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이경순의 시 세계
존재와 자아 인식 그 성찰과 진실
김 송 배
(시이.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자아 인식
현대시의 주제는 대체로 자아에 대한 성찰이라는 대전제로 시적 상황을 구성하거나 전개되는 스토리의 핵심이 자신을 반추(反芻)하는 경향의 시법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어차피 시는 ‘나’와 상관하는 ‘나’의 체험에서 획득해서 이 체험을 이미지화하는 형태의 다양한 담론(談論)이 주축(主軸)을 이루게 된다.
일찍이 영국의 시인 P.B. 셸리는 시는 최상의 마음의 가장 훌륭하고 행복한 순간의 기록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시란 그것이 영원한 진리로 표현된 인생의 의미라고 한 그의 논지에 대해서 우리들은 동감(同感)하게 된다. 왜냐하면 앞에서 말한 바대로 시는 그 시인의 체험에서 추출하는 인생론과 동일한 성격을 읽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 이경순 시인의 첫 시집『태어났기에』의 원고를 일별하면서 그가 심취(深醉)한 ‘나’에 관한 현재까지의 실상이 상당한 의문으로 남아 있어서 이 ‘나’라는 자아(自我)의 지향점이 어떤 것이며 자아가 발현(發現)하는 인생적인 진실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그의 심중(心中)을 다소나마 이해할 수 있어서 그가 인생 최대의 ‘최상의 마음의 가장 훌륭하고 행복한 순간의 기록’은 무엇인가를 구명(究明)하려는 그의 의중이 적나라(赤裸裸)하게 투영되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 길이 없네.
나는 누구인가?
아무리 만나려 해도
만날 길이 없네.
이렇게 저렇게
사는 것이 인생이라면
이렇게 저렇게
살다 죽는 것이
제일이겠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중에서
이경순 시인은 이와 같이 우선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나’에 대한 해법을 탐색하고 이다. 그는 시집 ‘자서’에서도 ‘한없이 숨기고 싶고 지극히 부끄러운 졸작이 되겠지만 숨 쉬는 내 삶의 자취이기에 그리고 첫발을 내디뎌야 걸을 수 있기에 시집을 내기로 결단 하였다.’는 그의 의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내 삶의 자취’에서 회상하는 자아는 상당한 미확인이거나 미지수의 현실적인 상황(situation) 에 집착하고 있다.
이처럼 ‘나’에 대한 의문은 ‘아무리 찾으려 해도’ 그리고 ‘마무리 만나려 해도’ 그는 찾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는 현실적인 정황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다시 그는 이러한 의문은 스스로 인식을 단정하는 해법으로 그에게 내재된 진실을 탐색는 시법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가 ‘이렇게 저렇게 / 사는 것이 인생이라면’이라는 진솔한 단정에서는 ‘이렇게 저렇게 / 살다 죽는 것이 / 제일이겠지’라는 화자(話者-persona)의 어조(語調-tone)는 대단히 위험한 속단(速斷)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속적으로 ‘나는 누구인가?’ 를 절규하다가 결론적으로 ‘나! / 나를 찾아 / 나의 주인이 되어 / 나를 이기고 싶다. // 이겨야 한다. / 이길 것이다.’라는 분명한 어조로 자신의 인식을 확인하고 있다.
나는
왜
詩人의 길을 선택 하였는가?
힘들고
고독하고
아프고
잔인하고
멍들고
슬퍼해야하는
이 길을
왜
택하게 되었는가?
견디기 힘든
견디기 버거운
이 푸르스름한
길을
나는
왜
택하게 되었는가?
