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智慧가 주는 有益
1 내 아들아 네가 萬一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誡命을 네게 간직하며
My son, if you receive my words and treasure up my commandments with you,
Fili mi, si susceperis sermones meos, et mandata mea absconderis penes te :
Υἱέ, ἐὰν δεξάμενος ῥῆσιν ἐμῆς ἐντολῆς κρύψῃς παρὰ σεαυτῷ,
권면하는 이는 일차적으로는 솔로몬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 여호와이시다. 교훈을 듣는 이를 아들이라 부른다고 해서 솔로몬의 혈육 아들들만 해당되는 것도, 딸들을 비롯한 여자들은 제외되는 것도 아니라, 그리스도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는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교훈을 듣는 대상에 해당된다. 솔로몬의 말과 계명은 단지 사람의 가르침이 아니라 그리스도 여호와께서 교회와 성도들에게 성령과 성경으로써 주시는 말씀과 계명을 의미한다.
2 네 귀를 智慧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明哲에 두며
making your ear attentive to wisdom and inclining your heart to understanding;
ut audiat sapientiam auris tua, inclina cor tuum ad cognoscendam prudentiam.
ὑπακούσεται σοφίας τὸ οὖς σου, καὶ παραβαλεῖς καρδίαν σου εἰς σύνεσιν, παραβαλεῖς δὲ αὐτὴν ἐπὶ νουθέτησιν τῷ υἱῷ σου.
지혜와 명철은 이 땅을 약삭빠르게 잘 살아가기 위한 세속적인 지혜와 명철이 아니라 그리스도 여호와께서 성령과 성경으로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시는 지혜와 명철을 의미한다. 지혜에 기울이는 귀와 명철에 두는 마음은 단지 사람의 육신의 귀와 정신활동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성도들에게 성경을 알게 하시고 행하게 하시려고 그들의 영에 불러 일으키시는 모든 감화감동을 의미한다. 지혜를 듣는 귀는 사도 요한의 계시록에서 주님께서 일곱 교회의 사자들에게 말씀하신 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라 하신 것과 같은 것이다. 지혜에 귀를 기울이고 명철에 마음을 두는 것은 성령이 아니고서는 성도 자신만의 능력으로는 불가함에도 불구하고 성도 자신이 행해야 하는 것으로 이야기 되는 이유는, 성령께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감화감동은 그들을 억지로나 강압적으로 강제적으로 끌고 가시는 것이 아니라 마치 성도 자신의 자원하는 심령과 의지로 인해서 그렇게 되는 것처럼 은밀하게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도가 성경에 귀를 기울이고 성경에 마음을 두는 것은 성령님의 전적인 의지임과 동시에 성도 자신의 전적인 의지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3 知識을 불러 求하며 明哲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yes, if you call out for insight and raise your voice for understanding,
Si enim sapientiam invocaveris, et inclinaveris cor tuum prudentiæ ;
ἐὰν γὰρ τὴν σοφίαν ἐπικαλέσῃ καὶ τῇ συνέσει δῷς φωνήν σου,
4 銀을 求하는 것 같이 그것을 求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if you seek it like silver and search for it as for hidden treasures,
si quæsieris eam quasi pecuniam, et sicut thesauros effoderis illam :
καὶ ἐὰν ζητήσῃς αὐτὴν ὡς ἀργύριον καὶ ὡς θησαυροὺς ἐξεραυνήσῃς αὐτήν·
신앙의 지혜는 성경의 지식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단편적인 성경 지식들이 쌓이게 되면 성령의 지혜가 그 지식들간의 연관관계를 파악할 수 있게 해주고 실제 삶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도 알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성경 지식들간의 연관관계와 삶에 적용된 경우가 또 하나의 성경 지식으로 체계화되어 쌓이게 되고 또 그 새로운 지식들간의 연관관계와 적용점이 성령의 지혜로 말미암아 새롭게 구축되는 것이다. 성경의 지혜를 얻으려면 성경 지식을 가능한 많이 쌓는 것이 먼저다. 다윗이 솔로몬이 지을 성전의 건축자재를 할 수 있는대로 많이 모은 것은 성도가 성경 지식을 쌓아야 하는 태도를 예표하는 것이다. 성경의 지식과 명철과 지혜를 얻고자 하는 마음은 성령께서 주시는 것이나, 그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 책임을 성령께 돌릴수는 없고 전적으로 그 사람 자기자신의 책임이다. 또한 주의해야 할 것은,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은 단지 지식적으로 머리로 지적활동적으로만 알고 깨닫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삶에서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까지 포함된다는 것이다. 즉, 아무리 성경 지식을 많이 알고 그 지식들간의 연관관계를 남들보다 탁월하게 깨닫는다 하여도 아는 것으로 끝날 뿐 도무지 행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은 지식과 죽은 지혜이기 때문에 성령께서 주신, 성령께로부터 기인한 지식과 명철과 지혜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성경 지식에는 탁월한데 사회현상을 해석할 때 선을 악이라 하고 악을 선이라 하는 것도 성령께로부터 기인한 지식과 명철과 지혜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적잖은 개혁주의자들은 신앙고백과 교리에 대한 지식에는 탁월하면서도 그것은 전하는 것에나 실천하는 것에나 사회현상을 해석하는 것에나 어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으므로 성령께로부터 말미암은 성경 지식과 명철과 지혜라고 보기는 어렵다.
