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랑이 울고 있어요(1990)-신정숙
지금도 못잊었다면 거짓이라 말하겠지만
이렇게 당신을 그리워하며 헤매이고 있어요
한적한 그 길목에서 밤깊은 이자리에서
우리가 남겨둔 이야기들이 나를 다시 불러요
당신은 행복을 위하여 돌아서야 했나요
내모든 꿈들은 사라져갔어도 바람이 불면
저 창문가에서 그 사랑이 울고 있어요
우리가 헤어진것은 운명인줄 알고 있지만
이 세상 어딘가 당신이있어 기다림이 있어요
당신은 행복을 위하여 돌아서야 했나요
내모든 꿈들은 사라져갔어도 바람이 불면
저 창문가에서 그 사랑이 울고 있어요
우리가 헤어진것은 운명인줄 알고 있지만
이 세상 어딘가 당신이있어 기다림이 있어요
* 김창완씨가 중심이 되어 결성했던 꾸러기들 출신으로 최성수 윤설하 임지훈 현희 신경숙 이길자등이 물쳐서 활동하였다함
꾸러기들이 탄생하기까지…[퍼 옮]
주머니에 라면 한 봉지 값이 없더라도
노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젊은 사람들이 있었던 때가 있었다.
비록 5공화국 시절의 어두운 80년대 중반이었지만
그 무거운 정신적 부담 속에서도
젊은이들은 풋풋함을 잃지 않고
자유와 낭만과 서정과 청춘의 정열을
노래로 만들어 부르고 있었다.
'83년도 봄 무렵, 그런 젊은이들 중의 몇이 당시 젊은 음악의 유일한 기수로 떠오르던 산울림의 김창완을 중심으로 뭉쳤다.
"꾸러기들"이라는 장난끼 어린 이름으로 뭉친 이들은 바로 최성수, 임지훈, 신정숙, 윤설하, 현희 등...
오늘날은 다 알만한 이름들이지만 그때만 해도 음악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무서운 아이들"로 주목 받는 정도의 위치에 있었다.
그들은 산울림의 김창완을 맏형으로 하여 따랐고 또 김창완은 어렵고 힘든 중에도 그들을 잘 보살펴 주고 있었다.
그들은 김창완이 데뷔이래 10년 동안 몸담아 활동하던 대성음반에서 "꾸러기들의 굴뚝여행"이라는 앨범을 내는 한편 라이브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음반제작 -> 라디오 방송 -> TV 출연 -> 신문 연예면 기사>라는공식 코스를 무시한 그들의 활동은 충격이었고, 그런 활동을 전제로 한 그들의 노래"아주 옛날에는 사람이 안 살았다는데..."는 그 소재나 그룹 포크라는 음악형식에서나 파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져 젊은 포크송 매니아들에게 많은 호응을 받았었다.
"장난꾸러기, 잠꾸러기, 말썽꾸러기, 심술꾸러기,
욕심꾸러기... 이렇게 꾸러기가 붙는 명사를 나열하다 보니 별로 존경스런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로 잰 듯 지나치게 깔끔하게 야박한, 그래서 오히려 무미건조한 현대의 사무적인 분위기에 곤혹스런 악동들은 꾸러기가 되어 잃어버린 치기와 동화를 찾으려고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밝은 하늘, 푸른 잔디 위에 두 다리를 뻗고 한껏 기지개를 펴 보이는 이 꾸러기들의 영원한 어리광에 사랑과 관대와 성원의 박수 보내주시기 바라며,
이들과 함께 웃음을 나눠주시기 바란다"던 출발의 변은 그대로가 그들의 솔직한 심경의 토로이기도 했다.
< 꾸러기들… >
꾸러기들은 그때 이미 스타덤에 올라서 있던 산울림의 맏형 김창완, 그리고 지금은 흔들릴 수 없는 스타의 자리에 올라서 있는 최성수, 임지훈, 신정숙, 윤설하, 현희 로 구성된다.
김창완, 그는 이미 설명이 필요 하지 않을 만큼 유명하다. 현재도 활발한 방송활동을 하고 있으며 작사, 작곡 등 창작 활동도 왕성하여 다작하는 중에도 졸작이 하나도 없는 천재형의 음악인이다.
