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宗이야기·忠武公 이야기 (3-2) 世宗이야기 展示館
世宗이야기 展示館
-展示館 面積 총 2,522㎡ -위치;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지하 175 (세종로)
電鐵 5호선 光化門驛 지하 3,200㎡ 공간에 마련된 [世宗이야기] 展示館은 人間 世宗과 그의
民本思想, 한글創製 등 企劃展示존(zone)을 비롯하여 6개의 尖端 展示 존과 이벤트 마당, 影像館,
뮤지엄 샵 등으로 꾸며졌다. “百姓은 나라의 根本이요, 밥은 百姓의 하늘이다.”
世宗大王은 太祖 6년(1397) 5월 15일 漢城府 俊秀坊(현재 서울 鍾路區 通仁洞)에서 조선
제3代 임금 太宗과 元敬王后 閔氏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셨다. 22살이던 太宗 18년(1418) 父王
太宗의 讓位로 朝鮮 第4代 임금으로 卽位하였다. 世宗大王은 지극한 愛民精神과 民本思想에
기초하여 한글을 반포하고, 科學技術, 文化藝術, 軍事, 外交, 農耕, 天文 등 여러 분야에서
朝鮮時代의 르네상스를 이룩하였다. [세종이야기]는 위대한 聖君 世宗大王의 業績을 기리고
오늘의 時代精神으로 되살려 疏通과 統合의 空間으로 자리할 것이다. (*疏: 소통할 소 *坊: 동네 방)
(*歷史를 復習해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하다 보니 說明이 좀 길어졌다)
展示館 構成
① 人間 世宗
世宗大王의 出生地, 家族關係, 品性과 趣味 등을 소개하고, 世宗의 年代記를 살펴볼 수 있는 空間.
② 民本思想
百姓을 사랑하는 世宗大王의 愛民思想을 알 수 있는 逸話를 複合影像으로 소개하는 공간.
③ 한글 創製
한글 創製 過程과 原理를 이해하기 쉽게 소개하고, 訓民正音 解例本과 諺解本, 龍飛御天歌 등
한글로 된 옛 文獻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
④ 科學과 藝術
世宗大王이 이루어낸 科學과 藝術의 業績을 소개하는 곳으로 해시계 仰釜日晷와 天文圖인
天象列次分野之圖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고, 世宗時代에 만든 編鐘, 編磬 등 다양한
國樂器를 감상할 수 있는 공간. (*編: 엮을 편 *磬: 경쇠 경)
⑤ 軍事政策
世宗大王 時期에 이루어진 對馬島 征伐과 李滿住(女眞族 오랑캐 酋長) 討伐, 四郡 六鎭開拓 등을
소개하고, 世宗時代에 만든 神機箭과 發射場面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 (*箭: 화살 전)
⑥ 한글 갤러리
한글을 素材로 다양한 藝術活動을 하는 現代作家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企劃展示 공간.
⑦ 한글도서관
世宗大王과 忠武公 關聯 書籍뿐만 아니라 다양한 分野의 圖書를 읽을 수 있는 學習空間 展示館
世宗이야기 展示館 사진
(01) 世宗이야기 展示館 출입구 (*사진을 다시 올린다.)
(02) 世宗大王 年譜 (*譜: 족보 보) *拔萃
-1397년(太祖 6년) 4월 10일(양력 05.15) 靖安君 李芳遠의 3男으로 出生
-1408년(太宗 8년/12歲) 忠寧君에 冊封, 沈溫의 딸 沈氏(昭憲王后)와 婚姻
-1418년(太宗 18년/22세) 6월 王世子 冊封, 8월 景福宮 勤政殿에서 卽位
-1419년(世宗 1년/23세) 對馬島 征伐
-1420년(세종 2년/24세) 集賢殿 擴張. 庚子字 製作 시작, 이듬해 완성.
-1423년(세종 5년/27세) 朝鮮通寶(鑄貨, 銅錢) 鑄造
-1427년(세종 9년/31세) 編磬 製作, 醫藥書 <鄕藥救急方> 刊行
-1432년(세종 14년/36세) 新撰 八道地理志, 修身書 <三綱行實圖> 편찬
-1433년(세종 15년/37세) 婆猪江(現 冬佳江) 野人 李滿住 토벌, 자성군
-1435년(세종 17년/39세) 火藥 製造, 火藥庫 建立, 鑄字所 景福宮으로 移轉
-1436년(세종 18년/40세) 大形活字 鑄造 위해 丙辰字 제조
-1439년(세종 21년/43세) 慶尙道 星州와 全羅道 全州에 史庫 建立
-1441년(세종 23년/45세) 測雨器 製作·設置, 河川水 測定 水標 설치.
-1442년(세종 24년/46세) 高麗史 撰述(뒤에 다시 校訂)
-1443년(세종 25년/47세) 訓民正音 創製
-1445년(세종 27년/49세) 曆法 [七政算] 內·外篇 刊行. 龍飛御天歌, 醫方類聚 編纂
-1446년(世宗 28년/50세) 訓民正音 頒布, <訓民正音 解例本> 刊行
-1447년(세종 29년/51세) <釋譜詳節>, <月印千江之曲> <東國正韻> 完成
-1450년(世宗 32년/54세) 2月 17日(陽曆 04.08) 昇遐
(03) 世宗이야기 전시관으로 내려가는 길
(04) 世宗이야기 展示館
(05) 世宗이야기 展示館 모습
(06) 혼천의(渾天儀) - 세종어제 훈민정음 (*渾: 뒤섞일 혼)
(07) 세종어제 훈민정음
(08) 전제상정도(田制詳定圖) -田制詳定法에 따른 判決인가보다.
*田制詳定法: 世宗 26년에 실시한 田分六等, 年分九等法에 의한 稅額調停法.
