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베트남의 시간을 걷는 여행 22 - 호치민시 `퍼(Pho)` 이야기

[돌담]

베트남의 시간을 걷는 여행 22

- 호치민시 ‘퍼(Pho)’ 이야기 -

베트남 쌀국수 퍼(Pho). 한국에서는 ‘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베트남어 ‘Pho’를 영어식 발음으로 표기한 것이다. 소뼈를 우려낸 진한 국물, 쌀로 만들어 부드럽고 하얀 면발, 여기에 숙주와 향채 등을 곁들어 먹는 퍼는 오늘날 베트남을 대표하는 음식이자 베트남을 세계에 알리는 대표적인 문화 아이콘으로 각광받고 있다. 굳이 베트남이 아니더라도 세계의 유명 도시 어디에서든 맛볼 수 있는 퍼는 2000년대 초 한국에도 유입되어 웰빙 열풍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가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이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퍼가 식민지와 전쟁, 분단으로 이어지는 슬픈 역사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식민지 민중의 애환과 퍼의 탄생

퍼의 역사는 의외로 짧다. 퍼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이 있지만 아직까지도 명백히 입증된 바가 없다. 다만, 19세기 말 방직공업이 번성했던 남딘(Nam Dinh)의 공장에서 하루 일과를 마친 노동자들이 고기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던 것이 쌀국수의 시초가 되었다는 가설에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 연구자 피에르 그루(Pierre Gourou)가 1938년에 출간한 <홍하델타의 농민(Le Paysans du Delta Fleuve Rouge)>이라는 책에는 “가인(ganh)을 지고 퍼를 팔러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딘 성과 하동 성 출신이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분명한 사실은 퍼가 베트남 북부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퍼는 민간에서 먼저 출현했고 이를 널리 전파한 것은 도붓장수들이었다. 그들은 한쪽 어깨에 짊어지는 베트남식 전통 지게 꽝가인(Quang Ganh, 대나무 장대 양 끝에 광주리를 매달고 그 안에 물건을 담아 운반하는 도구)에 식재료와 조리 기구를 들고 다니며 퍼를 팔았다. 이처럼 도붓장수들에 의해 퍼가 도시에서 도시로 널리 퍼져나가게 되었고 1930년대에 들어서는 퍼가 도시 노동자들과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대중적인 먹거리로 자리 잡게 된다.

길거리에서 퍼를 파는 도붓장수

원래 하노이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음식을 사 먹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다. 물건을 살 때에도 보통 도붓장수들을 집안으로 불러들였다. 예로부터 베트남의 대도시는 마을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베트남에 현대식 거리가 등장하는 것은 프랑스 식민시대 때부터였다. 잔업이나 야근 또는 교대 근무로 야간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거리를 중심으로 극장이나 오페라하우스 등 이른바 ‘밤거리 문화’도 탄생했다. 길거리 음식인 퍼를 주로 찾는 이들은 밤 늦게까지 일을 하던 도시의 노동자들이었다. 물론 그 중에는 밤공연을 마친 짙은 화장의 배우도 있었고 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나오는 관리들도 있었다. 식당이 문을 닫은 밤중에도 도붓장수들은 불을 밝히고 도시를 배회했고 사람들은 퍼를 먹으며 허기진 배를 달랬다. 언제 어디서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퍼에 하노이 사람들은 빠른 속도로 적응했고 퍼는 아침, 점심, 저녁 구분 없이 서민들에게 든든한 한 끼 식사가 되어 주었다.

한국의 부대찌개 그리고 베트남의 퍼

예부터 베트남에서는 농경사회의 근간인 소를 신성시하였기 때문에 식용하는 일이 드물었다. 응우옌 왕조의 수도 후에에 소고기 요리가 있다는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베트남 사람들은 소고기를 먹지 않았고 소를 요리하는 방법도 잘 알지 못했다. 농경사회에서는 노동력을 중요하게 생각해 베트남 봉건 왕조에서는 소를 도살하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소는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함께 노동을 하는 삶의 동반자였다.

그런데 프랑스군이 베트남에 주둔하면서부터 소고기를 즐겨 먹는 프랑스 사람들을 위한 소고기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주로 베트남 산간지대나 라오스에서 프랑스인들에게 소고기를 공급하였는데 주로 프랑스 병영이나 용병(현지인) 훈련소가 집중되어 있는 하노이와 남딘 지역에서 거래되었다. 처음에는 소뼈를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버렸다. 나중에 용병훈련소의 베트남 주방장들이 프랑스의 야채수프인 ‘뽀오페(Pot au feu)’를 모방해 소뼈를 고아 육수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군대에서 사용하지 않고 버려지는 소뼈는 여전히 많았고, 오랫동안 고아 국물을 낸 후 버려지는 소뼈에도 어쩐 일인지 힘줄이나 살점이 많이 붙어 있었다. 이처럼 군대에서 잔반으로 처리된 소뼈는 외부로 유출되어 시중에서 헐값에 유통되었다. 그리고 이 소뼈를 우려낸 국물에 국수를 만 것이 지금의 퍼가 되었고 ‘퍼’라는 이름도 프랑스의 정통 요리 뽀오페의 ‘페(feu)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 베트남 사람들의 애환을 달래준 음식, 퍼

