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바꿔치는 남자... 또 그런 나라 좋치요!
비록 극소수이긴 하지만 유럽에서 벼락출세한 사람들이 가끔씩 하는 행동 가운데 미처 이해 못할 대목이 있다. 모델처럼 젊고 예쁜 새 부인을 맞는 일이다. 그 동안 남편 돌보랴, 자식 돌보랴, 여념이 없었던 조강지처는 늙고 지쳐버린 탓에 늘씬하고 활력 넘치는 젊은 여자에게서 새로운 매력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좀 다른 것 같다. 대부분이 우선 집과 차를 바꾼다. 남보란 듯이 강남의 7-80대형 이상의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승용차는 최소한 국산 최고급은 되어야 한다. 또 골프도 쳐야 하고 사교계에도 가끔은 나가야 한다.
물론 유럽에서는 골프보다 다른 것이 먼저다. 화려한 요트라든지 스포츠카는 꼭 있어야 하고, 가능하다면 자가용 제트기는 얼마든지 환영이다. 요트를 타는 젊은 부인의 건강미 넘치는 비키니 차림을 한번 상상해보라. 얼마나 예쁘랴. 5-60대의 벼락부자로 매일 꿈을 꾸는 것 같이 살아 갈 것이다. 혼자만 보기 아까우니 저명인사들이 모이는 사교 클럽에도 자랑 삼아 한두 번 나가볼 만도 하다.
1964년경 리어카에 이불을 싣고, 자취방을 찾아 언덕길을 오르던 서울 금호동 고개가 생각나서 최근 그곳을 찾았다. 꼭 40여 년이 지나갔지만 이렇게 바뀔 수가 있나? 신당동에서 넘어오던 골목은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온통 고층아파트 천지다. 한남동과 약수 동으로 넘어가는 도로는 도대체 차량행렬 때문에 꼼짝도 못한다. 아파트들도 저마다 한강을 보려고 조망 권 다툼이 치열하다.
그 동안 배꼽 드러난 적삼 입고, 보릿고개를 겪던 우리나라도 이제는 세계 12위의 부국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하루도 영일이 없었던 지난날이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고 새벽부터 설치던 날의 연속이었다. 1964년 처음으로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해 감격해 하던 날이 바로 엊그제 같다.
그런데 40년이 흐른 몇해 전인 04년엔 2,538억 달러를 수출했다. 그리고 이제 저 금호동을 보라. 아파트단지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는 여유와 부가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그런 금호동 아파트 사이로 제법 많은 판잣집이 아직도 웅크리고 있다.
유럽에서도 몰래 세금을 내지 않는 벼락부자는 있다. 그러나 사회분위기가 인권이나 민주화, 양심 등을 부르짖기 때문에 옆집이 밥을 굶게 내버려두지는 않는다. 그때쯤이면 새로 결혼한 젊은 부인도 가만있지를 않는다. 입던 옷가지라도 들고 나선다.
그래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조를 하는 나라들이다. 못사는 아프리카나 저 멀리(거기서 볼 때는 그렇다) 동남아 국가에도 조건 없이 준다. 모두 더불어 살아야 한다며 전체 국민소득의 1% 가까이를 낸다.
인구 수백만의 작은 나라들이지만 매년 수십억 달러씩 원조를 하는 선진국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눈도 잘 안 오는 덴마크의 이미지는 하얀 눈 덮인 평화로운 동화의 나라가 됐다. 동화작가 안델센(Andersen)의 영향인지도 모른다. 옆 나라 일본도 우리와 국민소득이 비슷하던 1985년 대외원조 액수가 국민 총소득(GNI)의 0.3%나 됐다. 지금 우리의 6배에 달한다. 몇해 전인 05년엔 25배나 된다고 한다.
90년대 중반이다. 우리나라의 후진국 공적 원조액수는 3억3600만 달러였다. 국민 한 사람당 8달러 정도다. GNI의 0.06%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와 국력이 비슷한 스페인과 호주는 우리의 5, 6배에 달했다. 내년이면 우리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지도 15년 가까이 된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반쯤 넘는 시간인데 가입 이후 OCED 중추기관인 개발원조위원회(DAC)에는 명함도 못 내밀고 있다. 이 위원회 회원국의 평균 공적 원조비율이 국민소득의 0.25%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4배다. 우리는 현재 대외무역의존도가 70%를 넘어섰다. 우리 상품의 50% 이상이 후진국들에 수출되고 있다. 원유, 가스 등 천연자원의 90% 이상을 역시 이들 나라에 의존하고 있다.
정말이지 이들, 어려운 이웃나라 사람들의 눈엔 우리가 젊은 부인과 재혼한 벼락부자로 보이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최고급 국산승용차를 모는 신흥 부자로 보일까? 이제 우리 모두 금호동의 못사는 이웃도 생각할 때가 됐다. 주변에는 아직도 어려운 나라들이 많다.
<권영민/현 순천향 대학 교수/전 한. 독 미디어대학원 대학 부총장 겸 홍보대사/전 주 독일대사 등 역임/저서: "자네 출세했네", "베를린 맑은 하늘에 그림을 그리자""Commuity-Building in East Asia(동아 협력체), "권대사, 자네 큰 실수 했네"/서울대 독문과 졸/아산 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