世宗 25년(1443) 田制詳定所를 설치하고 실시한 稅額調停法으로 土地의 耕作狀態·
田品(土地의 等級)·종류에 따라 等級制로 나누고 이에 따라 稅額을 조정하였다. (*耕: 밭 갈 경)
(09) 편종(編鐘)
*편종(編鐘): 國樂器 중 金部에 속하는 有律打樂器.
高麗 睿宗 때부터 宋나라에서 輸入해 사용하다가 世宗 때부터 鑄鐘所에서 製作·使用했다.
두 개의 方臺 위에 木獅子 한 쌍을 앉히고 그 위에 鐘을 달 나무틀[架子]을 세워 양편에
龍頭를 彫刻하고 틀 꼭대기에는 다섯 마리의 木孔雀을 세워 장식하였다.
(*睿: 슬기 예 *架: 시렁 가 *雀: 참새 작)
이 틀에 16개의 鐘을 上·下 2단으로 8개씩 나누어 매달고 角槌로 종 아래 정면에 있는
鐩를 쳐서 소리를 내는데 그 때리는 强度에 따라 音色이 달라진다. 音域은 十二律 四淸聲에
이르며 音色은 웅장하고 날카로운 金屬聲을 낸다. (*槌: 망치 퇴 *鐩: 화경 수 *화경: 볼록 렌즈)
*十二律: 音樂의 六律과 六呂.
東洋 音階의 12音階로, 한 옥타브의 音程이 12의 律로 이루어진 音律. 1律은 半音에
가까우며, 유럽 音樂의 1平均律과 거의 같다.
*四淸聲
雅樂에서 중간 음역의 12律보다 한 音階 높은 淸黃鍾·淸大呂·淸太簇·淸夾鍾 4律의 總稱으로,
12律의 黃鐘·大呂·太簇·夾鐘까지의 4音을 1옥타브 높인 淸黃鐘·淸大呂·淸太簇·淸夾鐘의
4音을 총칭하는 말이다. 흔히 十二律四淸聲이라고 하여
雅樂(여기서는 文廟祭禮樂에 限定함)의 전형적인 音域으로 쓰고 있다. (*簇: 가는 대 족)
(10) [아 세종] -高銀의 詩
(11) 사미인곡(思美人曲) -松江 鄭澈 -글씨 2009년 仲秋節 / 惺谷 林炫圻
(*惺: 깨달을 성 *炫: 밝을 현 *圻: 경기 기)
*思美人曲
松江 鄭澈이 50세 때인 宣祖 18년(1585) 東人과 西人의 黨派싸움으로 官職에서 물러난 뒤,
故鄕 全南 昌平에 落鄕하여 4년 동안 지내면서 53세 때(1588년)에 쓴 歌辭로, 임금에 대한
간절한 忠情을, 한 女人이 生離別한 지아비를 사모하는 마음에 비유하면서 자신의 뜻을
寓意的으로 표현했다. 題目은 <詩經>이나 <楚辭>에서 따온 것이나, 내용은 순수한 우리말을
驅使한 創作으로 모두 63節(行) 126句로 이루어졌다. 全篇의 구성은 ① 緖詞,
② 怨詞(春怨·夏怨·秋怨·冬怨), ③ 結詞 부분으로 3分段 할 수 있다.
(*寓: 부칠 우 *驅: 몰 구 *緖: 실마리 서 *怨: 원망할 원)
*鄭澈(1536~1593) -출생지; 漢城府 順化坊(現 淸雲洞) -本貫; 延日 -字; 季涵
-號; 松江 -諡號; 文淸
<關東別曲>, <思美人曲> 등을 지은 朝鮮中期의 文臣 겸 詩人으로, 當代 歌辭文學의 大家로,
時調의 孤山 尹善道와 함께 韓國 詩歌史의 雙璧으로 일컫는다. 乙巳士禍로 流配되었던
父親의 特赦로 1551년 온 가족이 고향인 全南 昌平으로 移住, 沙村 金允悌의 門下로
星山 기슭의 松江가에서 10년간 修學할 때 高峰 奇大升 등 當代의 碩學들에게 배우고
栗谷 李珥·牛溪 成渾 등과 交遊했다. (*澈: 맑을 철 *悌: 공손할 제)
進士試, 別試文科에 壯元及第, 典籍, 咸鏡道 暗行御史를 지내고, 栗谷과 함께 賜暇讀書 후
掌樂院正, 承旨에 올랐으며 政派는 西人에 속했으며, 東人의 공격을 받아 辭職하고
昌平으로 落鄕했다. 1580년 江原道·全羅道·咸鏡道 觀察使를 지내면서 <關東別曲>,
時調 <訓民歌> 16首 등 詩作品을 많이 남겼다.
1585년 官職을 떠나 고향에서 作品生活하면서 <思美人曲>, <續美人曲> 등 많은 歌辭와
短歌(時調)를 지었다. 右議政으로 西人의 領袖가 되고 左議政에 올랐다가 光海君의 王世子
冊封建議로 罷職되어 晉州로 流配, 江界로 移配되었다. 1592년 壬辰倭亂 때는 宣祖를
義州까지 扈從했으며, 다음 해 謝恩使로 明나라에 다녀왔다.
(*賜: 줄 사 *掌: 손바닥 장 *袖: 소매 수 *扈: 따를 호)
東人의 공격으로 辭職하고 江華의 松亭村에 寓居하면서 晩年을 보냈다.
文集으로 <松江集>, <松江歌辭>, <松江別追錄遺詞>, 作品은 時調 70餘首가 전한다.
