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口)을 열기 전에 귀(耳)를 열어라 ❤️
성(聖)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다.
음악의 최고의 경지는 악성 (樂聖)이요,
시의 최고의 경지는 시성 (詩聖)이요,
글씨의 최고의 경지는 서성 (書聖)이요,
바둑의 최고의 경지는 기성 (棋聖)이다.
성(聖) 자를 보라, 참으로 뜻이 깊다.
'귀 이' 자와 '입 구' 자와 '임금 왕' 자의 세 요소가 합(合) 한 글자다
성인은 먼저, 남의 이야기와 역사의 소리와 진리의 소리를 조용히 듣는다.
다 듣고 난 후에 입을 열어 말씀을 한다.
듣고 말씀하는데 가장 뛰어난 존재가 성인이다.
그래서 성(聖) 자는 귀(耳)와 입(口)과 왕(王)의 세 글자의 요소로 구성된다.
듣는 것이 먼저이고, 말씀을 하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귀 이' 자를 먼저 쓰고 '입 구' 자를 나중에 쓰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성(聖)자는 의미 심장하다.
남의 이야기를 바로 듣고 깊이 이해하려면,
많은 지혜와 체험과 사색이 필요하다.
지혜와 체험과 사색이 부족한 사람은, 피상적으로 듣고 또 느낄 뿐이다.
귀가 있다고 들리는 것은 아니다.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져야만 들린다.
문맹(文盲)이 글을 못 보고
색맹(色盲)이 빛깔을 분간하지 못하듯이, 머리가 모자라면 깊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공자는 나이 60이 되어서 비로소 이순(耳順)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한다.
이순은, 남의 이야기가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경지요,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깊이 이해하는 경지요,
너그러운 마음으로 모든 것을 관용하는 경지다.
그것은 바다와 같은 넓은 마음(心)이요,
일체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대도량(大度量)이다.
입을 열기전에 먼저 당신의 귀를 열어라.
할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
말하기에 앞서, 상대방의 말을 먼저 들어라
입(口)보다 귀(耳)를 먼저 여는 오늘 하루도 복되고 복된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
일인장락(一忍長樂)- 한 번 참으면 오랫동안 즐겁다.
옛날, 성격이 급한 장사꾼(상인)이 먼~ 곳으로 행상을 나갔다가
몇 일 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떤 스님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날이 저물어 어두운 밤길을 걸으며 얘기를 나누다가 스님이
"내가 평생 살아가는데 교훈이 될 말을 전해줄 테니 귀담아들어 보세요." 한다.
"사람은 누구나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는데 그때 잠시 앞으로 세 걸음, 뒤로 세 걸음을 반복해 걸어 보세요."라고 했다.
장사꾼은 별로 특별한 법문도 아니라 생각하며 밤중에 집에 도착하여 싸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문 앞에 웬 남자의 흰 고무신이 아내의 신발 옆에 나란히 놓여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손가락에 침을 발라 문구멍을 뚫고 들여다보니 아내가 머리를 빡빡 깎은 젊은 스님을 꼭 껴안고 자는 것이 아닌가?
"이 여편네가 내가 없는 틈을 타서 외간 남자를 집으로 불러들여 정을 통하다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남편은 부엌으로 들어가서 식칼을 찾아 들고
방으로 막 들어가려는 순간, 조금 전에 스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앞으로 세 발자국, 뒤로 세 발자국을 걸어 보았다.
그때 부인이 발자국 소리를 듣고 방문을 열고 나오며 반가워하는데 그 뒤에 젊은 스님이 따라 나오며 "형부! 반가워요!" 하며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젊은 나이에 스님이 되어 언니를 찾아온 동생이 안쓰러워 꼭 껴안고 잠자는 것을 급한 성격에 칼로 찔러 죽일 뻔 했으니......
동행했던 스님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느꼈다고 한다.
참는다는 것은 평생교육이니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욕심을 참고, 화냄을 참고, 어리석음을 참는다면
우리네 삶이 한 단계 올라보다 더 행복할 수 있다.
일인장락(一忍長樂)은, 한 번 참으면 오래도록 즐겁고,
삼인불살(三忍不殺)은, 세 번 참으면 살인을 면할 수 있다는 뜻이니 잊지 말자.
ㅡ 옮긴 글 ㅡ
♥미소가 바로 친절이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비난을 해결하며 얽힌 것을 풀어
어려운 일을 수월하게 만들고 암담한 것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친절이다'라고 톨스토이는 말했습니다.
친절은 소극적인 행동이 아니라 적극적인 행동인데
성공한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적극성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일에 성공하고 싶다면 친절의 분량을 계속해서 늘려나가야 합니다.
친절하면서 웃지 않는 사람은 없듯이 친절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항목은 바로 미소입니다.
미소가 흐르는 얼굴은 자신 있어 보이며 때로는 용기 있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나의 친절한 미소는 나를 명품으로 만드는 데 꼭 필요한 필수 요소이자
성공으로 이끄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이 시간, 지금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세요.
나에게도, 나를 바라보는 상대방에게도 행복이 찾아올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때로는 기쁨이 미소를 만들어 내지만 때로는 미소 짓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 틱낫한 –
[미소가 바로 친절이다]에서
🌱 홀수문화. -
홀수는 우리 민족 정신문화의 깊은 뿌리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까마득한 시절부터 조선의 혼속에 묻혀 내려온 민족문화다.
자연스런 일상생활의 넉넉한 관습에서 얻어진 지혜의 소산으로
홀수는 딱 맞아 떨어지는 짝수에 비해서 넉넉하고 여유롭다.
