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단상 20/쌀방아]수확의 기쁨, 주는 기쁨
물론 농사를 지어 수확收穫하는 기쁨도 크지만, 그것들을 조마니조마니(봉다리? 비닐주머니? 푸대?) 피붙이나 친구 그리고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재미가 엄청 쏠쏠하다는 것을 올 1년 여러 번 실감했다. 예로 들 수 있는 게, 땅콩, 감자, 고구마, 대봉시, 생강, 콩, 당근을 비롯해 마지막으로 “쌀”이다. 그 행위를 보거나 농산물을 받는 사람들은 “무엇하러 그 수고로움을 감당하냐?”고 쉽게 말하지만, 그 즐거움을 모르니까 하는 말이다. 유행어로 “My Pleasure”인 것이다. 무엇인가를 남에게 주는 것은 참으로 좋은 습관인 것을.
어제 또 그랬다. 드디어, 마침내 내 평생 논농사를 지어 나락을 베고 말려(콤바인과 건조기가 하는 것이지만) 방앗간(정미소)에서 방아를 찧었다. 800kg가 들어가는 대형 팩 속에 담긴 나락들은 나의 ‘분신’이나 마찬가지로 소중했다. 20kg로 23개 가마가 나왔다. 평년작(1필지 600평)에 80kg 12가마가 나온다지만, 올해는 신동진 벼에 깨씨무늬병이 달라붙어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 농가도 많은데, 다행인 것은 우리 논에는 침범을 하지 않았다. 2팩 중 1팩은 내년 초여름에 찧으려고 보관해놓고 1팩만 찧었다. 방아삯 30kg을 제하고 이장님의 협조로 집 마당 뚤방(토방)에 내려놓으니 푸짐하여 부자가 된 듯했다. 방앗간에 10kg로 담아주지 않기 때문에 일일이 10kg씩 나눠 푸대를 묶었다. 그게 또 큰일이었다. 20kg을 보내달라는 친구와 형제들에게 보내는 7푸대 말고는 14개 푸대를 따로 만들었다.
어둑해질 무렵 푸대 21개를 택배로 보내고 나니 ‘아이고 허리야’였지만, 기분만큼은 상쾌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내일 저녁이면 모두 막 찧은 햅쌀로 밥을 해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쌀이 천대받는 세상이래도 '쌀은 쌀이고 밥은 밥’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 기억하자. 쌀이 커피값에도 못미친다해도 이렇게 푸대접해서는 언젠가 '큰 죄' 받을 것이다. 쌀이야말로 세세만년 우리의 민족적 DNA인 것을.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받는 일가친척이나 친구, 지인들은 없을 것이다. 이로써, 올 농삿일은 거반 끝났다. 오전에는 밭두럭을 2개 만들어 양파와 마늘을 나홀로 심었다. 그러니, 어제 하루 쉬는 시간도 없이 얼마나 일을 많이 했는가. 흐흐. 이제 열흘 후쯤 서리태(검정콩, 서리가 내릴 때 수확을 한다하여 서리태라고 한다)만 베어 비닐집에서 말리면 된다. 농번기農繁期는 농번기대로, 농한기農閑期는 농한기대로 즐겁다. 중국말로 '워짱콰이러我常快了'다.
저녁을 맛나게(맛있게가 아니다) 먹고, 샤워를 하고, 쌀농사 정산精算을 대략 해보았다. 4필지 중 3필지는 물수매(나락째 농협에 가져다주는 RPC)를 했는데, 정부비축미 5가마 값만 빼고 통장에 입금되었다. 520여만원. 앞서 나온 농민수당 60만원. 이제 연말께 나올 직불금 120여만원까지 합하면 700여만원이다. 들어간 비용(육모값, 로타리 등 3개 공정을 거쳐 이앙기로 모를 심기까지 비용, 초-중기 제초제, 드론 항공방제 3차레, 비료, 콤바인 수확, RPC 운송비, 논세-1필지 쌀 3가마 60만원 등)을 모두 합해 보니 350여만원. 그러면 순수한 수입이 350여만원이다. 이게 물꼬를 보고 피를 뽑고 비료와 제초제를 뿌리는 등의 일을 한 나의 순수한 ‘1년 인건비人件費’인 것이다. 연말에 정산해보면 직불금 빼고 1마지기에 20만원꼴로 남는다던 친한 후배의 말이 맞은 셈이다. 흐흐. 아무래도 좋다. 나의 연봉年俸이 고작 400만원에 못미치고, 아내의 한 달 수입보다 적겠지만, 잘 먹고 잘 놀며 또 열심히 일한 대가代價에 유감은 없다. 왜냐하면 나는 요순시절의 격양가擊壤歌를 부르며 안빈낙도, 유유자적한 세월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그러하지 않을 것인가.
내 평생 첫 찧은 쌀방아와 그 쌀을 여러 명에게 선물한 기쁨의 느낌을 요순시절의 격양가로 대신한다.
日出而作 해가 뜨면 들에 나가 일을 하고
日入而息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와 쉬며
鑿井而飮 우물 파 목 마르지 않게 마시고
耕田而食 밭을 갈아 음식 배불리 먹으니
帝力於我何有哉? 황제가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
뚫을 착鑿자 말고는 어려운 한자는 없을 듯. 만고강상萬古江山, 함포고복含哺鼓腹이다. 배불리 먹고 배 두드리는 듯한 포대화상布袋和尙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나는 좋아한다. 내공의 바닥을 보이는 윤머시기가 대통령만 되지 않으면 좋겠다. 정치 이야기는 거의 안하지만, 자기 손에 ‘임금 왕王’자를 버젓이 쓰고 토론회에서 세 번이나 손바닥을 펼쳐 보이는 그것 하나만 보더라도 자질이 전혀 없지 않은가. 다른 것은 차치하고, 21세기에도 대통령을 왕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니고 무엇인가. 지난 8월초 망중한忙中閑이라며 전국민에게 공개한 그분의 휴가 사진(침대에 반팔로 비스듬히 누워 그가 가장 사랑한다는 펫PET, 애완견을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도 생각난다. 그때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런데, 왜 그의 지지율은 떨어지지 않은 것인가?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딱 한 마디, 정치 이야기를 해서 송구하다).
이 새벽, 나는 어제 찧은 햅쌀로 밥을 안치러 본채로 건너간다.
첫댓글 우천 행복은 코리아의 행복,입꼬리가 귀에 걸리다니. 워메 거금이 통장에 들어올 생각만 해도.
그래도 그렇다. 땀흘린만큼 돈은 들어와야 되는데, 안빈낙도로 자족하시게나.
여하튼 축하드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