태어났기에
태어났기에
어찌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태어났기에 1」전문
이경순 시인은 다시 이 시집의 표제시가 되는 작품「태어났기에」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여기에서도 ‘나는 / 왜 / 詩人의 길을 선택 하였는가?’라는 의문형으로 상황을 도입하고 있다. 이러한 화법은 ‘이 길은 / 왜 택하게 되었는가’라고 그의 의문은 계속되고 있는데 그는 바로 ‘태어났기에 / 어찌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시적 인식을 위한 집념은 그가 보편적인 사유에서 획득하는 그의 체험은 단순한 인생론에 머물지 않고 여기에 투영된 인생관이나 가치관이 그의 뇌리에서 숙성된 우리들의 진실로 승화하고 있다는 그의 심도(深度) 있는 인식의 체계를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看過)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자아 인식의 범주(範疇)는 대단히 포괄적인다. 작품「들러리」에서 ‘내 삶의 / 주인공은 / 그 / 누구도 / 대신해줄 수 없는 것 / 생生 / 노老 / 병病 / 사死의 굴레는 // 빈손으로 왔다. / 빈손으로 가는 / 내 몫인 것을…….’이라거나 작품 ‘아픔에 타협하고/ 원망과 미움에 타협하고 / 비판과 냉소(冷笑)에 타협하고 / 소유욕에 타협하고 / 물질에 타협한 / 내 모습 / 내 자화상’이라는 겸양(謙讓)의 어조도 공감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이렇게 자아에 대한 인식이 고차원의 성찰로 연결되고 있는데 그는 성찰에 내포(內包)된 그의 심안(心眼)은 ‘공(空)’이라는 새로운 인식체계를 구상하고 있어서 그가 진실로 지향하는 인생관은 바로 ‘유한한 / 인생살이 // 좋은 생각 / 아름다운 생각 / 선한 일 / 착한 일만하다 / 가야되리라 // 너도 흙이요/나도 흙이요(「허상」중에서)’ 그리고 ‘빈손으로 왔다 / 빈손으로 / 돌아간다는 / 진리가 / 나만은 / 나만은 / 비껴가리라는 / 착각 속에 / 시계소리만 / 무심히 / 흘려보냈구나.(「시간」중에서)’라는 ‘허상’이며 ‘빈손’이라는 철학의 경지에까지 도달하고 있다.
2. 삶과 ‘공수래공수거’의 의식
이경순 시인은 역시 인생문제에 대해서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생문제는 자아에 국한했으나 그는 대의적(大義的)인 측면에서 구현하려는 인생의 목표는 아무래도 ‘나’와 상관하면서도 우리 인간이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인생관의 표본에서 존재라는 근원의 추적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그는 이러한 존재(sein)의 근원을 철학적인 존재론에서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현실 생활(real life) 속에서 야기(惹起)되는 보편서정의 개념에서 시적인 상황으로 탐구하는 그의 진실이 깊게 녹아 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인생
많은 들
쌓아놓은 들
욕심 부린 들
무엇하리
거두어 가시면
그 뿐인 것을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며 사는 지혜
참으로 주님의 뜻을
헤아리며 사는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되련다.
--「공수래공수거」전문
그렇다. 그에게는 우리 인생관에 대해서 철저하게 순응(順應)하는 진리가 있다. 작품 제목에서 적시한 바와 같이 ‘공수래공수거’의 사념(思念)이 그의 인생 철학으로 확고하게 정립되어 있어서 ‘많은 들 / 쌓아놓은 들 / 욕심 부린 들 / 무엇하리’라는 체념에 가까운 어조로 삶과 인생을 결론지으려는 조화(調和-harmomie)의 시심(詩心)을 이해할 수 있다.
돌고 도는 인생살이
공짜가 하나도 없고
뿌린 대로 거두는 구나
기쁨도
슬픔도
잠시잠깐
눈물도
웃음도
찰나刹那요
정지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돌고 도는 인생살이.
--「돌고 도는 인생살이」전문
이처럼 그가 인생론으로 적시하는 중요한 주제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명징(明澄)한 해법을 메시지로 전달하려는 철학적인 원류를 공감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이 이경순 시인이 여망(輿望)하고 실행해야 할 시적 진실이며 그가 기필코 성취해야 할 철학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작품「무소유」전문에서 ‘무소유의 / 단순한 삶 // 잃을 염려도 / 뺏길 염려도 / 지킬 염려도 / 쓸 염려도 없는 삶 // 무소유의 / 단순한 삶이 / 최상인 것을 / 황혼黃昏에 접어드니 / 알 것 같구나.’라거나「순환」에서 ‘한없이 머무를 것 같았던 / 젊음도 / 인생도 / 구름 흘러가듯 / 소리 없이 / 형체 없이 흘러가는구나!’ 그리고「일장춘몽 2」에서도 ‘목숨 걸고 / 악착같이 / 살았던 / 모든 것들이 / 허상이요 / 바람에 휘날리는 /한줌의 재’라는 등의 어조에서 이해할 수 있듯이 우리 인생의 무상(無常)을 흡인(吸引)시키고 있다.
