멤버들은 저녁 식사중에도 계속 재잘대고 있었고 에릭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기만 하다.
그런 낌새를 챈 것은 민우뿐일까.
"나 피곤하니까 먼저 좀 쉴께."
에릭의 말에 다른 멤버들은 약간 씁쓸하게 그래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베스트 앨범이후 잠시 미국으로 갔던 에릭은 5집 활동을 위해서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좀 변한 것 같다.
차가워진 느낌이랄까.
민우는 그런 에릭의 변화가 맘에 걸렸다.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에릭이 돌아온 뒤 활동은 재개되고 퍼펙트맨 뮤직 비디오 촬영으로
멤버들은 바빠지고 있었다.
예전의 활발하고 장난끼 넘치던 에릭은 어딜 갔는지 계속 차가운
분위기의 상태.
농담을 걸 분위기도 아니고 농담을 던져도 쌀쌀맞은 반응이
되돌아 오기 일쑤다.
계속 피곤해하고 짜증을 잘 부리는 에릭.
머리를 자른 탓일까 얼굴이 수척해 보인다.
멤버들 또한 이런 에릭을 살펴보느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뮤직비디오 촬영의 마지막날 세트장에서 팬들과 함께 무대에서
만나게 되었다.
여전히 차가운 상태의 에릭.
"에릭 너 무슨 일 있었어? 미국에서. 희선 누나와의 스캔들 때문에
그러는 거야?"
"아니야. 아무 일도 없어."
"그럼 요즘 왜 그래. 너 때문에 우리 분위기 엉망인 거 아냐?"
"엉망이라서 미안하군!"
민우의 말에 에릭은 쏘아 붙이더니 어디론가 가버렸다.
"저 자식...정말 너무 심하지 않아?"
그런 둘을 바라보던 혜성이 민우 옆으로 와서 말했다.
"에릭형 무신경하긴 하지만 저렇게 냉정하고 차갑진 않았는데."
어느덧 전진을 비롯 멤버들이 주섬주섬 모여 들었다.
멤버들은 에릭의 상태에 대해 열심히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고
있었고 역시나 또 시끄러워져버린다.
'에릭...대체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민우는 걱정스럽게 에릭이 사라진 쪽을 쳐다본다.
스텝 한명이 에릭이 나간 쪽으로 움직이는 게 보였다.
세트장에서의 촬영 돌입.
위에 매달린 원뿔 형태의 구조물은 갖은 조명으로 인해
화려하기 짝이 없다.
"이야 죽이는데!"
완성되어 매달려진 구조물을 보면서 전진이 탄성을 질렀다.
동완은 어느새 모니터 앞으로 달려가서 보고 왔는지 화면빨이
죽인다는 표현을 쓴다.
"에릭은 아직 안 왔어?"
민우의 말에 다들 고개를 저을 쯤 에릭이 세트장으로 돌아왔다.
"여기 왔어."
왠지 모를 비릿한 단내음이 민우의 후각을 자극했다.
다소 기분이 좋아보이는 듯한 에릭의 얼굴은 이때까지의
수척함이 사라지고 입술은 타는 듯이 붉었고 유혹적이다.
거기다 위험하게 빛나보이는 에릭의 눈동자.
그 검고 깊은 것은 마치 블랙홀처럼 섬뜩하게 느껴진다.
메이크업때문일거라고 생각해버린다.
"민우야 어서 올라가!"
"아..네. 죄송합니다"
멤버들이 세트로 올라가 있을 즈음 민우는 에릭에게 시선을
빼앗긴 탓에 계속 무대 아래에 있었던 것이다.
무대로 올라간 에릭은 그런 민우를 보면 한쪽 입가를 비튼다.
"스탠바이!"
촬영은 시작되었다...
한편 구조물을 설치하던 스텝들은 경악하고 있었다.
"야! 여기 있던 자식 어디 갔어?"
무대 감독은 소리쳤다.
"아..철민이요? 누구 본 사람?"
스텝들은 자신의 일을 하느라 신참따위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걸까.
"젠장! 이런 일엔 신참을 쓰면 안된다니까!어서 찾아와!
대체 직업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이 따위로 마무리 해놓고
사라지면 어떻게 해!"
