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맛집(115)] 과메기·모리국수 등 제철 맛 풍성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2014.01.16
■ 포항 맛집
'훈제 통 과메기'가 원류 현재 꽁치 편말이가 대부분
생선과 국수 버무린 모리국수 생선 위주 한정식 별미
겨울이다. 식도락가들은 "이제 포항에서 나오는 과메기를 먹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겨울은 포항에서 나오는 과메기 철이다.
포항도 상당수의 도시처럼 일제강점기에 발달한 도시다. 부산이나 대구가 그렇듯이 포항 역시 철도가 연결되면서 급성장한 도시다. 결국 포항의 과메기도 이 무렵부터 지역 특산물이 된 것이다.
과메기의 역사는 길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이미 과메기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내용은 조금 색다르다. "겨울철이 되면 북쪽부터 청어가 잡힌다. 남쪽 울산에서 과메기가 시작되고 동해안 전체에서 과메기를 만든다. 과메기는 한양으로 운반하기 위하여 연기에 말린 훈제 청어다. 이른바 연관목(煙貫目)인데 속명으로 관목어라고 한다"라는 내용이다.
이 책의 필자 오주 이규경은 1788년부터 1863까지 살았다. 대략 19세기 중반에 이 책이 만들어졌다고 추정한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쯤이다. 꽁치가 아니라 청어로 만들었다는 말은 정확하다. 꽁치나 청어는 큰 차이가 없다. 둘 다 등 푸른 생선이고 그 당시 가장 흔하게 잡히는 것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콕 집어 밝힌 곳은 포항이 아니라 "가장 먼저 울산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결국 동해안 일대에서 널리 과메기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재미있는 것은 '연관목'이다. "연기를 쐬면서 말린 청어"라는 뜻이다. 문장 어디에도 "청어나 꽁치를 갈라서 말렸다"고 하지 않는다. 원형 과메기는 "동해안 일대에서 널리 생산되었고, 그 형태는 가르지 않고 통으로, 연기가 나는 창에 걸어서, 훈제 건조한 청어"라는 뜻이다. 불행한 것은 이런 과메기가 이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2013년 겨울부터 청어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청어 과메기를 내놓는 집들이 늘어난다. 그런데 정작 제대로 만든 과메기는 없다시피 하다. 중요한 것은 청어냐 꽁치냐가 아니다. 연기가 나는 창에서 통째로 말린 '훈제 통 과메기'가 없다는 사실이다. 통째로 말린 꽁치 과메기는 더러 찾아볼 수 있지만 역시 훈제는 아니다. 그저 해풍 건조냐 열풍 건조냐를 따질 뿐이다. 청어 과메기도 마찬가지다. 청어로 만들었다는 사실과 통째로 말렸다는 것을 내세울 뿐이다. 그마저도 대부분 갈라서 말린다.
과메기는 발효식품이다. 흔히 단순 건조식품으로 생각하니 공업 대량생산 방식으로 열풍 건조를 따른다. 단순한 건조 방식만을 고집하면 결국 과메기의 제 맛을 찾기 힘들다. '과메기'와 '꽁치(혹은 청어)말린 것'을 동일시하면 결국 우리는 소중한 과메기를 잃어버린다.
세상에서 가장 냄새가 지독한 음식, 홍어보다 더 독한 냄새를 지닌 음식이 바로 스웨덴 특산인 '슈르스트뢰밍'이다. '시큼한 청어'라는 뜻이다. 발효식품이고 발효하고 있는 과정에서 깡통에 넣는다. 당연히 발효 과정에서 나오는 가스 때문에 깡통이 부풀어 오른다. 이 슈르스트뢰밍 깡통을 '폭발 위험 때문'에 비행기에 싣지 못하게 하는 일이 생겼다. 이때 스웨덴에서 나온 성명서의 한 구절이 바로 "슈르스트뢰밍을 모른 유럽은 문화적 문맹(文盲)"이라는 것이었다.
홍어도 냄새가 지독하고 슈르스트뢰밍도 냄새가 지독하다. 그러나 아무도 홍어나 슈르스트뢰밍의 냄새를 없애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과메기만 "처음 먹는 사람들도 먹을 수 있게 냄새를 없애고 순화시킨다"라고 주장하는가?
발효된 음식은 원래 냄새가 난다. 이런 음식은 먹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냄새 나지 않는 청국장'을 개발하고 한편으로는 과메기는 '원래 냄새가 없는 음식'으로 만들었다.
속어로 통째로 말린 과메기는 '통말이'라고 부르고 갈라서 말리는 것은 '편말이'라고 한다. '편말이' 방식으로, 열풍 건조하면 냄새가 나지 않는다. 단순 건조식품이니 냄새가 날 리가 없다. 그러나 이 음식은 과메기가 아니라 '꽁치 말린 것'에 불과하다.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긴 나라에서 제대로 된 과메기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포항 시내 군데군데에서 과메기를 만날 수 있다. 서울로 직송하는 곳들도 많다. 그러나 역시 과메기가 아니라 '꽁치 말린 것'이다.
포항의 '모리국수'도 무너지고 있다. 구룡포의 '까꾸네'가 유명하다. 모리국수는 바닷가의 포구에서 일하던 선원들이 간단하게 챙겨먹었던 음식이었을 것이다. 이것저것 잡 생선을 모아서 썰어 넣고 국수를 비벼서 혹은 말아서 먹었을 것이다 오늘날 세꼬치 형태였을 터인데 불행히도 잡 생선도 귀해졌다. 이제는 여러 생선이 아니라 한두 가지로 국수를 비빈다. 그나마 '까꾸네'가 예전 방식으로 음식을 내지만 맛은 이미 변했다.
고래 고기도 귀해지고, 과메기는 무너졌다. 모리국수도 예전과 다르다. 결국 포항에서는 그나마 잡어 세꼬시 형태의 회를 제대로 내는 '울릉천부식당'과 엉뚱하게도 해산물 위주의 한식을 내놓고 있는 '할매식당' 정도를 추천한다.
'울릉천부식당'은 회가 비교적 푸짐하고 깔끔한 생선과 채소의 균형도 아주 좋다. '할매식당'은 생선을 위주로 한 특이한 한식밥상이다. 음식의 양과 맛이 모두 수준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