‘퍼’라는 이름이 프랑스어에서 기원했다는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도붓장수들은 지게에 국물을 덥힐 작은 화로를 들고 다녀서 그 불빛 때문에 도시의 밤거리에서도 쉽게 눈에 띄었다. 프랑스 군인들도 야참으로 퍼를 즐기곤 했는데 그들이 도붓장수들을 부를 때 프랑스어로 ‘푀(feu, 불빛)’라고 한 것이 훗날 퍼의 이름이 되었다는 것이다. 퍼가 프랑스의 영향으로 탄생한 음식인지 아니면 순수한 베트남 요리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많지만 퍼가 대중적인 서민음식으로 자리잡은 데는 분명 프랑스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헐값의 소뼈가 나름의 역할을 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의 부대찌개라는 명칭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잔반으로 찌개를 끓여 팔기 시작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두 나라가 걸어온 비슷한 역사의 행적처럼 한국의 부대찌개와 베트남의 퍼도 닮은꼴의 슬픈 유래를 간직하고 있다.

퍼의 기원과 관련해 중국도 빼놓을 수 없다. 베트남과 인접한 중국의 광동성에서 유행하던 소고기 국수 우육분(牛肉粉)이 중국 보따리장수들을 따라 베트남 북부에 전해졌고 이것이 퍼의 기원이 되었다는 설이다. 면을 뜻하는 ‘분’은 중국어로 ‘펀(Phan)’이었고 이것이 ‘퍼’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퍼는 중국의 우육분과 달리 베트남의 전통 식재료인 늑맘(생선 소스)이 들어가며 중국의 면 요리에는 넣지 않는 파를 비롯해 베트남 특유의 향채가 곁들여지면서 베트남 음식으로 재탄생되었다. 퍼의 기원 속에는 베트남뿐만 아니라 프랑스, 중국 등 타자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지만 그것을 자신만의 음식으로 재창조해낸 것은 분명 베트남의 문화적 역량 덕분이었다.

전쟁 통에도 난민들과 함께 맥을 이어온 퍼

퍼는 소뼈를 우려낸 국물에 소고기 편육을 얹어 먹는 소고기 쌀국수인 ‘퍼보(Pho Bo)’가 원조다. 그러나 소고기 편육 대신 닭살을 찢어 올린 닭 쌀국수 ‘퍼가(Pho Ga)’를 즐기는 사람도 많다. 퍼가가 출현한 배경에는 전쟁이 있다. 베트남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또호아이(To Hoai)는 퍼가의 기원에 대해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39년경 하노이에 닭고기 퍼가 등장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당시 소나 물소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고 소견을 밝히기도 했다.

진정한 퍼는 퍼보라는 말이 있지만 전쟁 시기에 베트남 인민들과 가까웠던 것은 퍼가였다. 1945년 독립 이후 프랑스, 미국과의 30년 전쟁이 지속되면서 수많은 전쟁 난민이 발생한다. 인간은 물론 가축마저 씨를 말리는 잔인무도한 폭격 속에서 소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더욱 귀중한 재산이 되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소고기 대신에 닭이나 오리 고기로 퍼를 만들어 먹으며 전쟁을 버텨냈다. 시대의 다양한 요구와 더불어 퍼의 진화가 계속된 것인데 소설가 부방(Vu Bang)은 “1952년에 이르러 퍼는 하나의 완성된 음악처럼 절정에 도달하여 더 이상 어떤 재료를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경지에 올랐다”라고 평했다.

베트남 북부 사람들이 즐겨 먹던 퍼는 전쟁의 바람을 타고 전국으로 확산된다. 1954년 제네바협정 이후 베트남은 남북으로 분단되는데 프랑스군은 17도선 이남으로 철군하고 약 100만 명의 북부 사람들도 남부로 이주한다. 이 북부 이주민들이 생계를 위해 퍼를 만들어 팔면서 사이공을 비롯한 베트남 남부에서도 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923년 사이공에서 퍼를 팔았다는 도붓장수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만 1954년 이전까지 남부에서 퍼는 분명 희귀한 음식이었다. 북부인들이 대거 남하하던 당시 사이공에는 중국식 쌀국수 과조(粿條), 만둣국 훈툰(餛飩), 라면 등의 면 요리가 있었고 그 음식들을 만들어 파는 식당의 주인은 대부분이 화교였다. 퍼가 사이공에 상륙하면서 베트남식 면 요리가 급속도로 남쪽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게 된다. 북부 사람들은 원래 퍼에 쿨란트로, 바질 등의 향채를 곁들여 먹었는데 남부 사람들은 과조를 먹을 때 넣었던 숙주를 퍼에도 넣어 먹었다.

