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국립중앙박물관이전 개축공 사. 구 중앙청서 기공
1954년 제네바회담에서 한국참전 16 국 공동성명
1950년 여간첩 김수임 사형 선고
1949년 군인용담배 '화랑'제조
1942년 카뮈, 소설 '이방인' 출판
1942년 아바나 승전연합대회서 대한 민국임시정부 승인
1215년 영국 존 왕, 대헌장 승인
신숭겸 등에 의해 추대되어 왕의 자리에 오름으로써 고려가 건국되었다.
나라 이름을 고려로, 연호를 천수로, 도읍지는 송악으로 정했다.
숭불 정책을 써서 불교를 국교로 삼았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남성들에게는 젊은 시절 추억을 건드리는 한마디가 있다.
"담배 일발 장전." "발사!"
고단하고 힘들었던 군대 훈련병 시절을 거쳤다면 외면 할 수 없는 기억의 편린이다.
1949년 선보인 최초의 군용담배 '화랑'은
81년 말까지 32년간 꾸준히 생산된 국내 최장수 담배로
생산량이 무려 27억 갑에 이른다.
이후 장병 처우 개선차원에서 일반 담배인 '한산도'와 '은하수'가 보급됐다.
90년 2월까지는 '백자', 94년 11월까지 '솔', 2000년 12월까지는 '88라이트',
그 이후부터는 '디스'가 지급되다가 2009년 완전히 중단되었다.
지금은 군대에서 담배 보급은 없어지고
매점(PX)에서 시중에서 판매되는 것을 사야 하는 만큼 변했다.
1950년 여간첩 김수임 사건
저사람이 죽으면, 나도 살 수 없어요...나도 죽어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file/pds37/11_cafe_2007_10_19_22_56_4718b77648606)
한국판 '마타하리'로 불려온 여간첩의 대명사,
이강국과 베어드 대령을 넘나드는 삼각의 애정 관계를 지속했던 '요부'
'공산주의자 이강국'과 '잘못된 애정' 행각을 통해 '붉은 물'이 들고,
나중에는 주한미군 헌병사령관 베어드 대령에게 접근, 동거까지 하면서
이강국을 위해 남한의 군사비밀을 빼돌린 '붉은 여간첩'
오직 사랑 때문에 간첩이 되었으나 결국엔 사랑까지도 이용하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버림받은 '가엾은 여인'
모두 김수임이라는 한 여자를 수식하는 말들이다.
김수임은 1911년 개성 출신으로, 홀어머니 아래서 자라났다.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11세에 민며느리로 팔려가게 됐으나
미국인 선교사의 도움으로 고등학교와 이화여전을 졸업,
세브란스에서 외국인 의사의 비서로 일하게 되었다.
그녀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남자는 이강국이었다.
이강국은 경성제대 출신으로 판검사가 되는 길을 포기하고 독일로 유학,
공산주의 운동을 택하였다.
김수임은 학교 선배인 모윤숙을 통해 이강국을 알게되었고,
곧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 사이 그녀는 미국 대사관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남한의 실세였던 미군 베어드 대령과 동거하며 사교계의 여왕으로 부상하였다.
8.15광복 후 본격적인 공산주의 활동을 하던 이강국에 대한 체포령이 내리자
김수임은 자신의 집에 그를 숨기고 1947년 월북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
월북한 이강국은 김일성 정권의 초대 외무부장으로 발탁되고,
김수임과 베어드 대령의 집을 대남 공작의 거점으로 활용하였다.
해방 공간에서 좌익들이 모두 북으로 올라간 후 우익들의 세상이 된 남한에서
김수임은 간첩협의로 체포되었고, 1950년 6월 28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 당시 언론은 미모의 여간첩이라는 소재에 열을 올렸고,
그녀가 재판 과정에서 아직도 이강국을 사랑하냐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대답했다는 내용은 신문의 헤드 라인을 장식하기도 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강국 역시 북에서 1955년 남로당 숙청 사건에 휘말려
간첩 협의로 사형당하였다.
첫댓글 옛날 역사가 담아있네요
잘 읽어보고 잠시 쉬어갑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션한 편안한 마음으로
휴일 잘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