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즈스탄 문화체험 프로그램이 시작되다!
- 자료 글 제공: 키르기즈 아리랑 문화센터 임석호 문화원장
1. 키르기즈스탄 국가 주요 현황
1) 국 명 : 키르기즈스탄 공화국 (키르기즈 - "40부족"혹은 "40명의 여인들"이라는 의미)
2) 수 도 : 비쉬켁(Bishkek, 100만)
3) 위 치 : 중앙아시아(중국/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과 접경)
4) 면 적 : 198,500㎢ (남한의 약 2배 정도)
5) 인 구 : 약 500만명(2002 현재)
6) 평균 수명률 : 남성-58.32년, 여성-69.53년
7) 기 후 : 전체적으로 대륙성 고산 건조기후이나 건조한 대륙기후에서 산악지역의 극성 기후, 남서쪽 페르가나 계곡의 아열대성 기후, 북쪽의 평야지대의 온대기후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다.
8) 주요민족 : 키르키즈인 52.4%, 러시아인 15%, 우즈베크인 12.9%, 우크라이나인 2.5%,독일인 5%, 기타 5%
9) 국가성립 : 91.12. 21
10) 정체 : 공화제(대통령 중심제)
11) 대통령 : 바키예프 (Bakiev Kurmanbek Salyjevich)
12) 국제기구가입 : UN(92.3)
13) 중점경제정책 : 시장경제 제도로의 점진적 이행, 사유화 및 민영화 작업 진행
14) 화폐단위 : 솜(Som)/100$=4,550 SOM (2003. 4.18)
15) 주요자원 : 석유, 석탄, 안티몽, 수은
2. 자연 환경
1) 지리적 조건 - 동서 900 km, 남북 410 km의 짧은 거리에도 지형의 변화가 많은 산악국이다. 산지가 약 92 %, 경작 거주지인 평야지가 8 % 정도이며, 국토의 평균해발고도가 2,750 m이다. 수도인 비슈케크도 해발고도 774 m의 고지에 위치한다.
2) 기후 - 산악국가이므로 해발고도와 사면의 방향에 따라 달리 나타나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서부와 북서부의 산록에서는 강수량이 800 mm, 곡저분지에서는 200~300 mm 정도이나, 해발고도 3,000 m까지는 높아짐에 따라 강수량이 증가하나, 3,000 m 이상에서는 여름에도 비가 눈으로 되어 내린다. 이러한 강수량은 톈산산맥에서 풍부한 복류수(伏流水)가 되어 오아시스를 만들어, 관개나 생활․산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해발고도 774 m에 위치한 비슈케크의 연강수량은 363 mm이나, 해발고도 1,768 m인 프르제발스크에서는 460 mm이다. 사계절이 뚜렷하며 계절에 따른 대략적인 날씨는 아래와 같다.
- 봄 : 온화한 비교적 좋은 기후
- 여름 : 고온 저습, 평균기온 : 20℃∼30℃, 최고 기온 44℃ 이상
- 가을 : 온화한 비교적 좋은 기후
- 겨울 : 저온 고습 평균기온 : -7℃∼-3℃, 최저 기온 영하 54도
3. 주민․언어․종교
주민의 약 52.7 %는 키르기스인(人)이며, 다음으로 러시아인이 23.5 %,우즈베크인이 12.9 %, 우크라이나인이 2.6 %, 독일인이 2.4 %, 타타르인이 1.6 %, 그 외에 소수민족이 5.0 %에 이른다. 이 중에는 러시아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된 한국인 1만 9355명이 있다. 주민은 3 % 전후로 높은 출생률을 나타내나, 사망률은 7~8 %로 선진국 수준으로 낮아졌다.
언어는 터키어의 방언인 키르기스어를 공용어로 하고 있으나, 민족간의 공통어로서 러시아어를 인정하고 있다. 러시아인 등 유럽 계통의 주민은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다민족 국가이므로 다언어 사용집단이 있어, 2중․3중의 언어사용자도 많다. 즉 러시아어와 각 민족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소련시대에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정하여 교육을 통한 보급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종교는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 등을 제외하면 이슬람교를 믿으며, 독립 후 이슬람 부흥운동이 있으나 원리주의로의 복귀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4. 생활 및 문화
전통적인 유목민족이었던 키르키즈인들은 이동이 용이한 텐트인 유르트(Yurt)에 살면서 그들의 생활에 적합한 문화를 발달시켜 왔다. 겨울에는 모든 일족들이 함께 모여 거주하고 여름에는 높은 산에 올라가 텐트를 줄지어 짓고 거주하면서 목초지를 이용한다.
