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선수들의 자신만만한 모습 뒤에 가리워진 '와일드카드론'
우리나라 올림픽 축구대표팀은 험난한 예선을 거쳐 결국 베이징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올림픽호의 핵심인 박주영 선수 (AS 모나코) 가 올림픽 예선 중 퇴장 및 컨디션 난조로
잠시간의 공백기를 가졌으나, 그것을 잘 막아준 것은 성남 일화의 유망주 한동원 선수
였다. 올림픽예선 막바지에는 이근호 선수 (대구 FC) 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끝까지 책
임져줬다. 말 그대로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베이징행이었다.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박
성화 올림픽 대표팀 감독과 그를 보좌하는 23세 이하의 젊은 선수들에게로 관심을 쏟
았다.
박성화 감독은 2001년부터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는데, 생각해보면 꽤나 오랜 시
간동안 한국 축구의 유망주들을 보듬어준 셈이다. 박성화 감독의 지시에 따라 세상에 갓
나온 이근호 선수, 박주영 선수, 오장은 선수, 백지훈 선수, 김진규 선수 모두 다 현재의
상태는 각 팀에서 주축으로 사용되는 인재로 발전한 모양새다. 특히 김진규 선수, 오장
은 선수, 그리고 이근호 선수는 모 축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베이징 올림픽에 대해 자
신만만 했다. 85년생 ~ 86년생의 축구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고 한 자리에 모이는 마지
막 국제 대회라면서 말이다. 그들은 게다가 현재 성인 국가대표 선수들이니, 국민들은
그들의 자신만만한 모습에 안심했다.
이들이 2005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나이지리아를 꺾고 1승을 따낸
수훈갑이었다면, 2007년 캐나다에서 펼쳐진 20세 이하 월드컵 대표팀 선수들은 물론 조
별리그 성적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앞으로의 10년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 가능성 있는 선
수들이었다. 이들은 대표적으로 신광훈 선수 (전북 현대), 이청용 선수, 기성용 선수 (이
상 FC 서울), 신영록 선수 (수원 삼성) 등으로 압축되는데, 그들을 가리켜 일각에서는 '
한국 축구 황금 세대' 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붙여줬다. 성적을 떠나서, 일단 지금껏 우리
가 본 대표팀 축구 중에 가장 패싱 게임이 활발, 정교하며 어떤 자리에 배치해놔도 변화
무쌍한 공격 작전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솜씨가 왠만한 성인 선수 못잖았기 때문이다.
2007년 캐나다 대회를 경험한 20세 이하 청소년 축구선수들은 조동현 청소년 국가대표
감독의 작품이다. 이제 조동현 감독은 언론에 의해 '황금 세대' 라는 칭찬을 받은 이들
을 고스란히 박성화 올림픽 감독에게 물려주면 되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2008년 베이
징으로 가는 기차에 탑승할 자들은 소위 말하는 '박성화 감독의 아이들', 그리고 '조동
현 감독의 아이들' 로 확정되었다. 2년을 주기로 벌어지는 대회 참가 기간, 그리고 거기
서 비롯되는 경험치와 커리어를 차치하더라도, 일단 이 선수들이 한창 그라운드를 누비
며 배워야할 젊은이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박주영 선수로 대변되는 박성화 감독의 제자
들, 그리고 '황금 세대' 후배들의 조합은 팬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리고는 박성화 감독은 와일드 카드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3장까지 쓸 수 있는 이 좋
은 기회를 단 두 번만 사용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최종 엔트리 18명이라는, 타 대회보다
선수 기용에 있어서 애로사항을 겪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박성화 감독은 젊은 피의 열
성적인 플레이에 더 점수를 주었던지, 이들보다 경험이 더 풍부하고 게다가 해외파 선
수인 김두현 선수 (웨스트 브롬위치), 이호 선수 (제니트) 등을 과감하게 빼버렸다. 이
것을 하나 빼먹지 않아야 하는데, 박성화 감독은 올림픽 대표팀의 리더 역을 위해 박지
성 선수 (맨유) 를 와일드카드의 유력한 후보로 점찍었다. 그러나 맨유 구단 측의 거부
로 인해 차출을 못했는데, 이렇게 될 바에는 차라리 젊은 선수들의 무조건적인 패기 하
나만 믿고, 리더쉽이 풍부한 선배 선수들의 비율을 줄이자는 심산이 컸다. 그리하여 와
일드 카드 두 장에는 각각 김정우 선수 (성남 일화), 그리고 김동진 선수 (제니트) 를 뽑
기로 하였다.