5 여호와 敬畏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then you will understand the fear of JEHOVAH and find the knowledge of God.
tunc intelliges timorem JEHOVAH, et scientiam Dei invenies,
τότε συνήσεις φόβον ΙΕΗΩΟΥΑ, καὶ ἐπίγνωσιν Θεοῦ εὑρήσεις.
솔로몬이 강조하는 지혜와 지식과 명철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리스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와 그분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깨달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어느 한 순간에 완전하게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살아가는 평생에 걸쳐 장성숙해 가는 것이다. 물론 이 지식 지혜 명철은 머리로만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의 순종과 실천도 동반하는 것이다. 그런데 통상적으로 지식과 지혜와 실천은 1:1:1로 같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백 개의 지식들에서 열 개의 지혜가 나오고, 열 개의 지혜 중에서 한 개의 실천이 나오게 된다. 따라서 성경 지식이 많을수록 성경을 깨닫는 지혜와 성경을 실천하는 순종이 많아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리스도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기를 깨닫는 것은 성도 자신이 스스로의 의지와 지성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성도의 영에 역사하심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그럼에도 성도의 행위가 동반될 수 밖에 없는 것은 성령께서 억지로나 강압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의지를 새롭게 하셔서 마치 성도가 스스로의 자원하는 심령과 의지로 하는 것처럼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자신을 비롯한 교회 구성원이 참된 성도인지를 대략적으로 판별할 수 있는 기준 중 하나는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고 배우고 행하는데 지속적으로 힘쓰고 있느냐라고 할 수 있다. 정신 신체적 장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십년간 오랜동안 교회 구성원으로 있으면서도 성경에 대한 지식과 지혜와 명철이 자라지 않고 그 언행실도 나아지지 않았다면 적어도 지금 그 순간까지는 성령으로 중생한 성도가 아니며 앞으로도 중생하게 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늘의 신령한 것을 바라보고 추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꾸 이 땅의 세속적인 것을 바라보고 추구하게 하는 목사는 주님께서 세우시고 보내신 목사가 아니다. 성경으로 세속학문을 검증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학문으로 성경을 재단하고 타협하는 헤르만 바빙크의 신학은 솔로몬이 전도서에서 고백한 바 미련하고 어리석으며 미친 신학이고, 바울 사도가 고백한 바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와 지식을 위해 배설물처럼 버려버린 것들을 굳이 그러모아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와 지식을 밝혀내려는 헛되고 헛된 신학이라 할 수 있다.
6 大抵 여호와는 智慧를 주시며 知識과 明哲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For JEHOVAH gives wisdom; from his mouth come knowledge and understanding;
quia JEHOVAH dat sapientiam, et ex ore ejus prudentia et scientia.
ὅτι ΙΕΗΩΟΥΑ δίδωσιν σοφίαν, καὶ ἀπὸ προσώπου αὐτοῦ γνῶσις καὶ σύνεσις·
7 그는 正直한 者를 爲하여 完全한 智慧를 豫備하시며 行實이 穩全한 者에게 防牌가 되시나니
he stores up sound wisdom for the upright; he is a shield to those who walk in integrity,
Custodiet rectorum salutem, et proteget gradientes simpliciter,
καὶ θησαυρίζει τοῖς κατορθοῦσι σωτηρίαν, ὑπερασπιεῖ τὴν πορείαν αὐτῶν
8 大抵 그는 正義의 길을 保護하시며 그의 聖徒들의 길을 保全하려 하심이니라
guarding the paths of justice and watching over the way of his saints.
servans semitas justitiæ, et vias sanctorum custodiens.
