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며 아름다운 풍경을 접하는 것만큼이나 식도락도 결코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 지역에서 오래도록 전해내려오는 향토음식이나 특미를 맛보는 즐거움이 크기 때문이다. 전국
곳곳을 다니며 직접 경험한 음식들을 지역별로 나누어 정리해보았다.
<강원도>
1. 곰치국
10 여년 전쯤 강원도를 여행할 때 처음 곰치국을 먹었다. 생선으로 끓인 탕을 좋 아하지 않았는데 동행했던 친구의 권유로 맛을 보게 되었고 그 이후부터 강원도를 여행할 때면 꼭 찾아먹는 음식이 되었다. 묵은지를 넣고 끓인 곰치국은 곰치 의 연하고 부드러운 살과 담백하고 칼칼한 국물맛이 일품이다. ‘물곰’,‘물텀벙’ 이라고도 불리는 곰치는 곰치과의 야행성 물고기로 주로 동해안에서 잡힌다. 예전 에는 못생기고 살이 물러 안먹고 버렸으나 지금은 귀하고 비싼 생선이 되었다. 물 메기와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물메기는 곰치보다 크기가 좀 작고 육질이 좀더 단단하다. 그리고 주로 서해나 남해안에 서식한다. 곰치국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시기는 12월에서 2월까지, 겨울이 제철이다. 맑게 끓이기도 하지만 묵은지를 넣은 곰치국을 먹으면 잘 익은 김치가 더욱 깊은 맛을 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겨울 에 강원도를 여행한다면 향토음식인 곰치국을 한그릇 맛보아도 좋을 것이다.
2, 섭국
오래전, 강릉에 갔을 때 ‘섭국전문’이라는 간판이 붙은 음식점을 보았다 섭국이라는 음식이 무척 낯설고 궁금했는데 일종의 홍합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원도 영 동지방의 향토음식으로 속초시나 양양군, 고성군 지역에서 즐겨먹는 음식이라고 한 다. ‘섭’은 참담치, 즉 자연산 홍합을 이르는 말로 양식 홍합보다 크는 속도도 느리 고 크기도 훨씬 크다고 한다. 섭국, 섭죽, 섭무침, 섭전, 섭밥, 섭칼국수 등, 속초, 강릉, 동해 인근에 자연산 섭 전문식당이 여러 곳 있다. 홍합과 부추, 그리고 밀가루 또는 찹쌀가루를 넣어 국물을 걸쭉하게 만들고 국물에 된장이나 고추장을 풀어 맛을 낸다. 식당에 따라 칼국수나 수제비를 넣기도 한다. 아직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큼직 큼직한 섭이 쫄깃하게 씹히는 맛도 있고 시원하고 얼큰하여 아침식사나 해장으로도 제격이라고 하니 다음 번 강원도여행 때는 꼭 먹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3. 우럭미역국
우럭미역국은 강릉의 향토음식이다. 물론 동해안의 다른 곳에서도 먹을 수 있지 만 특히 강릉 사천해변에 우럭미역국을 끓이는 집이 많다. 몇 년전 강릉 헌화로를 구경하고 사천해변에 들렀는데 해변에 횟집들이 무척 많았다. 메뉴는 거의 대부분 물회와 회덮밥, 회국수, 우럭미역국이다. 싱싱한 우럭의 뼈를 발라 미역과 함 께 끓인 국으로 전혀 비리지 않고 담백하고 고소하여 종종 생각나는 맛이다. 남쪽 지방인 통영에서도 도다리나 낭태를 넣어 미역국을 끓인다. 통영의 미역국이 맑고 시원한 맛이라면 강릉의 우럭미역국은 국물이 진하고 고소하다.
4. 오대산 유정식당 ;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368.
20여 가지가 넘는 나물반찬과 불향이 살짝 나는 더덕구이, 그리고 쫄깃한 감자 전의 맛이 잊혀지지 않는 식당이다. 어느 해 오대산 월정사에 다녀오며 바로 아래에 있는 유정식당에 우연히 들렀다가 평창에 가면 꼭 들르는 곳이 되었다. 황태해장국, 황태정식, 산채비빔밥, 산채정식, 황태구이, 더덕구이, 감자전, 도 토리묵, 메밀꽃술, 등을 판다. 식당에는 각종 나물을 종류별로 설명해놓은 글이 벽에 붙어있고 직접 채취한 산나물, 들나물과 농산물을 사용한다는 문구도 보 인다. 황태정식을 주문했는데 계속 나오는 나물반찬으로 상이 비좁을 정도였 다. 생선구이, 도토리묵, 전, 된장찌개, 더덕구이가 따라 나온다. 간이 세지 않 고 슴슴하게 무친 갖가지 나물들을 먹어 보는 일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특히 따로 파는 더덕구이를 조금 내주는데 불향이 살짝 나는 그 맛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봄에 가면 달래를 듬뿍 넣어 된장찌개를 끓여주는데 그 맛도 훌륭하 다. 기껏해야 일년에 두세 번 찾아가는 남쪽 끝에서 온 손님을 기억해주는 주인장의 넉넉한 마음도 편안하다.