<사진 2 - 양떼를 먹일 초지를 찾아 늘 떠돌아다녀야하는 유목민족이기에 이동이 용이한 유르따가 그들의 삶의 터전이 되었다.>
키르기즈인들은 "손님은 신의 선물, 오랫동안 머물러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라는 속담 외에 손님을 접대하는 것과 관련된 많은 잠언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 지역의 사람들은 사람사이의 관계와 교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손님을 만났을 때 그들은 악수를 하는데, 오른손으로만 했을 경우에는 사악한 마음이 없음을, 양손으로 했을 경우에는 서로의 정이 깊음을 표현한다. 손님에게 차를 대접할 때는 뜨겁게 마실 수 있도록 조금씩, 차잔이 빌 때를 기다렸다가 따라주는 등 극진히 접대한다.
키르기즈 문화는 남자이건 여자이건 간에 노인들을 특별히 존경한다. 노인들에게는 존경의 표시로 '악사칼'(백발)이라는 칭호가 주어진다. 출생 순서도 중요시 된다. 관습상으로는 자기의 형이 배우자를 찾을 때까지 동생은 결혼을 할 수 없다. 남녀간의 역할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 남자들은 샤슬릭(양고기 꼬치구이), 플롭(기름과 고기를 넣고 볶은 밥) 등의 몇가지 요리를 제외하고는 요리를 하지 않는다.
여성들은 집안 청소와 자녀 양육을 담당한다. 보통 키르기즈 남자가 자기 자녀들과 함께 노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손님을 후대하며 노인을 공경하고 깍듯한 인사와 예의를 존중하는 등 한국과 유사한 키르기즈 민족의 문화는 한민족의 전통문화와도 유사한 점이 있다.
키르기즈의 남쪽 지역인 오쉬에 가보면 가장 큰 국립공연장 앞에 무궁화가 있다. 길거리에도 무궁화가 심겨진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일명 샤론의 꽃으로 불리우는 무궁화는 한국의 국화인데 이곳 키르기즈스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을 보면 비슷한 생활문화와 더불어 한민족과의 유대관련성을 생각해보게 한다.
키르기즈스탄에는 민족의 수호신인 만나스 장군에 대한 대서사시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그 내용이 대부분 충성과 효도, 신의 등의 도덕적 품성에 관련된 것으로서 오늘날에도 키르기즈 민족의 도덕성을 지키는 영혼의 수호신 역할을 해내고 있다. 법과 제도 이전에 친절과 신뢰 등의 도덕적 수준이 갖추어지지 못한 곳에서는 어떤 사업도 쉽지 않기 때문에 만나스 장군의 역할이 오늘날에도 크다고 하겠다.
II. 가볼만한 곳
1. 이스쿨
<사진 5 - 국제 유네스코 생태환경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이스쿨 호수, 이 나라사람들은 키르기즈의 태양이라고까지 말한다. >
이스쿨은 키르기즈의 태양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이 나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지역이다. 구 소련 당시에 이스쿨은 소련 공산당 고급 간부들만의 휴양처로 사용되었으며 일반인들의 출입은 통제된 지역이었다. 따라서 한국의 그린벨트와 같이 개발제한과 환경보전에 관한 엄격한 통제 아래 유지되어왔으며 현재 유네스코 세계 생태환경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있을 만큼 청정지역으로 보전되어왔다.
세계적인 청정지역 이스쿨 지역은 친환경 농산물 생산과 천연치료를 통해서 질병 없는 지구환경을 회복하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꿈을 이루는 장소가 되어주고 있다.