τοῦ φυλάξαι ὁδοὺς δικαιωμάτων, καὶ ὁδὸν εὐλαβουμένων αὐτὸν διαφυλάξει.
9 그런즉 네가 公義와 正義와 正直 곧 모든 善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
Then you will understand righteousness and justice and equity, every good path;
Tunc intelliges justitiam, et judicium, et æquitatem, et omnem semitam bonam.
τότε συνήσεις δικαιοσύνην καὶ κρίμα, καὶ κατορθώσεις πάντας ἄξονας ἀγαθούς.
그리스도 여호와께서 주시는 지식과 지혜와 명철은 약삭빠른 이 땅의 세속인들의 눈에는 미련하고 어리석고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그리스도 여호와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그리스도 여호와의 가르침을 받지도 행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창세 전부터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이신 그리스도와 협의하심으로써 구원하시기로 선택하신 성도들은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성경이 과연 그리스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비록 이 땅에서는 온갖 고난과 핍박해와 손해와 피해를 당한다 하더라도 믿음으로 영원한 상급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을 견고히 인내하여 배우고 행하기에 평생토록 힘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0 곧 智慧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知識이 네 靈魂을 즐겁게 할 것이요
for wisdom will come into your heart, and knowledge will be pleasant to your soul;
Si intraverit sapientia cor tuum, et scientia animæ tuæ placuerit,
ἐὰν γὰρ ἔλθῃ ἡ σοφία εἰς σὴν διάνοιαν, ἡ δὲ αἴσθησις τῇ σῇ ψυχῇ καλὴ εἶναι δόξῃ,
11 謹愼이 너를 지키며 明哲이 너를 保護하여
discretion will watch over you, understanding will guard you,
consilium custodiet te, et prudentia servabit te ;
βουλὴ καλὴ φυλάξει σε, ἔννοια δὲ ὁσία τηρήσει σε·
12 惡한 者의 길과 悖逆을 말하는 者에게서 건져 내리라
delivering you from the way of evil, from men of perverted speech,
ut eruaris a via mala, et ab homine qui perversa loquitur ;
ἵνα ῥύσηταί σε ἀπὸ ὁδοῦ κακῆς καὶ ἀπὸ ἀνδρὸς λαλοῦντος μηδὲν πιστόν.
13 이 무리는 正直한 길을 떠나 어두운 길로 行하며
who forsake the paths of uprightness to walk in the ways of darkness,
qui relinquunt iter rectum, et ambulant per vias tenebrosas ;
ὦ οἱ ἐγκαταλείποντες ὁδοὺς εὐθείας τοῦ πορεύεσθαι ἐν ὁδοῖς σκότους,
14 行惡하기를 기뻐하며 惡人의 悖逆을 즐거워하나니
who rejoice in doing evil and delight in the perverseness of evil,
qui lætantur cum malefecerint, et exsultant in rebus pessimis ;
οἱ εὐφραινόμενοι ἐπὶ κακοῖς καὶ χαίροντες ἐπὶ διαστροφῇ κακῇ,
15 그 길은 구부러지고 그 行爲는 悖逆하니라
men whose paths are crooked, and who are devious in their ways.
quorum viæ perversæ sunt, et infames gressus eorum.
