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받은 사람들(느헤미야 11:1-2)24.06.23.주일낮설교
예전에 미국에서 발행되는 `토요 리뷰(Saturday Review)'의
노만 카슨 편집장이 난치병에 걸렸습니다.
모든 관절이 약해져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그 병의 완치확률은 0.2%였습니다.
노만 카슨은 병상에서 우연히 한 건강서적을 읽고 충격을 받았습니다.`부정적인 정서는 신체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생각은 살균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노만 카슨은 그날부터 정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만한 책과 TV프로는 전혀 보지 않았습니다. 비극적이거나 폭력적인 것들을 피하고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것만 읽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자신에게 부정적이거나 비극적인 말을 하지 않도록 당부했습니다. 그의 병실에는 즐거운 음악이 흘렀고 희망적인 책들이 가득 쌓였습니다. 노만 카슨은 1년 후 퇴원했습니다.
그의 표정은 입원할 때보다 훨씬 밝았습니다.
인간은 심리적인 동물입니다.
마음의 생각은 그대로 육체에 전달됩니다.
긍정적인 생각은 질병을 내쫓고,
마음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합니다.
인사합시다. 좋은 생각만 하고 삽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반드시 복을 주십니다.
느헤미야는 바사 왕국의 포로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 당시 왕이었던 아닥사스다 왕의 신임을 얻어 술 맡은 관원장의 역할을 감당하는 높은 지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던 중 느헤미야는 자기의 조국이 황폐하게 되었고 성벽이 파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고 금식하며 애통해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왕의 허락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여러 가지 어려움과 반대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무너진 성벽을 완공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완공 하였을 때, 예루살렘 성벽이 있는 곳은 아직도 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변방이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예루살렘성 안에서 산다는 것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언제 적군이 쳐들어와서 공격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예루살렘성 안에서 살기보다는 위험부담이 적은 자기의 고향에서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예루살렘성 안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성안에 사람이 살아야 도시가 형성되는 것이고,
군사가 있어야 나라를 지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적의 위험에 노출이 되어 누구도 살기를 꺼려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세 종류의 사람들이 변방 예루살렘에서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누구도 살기 싫어했던 변방 예루살렘에 누가 살았습니까?
1. 백성들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1절).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백성들의 지도자들이 먼저 희생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지도자들이 변방 예루살렘에 먼저 거주한 것입니다.
여러분! 지도자들이 변방을 선택하는 나라는 부흥하고 발전할 나라입니다.
그러나 지도자들이 먼저 중심을 차지하려고 하고 힘없는 백성들만 변방으로 내 모는 나라는 쇠퇴하고 망할 나라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힘들고 위험한 변방,
즉 헌신하고 봉사하는 자리에는 없고, 존귀하고 대접받는 자리에만 있으려하는 중직 자가 많은 교회는 결코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에서 언제나 무거운 일을 교인들 앞서서 감당해야 진정한 중직 자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무거운 일이 무엇입니까?
전도하는 일, 기도하는 일, 헌금하는 일,
헌신하는 일에 항상 중심에 서서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58명이 미국의 역대 대통령 41중에서
누가 가장 위대한 리더쉽을 발휘했는가? 를 평가했습니다.
조사 결과 1위는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었고, 2위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었으며, 3위는 조지 워싱톤 대통령이었습니다.
이 분들의 공통점은 어려운 현장의 중심에 섰던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남북 전쟁의 현장에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 현장에서,
조지 워싱톤 대통령은 독립전쟁에서 각각 중심에 섰던 분들입니다.
교회에서 중심 되는 지도자인 자신은 가만히 있으면서,
다른 사람만 헌신하기를 요구하는 사람은 교회의 참 지도자,
중직 자가 될 없습니다.
아프리카의 한 부족은 추장 임기가 7년입니다. 그 추장은 임기 중에는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것 외에는 모든 일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여자도 자신의 아내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7년 후 새로운 추장이 선출되면 전 추장은 부족의 평안을 위해 반드시 죽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전임 추장이 선정을 펼쳤으면 최대한 고통이 없이 죽였고 악정을 펼쳤으면 최대한 고통을 많이 주어 죽였습니다.
7년 후에는 반드시 죽는 목숨이기에 추장이 되려는 사람이 없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너도나도 추장이 되려고 했습니다.
추장 출마자는 권력욕이 있었기에 추장이 되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자신들이 주님의 좌편과 우편에 앉는 것을 가지고 싸웠습니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권력과 명예욕을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섬김을 받고자 하면 남을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지도자는 주님과 같이 종의 자세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헌신하는 사람이 진정한 교회의 지도자이며 중직자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우리교회의 중직 자들이 되 시길 축복합니다.
누구도 살기 싫어했던 변방 예루살렘에 누가 살았습니까?
1. 백성들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1절).
2. 제비 뽑힌 십 분의 일의 백성들이었습니다(1절).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거주하게 하고"
이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예루살렘에 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살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제비 뽑혀 살아야만 했습니다.
10명 중에 한명이 뽑히는 것인데 재수가 데게 없어서 뽑혀 험한 변방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야만 했습니다.
자기 의지가 아닌 어쩔 수 없이 선택되어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만 예배는 우리의 삶의 가장 중요한부분입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오늘 예배를 안 드릴 수는 없고 그래서 억지로 율법적으로 예배하는 사람 있고, 누군가는 지금 내 삶이 힘들어도 은혜를 알고 감사함으로 예배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억지로 마지못해서 예배의 자리에 나온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억지로나 마지못해서 인색함으로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것을 억지로 하는 것을 외식이라고 합니다.
마가복음을 보면 구레네 사람 시몬도 억지로 십자가를 졌습니다. 마가복음 15:21에 보면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라고 했습니다.
