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만에 돌아 왔는데 날씨가 많이 시원(?)해 졌네요.
지난 일요일인 2009년 11월 8일 아침 6시 김해 공항에 대군(?)이 모였더랬습니다.
우리가족4명, 같이가는 조카1명, 친구딸 1명, 남동생,제수씨, 손위동서,손아래 동서, 처형,처제,
동생의 처형,내 친구부부, 현아네가족4명, 여행사 사장 등등,
한바탕 눈물의 송별시간이 있었겠죠. 난 남자인데도 왜그런지 모르겠더군요.
그것도 나는 같이 쿠칭까지 가는데도 불구하고 환송나온 친지들의 서운한 눈물을 보고서
내자신도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해 자꾸만 엉뚱한곳만 봐라보고 엉뚱한 소리만 했지요.
그렇게 모두들 토끼눈이 되어 서로 손을 흔들며 비행기에 올랐죠.
그런데 짐이 장난이 아니었어요. 콜밴 1대에 4대의 자가용에 .......
그 짐들이 끝까지 우리일행을 조금씩 괴롭혔는데 신기하게도 쿠칭의 집에 도착과 동시에 그 조금의 괴로움은
사라져 버렸어요.
다시 인천공항에서 현아네 4촌 두명과 현아 큰 엄마랑 합류하니 13명이나 되는 대군이었어요.
그중 오늘 4명은 돌아왔지요.
다시한번 인천 공항에서 짐과의 한판 승부를 벌이고 항공사 직원과 약간의 옥신각신도
있었고 몇개의 가방을 풀었다 분산도 하고 수화물로 돌리기도 하고 가까스로 쿠알라룸푸르행 말레이시아 항공
비행기에 몸을 실었지요.
인천에서 쿠알라룸푸르 까지는 제법 비행시간이 길었어요. 그런데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그런지
모두다 안정적인 모습이 아닌것 같았어요(나만 그랬나?)
약6시간의 비행끝에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도착했고
그 공항에서 쿠칭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드디어 조금 평화의 시간을 가질수 있었습니다.
그때서야 사진도 몇컷찍고 간식도 먹고 했지요.
그렇게 쿠칭에 도착하니 밤9시?10시? 그정도 되었어요.
또 그 많은 짐과 한판승부를 벌여야 했어요. 택시를 7대나 불러 짐과 사람을 분산해서 싣고 타야 했어요.
그아파트( 엄격히 말하면 리조트)에 도착하니 한밤중에 한산하고 조용한 아파트에 택시가 7대나 줄을 서서
들어오니 경비 아저씨들이 뭔일인가 싶어 현관입구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따라 왔어요.
그렇게 집으로 들어가 대충 짐풀고 청소하고 샤워하고 자야 했지요.
모두 피곤한지 낯선곳에서의 첫날인데도잘들 자줘서 고마웠습니다.
다음날은 월요일인데도 모두가 늦잠을 자고 있는데 몇년전에 면저 와있는 문주엄마 친구가 우리집 벨을 눌렀을때야
모두가 일어나서 쿠칭에서의 첫아침을 맞이했지요.
그때부터 다시 문주엄마는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해서 어제 오후 아빠들이 돌아 올때까지 빡빡한 일정으로
일주일을 보냈어요. 여기서 준비했던 마지막 10여일도 정신없이 바쁘게 보냈는데 그기서 다시 할일도 엄청나게
많으니 바쁘게 돌아갈수 밖에 없었죠. 솔직히 우리 아빠들은 적당하게 바빴고 그와중에 이틀이나 골프장에
나갔지요.
아빠들이 할일이 그리 많지 않았어요. 난 집안의 애들과 짐정리 하고 집청소 하고 빨래 하고
전기제품이나 컴퓨터 설치하고 가구들 위치잡고 창문이나 수도같은것들 점검하고 엄마들 애들 차태워 슈퍼 다녀오고
학교 우체국 은행 다녀오고 뭐 그런것들 하다 시간 다지나 갔습니다.
반면 엄마들은 정신없이 바빴지요. 한,두번 내가 식사 준비해서 애들이랑 식사를 하고 두어번 외식도 했지만
하루세번 애들 밥해먹여야지 간식 챙겨 먹여야지 이학교 저학교 몇번씩 애들이랑 갔다가 엄마들만 갔다가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애들 테스트도 받아야지 상담도 해야지 영어는 조금 짧지요. 지리도 모르지요. 도로교통상황도
우리와 반대로 되어 있으니 운전도 조금 어색 하지요. 자동차 구입 문제도 알아 봐야지요.