이스쿨은 톄산 산맥[天山山脈]에 자리잡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큰 산정(山頂) 호수 가운데 하나이다. 수려한 경치와 독특한 과학적 흥미의 대상으로 유명하다. 이스쿨 분지의 안쪽 가장자리에 있으며 길이 182㎞, 너비 61㎞에 이르는 남미의 티티카카 호수(Lake Titicaca)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산악 호수이다. 수역면적은 6,236㎢이다. 수심은 702m, 용량은 1,738㎦ 정도이다. '뜨거운 호수'라는 뜻의 키르키스어에서 비롯된 이스쿨이라는 이름은 호수가 1,608m 고도에 있지만 겨울철에도 얼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톈산지맥의 쿤게이알라타우(북쪽)와 테르스케이알라타우(남쪽) 양 산맥에 끼어 많은 하천이 유입하지만 호수에는 유출구가 없다. 염분농도는 약 5.8 ‰이다. 표면수온은 여름에 20 ℃, 겨울에도 2~3 ℃를 내려가지 않는다. 호수에는 여러 종류의 물고기가 살며, 황어나 잉어류의 물고기가 다소 어획된다.
소비에트 시절에 호수가를 따라 건강 온천장이 늘어서 있었으며 소비에트 붕괴와 함께 문을 닫았던 휴양소들은 최근 이웃나라 카쟈흐스탄 민족들을 중심으로한 세계적인 관광객들의 발길과 함께 새로운 건축붐을 형성할 정도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스쿨 호수는 또한 서방의 눈길을 피해 소련 해군이 고정밀 어뢰를 테스트하던 곳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호수주변에 공식적으로 금지된 아편 양귀비와 마리화나 농장이 있을 수도 있기에 최근까지 외국인에게 출입 금지가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외부세계에 베일에 감추어진 이스쿨 호수는 세계적인 청정지역으로 보존될 수 있었고 환경 문제와 먹거리 문제가 인류의 가장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최근에 이르러서는 그 중요성과 가치가 더욱 높아지고 있는 지역이 되었다.
1) 고려인 고향마을 - 아리랑 휴양소
이스쿨에는 많은 휴양소들이 있다. 이스쿨 해변을 따라서 100여개가 넘는 크고 작은 휴양소들이 있다. 라두가, 크라벤, 앙마라 등의 최근에 지어진 것들과 아브로라 등 역사를 자랑하는 유명휴양소들도 많다. 이들 대부분의 휴양소들은 촐판아타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그 이유로는 촐판아타 지역의 기후와 자연환경이 휴양에 적합한 것과 비쉬켁이나 알마타에서의 거리가 비교적 가까운 것과 관계가 있을 것 같다. 비쉬켁에서 촐판아타 지역까지는 자동차로 약 3시간 30분. 아침에 출발하면 점심때 쯤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다.
고려인 고향마을 아리랑 휴양소는 촐판아타 지역에 위치한 휴양소들 중에서도 갈매기들이 서식하는 독특한 섬을 포함하고 있어서 인근 휴양소 중에서도 최고의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일명 챠이카(갈매기라는 의미의 러시아말)라고 불리는 이 천혜의 휴양소는 한때 대통령 일가에서 소유하고 있었을 정도로 그 입지 조건이 뛰어나며 현재는 고려인들을 위한 자리로 제공되어지고 있다.
연해주를 비롯한 중앙아시아 등 구 소련 지역에 흩어져있는 고려인들은 약655만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은 한가족이라 할지라도 각각 1세대는 함경북도, 2세대는 연해주, 3세대는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그 출생지가 제 각각이다. 그래서 그들의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에, 또는 국적이 어디냐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한민족으로 태어났지만 한국에 살지 못하는 그들을 위해서 이스쿨에 고려인들을 위한 고향마을이 설립이 되었다. 대부분의 고려인들에게 이스쿨은 구 소련 당시부터 한번쯤 꼭 가보고 싶은 선망의 대상이 되었기에 이곳에 한국의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아리랑 문화센터를 설립하고 고려인들에게는 숙박과 식사를 절반값에 제공하여 고려인들을 초청하고자 하게 된 것이다.
고려인 고향마을의 설립은 키르기즈스탄에서 성공한 고려인인 발레리 양 뾰토르비치(한국이름 양천산) 전국회의원과 한국의 (사)고려인돕기운동본부 회장인 이광길씨에 의해 공동으로 이루어졌다. 한국에서 오는 방문객들이라면 키르기즈스탄이라는 이국 땅에서 한국의 정취가 물씬 배어나오는 이곳에서의 휴식이 남다른 감회가 있을 것이다.
