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이야기만 쓰니까 좀 팍팍했었나 봅니다 ㅋㅋ
의사 썰 푸니까 조금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몇 개 더 풀어봅니다.
제가 인턴이라고 초짜 의사로 일 할 때 이야기들입니다.
1. 저는 유명한 '환타'였습니다. (환자를 탄다 의 줄임말)
인턴은 각 과를 돌아다니면서 수련을 합니다.
그런데 제가 과를 옮겨서 가면, 유독 그 날부터 외래가 폭발하고 병실이 부족해지는 기현상이 발생하였습니다.
절정은 저녁 수술실 인턴 당직 2주간이었습니다.
인턴은 수술실에서 주로 환자를 나르고 수술 전 준비를 하는, 거의 잡일꾼에 가까운 일을 합니다.
물건 나르고 닦고, 조이고 이런 일들을 하지요.
사실 그래서 인턴이 누구인지 위에 전공의 선생님들은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저녁 수술실 인턴 당직을 딱 들어갔는데, 그 날부터 저녁 9시만 되면 뇌출혈로 응급실에 오는 환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보통은 일주일에 1~3건 정도)
일주일이 지나고, 7번째 저녁 응급 뇌출혈 수술을 하고 난 후 전공의 선생님들이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이건 아무래도 인턴이 문제다.'
물론 저는 가만히 있었지만, 환자를 끌어들이는 영적인 힘을 자신도 모르게 방출하는 인턴으로 낙인이 찍혔습니다.
그리고 신경외과 선생님들이 악귀를 쫓아내기 위해 알코올로 저를 소독하셨지요. (수술 끝나고 회식했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저의 영능력은 결코 감소하지 않았고, 2주 마지막날에 결국 14번째 저녁 응급 뇌출혈 수술을 하였습니다.
신경외과 선생님들의 애정어린 등짝 스매싱을 당하고 다른 과로 이동하였습니다.
2. 삥 뜯는 인턴
저는 인턴 초기에 피부과와 정신과 사이에서 고민을 했습니다.
원래 정신과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훨씬 많았는데, 이게 결혼도 하고 먹고살아야 하고 일도 오래 해야 할 것 같고 무서운 것도 있고 어쩌고 저쩌고 하다 보니까 피부과에 기웃기웃하게 되더라고요.
인간이란 선택을 항상 이렇게 어영부영하다가 하게 되는 것이죠.
여하튼 피부과에 도전을 해 보려는데, 피부과 인턴은 하루 종일 서서 전공의 1년차를 보조하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정말 리얼로 순순하게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업무였습니다.
의사라는 인종의 신체 능력은 거의 초등학생에 가깝기 때문에, 서 있을 것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때 어느 병동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간호사 분들도 상당히 오래 서서 일하는 직업이었죠.
그래서 병동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면서 대기를 타고 있었습니다.
병동의 최고 권력자 수간호사 선생님이 저에게 뭔가를 시켰고, 그것을 재빠르게 완수한 이후 수간호사 선생님에게 말을 걸었죠.
'어찌하여 다리가 붓지 않고 지낼 수 있사옵니까.'
'압박 스타킹이란 것이 좋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압박 스타킹을 어디서 구해야 할까요?'
나름 50대 이상의 여성에게 이쁨을 받는 특이한 케이스... (왜 20대 여성은 아닌 것인가?!?!) 였던 저는 수간호사 선생님의 적극 지원을 받아서 간호사용 압박 스타킹을 지원받았고, 무사히 피부과 인턴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병원에 '웃는 얼굴로 수간호사에게 물건을 뜯어내는 인턴'으로 알려지게 되었죠.
피부과는... 여러 가지 문제로 지원을 취소하고 정신과에 지원을 하면서 마무리하였습니다.
3. 인턴 숙소 = 개판
인턴은 숙소가 모여 있습니다.
이건 병원마다 다를텐데, 저희 병원은 그랬어요.
술 마시는 것 밖에 놀 줄 모르는 의사들은 사람이 모이면 술을 까지요.
저녁시간에 업무가 있거나 당직을 해야 하는 아이들은 침만 꼴깍꼴깍 삼키고, 일은 없지만 집에는 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부러워하는 시선을 즐기며 맥주를 홀짝홀짝 마십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은 유독 술을 좋아하는 아이들만 저녁에 쉬는 날이 생깁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음주자가 하나씩 늘어나면서 인턴 숙소는 대학교 엠티 때 숙소로 변모합니다.
술 마시는 아이, 못 마시는 아이, 취한 아이, 화장실에서 토하는 아이들이 어우러지는 지옥의 도가니탕이 끓여지지요.
그리고 다음 날 새벽 5시에 해야 하는 일을 못 하고 전공의 선생님에게 30분간 잔소리를 들으면서 도가니탕은 짜게 식었습니다.
도가니탕이 끓여졌던 인턴 숙소는 개판이 되고, 청소해주시는 여사님들도 지옥의 냄새를 맡고 오시지 않는 불모지가 되어버리지요.
4. 가장 서러웠던 일
대학병원은 진료만 이루어지는 곳이 아닙니다.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됩니다.
제가 나온 대학병원도 비록 지방에 있지만 뜻 있는 교수님들이 방대한 논문을 찍어내고 계시지요.
그리고 연구에는 동물 연구가 있습니다.
동물을 관리하는 연구원이 있지만, 수련 과정 중 연구에 대한 지식을 습득한다는 미명 하에 인턴도 동물 관리에 동원됩니다.
보통은 쥐, 토끼 등이고 돼지 등이 이용되기도 합니다.
오늘 주인공은 서생원씨입니다.
제가 담당한 업무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목적 : 쥐의 허리뼈가 부러졌을 때 어떤 형태의 고정기구가 가장 효과가 좋은지에 대한 실험을 준비 중이다.
내용 : 쥐가 입을 갑옷을 만들어와라.
그리고 저는 아무 지식도 없었지만 무작정 페트병을 잘라서 쥐에게 고정기구를 적용시킬 수 있는 플라스틱 갑옷 비슷한 것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쥐에게 집적 입혀봐야하는데, 살아 있는 쥐를 인턴에게 맡겼다가는 비싼 쥐가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죽은 쥐의 시체에 계속해서 입혀봐야 했지요.
쥐는 실시간으로 썩어가고, 저는 손재주가 없고, 동료들은 미쳐가고...
생쥐 지옥에서 보냈던 억겁같은 48시간이 제 인턴 인생에서 제일 길었던 2일이었습니다.
내일은 전공의 때 썰 풀어보겠습니다 ㅋㅋ
첫댓글 ㄷㄷㄷ괴로웠던 과거ㅋㅋㅋ
ㅋㅋ 그래도 지금은 다 추억입니다
고통... 실험... 으윽
실험은 아직도 끔찍 ㅠㅠ
어쩐지 의사 친구들이 어느순간부터 술을 잘 마시더니 이유가 있었군요 ㅎㅎ
노는 방법을 술 빼고는 못 배워서 인지, 맨날 술만 마십니다 ㅠ
그래도 여성분에게 인기가 있으시군요...저에게 잘해주는 주요층은 30대 후반 이상의 남성입니다...남자에게 인기 그만 있고 싶다!(?) 어떤 일이 안그러겠습니까만 의사분들도 정말 고생이네요... 고지능자, 지적장애가 특별한 모습을 보인다면, 직업도 상위의 전문직이라면 일반적인 직업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긴 누가 쥐에게 갑옷을 입힐 생각을 하기나 할지(?)
쥐 갑옷은 정말... 30대 후반 이상의 남성을 통해 사회적으로 성공하시어 여성에게 능력을 어필해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