지적이면서도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외유내강의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따뜻한 마음으로 작품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노래하고, 따뜻하게 사랑하며 살고 싶다는, 아무리 나이 들어도 솜털을 벗지 못하는 여린 동심을 가진 만년 소년이다.
최성수, 항상 웃는 얼굴이 따뜻한 가수다. 머리 숱이 좀 적다는 것 외에는 동그스름한 얼굴과 깊은 쌍꺼풀, 그리고 단정한 표정과 몸가짐이 아주 인상적이다.
미성이지만 열정적인 가창과 다이내믹한 표현은 일상의 그와는 아주 다른 모습을 보여 청중을 놀라게 한다.
자기가 부르는 노래는 거의 전부를 자작곡으로 할 만큼 작사 작곡에 능하며, 가사는 아름답고 선율은 고우면서도 긴장감이 있어 듣는 이로 하여금 황홀하게 한다.
임지훈, 자그마한 키에 항상 얼굴에서 익살끼 있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 아주 낙천적이다. 모든 일을 아예 양지쪽에서만 보려는 듯한 그의 시각은 항상 벙글거리는 그의 인상에서도 풍긴다.
남에게 관대하고, 그래서 남을 비난할 줄 모르는 그는 영원한 동안의 소유자. 저음이지만 음폭이 아주 넓고, 섬세하게 절제된 창법은 그의 노래의 호소력을 극한에 이르게 하여 그의 통기타 라이브 공연은 항상 만원이다.
신정숙, 노래 잘하는 가수, 라이브에 강한 가수, 댄싱 퀸 등 가수로서 바람직한 애칭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화끈하게 스타덤에 오르지 못한 이유는 너무 꼼꼼하고 성실하고 그래서 타협할 줄 모르는 그의 인생관에 있는 것 같다.
그의 생활태도는 본인의 의도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긴장시켜 곧잘 충돌하기도 한다. 그저 자기 사는 모습이 어머니에게 만족하게 보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드물게 보는 효도파이다.
윤설하, 딱 선머슴아 같은 차림으로 기타 하나 등에 메고 거리를 활보하는 그를 보면 꼭 "기타 하나, 동전 한 잎"이라는 노래를 생으로 보는 것 같은 감을 느끼게 한다.
흑인 영가나 허무감이 진하게 베인 포크 계열의 국내곡이나 팝송 등 비교적 고난도의 기교와 표현력을 요구하는 노래를 당찬 발성과 열창으로 표현해 숙연한 감동을 준다. 자신의 노래로 해서 팬들의 마음이 편해지고 위안 받기를 바랄 뿐이라는 순수파다.
현희, 꾸러기 중에 유일하게 현역 가수가 아닌 가수? 대학생 그룹 로커스트가 불러 히트했던 노래 "내가 말했잖아"를 작사 작곡한 인연으로 꾸러기 대열에 참가하게 된 그는 고전적인 트로트 여가수의 목소리를 가졌으면서도 빼어난 현대적인 미모와 몸매를 가졌다.
여고 시절 연대장을 지내면서 화려한 학교생활을 하던 그가 상경하여 전학한 학교에서 강한 대구 사투리로 "왕따"를 당해, 고전하던 얘기를 들으면 그때도 지역 갈등과 왕따 풍조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 꾸러기들의 100일 공연… 라이브의 최고정점…>
"아주 옛날에는 사람이 안 살았다는데.."를 히트 시키며 팬들과 성큼 가깝게 자리잡은 그들이 내놓은 후속 2집 앨범은 꾸러기들 "사랑, 이별, 그리고 추억…."으로 "그댈 잊었나"(임지훈), "추억의 강"(신정숙), "독백"(김창완), "이별의 노래"(김창완,현희), "목련꽃 필때면"(최성수), "청춘"(윤설하) 등 그룹으로서의 공식활동을 마무리하는 아쉬움을 담듯 멤버 각자의 혼신의 힘을 다하는 주옥 같은 명곡들을 담고 있다.