2) 아브로라 호텔의 천연치료 체험
아리랑 고향마을에서 30분 정도 더 가면 구소련 당시에 아마도 이스쿨에서 최고급 호텔로 운영되었을 아브로라 호텔을 볼 수 있다. 객실의 규모나 정원의 크기, 시설 등에 있어서 이 호텔을 따를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최고급이었다 할지라도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구식 건물이 될 수밖에 없기에 지금도 최고급이라고 추천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다만 이 호텔에서 행해지는 천연치료들, 즉 물로 지압을 하는 수치료, 진흙을 몸에 바르는 흙치료, 소금으로 뒤덮인 방에서 휴식을 취하는 소금 치료, 기계 마사지와 사람 마사지 등의 치료법들은 한번씩 체험할만한 이색적인 것들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최근에서야 웰빙 바람을 타고 행하여지는 이런 천연치료들이 구 소련 당시 수십년전부터 실시되어왔다는 점에서 색다른 분위기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3) 중앙아시아의 알프스 - 세미노프카 국립공원
아리랑 고향마을에서 비쉬켁 반대편으로 40분 정도 더 가면 세미노프카 국립공원 입구가 있다. 비포장길로 30분 정도 들어가면 드넓게 펼쳐진 초원이 나타난다. 한국에서도 보기 어려울 뿐더러 키르기즈스탄에서도 좀 처럼 보기 드문 광경이다. 키르기즈스탄을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고 표현한다면 이곳은 스위스 중에서도 알프스에 해당된다고도 할만한 곳이다.
양떼와 말떼가 무리를 지어 풀을 뜯어먹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시원하면서도 푸근하게 해준다. 가끔씩 목동들이 말을 데리고 와서 말을 태워줄테니 돈을 내라고 흥정을 걸어온다. 30분에 100~200솜( 3,000~6,000원 정도) 이면 되는데 500솜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미리 100솜이라고 가격을 제시하면 대부분 순순히 관광객이 제시한 가격에 따른다.
4) 붉은 바위가 인상적인 제띠오구스
비쉬켁에서 촐판아타와 세미노프카를 지나서 2시간 정도 계속 달리다보면 키르기즈스탄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인 가락골이 나온다. 제일 큰 도시는 물론 수도인 비쉬켁이고 두번째 큰 도시는 비쉬켁에서 10시간 정도 떨어진 남쪽 지방에 위치한 오쉬이다. 세번째 큰 도시인 가락골은 이스쿨 주의 주청소재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가락골이라는 지명이 한국의 지명과도 비슷해서 혹시나 한국 사람들이 부르기 편하게 바꿔 부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하는데 실제 지명이 가락골이고 원음에 가깝게 발음을 굳이 한다면 카라쿨(Karakul)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비쉬켁에서 들어오는 길에 이스쿨의 입구에 해당하는 곳이 발륵치라고 한다면 가락골은 이스쿨 호수의 끝에 해당한다. 이곳에서부터 다시 이스쿨 남쪽길을 따라 비쉬켁을 향해서 40분 정도 가면 ‘갈라진 심장’이라고 부르는 붉은 바위산이 나온다.
제띠오구스라고 부르는 이곳은 나름대로 관광명소로 소개되기는 하지만 그리 볼 것이 많은 것은 아니다. 다만 흔치 않은 붉은 바위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보는 위치에 따라서 기도하는 손처럼 보이기도 하고, 갈라진 심장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 특색있어서 관광명소로 소개되는 것 같다. 큰 도로에서 약 30분 정도에 위치하여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기에 가락골 가는 길이 있으면 한번씩 다녀와 볼 만은 하다고 하겠다.
2. 오쉬
1) 이슬람의 도시 - 오쉬
오쉬는 키르기즈스탄의 2번째 큰 도시이다. 한국으로 보면 부산과 같다고 하겠다. 크기만 2번째로 크다고 해서 부산과 비유되는 것은 아니고 그 위치도 키르기즈스탄의 남쪽 끝에 위치해 있다. 비쉬켁과 오쉬는 여러모로 대비가 된다. 비쉬켁은 러시아나 유럽의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진다면 오쉬는 이슬람 문명의 아랍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진다. 비쉬켁이 좀 새로운 신세대 분위기라면 오쉬는 구세대적인 느낌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남쪽 지방에 위치해 있기에 기후도 좀 더 더운 편이다. 여름과일인 메론의 경우 초여름에 우즈벡에서 우선 나오기 시작해서 한달 후쯤에는 오쉬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한달 쯤 뒤에는 비쉬켁에서 나오게 된다. 일조량이 좋고 온도가 높은 까닭에 여름 과일이 풍부하다.
