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교육대학원의 영어전공 주임으로 수년간 일하면서 원어민 못지않게 영어를 구사하고 자질이 뛰어난 예비교사들이 결국 정식교사가 되지 못해 실망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했다. 왜냐하면 2급 교사 자격증이 있어도 교육공무원 신분이 보장되는 공립 중·고등학교의 교사가 되려면 교원임용고사에 합격해야 하는데, 이 시험의 경쟁률이 매우 높은 데다가 사립학교 교사로 취업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훌륭한 영어 교사의 특성은 무엇인지, 목적에 부합되는 타당한 방식으로 교사를 양성하고 선발할 방안은 무엇인지 논의의 여지가 많겠지만, 좋은 영어 교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임용고사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임용고사 다른 교과의 사정은 잘 모르지만 영어의 경우 특히 교과 전문성이 높아지기 어려운 체계이기 때문이다.
예비교사들에게 임용고사 준비는 더 나은 영어 교사의 자질을 갖추게 되는 과정이 아니라 영어 가르치는 것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1차 시험 교직과목들의 소소한 항목을 암기하는 과정이 되고 있다. 이 시험은 기본 소양이라 할 수 있는 교육학 관련과목과 영어 교과의 객관식 문제로 구성되는데, 이를 통해 가장 필요한 자질인 교사 자신의 영어 구사력과 학생들을 가르칠 영어 교수능력이 다각적으로 평가된다고 보기 어렵다.
2차의 심화된 영어 교과 시험과 3차 시범강의 같은 과정이 남아 있긴 하지만, 1차 시험이 당락의 최대 변수다. 전보다 비중을 줄였다고는 하지만, 응시자의 태반(약 70~80%)이 1차에서 탈락한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서당의 학도와 접장의 차이를 묻는 문제 하나를 놓치면 아무리 영어 잘하는 사람도 탈락의 쓴잔을 마셔야 한다.
바로 이 때문에 교원임용고사는 영어과에 국한해서라도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교육학 관련 과목들은 선발된 이들에게 일정한 점수 이상을 요구하거나 연수과정을 제공한다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한국인 영어 교사는 발음도 나쁘고 영어 못하는 것이 당연하니까 원어민 교사를 데려와야 한다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이다. 예비교사 중에서 영어 잘하는 사람을 가려뽑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교사 선발에 이토록 소홀했으니 총제적인 구사력이 필요한 영어를 다른 어느 과목보다도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같은 이유로 많은 사람이 한국인 영어 교사를 불신하고, 원어민 교사를 채용해야만 영어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게 됐다. 실제로 교육부와 각 시·도 교육청에서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원어민 교사 고용 방안을 실시했거나 계획 중이다. 심지어 교포 학생을 영어 보조교사로 쓰자는 제도까지 나왔다. 하지만 원어민 중에 제대로 교사 자격을 갖춘 사람을 찾기 어렵고, 애써 고용해도 대부분 계약이 끝나면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수입이 나은 학원 강사로 전업해 지속성도 떨어진다. 최근 서울시교육청은 기존의 교사 중에서 영어로 영어를 가르칠 수 있는 교사를 따로 인증하는 제도를 만들었는데, 그보다는 애당초 영어 잘하는 교사를 뽑아야 하지 않을까?
영어 교사 선발과정의 개선은 영어 교육이 외고폐지 논란을 비롯한 사교육, 조기유학 등 우리의 크고 작은 교육 문제들과 직결되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사실 공교육의 정상화 역시 사교육 시장의 영어를 교실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느냐에 성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제에 영어 교사 선발의 문제가 국가가 교사 선발권을 독점하고 있는 현실에서 비롯한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
조선일보 2009.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