이학원 저학원 가서 알아봐야 할것도 많지요. 휴대폰,집전화, 인터넷, 케이블티브이 가입하러 가기도 하고 슈퍼로
시장으로 전자 상가로 먹거리 구입하고 생팔품 구입하러 시내를 왔다 갔다 해야지요.
오늘 통화해보니 오늘까지도 김치담고 뭐하고 정신없이 바빴다네요.
내일 부터는 당장 애들이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는데 학원이나 학교도 모두 엄마가 차로 태워다 주고 태우러 가야
하는데 당분간은 계속 바쁘겠네요.
마누라 자랑하면 팔불출이라 하지만 난 정말 내 아내가 대단하고 자랑스럽게 느껴 지네요.
낯설고 물설은곳에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고 웃으면서 정면으로 부딪히고 해결해 나가고 조절해 나가는걸 보니 이사람이
정말 연약할것 같았던 내아내가 맞나 싶기도 하네요.
마누라 자랑은 여기 까지고, 그젯밤에는 문주 엄마도 피곤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애들은 티브이도 안나오지 인터넷도
안되지 그러니까 숙제 일찍 마치고 애들을 한자리에 모아 많은 이야길 했습니다.한시간을 넘게 이야길 나누었는데
그래도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끝이 없었고 더많은 이야길 해주고 싶었습니다. 나의 욕심 이겠지요.
하지만 너무길게 장황하게 이야길 하다 보면 잔소리가 될것 같아 그정도에서 애들과의 마지막 대화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애들도 잠자리에 들게 했습니다.
애들도 잠이 들었고 나혼자 쿠칭에서의 마지막 밤을 맞이하게 되니 잠은 오지 않고 여러가지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볼펜과 백지를 들고 책상에 앉아 아내에게 장문의 편지를 써서 문주엄마의 가계부에 넣어놓았습니다.
쉽사리 잠이오지 않아 혼자 거실에서 많은생각도 하고 마음속으로 기원도 하고 앞으로의 일들을 마음속으로 정리를
하며 마지막 밤을 보냈습니다.
다음날 아침 문주엄마는 새벽 일찍 일어나 또다른 하루를 시작하고 나는 돌아올 준비를 하고......비행기 시간이 오후3시40분
이라 오전에 그래도 시간이 있어 다시 시내로 같이 나가 우체국에서 짐도 찿고 선데이 마트라는 주말에만 열리는 시장에
나가 열대 과일이랑 김치담궐 재료도 구입하고 그렇게 시간은 잘도 가고 나는 돌아와야 했습니다.
제법 길줄 알았던 일주일이 후딱 지나가고 반갑지 않은 시간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애들과 아내와 헤어져야 할시간, 절대로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리라 일주일내내 마음속으로 다짐 했는데 그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어야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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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쿠칭에서 출발하여 코타키나 발루 공항에서 환승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또 인천공황에 도착 했을때도 다시 김해공항에
도착 했을때도 그리고 집으로 돌아 왔을때도 문주 엄마는 계속 전화를 해 주었습니다. 오늘 오후에는 내가 쓴 편지를 발견하고
읽고 한판 울고 마음 가라 앉히고 전화한다면서 또 전화가 왔습니다.
이렇게 길고 짧은 일주일이 지나가고 나도 내일부터 전혀 새로운 생활이 시작 됩니다.
그동안 주변에서 보내주신 성원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직 못다한 보고가 무지 많은데 내일부터 천천히 생각 나는대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충~~성 !!!
첫댓글 형님두 아주버님두 정말 대단하신거 같아요.. 벌써 보고싶어지네요 ㅠㅠ
활짝웃고있는 혜림이얼굴이 너무 이뻐요....가족의 정이 물씬 풍겨나오는 글이였어요...쿠칭에서도 부산에서도 모두 잘 해 내실것이라 생각됩니다. 화이팅!!! 전용현맘
여름을 좋아 해서 인지 더 좋아 보입니다.
모두들 스마일 이라 걱정이 없슴다.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