2) 오쉬 가는 길
멋진 풍경을 원하는 관광객들이라면 오쉬 가는 길을 꼭 추천하고 싶다. 오히려 오쉬에 도착해서는 그다지 볼거리가 많지는 않다. 기껏해야 이슬람 사원하나가 있는 정도이다. 이슬람 문명에 관심이 있다면 우즈벡키스탄의 사마르칸트나 부하라를 권한다. 오쉬는 이슬람 문명 유적지도 상당히 빈곤한 편이다. 대신 비쉬켁을 출발해서 1시간 거리에 까라발따라고하는 작은 도시가 하나 있다. 그곳에서부터 오쉬까지 가는 길 중에 약 3시간 정도의 거리에 펼쳐진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차로 올라가는 가장 높은 곳의 해발은 4,000미터가 넘는다. 그 풍경을 제대로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사진 몇장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더우기 자신이 사진 촬영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10분에 한번씩은 차를 세우고 싶은 충동에 옆사람들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까라발따에서 3시간 정도 가다보면 산꼭대기를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식당과 휴양소들이 몇군데 있는 곳이 나온다. 특별히 오쉬에 볼 일이 있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관광을 목적으로 한다면, 더우기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면 굳이 오쉬까지 10시간씩 걸려서 다녀오기보다는 까라발따에서 3시간 거리에 있는 휴양소를 목적으로 가고 오는 길에 펼쳐진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오기를 권하고 싶다.
3. 비쉬켁
비쉬켁은 키르기즈스탄의 수도이다. 인구는 약 100만 정도이며 수십개의 대학이 운집해있고 큰 쇼핑센터, 정부기관, 외교청사 등이 몰려있는 정치, 경제, 교육,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전체 인구 500만 중에서 1/5에 해당하는 100만이 몰려있는 것은 전체인구 4,500만 중에서 1,000만이 몰려있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과 그리 다를 바 없다. 한국도 서울에 모든 것이 너무 편중되어있는 것처럼 키르기즈스탄도 비쉬켁에 대부분이 편중되어있다. 차량 부속품이 되었든지, 건축자재가 되었든지, 의류가 되었든지 대부분 괜찮다 싶은 것은 모두 다 비쉬켁에 몰려있다.
그러나 마땅히 관광객들이 갈만한 곳은 별로 없다. 쇼핑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도르도이나 오쉬 등의 재래식 시장이나 쑴이나 베타, 또는 최근에 새로 생긴 베파, 도르도이 프라자 등의 쇼핑센터로 발길을 돌릴 것이고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레닌박물관에 가보겠지만 박물관 치고는 너무 작은 규모에 실망을 할 수도 있을 것같다. 떠돌아 다니는 유목민족이어서 그런지 한국처럼 농경문화 속에서 나온 전시할만한 문화유산이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특별한 볼거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람사는 모습이 보고 싶다면 최근들어 차와 사람들로 북적대는 비쉬켁 시내를 하루 이곳 저곳 돌아보는 것도 색다른 체험이 될 것 같다. 한가지 주의할 점은 최근들어 기름값이 오르는 탓에 그나마 별로 싸지 않은 물가가 더욱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숙박비나 음식비, 교통비, 통신비 등은 거의 한국과 비슷할 정도로 비싼 편이다. 키르기즈스탄은 공업이 아직까지 그리 발달하지 못한 탓인지 공산품 가격은 상당히 비싸다. 거의 수입에 의존하는 전자제품의 가격은 한국보다 30%정도 비싼 편이고, 기타 가정용품들도 한국과 비슷한 편이다. 음식값과 과일값은 한국에 비해 다소 싼편이긴 하다. 물건값이 많이 쌀 거라고 기대하고 갔다가는 실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끝>
- 키르기즈스탄 아리랑 문화센터 제공 -
자료제작: 원장 임석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