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ew Life, 행복한 귀향, 서울나들이 첫 번째/참 아름다운 변신
“호호호, 까르르” 5분 간격으로 웃음을 터뜨리며 오밀조밀 수다를 풀어놓는 품이 영락없이 아줌마다. MBC 드라마 ‘불새’로 덩달아 ‘뜬’ 동양화가 양승예씨. 전업주부에서 동양화가로 변신한 데 이어, 드라마 속 ‘불새’ 그림을 그린 인기 화가로 떠오른 그를 만났다.//
18년 전으로 거슬러, 월간 여성잡지 ‘WOMAN DONGA’ 2004년 6월호 ‘궁금한 이 사람’ 코너에 실린 ‘화제의 드라마 ‘불새’ 그림 그린 화가 양승예’라는 제목의 기사 시작이 그랬다.
이한경 기자가 기획하고, 조희숙 글에 조영철 기자의 사진으로, 2004. 06. 10. 13:58:00에 입력된 기사였다.
다음은 그 기사 본문 전문이다.
인기 드라마 ‘불새’의 애청자들인 불새리안(드라마 ‘불새’ 안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신조어) 사이에서 주인공 이서진, 이은주, 에릭만큼 사랑을 받는 ‘불새’ 그림. 덕분에 실제 ‘불새’ 그림을 그린 화가 양승예씨(43)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벌써 홈페이지 용량을 3번이나 늘렸어요. 하루 수백명씩 다녀가니까 자꾸 홈페이지가 다운되더라고요. 요즘은 중고등 학생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불새 그림이 너무 멋있다, 그림엽서를 어디서 살 수 있느냐는 질문이 가장 많아요. 제 그림이 인기가 있다니 기분이 좋아요.”
뒤늦게 ‘팬 관리’를 하느라 분주하다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양승예씨. 갑자기 늘어난 방문자들로 인해 홈페이지(gosun.netian.com)가 다운될 정도라며 극중에 등장하는 청춘스타들의 인기가 부럽지 않다고 한다.
MBC 드라마 ‘불새’는 그에게 유명세를 안겨준 드라마. 극중 이서진과 이은주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불새’ 그림이 등장하면서 양씨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다. 불새는 이집트 신화 속에 등장하는 상상의 새. 서로 엉켜 있는 두 마리의 불새를 그린 그의 그림은 사랑을 갈망하는 극중 이서진과 이은주의 캐릭터와 잘 맞아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저도 드라마에 제 그림이 그렇게 자주 나올 줄은 몰랐어요. 초반에 두 주인공(이서진과 이은주)이 그림을 보고 각자가 추구하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만 나올 줄 알았거든요. 며칠 전 드라마 작가한테 전화가 왔는데 앞으로도 매회 서너 번씩은 더 나올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불새 그림은 100호 크기와 엽서 크기의 그림 두 종류. 아크릴화로 그려진 100호짜리 그림은 두 마리의 불새가 서로 비비고 있는 것을 형상화한 것. 한데 엉켜 있는 두 마리의 불새 그림은 서로를 태울 듯한 불꽃도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사랑하는 것처럼 두 마리의 불새가 엉켜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거예요. 그런데 두 마리의 불새를 서로 엉키게 만드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더라고요.”
양씨가 그린 불새 그림은 동양화가의 그림이라기보다 서양화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색채감과 힘 있는 터치가 특징이다. 이는 그가 강렬한 이미지의 불새를 형상화하기 위해 묵 대신 아크릴 물감을 선택했기 때문.
그가 ‘불새’ 제작진으로부터 그림 의뢰를 받은 것은 올해 초. 평소 양씨의 팬이었던 드라마 작가 이유진씨의 추천으로 불과 방송을 보름 앞두고 불새 그림을 의뢰받았다.
“의뢰를 받긴 했는데 구상도 제대로 못할 만큼 시간적으로 촉박했어요. 그런데다 1차로 작업을 마쳤는데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요. 빨간 물감으로 칠하고 위에 노란 금가루를 뿌렸더니 촌스러웠어요. 결국 폐기하고 하루 만에 그린 작품이 드라마에 나오는 그 그림이에요.”
초등학교 4학년 때 국제 미술대회에 입상해 일찌감치 바다 건너 미국까지 다녀왔다는 양씨. 어릴 때부터 미술에 재능이 남달랐던 그는 동양화가로서는 드물게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화가다. 지난 5년간 정동문화축제의 단골 초대 작가가 된 그의 대표작은 섬세하게 그려진 300호 크기의 ‘산동마을의 봄’.
드라마 속 불새 그림 덕분에 중고생 팬들이 생겼다는 양승예씨는 대중에게 친숙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한다.