감독이 스텝들에게 성질 부리고 있을때 쯤 구조물은 어설픈
마무리로 고정시킨 쇠줄이 지탱하고 있던 갈고리에서 벗어나
천천히 풀어지고 소리없이 무대 아래로 스르륵 내려가며
멤버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필자 주-무대세트따위는 모릅니다 -.- 무식해서리. 어설퍼도 용서를)
"무대 감독님!!!큰일이예요!!저기를!!!!"
누군가의 소리로 세트를 바라보는데 전부 소릴 질렀다.
"안돼! 위험해!"
안무를 하던 중 에릭이 민우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어? 에릭 뭐하는 거야?"
에릭은 말없이 민우를 안고 세트장 아래로 뛰어 내렸다.
"너희들도 다 내려와!"
"뭐? 형?"
전진의 어리둥절한 대답과 함께 다른 멤버들의 당황스러움이
얼굴에 드러난다.
"야!에릭 너 뭐하는 짓이야! 장난해?"
멤버들이 다 세트에서 내려오자 촬영감독은 소릴 질렀다.
그때, 쾅-.하는 굉음과 함께 무대는 정전이 되었다.
구조물이 떨어진 것이다.
며칠 후 다시 세트를 설치하고 무사히 촬영을 마치고 멤버들은
자축이라도 하듯 숙소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에릭의 차가웠던 분위기는 사고 이후 풀려 있었다.
"에릭 그때 어떻게 알았어?"
"뭘"
"세트 떨어질 거란거 말이야."
혜성의 말에 에릭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소리가 들렸어."
"소리? 난 듣지 못했는데."
전진의 말이다.
"난 들렸어. 천천히 내려 오는 소리가"
전부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여기면서 에릭이라면 능히 그럴
이상한 놈이다라고 생각해버렸다.
그러나 민우는 그날의 에릭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 지나치게 투명했던 검은 눈과 붉은 입술.
그것은 유혹의 빛깔을 띠고 있었으며 민우를 불안하게 했다.
"뭘 그렇게 생각하냐?"
혜성이 옆에 앉아 있던 에릭이 어느새 민우 옆으로 자리를
옮겨 왔다.
"아..아무것도 아냐"
"그래?"
에릭은 민우의 어깨에 팔을 얹으며 맥주를 홀짝 거렸다.
"오늘은 별로 안마시네? 많이 마시던 놈이."
"별로 마시고 싶지 않아. 다른 거라면 몰라도.."
"다른 거? 그게 뭔데?"
"민우..."
다소 황당한 대답에 에릭만 뚫어져라 보는 민우다.
"훗. 농담인데 왜 째려 보냐~"
에릭은 손으로 민우의 머리를 헝클었다.
민우는 에릭이 또 다시 수척해졌음을 알았다.
불과 며칠만에 또 수척해지다니.
다시 생각해보면 세트장이 무너진 그날.
아무리 메이크업때문이었다고는 해도 수척한 모습이 그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릭 이리와~"
좀 많이 마신듯한 혜성이가 에릭을 끌어 당겼다.
"어.."
혜성의 안달에 못이겨 에릭은 부어라 마셔라를 외치는 전진과
혜성의 사이에 앉아서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쳐다보던 민우는 에릭과 눈이 마주쳐버려서 당황했는데 에릭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면서 자신에게 미소를 보내는 것을 보았다.
어색하게 같이 웃어주던 민우는 또 다시 에릭에게서 뭔지 모를
위험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컴백으로 인해 바쁜 스케줄을 보내고 있는 멤버들.
그런 가운데 에릭은 매니저에게 타박을 듣고 있다.
"너 요즘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대체 너 뭐하는 녀석이야?
계속 잠만 자려고 들고 무대에서도 그게 뭐야? 안무를 그따위로
성의없이 하면 팬들이 모를 것 같아? 싸이트마다 난리잖아!
그리고 너 계속 밤에 숙소에 안들어간다며? 대체 뭐하고 다니는
거야? 이따위로 할려고 미국에서 돌아왔냐!!!"
매니저의 심하다 싶을 정도 질책.