(12) 속미인곡(續美人曲) -松江 鄭澈 -글씨 2009년 仲秋節 / 惺谷 林炫圻
<續美人曲>은 <思美人曲> 이후에 쓴 松江 鄭澈의 代表歌辭로 임금에 대한 忠情을 對話體로
構成하였다. 纖細한 心情을 지닌 두 女人의 對話를 통하여 임금에 대한 松江 鄭澈의 忠節을
隱喩的으로 표현하여 讀者로 하여금 더욱 애틋하고 간절한 느낌을 갖게 한다.
(*纖: 가늘 섬 *隱: 숨을 은 *喩: 깨우칠 유)
(13) 松江 鄭澈이 謝恩使로 明나라에 갔을 때 읊은 皇城의 情景
現代文
萬里長城 밖에 山海關門 잠궈 두고, 늘어선 버드나무 계문(葪門)까지 뻗쳤으니 皇城에 거의
다 온 듯 고운 기운 가득 찼네. (*葪: 삽주 계)
解說
作家 松江 鄭澈이 宣祖 26년(1593.11) 明나라에 謝恩使로 갔을 때 皇城에 이르는 情景을
읊은 것이다. 길게 뻗은 長城, 굳게 닫은 關門, 늘어선 버드나무 등을 引用하여 雄壯하고
華麗한 明나라 首都에 到達했을 때의 情景과 心情이 어울려 그린 작품이다.
-松江 鄭澈의 13代孫 鄭喜澤 發掘, 14代孫 鄭泰翼 保存 中 –
(14) 松江 鄭澈 훈민가(訓民歌) -惺谷 林炫圻 作
儒敎 倫理를 主題로 百姓들을 敎化하고 啓蒙하기 위해 쓴 時調形式의 短歌 16首 중 1首
마을 사람들아 옳은 일 하자꾸나 /嗟嗟隣里人(차차인리인) 勉焉爲善事(면언위선사)
(*嗟: 탄식할 차 *焉: 어찌 언)
사람으로 태어나서 옳지 곧 못하면 / 卽受人形生(즉수인형생) 所行反不義(소행반불의)
마소를 고깔 씌워 밥 먹이나 다르랴. / 何異馬與牛(하이마여우) 冠巾而飮食(관건이음식)
(15) 어좌(御座)와 일월오봉도 병풍(日月五峯圖 屛風)
=어좌(御座), 玉座, 寶座
宮闕의 便殿과 正殿의 중앙에 있는 御座는 王이 앉아 百官의 賀禮를 받고, 朝會를 행하며
執務하는 좌석으로 玉座 또는 寶座라고 한다. 御座는 太祖 御眞의 御座 형태와 문양이 거의
동일하여 朝鮮 初期부터 있었으며, 어좌 뒤에는 日月五峯圖 屛風을 놓아 神聖과 威嚴을
갖추었다. (*屛: 병풍 병)
=일월오봉도 병풍(日月五峯圖 屛風)
日月五峯圖의 다른 명칭으로 日月圖, 崑崙圖 등이 있으며 주로 御座(龍床) 뒤에 설치했다.
裝飾性이 강한 日月五峯圖는 王權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百姓들의 太平聖代를 念願하는
意圖에서 제작된 것이다. 日月五峯圖에는 다섯 개의 산봉우리와 해, 달, 소나무, 물을 일정한
構圖로 배치했으며, 해와 달은 陰陽을, 다섯 봉우리는 五行을 상징한다. 하늘과 땅, 물이
다 나타나고 있어 그것은 곧 宇宙를 의미한다. 宇宙의 生成과 변화, 運行體系인 陰陽五行을
대변하는 상징물들을 주관하는 이 그림의 주인공인 國王은 곧 宇宙의 主宰者 아니면
주재자를 대신하는 존재와 같은 의미를 부여 받을 수 있었다.
(*崑: 산 이름 곤 *崙: 산 이름 륜 *飾: 꾸밀 식 *宰: 재상 재)
五峯圖는 中國이나 日本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朝鮮에서만 확인되어 朝鮮 固有의 文化와
思想을 반영한 그림이라고 여긴다. 이 그림의 象徵性은 儒敎의 古典인 <詩經> [小雅]편에
실린 王의 德을 稱頌하고 왕에 대한 하늘과 祖上의 祝福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은 詩「
天保」에 거론된 ‘天保九如’의 내용을 반영한 것이라고도 한다.
科學과 藝術
國樂器
世宗大王의 音樂的 業績 –樂器 改造 및 再整備
世宗은 樂器都監 등의 樂器製作 專門機關을 설치하고 朴堧에게 많은 雅樂器를 제작하게 했다.
世宗 10년에는 여러 樂器의 律調의 標準音이 되는 編磬을 비롯하여 樂器들을 대대적으로
再整備했다. 이것은 樂器에 관련된 專門知識 및 技術의 發展과 後代에 雅樂을 포함한
國家儀禮音樂을 自律的으로 傳承할 수 있는 基盤을 형성해 주었다는데 意義가 있다.
(*堧: 빈 터 연 *雅: 맑을 아 *磬: 경쇠 경)
(16) 거문고 [玄琴]
韓國固有의 絃樂器인 거문고는 國樂器 중에서 絲部에 속하는 絃樂器의 하나로
‘玄琴’이라고도 한다. 울림통 위에 명주실을 꼬아서 만든 6줄을 매고 오른손으로 ‘술대’를
사용해 소리를 내고, 왼손은 오른손이 내준 音을 따라다니며 裝飾音을 넣어 演奏한다.
管絃樂에 반드시 편성되며 獨奏 樂器로도 널리 사용한다. 소리가 깊고 莊重하여 예로부터
‘百樂之丈’, 즉 모든 악기의 으뜸이라고 일컬었다. (*琴: 거문고 금 *絃: 줄 현 *絲: 실 사)
(17) 편종(編鐘) -國樂器 중 쇠붙이로 된[金部] 有律打樂器.
