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에 반해서 (그 많던 물고기들은 어디로 갔을까)
월광수변공원은 내가 첫눈에 반해서 결혼까지 하게 된 곳입니다. 1987년 11월 초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장애인의 초대로 처음 이 마을을 만났습니다. 장애인 엄마가 꼭 내게 밥 한 끼 해 먹이고 싶어 한다고 장애인의 거듭된 부탁에 따랐던 것입니다. 정성을 들인 소박하고 건강한 밥상을 받은 뒤 장애인이 안내해 주는 대로 수밭못(월광수변공원의 옛이름 행정구역 명은 도원지) 둑을 걸으며 마치 내가 다른 세계에 온 듯 감격했습니다.
그때는 보훈병원도 주변 건물은 물론이고 아파트 단지도 없었습니다. 못 안쪽으로 바라보는 풍경은 한 폭의 살아있는 그림이었습니다. 만추의 산야가 얼마나 황홀하던 지요. 못 아래를 봐도 마을보다는 들이 넓었고, 못과 이어진 냇물이 흐르는 길 오른쪽으로 이어진 마을이 있고, 언덕에 가려져 장애인의 집과 내가 시집 온 집이 있는 못 아래 첫 마을은 언덕에 가려 다 보이지 않았습니다. 원덕(옛 도원동의 마을 이름) 마을을 지키 듯 양쪽으로 팔 벌린 당상나무(느티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 몇몇 사람은 신선처럼 보였습니다. 이곳은 날마다가 시가 되고 노래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곳의 풍경에 반하는 사이 나를 마음에 담은 분이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날 나를 며느리로 찜했다는 어머님의 밀어붙이기로 넉 달 후에 나는 이 마을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장애인 엄마의 주선으로 맞선을 본 남편에게 반했던 것도 아니고, 특별한 끌림이나 매력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정신없이 결혼을 하고 아들까지 낳은 뒤에야 알았습니다. 내가 왜 결혼을 했을까 하는 물음의 근원을 따라가 보고서야 수밭못 때문이라는 걸요. 풍경에 반해서 사람도 안 보고 시집 간 여자가 또 있을까요?
그러나 모든 것은 꿈꿀 때 아름답고, 기다리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것인가 봅니다. 날마다가 그림이고 시가 될 것 같았던 삶의 현실은 고된 노동과 한숨과 눈물의 연속이었습니다. 타고난 낙천적인 성격 때문인지 문만 열면 바라보이는 초록의 언덕과 청룡산이 위로가 되고 참을 힘을 줬습니다. 가까이 있지만 수밭못을 찾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나는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차를 운전해 집으로 가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가끔 수밭못을 찾습니다. 예전과 달리 주차장도 있고 물 위와 산길을 이어놓은 둘레길도 있습니다.
바쁘지 않을 때 가끔씩 걷는 둘레 길은 참 좋습니다. 산으로 연결되어 있어 운동도 되고 옛날 생각도 나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상쾌한 바람을 느끼는 것은 덤입니다. 햇살이 있을 때는 반짝이는 물비늘을 감상하고, 고요한 물위에 동그라미를 그리는 오리를 보는 것도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물 위의 산책로를 걸으며 바라보는 석양은 가슴을 뛰게 합니다. 겨울에도 재미있는 길입니다. 얼음 구멍으로 쏘옥 쏙 머릴 내미는 수달의 귀여움은 또 어떻고요. 그런데 그런데 그렇게 힐링이 되던 수밭못이 풀밭이 되어버렸습니다. 물이 사라진 못은 위안이 아니라 염려의 밭이 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만큼 환경도 오염이 가속화 되어서 일까요. 월광수변공원의 물이 거의 다 사라진 것은 인위적으로 수문을 열어 물을 빼냈기 때문입니다. 저수지의 속이 드러난 걸 처음 보는 터라 많이 놀랐습니다. 물의 방류 이유는 현수막으로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22년 정밀안전진단 결과(취수시설 D등급)에 따라 취수시설 보수를 위하여 도원저수지의 수위조절을 실시하오니 주민 여러분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그 보수 기간이 1년이 넘습니다. 이제 반 년이 지났습니다,
예전 물 위였던 산책로를 걸으며 보니 죽은 조개 무더기가 보입니다. 어른 손바닥 만한 조개들에게는 갑자기 사라진 물은 느닷없는 죽음, 생의 마지막 고문이었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많던 고기들은 저 조금밖에 없는 물속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부딪히는 서로에게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까요. 복작이는 물대신 초록그늘을 만드는 풀밭 아래 뼈를 묻고 하늘로 승화 중인 물고기도 있지 않을까요, 그들의 힘겨운 마지막 숨이 바람을 타고 내 귀에 와 부서집니다. 살고 싶어.
고기들이 마음껏 자유를 누리는 그 옛날 내가 첫눈에 반한 그 넓고 푸른 물의 가슴이 그립습니다. 저수지에 물이 없으니 빈집 같습니다. 사람이 사는 집처럼 저수지는 물고기들이 사는 마을입니다. 갑자기 집을 빼앗기고 몰살당한 조개네 마을에 빨리 새물이 물이 들어 새마을이 조성되어 평화로운 웃음 소리 물비늘로 파닥이는 날 기다립니다. 그때까지 적은 물에 모여 있을 물고기와 조개들이 잘 버텨주길 그래서 생명력 넘치는 물속 마을이 재건되길 소망해 봅니다. 그래도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은 그대로인 듯 참 시원합니다. 나를 스쳐간 바람이 풀밭을 쓰다듬습니다. 풀들이 까르르 넘어졌다 일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