거기다 에릭의 자존심을 생각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고의인지
멤버들이 다 모여 있는 가운데에서 언성을 높이고 있다.
"매니저형..그만해요. 에릭형이 그렇게까지 잘못한건 없는데."
전진이 에릭편을 들자 혜성이도 덩달아 거든다.
"에릭 요즘 고민이 많나봐요. 그러니까 그만해요."
혜성이가 매니저에게 가서 팔짱을 끼면서 애교를 부린다.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구요~ 오늘 스케줄도 다 끝났는데."
"에릭 너! 조심해. 멤버들이 너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실망하게
해선 안되잖아. 이런 녀석이 뭐좋다고 편드냐. 너희들은.
인기 조금 있다고 해서 멋대로 굴지마! 금방 식는게 인기야.
앞에 식당으로 와. 저녁먹고 들어가게.에릭은 좀 잘 챙겨먹어.
얼굴이 그게 뭐냐? 스텝들과 먼저 가 있는다."
혜성의 애교에 기분이 풀린 모양인지 매니저는 이쯤하고 나갔다.
"괜찮아?"
혜성이가 걱정스레 묻자 에릭은 빙긋 웃으면서 괜찮다고 한다.
그런 에릭의 얼굴에 혜성은 눈이 살짝 커지면서 얼굴이 빨개졌다.
아까부터 아무 말없이 지켜보던 민우는 그런 혜성의 모습과
에릭의 모습에 괴리감을 느낀다.
'이상해. 뭔가 있어. 분명히.'
숙소로 돌아온 멤버들은 에릭이 한잔하자고 하자 다들 좋아라 하면서
또 술을 마시고 있다.
"에릭 자 마셔~"
혜성의 애교스런 목소리와 함께 민우의 눈에 들어온 것은 러브샷을
펼치는 두 사람.
"에릭형 나도 나도!"
질세라 전진도 에릭에게 러브샷할 것을 청했다.
민우는 요즘 들어 계속 에릭이 꺼림칙하게 느껴져서 전처럼
대할 수가 없었다.
에릭도 그런 민우는 아는지 다가오지도 않고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그저 입꼬리를 비트는 정도의 미소만 보일 뿐이다.
매니저가 타박한 것처럼 에릭은 때때로 밤에 숙소에 돌아오지 않았고
항상 졸리워 하고 있었다.
멤버들은 에릭이 대체 밤에 뭘하고 졸리워하는 것일까 생각해보았지만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고 겜방이라도 갔겠지 하는 결론뿐이다.
그만큼 에릭에 대한 멤버들의 신뢰가 강하단 말인가.
"후...정말 모르겠다.."
민우는 한숨을 내쉬며 손에 들고 있던 잔을 비웠다.
다들 뻗어서 자고 있는 새벽 무렵.
민우는 목이 마른 탓에 깨어버렸고 주방으로 향했다.
'목이 타는군. 젠장. 너무 많이 마셨나봐'
주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혜성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소리로
인해서 멈춰졌다.
"으음...에릭.."
혜성의 방쪽을 보니 문이 살짝 열려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은 빛쪽으로 향했고 충격적인 장면을
보게 되었다.
"에릭, 아프단 말이야..물지마.."
"미안"
상체를 벗은 에릭과 역시나 상체를 벗은 혜성이 침대에서 뒹굴고
있다.
민우의 눈은 경악으로 인해 커지고 구토할 것 같은 느낌이
몰려 왔다.
그러면서도 눈을 뗄 수 없는 것은.
피처럼 붉은 입술의 에릭. 그 핏기 가신 하얀 피부의 혜성.
다분히 유혹적인 혜성의 도발에 넘어간 양 에릭은 혜성의 몸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있었고 그 감각에 혜성은 신음을 흘려댄다.
"안아줘.."
혜성이 에릭에게 안기자 에릭은 그런 혜성을 꽉 끌어앉고 목줄기를
잘근 씹어댔다.
민우에겐 혜성은 등지고 있었고 에릭이랑 마주보는 위치였는데
혜성의 목을 씹어대던 에릭과 눈이 마주쳤다.
당황한 민우에게 에릭은 미소를 보냈다.