2집 이후에는 그룹으로 뭉쳤던 공식적인 활동은 마무리 짓고 각기 솔로 앨범 발매에 들어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들은 2집 앨범 발표를 앞두고 어느 누구도 생각조차 해본적이 없는 폭거를 감행하기로 한다. 사상 유례없는 장기 공연인 100일 공연, 그것도 한겨울에 난방시설도 없는 지하 소극장에서 단 하루도 거르지 않는 100일 동안의 연속 공연에 나선 것이다. 처음엔 그들을 제외한 모두가 반대했다. 당시만 해도 김창완을 제외한 멤버 중 어느 누구도 한겨울 추운 소극장으로 관중을 불러모을 만큼의 대중적인 인기가 부족했으며, 더구나 크리스마스를 사이에 둔 연말과 연초를 포함하여 100일간 지속적인 공연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무모할 만큼 출발부터 상식을 등지고 나섰다.
일반적으로 가수들의 라이브 공연에 의례 있게 마련인 공연 기획사 마져 두지 않고서 초대권, 무료 입장권의 발행 또한 거절하며 멤버들이 모든 과정을 몸으로 부딪혀 가며 젊음과 열정을 바쳤다. 그들은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단 한 사람이라도 우리 노래를 들어주겠다"는 팬이 있는 한 "우리는 할 수 있고, 또 할 것이다." 라고 공언하고 공연에 나섰다.
공연기간은 1985년 10월 1일부터 86년 1월 10일까지 100일간으로, 장소는 이화여대 입구의 산울림 소극장으로 결정됐다. 콘크리트 건물의 지하에 자리잡은 공연장의 실온은 으스스한 추위를 느끼기에 충분했으며 공연의 성공을 전혀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막은 올랐고 대충 자리를 메운 팬들은 추위와 싸우며 그들의 공연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소의 우려와 불안감에서 시작된 공연은 회를 거듭할수록 거침없는 표현과 혼신의 열정으로 지금까지 느껴볼 수 없었던 라이브의 진수를 선보이며 팬들의 열기는 매회의 공연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다.
하지만 100일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공연한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매회 혼신의 힘을 다하는 라이브 공연이라는 것 자체가 많은 에너지의 소모를 요구하는 일이며 단 하루의 휴식도 없이 100일간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 또한 팬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멤버 중 누가 설혹 병이 나더라도 공연에는 빠질 수 없다는 것,그리고 난방장치조차 없는 지하 공연장의 실내온도가 영하 10도를 밑돌아도, 그래서 청중이 단 한 사람밖에 없더라도 공연은 지속돼야 한다는 정신적인 중압감은 견디기에 쉬운 일은 아니었다.
더우기 겨울방학에 들어가 이대, 연대, 홍대 등 공연장 주변 학교가 텅 비고, 주류를 이루던 대학생 관객들이 빠지면서 닥치는 추위와 함께 공연장의 분위기는 썰렁해져서 그들을 힘들게 하는 때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중에서도 소문을 듣고 찾아온 외국인 유학생이나 관광객이 익숙하지 않은 자세로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뜨거운박수를 보내주고, 또 한 번 왔던 팬이 두 번, 세 번 거듭 찾아 주는 모습에서 그들은 다시 용기를 얻곤 하였다.
결국 그들은 해내고 말았다.
육중한 심신의 부담감을 떨쳐내고
끝내 100일 공연을 해내고 말았다.
팬들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고 100일
연속공연을 마무리 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데 진정으로 라이브의
최고정점을 보여 주었다는 그들의 음악적 완성도까지 더해 이 공연은 진정으로 갈채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여기에는 후배들을 아끼는 김창완의 따뜻한 뒷바라지와 솔선수범하는 희생적인 몸가짐이 절대적인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지난 이야기지만 그들의 공연이 좋아서 기간 중 열 번이나 왔었다는 어느 여학생은 "그들의 노래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많은 것들이 있었어요... 젊음의 용기와 정열, 자유분방한 음악에의 열정과 낭만, 그리고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오늘은 가고 새로운 내일이 온다는 틀림없는, 아주 틀림없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 주는 무엇인가가 있었어요... 그들의 노래와 노랫말에는 그런 메시지들이 담겨, 듣는 우리들의 마음의 폭을 넓혀주고, 낙천적인 유머를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되찾게 해줘요..." 라고 말하기도 했다.
