시스 고개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그들을 만나려니와 17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하나님께서 내려갈 때를 알려주셨습니다. 마치 짜놓은 각본처럼 남 유다가 내려가면 모압 연합군이 올라올 것인데 그때 그들을 만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일반적으로 전쟁에서 양 군대가 만나면 다음 순서는 전투를 벌이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싸울 것이 없고 대열을 이루어 서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남 유다는 전쟁터의 구경꾼이 되고 하나님께서 적군과 싸우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여호사밧과 백성이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몸을 굽히고, 얼굴을 땅에 대고, 경배하고, 찬송하니라(18-19)
18 여호사밧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도 여호와 앞에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하고 19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니라
하나님께 기도할 때 여호사밧과 백성이 함께 하였듯이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할 때에도 왕과 백성이 함께 했습니다. 그들이 승리에 대한 예언을 들었더라도 승리한 후 감사와 경배를 드려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결코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이들의 감사와 경배는 성급한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입니다. 여호사밧의 이후 행보에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20-21)
20 이에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여호사밧 왕이 백성들에게 강조한 말은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를 신뢰하라는 것은 곧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도가 높을수록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대용품은 사라질 것이고 우리의 삶은 견고해지고 형통해질 것입니다.
21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여호사밧 왕은 전날에 이어 백성들의 출정 당일에도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렸습니다. 감사의 내용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입니다. 인자하심은 히브리어 ‘헤세드’를 번역한 말로써 이를 다른 말로 ‘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은혜가 신기하고 놀라워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목할 점은 여호사밧이 노래하는 자들을 택할 때 ‘백성과 더불어 의논했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이 올바른 일이라고 할지라도 여호사밧은 혼자 결정하지 않고 백성과 의논하였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기도할 때부터 경배와 찬송할 때까지 백성과 함께 하였습니다. 이를 보면, 여호사밧은 승리 후에도 백성과 함께 기쁨을 나눌 것임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그들이 패하였으니(22-23)
22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23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전쟁이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말씀을, 하나님께서는 복병을 두어 승리하게 하심으로 성취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복병을 어떻게 두셨는지 그리고 그들이 누구인지를 성경이 전하지 않으므로 알 수 없습니다만 중요한 점은, 남 유다 백성이 한 일은 하나도 없었으며 오직 하나님께서 일하셨다는 점입니다. 22절의 암몬과 모압과 더불어 언급된 세일 산 주민들은 1절에 기록된 마온 사람들의 다른 호칭으로 봅니다. 남 유다의 승리 과정을 보면, 첫째는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신 복병이 모압 연합군을 쳤고, 둘째는 모압과 암몬 무리가 자신들의 연합군인 세일 산 주민들을 쳤고, 셋째는 모압과 암몬이 서로 쳤습니다. 둘째와 셋째 과정의 이유 역시 우리는 알 수 없으나 중요한 점은 하나님께서 자중지란(自中之亂)이 일어나도록 하셨다는 점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이 전쟁이 하나님께 속했음을 증거합니다. 남 유다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승리를 얻었습니다. 그들이 이후에 한 일이 무엇인지를 다음 구절이 증거합니다.
적군의 물건을 탈취할새, 사흘 동안에 거두어들이고(24-25)
24 유다 사람이 들 망대에 이르러 그 무리를 본즉 땅에 엎드러진 시체들뿐이요 한 사람도 피한 자가 없는지라 25 여호사밧과 그의 백성이 가서 적군의 물건을 탈취할새 본즉 그 가운데에 재물과 의복과 보물이 많이 있으므로 각기 탈취하는데 그 물건이 너무 많아 능히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으므로 사흘 동안에 거두어들이고
하나님께서 첫째 둘째 셋째 과정을 통해 남 유다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셨습니다. 남 유다 사람이 본 것은 모압 연합군의 엎드러진 시체들뿐이었습니다. 적군 중 한 사람도 피한 자가 없었습니다. 유다 백성이 한 일은 적군이 남겨둔 물건을 취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적군이 남겨둔 것을 취하는데 사흘이나 걸릴 정도로 취할 물건이 매우 많았습니다. 국가적 위기에 직면한 남 유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이 적군의 물건을 취한 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모여서, 여호와를 송축한지라(26-28)
26 넷째 날에 무리가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한지라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곳을 브라가 골짜기라 일컫더라 27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사람이 다시 여호사밧을 선두로 하여 즐겁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이 그 적군을 이김으로써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28 그들이 비파와 수금과 나팔을 합주하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전에 나아가니라
3일 동안 전리품을 수거한 다음, 넷째 날 여호사밧 왕과 남 유다 백성이 모여서 한 일은 하나님을 찬송한 일입니다. 찬송의 장소는 어느 골짜기였는데, 하나님께서 승리의 복을 주셔서 찬송한 장소였기에 ‘복을 받다’와 ‘찬송하다’는 의미를 가진 ‘브라가’ 골짜기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찬송은 브라가 골짜기에서 한 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까지 즐거움이 이어졌으며, 예루살렘 성에 도착해서는 비파와 수금과 나팔로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찬송은 노래와 악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와 삶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남 유다의 기쁨의 찬송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을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께 올려드린 찬송의 기쁨은 또 다른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방 나라에는 두려움, 여호사밧의 나라에는 태평과 평강(29-30)
29 이방 모든 나라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적군을 치셨다 함을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30 여호사밧의 나라가 태평하였으니 이는 그의 하나님이 사방에서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음이더라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는 한 번 전쟁의 승리로 그치지 않고 이방 모든 나라가 남 유다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남 유다의 태평과 평강으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서 ‘평강’은 ‘샬롬’을 번역한 말은 아닙니다. 평강으로 번역한 원어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후 주신 안식과 같은 뜻을 가졌습니다. 전쟁 후 누리는 안식과 쉼은 샬롬의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간구하고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또 다른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된 우리 인생이 한 번 은혜를 받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영원한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에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사람을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켜주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위기를 맞을 때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외면하지 않으시고 오묘하게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창세 전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고 앞으로 영원토록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살아가겠지만, 매순간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눈에 보이는 뚜렷한 결과가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함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게 하시옵소서.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함으로 평강의 은혜를 누리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국가적 위기 가운데 여호사밧이 백성을 기도로 이끌었습니다. 가족 또는 다른 공동체에서 기도로 이끈 적은 언제였습니까?
2.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가 높아, 눈에 보이는 결과와 무관하게 하나님께 찬송을 드렸을 때를 생각해 봅시다.
3. 남유다 전쟁에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도 사흘 동안이나 전리품을 취했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음에도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복)을 세어봅시다.
4.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것과 하나님을 향해 창문을 여는 것과 어떤 연관이 있겠습니까?
(작성: 김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