에릭의 그 검은 눈은 웃고 있었고 민우에게 사냥감을 보는 듯한
잔인함과 탐욕스러운 느낌을 가지게 했다.
두려움.
민우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벗어나야 해.'
그런 민우를 조롱이라도 하듯이 에릭은 혜성을 돌려 안고 바지를
벗게 했다.
드러난 혜성의 전신.
에릭은 혜성의 아랫도리에 손을 가져갔다.
"싫어..에릭.."
혜성의 미미한 반항에 에릭은 등줄기를 입술로 훑는다.
"괜찮아. 천국으로 가는 거야."
에릭의 손놀림으로 혜성은 흥분해서 신음을 흘려댔다.
"그만해..응.."
"정말로 그만 둘까..?"
혜성은 얼굴이 붉어진다.
"아니.."
"훗.."
'벗어나야 해. 젠장!'
에릭이 혜성을 다시 앞으로 돌려 아래로 얼굴을 숙였다.
미칠듯이 흥분해서 신음을 내는 혜성.
민우는 눈을 질끈 감고 간신히 발걸음을 돌려서 방으로 돌아왔다.
목마름도 잊은채 뜬 눈으로 밤을 세우고 말았다.
다음날 혜성은 감기라고 했다.
방문을 닫은 채 누워 있고 아침 시간에 에릭이 대신
매니저형에게 말했다.
스케줄을 펑크내야 했는데 걱정스러워하는 멤버들과는 달리
민우는 화가 나 있다.
'뭐가 감기라는 거야.'
화가 난 듯 에릭을 쏘아보자 에릭은 민우를 쳐다본다.
눈은 웃고 있다.
검은 늪같은 그 눈은 비웃는 듯 하다.
정체모를 섬뜩함. 민우는 눈길을 돌렸다.
매니저 형이 도착했는지 소란스럽다.
"뭐? 혜성이가 아파? 오늘 스케줄은 어떻게 하냐?
대체 어제 뭘했는데 멀쩡하던 놈이 아프대?"
"지금 자는데요."
에릭의 말을 무시한 매니저는 혜성의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 갔다.
화가 나서 으악질러대던 매니저는 좀 지나서 조용히 방을
나오는데 표정이 별로 좋지 않다.
매니저가 돌아가고 멤버들은 각자 방에 쳐박혀 있다.
민우는 아무래도 새벽녘에 본 것에 대해 에릭과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에릭. 나 좀 들어 갈께."
에릭의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에릭은 자려는지 침대에 누워 있다.
"민우.."
"자려고 했어?"
"응..."
"잠팅이.."
"훗.."
민우는 에릭의 침대에 걸터앉았다.
"민우도 자자~"
에릭이 민우의 목을 끌어당겨 같이 눕게 했다.
"야 자긴 뭘 자"
'내 친구 에릭이 맞는데 말야. 여전히 잘생기고 장난스럽고
키스도 하고...뭐 뭘해?'
"에릭!"
민우에게 키스를 하던 에릭을 확 밀어냈다.
"뭐하는 거야!"
민우가 갑자기 세게 밀어내는 바람에 에릭은 벽에 부딪혔다.
"아야..넌 왜 그렇게 거친 거야. 키스는 맨날 했으면서"
민우가 에릭의 멱살을 쥐었다.
"너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요즘 니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도대체 모르겠어. 예전의 너같이 않아. 니가 누군지 모르겠어!"
감정이 격해져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소리쳐대는 민우를 보면서
에릭은 빙긋 웃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에릭 맞아. 나라구. 이렇게 눈 앞에 있잖아?"
"널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
에릭이 손을 뻗자 별 저항없이 안기는 민우다.
민우의 짧은 머리와 등을 쓰다듬어 주는 에릭은 한숨을 내 쉰다.
"난 에릭 맞다구. 우리 민우를 사랑하고 멤버를 사랑하는."
에릭이 민우의 얼굴을 들어서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이런 일로 울지 말라구. 터프 가이 이민우."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뭐?"
"너 혜성이랑.."
에릭은 민우를 뚫어져라 쳐다 본다.
"혜성이랑 뭘?"
빙글거리면서 말하는 에릭은 사악해 보인다.
"새벽에.."