본래 中國 古代의 대표적 樂器 高麗 睿宗 11년(1116) 宋나라에서 들여와 宮中祭禮樂에
사용해 오다가 世宗 11년(1429) 鑄鐘所를 설치하여 國內에서 만들기 시작했다.
두 개의 方臺 위에 木獅子 한 쌍을 앉히고 그 위에 종을 달 나무틀[架子]을 세워 양편에
龍頭를 조각하고 틀 꼭대기에는 다섯 마리의 木孔雀을 세워 장식하였다.
(*鑄: 불릴 주 *架: 시렁 가)
이 틀에 16개의 鐘을 上·下 2단으로 8개씩 나누어 매달고 角槌로 종 아래 정면에 있는
鐩를 쳐서 소리를 내는데 그 때리는 强度에 따라 音色이 달라진다. 音域은 十二律四淸聲에
이르며 音色은 웅장하고 날카로운 金屬聲을 낸다. (*槌: 망치 퇴 *鐩: 화경 수)
(18) 편경(編磬) -國樂器 중 돌로 된[石部] 有律打樂器.
중국 고대의 대표적인 樂器로 高麗 睿宗 11년(1116) 宋나라의 大晟雅樂과 함께 들여왔다.
악기를 만드는 磬石이 稀貴하여 중국에서 수입하거나 흙으로 구운 陶磬으로 代用하기도
하던 중 世宗 7년(1425) 京畿 南陽에서 質 좋은 磬石이 발견되어 蘭溪 朴堧·古佛 孟思誠 등이
質 좋은 편경을 만들기 시작했다.
두 개의 方臺 위에 白鵝 한 쌍을 앉히고 그 위에 나무틀[架子]을 세워 양편에 鳳頭를
彫刻했으며 틀 위에는 다섯 마리의 木孔雀을 세워 장식했다. 이 틀에 16개의 ‘ㄱ字’ 모양의
石磬을 8개씩 두 줄로 나누어 걸고 角槌로 쳐서 소리를 내는데 반드시 긴 쪽인 鼓의 끝을
쳐야 한다. 音域은 十二律四淸聲 즉 黃鐘(C音)에서 淸夾鐘(d#音)에 이르며 音色이 매우
淸雅하다. 磬의 두께가 두꺼우면 소리가 높고, 얇으면 소리가 낮다. 編磬은 濕氣와 乾燥,
추위와 더위에도 音色과 音程이 변하지 않아 모든 國樂器 調律의 標準이 되었다.
(*磬: 경쇠 경 *陶: 질그릇 도 *堧: 빈 터 연 *鵝: 거위 아 *槌: 망치 퇴 *夾: 낄 협)
(19) 어(敔) -國樂器 중 打樂器로 엎드린 범의 모양으로, 등에 톱니가 있는 樂器.
나무를 엎드린 호랑이의 모습으로 깎고, 등에는 등줄기를 따라 꼬리 톱니 27개를 길게
박아 놓았다. 둥근 대나무 끝을 아홉 갈래로 쪼갠 채로 호랑이의 머리를 세 번 치고
나무 톱을 꼬리 쪽으로 한 번 훑어 내린다. 이렇게 세 번을 거듭하여 음악의 끝을 장식하며,
어를 치고 나면 박을 세 번 울려 音樂을 완전히 끝낸다. (*敔: 막을 어)
儀式音樂을 演奏할 때 柷은 음악의 시작을 알리므로 동쪽에 놓고, 敔는 음악의 끝을
알리므로 서쪽에 놓는다. 또 축은 동쪽을 象徵해 푸른 색이나 어는 서쪽을 상징하기 때문에
대개 흰 칠을 하고 검정으로 긴 얼룩무늬를 그린다. 우리나라의 악기는 앉아서 연주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敔와 柷은 方臺 위에 올려놓으므로 서서 연주한다. (*柷: 악기 이름 축)
*축(柷): 雅樂器에 속하는 打樂器로 風流를 시작할 때 친다.
(20) 적도의(赤道儀)
朝鮮後期 圭齋 南秉哲(1817~1863)이 世宗時代부터 變化·發展해 온 渾天儀와 簡儀를
연구하여 가장 손쉽고 편리하게 관측할 수 있게 考案한 天體觀測器具이다.
天體望遠鏡을 장치하는 方式 중의 하나로 望遠鏡의 架臺가 赤道座標에 의한 赤經의 經度와
緯度의 두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軸의 주위를 回轉할 수 있도록 만들어 赤道儀라고
한다. (*儀: 거동 의)
(21)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 신기전(神機箭)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世宗 때 엮은 道德書 -木版本 3券 1冊
*世宗 13년(1431) 集賢殿 副提學 偰循 등이 王命에 따라 朝鮮과 中國書籍에서
君臣·父子·夫婦 등 三綱의 모범이 될 만한 忠臣·孝子·烈女를 각각 35명씩 105명을 뽑아
그 行跡을 그림과 글로 稱頌한 책이다. (*偰: 맑을 설 *循: 돌 순 *跡: 발자취 적)
=신기전(神機箭) -조선시대에 사용된 로켓추진 화살 (*多聯裝 로켓)
*世宗 30년(1448)에 제작된 兵器로 高麗末期에 崔茂宣이 火藥局에서 제조한 로켓형 火器인
走火를 개량한 것이다. 大神機箭·散火神機箭·中神機箭·小神機箭 등의 여러 종류가 있으며,
<兵器圖說> [神機箭]에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茂: 무성할 무 *箭: 화살 전)
大神機箭은 길이 5583㎜, 안정막대 길이 5310.8㎜이며, 지금의 로켓엔진에 해당하는
藥筒은 길이 695㎜, 직경 102㎜, 두께 16.2㎜, 內徑 63.1㎜, 噴射구멍 직경 37.5㎜이다.