3. 영혼과 삶의 시간성 그리고 진실
이경순 시인은 영혼의 문제와 동시에 삶의 시간성(세월)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영혼은 육신과의 반대 개념이다. 일찍이 김소월은 그의 글「시혼」에서 ‘우리의 몸보다도 맘보다도 더욱 우리에게 각자의 그림자 같이 가깝고 각자에게 있는 그림자같이 반듯한 각자의 영혼이 있습니다. 가장 높이 느낄 수 있고 가장 높이 깨달을 수도 있는 힘, 또는 가장 강하게 진동이 맑게 울리어 오는 반향(反響)과 공명(共鳴)을 항상 잊어버리지 않는 악기, 이는 곧 모든 물건이 가장 가까이 비치어 들어옴을 받는 거울, 그것들이 모두다 우리에게 각자의 영혼의 표정이라면 표상일 것입니다.’라는 논지로 영혼과 삶의 감각을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경순 시인도 이러한 논지와 같이 몸과 그림자의 상관성처럼 그에게 각인(刻印)되어 있는 삶의 지표나 인생의 지향성이 영혼을 배제한 육체의 삶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허탈한 것인가를 명민(明敏)하게 제공해주고 있다.
영혼을 담은
빈껍데기
귀고리
코걸이
목걸이
반지
팔찌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달고 싶으면
영혼을 치장해야지
생의 수고가
한낱 육체의
포식飽食과
치장과
안일에 있다면
그 무슨 가치가 있으랴
영혼이 잘 되어야
범사가 형통하거늘~
--「빈껍데기」전문
보라. 그는 오래전에 괴테가 말한 ‘인간의 영혼은 항상 경작되는 밭과 같은 것’이라 든가 앙드레 지드가 말한 ‘나는 육체와 잘라낸 영혼은 믿지 않는다’는 것과 같이 그는 ‘영혼을 담은/ 빈껍데기’라는 어조에서 우리 인간과 영혼의 함수(函數)관계를 적시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소신은 시적인 전개방식이나 주제의 창출에서도 상당한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지만, ‘생의 수고가 / 한낱 육체의 / 포식(飽食)과 / 치장과 / 안일에 있다면 / 그 무슨 가치가 있으랴’라는 자탄(自歎)의 가치관이 명징하게 도출(導出)되고 있어서 그가 지향하려는 영혼에 대한 신념으로 너무나도 확연한 탐색을 하고 있다.
그는 결론적으로 ‘영혼이 잘 되어야 / 범사가 형통하거늘’이라는 ‘빈껍데기’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그것이 이경순의 시학(詩學)이다. 작품「음악 감상」에서 ‘내 영혼의 울림대로 / 기호(嗜好)가 / 종횡(縱橫)으로 바뀐다 // 음악은 내 삶의 윤활유.’ 그리고 작품「넋두리」에서도 ‘이곳저곳 다 구경한들 / 내 영혼 풍성할까? // 고무줄 늘어났다 줄어들듯 / 내 욕심의 유무有無 / 내 마음 향한 탓이리라’라는 어조에 그가 간구(懇求)하거나 여망하는 영혼의 진실을 이해하게 된다.
어제는 오늘을 만들고
오늘은 내일을 만들지니
오늘 이 순간을
어찌
헛되이 보낼 수 있으리오
하루를 조심조심
우주를 떠안은 듯
무겁고 신중하게
보내야 하리라.
--「세월 1」중에서
이경순 시인은 이와 같이 시간성에서 자신의 현존(現存)과 실재(實在)의 삶에 대한 향방(向方)을 예측하거나 ‘세월(혹은 ‘이 순간’)’에 대한 소중함을 토로(吐露)하여 이 시간성과 삶의 조화에서 탐색하는 그의 시적 진실을 예감할 수 있게 한다.
이 시간성의 현현도 작품「세월 2」에서 ‘얼마나 / 허우적거리며 / 지푸라기라도 / 잡으려는 / 심정으로 / 몸부림치는 / 세월이였던가’ 또는「지난 세월」에서 ‘어제가 / 오늘의 나를 있게 하지 / 않았는가’ 라는 절규와 자조(自嘲) 혹은 체념(諦念)의 언어로 시간성을 조감(照鑑)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알 수 없는 고뇌에 허우적거리다
그것이
비로소
죽음 이였다는 것
죽음을
받아들이는데
평생의 사색과
명상과
깨달음이
필요하였다
삶의
과정이
곧
죽음을 위한
준비였다는 것을
반세기가 넘어서야
깨달았구나.
--「알 수 없는 고뇌」전문
이경순 시인이 갈망하는 영혼의 접맥(接脈)은 ‘죽음’이라는 ‘삶의 과정’을 배제하지 않는다. 또한 그 ‘죽음’의 의미를 자각(自覺)하기 까지는 ‘죽음을 / 받아들이는데 / 평생의 사색과 / 명상과 / 깨달음이 / 필요하였’을 뿐만 아니라, ‘삶의 / 과정이 / 곧 / 죽음을 위한 / 준비였다는 것을 / 반세기가 넘어서야 / 깨’eke게 된다.