< 라이브 음반으로 탄생하기까지의 못다한 이야기…>
공연의 마지막 며칠을 남긴 어느 날, 그들은 이 역사적인 공연을, 라이브 음반을 위해 녹음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연극 공연을 중심으로 하던 소극장인지라 소극장 자체의 녹음시설은 없었고 일단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쨌거나 그들은 공연 마감을 3일 앞둔 공연 98일째의 실황을 녹음하였다.
온갖 감회가 교차하는 중에 공연은 진행되었다.
출연자와 청중은 완전히 하나가 되어 끌어 오르는 열기 속에 묻혔고, 사이사이 이별의 아쉬움이 자리를숙연하게 했다.
1시간 30분으로 예정된 공연은 청중의 거듭되는 앙코르 요청으로 50분이나 연장되어 2시간 20분이나 돼서야 끝났다.
'85년 10월에 막을 올린 공연은 해를 넘겨서 '86년 1월에야 끝이 났다. 100일 동안 110여회에 이르는 공연은 진짜 라이브답게 매일 매일이 달랐고, 매회 그들의 순발력과 에드립성 연주는 모든 관중을 놀라운 감동과 열광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젊음의 야성과 낭만...
그러나 진한 음악성과 절제된 교양으로 포장된 그들의 공연은 자유분방한 표현과 유머, 낙천적이면서도 진솔한 삶의 추구 등 건전한 청년문화의 방향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청년문화 전반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백안시하던 당국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진솔한 비판의식이나 자유로운 표현양식은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틀에 박힌 가요형식, 가사의 형식적인 건전성, 경직된 윤리의식 등을 심의의 잣대로 하던 5공 시절 심의 당국의 규제를 벗어날 길이 없었다.
꾸러기들은 꾸러기들이어야 했다.
그들의 거침없는 분방한 표현방식을 인위적으로 수정하는 것은 이미 라이브가 아니었고 꾸러기가 아니었다.
꾸러기를 꾸러기 답게, 라이브를 라이브답게 하기위해서는 16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강산도 변하길 몇 차례 우리들의 사회는 격동의 과정을 거쳤고 음악마저 변하고 말았다.
누군가의 용기와 헌신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기인 것이다.
만약에 꾸러기들이라면 어떠했을까?
이제 16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꾸러기들이 다시 세상에 외치고 있다.
L.I.V.E!
더 이상 무슨 수식어가 필요할까…
그저 온 몸으로 느껴보시길 권할 뿐이다.
< 샘플 음악듣기 >
- 참새와 허수아비 - 임지훈
- 님은 곁에 없고 - 최성수
- 꿈이야 생각하며 잊어줘 - 김창완
- 외로운 방랑자 - 윤설하
- 석양 - 신정숙
- 지나버린 날들 - 김창완, 현희
- 그대는 모르시더이다 - 최성수
- 쌍고동사랑 - 현희
- 개그송 - 임지훈
- 바보처럼 살았군요 - 꾸러기들
<1CD - Excite!>
1. 먼지가 되어
2. 귀를 기울이니 시냇물소리 나네
3. 무슨 색을 좋아해도
4. 목로주점
5. 여행을 떠나야지
6. 외로운 방랑자
7. 꾸러기 소개
8. 품바타령
9. 쌍고동 사랑
10. 어머니와 고등어, 산할아버지, 개그송
11. 풀잎소녀
12. 나에게 편지를 쓰자
13. 날 사랑하신 님이여
14. 아주 옛날에는 사람이 안살았다는데
15. 꿈이야 생각하며 잊어줘
<2CD - Sorrow!>
1. 참새와 허수아비 - 임지훈
2. 별리 - 임지훈
3. 그대는 모르시더이다 - 최성수
4. 눈물로 핀 꽃 - 신정숙
5. 둘이서 - 김창완
6. 님은 곁에 없고 - 최성수
7. 석양 - 신정숙
8. 동화의 성 - 김창완
9. 소꼽사랑, 지나버린 날들 - 김창완, 현희
10. 초야 - 김창완
11. 회상 - 임지훈
12. 목련 꽃 필때면 - 최성수
13. 바람같은 인생 - 임지훈
14. 안녕 - 최성수
15. 바보처럼 살았군요 - 꾸러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