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ew Life, 행복한 귀향, 서울나들이 첫 번째/눈치코치
‘눈치코치’
어느 날 문득, 내 그 말이 국어사전에 나올까 안 나올까 궁금했다.
속된 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올 것 같았다.
내 어린 시절부터 숱하게 들은 말이기 때문이다.
그 들은 말, 대충 이랬다.
‘눈치코치도 모른다.’
남의 생각이나 태도에 담겨 있는 속셈을 잘 알아차리지 못해서, 내 그런 말을 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확인을 해봐야 했다.
역시 내 짐작대로였다.
있었다.
이런 풀이였다.
‘눈치의 힘준 말’
그래서 ‘눈치’라는 말을 또 찾아봐야 했다.
이렇게 풀고 있었다.
‘남의 마음이나 일의 낌새를 알아채는 힘.’
‘생각이 드러나는 어떤 태도.’라는 또 다른 풀이도 있었지만, 엇비슷한 의미로 이해가 됐다.
지나온 내 인생이 그랬다.
주위의 눈치코치를 보면서 살았다.
내 어린 시절과 학창시절에서 가난과 외로움에 시달리면서, 많은 어려움을 많이 겪었기에 그랬고, 국가공무원 9급의 말단인 검찰서기보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다보니, 주위에서 내게 던지는 모진 시선을 무시할 수가 없어서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마음 가는대로 처신을 해도 부끄러울 일이 없어야 한다는 일흔 나이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내 주위 눈치도 안 보고 코치도 안 본다.
눈치코지를 봐야하는 종속의 삶이 싫어서다.
그래서 내 쪼대로 산다.
그렇다고 해서 전혀 눈치코지를 안 보는 것은 아니다.
조심스러운 주위가 몇몇 있기 때문이다.
그 중 한 분이 바로 나와 아내가 적을 두고 다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우리들 서울시민교회 담임이신 권오헌 목사님이시다.
나와는 페이스북 친구이기도 해서, 내 하는 일거수일투족을 다 지켜보실 것이어서, 내 처신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조심해서 게시를 하는 것도 아니다.
법무사 일거리가 있네 하거나, 귀향해서 텃밭 농사짓네 하거나, 먼 길 여행을 떠난다 하면서 교회를 빠지기 일쑤인데, 그 분탕의 일상을 몽땅 다 게시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위와 어울려 술판을 벌이는 모습까지, 감히 페이스북에 게시를 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다.
그러니 늘 반듯한 신앙생활을 힘주어 말씀하시는 권 목사님에게 눈치코치가 보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눈치코치 보일 그런 영상은 페이스북에 게시하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 양심의 문제다.
겉으로 내보이는 양심으로는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내 속 마음에 있는 온전한 양심은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내 모든 것을 게시하면서도, 나를 지켜보시는 권 목사님이 이해해주기만 바랄 뿐이다.
이번에 중학교 동기동창인 김용균 내 친구가 초대해서 발걸음 하게 된, ‘제임스 정의 7080하모니카 콘서트’의 현장실황 영상도, 내 그런 마음으로 잇달아 게시했었다.
역시 권 목사님은 내 하는 짓을 쭉 지켜보고 계셨다.
모두 10여 편의 영상을 게시했는데, 그 중 하나의 영상에 보셨다는 그 표시를 내주신 것이다.
바로 이날 공연의 첫 곡인 ‘사랑의 미로’를 연주했던 ‘좋은 사람’의 다섯 연주자 중에 한 사람인 노정순씨가 연주한,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영상에 그러셨다.
그러잖아도 하도 애절하게 연주하는 바람에, 눈시울을 뜨겁게 적셔야 했고, 손등으로 그 적신 눈물을 닦아내야 했었다.
그 곡에 권 목사님이 표시를 해주신 것이다.
다른 영상에는 일체 표시를 안 내주시다가, 왜 하필 그 곡에 보셨다는 표시를 하셨을까 나름으로 짚어도 봤다.
권 목사님의 어린 시절을 곧게 가르치셨던 부모님 생각도 하셨겠다 싶고, 평생을 헌신적으로 동행해주시는 사모님 생각도 하셨겠다 싶고, 결혼으로 분가해서 권 목사님을 떠난 두 아드님 생각도 하셨겠다 싶었다.
어쩌면 일흔 중반을 사는 내 생각도 떠올리셨겠다 싶었다.
그러시면서 낸 표시, 곧 이 석 자였다.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