대나무로 만든 화살대의 윗부분에 韓紙로 만든 약통을 부착하고, 爆彈에 해당되는 放火㷁을
藥筒 위에 올려놓고 導火線을 약통과 연결하여 神機箭이 목표지점에 가까워지면 자동으로
폭발하도록 설계하였다. (*噴: 뿜을 분 *㷁: 불통 통 *筒: 대통 통)
世宗 때 90대를 제조하여 義州城에서 사용한 기록이 있다.
(22) 치평요람(治平要覽) (왼쪽) – 혼상(渾象)
=치평요람(治平要覽) -史蹟 중에서 龜鑑이 될 만한 사실만을 뽑아서 엮은 책.
*世宗 때 王命으로 學易齋 鄭麟趾 등 集賢殿 學士들이 편찬했으며, 中宗 11년(1516)
甲辰字本으로 출판한 150권 150책이다. 周~元나라의 中國歷史와, 箕子朝鮮~高麗의
韓國史 중에서 국가의 興亡, 君臣의 邪正, 政敎·風俗·外患·倫道 등 각 방면에 걸쳐
勸善懲惡으로 삼을만한 사실들을 발췌하여 後世人들의 龜鑑으로 삼게 하였다. (*龜: 거북 귀
*鑑: 거울 감 *易: 바꿀 역 *齋집 재 *箕: 키 기 *邪: 간사할 사 *懲: 징계할 징}
=혼상(渾象) -하늘의 별들을 보이는 위치 그대로 球面에 표시한 天文器機
하루에 한번씩 回轉시켜 보면 별이 뜨고 지는 것을 알 수 있으며 季節의 변화와 時間의
흐름도 측정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BC 70~BC 50년에 제작하기 시작하여 이후 王朝마다
개량했다. 한국에서는 世宗 19년(1437)에 제작한 것이 기록으로는 최초로, 지름 71.6cm인
球에 漆布(옻칠 한 헝겊)를 입혀 만들었다. 이후 世祖 때 만든 것은 壬辰倭亂 때 燒失되어
세 번째는 宣祖 34년(1601)에 白沙 李恒福의 감독으로 제작했으나 남아 있지 않다.
(*渾: 뒤섞일 혼 *漆: 옻 칠)
현재 한국에는 安東 陶山書院의 소장품으로서 형태만 겨우 남아 있고, 다른 하나는
지름 68.6cm로 慶州 民俗工藝村의 新羅歷史科學館에 소장되어 있다.
(23) 고려사(高麗史) (왼쪽) – 편종(編鍾)
=고려사(高麗史)
朝鮮初期 世宗의 敎旨로 節齋 金宗瑞(1390~1453)·學易齋 鄭麟趾(1396~ 1478) 등이 만든
高麗時代의 역사책으로, 世家 46권, 志 39권, 年表 2권, 列傳 50권, 目錄 2권 등 總 139권으로
구성되었다. <高麗史는> 東洋의 전통적인 王朝史 편찬방식과 같이 기본적으로 以前부터
있던 史料를 選定·採錄하여 再構成하여 歷史性이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으며, 事實을 있는
그대로 쓰려고 애썼기 때문에 客觀性과 主體性을 지켰으며, 編纂者인 儒學者의
事大的 名分論이 반영되면서 調和를 이루고 있다. (*採: 캘 채 *編: 엮을 편 *纂: 모을 찬)
=편종(編鍾) *(17)번 사진 내용 참조
世宗의 軍事政策
(24) 신기전(神機箭), 화차(火車)
=神機箭은 世宗 30년(1448)에 만든 화살로, 火藥筒이 달려있어 煙氣를 내면서 멀리
발사되는 것이 특징이다. 成宗 5년(1774)에 刊行된 <國朝五禮序例>의 [兵器圖說]에
따르면 神機箭의 종류는 크기에 따라 大神機箭 ·中神機箭 ·小神機箭, 大神機箭과 비슷한
규모의 散火神機箭 등 총 4가지이다.
=火車는 移動하면서 한꺼번에 여러 개의 銃筒이나 神機箭을 쏠 수 있게 만든 朝鮮時代의
武器로 조선 太宗(李芳遠) 때인 1409년에 처음 만들었다. 文宗 1년(1451)에는 한번에
100발씩 쏠 수 있도록 改良되고, 角度를 조절하여 射程距離도 자유롭게 調整할 수 있었다.
[兵器圖說]에 실린 神機箭의 設計圖를 보면 0.3mm에 해당하는 리(釐) 單位를 사용하여
각 부분의 크기를 세밀하게 기록했는데, 이는 世界最高水準의 로켓武器를 제작한
朝鮮時代의 뛰어난 技術力을 반영한 것이다. (*釐: 다스릴 리)
(25) 어진 임금이 발탁한 忠臣, 장영실(蔣英實) - 박연(朴堧)
=장영실(蔣英實, ?~?) -科學者 -업적; 물시계, 簡儀臺, 渾天儀, 仰釜日晷, 自擊漏,
欽敬閣 玉漏 製作.
*蔣英實의 祖上은 元나라 蘇州·杭州 출신으로 高麗에 歸化하여 牙山君에 冊封된蔣壻의
9代孫으로, 그의 집안은 高麗 때부터 代代로 科學技術分野 高位官職을 역임했으며, 그의
父親은 고려 말 전서라는 직책을 지낸 蔣成暉, 母親은 妓女로, 蔣英實의 신분은 東萊縣의
官奴였다. 그는 科學的 才能으로 太宗 때 발탁되어 宮中技術者 업무에 從事하며, 製鍊·築城·
農器具·武器 등의 修理에 뛰어나 世宗 3년(1421) 御命으로 天文學者 尹士雄, 崔天衢와 함께
中國에 遊學하여 各種 天文器具를 익히고 돌아왔다. 世宗 5년(1423) 王의 特命으로
免賤되어 正5品 尙衣院 別坐가 되면서 官奴의 身分을 벗고 宮廷技術者로 役割 하였다.