선수들은 너무 어렸고, 와일드 카드 한 장이 너무 아쉬웠다
이미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축구 예선은 막을 내린지 오래니까, 조별리그 경기의 리뷰
나 패배 요인에 대해 뻔한 이야기는 가급적 않겠다. 한국 축구의 수준, 그리고 세계 축
구의 벽에 가로막혔을 때 드러나는 현실적인 아픔 등은 너무 당연한 말이다. 베이징 올
림픽 대표팀 와일드 카드에 대해 조금 더 집중적으로 생각해볼까 한다. 물론 알고 있다.
23세 이하로만 뽑을 수 있는 올림픽 대표팀에게 찬스를 주는 것이 바로 와일드 카드이
고, 3장을 사용하여 나이 불문하고 능력있는 선수들을 데려다 쓸 수 있는 것이 바로 와
일드 카드다.
그러나 한국 축구는 와일드 카드를 사용해서 지금까지 덕을 본 경우는 참 많지 않았다.
운이 안 좋았다라고 해야 말이 될까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에는 홍명보 선수가 센
터백으로 나설 계획이었으나, 대회 직전 부상으로 인해 ‘홍명보 효과’ 를 누릴 수 없게
되었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에는 송종국 선수, 김남일 선수 모두 부상으로 전력
이탈하여 유상철 선수만이 외로이 수비 라인을 지켜냈다. 이런 어이없는 역사 때문인
지라,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 선수 차출에서도 축구계는 다소 긴장하며 와일드 카
드에 대해 고심히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겪어왔던 불운은 불운일 뿐이다. 와일드 카드 세 장이라는 아
주 좋은 기회를 그런 옛 이야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것은 단지 기우에 불과
하기 때문이다. 박성화 감독의 의중을 잘 알고 있다. 와일드 카드 실패 역사 때문에 조
심스러워지고, 거기다가 젊은 선수들의 능력이 최근 상한가를 달리고 있으니 ‘와일드
카드 두 장’ 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와일드 카드 후보군으로 점찍어
놓은 선수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한번쯤 스쿼드에 껴도 기대 이상은 하겠다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고, 그것은 올림픽 본선 매 경기를 치르며 더욱 더 절실히 느껴졌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와일드 카드 중 한 명인 중앙 미드필더 김정우 선수의 기대 이하의
활약에 대해 비판을 가하지 않지만, 그렇다면 나머지 한 장의 카드를 사용해서 공격 -
중원 - 수비 중 가리지 않고 어느 하나라도 노련한 선수를 넣었으면 우리가 느꼈던 아쉬
움은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스타 미드필더이자 성인 대표팀의 주장 김남
일 선수 (빗셀 고베), 제니트에서 부름을 받지 못하지만 어쨌거나 전문가들 사이에서 발
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칭찬을 받는 중원 청소요원 이호 선수, 그리고 2004 아네테
올림픽 영웅이자 훌륭한 타깃맨 조재진 선수 (전북 현대) 등 ‘한 장의 카드’ 로 사용할 수
있는 선수는 꽤 많지 않았나.