북부에서 유명했던 퍼 식당이 사이공에 등장하기도 했다. 1930년대 말부터 하노이에는 따우바이(Tau Bay)라는 퍼가 유명했다. 따우바이는 베트남어로 비행기라는 뜻인데 꽝가인을 지고 퍼를 팔던 팜당냔(Pham Dang Nhan)이 항상 머리에 비행기 조종사 모자를 쓰고 있어 사람들은 그를 따우바이라 불렀다. 그는 인도차이나공무원연금관리공단 정문 앞에서 장사를 했는데 그의 퍼를 찾는 사람들로 공단 앞이 매일 시끌벅적 혼잡을 이루자 프랑스인 공단 대표가 그를 쫓아냈다. 그러자 그의 퍼에 흠뻑 매료되었던 공단의 주사(主事) 도푹럼(Do Phuc Lam)이 간청하여 그가 다시 장사를 할 수 있게 도왔다. 1945년 8월혁명 이후 은인인 도푹럼이 일자리를 잃게 되자 팜당냔은 따우바이라는 상호로 퍼 식당을 열도록 돕고 자손들을 보내 퍼 만드는 법을 전수한다. 도푹럼이 하노이에 연 따우바이 식당은 골목까지 길게 줄을 이어설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듬해 프랑스와의 전쟁이 발발하자 도푹럼은 탄호아 성으로 피난을 가 당시 문인들과 예술가들의 근거지로 이름난 허우히엔 거리에 자리를 잡고 다시 퍼 식당을 열었다. 그곳에서도 따우바이 퍼는 명성을 날렸는데 베트남 최고의 작곡가로 손꼽히는 팜주이(Pham Duy)는 회고록에서 당시 따우바이 퍼에 대한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티우호아 현 허우히엔 거리에 한 예술가 가족이 살았는데 아들 도티에우리엣(Do Thieu Liet)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아버지는 그 유명한 따우바이 퍼를 팔았다. 식당 바깥벽에는 따우바이 퍼를 광고하는 익살스런 시구가 적혀 있었다.

누구든 호우히엔 거리를 지날 때

돈이 있거든 따우바이 퍼로 오시게

값은 비록 속이 쓰리도록 비싸지만

맛은 어디에도 비할 데 없어

먼 곳까지 명성이 자자하다네

1954년 제네바협정 체결 이후 베트남이 남북으로 분단되자 따우바이 퍼의 창시자인 팜당냔은 사이공으로 내려온다. 사이공의 리타이또 거리에 식당을 열어 명성을 이어가던 그는 1976년에 세상을 떠났다. 현재는 그의 네 명의 자식과 열 명에 가까운 친손주, 외손주들이 가업을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지점을 내지 않고 오로지 따우바이 퍼 본점만을 운영하며 고유의 맛을 지켜가고 있다.

호치민시 10군에 위치한 따우바이 식당

사이공의 베트콩 아지트 ‘퍼빈’ 식당

사이공에는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콩의 아지트로 사용되었던 퍼빈(Pho Binh) 식당이 있다. 1965년 응오또아이(Ngo Toai)라는 사내가 퍼빈이라는 쌀국수 집을 열고 장사를 시작했다. 10년 전 북부에서 사이공으로 내려온 그는 베트콩 비밀조직 F100의 조직원으로 상부의 명령을 받아 식당의 주인을 맡았다. 1층은 여느 식당과 다름없이 퍼를 팔았지만 위층에서는 베트콩들이 모여 작전 회의를 하거나 인근의 구찌나 하노이와 비밀 교신을 하였다. 그리고 식당의 지하에는 북부에서 들여온 B-40 견착용 로켓포, AK-47 소총, 수류탄, 다이너마이트, 시한폭탄 C4 등이 숨겨져 있었다. 식당에 숨겨져 있던 무기들은 소달구지에 실려 사이공에 있는 13곳의 베트콩 비밀 기지에 분배되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콩의 아지트로 사용되었던 퍼빈(Pho Binh) 식당의 오늘날 모습