이와 같이 그가 영혼과 삶의 시간성 등이 복합적으로 화해(和解)함으로써 그가 시(詩)에서 추구하거나 구현하려는 인생학이나 시학의 근원은 바로 생멸(生滅)에 대한 지대한 형이상적(形而上的) 시 세계의 구축을 위한 전초전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크게 환영하게 된다.
이 밖에도 작품「은행나무」「무등산」 「비 1」「비 2」「상처」「눈」등에서 영혼과 삶이 조화하는 시적 전개와 인생의 시간성이 우리들 현실 실생활과 상생의 관계에서 생성하는 이미지의 현시(顯示)가 공감을 유로(流路)하고 있다.
4. 서정의 향기 속에 피는 자연관
이경순 시인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서정적인 정감(情感)을 간직한 서정시인이다. 그가 내뿜는 자연 서정의 향기는 지금까지 고뇌와 갈등의 요소들을 말끔하게 정리하는 그의 매체로서 심적(心的) 청량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가 이미 ‘자서’에서 말했듯이 ‘무등산에 있는 새인봉, 토끼등, 중머리재, 너덜강 약수터, 규봉암 등은 내 사색과 퇴고(推敲)의 장이다. 자연은 내 숨 쉬는 공간이요, 내 삶의 동반자요, 내 넋의 안식처이다.’는 그의 자연관은 그가 영위해온 삶의 한 단면으로써 심신(心身)의 활력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숲이 부른다
흙이 부른다
바람이 부른다
태양이 부른다
계곡 물소리가 부른다
나를 유혹하는
자연의 속삭임
내 생명의 젖줄
내 유전인자에
각인된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회귀본능~
나를 부르는 자연이여
나의 생존은
너희들 덕분이노라
고맙고 고마운
대 자연이여!
--「자연」전문
보라. 이경순 시인은 이 ‘자연’에서 보여주듯이 ‘생명의 젖줄’이며 ‘생존’의 촉매제로서 동행하는 고귀한 존재이다. 그는 이러한 자연 속에 묻혀서 자연과 인간의 생존을 노래하는 서정적 자아를 구현하려는 관심과 노력을 쏟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연에 관한 시인들의 시각(視覺)은 객관적으로 멀리서 자연을 바라보면서 그 풍광이나 경관(景觀)에 대해서 시적으로 표현하는 방법과 그 자신이 자연 속으로 들어가서 자신이 풍광과 동시에 동화(同化)된, 하나의 자연으로 변신하여 스스로 인간들을 향하여 뿜어내는 향기의 두 가지 방법의 표현이 있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생명력
정녕
우주의 조화요
주님의 오묘한
솜씨이거늘
나
또한
그 모습에서
주님의
향기를 맡노라.
--「야생화」중에서
여기에서도 이경순 시인은 자연과의 동화에 여념이 없다. 그의 모든 자연은 생명력과 소통하고 있다. ‘바위틈 / 청초한 야생화’가 결국 우리 인간들과 교감함으로써 던져지는 메시지는 ‘우주의 조화’를 적시하고 우리들은 이에 순응하는 섭리의 정취를 획득하게 된다.
또한 작품「매화향 2」에서 ‘무언의 향으로 / 내 영혼 사로잡는 / 천연天然 향 / 우주의 신비를 머금었구나!’라거나 「꽃」에서 ‘한 순간의 / 빛남을 위해 / 일년을 기다리는 / 인고忍苦의 / 모습 속에, // 살맛나는 / 인생人生이 / 숨어있구나.’ 그리고 「봄내음」에서도 ‘흐드러진 / 꽃향기 / 인생 / 살맛 / 더 / 하는구나’라는 정적(靜的)인 정취가 인생의 향기와 동행을 하는 서정적 자아의 한단면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경순 첫시집『태어났기에』에서는 대체로 존재를 통한 자아의 인식과 거기에서 인식된 삶에서 공수래공수거의 의식이 곧 그의 인생관으로 승화하는 과정, 거기에 영혼과 대칭하는 시간성의 조화 그리고 천성적으로 부여받은 자연 서정의 형상화를 통한 삶과의 화해는 우리 시들이 구현해야 할 서정시의 근원을 제공하는 암묵적(暗黙的)인 효과를 제시하고 있다.
그는 더욱 착실한 정진(精進)을 통해서 앞으로 출간될 시집에서는 우리 정서에 걸맞는 형이상시의 모습을 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출간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