리더가 없는 올림픽 한국 축구, 결국 세계 축구의 표류에 휘말리다
이렇게 와일드 카드 한 장을 덜 쓴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은, 2008년 8월 7일 중국 친황
다오 올림픽 스포츠 센터에서 펼쳐진 카메룬과의 올림픽 조별리그 1차전에서 다 잡은
승리를 놓치고 말았다. 먼저 백지훈 선수의 왼쪽 윙 미드필더 기용에 대한 비판은 잠시
접어두고, 박주영 선수와 이근호 선수가 투톱을 맡은 가운데 어린 선수들의 활발한 공
격 이끄는 역할을 맡았다. 박주영 선수와 이근호 선수 모두 올림픽, 성인 국가대표를 오
가는 선수였기에 후배 선수들의 원활한 공격적 패싱 게임을 위해서 두 사람이 선봉장이
되어 카메룬 공격진을 두들겼다. 그러나 역시 두 선수의 나이도 아직 리더쉽을 발휘할
정도는 아니었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소용이 없었다. 여기에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
드필더가 제격인 백지훈 선수마저 왼쪽 윙어로 나섰으니, 어디서부터 풀어야할 지 모르
는 엉킨 실타래 같았다.
물론 기성용 선수와 더블 볼란테를 구축하며 와일드 카드 출신으로서의 리더쉽을 기대
했던 김정우 선수가 있었지만, 그는 중앙 미드필더가 완수해야할 상대방 공격 진로 차
단과 커버링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해, 팀의 구멍을 양산해왔다. 그러니까 리더쉽을 발
휘할 시간조차 없고, 김정우 선수는 그냥 어떻게든 기본 이상의 커버링을 할 수 있을 때
까지 땀을 뻘뻘 흘리는 꼴이 된 것이다. 왼쪽 사이드백으로써, 포백 수비의 전열 가다듬
기와 공격 조달이라는 임무를 맡은 김동진 선수는, 박성화 감독의 지시에 따라 오른쪽
사이드백 신광훈 선수와 함께 양쪽 사이드 공략에 매진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리더가
없는 축구, 그래서 우리는 박주영 선수의 프리킥으로 1-0으로 이기고 있다가, 현명한
경기 운용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허무하게 동점골을 헌납했다.
두 번째 라운드인 이탈리아전은 말 그대로 '가관' 이었다. 국제 대회 경험이 풍부한 공
격진이 각각 쓰리톱으로 나서서 이근호 - 신영록 - 박주영 라인을 이뤘다. 이들은 자기
네들의 중앙 미드필더 기성용 선수 등 선발 출장한 후배 선수들에게 이탈리아를 맞이하
는 쓰리톱의 탁월한 경기 능력에 대해 설명을 해줄 수 있었어야 했다. 쓰리톱 선수들이
유사시에는 수비가담까지 불허하며 밑으로 내려오라는 지시에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게
다가 현재 양팀의 상황을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이탈리아 문전 앞에 기다려서 보급해주
는 패스를 따라 골문을 노리는 식으로 일관했다. 역시 전형적인 리더가 없어서 생긴 웃
지못할 상황이었다. 중앙 미드필더 트리오에서 왼쪽을 맡은 김정우 선수 역시 이탈리아
전에서도 자기가 발생시킨 구멍을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까 생각 뿐, 선수들을 다독
이거나 긴장감을 조성할려는 모습은 실종되었다.