그는 전업주부 출신의 동양화가. 결혼 후 육아에만 매달려온 그는 틈틈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미술지도를 해오다 지난 98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입선하면서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수요일과 금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화실에 나가요. 아침에 남편 출근시키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나면 저녁시간까지는 제 시간이죠. 화실에 있을 때는 집안일은 완전히 잊어버려요. 아이들한테 신경을 많이 못 써줘서 늘 미안하지만 이제는 아이들이 먼저 엄마 인생도 중요하다며 이해해줘요.”
대신 집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는 완벽한 주부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양승예씨. 요리부터 집안 인테리어, 똑 부러지는 살림솜씨까지 가족은 물론 주변에서도 인정할 정도라고 한다.
“남편이 술손님을 집으로 자주 모시고 와요. 그때는 집안에 있는 예쁜 그릇을 총동원하고 최대한 요리솜씨를 발휘하죠. 집을 비울 때는 아이들에게 항상 미안하다는 짧은 편지를 써놓고요.”
그는 LG건설 중역으로 재직 중인 남편과 올해로 결혼생활 20년째. 남편 임충희씨는 고시공부를 포기하면서까지 그에게 구애를 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큰 고비 없이 단란한 가정을 이끌어온 비결을 묻자 그는 각자의 생활에 대해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것이 금실 좋은 부부로 살아가는 노하우라고 털어놓는다.
늦게 화가의 길로 들어선 탓일까. 창작활동에 목마르다는 양씨는 6월에 있을 개인전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국화라고 하면 대체로 섬세한 산수화를 떠올리잖아요. 저는 강렬한 터치나 색채감이 강한 그림들이 좋아요. 제 그림을 처음 본 사람들이 남자로 오해할 정도로 터치가 강하죠요. 제 그림의 테마는 미래예요. 다가올 미래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바예요.”
정동문화축제를 통해 적지 않은 마니아를 갖게 되었다는 양승예씨. 그의 팬들은 학생부터 호호 할머니까지 연령층이 다양하다고 한다. 언젠가 그에게 그림을 배운 팔순 할머니가 동양화를 그리는 모습을 보고 감동했다는 그는 대중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그리고 좀 더 나이가 들면 일반인들이 미술을 배우거나 감상하는 일에 길잡이가 되고 싶다고 한다.//
기사의 주인공인 한국화가 고선(高仙) 양승예 화백은 나와 4반세기의 길고 긴 세월의 인연을 쌓아왔다.
기사에 실린 내용에도 있듯, 건설회사 간부인 남편과 일찌감치 가까이 지낸 덕분에 이어진 인연이다.
그동안 부부동반의 만남이 꽤 있었다.
그렇게 오랜 인연임에도, 그 삶의 세세함을 알지 못했었다.
어쩌다 만나면 그저 밥 먹고 술 마시고 일상의 이야기들로 노닥거리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그랬는데, 2022년 9월 첫날로 1일 목요일인 오늘로, 양 화백에 대한 삶의 이력을 좀 더 세세하게 알게 됐다.
바로 오늘 이 꼭두새벽에, 인터넷 Daum사이트 검색으로 확인하게 된, 위 기사 덕분이다.
내 그 기사를 찾아보게 된 것은, 지난주 토요일인 2022년 8월 27일 오후 4시에, 서울 동남쪽의 종합물류센터인 ‘가든 파이브’ 툴동 4층의 ‘Between’ 카페에서 열린 ‘제임스 정의 7080하모니카 콘서트’에서, 우연히 양 화백을 만나게 되면서였다.
이날 양 화백은 6인조 ‘세자미앙상블’의 멤버로 출연해서 ‘카프리섬’과 ‘야래향’이라는 곡을 연주했었다.
아름다운 조화의 연주였다.
아내를 통해서 양 화백이 최근 들어 하모니카를 배우고 있다는 이야기를 익히 듣긴 했으나, 그렇게도 익숙한 솜씨로 잘 연주하는지는 미처 예상치를 못했다.
전혀 의외였다.
내 이날 그 공연에 발걸음 하게 된 것은, 내 중학교 동기동창으로 그곳 ‘가든 파이브’에 사업체를 갖고 있으면서 이번 공연에 큰 후원을 아끼지 않은 김용균 친구의 초대가 있어서였다.
그래서 아내를 동반해서 그 공연에 발걸음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양 화백이 이날 공연에 출연하는지는 전혀 알지를 못했다.
김용균 친구가 카카오톡 메시지로 미리 보내준 공연 팸플릿을 세세하게 챙겨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하모니카들의 화음이 참 아름답게 어우러져 내 귓전에 얹히고 있었지만, 나는 유독 양 화백에게만 시선이 갔다.
그림에 전념하던 화가가, 어느 날 갑자기 하모니카 연주의 달인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서였다.
참 아름다운 변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