1432년 簡儀臺 제작에 착수하고 각종 天文儀 제작을 감독, 世宗 15년(1433) 正四品 護軍에
올랐으며, 다음해에 渾天儀를 완성하고 1435년 銅活字인 庚子字의 결함을 보완한 金屬活字
甲寅字의 鑄造를 지휘·감독하였으며, 한국 최초의 물시계인 報漏閣의 自擊漏를 만들었다.
世宗 19년(1437)부터 6년 동안 天體觀測用 大·小簡儀, 휴대용 해시계 懸珠日晷와 天平日晷,
仰釜日晷, 晝夜兼用의 日星定時儀, 太陽의 高度와 出沒을 측정하는 圭表, 自擊漏의 일종인
欽敬閣의 玉漏를 제작 완성하였다. (*壻: 사위 서 *衢: 네거리 구 *賤: 천할 천 *簡: 간략할 간
*渾: 뒤섞일 혼 *漏: 샐 루 *晷: 그림자 구 *欽: 공경할 흠)
=박연(朴堧, 1378~1458) -文臣, 音律家 -출생지; 忠北 永同 -本貫; 密陽 - 字; 坦夫
-號; 蘭溪 -諡號; 文獻 -初名; 然
太宗 5년(1405) 文科에 及第하여 集賢殿 校理를 거쳐 持平·文學을 역임했으며, 世宗 卽位 後
樂學別坐에 임명되어 樂事를 맡아보았다. 당시 불완전한 樂器 調律의 정리와 樂譜編纂의
필요성을 上疏하여 허락을 얻고, 世宗 9년(1427) 編磬 12장을 만들고 自作한 12律管으로
音律을 정확하게 했다. 朝廷朝會 때 사용하던 鄕樂을 폐하고 雅樂으로 대체하는 등
宮中音樂을 改革하였다. 1433년 流言蜚語 流布 혐의로 罷職되었다가 용서받고 雅樂에 종사,
工曹參議, 中樞府同知事를 지냈다. 1445년 聖節使로 明나라에 다녀오고, 仁壽府尹·中樞院副使 歷任 후 藝文館 大提學에 올랐다. 端宗 1년(1453) 癸酉靖難 때 아들 季愚가 處刑되고 그는
罷職에 그쳐 落鄕하였다. 특히 저[大笒]를 잘 불었으며 高句麗의 王山岳, 新羅의 于勒과
함께 韓國 三大樂聖으로 推仰 받고 있다. (*堧: 빈 터 연 *疏: 소통할 소 *磬: 경쇠 경
*蜚: 날 비 *雅: 맑을 아 *樞: 지도리 추 *愚: 어리석을 우 *笒: 첨대 금 *勒: 굴레 륵)
(26) 어진 임금이 발탁한 忠臣, 김종서(金宗瑞)
=김종서(金宗瑞, 1383~1453) -本貫; 順天 -字; 國卿 -號; 節齋 -諡號; 忠翼
-朝鮮前期의 文臣 -野人들의 침입을 격퇴하고 六鎭 設置, 國境擴張
*高麗 禑王 9년(1383) 全南 順天 都摠制인 武官 金錘의 아들로 태어났다.
朝鮮 太宗 5년(1405) 文科에 及第, 世宗 1년(1419) 司諫院右正言으로 登用, 이어서 持平·
執義·右副代言을 지냈다. 1433년 咸吉道都觀察使가 되어 豆滿江과 鴨綠江 일대에 출몰하는
女眞族의 침입을 격퇴하고 6鎭을 설치하여 豆滿江을 경계로 國境線을 확장하였다.
1435년 咸吉道兵馬都節制使를 兼職하면서 확장된 영토에 朝鮮人을 定着시키고 7년간
北方을 警戒·守備했으며, 女眞族에 대한 對備로 備邊策을 建議했다. 1440년 刑曹判書로
昇進, 禮曹判書·右參贊을 歷任하고, <高麗史> 改撰에 春秋館知事로 총책임을 맡아
1451년에 간행했다. 그는 平安道都節制使, 左贊成으로 平安道都體察使를 兼職하고 다음해
右議政, 1452년 <世宗實錄>의 摠裁官이 되었으며, <高麗史節要>를 編纂·監修하여
刊行하였다. (*錘: 저울추 추 *諫: 간할 간 *撰: 지을 찬 *摠: 다 총 *裁: 마를 재 *纂: 모을 찬)
‘大虎’라는 別號까지 붙은 智慧와 勇猛을 겸비한 名臣이었으나, 端宗 1년(1453) 癸酉靖難의
첫 犧牲者가 되었다가 英祖 22년(1746) 復官되었으며, 時調 2首가 전고,
著書에 <制勝方略>이 있다.
(27) 훈민정음 언해본(訓民正音 諺解本) -世祖 5년(1459) 刊行 推定 <月印釋譜> 券 一冊
첫머리에 실었다.
*훈민정음 언해(訓民正音諺解)는 漢文으로 된 <訓民正音>에서 御製 序文과 例義 부분만을
한글로 풀이하여 刊行한 것으로, 中世 韓國語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중요한 文獻資料이다.
漢文으로 된 <訓民正音>의 本文을 먼저 쓰고, 그 아래 한글로 夾註를 단 뒤 한글로 새로
漢文을 풀이하는 방식으로 썼다. 따라서 훈민정음에 쓴 漢文을 읽은 뒤 그 한문의 각
글자 풀이를 읽고, 한글로 번역된 부분을 읽게 되는 것이다. 곧 한문을 모르더라도
훈민정음을 이해할 수 있게 했다.
