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서울 여대 화방에 가서, 이미 내가 주문해서 천까지 씌워져 있던 캔버스들의 밑칠을 하기로 약속이 잡힌 날이다.
그러니까 그 캔버스들을 가져오기 전에 미리 '기초작업'을 해두기 위한 일환이기도 한데, 여기 '내 자리'가 너무 좁다 보니 그런 식으로 그곳의 공간을 이용하려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방학 전에 이미 약속이 돼 있었던 거고, 이제 그 일을 하려는데 아마 또 며칠 뒤에는 '입시' 실기시험 때문에 못한다기에 날짜를 조정해 두었던 것이기도 하다.
오늘도 물론 새벽까지 동영상 작업을 하다가, 그 일이 마음에 걸려,
일단 아침잠을 조금이나마 자두기로 하고 누웠다.
그래서 일어난 게 7시 경이었는데,
여유 있을 것 같던 시간이었지만, 어영구영 그 일을 하기 위한 9시 반이 돼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오늘은 공교롭게도 미국에 사는 한 친구에게서 오랜만에 문자가 와서(처음에 난 그가 서울에 와 있는 줄 알았다.), 몇 번 교환을 하는데,
봄에 나가려고... 하는 문자에서야, 그가 지금 미국에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되었고,
그동안 왜 그렇게 소식도 없이 지냈느냐는 내 질문에,
얘기가 기니, 나중에 한국에 가서 말해 주겠다는 답 등의 안부를 교환하다,
최근의 내 동영상 두어 개를 보내줬더니 좋아해서, 그걸 본 뒤 또 보내주기로 하고는
나도 서둘러 나갔다.
그런데 또 며칠 손도 대지 않았던 자전거의 타이어가 다시 납작해져,
큰 길 쪽의 '카 센터'에 가서 바람을 넣고서야 서울 여대로 갈 수 있었다.
미대 지하에 있는 화방(입구. 상 화방, 하)
어쨌거나 가자마자 또 서둘러 일할 차비를 갖추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화방 역시 학교 건물을 이용하는 처지라서 그런지 화방 주인도 좀 조심스러운 자세를 보여, 나 역시도 상당히 불편했다.
그런데 그 일이란 것이 준비된 캔버스를 다 펼쳐놓고 하나씩 기초작업('젯소'라는 기초액을 물에 희석시켜 캔버스 천에 바르는)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바닥이 얼룩이 지는 등 지저분해지는 것 역시 피할 수 없는 일이라,
이런저런 눈치를 보느라 일이 제대로 되어주질 않았다.
캔버스의 양은 많은데, 그걸 다 펼쳐놓아야 함에도 그렇지 못하다 보니,
이런 식으로 일이 될까? 싶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도 그 상황을 감지했던지, 나중에는 자신이 나서서 바닥에 신문지를 깔아주는 등, 그런 뒤엔 또 캔버스를 일일이 하나씩 벽에 세워주어, 내가 그 자체로 밑칠만을 하게끔 도와주기까지 해 내 일손을 상당히 줄여주었다.
물론 나는 그가 고맙기도 했고 또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 일이라는 게 그럴 수밖에 없어서(그렇지 않았다면 굳이 거기서 그 일을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 나중에는 거기 복도를 거의 다 차지한 큰 공사가 되는 걸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일은 단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닌, 적어도(내 기준으로는) 두세 번은 그 밑칠을 한 뒤, 또 마르기를 기다린 다음 그 위에 이제는 유화 물감 자체로 밑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의 과정 역시 그런 번잡스러움을 피할 수 없는 것인데,
일을 하다 보니,
그 사이에 청소하는 아줌마도 왔다 갔는데, 내 일하는 모습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니는 등......
그러다 보니 나는 나대로,
아, 뭐든 쉬운 일은 하나도 없구나! 하는 건 물론,
이런 큰 공간에서도 이런데, 내 아파트에서 이런 일을 하려면?