에릭은 민우의 목줄기에 입을 가져가서는 잘근 씹어댔다.
"새벽에 뭐가..니가 뭘 봤는데.."
에릭의 행동을 저지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왠지 잘 되지
않는다.
에릭의 손이 허리로 옮겨 와서 민우의 상의를 들어 올리고
침투하고 있었다.
"민우...피부가 부드러워. 분명...도 맛있을거야"
"에릭...뭐하는 거야..으음"
에릭이 민우의 가슴의 예민한 부분을 찾아 입을 대자 민우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성이 터져 나와서 놀랬다.
에릭을 거칠게 확 밀어냈다.
"뭐하는거야 지금!"
화가 나서 씩씩대는 민우를 바라보는 에릭은 살짝 웃기만
할 따름이다.
"나 졸려. 민우도 같이 잘 거 아니면 나가줘. 나야 같이
자고 싶지만."
에릭은 정말 졸린 듯한 표정으로 드러누워 버린다.
민우는 방문을 거칠게 닫으면서 나와 버렸다.
'아..못 물어보고 말았다..물어 볼수가 없어. 뭐라고 물어
볼건데..너네들 섹스했냐? 사귀냐? 어디까지 갔어? 이렇게
물을건가? 에릭 바보..제기랄'
민우는 혜성의 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왠지 혜성을 볼 용기가 없었지만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혜성의 방문을 살짝 열고 들어가자 방안은 냉기가 흐른다.
왠지 차가운 공기.
'이 녀석 창문 열고 잤나?'
혜성에게 다가가서 얼굴을 보자 민우는 약간 놀랐다.
'이 녀석 많이 아픈 거 아냐?'
침대에 걸터앉아 혜성의 모습을 살혀본다.
파리한 입술과 창백한 피부. 좋은 꿈을 꾸는지 입술은 웃고 있다.
옷깃 사이로 보이는 붉은 자국들.
'이 녀석..새벽의 일때문에 이러는 건가..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에릭..'
민우는 혜성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입술에 살짝 키스했다.
"빨리 나아라. 혜성아..무지 걱정된단 말야.."
"형 뭐해?"
깜짝 놀란 민우는 일어섰다.
방문이 열려 있던 모양이었는지 전진이 불쑥 들어온 것이다.
"아..혜성이 상태 좀 보려고. 열은 없는 것 같아."
"그렇네. 근데 너무 창백해 보이지 않아?"
"그렇긴 하지?"
"뭐 일어나겠지. 계속 자는 것 보니 피곤했나봐."
"약때문이겠지. 감기약 먹으면 원래 자잖아."
"그런가."
둘은 방을 나왔다.
"형 커피 타줘."
"전진 많이 컸다. 형더러 커피 타달라고 하고."
"헤헤. 혜성이 형이 잘 타줬는데 아프잖아."
"자식.."
어느 새 주방에서 커피를 참하게 타다가 바치는 민우.
"고마워 형.헷"
둘은 식탁에 나란히 앉아서 커피를 마신다.
"진아. 요즘 분위기 어때?"
"뭐가? 우리?"
"어..에릭이라든가.."
"에릭형. 전엔 좀 말걸기가 뭐했지만 지금은 괜찮은데.
그땐 미국에서 갓 돌아와서 피곤해서 그랬나보지 뭐."
"혜성인 어때?"
"혜성이형? 똑같잖아. 형 왜 그래? 뭔일 있는 거야?"
"아냐..그냥 물어 보는 거야.."
정확히 이틀 뒤 아침 에릭의 말처럼 혜성이는 일어났다.
그 동안은 계속 잠만 자고 있던 혜성이.
민우는 주방에서 혜성과 마주쳤다.
"어? 혜성아 일어났냐? 이젠 안 아파?"
"응 괜찮아. 아침 해야지~"
"뭐? 넌 쉬어. 오늘은 내가 할께."
"아냐. 내가 해도 괜찮아. 덕분에 푹 잤는데 뭘"
"그럼 도와줄께. 근데 혜성이 너 왜 아픈거.."
"혜성이 형! 일어 났네!"
전진이 뛰어 들어와서 혜성이를 안았다.
"야 전진! 정신 사나워!"