0-3으로 완패한 우리나라 올림픽 대표팀은 이제 와일드 카드 내의 리더 역을 하는 선수
를 찾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일단 마지막 라운드에서 온두라스를 잡고 실낱같은 8강행
희망을 기다리는 처지에 놓였다. 온두라스전은 와일드 카드의 리더쉽 실종에 대해 논
하는게 아니라, 와일드 카드라는 절호의 찬스가 하나 비었을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
절실히 깨닫게 되는 대목이었다. 와일드 카드 한 명을 더 써서, 대량 득점이 필요한 공
격진에 활력소를 불러일으키는게 온두라스전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젊은 선수들은 전반전 김동진 선수가 통쾌한 중거리 슛으로 골을 넣은 이후, 그
패턴 (미드필드가 김동진 패스 - 김동진이 흘러나오는 볼을 처리) 이 좋겠다 싶어 전후
반 내내 그 패턴으로 일관하고 말았다. 만약 리더쉽이 있는 와일드 카드 선수였다면 김
동진 선수를 가지고 좀 더 다양한 패턴을 구사하는 것을 종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더해
서 와일드 카드의 출중한 공격진이 있었더라면 우리는 결과야 어떻게 되었던간에 온두
라스를 상대로 대파하여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리는 리더가 없었다. 여러 국제대회를 경험한 '박성화 감독
의 아이들' 역시 아직은 설익은 자원에 불과했고, 선배급 선수들의 리딩을 바라왔던 '조
동현 감독의 아이들' 은 리더쉽의 실종에 의해 이리저리 표류하다가 결국 큰 실수를 저
질렀다. 우리는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꼭 '와일드 카드의 불운' 을 염두해야 했
을까. 가뜩이나 한 조에 이탈리아, 카메룬 등 강호들이 즐비한데 말이었다. 특히 이탈리
아와의 두 번째 경기는, 와일드 카드를 적절히 사용한 그들에 비견하여 굉장히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라치오의 공격수 톰마소 로키 (Rocchi) 는 우리나라와의 경기에서
지오빈코 (유벤투스), 주세페 로시 (비야레알) 등 자신을 보좌하는 양쪽 윙어들을 다독
여주며 같이 공격에 이끌어나가는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그들의 와일드 카드는
한 장이었지만, 뛰어난 리더 한 명의 역할에 대한 필요성을 그들이 우리에게 역설하는
듯 했다.
‘황금 세대’, 그리고 선배들이 한국 축구를 짊어질 때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 축구 예선에서 우리가 짚어야할 점은 와일드 카드 뿐만 아
니다. 이미 많은 언론에 의해 지적당했 듯, 우리가 그렇게 성장 발전을 염원하던 2007년
의 ‘황금 세대’ 는 세계 축구의 벽을 아직 뛰어넘지 못하는 새내기였음을 알게 되었다. 더
해서 선수들의 개인 기량이 턱없이 부족, 제대로 된 커버링이나 패싱 게임, 그리고 슈팅
능력은 고사하고 상대팀의 압박에 의해 끌려다니는 경향을 보였다. 넓게 얘기하자면 아
직도 고칠 점이 많은 수준 미달의 한국 축구를 베이징에서 다시금 본 것이다.
‘황금 세대’ 및 현재 국가대표에도 자주 이름을 올리는 젊은 선수들의 기량은 K-리그 및
대학 축구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어떤 이들은 이미 K-리그를 대표하는 주축 선
수로 각광받고 있는 실정이다. 각각의 독립체가 이렇게 가능성 있고, 팀에 보탬이 되어주
는 것은 아주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사안이지만, 역시 이들에게는 아직까진 경험 많은
선배들이 손을 잡아주고 멘토 역할을 해줘야 한다. 그들보다 먼저 태어나고, 먼저 큰 경
기에 임한 선배들은 이런 젊은 선수들에게 있어서, 가장 쉽게 우러다볼 수 있는 존재다.
이런 역할의 선수가 없었기에 베이징 올림픽의 패착 중 하나의 요인으로 대두된 것이다.
어린 선수들의 능력치 중에 소위 우리가 말하는 정신적 능력이 있다. 경기를 냉철하게 바
라보고, 상대팀의 파울이나 기싸움에 휘말리지 않고 소신대로 움직이는 것이 바로 정신적
능력에서 오는 행동이다. 우리 한국 축구가 가지고 있는 수준 미달의 경기 운용 능력이나
개개인 실력의 미흡함을 차치하더라도,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나타났 듯, 어린 선수들
을 이끌고 자기가 앞장을 서서 경기를 지배할 수 있는 리더가 바로 현재 성인 대표팀의 선
수들이다. 선배가 이끌어주고, 후배가 뒤에서 쫓아오며 이뤄지는 이러한 피드백 효과가 완
성되었을 때, 우리도 비로소 해외 축구 강국들처럼 ‘신구의 완벽한 조화’ 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어린 선수들 개개인의 기량도 발전한다. 올림픽에서 얻은
교훈,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준비하는 우리들에게 꼭 좋은 약으로 작용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