中世 한국어
나랏〮말〯ᄊᆞ미〮 中國듕귁〮에〮달아〮文字문ᄍᆞᆼ〮와〮로〮 서르 ᄉᆞᄆᆞᆺ디〮 아니〮ᄒᆞᆯᄊᆡ〮이〮런 젼ᄎᆞ〮로〮 어린〮 百姓ᄇᆡᆨ셔ᇰ〮이〮 니르고〮져〮 호ᇙ〮 배〮 이셔〮도〮ᄆᆞᄎᆞᆷ〮내〯 제 ᄠᅳ〮들〮 시러〮 펴디〮 몯 ᄒᆞᇙ 노〮미〮 하니〮라〮내〮 이〮ᄅᆞᆯ〮 為윙〮ᄒᆞ〮야〮 어〯엿비〮 너겨〮새〮로〮 스〮믈〮여듧〮 字ᄍᆞᆼ〮ᄅᆞᆯ〮 ᄆᆡᇰᄀᆞ〮노니〮사〯람마〯다〮 ᄒᆡ〯ᅇᅧ〮 수〯ᄫᅵ〮 니겨〮 날〮로〮 ᄡᅮ〮메〮便安뼌ᅌᅡᆫ킈〮 ᄒᆞ고〮져〮 ᄒᆞᇙ ᄯᆞᄅᆞ미〮니라〮。
현대 한국어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한자)로 서로 통하지 아니하여서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위하여
가엾이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하여금 쉬이 익혀 날마다 씀에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28) 동국정운(東國正韻)
*東國正韻 -국보 제142호 -세종 30년(1448) 刊行 -금속활자본 1질 6책
-가로 19.8㎝, 세로 31.9㎝ -원본 소장; 건국대학교 박물관
世宗 때 希賢堂 申叔舟, 太虛亭 崔恒, 醉琴軒 朴彭年 등이 王命으로 편찬하여
世宗 30년(1448)에 刊行한 우리나라 최초의 標準音에 관한 책으로, 6권 6책, 活字本이다.
明나라 때 中國의 韻에 관한 책 <洪武正韻>에 對備되는 것으로, ‘東國正韻’이란 우리나라의
바른 音이라는 뜻이다. 당시 혼란스럽던 우리나라의 漢字音을 바로잡아 통일된 標準音을
정하려는 목적으로 編纂·刊行하였다. (*韻: 운 운 *恒: 항상 한 *琴: 거문고 금 *軒: 집 헌
*彭: 성씨 팽 *纂: 모을 찬)
形態는 本文의 큰 글자는 나무活字, 작은 글자는 銅活字인 甲寅字, 序文은 甲寅字 大字로
기록하였다. 序文 7장, 目錄 4장, 권1 46장, 권2 47장, 권3 46장, 권4 40장, 권5 43장,
권6 44장으로 구성되었다.
국보 제71호 <東國正韻 卷一, 六>은 澗松美術館에서 소장하고 있다. (*澗: 산골 물 간)
(29)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月印千江之曲 -국보 제320호 -世宗이 1449년(세종 31)에 지은 불교 讚歌.
-금속활자 1책 -한국학중앙연구원 所藏
世宗 29년(1447) 王命에 따라 首陽大君이 母后 昭憲王后의 冥福을 빌기 위하여
<釋譜詳節>을 지어 올리자 世宗이 釋迦의 功德을 찬송하여 지은 讚佛歌이다.
<月印千江之曲>이란, 부처가 태어나서 敎化한 자취를 稱頌한 노래라는 뜻으로,
上·中·下 3권에 500餘 首의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 이는 <龍飛御天歌>와 더불어
訓民正音으로 表記된 韓國 最古의 歌詞로, 訓民正音 創製 이후 가장 이른 時期에 짓고
活字로 刊行하여 한글 創製 後 初期의 國語學 硏究와 出版·印刷史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1963년 보물 제398호로 지정되었다가 2017년 1월 國寶 제320호로
昇格되었다. (*冥: 어두울 명 *釋: 풀 석 *譜: 족보 보 *釋: 풀 석 *迦: 부처이름 가
*讚: 기릴 찬 *稱: 일컬을 칭 *頌: 기릴 송 *御: 거느릴 어)
(30) 석보상절(釋譜詳節)
*釋譜詳節 -보물 제523호 -金屬活字本 -국립중앙도서관 所藏
釋譜詳節은 世宗 28년(1446) 妃 昭憲王后의 冥福을 빌기 위하여 世宗의 命으로
首陽大君(후의 世祖)이 乖崖 金守溫 등의 도움을 받아 釋迦의 가족과 그의 一代記를
기록하고 이를 한글로 번역한 책이다. <釋迦譜>, <法華經>, <地藏經>, <阿彌陀經>,
<藥師經> 등에서 뽑아 모은 글을 한글로 옮긴 것으로, 1447년(世宗 29년(1447)에
완성하여 世宗 31년(1449)에 刊行하였다. 모두 24권ㅇ로 推定되는 活字本으로,
朝鮮 前期의 言語硏究에 귀중한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다른 佛經 諺解書와는 달리
文章이 매우 流麗하여 당시 國文學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고 있다.
(*乖: 어그러질 괴 *崖: 언덕 애 *陀: 비탈질 타 *諺: 언문 언)
-釋譜詳節 卷六, 九, 十三, 十九 (보물 제523호) -국립중앙도서관 所藏;
-釋譜詳節 卷二十三, 二十四 (보물 제523-2호 -동국대학교 도서관 所藏;
-釋譜詳節 卷十一 (보물 제523-3호) -호암미술관 所藏
(31)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
*訓民正音 -국보 제70호 -세종 28년(1446) -소장; 간송미술관/서울 城北區
새로 창제된 訓民正音을 王命으로 鄭麟趾 등 集賢殿 學士들이 중심이 되어
世宗 28년(1446)에 만든 漢文解說書이다. 책이름을 글자이름인 훈민정음과 똑같이
‘訓民正音’이라고도 하고, 解例가 붙어 있어서 ‘訓民正音 解例本’ 또는
‘訓民正音 原本’이라고도 한다. <世宗實錄>에 訓民正音은 世宗 25년(1443)에 왕이 직접
만들었으며, 世宗 28년(1446)에 頒布했다. (*趾: 발 지 *頒: 나눌 반)
1940년 <訓民正音 解例本>이 발견될 때까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한글의 形體에 대하여
古代글자 模倣說, 古篆 起源說, 梵字 起源說, 몽골문자 起源說, 심지어 창살모양의
기원설까지 나올 정도로 구구한 臆說이 있었으나, 이 책의 출현으로 모두 一掃되고
發音器官 象形說이 制字原理였음이 밝혀졌다.