ὧν αἱ τρίβοι σκολιαὶ καὶ καμπύλαι αἱ τροχιαὶ αὐτῶν,
성경을 알고 깨닫고 행하고자 하는 마음은 성도 자신에게서 비롯될 수 없고 오로지 성도의 영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의 감동시키시는 역사를 통해서만 생길 수 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가 워낙에 은밀하고 오묘해서 어디로부터 어떻게 그 마음이 생겨나서 성경을 접하게 되는 것인지 섭리의 시작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대부분 부모나 친구 등을 통해서 어찌어찌 하다가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설교와 성경공부를 통해서 성경을 배우게 되다가 점점 스며들듯이 성경을 알아가고 깨닫게 되고 삶에서 조금씩 실천해 나가게 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그런 중에서 신앙의 몇몇 특별한 계기가 생겨서 성경을 좀 더 깊게 배우고 알아가게 되는데 그러면서 이전까지 자신이 잘못 알고 있었던 것들을 깨닫게 되고 대대적으로 교정해 나가기도 한다. 물론 그런 과정 또한 처음부터 완전하지는 않아서 적잖은 시간 동안 적잖은 좌충우돌과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간이 지나게 되면 이전보다 더 장성숙한 신앙으로 발돋움 한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한단계 장성숙한 자신의 신앙에 만족해 있거나 타성에 젖지 않고 이 땅에서는 완전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더 나은 신앙을 위해서 고군분투를 하게 된다. 성경의 지식과 지혜와 명철을 얻는 과정은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은데 가르쳐주는 선생이 없거나 건강이나 재정 상황 등이 뒷받침되지 못하거나 자신의 일상이나 교회 안에서 숱한 훼방거리들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성경의 지식과 지혜와 명철을 얻는다고 해서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아니고 도리어 손해를 보거나 조롱을 당하거나 인정받지 못하게 되는 일이 다반사라 하더라도 성령께서 감동시키신 성도는 도리어 그러한 고난과 핍박해를 기꺼이 대가로 지불하여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성경 지식과 지혜와 명철을 얻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성령께로부터 말미암은 성경의 지식과 지혜와 명철은 마치 하나님의 구별되는 세 위격들이 하나로 연합되시는 것과 같이 구별은 가능하나 분리는 불가능하다. 즉 어린 나이에 죽은 성도나 저능인이나 정신지체인과 같이 스스로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는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성경의 지식과 지혜와 명철은 하나로 움직이고 역사하며 열매를 맺게 된다. 아무리 성경 지식을 많이 쌓아도 그 지식으로 잘못된 지혜와 행위가 나온다면 지식 자체는 성령께로부터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지식을 쌓은 것을 비롯한 사람의 모든 추구행위는 성령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에서 나온 것이다. 성경 지식과 지혜를 많이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지식과 지혜대로 행하지도 행하려 하지도 않는다면 그 지식과 지혜는 성령께로부터 난 것이라 하더라도 습득한 정신활동 전체는 성령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로부터 난 것이다. 개혁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성경의 권위를 세속 학문 수준으로 잡아 끌어내리고 세속 학문으로 성경을 검증하려하는 합리지성주의 신학, 그리스도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진화론으로 해석하려는 유신진화론 신학, 이 땅의 유형교회 자체를 부정하는 무교회주의 신학, 패륜집단인 일베를 추종하는 기독교 세계관 신학, 자기에게 까불면 하나님도 자기 손으로 처치해버리겠다는 신성모독 신학, 남북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주민 이천만명을 하나씩 끌어안고 자살해야 된다 선동하는 정치이념 신학, 교회를 돈벌이와 영리사업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축재 신학, 교회 부흥과 성장을 복음과 무관한 활동들에 의존하는 행사 신학 등은 전부 성령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악하고 패역한 자들에게서 난 것들이다.
이러한 악하고 패역한 신학들은 처음부터 자기들의 악한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성경 지식과 지혜와 명철을 조금씩 교묘히 그럴듯하게 가미하여 어지간하면 분별하기 어렵게 만든다. 게다가 그런 악한 신학들은 각자의 교회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성경 요소들만 보고서 그 전체를 성경적인 것으로 인정하게끔 만들어간다. 그래서 성령께로부터 말미암은 성경 지식과 지혜와 명철을 가진 성도가 그것의 잘못된 점을 지적이라도 하면 교회를 분열시키고 괴롭게 하는 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분별있는 참된 성도는 성경 지식과 지혜와 명철에 다른 여타의 교인들보다 특심하게 거룩한 열정이 있기 때문에 교회 내에서의 고난과 핍박해를 감수하고 지속적으로 악하고 패역한 신학을 대적해나간다.
16 智慧가 또 너를 淫女에게서, 말로 호리는 異邦 계집에게서 救援하리니
So you will be delivered from the forbidden woman, from the adulteress with her smooth words,
Ut eruaris a muliere aliena, et ab extranea quæ mollit sermones suos,
τοῦ μακράν σε ποιῆσαι ἀπὸ ὁδοῦ εὐθείας καὶ ἀλλότριον τῆς δικαίας γνώμης. υἱέ, μή σε καταλάβῃ κακὴ βουλή,
17 그는 젊은 시절의 짝을 버리며 그의 하나님의 言約을 잊어버린 者라
who forsakes the companion of her youth and forgets the covenant of her God;
et relinquit ducem pubertatis suæ,
ἡ ἀπολείπουσα διδασκαλίαν νεότητος, καὶ διαθήκην θείαν ἐπιλελησμένη.