그중에서도 특히 3을 선호하고 있지만 1.3.5.7.9 모두가 우리 생활 속 깊이 맥을 내리고 있다.
우선 국경일이라든가 명절이 모두 홀수 날이다.
뿐만 아니라 때 맞춰서 돌아오는 절기가 거의 홀수 날에 들어있다.
설날과 추석이 그렇고 정월 대보름 삼짖날 단오 칠석 백중이 그렇다.
9월 9일은 구일이라 하여 남자들은 시를 짓고 여자들은 국화전을 부쳤다.
천고마비의 살찌는 계절을 즐기던 조상님들의 흐뭇한 얼굴이 떠오른다.
생활 곳곳에 뿌리내린 3의 의미는 더욱 다양하다.
사람이 죽으면 3일 장 아니면 5일 장을 치르는 것이 보통이지 4일장이나 6일장은 없다.
역시 삼우제(三虞祭)가 있고 49제라는 추모의 날이 있다.
망자 앞에서는 홀수 날을 택하여 최대의 예우를 지키는 것이 뿌리 깊은 전통이다.
심지어 제물을 올려도 홀수로 올리지 짝수로는 차리지 않는다.
돌탑을 쌓아도 3 5 7 9 홀수 층으로 올렸을 때에 시각적으로 안정감이 들면서
보는 마음을 편케 한다.
애기를 낳고 금줄을 쳐도 세이레(三七日)동안 출입을 삼갔다.
신성한 생명을 지키면서 축복하자는 삼신할미의 준엄한 고지(告知)다.
봉투에 돈을 넣어도 우리 서민들은 두 자리 수가 아닌 이상 3만 원 아니면 5만 원을 넣었지
4만 원이라든가 6만 원짜리 기부 촌지는 보기 어렵다.
상납금을 강요하는 교장이 교감에게 넌지시 말씀하셨다고 한다.
‘짝수로 인사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 여지껏 그런 것도 모르느냐’
호통을 치는 바람에 백만 원을 더 얹어서 바쳤다고 한다.
쥑일 놈 같으니라구! 이렇듯 3이라는 숫자가 우리들 생활 중심에서 축을 이루고 있다.
춥고 긴긴 겨울을 삼동(三冬)이라 했고 무더운 여름을 건너가려면 삼복(三伏)을 견디어야 한다. 무리를 일컬어 삼삼오오라 했고 색깔을 이야기할 때도 삼원색이 근원이다.
상고(上古)시대에 우리나라 땅을 마련해 준 삼신(三神)이 있다 하여 생명신으로 섬긴다.
※환인은 단군신화에 나오는 桓雄의 아버지, 환웅은 웅녀와 결혼하여 檀君을 낳으니 이 세분이 三神이요 그 부인이 ‘삼신 할매’로 자식을 낳기 위해 삼신께 빌었으니 생명의 신인 셈이다. 이 글을 옮긴 이의 판단으로 첨가해 보았다.
삼재(三災)가 있는가 하면 또 삼재(三才)가 있다.
현대에는 시위문화에서 삼보일배(三步一拜)라는 것이 새로 생겼다.
간절하고 지극한 정성의 극치다.
가까운 이웃을 일컬어 삼 이웃이라는 좋은 표현이 있는가 하면
잘 하면 술이 석 잔 못 하면 뺨이 석 대다.
힘겨루기 판을 벌여도 5판 3승제를 하며 만세를 불러도 삼창(三唱)까지 해야 속이 후련했다.
짝수는 죽은 자의 숫자란 말이 있고 홀수는 산 사람의 숫자란 말도 있다.
그래서 제사상에는 과일을 홀수로 올리고 절을 두 번 하지만
산 사람에겐 절을 한 번만 하면 된다.
삼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목적한 것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은 생활 속 곳곳에 숨어있다.
그만큼 3이라는 숫자는 우리 생활의 디딤돌이요 구름판으로 안정된 균형을 이루고 있다.
🍃 기분 좋은 아침입니다 !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 늘 감사합니다 💕
[늙음은 축복(祝福)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인하여 늙어보지 못하고, 세상을 일찍 떠난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내가 늙었다는 것은 오래 살았다는 것이고, 사랑과 기쁨과 슬픔의 파란만장(波瀾萬丈)한
난관(難關)을 모두 이기고 살아왔다는 것이다.
늙음은 사랑과 정을 나누며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다.
시간은 삶의 기회이며, 진정한 축복이다.
시간은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많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이고, 많이 즐겁게 살 수가 있고,
많이 살았다는 것이다.
시간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무슨 일을 선택하여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은 진정한 축복이다.
고운 마음으로 바르게 열심히 살아 온 모든 노인들 에게는 늙음은 더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와 행복이며 축복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젊을 때처럼 살고 싶어서 하면 오늘이 불행 해진다.
젊을 때처럼 몸이 빠르지도 않고 변화에 적응도 잘 안되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은데,
'예전처럼' 살고 싶다며 옛날에 잘 나갔을 때를 생각하면
현재의 삶이 우울해져요.
나이 들어가는 게 괴로운 걸까요? 아니에요.
나이가 좀 들어야 인생의 맛을 알잖아요.
젊었을 때는 미숙했지만 나이 들면 경험이 많아져서
원숙(圓熟)한 맛이 있어요.
술도 익어야 제맛이 나고, 된장도 숙성해야 맛이 나고,
밥도 뜸이 들어야 맛이 있듯이 인생도 늙어야 제멋이 난답니다.
오늘도 내가 건강함에 감사하고 오늘 내가 숨 쉴수 있음에 감사하고
오늘 내가 누군가를 만남에 감사하고
감사가 넘치다 보면 우리의 삶도 저절로 행복해 집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라.
- 법정 -