(*倣: 본뜰 방 *篆: 전자 전 *梵: 불경 범 *臆: 가슴 억)
<訓民正音>은 例義·解例·鄭麟趾 序文 등 3부분 33장으로 구성되었는데, 例義는 世宗이
직접 지었으며, 解例는 鄭麟趾·朴彭年·申叔舟·成三問·崔恒·姜希顔·李塏·李善老 등
集賢殿 學士가 집필하였다. 鄭麟趾가 대표로 쓴 序文에는 發刊日을 1446년 9월 上旬으로
明示하고 있어, 후일 한글날 제정의 바탕이 되었다. (*彭: 성씨 팽 *恒: 항상 항 *塏: 높은 땅 개)
후에 <訓民正音 解例本>은 1962년 大韓民國 國寶 제70호로 지정되었으며, 1997년 10월
대한민국의 UNESCO 世界記錄遺産으로 登載되었다.
*<訓民正音 解例本> 購入에 관한 逸話
國文學者 金台俊의 제자인 이용준으로부터 자기네 家寶로 ‘訓民正音 解例本’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자 澗松 全鎣弼이 購入意思를 밝혔다. (*澗: 산골 물 간 *鎣: 줄 형)
1942년 慶北 安東 李漢杰家에 소장되었던 ‘訓民正音 解例本’은 그의 先祖 李蕆이 女眞을
征伐한 功勞로 世宗大王이 下賜한 것이었다. 충직한 거간 이순황을 통해 解例本의 眞僞를
확인하고, 販賣者가 최초에 千圓을 요구하였으나 文化財의 가치를 정확하게 치르는 것으로
유명했던 澗松 全鎣弼은 金台俊에게 紹介費로 千圓을, <訓民正音 解例本>의 값으로 萬圓을
지불했는데, 당시 千圓이면 좋은 기와집 한 채를 살 수 있었다고 한다.
(*杰: 뛰어날 걸 *蕆: 신칙할 천)
이를 入手한 全鎣弼은 6·25전쟁 때 <訓民正音 解例本>만 오동상자에 넣고 釜山으로
避亂했으며, 잘 때에도 베개 삼아 베고 잤다는 逸話가 전한다.
(32)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보물 제1463
朝鮮王朝의 穆祖(太祖 李成桂의 高祖父 李安社)부터 太宗까지 朝鮮의 建國過程과 각종
事績, 그에 대응되는 中國 歷代 帝王의 事績을 기록한 敍事詩이다. 朝鮮이 天命에 의해서
세워졌다는 建國의 正當性을 알리기 위한 목적에서 편찬되었다. <용비어천가>는 125장의
한글 歌辭 및 그에 해당하는 漢詩를 本文으로 하고, 각 장마다 註解를 붙였다.
世宗 27년(1445) 權踶, 鄭麟趾, 安止 등이 本文을 완성하고, 여기에 崔恒, 朴彭年, 姜希顔 등이
각 장마다 註解와 音訓을 붙여서 世宗 29년(1447) 10券 5冊으로 간행했다.
<용비어천가>는 訓民正音으로 기록된 최초의 書籍으로 世宗 때의 國語와 書誌學 硏究의
중요한 자료이다. 125장의 한글歌辭와 漢詩는 그 자체가 하나의 文學作品으로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訓民正音 創製 當時의 우리말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며, 註解에
나오는 固有名詞와 官職名 등의 古語 表記는 國語學 硏究에 중요한 자료이다.
(*穆: 화목할 목 *踶: 밟을 제 *顔: 낯 안)
<龍飛御天歌>는 보물 제1463호로 지정되었다.
=龍飛御天歌 卷一~二 -보물 제1463-3호(2009) -奎章閣韓國學硏究院
=龍飛御天歌 卷一~二, 七~八 -보물 제1463-4호(2009) –高麗大學校
=龍飛御天歌 卷三, 四 -보물 제1463-2호(2009) -서울歷史博物館
=龍飛御天歌 卷八, 九, 十 -보물 제1463-1호(2006) –大邱 啓明大學校
(33) 世宗大王의 한글 創製 作業
世宗大王은 中國과의 葛藤 및 儒敎的 世界觀을 가진 士大夫들의 反對를 무릅쓰고 밤낮없이
硏究에 邁進하며 한글 創製 作業을 계속한다.
(34) 崔萬理 등의 反對上疏
世宗 25년(1443) 訓民正音이 완성되었으나 이듬해 2월 崔萬理 등 7인이 中國과의 關係와
性理學에 맞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反對上疏를 올린다.
(35) 訓民正音 頒布 -世宗 28년(1446) 9月 上澣(上旬)
(36) 退溪(李滉) 先生 語錄 -석연 이승연 글씨
*석연(昔然) 이승연(李昇姸): 圓光大學校 敎授(女), 석연서예연구원장.
(37) 世宗 年代記 (3-1)
(38) 世宗 年代記 (3-2)
(39) 世宗 年代記 (3-3)
-世宗이야기·忠武公 이야기 (3-3) 忠武公 이야기 展示館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