   이 모든 것은 1968년 1월 30일 밤부터 시작된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과 북베트남의 구정대공세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작전은 실패로 끝나고 퍼빈의 주인장 응오또아이는 체포되어 온갖 고문과 고초를 겪은 후 꼰다오 섬의 감옥에 갇히고 만다. 1973년 파리 평화협정으로 풀려난 응오또아이는 다시 식당을 열어 퍼빈의 역사를 이어가다 1994년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그의 사위가 운영하고 있는 퍼빈 식당은 1988년 베트남 문화부로부터 역사 유적지로 지정되었다. 현재 1층은 예전처럼 식당을 운영하고 있고 2층은 베트남 전쟁 당시 퍼빈에서 활동했던 투사들의 사진과 자료,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베트콩의 쌀국수집 퍼빈의 이야기는 미국 뉴욕타임즈와 LA타임즈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밖에 사이공에서 퍼로 유명한 식당은 1군의 파스터 거리에 있는 퍼호아(Pho Hoa)가 있다. 1960~70년경에 리어카를 끌고 사이공 북부의 고밥(Go Vap)군에서 20km를 내려와 파스터 거리에서 퍼를 파는 ‘호아’라는 사내가 있었다. 그가 파는 퍼의 기막힌 맛에 늘 길게 줄이 늘어섰는데 후에 그는 심(Xiem)이라는 여자의 가족에게 퍼를 요리하는 도구를 주고 비법을 전수했다고 한다. 심의 가족은 그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식당의 이름을 ‘퍼 호아’로 짓고 40년 넘게 파스터 거리를 지키고 있다.

전쟁의 슬픔, 그리고 퍼의 세계화

퍼는 어떻게 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가 베트남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을까. 1975년 베트남이 통일과 함께 공산화되자 정치적 신념이나 종교적 문제 때문에 상당수의 사람들이 보트를 타고 베트남 탈출을 시도하게 된다. 약 150만 명에 이르는 보트피플은 미국, 호주, 프랑스, 독일 캐나다, 영국, 일본 등 거의 전 세계 각지에 정착하게 되는데 이들이 생계를 위해 고국에서 먹던 간편한 베트남 쌀국수를 파는 음식점을 연 것이 지금 세계적으로 퍼가 퍼지게 된 배경이다. 베트남에서 퍼는 서민들의 허기를 달래준 노점 음식으로 출발했지만 외국에서는 값비싼 특식으로 판매되기도 했는데 일본에서는 고베 소고기를 얹은 퍼가 한 그릇에 20달러 넘게 팔리고 있다고 한다.

베트남을 찾는 외국인 여행자라면 꼭 한 번 맛보는 음식 또한 퍼다. 자기 나라에서 맛보았던 퍼의 원조 맛이 궁금해 식당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그중에는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있었다. 그가 찾은 곳은 ‘퍼 2000’이란 식당이었다. 퍼 2000의 창업자는 1989년부터 호치민시에서 서양식 레스토랑을 운영해온 유명한 사업가였다. 그는 일본의 스시, 이탈리아의 스파게티, 인도의 카레와 같이 베트남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퍼를 알리고 싶었고 새천년을 맞이하여 퍼의 전통적인 맛을 이어가면서도 깨끗하고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퍼 전문 식당을 열었다. 1995년에 부시 대통령을 자신의 레스토랑에 영접했던 그는 2000년에 다시 클린턴 대통령에게 자신의 퍼를 선보였고 그 이후부터 ‘대통령을 위한 퍼’라는 이름으로 퍼 2000을 알리고 있다.

'퍼 2000' 식당을 방문한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

   퍼 2000을 시작으로 호치민시에는 퍼의 현대화를 주창하며 시내 곳곳에 ‘퍼 24’를 비롯한 퍼 프랜차이즈 식당이 들어서고 있다. 퍼의 발원지는 베트남 북부, 퍼의 대중화가 시작된 곳도 하노이였지만 퍼의 본격적인 상품화, 자본화가 시작된 곳은 호치민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행자들이 깔끔한 외관에 반해 퍼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소비하는 퍼의 이윤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퍼 24의 사례를 보면 처음에는 베트남 프랜차이즈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필리핀 기업에 인수된 상태다. 현재까지 베트남에서는 자국의 토속음식으로 기업화에 성공한 사례가 드물고 외국계 기업이 베트남 외식시장 대부분을 잠식하고 있는 형편이다. .

베트남에 간다면 어디에서 어떠한 퍼를 먹는 것이 좋을까. 대대로 가업을 이어온 진한 국물의 ‘원조’ 퍼 집을 찾는 수고로움을 감수하는 것도 때로는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베트남 쌀국수인 퍼 한 그릇에는 식민지와 전쟁, 분단과 통일, 그리고 전후 재건의 20세기를 통과한 베트남 민중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인 백석은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 (중략) /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의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내용의 「국수」라는 시를 통해 음식 속에 담긴 마을 공동체의 삶과 희로애락, 음식을 통해 소환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노래했다. 한국과 유사한 근현대사를 공유하고 있는 베트남, 그리하여 혹자는 베트남을 일컬어 한국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던가. 세계 어디서든 한 그릇의 퍼와 마주한다면 한 번쯤은 그 속에 담겨 있는 ‘베트남의 반가운 그것,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그 무언가’를 느끼며 허기진 배와 마음을 채워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