18 그의 집은 死亡으로, 그의 길은 스올로 기울어졌나니
for her house sinks down to death, and her paths to the departed;
et pacti Dei sui oblita est. Inclinata est enim ad mortem domus ejus, et ad inferos semitæ ipsius.
ἔθετο γὰρ παρὰ τῷ θανάτῳ τὸν οἶκον αὐτῆς, καὶ παρὰ τῷ ᾅδῃ μετὰ τῶν γηγενῶν τοὺς ἄξονας αὐτῆς·
19 누구든지 그에게로 가는 者는 돌아오지 못하며 또 生命 길을 얻지 못하느니라
none who go to her come back, nor do they regain the paths of life.
Omnes qui ingrediuntur ad eam non revertentur, nec apprehendent semitas vitæ.
πάντες οἱ πορευόμενοι ἐν αὐτῇ οὐκ ἀναστρέψουσιν οὐδὲ μὴ καταλάβωσιν τρίβους εὐθείας· οὐ γὰρ καταλαμβάνονται ὑπὸ ἐνιαυτῶν ζωῆς.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 음녀는 그리스도와 복음과 교회를 빙자하여 교묘하게 거짓 교훈을 가르치는 거짓 교회와 거짓 목사와 거짓 신자 모두를 의미하며, 이는 요한 사도의 계시록에서 발람과 이세벨과 니골라당과 같은 것이다. 교회의 음녀는 처음에는 그리스도의 교회와 목사와 신자가 되겠노라고 굳게 맹세하였어도 어느 순간 그 맹세를 저버리고 성경에 반대되는 것을 가르치고 행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반 성경적인 가르침과 행위는 한 순간에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띄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은근히 교묘히 스며들듯이 파고들게 되어버린다.
육체의 음녀가 사랑의 말과 성적 쾌락으로 남자를 유혹하듯이, 교회의 음녀는 공감의 말로 감정적 쾌락을 일으켜 교인들을 미혹한다. 교회에서의 정치선동, 권징 및 회개 불이행, 아전인수 및 감언이설과 번영주의 설교 강해, 교회 내 성범죄, 재정 횡령 및 오남용, 여성 설교자 인정, 목사의 목회 이외의 생계 활동 인정, 무교회주의, 유신진화론, 성속이원론, 공로주의, 세속학문 접목 등등 성경과 복음을 빙자한 반성경적 요소를 교묘하고 은근히 가르치는 것이 교회 내 음녀의 호리는 말이다.
음녀의 유혹에 당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음녀를 만날 기회 자체를 없애는 것이고, 그 다음은 설령 음녀와 부득이하게 마주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음녀가 유혹한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바로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자의건 타의건 고의건 부득이하건 간에 음녀의 말에 넘어가게 되면 그 다음에는 원초적인 쾌락에 대한 기대 때문에 절대로 남자 스스로 벗어나거나 거부할 수 없게 된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음녀에게 넘어가지 않으려면 반성경적인 가르침 자체는 거들떠도 보지 않거나, 어쩔수없이 접하게 된다 하더라도 이것이 과연 그러한가 철저하게 성경으로 검증하고 아니다 싶으면 단절해버리는 것이 최상책이다. 그러지 않고 교회의 음녀가 자기의 어려운 처지를 공감해주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고 계속해서 음녀의 거짓 교훈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 이후에는 음녀에게서 얻을 육체의 쾌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교회의 음녀에게서 얻을 감정적 쾌락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
음녀에게서 성적 쾌락을 맛본 남자는 음녀에게서 버림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하기 전까지는 스스로 음녀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듯이, 교회의 음녀에게 빠져버린 교인은 음녀의 거짓 교훈에 중독되어 버려서 결국에는 교회의 음녀를 따라 교회와 신앙을 완전히 저버리게 되어 두 번 다시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된다.
음녀가 궁극적으로 교회의 거짓 교훈과 거짓 선생 등을 상징한다고 해서 실제 육체적인 음녀에 대한 교훈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실제적인 간음에도 빠져들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아무리 교회에서 성경 지식과 봉사와 사역에 탁월한 목사 장로 집사 구성원이라 하더라도 실제 음녀를 통해 육체의 간음에 빠지게 되면 다시 원래 신앙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거의 희박하다. 남자들이 특별히 음욕과 간음을 조심해야 한다면, 여자들은 하와가 저지른 허영이라는 원죄의 표상을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20 智慧가 너를 善한 者의 길로 行하게 하며 또 義人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
So you will walk in the way of the good and keep to the paths of the righteous.