시몬은 유대인으로 아프리카 지역의 구레네에서 살았는데 알렉산더와 루포 라는 두 아들을 데리고 유월절 짐승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던 중이었습니다. 군중들이 잔뜩 모여 웅성거리고 있는 것을 보고 구경하고 있는데, 로마군병은 십자가를 질만한 사람을 찾다가 군중들 틈에 서있던 시몬에게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에게 후에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로마서 16:13에서 바울은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고 했습니다. 바울이 루포의 어머니를 자기 어머니처럼 대했던 것을 보면 루포의 아비 시몬은 그 후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어 교회의 존경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억지로라도 헌신할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주의 일을 억지로 할 수 있습니다.
주일성수, 봉사, 전도, 십일조를 억지로 할 수 있습니다.
억지로라도 주의 일을 하다 보면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왕 주의 일을 감당 할 것, 시켜서 꾸역꾸역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면 큰 복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누구도 살기 싫어했던 변방 예루살렘에 누가 살았습니까?
1. 백성들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1절).
2. 제비 뽑힌 십 분의 일의 백성들이었습니다(1절).
3. 자원하는 백성들이었습니다(2절).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
마지막 부류는 어떤 사람입니까? 자원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백성들의 두목도 아니었고, 제비에도 뽑히지 않았습니다. 그냥 평안을 누리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희생을 하기로 작정하고
변방 예루살렘에 머뭅니다. 가장 멋진 사람들입니다.
저주를 복으로 바꾼 레위 지파 이야기가 있습니다.
야곱은 창세기 49:5-7에서 열두 아들들을 향해 유언을 할 때 레위와 시므온에게 저주를 선언을 합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시므온과 레위는 야곱의 네 아내 중 레아라는 여자에게서 난 형제이며 그들은 사람 죽이는데 손발이 맞았습니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늘 사이가 좋아 항상 단짝처럼 붙어 다녔고 죽이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모이기만 하면 뭔가 모의를 했습니다.‘분노대로’‘혈기대로’‘노여움이 혹독’
‘분기가 맹렬’ 등의 묘사를 볼 때 그들은 모이기만 하면 주로 원망, 불평, 부정적인 말들을 하면서 나쁜 일을 모의한 것 같습니다. 이들은 세겜 성 학살사건을 일으킨 주동자들입니다.
여동생이 세겜 사람에게 겁탈 당하자 노를 발하여 그들을 몰살시키기로 작정하고 누이동생을 그들에게 주는 조건으로 할례를 받도록하고 세겜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자 그 다음날 잔인하게 그들을 죽입니다.
이 사건 때문에 야곱 족속 전체가 몰살당할 뻔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레위지파와 시므온 지파를 저주 한 것입니다.
그러면 레위 지파에게 내려진 저주가 어떻게 복으로 바뀔 수 있었을까요? 레위 지파가 저주를 복으로 바꾼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헌신입니다. 레위 지파는 자원하는 헌신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나와 광야를 지나가다가 시내산에 이르게 되는데 하나님의 부름으로 모세가 시내산에 오르고 사십일 동안 모세가 보이지 않게 되자 사람들이 불안해 하더니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그리고는 금을 모아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절을 합니다. 그때 모세가 내려와 보고 화가나 십계명을 던져 깨뜨리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그 주동자를 처치할 사람을 나오라고 할 때 열두 지파가 두려워 아무도 나오지 않을 때 레위지파가 나와 그들을 진멸시키게 됩니다.
자원하여 헌신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들을 축복하여 제사장지파로 만들게 됩니다.
이처럼 레위지파는 혈기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들이 사람과 손을 잡았을 때는 잔해하는 기계가 되었으나 그것을 회개하고 사람들과 흩어지고 시므온과 흩어지고 하나님과 손을 잡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제사장 지파로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자발적으로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 겟세마네로 나아갔고, 자신을 붙잡으러 온 자들을 향해서 내가 바로 너희가 찾는 예수라며 자발적으로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어쩔 수 없이 십자가를 짊어지신 것이 아니라 자원함이었습니다.
자원함으로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와 사망의 저주 가운데 있던 온 인류에게 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우리의 헌신도 예수님처럼 자원함이어야 합니다.
2절을 보면 예루살렘에 거하기를 자원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
얼마나 좋습니까?
자신을 위하여 복을 빌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요!
“하나님, 누구누구 성도에게 복을 내려 주옵소서.”
날마다 우리들의 기도 속에 여러분의 복을 빌어줌이 있다면
그런 기도를 받는 사람들은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늘의 복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시편 126편 6절에서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한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예루살렘인 교회를 사랑하면 형통합니다.
예루살렘인 교회의 중심에 거하면 복을 받습니다.
표시 나고 생색나는 일에 중심에 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십자가를 지는 마음으로 변두리에 거하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위해 자원하는 마음으로 희생하고 헌신해야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살고 교회가 부흥되고 여러분도 복 받는 것입니다.
결국 예루살렘에 살았던 자들은 다 복을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이 처음에는 변방이었지만 나중에는 중심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중심이 어디입니까? 예루살렘입니다.
지금으로 얘기하면 시골에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곳이 나라의 중심이 되어서 갑자기 땅 값이 폭등하여 부자가 된 것입니다.
변방인 예루살렘에 살기가 힘들다고 살지 않았던 사람들은
오히려 변방이 되어 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억지로 건, 자원하였건 예루살렘에 살았던
사람들은 자손 대대로 크게 복 받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중심된 역할을 감당하는 지도자들이 되 시길 바랍니다.
억지로라도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하시길 바랍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교회의 힘든 일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할 때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