앞이 캄캄한 건 물론,
이러면서도 그림을 계속 그려야 한단 말이지? 하는 근본 문제까지 생각해야 할 정도로 짜증이 몰려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일이 시작된 거라, 또 그 일에는 정성을 들일 수밖에 없었는데,
선생님, 점심은 어떡하실 거예요? 하고 그가 묻기에,
글쎄요....... 했더니,
저는 집에서 도시락을 싸왔기 때문에 여기서 먹어야 하는데요. 하기에,
잘 됐네요! 얼추 초벌은 끝나가니, 나도 집에 가서 먹는 걸로 하지요. 하면서도 속으론,
내가 점심이라도 사야 하는데...... 하는 생각도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것도 생각 뿐,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말았는데......
그렇게 그 곳을 온통 작업장으로 만들어놓은 상태로 오늘 일은 멈추게 되었는데,
(내 마음 같아선 거기서 유화 밑칠까지 끝낸 뒤(그 일을 하면 시간도 훨씬 많이 걸린다. 유화가 말라야 하기 때문) 가져오고 싶은데, 그건 언감생심이고)
더는 그 화방에 피해가 되지 않도록 내일 한 번 더 와서 재벌(두번 째 밑칠)을 한 다음, 그것 역시 말려야 하기 때문에 그대로 둔 뒤, 아마 다음 주 초(월, 화?) 그렇게 벌려놓은 걸 다 치우면서 내 캔버스를 그 당장 가져오던지, 한 며칠 그곳에 더 두었다가 옮겨와야 할 거라는 결론은 내렸는데,
그 운임(용달을 불러야 한다.)도 그렇지만, 난 아직 그 캔버스 값의 완불도 못한 상태라,
화방에 일부 부채를 남기게 되었다.
그런 문제점을 여전히 안은 상태였지만, 일단 오늘 작업은 마감을 했다.
그리고 내일 오기로 하고 화방을 나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일 역시 내가 화방 주인에게 못할 짓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청결'을 원칙으로 하며 일하는 공간을 그렇게 난장판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아무리 방학이라지만, 그건 내 생각이지, 그 현장에선, 피해도 보통 피해가 아닐 거라는 걸 오늘 일하면서 저절로 깨닫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오죽하면,
이러면서 계속 그림을 그려야 한단 말인가? 하는 생각까지 했을까.
그 모든 게 공간이 없어서 생긴 문제이자, 돈을 한푼이라도 아끼려는 '가난'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도 했다. (그런 비용을 포함한 캔버스 비용을 지불한다면 내가 굳이 그런 부담을 안을 필요가 없지만, 그렇잖아도 내 편의를 많이 봐주는 화방주인에게 덤으로 부담까지 주고 있어서......)
아무튼, 내가 고통을 당하는 거야 피할 수 없다지만 제 3자에게까지 피해를 주게 되는 이 일도 반복해서는(이 화방을 이용하는) 안 되겠다는 (결국, 이번 일의 결정은 내 생각이 짧았다는 ) 결론을 내리면서,
'동사무소'에도 들러 한 가지 일을 하고는 아파트로 돌아왔다.
어제 찬밥으로 점심을 먹은 뒤, 나는 오전 내내 일했던 피곤함(별 일 아닌 줄 알았는데, 쉬지 않고 일을 해서인지 제법 피곤했다.) 때문인지 꾸벅꾸벅 졸기까지 해서,
아예 낮잠을 자두기로 했다.
그렇게 잠이 들었을까 말까 했는데, 전화벨이 울려 받아 보니,
또 다른 한 친구였는데,
몇 마디 안부를 묻다가 끊긴 했는데,
선잠에서 깨어난 나는 다시 잠을 이루기가 쉽지 않아, 그대로 멍- 하게 앉아 있었는데,
새해가 시작됐다고는 하지만, 벌써부터 난관에 직면하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 뿐이었다.
첫댓글 아직은 꿈을 꾸고 실천하고 얼마나 좋아요.
아무 생각없이 산다면 그게 무슨 삶이겠어요.
아무리 꿈이라고 해도,
'민폐'를 끼쳐서야 어디 꿈 같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