"헤헷 형 보고 싶었어~"
"이거 못놔!"
아웅다웅 하는 둘을 할말도 잊은 채 민우는 바라본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데. 내가 그날 환상을 본걸까.'
그러나 환상은 아니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얼마 뒤 큰 사고가 생겼다.
전진이 오락 프로그램에서 덤블링하다가 실수해서 머리를
다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전진은 혼수상태가 되고 다들 긴장하고 있었다.
다들 병원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 해. 진이..흑"
눈물을 글썽이는 혜성을 민우가 안아주자 혜성은 민우를
붙잡고 울어댄다.
"괜찮을거야. 강하잖아. 저 녀석."
"나 방송국 갈께. 진이 일어나면 꼭 연락 줘."
동완의 말에 민우는 그러겠다고 말했다.
민우는 에릭을 흘깃 보았는데 정말 죽을 듯한 얼굴이었다.
기도라도 하는 모양일까. 두 눈은 굳게 닫혀 있고 입술은
작게 달싹거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진의 아버지가 도착했고 멤버들은
일단은 귀가 조치 되었다.
"진이 녀석답지 않게 실수를 했어."
거실에 모여 침통한 표정의 에릭 혜성 민우 앤디.
에릭의 말에 다들 동감한다는 표정이다.
"그러게. 진이형 덤블링 잘하는데."
"컴백활동하기 정말 어렵군."
에릭의 말에 민우는 조금 화가 났다.
"뭐야. 그게. 진이는 혼수상태인데."
"아..민우야..난 별 다른 뜻이 있는게 아니고.."
에릭의 표정은 금새 어두워 졌다.
"됐어!"
민우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민우야.."
침대에 누워서 혼자 화풀이를 해대는 민우다.
'자식 정말 변했어. 진이가 혼수상태인데 컴백활동이나
걱정하다니. 자기가 언제부터 열심히 했다고 그래. 젠장.'
'예전엔 나랑 잘 놀았는데.'
'지금은 장난도 잘 안치고 혜성이랑 어울려 다니고 말이야.'
이런 저런 생각을 하자 에릭에게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 장난이나 치고..'
민우는 얼마전 에릭의 방에서 자신의 가슴에 키스하던 에릭의
행동이 생각나자 얼굴이 붉어졌다.
"미친 놈!"
민우는 천정을 향해 배게를 내던졌다.
얼마 뒤 전진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고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멤버들은 무지 기뻐했고 그 중 에릭이 제일 반가워했다.
"야 박충재! 다행이다. 정말 걱정했었어!"
"에릭형~ 부비부비~"
전진이 에릭에게 안겨서 부비대는 모습을 보자 다들 웃어댔다.
"안어울려 둘이~"
이렇게 즐거운 분위기가 된 것도 오랫만인 것 같다고
민우는 생각했다.
이후 에릭은 외박하는 일도 없었고 일에 충실해졌다.
또한 전진을 굉장히 챙겼고 혜성이랑 어울렸다.
그렇게 셋이 몰려 다니자 민우는 왠지 소외감을 느꼈다.
동완이는 막내 앤디를 언제나 챙겼기에 그 둘은 콤비.
혼자 동떨어진듯한 기분에 민우는 조금 서글프다.
어느 새벽이었을까.
민우의 방문이 살짝 열리고 기다란 인영이 하나 드리워졌다.
인기척에 눈을 뜬 민우.
"누구?"
"나"
에릭의 목소리에 민우는 잠이 달아 났다.
"에릭..무슨 일이야?"
에릭은 말없이 침대에 걸터앉더니 민우를 안았다.
"나 민우 많이 좋아하는데..넌 안그렇지?"
민우의 목에 얼굴을 묻은 에릭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아냐..나도 에릭 좋아하는데.."
"키스해도 돼?"
"에릭..."
에릭이 얼굴을 들어 민우를 바라본다.
왠지 그 검은 두눈이 빛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수척하고 파리한 입술.
"너 아픈거 아냐?"
"아냐..."
에릭은 민우의 입술에 키스했다.
수척한 에릭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진 민우는 내버려 두었다.
"민우야.. 날 위해서 해 줄게 있어."