5. 강릉 초당순두부
강릉 초당동에 있는 난설헌생가에 갈 때면 늘 순두부를 먹는다. 초당마을의 순두부는 수백 년의 세월을 간직하고 있다. 이곳 식당들은 바닷물을 간수로 쓰고 국산 콩을 이용하여 두부를 제조하는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강릉 앞바다는 수심이 깊고 바람이 강해 천일염 생산이 어려워 소금이 귀했다. 난 설헌(초희)의 아버지 허엽이 강릉부사로 있을 때 맑고 깨끗한 동해의 바닷물 을 간수로 사용하여 두부를 만들었는데 특유의 맛이 소문나면서 지역의 대표 음식이 되었다. 허엽은 자신의 호인 초당으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초당동 두부마을에는 대를 이어 두부를 만드는 집이 20 여곳 가까이 있다. 강원도에 서는 순두부를 초두부라고 부르기도 한다. 갓만든 순두부는 고소하고 질감이 몽글몽글하여 부드럽다. 그리고 순두부와 모두부는 양념없이도 먹어봐야 한 다. 두부본연의 고소하고 담백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식당마 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 순두부전골, 두부전골, 청국장, 순두부백 반, 모두부가 차림표에 올라있다.
6, 영월 다하누촌 한우 ;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주천리 1238-4
영월 다하누촌은 정육점과 식육식당이 모여 있는 곳으로 주천면 일대 한우농 장에서 직접 품질 좋은 한우를 사들여 도축ㆍ가공ㆍ판매하는 곳이라 착한 가 격에 신선한 한우를 먹을 수 있다. 다하누촌 정육코너에서 좋아하는 부위를 골라 사서 식당에 가져가면 상차림비용만 내고 구워 먹을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 의 다하누촌 식당에서 파는 한우국밥, 불고기, 갈비탕, 육회비빔밥, 육회 등으 로 식사를 겸해도 된다. 10년 전 여름, 영월을 여행하며 다하누촌에 들렀을 때는 얼음막걸리축제가 한창이었다. 그리고 신선한 고기를 저렴하게 배불리 먹었던 기억이 있다. 한편 주천면은 다하누촌 주변에 10여 개의 꼴두국수 집 이 있어 꼴두국수촌으로도 이름난 곳이다. 메밀을 주 원료로 하여 두부, 파, 호박, 김 등을 넣는데 걸죽한 국물과 쫄깃한 면발로 많은 미식가들이 즐겨 찾 고 있다. 꼴두국수는 영월의 향토음식으로 과거에 이 지역 사람들이 메밀로 만든 국수를 지겹게 먹어 꼴도 보기 싫다고 해서 꼴두국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고 한다. 다하누촌에서 7km 거리에 판운섶다리가 있다. 영월군 주천면 판운 리는 여름철 맑은 물과 강변 풍경으로도 유명하지만 겨울 무렵이면 섶다리가 놓여져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섶다리는 통나무, 소나무가지, 진흙으로 만든 임시다리를 말하는데, 강을 사이에 둔 마을주민들의 왕래를 위해 매년 물이 줄어든 겨울 초입에 놓았다가 다음 해 5월 말 쯤에 철거한다고 한다. 겨 울이나 봄에 다하누촌을 방문한다면 섶다리도 구경할 만하다.
7. 속초 아바이마을 오징어순대 ;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 550-14
아바이마을은 6.25 한국전쟁 당시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정착하면서 형성 된 마을이다. 드라마 <가을동화> 촬영지로 이름난 후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속초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자리매김했다. 차를 이용하여 금강대교 를 지나 아바이마을로 갈 수 있지만 청호동 갯배선착장에서 갯배를 타보는 것 도 좋다. 갯배는 다리가 없던 때 아바이마을과 속초시내를 연결해주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갯배에서 내리면 ‘가을동화’의 배경이 되었던 은서네집 슈퍼가 있고 식당가 골목에는 함흥냉면과 오징어순대, 아바이순대국 등 북한의 향토 음식점들과 카페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몇 년전 갯배를 타고 아바이마을 에 들러 단천식당에서 오징어순대를 먹은 적이 있다. 속이 꽉찬 오징어순대 위 에 같이 내오는 가자미식해를 얹어먹었다. 식해는 '젓갈'이란 의미로 생선을 삭 힌 반찬을 말하며 함경도 향토음식이다. 오징어순대 외에도 아바이순대, 모듬 순대. 냉면. 아바이순대국밥 등을 먹을 수 있다.
8. 감자옹심이
강릉 오죽헌을 구경하고 그 근처 식당에서 감자옹심이를 처음 먹어보았다. 감자옹심이는 감자를 갈아 물기를 제거한 뒤 녹말가루와 섞어 새알처럼 빚어서 끓여 먹는 강원도의 향토음식이다. 강원도 지역은 기후와 토양이 감자를 재배 하기에 적합하여 쌀이 부족하던 예전에 구황식품으로 자주 만들어 먹었다고 한 다. 깨와 김가루를 넉넉하게 얹어 나오는 감자옹심이를 한술 뜨니 진하고 걸죽 한 국물과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아직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강원도 향토 음식으로 꾹저구탕도 있다. 강릉 연곡을 지나다가 꾹저구탕이라고 적힌 식당간 판을 보고 궁금해서 찾아보니 강원도에서 무척 오랜 역사를 지닌 음식이었다. 꾹저구탕은 영동 청정해역에서 자라는 망둥어과 민물고기인 꾹저구로 끓인다. 추어탕이나 육개장과 비슷해보이는데 맛은 전혀 다르다고 한다. 얼큰하면서 고 소하고 담백하며 특히 이 지역에서는 감자밥과 함께 먹는 풍습이 있다는데 언 젠가 한번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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