Ut ambules in via bona, et cales justorum custodias :
εἰ γὰρ ἐπορεύοντο τρίβους ἀγαθάς, εὕροσαν ἂν τρίβους δικαιοσύνης λείους.
21 大抵 正直한 者는 땅에 居하며 完全한 者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For the upright will inhabit the land, and those with integrity will remain in it,
qui enim recti sunt habitabunt in terra, et simplices permanebunt in ea ;
ὅτι εὐθεῖς κατασκηνώσουσι γῆν, καὶ ὅσιοι ὑπολειφθήσονται ἐν αὐτῇ·
22 그러나 惡人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奸邪한 者는 땅에서 뽑히리라
but the wicked will be cut off from the land, and the treacherous will be rooted out of it.
impii vero de terra perdentur, et qui inique agunt auferentur ex ea.
ὁδοὶ ἀσεβῶν ἐκ γῆς ὀλοῦνται, οἱ δὲ παράνομοι ἐξωσθήσονται ἀπ᾽ αὐτῆς.
선인의 길과 의인의 길은 그리스도의 길로서 각자 자신의 십자가와 멍에를 지고 가야 하는 좁고 협착하며 험한 길이다. 그래서 교회의 음녀들과 위선자들과 미혹된 자들은 자기들이 져야 하는 십자가와 멍에가 너무 무겁고 가야하는 길이 너무 험난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선인과 의인의 길을 따라가는 것 같다가도 점점 조금씩 타협하고 편법을 부리다가 급기야는 십자가와 멍에를 벗어버리고 넓고 평탄한 세속의 길로 돌아서버리고 두 번 다시 되돌아올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인과 의인은 그리스도의 성령과 성경을 통해서 지금은 잠시 십자가와 멍에가 무겁고 가는 길이 험난하여 힘들게 느껴지더라도 그 길을 완주하게 되면 영원한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굳게 믿기 때문에 끝까지 견뎌낼 수 있는 것이다.
선하고 의로우며 정직하고 완전한 성도가 거하며 남아있게 되는 땅은 여전히 죄악이 관영한 이 세속의 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이 세속의 땅에서는 선하고 의로우며 정직하고 완전한 성도는 제대로 설 자리 하나 구하지 못하고 심지어 교회에서도 부당하게 쫓겨나기도 하지만, 교회에서 악하고 불의하며 부정직하고 불완전한 음녀들은 교회에서나 세속에서나 한자리 차지하여 떵떵거리며 교회를 좌지우지 한다. 따라서 성도가 거하는 땅, 음녀가 끊어지고 뽑히는 땅은 장차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모든 성도들을 이 땅에서 뽑아 끊으셔서 부활 승천 시키시고 데려가실 하늘의 새 예루살렘인 천국을 의미한다. 반면에 교회의 음녀들과 그들에게 미혹된 거짓 직분자와 거짓 신자들은 하늘의 불로써 세상 만물의 형질이 풀어져 마지막에 이른 후에 크고 흰 보좌에 앉으신 주님 앞에서 정죄를 당하여 영원히 타는 불못의 땅에 심겨지고 남아있게 된다.
주님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 승천 이후 이 땅에 남겨진 교회의 음녀들은 미혹할 대상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붉은 용이 세상의 바다와 땅을 주관하는 권세를 준 두 짐승에게 버림받아 갈기갈기 잡아뜯어먹히고 시체는 불사름을 당하게 된다. 교회의 음녀들과 음행을 저지르다가 하늘로 들림받지 못하고 땅에 남겨지게 된 거짓 직분자들과 거짓 신자들 중 권세자들은 개구리처럼 더러운 세 악령의 부름에 아마겟돈으로 집결하여 짐승의 군대의 군사가 되어 용이 무저갱에 결박된 천 년 동안 하늘의 군대와 싸우다가 전멸을 당해 하늘 짐승과 들짐승들에게 시체가 뜯어먹히게 되고 그들의 피로 직경 천육백 스다디온의 넓이에 말고삐 높이만큼이 채워지게 된다. 거짓 직분자들과 거짓 신자들 중 비천한 자들은 천년 동안 결박되었다가 풀려난 용의 부름을 받고 미혹되어 이전에 자기들이 몸담았었던 이 땅의 각자의 교회들을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파괴하려다가 하늘에서 내리는 불에 비참하게 타죽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