"뭐..?"
"그냥..내가 하는대로 있어줘..미안해.."
"응?"
에릭은 순식간에 혁대로 민우의 손을 포박하고 옷을 벗겨냈다.
"에릭 무슨 짓하는거야!"
"조용히 해..다른 애들 깨잖아.."
포박당해 자유롭지 못한 민우의 몸을 에릭은 내키는대로
다루고 있다.
"역시...부드러울 줄 알았어."
민우의 가슴을 돌아다니던 에릭의 입술은 아래로 내려갔다.
"그..그러지마.."
자신도 모르게 흥분해버린 민우는 간신히 이야기했다.
"걱정하지마.. 즐거울 거야.."
에릭의 말에 자신이 한심스러운지 민우는 눈물이 흘렀다.
그런 민우의 눈물을 본 에릭은 민우의 눈물을 핥아 준다.
"널 좋아하니까 이러는 거야.."
혜성이는 어떻게 되는가 묻고 싶었지만 민우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날..혜성이랑 나랑 있는 거 봤지?"
민우는 자신이 궁금했던 이야기가 나오자 에릭을 뚫어져라 본다.
그런 민우의 시선이 쑥스러웠을까.
에릭은 민우의 목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날은..충동적이었지만..후회는 없어."
무엇을 기대했을까. 민우는 에릭의 말에 김이 빠지는 듯 했다.
에릭의 손이 민우의 아래로 내려갔다.
기분 좋은 자극에 민우는 신음을 흘렸다.
"에릭 이러지마..왜 이러는 거야.."
"널 좋아하니까. 그날도 내가 안고 싶었던 건 넌데."
"에릭..?"
"혜성이가 원했거든."
"으윽.."
민우는 사정을 해버리고 말았다.
"이젠 내 차례야. 날 기분좋게 해줄거지?"
"뭘..?"
에릭은 훗하고 웃더니 민우의 두손을 풀어주고 입술을
아래로 가져갔다.
"그만해.."
민우의 다리 안쪽을 할짝거리는 에릭.
그 감각에 민우는 돌아버릴 것 같다.
"그만..."
에릭의 머리를 움켜잡는 민우.
"널 마시고 싶어..난 배고프다구.."
그때 에릭은 민우의 다리 안쪽을 물었다.
"으윽..에릭..뭐하는 거야!"
갑작스런 고통에 에릭을 밀어내려 했지만 그렇게 되진 않는다.
잠시후 서서히 몸에 퍼지는 나른한 기분에 민우는
에릭이 하는대로 내버려 두었다.
"어때..기분 좋지?"
"에릭..."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에릭의 얼굴이 민우의 얼굴 위로 드리워졌다.
"진작에 네게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참느라 힘들었어"
눈을 감고 있던 민우는 비릿한 단내음에 눈을 떴다.
피처럼 붉은 에릭의 입술.
그리고 생기가 넘쳐 흘러 빛나는 눈과 흥분한 듯한 그 표정.
민우는 언젠가 본 표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날..세트장에서의 모습.."
"맞아..."
에릭은 민우에게 키스했다.
민우는 비릿하고 축축한 무언가가 입술에 묻어남을 느꼈다.
"피...?"
자신을 쳐다보며 입술에 피를 묻힌 채 웃는 에릭의 얼굴이
희미해짐을 느끼면서 민우는 정신을 잃었다.
"뭐 민우가 쓰러졌다고?"
매니저의 황당한 듯한 목소리에 멤버들은 고개를 숙였다.
"미치겠네. 대체 요즘 너네들 몸관리 어떻게 하는 거야?
좀 조심하라구. 진이의 일도 그런데. 진이 그날 너 어지러웠다며?
의사가 빈혈이 원래 있었냐고 물어보더라. 그럴땐 진작 말해야지."
"말해도 뭐 그냥 밀고 나갔을걸요. 오락프로그램이니까.."
"그렇긴 했겠지만..."
진이의 말에 매니저는 반박할 수 없다.
"우린 가수인데 왜 사람들에게 그런 식으로 보여져야하는지"
혜성의 말에 매니저는 할말이 없다.
"난 스케줄 조정하러 갈테니까 민우나 잘 돌봐..안되면
의사라도 불러."
"괜찮을 겁니다."
에릭의 말에 매니저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검고 깊고
위험함을 내포한 에릭의 눈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혜성과 전진의 눈에서도 비웃음을
느꼈다.
허둥지둥 숙소를 빠져나온 매니저는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건..짐승의 눈빛이었어..?'
민우의 머리맡에 에릭은 앉아 있고 혜성과 전진은 침대에
걸터 앉았다.
민우는 간신히 눈을 뜬 상태.
"내가..어떻게 된거야?"
에릭이 민우의 입술에 키스했다.
"잠을 잔 것 뿐이야."
"나한테 무슨 짓을 한거야. 너희들..."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혜성과 진이를 보았다.
"아무것도."
혜성이 민우의 손을 잡고 입을 맞췄다.
에릭은 민우를 일으켜 안았다.
"나 말이지..미국에 있을때.. 일을 당했거든?"
"무슨 일?"
멍하니 묻는 민우의 얼굴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에릭은
쓰다듬었다.
"물렸어.그냥 밤에 길을 가다가."
"..."
'뭐에 물렸는데..개? 고양이?사람?'
"내 피를 마시고...자신의 피를 마시게 했지. 그래서 난
계속 피를 마셔야 해."
"뱀..파이어..?"
민우의 말에 에릭의 눈동자는 슬퍼 보인다.
"그런 거겠지..?"
민우는 멍하니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혜성과 전진이 자신의
손목에 상처를 내어 흡혈을 하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널 원해..함께 하고 싶어..그러면 안될까.."
에릭의 말에 민우는 모든 게 다 선명해지는 듯 하다.
그날 세트장에서 에릭의 뒤를 따라 나가던 스텝.
"그럼 혜성이도...진이도?"
"혜성인..너도 봤지? 진이도..내가 그전 날에 좀 마셨는데..
그렇게 될 줄 몰랐어..내 피를 진작에 줬어야 하는데.."
"그래서...어떻게 된거야...그래서 계속 졸리워 하고..
밤에도 안돌아왔던 건...?"
"응...뭐 햇빛따위 두렵다거나 타버린다거나 하지 않아.
낮에는 단지 좀 졸리울 뿐이야. 밤엔..마시러 다녔지.
지금은 혜성이랑 진이가 있으니 그럴 필요는 없지만.
너도 이젠 마실테고.."
민우에게 다시 키스하는 에릭이다.
민우의 아랫입술을 물었을까. 피가 배어나온다.
"좋아해 민우."
에릭은 송곳니를 드러냈다.
"에릭..."
자신의 손목을 물어뜯은 에릭은 민우의 입술에 손목을
가져다대고 마시게 했다.
혜성과 전진이 에릭쪽으로 다가와서 키스했다.
"그만.."
민우의 말에도 불구하고 에릭은 팔목을 치우지 않는다.
그리고 민우 자신도 흡혈하는 것이 마치 본능인양 따르고 있을 뿐.
"그냥..우리끼리 마시면 되니까..다른 이들에게는 피해가
없을 거야.. 다른 피가 날 흥분하게 한다면 다르겠지만.."
에릭이 말했다.
침대로 쓰러져 버린 민우는 에릭의 팔을 밀쳐냈다.
"이제...너도 함께 가는 거야..영원히"
"민우형 사랑해.."
아주 먼 곳에서 들리는 듯한 혜성과 전진의 목소리.
흐려지는 민우의 눈에는 혜성의 목을 물어서 흡혈하는
에릭이 보였고 곧 정신을 잃어 버렸다.
이틀 뒤 민우는 깨끗이 일어났고 다시 활동은 재개 되었다.
매니저는 동떨어져 보이는 민우 에릭 혜성 전진의 모습에
왠지 두려움을 느꼈다.
이 넷의 눈동자는 매니저를 향해 소리없이 웃고 있다.
투명하고 지나치게 깊어 보이며 공허한 그 눈동자와 나른해 보이는
행동은 이유없이 매니저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기는 충분하다.
'민우까지..저렇게 된건..왜?'
넷의 시선이 움직였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보니 천진하게 웃고있는 동완과 앤디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